러시아 로보캅 부대 1
러시아 로보캅 부대 1
투르크메니스탄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M37 고속도로 ‘세르다르’ 인터체인지에서 북동쪽으로 2Km 들어간 지점.
포장도로 양쪽은 휑한 사막 같은 불모지이고 여기만 덤불이 조금 우거져있는 곳이다.
낡은 트럭 한 대가 거의 새 차로 보이는 현대 마이티 4톤 트럭이 서있는 곳으로 와서 멈춰 서고, 차량 주변에는 AK-47 소총으로 무장한 병사 20여명이 그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레나룻 수염이 덥수룩한 이들은 시리아 북부에서 IS를 물리치고 터키 정부군의 공격을 받아 투르크메니스탄으로 피신해온 쿠르드족 민병대 YPG 소속 대원들이다.
“창 대장이 나보고 러시아 부대에 함께 가자고 하네. 너 혼자 애들 데리고 우즈벡에 갔다 와도 되겠지?”
세르다르까지 갖다가 막 돌아온 데킨 대장이 핸드폰을 요리조리 보물처럼 들여다 보면서 부대장인 괴뉠에게 물었다.
어제 사막의 여우 페넥 폭스(Fennec Fox) 부대 대장인 남창선이 자기 대원들 핸드폰 한 개를 데킨에게 주면서 세르다르 근처에서는 통화가 되니까 필요할 때 전화 걸라고 했다.
“그랬어요? 잘됐네요. 대장님도 러시아부대 한번 가보시면 좋지요. 우즈벡은 창 대장 페넥 폭스 대원들이 함께 가니까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렇지? 우리가 여기서 자리잡고 살아가려면 러시아부대 장교들한테 잘 보여서 나쁠 것 없겠지?”
“그럼요! 그래서 창 대장도 오늘 러시아 부대에 훈제칠면조를 200개나 갖다 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건 창원-터키가 투르크메니스탄에 지점을 차릴 생각이 있어서 홍보차원에서 서비스로 준다고 하지 않았어?”
“어제 러시아 장교 말로 훈제칠면조 한 개에 50달라나 한다면서요? 200개면 1만달라어치나 됩니다. 군부대에 납품할 것도 아닌데, 그 큰돈을 왜 쓰겠어요?”
“그건 알 수 없지. 훈제칠면조는 안 먹어봐서 모르겠지만, 가격만 괜찮으면 군납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어제 우리가 먹었던 전투식량도 창원-터키에서 직접 만든 거라며? 판다면 한 개에 4달라 정도 될 거라고 했잖아?”
“예, 맞아요. 전투식량은 진짜 좋던데요? 우리도 칠면조 키워서 돈 좀 벌게 되면 비상식량으로 사먹었으면 좋겠습니다. 흐흐.”
“그래. 오늘 칠면조 병아리 받아다가 열심히 길러서 돈 좀 제대로 벌어보자. 허허.”
창선이 칠면조를 한 달에 3천마리씩 사가기로 하고 칠면조 병아리 2만마리를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사오기로 한 것이다.
갓 부화한 병아리부터 5개월쯤 자란 것까지 5개월 단위 크기로 2만마리를 구매해 올 예정이다. 한 마리에 평균 1달러씩 쳐서 2만달러를 주고 사기로 했다.
부화한지 6개월 된 놈으로 무게가 6Kg이상 나가면 한 마리에 20달러를 주고 사가겠다고 했다.
저 4톤 트럭도 창선에게서 4만달러 주고 산 것인데, 병아리니까 한 트럭에 얼추 1천마리 정도는 싣고 올 수 있다.
그래도 2만 마리면 한 스무 번은 우즈베키스탄에 다녀와야 한다.
합한 대금 6만달러는 어제 창선의 부하 여섯 명을 납치해서 몸값으로 요구했던 6만불로 때운 셈이다.
그 일로 서로 친구처럼 되어서 오늘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거기다 창선의 부대원이 쏜 총소리를 듣고 여기서 3Km 거리에 있는 러시아 부대에서 출동해 왔었다.
그 부대의 캡틴인 러시아 대위에게 창선이 자기 창원-터키 명함을 줬고, 오늘 훈제칠면조를 홍보용 무상 서비스로 주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창 대장은 왜 우리한테 이렇게까지 선심을 베푸는 걸까요?”
“자기들도 이역만리 타국 땅에 나와서 고생하니까 외로운데, 서로 돕고 살면 좋다고 하지 않았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자기들 한국사람하고 혈통이 같은 여기 투르크멘이면 모를까, 우리는 오히려 투르크멘과 척을 지고 있는 쿠르드족 아닙니까?”
“야, 쿠르드족이라고 너무 티 내지 말아! 여기서는 우리도 투르크멘인 거야! 알지?”
“예, 그럼요. 그래서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 얼굴이 박힌 펜던트까지 이렇게 목에 걸고 다니지 않습니까? 흐흐.”
괴뉠이 목에 두른 목걸이에 달린 펜던트를 꺼내 보였다.
보석으로 장식된 동그란 펜던트에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인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함메도프’의 웃는 얼굴 사진이 들어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건국자이자 21년이나 집권했던 악명 높은 엽기 독재자인 초대 대통령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는 2006년 12월 새벽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전임 대통령 시절에 보건부 장관과 부총리로서 대통령의 양아들이라 불릴 정도로 신임을 받던 현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 연임하고 있다.
전임 대통령에서 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대통령이 절대적인 권위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국민들의 이런 절대적인 지지와 권위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투르크족은 몽골, 선비, 흉노, 맥족 등과 함께 어울려 알타이 산맥 주위에 흩어져 살던 유목민족이다.
유목민족은 일정한 주거지 없이 소와 양을 먹일 초원을 따라 부족단위로 이동생활을 하다가 강력한 지도자나 군주가 나타나면 그 깃발 아래 뭉쳐서 집단을 형성하는 특징이 있다.
AD577년에 부민 카간의 지도력 아래 투르크족은 최초로 돌궐제국을 형성하고 중국도 두려워하는 초원의 강력한 지배자로 군림하게 된다.
징기스칸은 몽골의 제 부족을 통일하고 중국과 중앙아시아, 중동을 지나 유럽의 일부를 제국의 영토로 편입했다.
다시 14세기에는 아미르 티무르가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쥐기도 했다.
용맹하고 잔인하기로 알려진 투르크족이지만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지배자에게는 바로 무릎을 꿇고 복종을 맹세한다.
반대로, 지도자가 힘이 약해지면 그대로 등을 돌리고 가차 없이 칼날을 들이대고 마는 것이 유목민족이다.
이렇게 맹수 같은 투르크멘(Turk men ‘진짜 투르크 족’ 이라는 뜻)을 통합하고 지배하려면 대통령의 이런 권위적인 지배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투르크메니스탄 내에서는 전임 대통령의 저서 ‘영의 서(靈의 書)’라는 뜻의 ‘루흐나마(Ruh Nama)는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꾸란)’보다 권위 있는 책으로 대학입시와 공무원 임용 시 필수 과목이다.
대통령의 가족사에 대해서도 국어시간에 배운다고 한다.
호텔, 관공서나 상점은 물론이고 어딜 가나 대통령의 사진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심지어 승용차의 룸미러에도 사진이 걸려있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7~17세의 청소년에게 무상으로 의무교육이 실시되고 있으며 실업학교와 고등교육기관들이 있다.
반면 모든 언론매체는 정부에서 엄격하게 관리한다.
우리나라도 최근에 이 무상교육과 무상급식이 표를 얻기 위한 인기영합주의인 포퓰리즘이냐 아니야 하는 문제로 시끄럽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당근과 채찍으로 유지하는 권력이 얼마나 오래 지탱할까 싶다.
“어? 저기 창 대장이 오는데요.”
괴뉠이 반갑게 소리쳤다.
오후 3시가 다 된 9월의 햇볕을 받고 달려오는 4륜구동 SUV 레인지로버가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그 뒤로 랜드로버 네 대와 4톤 트럭 세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따라오는 게 보인다.
랜드로버는 창선의 페넥 폭스 제1분대와 제2분대 대원 18명이 타고 있고, 트럭 세 대에는 생 칠면조를 운반할 대원 6명이 두 명씩 나눠 타고 있다.
트럭 운전 대원 6명 중에 3명은 제3분대 9명중에 어제 대기조로 쉬다가 오늘 교대한 대원들이다.
“어서 오시오, 창 대장!”
데킨이 서너 발짝 나가서 창선을 반갑게 맞이했다.
“일찍 오셨네요? 별일 없으시죠?”
창선도 반갑게 손을 내밀어 악수하며 뒤에 선 괴뉠에게도 눈인사를 했다.
차에서 내린 다른 대원 몇 명도 데킨의 부하들과 악수하며 반가움을 나눴다.
하루 만에 서로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된 느낌이다.
“칠면조 병아리들 담아 올 닭장 파렛트를 가져왔어요. 거저 드리는 거니까 그냥 쓰시면 됩니다.”
“아, 고맙소 번번이 신세를 집니다. 야! 병아리 실을 파렛트 가져왔단다. 어제 내려 봐서 알지? 우리 트럭으로 얼른 옮겨 실어라!”
데킨이 감사를 표하고 자기 부하들에게 어서 내려 자기들 트럭으로 옮겨 실으라고 지시했다.
데킨의 YPG대원 20여명이 우르르 달려가 페넥 폭스 트럭 세 대에 추가로 얹어 싣고 온 닭장 파렛트 12개를 내렸다.
“우리가 사용하는 무전기를 두 대 가져왔어요. 여기 세르다르를 벗어나면 핸드폰이 안됩니다. 저 트럭에 달고 다니면 우리 대원들하고 서로 연락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장님 대원들 간에도 무전으로 교신할 수 있고요.”
“아이구, 이렇게 고마울 데가. 우리는 무전기는 꿈도 못 꿨는데······”
데킨이 감동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어제는 핸드폰을 주더니 오늘은 무전기도 주니 얼마나 고맙겠는가?
창선의 분대장들이 무전기를 데킨의 낡은 3톤 트럭과 마이티 4톤 트럭에 가져가 운전석에 설치하고 괴뉠에게 통화하는 시범을 보였다.
“아, 참. 러시아 부대에는 저 혼자 가는 겁니까?”
데킨이 생각난 듯 창선에게 물었다.
“혼자 가셔도 상관은 없지만 웬만하면 한 서너 명 데려가시지요. 저는 한 개 분대 9명 데리고 갈 겁니다.”
“그럴까요? 그러면 세 명만 데리고 가겠습니다. 저희가 따라가는 게 사업하시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러시아 부대원들이 투르크멘 같던데, 데킨 대장님과 함께 가면 투르크멘인 줄 알고 더 친숙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아, 예. 그렇기는 하지요. 투르크멘들은 우리가 굳이 쿠르드족이라고 밝히지 않으면 투르크멘인 줄 알 겁니다. 하하.”
“대장님! 파렛트 다 옮겨 실었습니다.”
제2분대장이 와서 보고를 했다.
“응, 그래. 우즈벡 농장에 잘 안내해 가서 병아리 구입하고 싣는 것도 도와주도록 해라. 그럼 출발해.”
“옙! 임무 잘 마치고 오겠습니다.”
“그럼 저도 잘 다녀 오겠습니다. 창 대장님, 여러 가지로 고맙습니다.”
괴뉠 부대장이 와서 창선에게 감사 표시를 했다.
트럭에 무전기를 달아주니 날개들 단 듯 얼마나 기쁘겠는가?
“그래요. 처음 가는 길이라 고생 좀 하고 오십시오.”
창선이 손을 내밀어 배웅인사를 했다.
페넥 폭스 제2분대 랜드로버 두 대가 앞뒤로 호위해서 괴뉠의 YPG 부대원 17명이 탄 트럭 두 대와 창선의 트럭 세 대는 서둘러 출발했다.
데킨은 부하 한 명과 함께 창선의 레인지로버에 타고 나머지 부하 두 명은 제1분대 랜드로버에 올라탔다.
창선의 래인지로버를 선두로 두 대의 랜드로버가 조금 전에 트럭들이 간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전방 3Km에 러시아 부대가 있다고 했다.
창선이 큰 돈을 들여가며 데킨의 크루드족 민병대 YPG와 친분을 만들고 지금 러시아부대에 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얼마 전에 거제도 구국대열 본부에서 단장인 신창원 회장을 만났을 때 신창원이 남창선에게 은밀히 내린 지시가 있기 때문이다.
머지 않아 러시아가 주동하는 전쟁이 흑해와 카스피해 주변에서 벌어질 거라고 했다.
흑해는 이란에서 멀지만 카스피해는 이란이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 카스피해 주변국부터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 거라고 했다.
그리 되면 러시아는 우리의 적국이 되니까, 러시아 군대를 맞아 싸우기 위한 대비책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철저히 강구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선 우즈베키스탄에서 칠면조를 운반해오는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투르크멘과 쏙 빼 닮은 쿠르드족 민병대가 창선의 부하들을 납치해서 돈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창선이 칠면조 사육을 미끼로 데킨 부대와 친구를 먹었고, 마침 그 자리에 나타났던 러시아부대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지금은 훈제칠면조 200개를 가지고 러시아부대로 가고 있는 중이다.
여차하면 데킨의 민병대화 손을 잡고 제 발로 나타난 러시아부대를 공격할 생각이다.
우선은 이 후미진 곳에 와 있는 러시아부대가 뭘 하는 부대인지 그 규모부터 파악해봐야 한다.
10분도 안돼서 저만치 흙벽돌로 담벼락을 친 엉성한 막사 건물이 나타났다.
담벼락 안쪽에도 2층이나 될까 싶은 낡은 시멘트 건물이 보인다.
초라한 위병소에 러시아 깃발만 없다면, 꼭 양치는 목장처럼 보이는 건물이다.
그런데, 창선이 가고 있는 저 초라한 러시아부대 안에는 창선이 생각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며칠 전에 급히 부대가 배치된 저 곳에는 최신형 웨어러블 배틀 슈트를 착용한 러시아 로보캅 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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