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여우 8 (어깨 걸어 총)
사막의 여우 8 (어깨 걸어 총)
“어, 어? 괴뉠! 왜 그래?”
부대장 괴뉠이 남창선의 머리에 AK-47 총부리를 들이대자 대장 데킨이 놀라서 소리쳤다.
“이자식이 지금 우리를 완전히 갖고 놀고 있지 않습니까? 칠면조는 내일 갖다 준다면서 2만달라 달라하고, 저 25만킬로나 뛴 똥차를 4만달라 쳐서 주라면서 갖고 온 돈 6만달라를 다 내놓으라고 수작부리고 있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저 똥차 하나 건지려고 새벽부터 지금까지 저 새끼들 납치하고 지키면서 헛고생 한 것밖에 더 됩니까?”
화가 잔뜩 난 괴뉠이 대장의 만류하는 손짓도 눈에 안 들어오는지 금세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야, 괴뉠! 총부리는 돌리고 말로 해!”
데킨이 고함을 버럭 질렀다.
그제야 괴뉠이 씩씩거리며 마지못한 듯 총부리를 내려서 창선의 다리 쪽으로 돌렸다. 테러조직이라 군기는 잡혀있는 모양이다.
“저기, 창 대장! 저 트럭 진짜로 25만킬로나 뛴 똥차요? 구입한지 두 달밖에 안 됐다면서? 혹시 2만5천킬로를 잘못 말한 거 아니요?”
데킨은 아무래도 창선이 말을 실수하지 않았나 싶은가 보다.
“저 트럭 25만킬로 뛴 건 맞아요. 그런데 저게 메이드 인 코리아, 현대 카고 트럭이요. 앞에 에이치 자 로고 보이죠? 저거 75만킬로 뛰어도 끄떡없어요. 마이티 3.5톤을 4톤으로 개조한 건데, 한국에서 마이티 3.5톤 50만킬로 뛴 것도 4만달러 받소.”
창선이 뻥을 쳤는데, 그만 혁대에 찬 아랍어 번역기에서 한국이 사우스 코리아로 번역되어 울려버렸다.
“뭐? 사우스 코리아에서 50만킬로 뛴 똥차가 4만달라 받는다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괴뉠이 눈알을 부라리며 총부리를 다시 창선의 면상으로 향했다.
“왜 몰라요? 내가 한국에서 왔는데!”
“뭐? 뭐라고? 노스 코리아가 아니고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데킨이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이 페넥 폭스 대원들이 가난한 노스 코리아에서 돈 벌려고 목숨 걸고 이 이란 땅에 온 줄 알고 호의적으로 대해준 것이다.
이란이나 러시아와 우호국가인 노스 코리아는 자기들의 원수인 터키와 적대관계니까 상대적으로 자기들 쿠르드족 반군과는 우호세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사우스 코이라에서 온 놈들이라면 자기들과 어떤 관계가 되는지 잠시 헷갈린다.
“이것 보세요, 대장님! 이 자식 처음부터 완전히 우리를 속이려고 작정하고 왔다니까요!”
확신을 가진 괴뉠이 더 노발대발 고함을 질러댄다.
“야, 야! 총부리 돌려! 저 번역기가 잘못 번역했을 수도 있잖아? 창 대장! 유, 노스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
창선을 믿고 싶은 데킨이 손가락으로 하늘과 땅을 번갈아 가리키며 혀 짧은 영어로 물었다.
아차 싶었던 창선이 번역기 덕분에 살아나 얼떨결에 노스 코리아라고 대답하려다가 깜짝 놀라며 입을 꾹 닫았다.
북한에는 중고자동차 매매는커녕 아예 현대 차도 없을 것이다.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말로 얼렁뚱땅 넘어갔다가 자칫하면 죽는 수가 있겠다 싶다.
‘한국에서 왔다고 설마 죽이기야 하겠나? 계속 거짓말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단 사실대로 대답하고 나오는 반응 봐서 대처하자.’
“예스! 아이, 사우스 코리아.”
창선이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야, 이것들 전부 도로 체포해!”
괴뉠이 소리치자 쿠르드 반군들이 AK-47 총부리를 창선의 페넥 폭스 대원 일곱 명 전원의 옆구리에 들이댔다.
이제는 대장 데킨도 그만두라는 말 대신 눈살을 찌푸리며 혼란스러운 고민에 빠진다.
위기다!
돈 6만달러도 가졌겠다, 소총으로 드르륵 갈겨버리면 끝장이다.
저놈들은 생 칠면조 1천마리나 실은 4톤 트럭 세 대에다 창선의 탐나는 4륜식 SUV 레인지로버까지 거저 탈취해서 달아날 수도 있다.
욕심이 안 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따탕
납치범들 바로 뒷전에서 총소리가 울려왔다.
“꼼짝 말고 총 버렷!”
이어서 반가운 한국말이 들려온다.
창선의 사막의 여우 페넥 폭스 대원들이 도착한 것이다.
어느새 왔는지 제1분대와 제2분대 대원 18명이 쿠르드 반군 20여명을 뒤에서 빙 둘러 에워싸고 K2 소총으로 겨누고 있다.
“이, 이거 뭐야?”
깜짝 놀란 괴뉠과 데킨이 소리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쿠르드 반군들도 잽싸게 돌아서서 페넥 폭스 대원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
40여명이나 되는 전투복 차림의 사내들이 참 묘한 장면을 만들고 있다.
한 가운데는 쿠르드 민병대 반군 YPG 소속 대장 데킨이 페넥 폭스 대장인 창선과 의자에 앉아 마주보고 있다.
데킨의 뒤에는 반군 세 놈이 서있고 부대장 괴뉠은 창선의 얼굴에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다.
창선의 뒤에는 납치됐던 대원 6명과 창선을 태우고 온 운전병이 쪼그리고 앉아있다.
그 바깥으로 AK-47 소총을 든 쿠르드 반군 열댓 명이 등을 돌린 채 타원형을 이루며 페넥 폭스 대원들과 마주하고 있다.
맨 바깥은 페넥 폭스 대원 18명이 K2 소총을 겨누며 반군을 포위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코 유리하다고 볼 수도 없는 상황이다.
타원형 안쪽의 대장 창선이 괴뉠의 총부리 앞에 있으니 오히려 페넥 폭스 쪽이 불리하다고 봐야 옳을 것 같다.
“이 여우새끼 같은 놈들이 언제 여기까지 몰래 기어들어 온 거야?”
괴뉠이 두툼한 입술을 씰룩거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약간 구릉지긴 하지만 주변이 온통 허허벌판 사막이고 여기만 덤불이 조금씩 모여있는데 저 많은 인원이 소리도 없이 숨어들었다는 게 여간 놀랍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까 사막의 여우 페넥 폭스지.
“야이, 창 새끼야! 빨리 네놈 부하들한테 총 내리라고 명령해! 안 그러면 네 대갈통에 바람구멍을 내버릴 거니까!”
괴뉠이 창선의 이마에 총부리를 바싹 들이대며 고함을 질렀다.
“맘대로 해라! 그랬다간 여기가 네놈들 무덤도 될 테니까. 네가 부하들한테 총구 내리라고 하면 나도 부하들한테 그렇게 명령할게.”
창선이 끄떡도 않고 되레 더 호통을 쳤다.
양쪽에서 동시에 총을 갈겨대면 어느 쪽이랄 것도 없이 거의 다 죽을 것이다.
설령 몇 명이 운 좋게 부상만 입고 목숨은 부지한다 해도, 누가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줄 것인가?
몇 시간 동안 이 내리쬐는 9월의 뙤약볕 아래서 고통스럽게 신음하다 결국은 호흡이 멎고 말 것이다.
“이봐, 창 대장! 우리를 다 잡아가려고 작정하고 온 거야? 설마 탈레반하고 내통이라도 된 건가?”
반군 대장 데킨이 거의 포기한 얼굴로 창선에게 물었다.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탈레반 같은 놈들은 나도 경멸하는 조직이요. 인질로 잡혀있는 부하들 구하러 오면서 그럼 달랑 나 혼자 올 거라고 생각했소? 그러지 않을 줄 아니까 데킨 대장도 여기 세르다르에 있으면서 아슈하바트로 오라고 거짓말 하지 않았소? 당연한 걸 가지고 뭘 그러시오?”
창선이 부하들 데려온 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그럼. 당연하고 말고.
“무슨 흰소리로 또 우리 대장을 꼬시려는 거야? 우리 애들이 총구 내리면, 네놈이 당장 사격하라고 명령할 게 뻔한데!”
괴뉠은 이제 창선이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면, 내가 우리 애들 절반 총 거두게 하면 괴뉠 부대장도 그렇게 하겠소?”
창선이 괴뉠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제안을 했다.
“뭐? 네가 먼저 절반의 총을 거둔다고? 그러면 뭐 나도 공평하게 그럴 수는 있지!”
상대방이 먼저 총을 내리겠다는데 그러지 말라고 억지를 부릴 수는 없지 않은가?
총을 들고 있는 인원이 두 배면 승률도 두 배니까 자기들이 유리하다 싶은가 보다.
“페넥 폭스 대원 들어라! 제2분대 전원은 총 내리고 어깨 걸어 총 자세로 들어간다. 실시!”
그러자,
“어깨 걸어 총, 실시~!”
라는 복창소리와 함께
창선의 뒤쪽에 몰려있던 페넥 폭스 대원 9명이 총을 거두어 어깨에 둘러메고 멜빵끈을 손으로 잡아 밀었다.
이 자세에서 다시 총을 내려 앞쪽을 겨냥하려면 빨라도 3초는 걸릴 것이다.
이건 완전히 퇴각할 때 취하는 행군자세다.
제2분대보다 실력이 조금 더 나은 제1분대가 반군의 대장 뒤쪽을 포위하고 있는가 보다.
역시 사막의 여우들이다.
“어?!”
설마 했는데, 진짜로 절반의 인원이 무장해제를 하자, 괴뉠뿐만 아니라 데킨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 우리 절반도 총 거두라고 해!”
대장 테킨이 감격스런 표정을 지으며 괴뉠에게 명령했다.
“야, 너희들 열 명! 총 내리고 어깨에 둘러메!”
괴뉠이 하는 수 없어 창선의 뒤쪽에 둘러서있는 부하들 10명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잖아도 앞에 마주선 페넥 폭스 대원들이 총을 어깨에 둘러메자, 이거 어쩌면 좋은가 싶어 뒤돌아보고 있던 반군들이 얼른 총을 어깨에 둘러메었다.
‘사격 개시’라는 명령보다 얼마나 반가운 지시인가?
입에서 죽었다 살아나는 안도의 한숨까지 새어 나온다.
민병대 반군 아니라 과격테러단체 대원일지라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모하게 총 쏘고 싶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창 대장! 지금까지 한 말이 다 진심이군요. 그런데, 왜 노스 코리아인척 위장을 했소?”
대킨 대장이 안심하면서도 그 점이 아직 찜찜한 모양이다.
“예? 내가 언제요? 나는 노스 코리아에서 왔다는 말 한 적이 없는데요?”
가만 보니 납치되어 있던 창선의 부하들도 그런 말을 한 것 같지가 않다.
“응? 그렇네. 창 대장이 나한테 그런 말 한 적은 없지. 야, 괴뉠이! 네가 페넥 폭스가 노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지 않았어? 맞지?”
데킨이 기억을 살려냈다.
아침에 데킨이 창원-터키에 전화 걸어서 창선과 통화한 다음에 포로들의 부대 이름이 페넥 폭스라 한다고 괴뉠에게 말해줬다.
그랬더니 괴뉠이 외국에서 온 용병부대인줄 알고 포로들에게 “차이나? 저팬?” 하며 어디서 왔냐고 물었었다.
그래서 창선의 대원이 “코리아”라고 대답했는데, 괴뉠이 북한에서 돈벌이하러 보낸 용병부대인 줄로 지레짐작한 것이다.
그래서 데킨에게 노스 코리아에서 온 용병이라면서, 이란이 노스 코리아에서 미사일을 수입해 온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자 데킨도 그러려니 하고 “이제는 군인도 수출하는가 보다” 하며 웃었었다.
“예? 아.. 그게.. 저 사람이 코리안이라고 해서 제가 그만, 노스 코리아에서 온 줄로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음, 흠.”
괴뉠이 포로 중 한 명을 바라보며 완전히 풀이 죽어서 목을 움츠렸다.
“하여튼, 이 자식을 그냥! 창 대장, 이거 정말 미안하게 됐소!”
상황파악이 된 데킨이 창선에게 사과했다.
“아, 아닙니다. 충분히 오해할 소지가 있었네요. 그럼 이제 다른 총도 마저 내려놓고 얘기를 계속 나눌까요?”
창선이 괴뉠을 흘깃 쳐다보며 데킨에게 말했다.
그러자 데킨이 눈에 가시 같은 괴뉠에게 고함을 질러댔다.
“야, 괴뉠! 빨리 무장해제 안하고 뭣 해?”
“아, 예. 야, 전원 총 둘러메!”
괴뉠이 이제 완전 고양이 앞에 쥐새끼 신세가 되었다.
그러자 나머지 반군 전원이 총부리를 내리고 총을 어깨에 둘러메었다.
창선의 눈짓으로 제1분대도 어깨 걸어 총 자세로 들어갔다.
어디선가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멀리 사막 한가운데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모래가 소라 같은 모양을 만들며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투르크메니스탄의 기후는 습도가 낮고 강우량이 적은데 최고기온이 섭씨 50도에도 이르는 사막은 여름 동안에는 기온이 섭씨 35도 이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다 겨울이 되면 우리나라보다 추운 영하 30도까지도 떨어진다.
정말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나라인데, 이 터키에서 쫓겨난 쿠르드족 반군 YPG 부대원들은 앞으로 저 사막너머 산악지역의 어느 골짜기에 은신하며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저, 데킨 대장님. 칠면조는 공장에 빨리 운송해야 하니까, 얘들 먼저 보내고 천천히 마저 얘기 나누도록 합시다.”
창선이 포로로 잡혔던 여섯 명을 가리키며 서둘렀다.
“아, 그렇지! 이거 정말 너무 미안해서 어쩌지요?”
데킨이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창선이가 가져온 6만달러가 들어있는 돈가방으로 눈이 갔다.
저거라도 돌려줘야 면피가 되고 창선과 대화를 계속 나눌 체면이 서겠다는 생각이 드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걸 눈치 챈 괴뉠이 대뜸 나서서 창선에게
“저기··· 그러면 트럭 한 대 판다고 하신 거는 어찌되는 겁니까?”
라고 질문하며,
테킨에게 돈가방을 그냥 돌려주면 안 된다는 간접사인을 보냈다.
이 와중에도 괴뉠은 주행거리가 25만킬로미터나 되는 똥차, 현대 마이티 4톤 카고 트럭이 탐나는 모양이다.
하여튼 못 말릴 인간이긴 한데, 데킨에게 없어서는 안될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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