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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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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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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2
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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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5.03.28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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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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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글자
17쪽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DUMMY

“우....웨....엔....”


디리터는 거실바닥에 쓰러진 채 열심히 입을 놀리고 있었다. 이제 막 간신히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할 즈음이어서, 말 한마디조차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간신히 무어라 외치긴 하는데, 그 뜻을 알아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저 자식 저거 누가 원시인 아니랄까봐,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만.”


디리터가 제리온을 향해 곧장 눈을 부라렸으나, 그 이상의 행동은 없었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눈을 굴리거나, 간신히 턱을 움직이는 정도였다.


“야우.....이....!”


“알았으니까 닥쳐 좀.”


제리온은 의자 다리에 기댄 채 열심히 허벅지를 주물렀다. 그는 남들보다 회복이 빨랐으나, 그래 봤자 고작 상반신 정도였다. 아직 허리 아래쪽으로는 감각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개인차는 있었으나 역시 마신 수프의 양이 마비의 정도를 결정한 모양이었다. 그 예로 물 마시듯 수프를 들이켰던 디리터는 아직도 저 모양이다.

니암의 예상과 달리 마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증상이 온 지 10분 정도 지나자 조금씩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프에 물을 많이 넣어 버섯의 효능이 약화한 까닭이었다. 가장 먼저 회복된 것은 루도였다. 그는 입이 움직이자 가장 먼저 동쪽을 향해 소리 질렀다.


“대에체에, 무스은 실험을 하누은 거야아 카아토르!!”


그다음이 마리네와 제리온이었다. 그들은 다리를 마사지하고, 물을 들이켜는 둥 마비를 풀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보았다. 하지만 역시 자연회복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오히려 허벅지를 주무르다 팔이 땅길 판이었다. 제리온은 이내 포기해버리고는, 아직도 누워있는 이칼롯을 향해 이죽거렸다.


“형씨는 갖은 폼은 다 잡으면서 어째 이런 함정엔 꼬박꼬박 걸려?”


이칼롯은 눈을 감은 채 대답이 없었다. 아직 마비가 풀리지 않은 탓이었지만, 왠지 할 말이 없어서 잠자코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데루루피아와 크리드는 이제 겨우 어깨 부근까지 마비가 풀려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연신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흐흑...니암...어쩌면 좋아...니암...니암...”


크리드는 그녀의 곁에 나란히 누운 채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데루루피아를 안심시킬 생각으로 찬찬히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이게 그 아이가 낸 최선의 방법일 테니. 어쩌면 일이 잘 풀려 무사히 끝날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소?”


“으흐흑...안 돼, 안 돼요. 유르그젠은 그렇게 무르지 않아요. 아아...제발...”


그녀가 니암을 걱정하는 동안, 한쪽에선 움직이기 위한 처절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우와아악!”


탁자를 짚고 일어나려던 마리네는, 오히려 탁자와 같이 사이좋게 바닥에 엎어졌다. 그는 팔꿈치를 어루만지며 데굴데굴 굴렀다.


“으으윽...그래도 다리는 전혀 안 아프네...”


“거 참 다행이네.”


이번엔 루도가 의자등받이를 붙잡고 일어났다. 의자와 함께 넘어가지 않도록 제리온이 의자 다리를 꼭 붙들어 주었다. 하반신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다 보니, 오로지 팔 힘만으로 몸을 일으켜야 했다. 그러쥔 팔목에 핏줄이 맺혔다.


“옳지, 옳지.”


구경하는 제리온이 흥분한 나머지 추임새를 넣었다. 루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발바닥이 땅에 닿아있는 것 같긴 한데, 그런 특유의 감촉이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다리가 없이 그냥 공중에 붕 떠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대충 서 있는 모양새는 나왔다. 마리네가 그 모습을 보며 손뼉을 쳤다.


“우와아! 대단하다!”


그 소리에 고무된 루도가 혹시나 싶어 손을 떼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으우엑!”


그는 도미노 넘어가듯 호를 그리며 반듯하게 쓰러졌다. 그의 뒤통수가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구경하던 모두가 눈을 질끈 감았다. 쿵.

그렇게 널브러진 채 한동안 조용하나 싶더니, 루도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몸을 굴렸다.


“으아아악! 이 자식! 잡히기만 해봐!”


그는 포복자세로 현관을 향해 열심히 기어갔다. 질질 끌려가는 두 다리는 그냥 붙어 있는 기계부품처럼 보였다. 제리온이 그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저거밖에 방법이 없나?....아오, 진짜!”


도리가 없었다. 마리네와 제리온도 이내 루도를 따라 열심히 기기 시작했다. 루도는 덩굴 올라가듯이 비척거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가 막 집을 나서려 하는데, 데루루피아가 그를 불러세웠다.


“얘들아!”


셋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말려야 했다. 그들을 멈춰야 했다. 그들이 가봤자 달라지는 일은 없다고, 목숨만 위태로워질 뿐이라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기적이라고 비난해도 좋았다. 모든 비수가 자신에게 꽂힌다 하더라도 달게 받을 수 있었다. 막고 싶었다. 그를 구하고 싶었다. 그만은 반드시 구해내고 싶었다. 니암을, 루프리모의 아이를.


“....니암을 구해줘.”


턱이 떨려 발음조차 부정확한 상황에서, 그녀는 애원했다. 울먹이며, 절규하며, 심장이라도 내줄 것처럼 간청했다.

루도는 마리네와 제리온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배시시한 웃음과, 투덜거리는 웃음. 정말 뜻이 잘 맞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셋은 대답 대신 오른 주먹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걸로 답은 충분했다. 데루루피아는 눈을 감았다. 마지막 눈물이 또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셋은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기어가든,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든, 어서 니암을 쫓아야 했다. 뒤에서 디리터의 기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고~~따아간다~~조힘해~~~!”


***


레인스터의 상업 지구는 평소보다 부산한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날 있었던 술집 대량살인사건으로 말미암아 도시의 치안경비대가 총동원되어 있었다. 그들은 사건이 일어난 가게 주변을 조사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술집에 있던 40여 명에 가까운 인원이 모두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단 한 명의 목격자도 없이. 그럼에도 범인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다만, 현장의 끔찍한 상태로 미루어보아 엄청난 능력을 가진 마법사의 소행으로 추정될 뿐이었다. 술집 밖에도 핏자국이 드문드문 나있으나, 별다른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레인스터 경비대는 흔치 않은 흉악살인사건으로 때 아닌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동떨어진 시민들에겐 그저 흥미로운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 모양이다. 사건이 벌어진 술집 주변은 한나절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고 열을 지어 소문의 사건현장을 구경하러 왔다. 이렇다 보니 수사는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무작정 상업 지구의 출입을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시기에 거리를 막아버렸다간 상인들에게 엄청난 항의를 받게 된다. 결국, 경비대는 최소인원을 제외한 모든 병력을 현장에 투입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 때문에 수도로 향하는 남쪽 성문엔 단 두 명의 경비병만이 진땀을 빼며 출입자를 관리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저 수상한 검은 로브의 일당 따윈 어찌 되든 상관없을 것이다.

광휘의 결사 중 한 명이 유르그젠에게 다가갔다.


“대장, 어제 술집에서 보았던 시신들은 역시 마법에 당한 것 같습니다. 몸이 바짝 마른 것으로 보아 호리드 윌팅(Horrid wilting)주문으로 보입니다만...”


그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호리드 윌팅이라니, 이 왕국에 그런 고위 마법을 사용하는 자가 있었던가? 조사한 단원도 책에서만 보았지 실제로 목격하기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상위 클래스의 마법사는 언제나 최대경계대상이었다.

어젯밤 여관의 참사를 직접 목격했을 때,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 골목길에서 폭음이 일었다. 고민은 짧았다. 유르그젠은 주저 없이 병력을 집결시켰다. 하지만 범인은 이미 온데간데없었고 덕분에 데루루피아도 놓쳐버렸다. 굳이 따지자면 자신의 판단미스라고 평할 수 있었으나,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아차 하는 순간에 수십 명을 날려버릴 수 있는 게 마법사다.


“우리 선발대는 모두 검에 찔려 사망했다고 하지 않았나?”


“예. 아마 공범자라고 봐야겠지요. 여전히 범인의 의중은 간파하기 어렵습니다만...”


“고위마법사와 절륜한 솜씨의 암살자라...단 두 명이 주동자라고 보긴 힘들고...역시 그년 말대로 다른 꿍꿍이를 가진 녀석들이 존재한다는 건가.”


그는 생각에 잠기는 듯했으나 이내 미련을 떨쳐버렸다. 지금은 그에 대해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범인이 어떤 생각을 하든 이것은 기회였다. 수호기사단을 누르고 루프리모의 아이를 데려간다. 일이 잘만 풀린다면 수도회가 국교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설령 그것이 그들을 돕는 것이라 하더라도, 지금은 그들이 만들어준 기회를 이용해야 했다. 도망간 루프리모의 아이와 데루루피아가 떠올랐으나 이젠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그년은 죽이든 살리든 상관없지. 수호기사단만 박살낸다면 루프리모의 아이는 자연히 수도회로 오게 될 거야.”


그래, 모든 것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유르그젠은 멀리 지평선에서 다가오는 은빛 무리들을 바라보았다. 서서히 그들의 생김새가 눈에 들어왔다. 은색 플레이트 메일로 온몸을 두르고, 커다란 검을 허리에 찬 채, 당당하게 걸어오는 기사들이. 단원 중 하나가 그들의 차림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여전히 위용이 대단하군요. 그들의 갑옷차림은.”


“흥, 갑옷이라고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건 아니야. 결국은 검술 솜씨가 승부를 판가름하지.”


유르그젠은 코웃음을 쳤다. 대충 숫자를 세어 봐도 상대는 20명 내외. 이쪽은 모두 35명이다. 수적으로도 절대적으로 우세했다. 개개인의 실력이 떨어질 거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거슬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잠시 후 수호기사단의 시체를 밟고 있을 상상을 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 유명한 수호기사단인가. 교단직속 수호기사들은 오지 않았지만, 뭐 저들만 없어져도 충분한 타격이지. 어디 한 번 솜씨를 구경해볼까?”


수호기사단은 점점 다가왔다. 그들 역시 광휘의 결사들을 일찌감치 발견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상인들이 가라앉은 공기를 느끼고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들이 불안하게 그들을 주시하고 있으나, 이 일전을 방해하진 못할 것이다.

이윽고 은빛의 기사들이 그들 앞에 섰다. 수호기사단은 말에서 내려 광휘의 결사와 대치했다. 아직 아무런 대화도 없었으나 분위기가 좋게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유르그젠은 히죽 웃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난 광휘의 결사를 이끄는 유르그젠 에브릭이다. 수호기사단의 단장은 누구지?”


맨 가운데 있던 남자가 투구를 벗었다. 짧은 흑발의 중년남성이 그에 화답하듯 앞으로 나섰다.


“류이너스를 수호하는 아이손 페그라크요. 적절하지 못한 시기에 만나게 되어 참으로 유감이오.”


“아아, 뭐 그렇게 나쁜 시기는 아닌 것 같은데. 당신네들과는 언젠가 한 번쯤 만나야 할 운명이었으니까.”


아이손은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그 역시 유르그젠의 의중을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우리는 지금 루프리모의 아이를 모시러 가는 중이오. 방해가 되니 그만 길을 비켜주지 않겠소?”


“아니, 아니지. 그 전에 해결할 일이 있지 않나? 공교롭게도 이번에 서로 받아야 할 빚이 생긴 걸로 아는데...”


유르그젠은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그것은 명백한 도발행위였다. 수호기사단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아직 무기를 뽑진 않았으나, 유르그젠을 향해 여과 없는 적의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이손이 애써 소란을 제지하며 말했다.


“수도회의 일은 유감이오. 하지만 그 일에 대해선 아직 우리가 결정할 바가 아니오. 지금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타협점을 모색하는 것이...”


“우린 어제 다섯 명의 단원을 잃었어. 당신네들과 똑같은 복장을 한 괴한에게 말이야. 알다시피, 당신네들 같은 삐까번쩍한 갑옷은 흔한 게 아니지.”


웅성거림이 다시 커졌다. 아이손 역시 서서히 평정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게 교단의 소행이라 말하고 싶은 거요? 우리는 이제 막 레인스터에 도착한 참이오.”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 당신들이 거짓말을 하는지 알게 뭐야? 우리는 다섯 명을 잃었고, 이제 당신들이 그 값을 치러줘야겠어.”


“...섣불리 나서지 마시오. 그게 당신의 명을 재촉할지도 모르니까.”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운이 감돌았다. 아이손은 애써 마음을 추슬렀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다. 루프리모의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광휘의 결사를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다. 막 유르그젠의 어깨를 스치려 할 때쯤, 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제 데루루피아 아망초가 찾아왔었지.”


아이손의 눈동자가 비틀렸다. 그는 곧장 돌아섰다.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에게 회군해달라고 부탁하더군. 호위도 없이 단신으로 와서 말이야.”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곳에 서 있다. 아이손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그는 유르그젠의 멱살을 잡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


“그녀를 어떻게 했지?”


걸려들었다. 유르그젠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수호기사단을 도발할 만한 떡밥은 얼마든지 있었다. 굳이 그녀와 니암을 놓쳤다는 얘긴 할 필요가 없다.


“그것까지 우리가 알려줘야 하나?”


그는 그렇게 말하며 류이너스의 심볼을 손등 위에서 빙그르 돌렸다. 수호기사단의 인내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아이손은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말하시오, 아망초양을 어떻게 했는지. 대답 여하에 따라 당신의 목숨이 갈릴 것이오.”


“일단...조용한 곳으로 가지? 여긴 이목이 너무 많잖아?”


아이손은 말없이 유르그젠을 쏘아보았다. 이미 활시위는 놓아졌다. 그는 수호기사단에 대놓고 도발을 걸어오고 있었다. 아무리 사태가 급박하다 해도 그들을 무시하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만약 이 자들이 정말로 데루루피아를 죽였다고 한다면...그 땐 이들 모두를 도륙해도 성이 차지 않을 것이다.


“곧 그대의 방정한 입놀림을 후회하게 될 것이오.”


그들은 성문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도로 외곽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로수들이 적당히 시야를 가려주고 있으므로 싸움이 벌어진다 해도 방해하러 오는 이는 없을 것이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걸까, 마침 도로를 지나가는 행인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손이 이를 갈며 말했다.


“당신들은 역시 루프리모의 아이를 잡아가려고 온 것이군. 이제 대답해라, 아망초양을 어떻게 했지?”


유르그젠은 천천히 검을 뽑았다. 날이 바짝 선 클레이모어가 햇살을 반사해 번쩍거렸다.


“우린 당신들을 보낼 수가 없고,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야.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싸우는 데 더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가?”


“말이 안 통하는 자로군.”


아이손 역시 검을 뽑았다. 그것이 신호탄이 되어,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무기를 뽑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검이 금방이라도 서로를 갉아버릴 것처럼 쇳소리를 냈다. 근처의 가로수들이 불안하게 몸을 떨었다.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까치들이 그 광경을 보며 소란을 떨었다.

저 칼들이 다시 칼집에 들어갈 때가 되면, 몇 명이나 살아남아 있을까?

누군가는 반드시 죽을 거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어느 누구도 그것이 자신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살아가는 자의 무지이자 헛된 망상이다.

유르그젠이 아이손의 검 끝을 응시한 채 말했다.


“볼일이 끝나면 그년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그때까지 당신들이 살아남아 있다면 말이야.”


“아망초양의 거처를 알지 못하게 되어 유감이군.”


어쩌면 마지막 유언이 될지도 모르는 한 마디를, 그들은 자신을 과시하는 데에 써버렸다. 그것은 믿음으로 포장된 만용이었다. 대화는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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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90 31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805 29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96 28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7 30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33 29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73 34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7 32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90 26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91 26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84 28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28 26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49 33 11쪽
92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98 29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52 27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49 30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80 32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72 35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52 34 13쪽
86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16 34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24 36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54 35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84 32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19 38 16쪽
81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88 34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25 37 14쪽
79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28 39 19쪽
7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45 34 18쪽
77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23 40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30 34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53 34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50 35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77 39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93 35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26 44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7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45 35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27 36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24 33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92 39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300 36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8 45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61 36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83 40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7 38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31 39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74 35 14쪽
»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3 15.03.28 1,023 36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7 40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32 46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73 47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9 42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14 45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63 51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43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82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51 46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9 4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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