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무문단 18 (레디 액션)
대도무문단 18 (레디 액션)
[돈 많고 통이 큰 신창원]
땅벌파의 계두식 보스가 추진하던 영화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시나리오는 계두식이 오래 전에 준비해 뒀던 터라, 오야붕 땅벌의 허락이 떨어지자 당장 배우모집 광고 포스터부터 찍어서 배포했다.
경남지역의 신문에 광고도 내고 대원들을 동원해서 도시의 길거리에 전단지도 도배했다.
창원파 오야붕 신창원이 약속한 패싸움 보상금 2억원도 순순히 받아내게 되었다.
창원파에서 근거 남게 송금할 수 없으니까 땅벌파 대리인이 와서 직접 현금으로 받아가라고 했다.
문도는 칠면조 가공공장 인수인계와 영화 `사하라` 촬영 때문에 진주에 머물고 있었다.
“코모도 아우! 자네가 두식이랑 함께 창원에 다녀와야 되겠다.”
땅벌파 오야붕 이화수가 믿을 수 있는 중간보스는 후계자 내정자인 도동파 보스 계두식과 사실상 왼팔인 중앙파 보스 고문도이다.
문도는 땅벌 오야붕의 신뢰에 감사 드리고, 땅벌 중앙파 행동대장인 짱개 김봉구만 데리고 계두식과 함께 창원파 본거지인 창원으로 향했다.
“여~ 오랜만이오, 계두식 보스! 저기, 고문도 보스도 오셨구먼. 반갑소, 고 보스!”
창원파와 만나기로 한 호텔 커피숍에 대리인 대신 오야붕 신창원이 직접 나왔다.
그는 고문도가 함께 온다는 보고를 받고 일부러 만나보려고 나온 것이다.
진주 남강 강변 농구코트에서 벌인 7대7 맞짱 전투에서 자기 마창패 대표선수 7명중에 5명을 혼자서 때려 누인 고문도다.
막판에 원형진을 펼친 마창패의 떡대 같은 유도 유단자들을 자기 눈앞에서 돌부처로 만들어 쓰러뜨리던 문도에게 신창원은 오히려 좋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
“계 보스, 이 돈으로 땅벌파 대원들 몸보신 시키고 포상은 신나게 하겠구려. 하하.”
좌우에 중간보스를 배석하고 옆 테이블에도 대여섯 명을 배치한 신창원이 돈가방을 가리키며 호탕하게 웃었다.
중견기업체를 20여개나 소유한 소 그룹의 47세 회장이다. 그까짓 2억원쯤은 자기 한 달치 용돈도 안 된다.
“대원들에게 나눠주면 좋겠지만, 그렇게 쉽게 날려버리지는 않을 겁니다. 더 큰 돈으로 불려서 두고두고 우려먹으면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해야지요. 하하.”
좌우에 문도와 짱개만 배석한 44살 계두식이 적진이지만 꿀리는 기색 없이 신창원을 되레 놀려주며 약을 올렸다.
순간 부잣집아들로 겁 모르고 자란 신창원의 미간이 움찔거리며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그러다 옆에 앉은 문도를 쳐다보고는 금세 얼굴 표정을 온화하게 바꿨다.
“오호, 그래요? 그것도 괜찮은 생각입니다, 계 보스! 그런데 어떻게 불리시려고요? 아, 참. 부동산 사업을 한다고 하던가? 좋은 땅 있으면 나한테도 좀 소개해 주시오. 하하.”
전국구 레저 스포츠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신창원이 가난한 땅벌파를 조롱하며 즐긴다. 그러면서 몰래 문도의 반응을 살피는 눈치다.
“땅은 큰 돈 들여야 콩고물도 많이 묻어나는데, 이 돈으로 어느 세월에 불립니까? 수억 들여서 짧은 시간에 쇼부 볼 수 있는데 투자해야지요. 하하.”
계두식이 적은 돈으로도 큰 돈 버는 방법이 있는데 너는 모르지, 하는 표정으로 맞받아 줬다.
“아하, 그런 속성법도 있어요? 한 수 배웁시다. 무슨 사업인지 가르쳐주면 안 되겠소?”
신창원이 계두식과 문도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넌지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까요? 신 오야붕께서는 관심도 없겠지만, 우리는 영화사를 차릴 겁니다. 액션영환데, 시나리오도 다 준비됐고, 남녀 주인공도 신인 오디션광고 뿌리고 있습니다. 한 달 내로 촬영 들어가면 초가을에는 상영될 겁니다. 초대권은 충분히 보내드릴게요. 하하.”
계두식이 신나서 너스레를 떨며 자랑했다.
“영화사를 차려서 액션영화를 찍어요? 오호, 영상사업으로 뛰어드는군요. 그거 나쁘지 않은 구상 같네요. 하하. 우리도 레저스포츠 쪽은 하고 있는데, 미처 영상사업은 생각을 못했네!”
신창원이 의외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기야 조폭 오야붕 자리는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고 그는 놀기 좋아하는 건달 출신이니까 영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아는 여배우도 몇 명 있을지 모른다.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혹시 관심 있으면 협조도 한번 고려해 보시지요. 영화내용이 액션이다 보니까, 조직들간에 싸우는 장면도 많고 해서, 우리 대원들만 동원해서는 인원이 모자라거든요. 물론 출연료는 많이 못 드립니다. 하하.”
“아, 그래요? 좋습니다. 오월동주라는 말도 있는데, 뭐 함께 힘 모아서 우리들 주먹세계 이야기 멋지게 남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영화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설마 조직을 나쁘게 인식시키는 영화는 아닐 꺼 아니오? 하하.”
이건 무슨 조직폭력배간에 힘겨루기 하는 자린지, 단체 합숙훈련 준비회의인지 헷갈리게 돌아간다.
어쨌거나 그날 이후 창원파와 땅벌파 간에 영상사업 대표자 만남이 이루어졌고, 신창원은 영화배급사를 별도로 차려서 영화 `사하라`를 전국의 극장에서 상영해주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대로 영화제작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계두식의 고교 선배인 진주시장도 흔쾌히 지원을 약속했다. 남강과 촉석루를 배경으로 하는, 진주시가 홍보되는 영화라는데 후원금 달라는 요구도 아니고 촬영허락만 해주면 되는 일이다.
지역유지들도 나서서 후원금을 모아 기부했다.
문도에게 칠면조 가공공장을 매각하고 축협조합장 선거에 출마하려던 박동철 사장도 매각대금 15억원 중에서 3억원을 땅벌파 영화제작사에 주식지분으로 투자했다.
계두식의 도동파가 부동산투자로 모아두었던 1억원을 합쳐, 자본금 6억원으로 영화제작사 `㈜남강 비젼`을 차렸다.
그리고 한 달도 안돼서 삼천포대교와 거가대교, 삼천포항과 장승포항을 배경으로 액션영화 ‘사하라’의 “레디~ 액션! “이 시작되었다.
진주 땅벌파 35명과 창원파 50명의 패거리들의 연합 조연출연이었다.
계두식의 진주시내 고등학교 태권도유단자 연합서클인 ‘사하라’ 단원들도 합세하고 관계자들의 친구와 친척까지 동원해서 엑스트라도 200여명이나 되었다.
잡다한 연장을 들고 다리 양쪽에 갈라서 포진했다가 개떼처럼 몰려와 난투극을 벌였다.
앞장선 조폭들은 어찌나 실감나게 연기를 했는지 감독의 “컷! NG, 컷!” 메가폰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실제로 피 튀기는 싸움을 연출했다.
어차피 카메라도 공중에 날아다니는 드론이었고, 감독은 “레디~ 액션!” 뒤에는 있으나마나 한 전투 신이었으니까.
신인배우 오디션과는 상관없이 미리 내정된 남우주연 고문도와 여우주연 신주연의 뜨거운 러브신도 함께 촬영되었다.
그런데 둘 다 연애 한번 제대로 안 해본 진짜 순진한 선남선녀 신인배우라서 감독이 메가폰을 집어 던질 정도로 NG를 많이 만들었다.
신창원의 영화배급사는 촬영도 하기 전에 홍보부터 시작했다.
한다면 하는 통 큰 신창원이다. 신문광고는 물론이고 각종 매스컴을 동원해서 전국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돈을 뿌려댔다.
영화 ‘사하라’는 대박을 터뜨리지는 못했다.
신창원이 아무리 큰돈을 쏟아 부어 홍보에 열중했지만 영화배급은 별도의 문제다.
소위 ‘빅-포’가 꽉 쥐고 있는 영화배급은 그들의 사전검토와 적극적인 지원이 없으면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다.
당연히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고 한 달 만에 종영했다.
그래도 부산을 비롯한 남해안 지역의 도시에서는 호남 영남 할 것 없이 짧은 상영기간 동안에도 많은 관객이 입장해서 전국 120만 관객동원에 성공했다.
그만하면 신생 영화제작사 작품치고는 성공작인 셈이다.
신인 남녀주인공의 신선한(어설픈?) 이미지도 예상외로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가끔 서울 시내 길거리에서 문도를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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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택시 모 호텔 로비로 고문도가 들어섰다.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로비에서 멀지 않은 커피숍을 향해 걸어갔다.
“하이고, 고 보스. 아니 고 사장! 이거 참 오랜 만이오. 잘 지냈소?”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계두식이 일어서며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예, 계 사장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식구들은 다 잘 있지요?”
고문도가 약간 허리를 숙여 악수하며 땅벌 도동파 보스 계두식에게 예의를 갖춰줬다.
훈제칠면조 전국체인점 본사 사장인 문도는 계두식으로부터 한번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서울에서 내려오는 길이다.
작년에 액션영화 `사하라`를 만들어 상영하고 헤어진 뒤로 처음 만난다.
두 땅벌파 중간보스는 커피를 시켜놓고 마주보고 앉아 서로의 내면을 읽어나갔다.
계두식이는 대학을 나온 먹물로 일찍이 부동산사업에 눈을 돌렸었다.
서부경남 지리산 자락의 경치 좋은 택지를 조직을 동원해 헐값에 사들여 뒀었다. 시대의 흐름을 탄 귀농과 웰빙 바람에 실려, 아주 비싼 값으로 되팔면서 꽤나 큰 돈을 벌어들였다.
“땅벌 형님은 요새 지방유지들하고 어울려 노시느라고 바쁘시오. 하하.”
별로 할말이 없는지 계두식이 묻지도 않은 오야붕의 근황을 전했다.
문도는 금년에 오야붕 이화수를 진주 문산에 있는 자기소유 ‘㈜비행 육류가공’의 감사로 등록시켰다.
회사정관에 감사보수도 상당한 금액을 정해 올려서, 연간매출이 100억원이 넘는 회사의 감사가 된 땅벌은 조직폭력배 두목에서 갑자기 지방유지가 되었다.
진주를 배경으로 땅벌파가 찍은 영화 ‘사하라’의 영향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아, 그래요? 전화만 드리고 자주 못 찾아 뵈어서 송구하네요. ‘남강비전’은 새 영화 촬영계획은 없습니까?”
문도가 넌지시 ‘사하라’에 여우주연으로 함께 출연했던 신주연에 대한 근황을 체크해본다.
“하하, 뭐 하나 더 찍어야 되는데, 내가 액션영화밖에 아는 게 없어서 고민이요. 사하라에 참여했던 감독이랑 스태프들은 레전드 같은 판타지 블록버스터 한번 찍어보자고 하는데,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게 어디 그리 쉬운 거라야 말이지. 하하.”
계두식이 즐거운 고민을 털어놓으며 으쓱거렸다.
“하나 찍으십시오. 이번에도 제가 남우주연 되면 출연료는 좀 주시고요. 하하. 그런데, 평택에는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약간 실망한 문도가 커피를 홀짝 마시며 계두식의 눈치를 살폈다.
경남에서 노는 사람이 경기도남부, 충청도에 인접한 평택에는 무슨 작당을 하러 왔나 싶다.
“아, 고 사장은 모르고 계셨겠지? 이번에 평택에 우리가 큰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소. 내가 예전에 오늘이 올 줄 알고 황무지 땅에 큰 돈을 좀 묵혀뒀었거든.”
계두식이 한쪽 팔을 뒤로 빼며 삐딱한 자세를 취했다.
“예? 계 보스가 건축사업에 손을 댔어요? 그건 엄청난 자본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수백억은 있어야 될 텐데?”
문도가 처음 듣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런 일이면 땅벌 오야붕이 자기에게 미리 얘기를 했을 것이다.
“수백억이 뭐요, 수천억도 더 있어야 되지! 하하. 실은 내 명의의 땅을 신창원사장이 사고, 신 사장이 아파트단지를 조성해서 짓고 있는 거요. 그 양반은 가진 게 돈밖에 없는 사람이니까. 하하.”
땅벌파 조직의 공동자산이 아니고 계두식 개인의 땅이라는 말이다.
신창원은 폭력조직인 창원파 오야붕이면서 창원공단에서 자수성가한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은 준 재벌이다.
레저스포츠에 관심이 많다더니 아예 아파트 건축사업을 하는 모양이다.
아무리 신창원이 돈이 많고 통도 크다지만 건축사업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닐 건데?
더구나 아파트 건축이면 짓는 것보다 분양이 더 문제일 텐데, 요즘 같은 불경기에 자칫하면 쫄딱 망하기 십상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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