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맘세하루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46. (수필) : 망팔이 되어

 

망팔이 되어

 

삼일 이재영

 

오늘 1 23일을 기해, “하나, , !”하고 태어난 지 만 70, 세는 나이 일흔 한 살로, 이제 고희도 넘겨 팔순을 바라보는 망팔(望八)이 되었다.

그런데, 내 생일이 음력으로는 12 27일이라, 태어나서 나흘 만에 한 살 더 먹은 셈이다.

그래서 십이지지 띠가 음력으로는 토끼띠 12월이라 별 볼 일 없는 토끼 꼬리지만, 양력으로는 용띠라서 1월 용머리가 되니 아주 좋은 달에 태어난 셈이다.

하지만, 매일 일간지를 받으면 맨 먼저 오늘의 운세를 훑어보는데, 내 거는 토끼띠, 한 달 뒤에 태어난 아내 거는 용띠를 보고 읽어 준다. 안 좋은 운세는 서로 조심하면 되고, 좋은 운세면 함께 즐기면 되니까, 용머리 위에 올라앉은 토끼도 괜찮다 싶다.

 

한국에서 나이 세는 방법은 세 가지나 된다. 태어난 해를 원년(한 살)으로 삼고 새해 첫날에 한 살씩 더하는 세는 나이’,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세는 연 나이’, 출생일을 기준으로 세는 만 나이까지 세 종류가 있다.

트로트 경진 대회에 나오는 청소년이 13세라고 하면, 초등 6학년인지, 중학 1학년인지 판단이 헷갈리거니와,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도 나이 때문에 크고 작은 혼란이 빚어질 것으로 여겨진다.

얼마 전 대선에 출마한 야당 Y 후보는 법 개정을 통해 만 나이로 법적 나이 셈법 기준을 통일하겠다라고 밝혔다.

얼핏 보면 아주 사소한 공약 같지만, 바로 저런 세세한 부분을 제대로 살피고 올바로 고치려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싶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50대 초반이 되신 부모님이 외아들인 나를 데리고 여수 시내 초입 시골길 10여 리를 걸어가 문둥이(나환자) 점쟁이를 찾았다.

나는 무서워서 수염에 덮인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는데, 조수가 깨알 같은 붓글씨로 적은, 나이별 내 평생 사주 두루마리를 받아왔다.

지금도 기억하는 건, 내가 큰 벼슬에 올라 재산이 아버님의 스무 배가 될 것이고, 여든두 살까지 산다는 것이다.

대기업 연구소에서 잘 지내다 나와 개인사업 하면서 고생만 실컷 하고 돈도 못 모았는데, 앞부분은 빗나간 것 같지만 뒷부분 82수는 맞기를 바랄 뿐이다.

해서, 앞으로 12년 더 살아갈 노후 인생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3개년씩 4단계로 작은 목표를 세우고 있다.

 

내가 건강하게 잘 사는 것도 문제지만 이제는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싶다.

특히 대장암에 걸려 수술도 하고 항암치료도 받으며 2년 넘게 아내, 자식, 며느리들, 손녀에게까지 걱정을 끼쳐서 매우 미안할 뿐이다.

오늘 내 생일 축하 겸 가족 월례 모임으로 모두 와서, 거실에서 아내가 준비한 미역국, 조기, LA갈비 반찬에 팥 찰밥 점심 먹고, 지금 떠들고 웃으며 노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보다 더 좋은 생일선물이 또 있겠나. 앞으로 열두 번 더 차려줘야지!

 

그리고 수필은 매달 한 편씩 꾸준히 쓸 작정이고, 올해부터 담채화 그림을 그려볼 계획이다.

집에서 왕복 4km 거리에 내가 가끔 산보하러 가는 옥구공원이 있다. 옥구봉은 해발 95m의 바위산인데 제법 숲이 무성해서 올라가면 깊은 산중에 들어온 느낌도 든다.

산자락의 송사리 떼 노는 큰 연못에 연꽃과 수련이 피는데, 오작교 건너 물레방아 도는 왕버들 아래 벤치에 앉아 스케치하면 아주 좋다.

무궁화동산, 장미꽃 동산, 군데군데 조각품이 자리한 넓은 공원에 예술가들이 여러 가지 형태의 작은 정원을 만들었는데, 내가 항상 가서 벚나무 아래 나무 벤치에 앉아 쉬는, 대나무 숲 옆 부처님 부조 돌조각이 있는 작은 정원도 그림 그리기 좋은 곳이다.

 

원래 담채화는 연필로 스케치하고 묽은 수채화로 그리는데, 나는 연필 스케치 위에 형광펜으로 그릴 거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여름은 엄청나게 더웠다. 그때 개업 5년 차인 내 개인사업이 여의치 않아 지인의 3층 건물 옥탑방을 얻어 신제품 개발에 목을 매고 있었는데, 철판 지붕이라 에어컨도 소용없었다.

그때 멀리 보이는 도심지 땡볕 아래 5층 건물과 주변 길거리 풍경을 무심코 연필로 그렸고, 책상 위에 있던 형광펜으로 채색했는데, 작품이 괜찮아서 마음에 쏙 들었다. 그때 구상했던 형광펜 담채화를 28년이 다 지난 올해 시작할 참이다.

그리고 중학교 이후 손을 떼었던 시()도 다시 써볼까 하는데, 시에 맞는 담채화를 그려서 나만의 시화(詩畫)를 만들 생각이다.

 

1 3개년 계획이 잘 이뤄지면, 2 3개년 계획을 수립할 건데, 혹시 에너지에 관련된 엄청난 계획이 될지도 모른다.

조금 전에 아이들이 돈 봉투 외에 밝고 즐거운 모습을 남기고 돌아갔다. 나는 중학 2학년이 될 손녀에게 세뱃돈 5만 원만 줬다.

두 아들에겐 내 수필 두 편이 수록된 OO문학 산문선 두 권씩 나눠줬고, 아내는 강의 나가는 학원 제자들에게서 받은 여러 가지 선물을 두 며느리에게 나눠줬다.

앞으로 나잇값은 하며 살아야 하겠지만, 나의 망팔은 결코 서글프지 않다.

 

 

 



1. 옥구공원 연못.jpeg


2. 정원 - 벗나무 아래 벤치.jpeg




댓글 2

  • 001. Personacon 이웃별

    22.01.29 22:20

    늦었지만 생신 축하드립니다!
    망팔이 뭔가 했는데 그런 뜻이군요. 하지만 이제 막 70대 초반이시니 아직 80 바라보신다는 말씀은 하지 말아 주세요. ㅎㅎ
    나이 세는 기준이 사실 헷갈리긴 하죠. 세는 나이도 나쁘지 않은데 만 나이와 섞어 사용하다 보니 저도 가끔 제 나이가 헷갈려요.
    그리고 요즘엔 의식적으로 만 나이로 세고 있습니다. 히히 한 살이라도 어리라고요.
    지켜본 결과 저 나름대로는 Y 분을 선택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후보들 사이에 실천 가능한 다양한 공약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요즘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캔버스 작은 사이즈에 그리니 부담이 없고 완성하는데 시간도 별로 안 걸리고 좋더라고요.
    시에 그림이라니...
    세하루님의 망팔은 소년처럼 변함없이 풋풋하실 듯 해요. ^ㅁ^
    건강 잘 챙기시길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002. Lv.55 맘세하루

    22.01.30 12:33

    네, 이웃별님 댓글 감사합니다.
    나이를 잊고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 온 길을 뒤돌아보며 앞날을 생각하는 것도 후회 없이 알차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망팔이 되어 망령 들 짓은 하지 말아야 할 텐데요. ㅎ
    별님도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시는군요. 수채화나 유화일 것 같은데, 풍경화, 정물화, 인물화 등 좋은 작품 많이 남기시길 바랍니다. 언젠가 전시회를 가질 기회가 올는지도 모르지요.
    벌써 봄기운이 감도는 설 명절 잘 보내시고, 착한 복 많이 받으세요~ ^0^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글목록
번호 제목 작성일
14 내 일상 | 14. (수필) : 묘(猫)한 이야기 20-04-20
13 내 일상 | 13. (수필) : 비닭이 *3 20-04-13
12 내 일상 | 12. (수필) : 불혹 *4 19-05-16
11 내 일상 | 11. (수필) : 전국 노래자랑 *2 18-12-16
10 내 일상 | 10. (수필) : 생존이 실감되는 날 (과똑똑이의 변명) *4 18-04-29
9 내 일상 | 9. (수필) : 지공파 *5 17-11-26
8 내 일상 | 8. (수필) : 어느 겨울 밤 *4 17-05-30
7 내 일상 | 7. (수필) : 어리굴 젓 *4 16-12-20
6 내 일상 | 6. (수필) : 매미 공원 *10 16-11-26
5 내 일상 | 5. (수필) : 구피 *7 16-11-13
4 내 일상 | 4. (수필) : 대추 서리 *4 16-10-25
3 내 일상 | 3. (수필) : 옥구공원 무궁화동산 *4 16-10-10
2 내 일상 | 2. (수필) : 홀로 바둑을 두며 *4 16-09-05
1 내 일상 | 새글 쓰기 연습 1 *4 15-07-04

비밀번호 입력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