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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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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5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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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9)

DUMMY

제리온을 제외한 둘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고 있자니, 제리온에게선 온몸에서 빛이 나는 반면 루도와 이칼롯은 허리춤에서만 빛이 나고 있었다. 윈프레드가 나서 방금 발동한 마법은 마력을 감지하는 특수한 기술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제야 이칼롯은 빛이 나는 이유가 자신의 검, 텔슈피드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안트로서가 먼저 제리온에게 말했다.


“너 짜샤, 마법사라는 놈이 마력이 그 정도밖에 안 돼? 익스퍼트 레벨도 넘을까 말까 구만. 그 속도론 환갑 때까지 베너러블도 힘들 거다.”


“이 퍼렁 영감탱이가 사람을 뭘로 보고...”


직선적인 성격인 만큼, 제리온은 자신이 모욕당하자 즉시 발끈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로서는 드물게 언행이라든지 욕설은 평소 때와 비교하면 확연히 누그러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안트로서의 평가는 그 방식이 거칠 뿐이지 전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때문에 제리온은 안트로서의 거친 말투 외에는 걸고 늘어질 건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는 마법의 정점을 찍은 업솔루트 레벨이니, 제리온에게는 대선배와도 같은 존재였다. 물론 양자가 전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봐요, 퍼렁 영감. 나 이래 봬도 학창시절에 영재로 날렸던 사람이야. 물론 댁이 나보다 뛰어난 건 사실이겠지만, 마법이란 모름지기 실전에 쓰여야 그 가치가 사는 거라고.”


「실전중심」,「선수필승」,「완벽분쇄」. 델키아 시절 카토르와 제리온이 내건 모토였다. 트러블은 많았어도 카토르와 제리온은 마법에 대한 관점에서는 많은 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죽은 현재 제리온은 카토르의 유일한 전승자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나이 많은 노인이 그렇듯, 안트로서는 그의 야심 찬 발언에 콧방귀를 꼈다.


“마법사 중에 천재 아닌 놈이 누가 있어? 천재 중의 천재, 즉 나 같은 초 천재 정도는 되어야 업솔루트 레벨에 도달할 수 있는 거다. 너 같은 찌끄레기가 실전에 나가봤자 순살이지 순살.”


“와, 내일쯤 화장될 노친네가 사람 도발하네. 꼬부라질 때까지 책만 읽은 게 그리 자랑이야?”


“네놈부터 그 괘씸한 말투 고치고 그런 말을 해라, 이 건방진 새끼야! 노인공경은 딸칠 때 같이 내버리고 왔냐!”


“으아, 진짜! 대우해줄 만해야 대우를 해주지, 이 영감탱이야!”


같은 성격의 인간이 만나면 화합한다는 주장은 절대적으로 틀렸다. 둘은 자석의 양극처럼 피 튀기는 설전을 이어갔다. 루도는 그때 사람의 어휘란 정말로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마리네와 디리터가 나서서 제리온을 끌고나간 뒤에야 상황은 진정되었다. 안트로서는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문득 생각난 듯 이칼롯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 넌 뭐야? 딱 봐도 칼잡이 같은데, 왜 빛이 나고 있지?”


이칼롯은 텔슈피드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예상대로 빛을 뿜은 건 그가 아닌, 그의 검이었다. 샛노란 검신이 아침 햇살을 반사해 번쩍였다.


“이거 말씀이십니까?”


“호오...텔슈피드인가?”


호기심이 동했는지 그는 서랍에서 안경을 꺼내 쓰고 검을 관찰했다. 윈프레드도 검을 보곤 낮게 탄성을 질렀다.


“발동시킬 수 있냐?”


이칼롯은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 딱 한 번...그것도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모릅니다.”


안트로서가 낄낄대며 웃었다. 그가 손으로 칼등을 만지자 검이 더욱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야 그렇겠지. 이 검에 걸린 주문은 정신계와 원소계의 복합식이니까. 나타니엘이 남긴 역작이지.”


그와 루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여기서 나타니엘의 이름을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정신계 마법의 거장으로, 신의 아이를 조종하려 했던 이단자. 레밀리오 사제는 종교계에선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경력에 악영향이 끼친다고 했다. 그런데, 텔슈피드가 그 나타니엘이 만든 검이라니, 실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루도가 그에게 물었다.


“나타니엘이라면 이단자 나타니엘 마인드브레이커(Mind breaker)를 말하시는 건가요?”


“이단자? 킥킥, 류이너스 교단에서 들은 거냐? 여전히 무지가 하늘을 찌르는 놈들이야.”


“예? 그럼 아니라는 건가요?”


“만들어진 역사를 잘도 주입받았군. 뭐, 나랑은 상관없는 문제야.”


안트로서는 이내 텔슈피드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안경을 벗었다. 하지만 이칼롯은 아직 할 말이 남아있었다. 텔슈피드의 발동조건, 그건 로샤단이 습격당한 이래 그가 가장 필사적으로 습득하려 애쓴 정보였다. 그러나 그를 조사하기엔 시간적, 물질적 여건이 너무 부족했고, 운 좋게 찾아간 류이너스 교단에서도 검의 비밀을 알아낼 순 없었다. 그렇게 텔슈피드에 대해 서서히 포기해갈 때쯤, 안트로서가 다시 이칼롯의 열망에 불을 붙인 것이었다.

그는 안트로서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어르신, 혹시 제 검의 비밀을 알고 계시다면, 꼭 좀 알려주십시오.”


루도는 너무 놀라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지금껏 같이 지내며 그가 누군가에게 무릎 꿇는 광경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루도는 불안한 표정으로 안트로서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의자 팔걸이에 턱을 괸 채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일어나라, 짜샤. 밖에 곱슬머리 말대로 난 그렇게 대우받을 인간이 아니야.”


“하지만...!”


“미안하지만, 텔슈피드라면 이미 예전에 한 번 조사한 적이 있다. 그땐 다른 녀석이 주인이었었지. 안 그러냐, 윈프레드?”


그렇게 말하며 그는 윈프레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윈프레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땐 카로얀이 가지고 있었지요.”


이칼롯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조부님을 아십니까?”


“모른 척해서 미안하네. 나와 카로얀, 세르딕은 젊은 시절 꽤 절친한 사이였다네.”


윈프레드는 턱수염을 쓸었다. 이런 동떨어진 섬의 주민과 레인저들의 영웅 세르딕, 그리고 텔슈피드의 원주인인 카로얀 제르비안이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하긴, 따지고 보면 데루루피아가 일행과 엮인 이유도 텔슈피드 때문이었으니, 핏줄이 만들어낸 기묘한 인연이라고 할 만했다.

안트로서가 말했다.


“내전이 끝난 후 카로얀 녀석에게 검을 빌려 몇 년 연구해본 적이 있지. 하지만 알아낸 건 나타니엘은 정말 미쳐버릴 정도의 천재고, 난 그의 발끝도 못 따라간다는 사실뿐이었다. 탐지 마법의 권위자인 나도 결국 텔슈피드의 비밀을 파헤치진 못했지.”


“...그럼 제겐 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꼭 그렇진 않아. 결국 텔슈피드는 정신계와 원소계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무기다. 시동에 관여하는 게 정신이면, 산출되는 결과는 원소지. 네놈도 봤을 거 아냐? 그 번개 줄기를.”


이칼롯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텔슈피드가 발동했던 5년 전을 떠올렸다. 그건 루도도, 디리터도, 심지어 그와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제리온조차도 알지 못하는 그만의 비밀이었다.

루도는 로샤단에 들어오기 이전의 그의 과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저 그가 어느 귀족가문의 자제였다는 것만 어렴풋이 들었을 뿐이었다. 디리터나 마리네가 넌지시 그에게 질문을 던진 적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의 얼굴에 무섭게 그늘이 져 번번이 물러서야 했다. 델키아를 떠날 때 맺은 맹세가 공식적이라면, 「무리해서 과거를 묻지 않는다」라는 건 암묵적인 룰이었다.

안트로서는 이칼롯이 낙담한 얼굴로 검을 집어넣는 것을 보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발동의 조건인 정신계 마법이 문제라는 건데, 나타니엘보다 뛰어난 마법사가 있다면 주문식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좋은 기회잖냐. 네 녀석들이 케리아돌을 찾아갈 이유가 하나 더 생겼으니.”


“그자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입니까?”


“직접 보면 아마 까무러치겠지.”


이칼롯은 검에 대해 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안트로서가 노골적으로 루도에게 관심을 보여 일단 물러났다. 마법사인 제리온, 그리고 마법검을 지닌 이칼롯. 두 명이 탐지마법에 걸린 건 이해가 갔다. 하지만, 마력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루도가 빛을 내다니 기이한 일이었다. 정말 윈프레드가 말한 대로 그가 신의 아이라서 마법에 탐지된 걸까? 그건 또 아니었다. 텔슈피드를 주제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루도는 자신에게서 빛이 나는 이유를 찾아냈다. 이칼롯과 마찬가지로 발광체는 그가 아닌 그의 검이었다.


“너 이 새끼, 네가 뭔데 마법에 걸리고 지랄이야??”


“예? 그게,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아까부터 제 검도 빛이...”


“개나 소나 마법검이냐? 이 양아치 새끼들. 그래, 네놈 것은 뭔데?”


“그냥 검인데요...”


루도는 당황하다 못해 억울한 심정이었다. 그의 롱소드는 그냥 보통 무기보다 잘 든다는 특징이 있을 뿐, 마법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차라리 이칼롯처럼 진짜 마법검이라면 수긍이라도 할 텐데, 왜 검에서 빛이 나는지 주인인 그도 알 수가 없었다. 루도가 쭈뼛거리며 검을 보여주자 안트로서는 그걸 홱 낚아채더니 이리저리 만지기 시작했다.


“왕가의 문양이로군. 왕족이 사용하던 검인가? 너 이 새끼, 이거 어디서 났어. 훔쳤지?”


“훔치다니요! 레인저가 됐을 때 선물로 받은 거라고요. 람...에, 제 아버지한테요.”


루도는 람카디스의 이름을 꺼내려다 얼마 전 윈프레드가 했던 말을 떠올리곤 황급히 말을 돌렸다. 분명 세르딕과 람카디스를 철천지원수로 여긴다고 했던가? 여기서 그의 이름을 발설했다간 당장 돌 세례를 받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안트로서는 루도의 대답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검지와 중지를 세워 폼멜과 블레이드 부분을 훑었다. 그의 눈동자가 기묘하게 굴러갔다.


“희미하군. 보호계인가? 아니, 역(逆)주문식 같은데. 알고리즘도 느껴지지 않고...사용자를 위한 마법이 아니라는 건가. 오히려 결계랑 비슷하군.”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루도는 그가 하는 말을 단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즈음 제리온을 처리하러 갔던 마리네와 디리터가 돌아왔다. 아마 대충 어디 개울가에 처박아두고 왔을 것이다.

둘은 안트로서가 루도의 검을 들고 있는 걸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텔슈피드를 조사할 때보다 훨씬 심각한 얼굴이었다. 돌연 그가 루도를 향해 고개를 홱 꺾었다.


“너, 바른대로 말해. 이 검에 대해 아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어?”


“정말 모른다니까요. 예전에 무슨 마력이 느껴진다고 카토르랑 제리온이 가져다 연구한 적은 있어도.”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래서! 두 사람도 그냥 보통 검이라고 했다니까요!”


“찌끄레기 마법사 둘이 뭘 알겠냐. 네놈 칼에 걸린 마법은 보통이 아니야. 최소 8클래스 이상의 마법사가 관여한 거다.”


그때 마리네가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아! 그러고 보니...!”


마리네의 표정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루도의 검을 조사한다 하기에 별생각 없이 관망하고 있었는데, 고위 마법사라는 말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었다. 안트로서가 마뜩잖은 얼굴로 물었다.


“뭐 임마!”


“전에 그람이라는 마법사랑 만난 적이 있어요. 그 사람, 루도의 검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어요.”


“그람?! 죽지 못하는 그람을 말하는 거냐? 그래서!!”


안트로서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마리네의 멱살을 잡아챘다. 물론 체격이나 완력은 마리네 쪽이 월등했기에 끌려가거나 하진 않았지만, 마리네는 당황하여 팔을 휘저었다.


“그...그게, 별로 마음에 두지 않은 일이라 기억이...아, 마력이 새어나가니 어쩌니 하는 말을 했고...검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거랬어요.”


“검을 그냥 네놈들한테 줬다고? 강탈하려 하지 않았단 말이야?!”


“켁켁, 루도가 절대 못 준다고 버틴 데다가, 루루 아줌마에게 설득당해 그냥 돌아갔어요. 이거 좀 놔줘요.”


마리네는 조심스럽게 안트로서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의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떠지는 걸 보곤 질겁하여 시선을 돌렸다. 차분한 성격인 마리네에게 이 괴팍한 노인은 도무지 감당이 되질 않았다. 안트로서는 마리네의 멱살을 홱 던지고는, 책상에 루도의 검을 수직으로 꽂았다. 그가 말했다.


“윈프레드, 죽지 못하는 그람이란다.”


“...아버지, 설마...”


“틀림없어. 그 작자 드디어 완성한 모양이군. 이건 봉인(Imprisonment)이야."


안트로서는 벽장에서 자그마한 가죽 주머니를 꺼내더니, 검에 대고 그 안에 든 가루를 사정없이 뿌리기 시작했다. 루도는 요상한 반짝이가루가 자신의 검에 묻는 걸 보곤 화들짝 놀라 다가갔다.


“뭐...뭐하시는 거예요?! 제 검에다가...”


“아, 비켜봐 이 새끼야!! 안 뺏어가니깐. 그리고 너! 가서 아르유 좀 데리고 와라. 집 근처에서 놀고 있을 거다.”


그렇게 말했지만, 그는 손으로 누굴 가리키지도, 그렇다고 고개를 돌려 말한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일행은 그가 지칭한 「너」라는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해 한동안 고민해야 했다. 결국 디리터가 어슬렁거리며 아르유를 찾으러 나섰다.

명령을 내리는 동안에도 안트로서의 손은 바삐 움직였다. 반짝이 가루를 다 뿌리고 나자 그는 책상에 칼이 꽂힌 지점을 중심으로 괴상한 도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루도는 마법에 무지해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알지 못했고, 그저 도형이 좌우대칭이라는 사실만 알아냈을 뿐이었다. 그는 아망초 부자가 자신의 검에 괴상한 수작을 부리는 것 같아 점점 불안해졌다.

마법진의 설계가 끝나자 안트로서는 박수를 짝짝, 두 번 쳤다. 그러자 그의 손에 묻어 있던 가루가 허공에 퍼지더니, 이내 발광하며 검을 에워쌌다.


“자, 그 작자가 어떤 괴물을 봉인했는지 한 번 볼까? 어쩌면 다른 신의 아이일지도 모르겠군.”


윈프레드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안트로서의 마법이 시전되었다.


“어드밴스드 스펠 페네트레이션(Advanced Spell Penetration)."


그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 빛이 어찌나 강렬한지, 사람들은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고 뒷걸음질쳤다. 루도는 작게 실눈을 뜨고 상황을 확인했다. 책상에 그렸던 도형들이 허공에 떠올라 검 주변를 배회하고 있고, 빛에 휩싸인 안트로서의 손이 그 중앙에 위치했다.

순백의 빛이 루도의 검을 완전히 뒤덮자 안트로서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검에 뿌렸던 반짝이가루가 그의 마법과 반응해 오색빛깔 광채를 뿜어냈다.


“흐음...”


안트로서의 손가락이 간혹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한껏 눈썹을 찡그리더니, 자신이 목격한 걸 윈프레드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윈프레드. 다리가 네 개에, 피부는 설익은 귤색이고, 크기는 음...1.5미터? 정도 되는 생물이 뭐냐?”


윈프레드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돼지, 사람, 사슴, 엘프, 판, 거대 살쾡이....는 좀 아닌가. 여하튼 생각나는 건 그 정도네요.”


안트로서의 인중이 씰룩거렸다. 그의 손이 안갯속을 헤집는 것처럼 검을 구석구석 훑었다.


“음...머리에만 털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나있고, 천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고, 다시 보니까 다리 두 쌍이 서로 다르게 진화한 것 같다.”


“사람, 엘프, 판 중 하나같네요.”


“귀 짧아. 꼬리도 없어.”


“사람이네요.”


“사람...? 음....!!”


안트로서가 눈을 떴다. 그가 손짓하자 공중을 유영하던 도형들도, 반짝이던 광채도 전부 사라졌다. 빛이 사라지자 일행은 천천히 눈을 떴다. 안트로서는 한참을 끙끙대더니, 자신의 결론이 마뜩잖은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같다.”


그러자 루도가 얼떨떨한 얼굴로 말했다.


“사람이요? 제 검 안에 사람이 있다고요?”


“그래. 사람이거나, 사람 비슷하게 생긴 물건이거나.”


“아니...대체 왜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빠악. 루도는 마빡을 정통으로 맞고는 뒤로 물러났다. 윈프레드가 성질 나쁜 아버지를 대신해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람에게 봉인당한 게 사람이라면, 분명 평범한 인물은 아니겠지. 그가 신의 아이를 쫓고 있던 걸 고려하면, 음...역시 이 안에 봉인된 자는 신의 아이일 확률이 높겠어.”


“엑...신의 아이? 베릴의 아이인가요?”


안트로서와 윈프레드는 자못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 안에 있는 게 베릴의 아이라고 단정하지?”


루도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야...루프리모의 아이는 저와 알고 지내는 사인데, 지금도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고요. 아반케즈의 아이는 안개송곳니가 데리고 있다고 들었어요. 제가 이 검을 받은 지도 꽤 시간이 흘렀으니 그 둘은 아닐 테고, 그럼 베릴의 아이밖에 남는 게 없잖아요? 아, 안트로서, 혹시 그 사람 머리카락이 무슨 색이에요?”


“노란색. 아니, 금색인가? 여튼 그렇다.”


“엥...? 이상하네요. 제가 알기로 베릴의 아이는 은발인데.”


루도는 들떠서 이야기하다가,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눈을 깜박였다. 아망초 부자는 그가 루프리모의 아이와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점에서 크게 놀랐다. 반면, 이칼롯과 마리네는 그 후에 말한 베릴의 아이에 관한 사안에 흥미를 보였다. 그가 지금껏 카이안 말고 다른 신의 아이에 대해 언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루도도 열거해놓고 보니 자신이 의외로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카이안이나 아반케즈의 아이에 대한 것은 다른 동료도 아는 사실이지만, 베릴의 아이에 관한 건 오직 그밖에 모르는 정보였다.

이는 10년 전 그가 나젠크루거 일당에게 납치됐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안젤리카를 베릴의 아이로 오인한 나젠크루거는, 그녀를 루도와 함께 납치해 본거지로 끌고 가려 했다. 그때 나젠크루거가 아이들이 잠든 틈을 타 지도부와 연락을 취하자 루도는 자는 척하며 둘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었다. 그 대화를 통해 도출된 것은, 안젤리카는 신의 아이와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단지 재수 없게 끌려온 소녀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부는 안젤리카와 베릴의 아이가 외형적으로 매우 닮았음을 인정했다. 루도는 이 모든 내용을 머릿속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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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3) +3 15.04.09 973 25 19쪽
121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2) +4 15.04.09 744 25 13쪽
120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1) +1 15.04.09 1,013 25 17쪽
119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6) +3 15.04.09 940 28 16쪽
118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5) +2 15.04.09 826 30 15쪽
117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4) +7 15.04.07 1,139 35 22쪽
116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3) +2 15.04.07 936 31 17쪽
115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2) +2 15.04.07 743 32 11쪽
114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1) +2 15.04.07 1,032 28 18쪽
11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4) +1 15.04.07 985 28 14쪽
11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3) +4 15.04.06 991 31 15쪽
11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2) +1 15.04.06 987 28 15쪽
11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1) +1 15.04.06 962 27 16쪽
109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0) +1 15.04.06 1,000 27 13쪽
108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9) +2 15.04.06 895 30 12쪽
107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8) +4 15.04.06 856 28 12쪽
106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7) +3 15.04.05 986 25 12쪽
105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6) +1 15.04.05 891 28 10쪽
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82 30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797 30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87 27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0 29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26 28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62 33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1 31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84 25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83 25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76 27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18 25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39 32 11쪽
92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88 28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40 26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39 29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74 31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62 34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42 33 13쪽
86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06 33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15 35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44 34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74 31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08 37 16쪽
81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78 33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15 36 14쪽
79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16 38 19쪽
7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35 33 18쪽
77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14 39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22 33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47 33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43 34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70 38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86 34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17 43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1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34 34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19 35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15 32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83 38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292 35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0 44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52 35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76 39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19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7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0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5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2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6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5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1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2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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