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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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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3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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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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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
18쪽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DU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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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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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라 함은?”


“전해지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아반케즈와 루프리모에 편중되어 있소. 2차 소환 때 그 둘이 보여주었던 일진일퇴의 공방과 유수의 무용담들은 한 편의 서사시로 만들기에도 부족함이 없다오. 하지만 ‘가장 많은 살생을 저지른 신의 아이는 누구인가?’라 묻는다면, 누구도 주저 없이 펠아람의 아이를 꼽을 것이오.”


“얼마나 죽였는데 그래요?”


베른헬트 주교가 잠시 말을 멈추고 눈두덩을 꾹꾹 주물렀다. 누적된 피로가 몰려온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500년 전 펠아람의 아이가 저지른 참상을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해진 것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듣고 있던 일행도 가만히 침을 삼켰다. 이윽고 베른헬트 주교가 입을 열었다.


“60만. 펠아람의 아이, 그 단 한 명에 의해 사라진 생명의 숫자요.”


“에엑?”


누군가는 그 수치에 놀라서, 누군가는 믿어지지가 않아서 탄성을 내질렀다. 경악한 루도가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칼롯의 질린 표정과 마리네의 숨넘어가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환청을 들은 것 같진 않았다.

델키아의 인구를 다 합해도 3만을 넘지 않는다. 상업도시인 레인스터조차 8만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다. 그런데 60만이라니. 너무 거짓말 같은 수치다 보니 다들 놀라다 못해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반케즈의 아이 역시 경이적인 살육을 행하긴 했다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브리토리스 왕국의 입장에서 리크나이츠 군대를 격파한 것이라오. 그에게는 자신이 믿는 대의가 있었고, 어지간해선 일반 평민에게는 손대지 않았소. 하지만 펠아람의 아이는 다르오. 그는 ‘인간 세계의 멸망’을 이상으로 삼아, 신의 권능을 오로지 살인에만 사용했다오.”


마리네가 물었다.


“신에게 부여받은 힘을 오로지 살인에만 썼다고요? 어째서 그런 짓을 벌인 거죠?”


“500년 전 인물의 의중을 어찌 알 수 있겠소? 다만 추측하건데, 전 대(代) 펠아람의 아이는 미쳤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오. 미치광이 살인마에게 무엇이든 파괴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 같소?”


“으음...”


마리네는 낮게 신음을 흘렸다. 베른헬트 주교의 답변에 수긍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해가 저물려면 두어 시간 남았는데도 창밖엔 어둠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먹구름이 곰실거리며 몰려드는 모양새가 얼마 안 가 한바탕 퍼부을 기세였다. 레밀리오 사제가 책상 옆에 놓인 등잔에 불을 붙였다. 등불이 집무실 안을 밝혔지만, 불빛이 닿지 않은 구석 끝은 오히려 불을 피우기 전보다 더 어두워 보였다.

베른헬트 주교의 이야기가 계속됐다.


“펠아람의 아이는 아스트리카를 거의 멸망시키다시피 하고, 리크나이츠 동부를 짓밟으며 전진했소. 그 악몽 같은 진군을 저지한 것이 루프리모의 아이와 건국전쟁의 영웅, 리카르고였소.”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매우 뜻밖이었다. 영웅 리카르고, 500년 전 국가의 명운이 걸린 상황에서 리크나이츠를 승리로 이끈 전설의 인물이다. 리크나이츠 국민이라면 그의 무용담을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그가 남긴 업적은 대단한 것이었다.

사실 이칼롯을 비롯한 몇몇은 리카르고에 대한 생각을 조금 전부터 하고 있었다. 신의 아이가 건국전쟁에 개입되었음을 안 이상 그에 대한 평가도 재고되어야 할 텐데, 마침 베른헬트 주교가 그의 이름을 꺼낸 것이었다.


“리카르고는 아스트리카의 ‘자색의 기사(The knight of violet)'와 싸우다 함께 죽었다고 들었는데...”


루도가 언젠가 읽었던 위인전을 회상하며 웅얼거렸다. 그것을 들은 베른헬트 주교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자색의 기사를 펠아람의 아이로 바꾼다면.”


“...하아.”


루도도 루도지만, 마리네는 이제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양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세계관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야.”


충격을 느끼는 것은 비단 마리네 혼자만이 아니었다. 사실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듣는다면 베른헬트 주교의 이야기는 뜬구름 잡는 헛소리나 다를 바 없었다. 종교텃세가 심한 아스트리카 왕국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단번에 이단으로 잡혀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만 일행은 니암의 사례를 이미 목격했었고, 카토르의 일지를 대강 훑어본 뒤였으므로 주교의 설명을 위화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드러나는 전말이 너무 엄청났다.


“펠아람의 아이는 격전 끝에 리카르고에게 패하고 말았소. 이 과정에서 루프리모의 아이는 죽어버렸고, 리카르고 또한 치명상을 입었다오. 그에게 심장을 찔리기 전, 펠아람의 아이는 수정의 힘을 모조리 끌어모아 예언을 내렸소. 세월이 흘러 다시 신의 아이가 소환되는 때가 온다면, 그들 중 누군가가 자신의 유지를 이어받아 인간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말이오.”


루도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세상 자체에 대한 분노. 그때 니암이, 아니, 니암과 같은 목소리를 하고 있던 ‘그 누군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그때 니암을 진정시키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수십 개의 구체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로 방출됐다면...


“신의 아이가 각성하지 않는다면 저주 자체도 무효화될 거라는 말이군요. 그런데 니암을 제외하고라도 다른 신의 아이는 어떻게 막나요?”


등불이 비추어서일까, 베른헬트 주교의 표정에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주름진 그의 눈가는 처음 보았을 때보다 퀭해 보였다.


“니암이 진실을 알 수 없도록 보호하고, 다른 한 편으로 남은 신의 아이들을 찾는 일이 우리가 맡은 역할이었소. 하지만 신의 아이를 찾는 일은 온 대륙을 누비는 고된 작업이었다오. 그렇다고 이를 정규군이나 일반 용병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소. 비밀이 군중에게 퍼져 신의 아이가 자신의 정체에 대해 인지하게 되면 끝장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로샤단의 협력은 단비와 같았다오.”


일행의 그림자가 크게 술렁였다. 예상대로, 로샤단은 신의 아이를 찾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루도는 전에 몇몇 길드원들이 임무를 목적으로 한두 달씩 떠나곤 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런데 그 임무라는 것이 중요한 편지를 전달하는 거라든지 업무현황을 보고하는 것 따위여서, 왜 그런 임무를 길드원이 맡아야 하는지 의아해하곤 했었다. 게다가 루도가 들어오기 전에는 전원이 몇 주씩 델키아를 떠나 있던 적도 많았다고 했다.

루도는 이제야 왜 람카디스가 자신을 구해주었는지, 왜 그때 그가 가린워드 마을에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펠아람의 아이에 관한 단서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우리 길드가 습격당한 것은....”


“...모두가 우리와 같은 뜻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라오. 그들은 한 명이 저주를 받는다 하더라도 다른 셋이 올바르게 각성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이익이 될 거라 믿고 있소. 상트룸 수도회도 그런 단체였고.”


이칼롯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그는 베른헬트 주교가 혹시 잘못 말한 게 아닌가 싶어 물었다.


“단체‘였다’니요? 지금은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베른헬트 주교는 뭔가 말하려다 말고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이내 눈을 감아버렸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슬픈 일이기 때문이었다.

레밀리오 사제가 그를 대신하여 말했다.


“상트룸 수도회는 얼마 전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했다오. 그 일로 베로스 주교와 그를 보좌하던 고위 사제들이 순교했고, 수도회의 무장집단 광휘의 결사는 전멸했다오.”


“전...멸이요? 광휘의 결사가 말입니까?”


이칼롯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놀라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이 흘렀지만 일행은 여전히 광휘의 결사와 맞붙었던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검은 로브를 입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검객들. 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일행은 그때 그들에게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그런 그들이 모두 죽었다니?

레밀리오 사제의 설명이 계속됐다.


“아망초양의 편지에 따르면, 그들은 스스로를 안개송곳니 암살단이라 칭하는 것 같소. 이제 막 그들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가려 하는 터에 그쪽에서 선수를 친 것이라오. 광휘의 결사, 로샤단, 그리고 우리 쪽의 수호기사단까지, 그들은 신의 아이와 관련된 집단이라면 닥치는 대로 살해하고 있소.”


“수호기사단도 당했다니...”


“우리가 너무 안일했소. 그들은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소. 펠아람의 아이를 죽이려 했던 것이나, 우리와 수도회를 이간질했던 것, 그리고 최근 일련의 습격사건까지. 솔직히 이제 우리에겐 그들을 막을 여력이 남아있지 않소.”


“여보게, 레밀리오!”


레밀리오 사제가 비관한 나머지 말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이야기했으므로 베른헬트 주교가 이에 주의를 주었다. 그는 천천히 일행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는 처음 입을 열었을 때에 비해 몰라보게 해쓱해져 있었다. 며칠 간 잠을 못 자 피로가 쌓인 탓이겠지만, 들추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는 점이 더 컸다. 그 역시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격했을 것이고, 자신의 무력함을 질리도록 느꼈을 것이다. 그가 겪은 고통 또한 루도 일행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안개송곳니의 의도는 명백하오. 신의 아이를 각성시켜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하려는 것이오. 그러기에 앞서 방해꾼들을 제거하는 게 필요했겠지. 로샤단이 습격당한 것도 그러한 일환이었을 것이오. 자, 이제 충분한 설명이 되었소?”


베른헬트 주교는 마지막 말에 강한 악센트를 넣었다. 이것이 너희가 원하던 진실이라고, 한낱 젊은이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거운 짐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복수를 부르짖으며 달려오긴 했지만, 적은 광휘의 결사나 수호기사단도 어쩌지 못한 상대였다. 실제로 일행은 아케니온과 마주하고도 도망치기 바빴다.

그럼에도 일행은 다들 초연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몸을 사리고 어딘가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난관을 극복해야 할지에 초점을 맞췄다. 베른헬트 주교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일행은 로샤단의 복수가 꼭 안개송곳니 일당을 죽이는 것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보다 더 거국적인 시선에서 볼 때, 람카디스의 유지를 잇고 나아가 안개송곳니의 목적을 저지하는 게 보다 확실한 복수의 형태였다.

그러려면 제일 먼저 확인할 것이 있었다.


“그게 람이 이루고자 하던 건가요? 신의 아이의 각성을 막는 것이?”


베른헬트 주교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눈앞의 소년은 결코 물러설 뜻이 없음을 온몸으로 내비치고 있었다. 람카디스의 양자라고 했던가.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확실히 눈빛은 아버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혹시 「물장구치는 독수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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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카디스, 혹시 「물장구치는 독수리」 이야기 알고 있나?”


외딴 시골길을 걸어갈 즈음이었다.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던 세르딕은 문득 떠오른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와 마주한 젊은 기사는 예와 다름없이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난데없는 질문에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아마 저 늙은이가 또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가 싶어 의문을 품은 것이리라. 그는 어떻게 대답해야 눈앞의 늙은이를 한 방 먹일 수 있을까 고민해 봤지만 딱히 좋은 답변이 생각나진 않았다. 그가 눈짓으로 데루루피아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그녀는 키득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결국 람카디스는 또 한 번 세르딕의 말장난에 넘어가기로 했다.


“...잘 모릅니다.”


“아주 간단한 우화야. 어느 호숫가에 오리 부부가 살고 있었어. 그러다 알을 낳게 되었는데, 글쎄 오리가 아니라 독수리가 태어난 거지.”


“...뭡니까? 그건.”


그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토로했으나 세르딕은 전혀 신경 쓰는 기세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손짓 발짓을 더해가며 이야기에 열을 냈다.


“들어봐. 어쨌든 오리 부부는 독수리를 정성을 다해 키웠어. 그런데 몇 년이 지나자 문제가 생겼지. 독수리의 몸이 너무 커진 거야. 녀석의 부리는 웬만한 송곳보다 날카로웠고, 발톱은 다른 오리의 물갈퀴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단단했지. 그러자 호숫가의 모든 오리가 모여 녀석을 어떻게 할지를 정하려고 회의를 열었어. ...어이, 듣고 있냐?”


“듣고 있습니다.”


늙은 레인저는 낄낄거리며 람카디스의 등을 두드렸다. 젊은 기사는 어떻게 해서든 그를 골탕먹일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오십을 넘은 나이였다. 살면서 온갖 사람을 다 겪어본 그였기에, 람카디스의 반항 같은 건 오히려 귀엽게 느껴졌다. 그는 람카디스의 탐탁지 않은 얼굴을 보고서도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한 오리가 말했지. 「녀석은 날 때부터 오리가 아니었어요. 놈은 독수리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독수리는 새들의 제왕이죠. 그러니 녀석이 우리의 왕이 되어 이 호숫가를 다스려야 합니다.」”


무관심하게 듣던 람카디스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해 졌다. 뒤이어 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세르딕을 바라보았다. 데루루피아는 이미 멀찌감치 떨어진 채 낙엽을 헤치며 걸어가고 있었다.

세르딕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러자 다른 오리가 말했어. 「녀석이 독수리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녀석이 왕이 되면 이 호숫가는 틀림없이 불행해질 겁니다. 우리는 그저 물장구나 치며 물고기나 잡아먹으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녀석을 보세요, 녀석의 흉포한 부리는 언젠가 커다란 재앙이 되고 말 것입니다. 녀석이 이곳에 사는 이상, 우리 오리들의 규율에 따라야만 합니다. 결코 그 발톱과 부리를 드러내선 안 됩니다.」”


세르딕은 목소리를 가지각색으로 바꿔가며 실감 나게 이야기를 펼쳤다. 막 두 번째 오리의 연설이 끝나자, 람카디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비유가 너무 조악한데요.”


“응? 조악하다니, 너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고 말하는 거냐?”


“신의 아이에 대한 관점을 빗대어 말한 것 아닙니까. 첫 번째 오리는 상트룸 수도회고, 두 번째는 류이너스 교단이로군요.”


세르딕의 너털웃음에 앞서가던 데루루피아가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몸을 돌리자 그녀의 하늘색 머리칼이 그에 따라 빙그르르 물결 쳤다. 그녀는 담비 털로 짠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아무리 보온성에 중점을 맞췄다 해도 그녀의 푸른 머리카락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람카디스와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 천진한 미소와 마주하자 젊은 기사는 지금껏 생각하던 고민이 전부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스물도 안 된 소녀가 자신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는 것은 그 스스로도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에게 정신이 팔려, 람카디스는 세르딕의 말을 흘리고 말았다. 그러자 세르딕이 그의 귓전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어이! 람카디스! 안 들리냐?!”


“음, 험! 뭔 말 하셨습니까?”


“자, 네가 세 번째 오리다. 너라면 뭐라고 하겠냐?”


그제야 날아갔던 정신이 되돌아왔다. 람카디스는 입을 다문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세르딕은 그가 답을 내놓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데루루피아는 여전히 낙엽 더미를 융단인 양 밟으며 나아가는 중이었다. 얼마간 자박자박 거리는 발소리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윽고 람카디스가 입을 열었다.


“제 답은 이겁니다. 「독수리는 없다.」”


늙은 레인저가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단 두 마디뿐이었지만, 그는 람카디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간파해냈다. 하지만 그는 짐짓 모른 체 물었다.


“흐음~. 그게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입니다. 애초에, 오리에게서 독수리가 태어날 일은 없습니다. 설령 알이 바꿔치기 당해서 독수리가 나왔다 하더라도, 새끼는 오리에게 길러졌을 테고, 헤엄을 치며 물벌레를 먹으며 자랐을 겁니다. 그럼 녀석은 오리입니다. 결코 독수리가 될 순 없습니다.”


람카디스는 단호한 어조로 또박또박 말했다. 자신이 생각하던 이상적인 답변과 완벽히 일치했기에, 세르딕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턱수염을 몇 번 쓰다듬더니, 불현듯 흥에 겨워 람카디스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람카디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이를 막았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넌 어쩌면 나와 비슷한 구석이 꽤 많을지도 모르겠다.”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마십시오. 굉장히 불쾌합니다.”


“자식, 쑥스러워하긴.”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아직 한 나절은 더 가야만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셋은 발걸음을 빨리했다. 막 언덕이 오르막길에서 내리막길로 바뀔 즈음, 늙은 레인저가 말했다. 듣는 것은 젊은 기사와 어린 소녀였다.


“훌륭하다, 람카디스. 맞아. 독수리는 없다. 다만 몸집이 크고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오리가 있을 뿐이지. 녀석을 독수리로 만드는 것은 오히려 다른 오리들이야. 그래도 오리는 어디까지나 오리일 뿐이다. 그걸 명심하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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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1) +1 15.04.06 973 28 16쪽
109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0) +1 15.04.06 1,012 28 13쪽
108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9) +2 15.04.06 903 31 12쪽
107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8) +4 15.04.06 865 29 12쪽
106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7) +3 15.04.05 995 26 12쪽
105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6) +1 15.04.05 899 29 10쪽
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90 31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805 29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96 28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7 30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33 29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73 34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7 32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90 26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91 26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84 28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28 26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49 33 11쪽
»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98 29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51 27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48 30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80 32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72 35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52 34 13쪽
86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16 34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24 36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54 35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84 32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19 38 16쪽
81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88 34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25 37 14쪽
79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28 39 19쪽
7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44 34 18쪽
77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23 40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30 34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53 34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50 35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77 39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93 35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26 44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7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45 35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27 36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24 33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92 39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300 36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7 45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61 36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83 40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7 38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31 39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74 35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3 15.03.28 1,022 36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7 40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32 46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73 47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9 42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13 45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63 51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43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82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51 46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9 4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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