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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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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2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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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DUMMY

“으....!”


루도는 모포를 박차며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 너무도 생생해, 그는 깨어난 후에도 한동안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괜...찮아?”


고개를 돌리니 마리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도는 그제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흘러내린 땀으로 셔츠며 속옷이 축축해져 있었고, 꿈 때문인지 콧잔등이 시큰해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루도는 얼른 땀을 닦는 척하며 눈물도 함께 훔쳤다.


“아...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좀 기분 나쁜 꿈을 꿔서.”


“그래? 땀 좀 봐. 잠깐 기다려.”


마리네는 코코아를 한잔 타 루도에게 건넸다. 그동안 루도는 꺼져가는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던져 넣으며 기다렸다. 나무에 기대어 있던 이칼롯이 몸을 뒤척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자신의 신음소리에 잠이 깬 것이리라. 하지만 능숙한 레인저답게 그는 깼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코코아를 한 모금 머금자 위축해있던 몸이 한층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문득 루도는 시간이 아직 한밤중이며, 자신과 마리네를 제외한 모두가 곤히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리네는 무릎을 모아 끌어안은 자세로 가만히 모닥불만 쳐다보는 중이었다. 루도가 물었다.


“넌 왜 안 자? 종일 말을 몰아 피곤할 텐데.”


마리네는 어색하게 웃었다.


“으...응? 아, 나도 좀 밤잠을 설쳤거든. 디리터가 불침번을 서고 있었지만, 다시 자려고 해도 잠도 안 오고 해서 내가 대신 본다고 했어.”


언제 아케니온과 안개송곳니가 다시 공격해올지 몰랐으므로 일행은 밤마다 돌아가며 불침번을 섰다. 델키아를 떠난 지도 어느덧 엿새째, 추격당한다는 불안감에 다들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다.

모닥불을 빙 둘러싼 채 색색거리는 숨소리만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마리네는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었다.


“꿈...많이 무서웠어?”


루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좀...그 얘긴 그만 하자.”


루도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마리네가 자신을 걱정해주는 건 고마웠지만, 꿈에 대해 더 이상 들추고 싶진 않았다. 그는 머쓱해하는 마리네를 달래려고 다른 주제를 꺼냈다.


“조금만 더 가면 류이덴사네. 이제 노숙 좀 그만 했으면 좋겠는데.”


“킥킥, 노숙 정말 힘들지.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안 쑤신 데가 없다니까.”


“에리 누나가 걱정이야. 노숙도, 여행도 처음 해보는 거라 그런지 많이 힘들어하던데.”


“으응, 그래도 불평 한마디 안 하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천성이 야무지다고 해야 할까, 돈의 위력이라고 해야 할까?”


“모레쯤이면 푹신한 침대에서 잘 수 있을 테니 조금만 더 고생해야지. 모레쯤이면...”


루도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자연스럽게 잡담을 한다는 것이, 어째 자신이 가장 버거워하던 문제로 흘러간 것이다. 류이너스 교단으로 간다는 것. 이는 로샤단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임과 동시에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파헤치는 것이기도 했다. 람카디스가 그렇게 은폐시키려 했던 문제.

그의 고민을 알기에 마리네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무거워져서, 둘은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마리네가 애써 웃음 지으며 그를 위로했다.


“다 잘 될 거야.”


“...그럼 좋겠지만.”


둘은 그렇게 잠시 모닥불을 쑤시며 시간을 보냈다. 루도는 이제는 10년도 더 된 가린워드 사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약 람카디스가 자신을 둘러싼 비밀을 진즉에 얘기해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루도, 네 진실은 불행이다.


람카디스가 했던 말은 오랫동안 루도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잠깐이지만 람카디스의 유언대로 어디 아무도 모르는 먼 곳으로 도망쳐 조용히 사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아주 잠깐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목숨을 이어간다 하더라도, 가슴 한 구석의 응어리가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람카디스의 비밀, 람카디스의 과업, 람카디스의 죽음. 그가 남기고 간 모든 것들을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것이 자신을 나락으로 몰고 갈 불행의 씨앗일지라도.

행복한 불행과 불행한 행복. 루도는 어차피 둘이 같은 것이라면 ‘진실을 보는 쪽’을 택했다.



***


인간의 발길이 닿는 곳엔 언제나 길이 나있기 마련이다. 잘 닦인 도로에서부터 작달막한 오솔길까지, 문명이 존재하는 곳에는 항상 그와 통하는 통로가 존재해왔다. 하지만 카잘 산맥 깊숙한 계곡 안에 위치한 이 저택은 그런 문명의 법칙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었다. 빽빽하게 우거진 침엽수림이 삼면으로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저택을 메우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메운다기보다 차라리 포위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보통, 나무는 양분을 적절하게 빨아들이기 위해 서로 얼마간의 간격을 두는 법이고, 너무 가까운 위치에 싹을 틔웠다 하더라도 한쪽이 도태되어 균형을 이루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슨 조화인지 저택을 둘러싼 숲은 그야말로 바람 한 줄기 새어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기증이 나게 하는 숲의 포위망이 있다면, 나머지 한 면, 즉 저택의 북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마주하고 있었다. 산맥 전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 전경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아마 사방이 숲에 포위되어 있으면 거주자가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염려한 제작자의 배려였으리라. 하지만 경위가 어찌 됐든, 이 저택이 외부와 완벽히 단절되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저택은 첩첩산중에 위치한 것과는 달리 대단히 정교하기 지어진 석재 건물이었다. 건물은 총 3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가로로 굉장히 넓어 백여 명은 충분히 기거할 수 있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들어선 저택 중앙엔 고지대에서만 자라는 꽃들로 정원을 이루고 있었다. 정원 입구에 피워놓은 향료 향기는 꽃냄새와 합쳐져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달콤함을 자아냈다.

혹 지나가는 여행자(물론 카잘 산맥을 오르내리는 여행자는 정말로 드문 존재지만) 가 이 저택을 본다면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요정의 은신처가 아닐까 추측하겠지만, 아쉽게도 누구도 이곳을 발견하진 못했다. 강력한 환영 마법이 저택을 감싸고 있는 탓에, 혹자가 절벽 끝으로 시선을 둔다 하더라도 그는 무성하게 자란 침엽수만 발견할 것이었다.

밖에선 농익어가는 봄의 정취가 한창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만, 레이시는 굳이 커튼을 걷진 않았다. 봄이 싫어서라기보단 스스로 낭만에 젖을 정도로 한가하지도, 고상하지도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언젠가부터 어둠 속에 녹아드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는 가끔 왜 자신이 이렇게 되었나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떠오르는 근거가 너무 많아 이내 쓸데없는 고민이라 치부해 버리기 일쑤였다.

그는 소파에 몸을 묻은 채 잠시 휴식을 취했다. 길게 늘어진 그의 머리카락이 안대처럼 눈을 가려주었다. 그렇게 살며시 눈을 감고 있는데, 멀리서 절그럭거리는 갑옷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레이시가 있는 방을 향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박자 하나 틀리지 않는 절도 있는 걸음걸이. 그는 단박에 갑옷 소리의 정체가 누구인지 파악해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백색의 갑옷을 걸친 사내가 방으로 들어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제폰님.”


제폰이라 불린 자는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도, 레이시는 그가 임무에 성공한 것이라 확신했다. 지금껏 10여 년 동안 함께 해오며 그가 임무에 실패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5년 전 광휘의 결사를 습격했을 때에도, 11년 전 류이너스 교단을 방문했을 때에도.

레이시는 으레 그렇듯 먼저 그에게 앉을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제폰은 결코 자리에 앉는 법이 없었다. 그는 쓰고 있는 투구조차 벗지 않은 채 말했다.


“수호기사단, 확실히 전멸시켰다.”


“뭐 특이할 만한 점은 없었습니까?”


레이시는 또 으레 그렇듯, 임무 상의 문제점에 대해 질문했다. 하지만 제폰이 결코 실수를 범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별로. 솜씨 좋은 녀석들이긴 했지만, 로샤단만큼은 아니었어. 그런데 특이사항은 다른 곳에 있지 않나? 알룬도 말이야.”


레이시는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말대로 알룬도의 배신은 안개송곳니 내에서도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었다. 알룬도가 직접적으로 안개송곳니에 적대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배신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레이시에겐 상당한 골칫거리였다. 그는 알룬도를 처리하기 위해 안개송곳니 단원 셋을 보냈다. 요즘 같은 중요한 시기에 정예단원 셋을 돌려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뼈아픈 손실이었다.


“예. 상당히 골치 아프게 되었지요. 그가 변절하지만 않았더라면 로샤단에 생존자가 생기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


“로샤단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잔당처리보다는 알룬도 쪽에 중점을 둬야 하지 않나? 그 녀석을 놓치면 나중에 귀찮아질 거야.”


마체르담을 로샤단 쪽으로 돌린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제폰은 알룬도가 안개송곳니 단원 셋을 상대할 만한 실력자가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로샤단의 생존자들이 마체르담을 투입해야 할 정도로 성가신 존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레이시가 그의 의중을 눈치 채고 말했다.


“굳이 알룬도를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가 조용히 잠적해준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그런 문제라면 제스터와 슈터크 두 분으로 충분하겠지요.”


“뭐 나야 시키는 일을 할 뿐이지. 그럼, 다음은 뭐지?”


「다음으로 죽여야 할 인간은 누구지?」 임무를 마친 후에 제폰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그는 휴식이나 여유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자였다. 레이시가 언제나 같은 대화 흐름에 나직이 웃었다.


“예에. 그럼, 수호기사단 쪽은 확실히 처리되었고... 상트룸 수도회 쪽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야 할 텐데... 아케니온이 좀 늦는군요.”


바로 그때, 이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방문이 열리며 제랄드가 들어왔다. 그는 제폰과 달리 인기척을 숨긴 채 접근해 왔다. 물론 제폰은 그가 걸어오는 것을 입구에서부터 감지하고 있었지만, 레이시는 그러지 못했다. 그는 기별도 없이 나타난 제랄드의 모습을 보고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하지만 제랄드는 그의 시선을 마주하고도 전혀 불편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양팔을 벌렸다. 레이시는 그의 가식적인 미소에 역겨움을 느꼈다.


“오, 역사를 만들어 가는 분들이로군. 이번엔 또 무슨 신묘한 계책을 세우고 계시오?”


“당신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케니온의 소식이 너무 늦어서 말이죠.”


“그래서 이렇게 부리나케 달려온 것 아니겠소? 상트룸 수도회 대주교 및 고위 사제들의 암살이었지. 뭐, 우리가 그런 쉬운 일에 실패할 거라 생각한 거요?”


제랄드는 다리를 건들거리며 경박하게 말했다. 제폰은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레이시는 그의 무례한 모습에 불쾌감을 느꼈다. 그는 레이시의 위치를 알면서도 결코 머리를 조아리는 법이 없었다. 물론 일은 확실히 처리하기 때문에 레이시도 그런 소소한 문제로 그를 탓하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오히려 그런 부분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아졌다. 그는 단순한 용병이라기엔 너무나 솜씨가 좋았고, 또 검술만큼이나 머리도 영악했다. 지금은 신의 아이를 둘러싼 문제에서 안개송곳니가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행여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아케니온이 어떻게 돌변할지는 레이시도 장담할 수 없었다. 사실 레이시는 제랄드에게 이 저택으로 텔레포트(Teleport)할 수 있는 반지를 수여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껄끄러운 자조차 중용해야 할 정도로 안개송곳니가 인력난에 허덕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레이시는 어느 정도의 불쾌감을 담아 그에게 말했다.


“일을 맡긴 지 3주일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야 결과를 보고하러 오시니, 어찌 제가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걱정’이라는 단어에 제랄드의 관자놀이가 살짝 꿈틀거렸다.


“그거 참 고마운 말씀이군. 하지만 일은 확실히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지시받은 대로 곧장 로샤단의 잔당을 처리하러 갔으니까.”


“이것과 그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의 신용을 얻고 싶다면, 앞으로는 보고 시간을 확실히 지키는 게 좋을 겁니다.”


대화 내내 레이시는 무표정으로 일관했고, 제랄드는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하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과, 서로를 의심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같았다.

제랄드가 말했다.


“그래서, 이렇게 안개송곳니의 신용을 얻고자 날을 새 달려온 것 아니겠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보고가 늦어진 건 다 이유가 있어서요. 혹시 안개송곳니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여태껏 수도회의 서고를 조사하고 있었다오.”


레이시의 깍지 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니, 역시 이 자는 평범한 용병이 아니다. 아마 자신의 패를 하나 더 만들기 위해 상트룸의 서고를 조사한 거겠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데도, 겉으로나마 그것을 감추려 한다는 건 하나의 아이러니였다.


“그래서, 여기로 왔다는 것은 무언가 찾으셨다는 거겠지요?”


레이시는 ‘여기’라는 말에 강세를 넣었다. 그는 만약 안개송곳니의 힘이 약했다면 제랄드가 그 ‘카드’와 함께 자신을 배신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직 안개송곳니의 영향력은 독보적이었고, 제랄드의 아케니온은 그에 비하면 일개 작은 용병단에 지나지 않았다. 레이시의 추측대로 제랄드가 굳이 이곳으로 돌아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상트룸 수도회만 아는 비밀을 찾아냈다오. 아마 앞으로의 행보에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소만.”


제랄드는 챙겨온 일지 한 권을 레이시에게 건넸다. 레이시는 책을 받으며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군말 없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뒤쪽은 됐고, 15쪽부터 읽으면 될 거요.”


레이시가 일지를 훑어보는 동안, 제랄드는 싱글거리며 제폰에게 다가갔다. 제폰은 그때까지도 동상처럼 꿈쩍도 않은 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번엔 수호기사단을 치러 갔다고 들었는데, 어때, 이번엔 만족스러웠소이까?”


제폰은 그의 질문에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는 한참 뜸을 들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넌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지만, 착각하지 마라. 세상엔 너보다 더한 고수가 얼마든지 있으니까.”


제랄드는 유쾌하게 웃었다.


“뭐 어떻소? 당신이 다 알아서 죽여버릴 텐데. 하지만 방금 한 말은 그대로 돌려 드리겠소.”


“무슨 소리지?”


“로샤단의 대장 말이오. 여간 아니었지요?”


그의 말에 처음으로 제폰이 반응을 보였다. 그의 스파이어드 헬름(Spired Helm)이 쇳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그의 투구 속에 감추어진 시선과 마주하자 제랄드조차 얼른 미소를 지울 수밖에 없었다.


“람카디스 클로람은 내가 지금껏 만나본 사내 중에 가장 최고였다. 그와 자웅을 겨룬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영광이었지. 하지만 그래서 또한 안타깝다. 이젠 나에게 그때만큼의 희열을 느끼게 해줄 자가 남아있지 않으니까.”


“뭐...만족하셨다니 다행이군. 로샤단의 대장이야 레인저들 사이에선 유명했으니 말이오.”


제랄드는 서둘러 그와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제폰의 귀신같은 솜씨는 익히 봐왔기에, 그만큼 그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마침 레이시가 막 일지를 덮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제폰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레이시는 다소 놀란 표정이었다. 그는 의혹 깃든 눈으로 제랄드와 일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의 평정이 무너지는 것을 보자 제랄드는 며칠간의 고생을 보상받는 듯한 쾌감을 느꼈다. 레이시는 뭔가 말하려다 자신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린다는 것을 알아채곤 잠시 숨을 골랐다.


“....여기 적혀 있는 내용이 사실입니까?”


제랄드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미 모든 내용을 파악했음에도 그는 짐짓 모른 척했다.


“나야 서고에서 가져왔을 뿐, 자세한 진위는 모르오.”


“솔직히, 상당히 놀랐습니다. 가린워드 사건의 생존자가 있었을 줄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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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81 30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797 30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87 27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0 29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26 28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62 33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1 31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83 25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82 25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76 27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18 25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39 32 11쪽
92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88 28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40 26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39 29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74 31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62 34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41 33 13쪽
»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06 33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15 35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44 34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73 31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08 37 16쪽
81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78 33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15 36 14쪽
79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16 38 19쪽
7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35 33 18쪽
77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14 39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22 33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46 33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42 34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69 38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85 34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16 43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1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34 34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18 35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14 32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83 38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291 35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0 44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52 35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76 39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19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6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0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5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2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5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5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1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1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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