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반도 13 (외로운 늑대)
크림반도 13 (외로운 늑대)
투르크메니스탄의 세르다르 시에서 북쪽으로 200Km 떨어진 우즈베키스탄 국경 근처.
험준한 산골 계곡의 초원지대에 50여채의 토담집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통통하게 살이 찐 염소 수백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토담집 몇 군데는 칠면조를 사육하는데, 넓은 울타리 안에 크기 별로 여섯 종류로 칸막이를 나누어 기르는 모습도 보인다.
시리아 내전에 참전했던 쿠르드족 민병대 YPG 소속 대원 50명과 그들의 가족 150명이 남의 나라에 피신해서 숨어 사는 마을이다.
이들 YPG 부대는 시리아의 잔인한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와 맞서서 용감하게 싸웠다. 그런데, 막상 YPG가 IS로부터 점령했던 땅을 탈환하자, 터키가 욕심을 내어 이들 YPG를 공격하고 내쫓는 바람에 시리아를 떠나 이곳으로 피난을 온 것이다.
이들의 원래 고향은 여기서 동남쪽으로 500Km 거리에 있는 이란 동북부의 ‘호라산’이다.
이들은 이슬람교 수니파 무슬림인데, 고향 호라산에 들어가 살려면 이란의 무슬림들처럼 이슬람교의 시아파로 개종을 해야만 된다.
그래서 이들은 고향이 가까운 이곳 투르크메니스탄 북쪽의 한적한 산악지대에 은거지를 마련하여 살면서 간간이 고향의 친지들과 연락하며 길흉사에 참석하고 있다.
이들이 기르는 칠면조 2만여 마리는 이란 북쪽 고르간 시에 있는 ‘창원-터키’ 훈제칠면조 공장에 매달 3천 마리씩 납품하고 있다.
“어서 오시오, 창 사장님! 오랜만에 보니 참 반갑소! 허허.”
이 마을 촌장 격인 YPG 부대 테킨 대장이 솥뚜껑 같은 손을 내밀고 남창선을 반겼다.
이들은 아직도 자기들에게 칠면조를 사육하게 도와준 남창선이 ‘창원-터키’의 사장인 줄로 알고 있다.
“잘 지내셨어요? 얼굴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하하.”
창선이 악수를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늘은 이들에게 큰 부탁을 하러 일부러 들렀다.
“안녕하셨습니까?”
인상파 부대장 괴뉠도 창선을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셨소? 철갑상어는 좀 잡았어요? 하하.”
창선이 괴뉠과 악수를 나누며 카스피해 철갑상어 잡이 근황도 물어본다.
“아이구! 요새는 카스피해 연안에 러시아 군대가 출입금지를 시켜서 철갑상어는 엄두도 못 냅니다.”
“아, 그래요? 무슨 일이 있나 보지요?”
“한 달쯤 전에 어떤 괴한들이 들어와서 러시아 초계함을 불태웠답니다. 그래서 이제는 카스피해에 고기 잡으러 가지도 못하고 있어요.”
“아, 그래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어떤 놈들이기에 감히 러시아 초계함을 불태웠을까요? 대단한 놈들이네요.”
창선이 시치미를 떼고 금시초문인 척 했다.
자기 ‘대도무문단’ 단장인 고문도 작품인줄 들어서 잘 알고 있다.
“카스피해 주변에 러시아에 척을 둔 자치공화국들이 쫙 깔려 있어요.”
“그래요? 카스피해 주변은 이쪽 투르크메니스탄 말고는 남쪽 이란과 서쪽의 아제르바이잔뿐이잖습니까? 어디에 자치공화국들이 있지요?”
“아제르바이잔 북쪽 캅카스산맥이 러시아와 국경처럼 되어있는데, 사실은 캅카스산맥 북쪽에 자잘한 자치공화국이 일곱 개나 있소. 체첸 공화국은 들어봤지요?”
“아, 체첸이요? 러시아에서 폭탄테러 같은 거 엄청 많이 한 반군 아닙니까?”
“맞아요. 그 체첸공화국도 캅카스산맥 북쪽에 있소. 그러니 어떤 공화국 녀석들이 카스피해에 와서 러시아 초계함을 요절냈는지 알 수가 없지요. 하하.”
“하하, 그렇겠네요. 그렇게 되면 저 카스피해에 주둔하는 러시아 소함대가 자기들 전력만 믿고 함부로 설치지는 못하겠군요?”
캅카스산맥의 남쪽에는 동쪽으로 카스피해에 연한 ‘아제르바이잔’이 있고, 서쪽으로 흑해에 연한 ‘조지아’가 국경을 접하고 붙어있다.
그 일곱 개의 러시아 자치공화국은 동쪽 카스피해로부터 서쪽 흑해쪽으로 다게스탄, 체첸, 잉구세티아, 세베로오세티아, 카바르디노발카르, 카라차예보체르케스카야, 아디게야 등이 국경을 접하며 캅카스산맥 북쪽에 사다리 칸처럼 다닥다닥 붙어 길게 늘어서있다.
다들 옛 러시아제국, 구 소련에 합병되면서부터 독립의 의지를 가진 민족 지도자들이 나서서 지금까지 독립투쟁을 벌여왔겠지만, 옆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면, 독립해도 제대로 된 국가 행세도 못할 것 같아 보이는데, 그냥 러시아 공화국의 일원으로 살지 왜 굳이 독립국가를 세우려고 피 흘려 저러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혹시 골목대장 노릇 하고 싶은 함량미달의 싸움꾼, 가짜 민족 지도자의 농간에 휘말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를 들어 체첸인은 전부 200만명인데, 체첸공화국을 포함한 러시아 내에 140만명이 살고 있고, 나머지 60만명은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의 체첸인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었다.
18세기에 러시아가 캅카스 지역을 지배하려 하자, 동부의 나흐족은 격렬히 저항한 반면, 서부의 나흐족은 러시아에 쉽게 굴복하였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이 두 집단을 각각 다르게 인식하게 되었고, 두 집단의 거주지의 이름을 따서 동부의 나흐족을 ‘체첸’, 서부의 나흐족을 ‘인구시’라고 구별하여 부르기 시작했다.
‘체첸공화국’과 나란히 붙어있는 ‘잉구세티아공화국’은 러시아에 일찍 빌붙어 살아서 그런지 체첸공화국보다는 조금 살기가 낫다고 한다.
2012년경부터 푸틴이 체첸공화국에 특별히 신경을 써서 초토화된 과거와 전혀 달리, 수도 ‘그로즈니’에 화려한 야경과 고층빌딩들이 건설되고 치안도 크게 개선됐다고 한다.
아마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던 ‘소치’와 멀지 않아서 러시아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체첸인들은 자신들을 늑대에 비유하며 자기들의 상징으로 삼았다.
1991년 ‘조하르 두다에프’가 독립을 선언한 ‘체첸공화국’의 국기는 달빛을 배경으로 앉아있는 외로운 늑대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또한 체첸 국가에는 “우리는 밤에 태어나, 어머니 늑대가 길러줬다’는 구절이 첫 번째로 나온다.
왜 모든 동물 중에서 늑대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그들은 자세한 설명을 남겼다.
<힘의 상징은 사자와 독수리지만, 그들은 자신보다 약한 동물을 공격한다. 늑대는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도전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힘의 부족함을 대담성과 용기, 지혜로 극복한다. 싸움에서 패하면, 두려움에 떨지 않고 고통에 움츠러들지 않은 채 조용히 죽음을 맞는다. >
체첸이 러시아제국 땅이 된 이후부터 독립을 추구하여 러시아와 오랜 시간 서로 갈등을 빚어왔지만, 현재 체첸인들은 분쟁에 너무 많이 지쳐있어서 오히려 이젠 아무 국가든 좋으니 그냥 잘 살고 싶다는 여론이 높다고 한다.
“그래도 전에는 공화국 반군들이 카스피해에서 감히 러시아 함대를 건드린 적이 없었다는데, 참 희한한 일이긴 합니다.”
데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그런데, 데킨 대장께서 어떻게 러시아 사정을 그렇게 잘 아십니까?”
그런 미심쩍은 부분을 놓칠 창선이 아니다.
“아! 그것이.. 실은 최근에 우리가 러시아 군대 쪽하고 접촉이 있었어요.”
말 실수를 하고 제풀에 깜짝 놀란 데킨이 잠시 망설이다가 엄청난 사실을 토로했다.
“예? 러시아 군대와 접촉이 있었다고요? 혹시, 우리가 그 러시아 로보캅 부대를 쳐부순 게 들통이라도 난 겁니까?”
도둑이 제발 저리는 법이다.
“아, 아니오! 걱정 마시오. 허허. 그게 아니고, 러시아 군부에서 우리한테 부탁을 해왔소.”
데킨이 절대 아니라며 손사랫짓을 했다.
“러시아 군부가 데킨 대장님 부대에 부탁을 해왔다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러시아 군인도 아니고 러시아 군부라니?
“우리한테 아주 좋은 조건으로 어떤 제안을 해왔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오.”
데킨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설명했다.
“그래요? 무슨 좋은 건수가 있나 봅니다. 하하. 그런데 설마, 체첸공화국 반군을 소탕해 달라는 제안은 아니겠지요?”
“하이구! 체첸 반군이 얼마나 무서운 놈들인데, 감히 우리 YPG가 소탕하겠소? 러시아 군대가 나서도 못한 일을! 허허.”
데킨이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그건 아니고, 무슨 일인데 러시아가 우리 데킨 대장님한테 좋은 조건을 걸면서 부탁을 해왔을까요?”
이쯤 되니 창선도 자못 궁금해서 못 견디는 표정이 되었다.
“그건 극비사항이라서 창 사장님한테도 얘기해줄 수가 없습니다!”
부대장 괴뉠이 테킨을 대신해서 대답하고 나섰다.
“아이구, 이거 정말 서운하네요! 나는 그래도 함께 피 흘려 러시아 로보캅 부대를 친 혈맹의 동지로 생각하고 있는데, 정말 이리 섭섭하게 대할 겁니까?”
창선이 괴뉠을 힐끔 쳐다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아, 아니오. 그런 게 아니라, 상당히 위험하고 극비리에 진행해야 되는 일이라서 괴뉠이 저러오. 특히 터키와 관련이 있는 건데, 우리 창 사장님은 터키에 무슨 군수품 관련 장사도 하고 있다면서요?”
테킨이 괴뉠에게 눈총을 보내면서 창선을 달랬다.
“아, 터키 군대와 관련이 있는 일입니까? 그렇다면 제가 혹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무슨 일인지 한번 말씀해 보시지요.”
터키 군대가 사용하는 ‘알타이’ 전차의 엔진부품을 밀수출하는 창선이 당당하게 한마디 했다.
“이것 참, 입장 곤란하게 만드시네요. 어이, 괴뉠! 나는 우리 창 사장님 도움으로 지금까지 우리 마을이 제대로 자리잡고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말씀 드려도 되지 않겠나?”
입맛을 다시던 대장 데킨이 수족인 부대장 괴뉠의 동의를 구했다.
“예, 그렇기는 합니다. 창 사장님 말씀대로 혹시 저희가 도움 받을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 혹시 전기 흐르는 철망 울타리를 뚫고 들어가는 방법이 있을까요?”
괴뉠이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전기가 흐르는 울타리요? 아.. 어디, 경비가 철저한 군부대 건물에 침투하는 작전인 모양이군요?”
“그렇소! 실은.. 터키에 있는 공군기지 한 군데를 기습해서 지하에 저장된 무기를 못쓰게 만드는 일이오.”
“예? 터키에 있는 공군기지를 습격한다고요? 아이구, 엄청난 일이군요!”
창선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쿠르드족 민병대 YPG가 용맹무쌍한 줄은 익히 들어 알았고, 함께 러시아 로보캅 부대를 습격하면서 담장 밑에 땅굴 파는 솜씨를 보고 실감나기는 했지만, 러시아 군부가 YPG의 실력을 인정하고 터키 공군기지 습격임무를 제안할 정도일 줄은 짐작도 못 했다.
“그렇소. 그 공군기지가 미군기지로 사용되던 인지를릭 기지요. 들어는 보셨소?”
“아, 그 유명한 인지를릭 공군기지 말씀이군요! 거기서 IS 공습을 위해 연합군 공군기가 1년에 5천번 이상 출격했다는 데 아닙니까?”
“맞소. 그 외에 들어서 아는 건 더 없소?”
“글쎄요.. 터키에 쿠데타가 일어난 이후에 터키가 미국하고 사이가 안 좋아져서 미국이 공군기지를 다른 나라도 옮겼다는 것 같던데, 그 공군기지 지하에 저장됐던 미군 무기가 꽤 많이 남아있는가 보네요? 그런데, 아무리 많아도 그렇지, 막강한 러시아가 그까짓 걸 굳이 못쓰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기껏해야 미사일일 텐데, 그걸 뭐 하러 어려운 작전씩이나 벌여가며 파괴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잘 안 된다.
“그게 그냥 무기가 아니고.. 핵폭탄이오! 이제 이해가 되시오?”
데킨이, 깜짝 놀랐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예? 핵폭탄이라고요? 아니, 터키가 언제 핵보유국이 되었죠?”
약간 놀란 창선이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터키가 자체로 개발한 게 아니고, 미국이 나토 연합국 용으로 가져다 보관해 둔 B61 핵폭탄이오. 터키 공군용으로 할당된 20발 정도가 남아있다는 것 같소.”
“아, 그렇군요. 터키가 나토 회원국이니까 터기 공군이 사용할 핵폭탄을 거기에다 보관해 둔거군요. 그래서 터키가 러시아와 전쟁이라도 벌이게 되면 그 핵폭탄을 사용할지도 모르니까, 아예 없애버리려는 거군요.”
“그렇소. 지금 미국 트럼프 정부가 노스 코리아 핵폭탄을 맞고 깡그리 날아갔지 않소. 이 틈에 러시아가 프랑스를 치려는 모양이오. 그런데 흑해함대가 지중해로 나가려면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과해야 되는데, 보스포러스 해협이 터키의 영토 안에 있으니까 터키의 통과 허가를 받아야 되는가 보오. 러시아 국방부가 터키 국방부에 열흘 전에 요청을 했는데 아직 아무런 답변이 없대요.”
“아하, 터키가 나토 회원국이니까 러시아가 자기들 회원국인 프랑스를 치도록 보스포러스 해협을 열어줄 수 없다는 말이군요. 그러면 터키가 나토 연합군 빽을 믿고 러시아에 도전하는 셈이네요?”
“그렇지요. 터키도 군사력은 세계 8위나 되요. 러시아가 아무리 막강해도 터기를 단숨에 깨부술 수는 없을 거요. 그러니까 우선 가장 위험한 핵폭탄을 제거해 놓고 담판을 지으려는 거겠지요.”
“그렇군요. 그런데, 러시아 군대에 그 유명한 특수부대 스페츠나츠가 있지 않습니까? 걔들을 보내면 될 텐데, 왜 우리 데킨 대장님 YPG 부대를 보내려는 건가요?”
창선은 아무래도 뭔가 이해가 안 된다.
“러시아가 한 짓이 아닌 척 하려는 거지요. 만약 러시아 군대가 직접 나섰다가 들통이라도 나면, 국제 여론도 그렇고, 터키가 사생결단으로 러시아에 덤빌 거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를 보내서 IS가 보복으로 벌인 작전인 것처럼 위장하려는 거지요.”
“아, 그렇게 된 거군요. 그렇다면 이번 작전은 진짜 엄청난 작전인데, 러시아가 제시하는 조건이 대체 얼마나 좋길래 덥석 물고 나서는 겁니까?”
어쩌면 나라 없는 쿠르드족 민병대 YPG 부대장 데킨도 체첸 반군 지도자처럼, 약한 자를 공격하지 않고 강한 자에게만 도전하는, 자칭 정의로운, 한 마리의 외로운 늑대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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