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
세실은 말이 없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언짢은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며, 분명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 믿었다.
"......알았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쁨의 외침이 솟구쳐올라 몸을 부들거렸다.
"......?"
내가 잡은 손 사이로 떨림을 느낀 세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려고?"
"일단, 이 장소를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찾아서 가봐야지. 너랑 같이."
"나랑? 나야, 이 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니까 어딜 가든 상관은 없지만, 알프레드는 여기가 어디인지 알겠어?"
"뭐...... 대충은. 이 곳이 어둡긴 해도 완전히 안 보일 정도는 아니니까 분명 출구를 찾을 수 있을거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알 수없는 간지럼에 머리를 긁었다.
그래, 문제는 지금부터야.
ㅡ어떻게 이 곳을 나오지?
주변을 살펴봐도 무언가 만들어져 있거나, 비치되어 있는 가구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그저 누군가를 가두기 위한 한 사람만의 빈 독방처럼만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문득 머리에서 한 문장이 떠올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알프레드는 어떤 꿈을 꿔?'
......? 이게 왜 자꾸 생각나는 거지?
"......"
뭐...... 이런 조용한 분위기도 깰 겸 이야기해 볼까.
"그러고보니, 아까 세실이 내가 무슨 꿈을 꾸는 지 물어봤지?"
"......이제야 말해주는 거야?"
"기다린거냐......"
나는 일단 세실의 왼 손을 잡고 앞을 향해 걸으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으음...... 일단 어떤 꿈을 들어보고 싶어? 재미있는 꿈?"
"......"
세실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지금 꾸는 꿈."
"......?"
"......문제라도 있어?"
"아, 아니...... 지금 네 말이 이해가 안돼."
"지금 알프레드가 꾸는 꿈은 뭐냐고 묻는게 이해가 안 된다고?"
"응, 난 깨어있는걸?"
"......어라?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움찔, 방금 이 아이가 뭐라고 했지?
'그렇게' 생각한다?
왜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거지? 꼭 내가 착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잖아.
마치 어느 한 영화에서 나오는 한 반전과 같았다.
주인공이 험난한 여정을 떠나고 있는 도중, 마지막 시련만 이겨내면 모든 것이 끝나는 설정인데 꼭 누군가가 나타나서 '반전'을 이야기 해 주인공의 멘탈을 붕괴시켜버리는......
......아냐, 아니지?
"으, 으응.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니야?"
"그렇구나......"
"......."
뭐냐고! 이 상황! 마치 무언가 튀어나와 내 정신을 박살낼 것 같은데......
나는 식은 땀을 삐질삐질 흘려대며 손을 미약하게 떨어내었다.
"......어? 괜찮아?"
세실이 내가 떠는 것을 느낀 것인지 내 안부를 물어보았다.
"아, 괜찮어이. 괜찮다고. 정말이야."
앗, 나도 모르게 횡설수설 말해버렸다.
......계속 생각해보니, 난 지금 저 아이의 말 하나 때문에 저렇게 오버하는 거였나?
어쩐지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럴만도 했다. 지금까지 지나간 일들은 모두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만한 일이었으니까......
하루 하루, 악몽만을 꾸는 것 같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마지막을 도달해야 할 상황에 알 수 없는 곳에 떨어져 방황하고 있었다.
"......알프레드?"
그렇게 생각에 또 다시 잠겨있는 도중, 세실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잠이라도 깬 듯 혼비백산하며 대답했다.
"......으, 으응?!"
"......뭐야. 왜 자꾸 걸었다 멈췄다 하는거야? 그리고 내 대답은 어떻게 된 거야?"
"......미안해, 요즘 살아가기가 힘드네."
"이해 해."
"......."
어째서인지 눈물이 차올랐다. 내가 어린 애에게 위로받을 정도라니. 이 곳을 무사히 빠져나와 유메를 만난다면 내 명치가 구멍나는 수가 있더라도 한 마디는 꼭 해야겠다.
"이게 악몽이면 어서 깼으면 좋겠어."
마음 속으로 생각한 말을 내뱉으며 이 상황을 한탄했다.
"그래.....? ......하아...... 후우...... 크, 크크크...... 크하하하하하!!"
.......?!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호탕한 웃음소리에 깜짝 놀라며 웃음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끅끅대며 웃고있는 세실이 보였을 뿐이었다.
"세, 세실......? 왜 그래?"
나는 왜 세실이 갑자기 박장대소를 하는 지 몰랐다. 세실은 조금 진정되는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한 숨을 쉬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
뭐지? 어떻게 이쪽을 똑바로 보는 거야? 앞이 보이지 않은 게 아니었어?
그에 반해 세실은 이쪽을 향해 미소를 지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미소였다.
.......아?
"그 벙찐 얼굴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눈치를 챈 것 같네?"
"......"
"알프레드. 아직 넌 이 세계에 대해 잘 몰라."
"......진짜 너야?"
"어이쿠? 아직도 믿지 못한다는 표정이네?"
몸이 떨려왔다. 무언가의 감정...... 정확히는 '분노'가 몸 안에서 마구 날뛰고 있었다.
저 녀석은, 정말 이름에 걸맞게 '악마를 조롱한 또 다른 악마' 였다.
"파우스트, 너 이 자식......!!"
"크크크크...... 알프레드가 이렇게 귀여울 줄은 상상도 못했는 걸? 어린 애에게 그렇게 쩔쩔 매는 모습이라."
".......!!"
달렸다. 저 녀석을 향해 오른 주먹을 쥐고선 달려갔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왔을 즈음, 나는 당겼던 오른손을 그대로 앞으로 휘둘러내 저 녀석의 안면에 주먹을 날렸다.
ㅡ터억!
서로의 손이 부딪히는 소리가 주변으로 울려퍼졌다.
"화 좀 가라앉혀. 너도 나에게 꿀밤 몇 대 날렸잖아."
"......"
"뭐, 너에게는 급한 상황인데 왜 이런 장난질까지 하면서 너와 놀아나느냐. 궁금하지 않아?"
"......아흑......!"
심장이 미친듯이 뛰어대며 숨이 거칠어졌다. 머리는 불덩이가 된 듯 뜨거워지고, 시야는 아지랑이라도 핀 듯 어질거리며 그의 형태가 일그러져 갔다.
그러한 와중에도, 그는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 지금은 쉬어. 네 꿈을, 그리고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네가 반드시 필요하게 되니까."
어째서인지 눈이 흐르는 눈물을 부숴가며 서서히 감겨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시야가 어두워지면서, 빛이 사라져만 갔다.
"안녕, 내 친구여. 때가 되면 널 배웅해주러 갈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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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잘 자거라(Good night). 나의 악마여(my devil)."
- 작가의말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꿈꾸기에, 그것이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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