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여우 4 (쿠르드 족)
사막의 여우 4 (쿠르드 족)
“야! 네놈들 대장 이름이 창이야?”
납치범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포박되어 무릎을 꿇고 있는 페넥 폭스 대원을 보고 아랍어로 물어봤다.
그는 지금 막 창원-터키 공장에 전화를 걸어 남창선에게 인질 6명의 몸값으로 6만불을 가져오라고 한 녀석이다.
“예.. 맞는데요.”
다 알고 물으니까 남창선의 부하가 어눌한 아랍어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조금 전에 납치범이 남창선과 통화하는 중간에 잠시 대장과 몇 마디 나눴는데, 오후 2시에 도착하니까 그때까지 마음 편하게 시키는 대로 하고 있으라고 했다.
“이 자식들 용병이래요?”
부두목 같은 놈이 우두머리 두목에게 물어본다.
트럭에 생 칠면조 잔뜩 싣고 먼 길을 달려 운반하는 것 보고 창원-터키 공장에서 고용한 용병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가 봐. 이 자식들 부대 이름이 페넥 폭스라네.”
“사막의 여우요? 아, 저 펜-폭스가 그 뜻이군요.”
페넥-폭스 대원들이 타고 다니는 트럭에는 가로 세로 1.2*1.0 미터의 큰 깃발이 꽂혀있다.
깃발에는 영어로 ‘Fen-Fox’라고 쓰여있고, 대원들이 입은 전투복 상의 포켓 위에도 같은 로고가 부착되어 있다.
이란 내에서는 나름 이미 잘 알려진 부대여서 이란 국경을 넘나들 때 이란혁명수비대인 IRGC로부터 받는 검문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물론 훨씬 폼이 나서 대원들의 사기도 고양된다.
“응. 그런 것 같아. 대장 창이란 놈은 아주 겁도 없이 큰 소리치는 게 제법이던데? 어떤 놈인지 얼른 보고 싶네. 흐흐.”
“그래요? 이 자식들 중동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야, 네놈들 차이나에서 왔냐?”
남창선의 부하들은 이란에 온 지 3년이 넘었다.
그 동안 뜨거운 모래바람 부는 사막의 땡볕에서 훈련 받고 일하느라 얼굴은 완전 갈색에 가깝게 변했다.
거기다 일부러 중동의 아랍인처럼 보이려고 수염도 길러서 얼핏 보면 피부가 뽀얀 한국인인지 구별이 잘 안 된다.
“차이니스 아닌데요."
“그럼 저팬에서 왔어?”
“저패니스 아닌데요.”
“그럼 뭐야? 이 새꺄! 어느 나라에서 온 놈들이야?”
“코리안 인데요.”
“코리안? 아, 이 자식들 노스 코리아에서 온 용병들이네요! 이란이 노스 코리아에서 미사일을 수입해 온다고 했죠?"
이 납치범들은 이란에 인접한 터키의 반군 테러단체라서 이란과 북한이 아주 밀접한 관계인 줄 잘 알고 있다.
“그래? 이젠 군인도 수출하는 모양이네? 흐흐.”
“노스 코리아는 러시아하고 한편이고, 러시아는 터키하고 으르렁거리고 있으니까, 이 자식들 우리 적군은 아닌 것 맞지요? 대장님!”
“그렇지! 터키는 우리의 적이니까, 적의 적은 우리의 동지나 마찬가지지. 야! 쟤들, 손목 풀어주고 물이랑 먹을 거 좀 갖다 줘라. 우리의 동지 되는데. 흐흐.”
창선의 부하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린다.
자칫했으면
“노스 코리안 아닌데요. 사우스 코리안 인데요.”
할 뻔 했다.
지금 남창선의 부하들을 납치한 이 괴한들은 터키의 쿠르드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이다.
YPG는 터키 동부에서 테러를 일삼아온 쿠르드 족 분리주의 무장단체 PKK(쿠르드 노동자당)의 분파 테러조직이다.
이들은 자기들이 시리아에 준동하는 IS 퇴치에 동참하면 터키로부터 자기들의 자치구역을 확보할 것으로 생각하고 터키의 공식적인 지원 하에 IS 퇴치에 적극 참여했다.
그러나 막상 IS가 물러나자 터키는 터키군과 터키군 진영의 자유시리아군(FSA) 계열 반군을 시켜 YPG를 소탕하기 시작했다.
시리아 북부 터키의 ‘알레포’주 여러 도시에 거점을 뒀던 YPG는 수세에 몰려 조직원과 가족 3만4천명이 함께 이곳 투르크메니스탄으로 피신을 온 것이다.
PKK의 주력부대는 이라크 북부 산악지대인 ‘산자르’로 피신했고, 나머지 쿠르드 반군들도 흩어져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와 남부 국경지역 ‘다라’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일단 터키에서 축출된 YPG는 IS를 적으로 삼고 싸웠기 때문에 IS와 연줄이 있는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으로는 들어가지 못한다.
우선 광활한 사막과 초원지대로 이루어진 이 투르크메니스탄 산지의 계곡 어딘가에 터전을 잡고 살아갈 거점을 확보하려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얼마간의 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마침 매일같이 트럭에 칠면조를 실어 나르는 이 페넥 폭스 대원들을 발견했던 것이다.
무장은 했지만 인원도 6명밖에 안 되면서 매일 새벽에 일정한 곳에서 잠을 자고 출발하니까 쉽사리 포획한 것이다.
그런데 터키는 왜 이 자기 나라에 살고 있던 소수민족인 쿠르드에게 작은 자치구 하나 떼어주지 않고 말살정책으로 몰아내는 것인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징검다리에 위치한 터키는 비자발급 없이 유럽을 자유롭게 통행하고자 유럽연합(EU)에 가입하려고 오래 전부터 애를 써 왔다.
그래서 EU와 터키 는 지난 2016년 3월에 난민 송환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르면 터키로부터 그리스에 도착한 난민 중 불법적인 이주민을 터키가 다시 전부 받아들이는 대가로, EU는 터키에 자금을 지원하고 터키 국민에 대한 비자면제 요건 완화 시기를 그 해 연말에서 6~7월로 앞당겨 주기로 했다.
아울러 터키의 EU 가입협상도 가속화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프랑스 등 일부 EU 회원국들은 터키에 대한 비자면제 시 발생하게 될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터키로부터 경제적 이주민이 쏟아져 들어올 수 있고, 특히 터키 내에서 박해 받는 ‘쿠르드족’이 유럽 국가에 대거 망명을 신청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와 독일은 회원국들의 우려를 완화하고 급속히 시행되는 비자면제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긴급 제동 방안을 제의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그대로 눌러앉는 역외 불법체류자 수가 대폭 증가할 경우와 망명신청자 수가 급격히 증가할 경우, 그리고 재 입국 거부자가 크게 증가할 경우 등에는 비자 면제 시행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쿠르드족의 유럽 망명 우려가 터키의 유럽 자유통행 추진정책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EU가 터키의 유럽 자유통행을 미끼로 터키에게, 시리아 난민들 중에서 양호한 난민만 골라서 유럽으로 보내고, 문제가 되는 난민은 터키가 알아서 감수하라는, 아주 불공정한 조건을 내걸고 있는 것이다.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탈출하기 위해서 유일한 육로인 북부 터키로 몰려들자 터키는 난민들의 입국을 강력히 금지하고 있다.
앞서 280만명의 난민을 받아들인바 있는 터키는 최근 국경 통제 강화 태세를 보이고 있는데, 터키뿐만 아니라 이제는 유럽 각국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난민을 되돌려 보내는 추세이다.
터키를 경유할 수 없게 된 난민들은 서부의 레바논으로 탈출하거나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로 몰려들었다.
그 난민의 숫자가 엄청나게 불어나고 프랑스, 독일, 영국 등에서 과격한 테러가 발생하자, 그리스 등 지중해연안 유럽국가들도 난민의 밀입국을 강력히 규제하게 되었다.
배를 탄 채 오갈 데가 없어진 난민들은 결국 지중해에서 표류하다가 침몰하는 사건이 수없이 발생하고 있다.
침몰한 난파선에서 바닷가 해안 모래밭에 떠밀려와 엎드려있던 어린 아이의 주검을 우리 모두는 기억할 것이다.
7년 넘게 치른 시리아 내전으로 35만 4천명이 숨졌다.
이중에 민간인이 10만 6천명인데, 이 가운데 어린이가 1만 2천명이다.
부상자는 300만명인데, 이중 팔다리를 절단하는 등 영구 장애인이 150만명에 이른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통계에 의하면 시리아 사태로 540만명이 나라를 떠났고, 330만명은 인접 터키에, 100만명은 레바논에 체류한다.
과연 이런 처참한 비극의 원인이 무엇인지, 우리는 한번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유럽대륙과 아시아대륙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터키 공화국’, 터키는 이란, 시리아, 그리스 등 8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3면이 지중해, 에게해, 흑해 등의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터키는 선사시대부터 인종과 문화가 다른 많은 민족이 모여 살고 있는 나라로 언어도 다양하다.
11세기에 동쪽에서 ‘투르크’족이 침입해 옴으로써 터키의 인종은 우리와 뿌리가 같은 몽골인종(투르크족)과 지중해인종의 혼혈로 이루어진 새로운 터키 인종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인구 8,000만명 중에 터키인이 80%이고 ‘쿠르드인’이 20% 이며 인구의 90% 이상이 터키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
인구의 7% 가량이 사용하는 ‘쿠르드’어는 시골 및 동부와 남부의 이주민들 사이에 폭넓게 쓰이며, 인구의 1%가 사용하는 아랍어는 주로 남동부 ‘아나톨리아’에서 쓰인다.
터키는 공식 국가 종교는 없으나 이슬람교도인 무슬림이 98%나 되는 나라이다.
세계 무슬림 인구에 관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에는 터키인구 7,360만명의 98%가 무슬림이었다.
5년 뒤인 2014년에는 인구 7,466만명의 98.6%가 무슬림이라고 한다.
이들 무슬림 대다수는 수니파이며, 그 외 종파로는 알레비파, 시아파, 12이맘파의 분파가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터키는 ‘수니파 무슬림 국가’라고 말할 수 있겠다.
등록된 모스크가 75,000여곳이나 있는 터키인 65%가 “종교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답했으며, “신은 존재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95%나 된다고 한다.
터키인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를 형제국이라고 부르는 터키는 6.25한국전쟁에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였고, 1957년에 대사 급 외교관계를 수립한 뒤 긴밀한 우호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2007년에 우리의 장갑차인 흑표전차 K-2 기술을 수입해간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2021년에 자체기술로 항공모함을 건조하겠다는 계획도 밝힌바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21년까지 자기 이름을 딴 강습상륙함(LPD)인 ‘TCG 에르도안’함 건조를 마무리한 이후 항모 건조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터키가 스페인 업체와 연합해 10억달러(1조2천억원)를 들여 건조중인 이 상륙함은 900명의 병력이나 10대의 F-35 스텔스 전투기, 헬기 등 무기를 운반할 수 있어 사실상 경항모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에르도안’ 대통령은 흑해가 러시아의 내해가 되다시피 했다고 비판하면서, 흑해에서의 나토군 군사력 강화를 촉구했다.
터키는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회원국이다.
머잖아 흑해에서 터키 해군과 러시아 해군이 서로 한판 붙게 될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해군은 아직 터키가 약하기는 하지만.
터키 인구의 20%나 되는 쿠르드족은 터키 내에서 심한 박해를 받고 살아왔다.
복잡하게 뒤얽힌 중동정세 심연에는 늘 쿠르드 문제가 존재한다. 쿠르드 딜레마는 중동갈등 해결을 위한 중요한 열쇠이자 동시에 걸림돌이다.
쿠르드 민족은 아랍, 터키, 페르시아 민족과 함께 중동의 주요 민족 가운데 하나이다.
이 가운데 쿠르드 민족만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붕괴 이후 민족국가를 이루지 못했다.
쿠르드 민족은 공중분해 되어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 그리고 아르메니아에 분리 편입되었다.
이 때문에 쿠르드 인들은 해당 국가들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게 됐고, 오랜 동안 해당국 권위주의 정권의 차별과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터키는 아예 쿠르드인의 존재를 부정하고 수십 년 동안 터키화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쿠르드 민족 자체가 분열되어 있으며 서로 경쟁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터키 8,000만 인구의 20%, 1,600만명이나 되는 쿠르드인이 제대로 독립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자기들의 분파 때문인 것이다.
우선 터키계 쿠르드는 크게 PYD(인민연맹당)/PKK(쿠르드노동자당)와 해다-파(Huda-Par)/헤즈볼라(레바논 시아파 조직과는 다른 그룹임) 그룹들로 나뉘어져 있다.
전자 PYD/PKK는 ‘세속적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터키 남동부 쿠르드 지역에 분리독립국가 또는 적어도 자치정부를 수립할 것을 목표로 한다.
이들은 터키정부와 IS 양쪽 모두를 상대로 테러전쟁을 벌여왔다.
반면 후자 해다-파/헤즈볼라는 쿠르드 내 ‘이슬람주의자’를 대표한다.
이들은 IS를 지지하며 쿠르드노동자당(PKK)를 포함한 ‘세속적 민주주의’ 쿠르드 세력들과 터키정부에 모두 적대적이다.
현재까지 수천 명의 쿠르드인들이 PKK 등의 ‘세속적 민족주의’ 그룹에 가담했으며, 약 6백 명 정도의 쿠르드 ‘이슬람주의자’들이 IS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 폭탄테러의 주모자는 ‘이슬람주의자’ 계열의 쿠르드인 IS 조직원이다.
그러니, 크루드 무장세력을 만나면 먼저 이들이 ‘세속적 민주주의’ 계열인지 ‘이슬람주의자’ 계열인지부터 확인하고 제대로 잘 응대해야 된다.
상대방이 ‘세속적 민주주의’ 계열이란 말을 듣고 속되 먹었으니 못된 IS와 한 패인 줄 알고 IS를 칭송했다가는, IS와 적대관계인 ‘세속적 민주주의’한테 맞아 죽을 것이다.
반대로 ‘이슬람주의자’ 계열이란 말에 숭고한 집단인 줄 알고 못된 IS를 비난했다가는 IS와 한 패인 ‘이슬람주의자’ 손에 맞아 죽을 것이다.
중동 땅에서 눈치 없이 굴다가는 자칫하면 모가지가 땅바닥에 구르는 수가 있다.
터키의 쿠르드 반군이라는 이 인민수비대 YPG가 어느 쪽 계열인지 알아야 제대로 대처를 할 것인데,
우리 사막의 여우 Fen-Fox 전투부대의 대장님 남창선, 창(Chang)께서는 어디쯤 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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