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토폴 7 (어느 배를 공격해)
세바스토폴 7 (어느 배를 공격해)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항에 주둔한 러시아 흑해함대를 공격할 D데이의 날이 밝았다.
고문도가 지휘하는 ‘대도무문단’의 6개분대용 소형 잠수정 18척은 새벽 먼동이 트기도 전에 세바스토폴 북서쪽 100Km 지점의 ‘스테파냐’ 해안에 무사히 상륙했다.
대도무문단 부단장 남창선이 이틀 전에 쿠르드족 민병대 YPG부대 대장과 부대장을 데리고 와서 잠수정 기지로 미리 잡아둔 해변가 민박집이다.
큰 2층 집을 통째로 빌렸기 때문에 60여명의 대원들이 낮에 숨어있어도 괜찮은 한적한 곳이다.
밤 10시쯤이면 잠수정을 타고 세바스토폴 항구로 진격할 것이다.
잠수정은 2인승 한 척과 4인승 두 척, 모두 10명이 탈 수 있는 세 척이 1개분대 9명에게 할당된다.
‘대도무문단’은 6개분대 중에 1개분대 9명이 압하지야 공화국의 알락해치 기지에 남고, 5개분대 45명만 여기로 왔다.
남은 1개분대용 잠수정에는 운전병 3명 외에 데킨과 괴뉠의 요구대로 YPG부대 대원 5명이 타고 왔다. 데킨과 괴뉠을 포함하면 YPG는 모두 7명이다.
단장 고문도와 부단장 남창선은 운전병 딸린 전용 2인승 잠수정이 별도로 배정되어 있다.
그들의 2인승 잠수정과 각 분대장의 2인승 잠수정에는 무인 원격 감시 드론인 ROV가 한 대씩 딸려있다.
ROV에는 고성능 감시카메라 외에 1와트(W)급 레이저 건이 장착되어있어 멀리서도 조종기 화면을 보며 발사할 수 있다.
‘알락해치’에서 ‘스테파냐’까지 600Km의 뱃길을 잠수정을 타고 밤새워 달려온 대원들은 이른 아침을 먹고 잠에 곯아떨어졌다가 오후 두 시경에 일어났다.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해가 저물기를 기다리며 지금은 휴식을 취하고 있다.
11월 초순의 짧은 해가 지고 나면 든든한 저녁을 먹고 다시 잠시 쉬다가 밤 10시쯤에 움직일 것이다.
승리를 보장하기 어려운 큰 전투를 목전에 두어서 인지 대원들은 오늘따라 말이 별로 없다.
단장과 부단장을 믿기 때문에 지금까지 별 탈없이 소소한 전투를 잘 넘기고 여기까지 온 대원들이다.
그러나 오늘밤의 전투는 러시아라는 대국의 군대를 상대로 벌이는 전투다.
아무리 기습공격을 벌이고 잽싸게 빠져나가기로 되어있기는 하지만 항구에 정박한 거대한 함정을 부수는 일인데, 그렇게 만만한 전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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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선은 어제 데킨과 괴뉠을 데리고 민박집 고려인 주인장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술을 좀 많이 권했다.
40대 중반인 주인장은 일제강점기 때 조국을 떠나 러시아의 ‘바시코르토스탄’ 자치공화국에서 자리잡고 살았던 1세대 동포의 손자인 3세대 고려인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으로 분개한 말을 했지만 러시아에 대한 반감은 별로 없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께서 바시키르에 정착해서 농사를 지으며 자리를 잡으신 거군요.”
“그렇습니다. 아버지 대에서도 어렵게 살면서 땅을 더 넓혀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저한테 물려준 땅이 10만평쯤 됐어요.”
“아이구, 이거 완전 금수저 출신이군요?”
“예? 금수저요?”
“아, 부모 잘 만나서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난 걸 그렇게 부릅니다.”
“아, 그래요? 그런데, 바시키르에서 땅 10만평 가졌다고 부자 아닙니다. 그저 보통 정도 될까요? 10만평 중에 절반은 냇물 흐르는 초원지대와 숲이고, 농사지을 농지는 5만평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러면 농사짓기 싫어서 그 경치 좋고 넓은 땅 팔고 이곳 휴양 관광지로 이주를 온 겁니까? 여기도 땅이 수 천 평은 되겠습니다만.”
“예, 맞아요. 인생 길어봤자 80년인데, 나는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애면글면 땅 넓히며 살기 싫었어요. 그저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고생하신 덕분에 이렇게 좋은 곳에 와서 편히 살게 된 겁니다. 물론 내 자식들 생각도 해야 했고요.”
“아, 그렇겠군요! 요즘 젊은이들이야 어디 시골에서 농사 지으려고 하겠어요? 다 도시에 나가 살려고 하지요.”
“그러니까요! 내 딸이 이제 고등학생인데, K-팝 그룹 BTS의 열렬한 팬이에요. 하하.”
“예? 한국의 팝 그룹 방탄소년단 팬이란 말입니까?”
“그럼요. 이번에 유럽 공연 오면 친구들하고 관람 보내주기로 약속한 걸요. 여행경비 만들어 주려면 민박 장사해서 돈 많이 벌어야 됩니다. 하하.”
주인장은 이미 별 욕심 안 부리고 자식들이 하고 싶은 대로 뒷바라지 해주면서 평화스러운 삶이나 살다가 가려는 소박한 인생관에 젖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창선이 슬슬 분위기를 전쟁 위기로 몰아가기로 마음먹고 딴 소리를 꺼냈다.
“거 따님이 유럽 가기는 틀린 것 같은데요?”
“예? 왜요?”
“북한이 미국 수도 워싱턴에 핵폭탄을 날렸는데, 유럽에서 한가하게 팝 공연을 할 수 있겠어요?”
“그거야 미국 지네들 문제고, 유럽은 아직 별일 없지 않습니까?”
“아직 모르고 계시는군요. 지금 러시아가 유럽을 치려고 잔뜩 벼르고 있어요.”
“에이, 설마요! 러시아도 요즘 경기가 별로라서 먹고 살기 힘들 텐데, 괜히 전쟁을 벌이겠어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마자 북한이 탱크를 앞세워서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쳐들어 왔지 않습니까? 북한에 무슨 전쟁 무기가 있었겠어요? 다 구 소련인 러시아가 지원해서 쳐들어온 거지요. 빈틈만 보이면 먹어 치우는 게 러시아 속성 아닙니까? 이 크림반도는 왜 먹었겠어요?”
“그거야 흑해함대 주둔지로 세바스토폴 항이 필요해서 그런 거지요.”
“맞습니다. 바로 흑해함대가 지중해로 나가서 프랑스를 치려고 준비하고 있답니다.”
“예?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주인장이 놀란 눈으로 창선과 데킨 일행을 번갈아 봤다.
“저, 사실은 이분들은 이란의 우리회사 직원들이 아닙니다. 시리아 내전에서 IS와 맞서 싸우던 쿠르드족 민병대입니다.”
“예? 쿠르드족 민병대라고요?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주인장의 눈이 토끼 눈이 되었다.
“사실은 러시아 군부의 부탁을 받고 엊그제 터키의 공군 비행장을 기습했었습니다. 그랬는데···”
하면서 창선이 데킨의 YPG부대와 러시아 군부 사이에 얽힌 터키 ‘인지를릭’ 공군기지 기습사건에 관해서 간략히 설명해줬다.
“아, 진짜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요? 그럼 러시아 흑해함대가 지중해로 나가는 게 확실한가 보네요. 그런데, 남창선 사장님은 어쩐 사연으로 이들과 함께 여기에 오신 겁니까? 회사직원들 휴가도 거짓말이지요?”
주인장이 이제야 뭔가 감을 잡고 불안한 눈을 굴렸다.
“예, 그렇습니다. 내일 여기에 올 우리 직원들은 한국에서 온 전투부대입니다. 러시아 흑해함대의 지중해 진출을 막으라는 국가의 특명을 받고 왔습니다.”
창선이 대단한 부대나 되는 것처럼 허세를 부렸다.
“아, 그래요? 그러면 한국 군대의 특수부대인가 보네요?”
한국 내 사정을 잘 모르는 주인장이 속아 넘어갔다.
“맞습니다. 우리는 일당백의 정예부대라서 숫자만 보고 우습게 여기시면 안됩니다. 음, 흠.”
창선이 헛기침까지 보탰다.
“아, 그럼요! 특수부대는 저도 잘 압니다. 영화에서 많이 봤는걸요. 짐작하건대 세바스토폴에서 큰 전쟁이 벌어지는 건 아니고, 아주 조용히 기습해서 함정을 침몰시키려는 거지요?”
“예, 맞습니다. 우리도 기습 후에 신속히 퇴각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로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이웃도 머니까 우리 대원들이 왔다 간 줄도 모르지 않겠어요? 1주일 민박비용은 선불로 미리 드렸으니까, 문제 없으시죠?”
“아, 그럼요. 저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뭐든 도와드리고 싶은데, 별로 할 게 없네요. 작전에 꼭 성공하십시오. 내일 대원들 식사는 제가 특별히 신경 써서 준비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고려인 주인장이 다 알게 되었고, 조금 있으면 고별 저녁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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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낮에 세바스토폴 항구를 둘러봤다고요? 무슨 의견이라도 있으면 말해보십시오.”
문도가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문도와 창선이 데킨과 괴뉠을 마주보고 앉았고, 옆 테이블에 분대장 다섯 명이 함께 앉아있다.
“낮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경계가 너무 허술하던데요? 바다 쪽은 물론이고 육지에도 엉성한 철망 울타리에 특별한 망루도 없는 것 같던데, 밤에는 좀 다르겠지요?”
데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마 밤에도 같을 겁니다. 민간인 선박도 많이 정박해있는 항구라서 누가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겠지요.”
문도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정말 그렇다면 잠수정으로 침투하는 건 일도 아니네요. 그런데 군함은 여러 척이 있던데 우리는 어떤 걸 공격하면 됩니까?”
괴뉠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물었다.
자기들 YPG부대도 잠수정 세 척을 할당 받았으니까 단독으로 작전을 잘 수행해서 전공을 제대로 세우고 싶어 안달이 났다.
“우선 흑해함대 전체가 어떤 부대로 편성되어있는지 살펴보고 그 중에 공격할 타깃을 정해야 되겠죠.”
“아, 흑해함대 안에 다시 작은 부대로 나눠져 있는가 보죠?”
“그렇지요. 흑해함대 전체는 함정이 전부 40여척 되는데, 전투나 경비, 지원 등의 기능별로 작은 부대가 편성되어 있어요.”
“항구 경비 부대가 따로 있어요?”
“아, 평상시에 세바스토폴 항구를 경비하는 게 아니고 전체 함대가 작전상 출정할 때 함대의 경비를 서는 겁니다. 흑해함대에는 제400 대잠함 부대가 있어요. 그리샤급 초계함 세 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구축함과 순양함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적의 잠수함 접근과 공격을 막는 겁니다.”
흑해함대의 구성과 편성을 미리 조사한 문도가 쉽게 설명해줬다.
“거, 구축함과 순양함은 어떻게 다른 겁니까?”
데킨이 민망한 얼굴로 물어봤다.
사막 같은 시리아 내전에서나 싸웠지 바다에서 전투는 처음이니까 군함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당연하다.
“음.. 함정은 기능에 따라 크게 전투함과 지원함으로 구분합니다. 지원함에는 수송함, 상륙함, 소해함, 구조함 등이 있어요. 문제는 전투함인데, 전투함은 함정의 크기를 결정짓는 배수량에 따라 구분합니다. 대체로 1만톤급 이상이면 순양함이고 4천내지 1만톤급이면 구축함이에요. 그러니까 순양함이 구축함보다 더 큰 함정이지요.”
“아, 그렇군요. 그러면 전투함은 순양함과 구축함뿐인가요?”
“아니요. 작은 함정이 더 있어요. 1천5백톤에서 4천톤급 정도를 호위함이라고 부르고 1천톤급 안팎은 초계함이라고 부릅니다. 호위함은 프리깃함이라고도 부르고요.”
문도가 연구를 많이 했는지 술술 읊어준다.
“아, 그렇군요. 이제야 좀 구분이 됩니다. 그러면 고속정은 초계함처럼 경비서는 함정인가요?”
창선이 역시 단장은 다르구나 생각하면서 자기가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아니요. 고속정은 감시나 경비용으로도 쓰이지만 전투능력을 지닌 함정이에요. 적이 수백 미터 이하의 근접거리에 있을 때는 함포 사격을 하고, 유사시에는 충돌을 통해서 적 선체에 손상을 줍니다. 우리나라에는 200내지 500톤 참수리급 고속정이 있어요. 흑해함대에는 미사일을 장착한 고속정이 각각 6척과 5척으로 구성된 제166 및 제295 미사일함 부대가 있고요.”
‘대도무문단’의 단장 고문도가 별걸 다 알고 있다.
“아, 그래요? 그럼 제일 큰 순양함이나 구축함이 있는 전투부대도 있나요? 어제 보니까 억수로 큰 배가 있던데요. 함정의 번호가 121이던가?”
“예, 맞아요. 121번 함정이 제일 길고 크던데요? 그게 순양함인가요?”
데킨과 괴뉠도 그 배가 기억에 남는지 함께 물어본다.
“음, 맞아요. 그게 순양함 모스크바호 입니다. 제 11 대잠함 부대 소속인데, 이 부대가 모스크바호를 중심으로 카신급 구축함 한 척과 호위함 네 척으로 구성된 사실상 흑해함대의 주축 부대입니다.”
문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였다.
“혹시, 그 모스크바호라는 순양함을 격침시키려는 겁니까?”
눈치 빠른 창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맞소! 우리의 공격 목표는 바로 그 흑해함대의 기함인 함번 121의 모스크바호요.”
대답하는 문도의 눈에서 강한 의지의 불길이 타오른다.
“예? 그 큰 배를 침몰시키자는 말입니까? 길이가 180미터는 되겠던데요?”
괴뉠이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 저었다.
“맞아요. 우리 잠수정 열여덟 척 다 가서 들이받아도 끄떡도 안 할 것 같은데요?”
데킨도 그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라며 머리를 저었다.
“우리 1킬로와트급 레이저 포 3문으로 쏴도 배 옆구리에 구멍도 제대로 못 뚫을 것 같은데요?”
창선이 마저 어림없는 목표라며 도리질을 했다.
- 작가의말
독자님 안녕하세요?
아주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두어 달 전인 2022년 2월 24일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엊그제 4월 13일에 위에 언급된 러시아 ‘흑해함대’ 기함인 순양함 ‘모스크바호’가 격침되었답니다.
바로 우리 ‘대도무문단’의 혁혁한 공로인 줄 알고, 엄청 반가워서 이 글을 올립니다.
앞으로도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좋은 소식이 들리면 대도무문단에게 성원의 박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ㅎ
항상 건강하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0^
(혹시 제 근황을 알고 싶으면 ‘남강 문학회’에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2022년 4월 1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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