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조회수 :
359,026
추천수 :
10,757
글자수 :
2,844,987

작성
15.04.12 03:37
조회
753
추천
25
글자
21쪽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2)

DUMMY

오랜만에 만난 국왕은 옛날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눈동자는 금방 잠에서 깬 사람처럼 초점이 없고 흐릿한 반면, 입가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끊임없이 조소를 띄운 채였다. 세월이 그를 변하게 한 것일까? 예전에는 웃어도 입을 벌리며 호쾌하게 웃던 그가, 지금은 피식 거리며 입 꼬리를 올리고 있으니 아무리 직위가 변하였다고 해도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야,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 정말 아름다워졌구나.”


“...폐하...”


왕은 그녀에게 앉으라며 흔쾌히 의자를 내주었다. 케이달은 자신이 심한 질책을 받으리라 생각했지만, 왕은 웃으며 나가 있으라고만 했다. 왕은 그가 규정을 어길 것을 예상한 것일까? 아니면 데루루피아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그런 걸 상회할 만큼 기쁜 것일까? 케이달은 결론지을 수 없는 의문만 간직한 채 금서관리실을 나섰다. 넓은 서고 중앙에 국왕과 데루루피아만이 마주하게 되었다.


“폐하, 어디 몸이 편찮으신지요?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왕의 퀭한 눈동자와 창백한 얼굴이 신경 쓰였는지 그녀가 물었다. 그러자 란도스는 히죽 웃으며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데루루피아는 슬쩍 눈동자를 돌려 그가 읽고 있던 책의 제목을 훑었다. 표지에는 ‘아루의 심복들’이라는 제목이 흐릿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래 보이나? 늙으니 영 몸이 따르지 않는군. 큭큭. 그래, 참 많이도 늙었지.”


왕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지라 그녀는 살짝 머리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 상태에서도 그녀는 눈동자를 굴려 그의 몸을 살폈다. 비쩍 마른 손목에 얼굴의 그것처럼 창백해진 피부, 그리고 검붉은 핏줄들. 왕은 못 본 사이에 몰라볼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만약 케이달이 안내하지 않았거나 머리에 쓴 왕관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란도스를 알아보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람카디스보다 훨씬 활발하던 사내가 이렇게 변하다니, 세월을 탓해야 할 것인가? 하지만 람카디스는 왕자님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며 혀를 내두르곤 했었는데....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히히, 사람이 늘 젊을 수는 없으니.”


“...그렇지요.”


데루루피아는 다소곳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왕의 말에 수긍한다기보단, 자신의 결의를 다시 한 번 다진 것이었다. 왕의 상태가 걱정되긴 해도 지금은 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였다. 자신에게, 그리고 로샤단에 걸린 현상금에 대해서.


“폐하, 제가 여기 있는 것에 대해 아무 감흥이 없으십니까?”


“응? 뭐가 말이지?”


란도스가 피식 거리며 되물었다. 데루루피아는 그가 짐짓 잡아떼는 건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현상금 수배자인 제가 이곳에 있는 것 말입니다. 폐하께서 직접 저와 로샤단에게 현상금을 건 것이 아니십니까?”


“음?”


란도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보고, 그녀는 왕이 혹시 치매라도 걸린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거라면 확실히 자신들에게 현상금을 건 게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지만...

왕이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는 막 생각났다는 듯이,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아하아! 맞아, 맞아!! 분명 그랬지! 킬킬킬...내가 걸었어. 음, 내가 걸었지! 그래, 여자의 몸으로 용케 여기까지 왔구나.”


“...변절한 안개송곳니 단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왕성까지 따라오진 않았습니다만...”


“호오...”


무미건조하던 란도스의 눈이 일순 번뜩였다. 데루루피아는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알룬도가 걱정됐지만, 일단 현상금 문제에 대해 더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폐하, 그 현상금 말입니다만...폐하께선 정녕 저희가 로샤단 사람들을 죽인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설마, 그럴 리가! 그냥...음...장난 한 번 쳐본 거야. 그리고 현상금을 걸면 네가 이렇게 날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거든. 넌 평소엔 전혀 종적을 알 길이 없잖아.”


데루루피아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현상금을 걸면 자신이 이곳에 올 거라 생각했다고? 수배자가 된 시점부터 데루루피아와 로샤단은 무수한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애초에 수배서에 생포해야 한다는 조건은 어디에도 없었고, 당장 성문에서도 그녀는 죽을 고비를 넘겼었다. 그리고 장난이라니. 그녀와, 그리고 살아남은 아이들이 람카디스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무엇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장난으로 현상금을 걸었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슴 속에서 뭔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데, 란도스가 미소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 데루루피아! 너와 꼭 상의하고 싶은 게 있었다고. 안개송곳니 말이야!”


“...안개송곳니 암살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녀석들에게 언제까지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녀석들은 적극적으로 신의 아이를 포섭하려 하고 있어. 우리들도 언제까지 손 두고 있을 수만은 없지. 난 이제 국가적인 차원에서 신의 아이를 보호하려 해.”


왕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신의 아이에 대한 것을 공론화시키는 건 대단히 위험부담이 큰 생각이지만, 적어도 그들이 안개송곳니에게 넘어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그럴 거면 먼저 류이너스 교단이나 상트룸 수도회에 연락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서 네 도움이 꼭 필요하다. 데루루피아, 아루의 수정은 어디 있지? 펠아람과 루프리모의 것 말이야.”


“...수정 말입니까? 신의 아이가 아니라?”


“그래, 수정! 류이너스 교단에서 보관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누군가 빼돌렸잖아.”


어째서 신의 아이가 아닌 수정의 위치를 묻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성실히 대답했다.


“수정은 교단수호기사 제르칸트가 가지고 있습니다. 수호기사단이 습격당한 시점에서 베른헬트 주교의 명령으로 수정을 가지고 달아났지요.”


“제르...칸트라? 누구지...뭐 좋아, 어디 있는데?”


“지금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마지막으로 연락을 받았을 땐 분명 아...”


제르칸트의 은신처를 말하려던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 왕은 제르칸트를 모른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국왕이 그와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 치매라도 걸린 건가 싶어 그녀는 무례를 무릅쓰고 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여전히 흐릿하고 초점 없는 눈.

정말로 왕은 제르칸트를 기억 못하는 걸까? 그게 아니라 애초부터 기억이 없었다고 한다면? 데루루피아는 다시 한 번 눈앞의 남자를 면밀하게 살폈다. 외향은 란도스가 분명하지만...그녀는 천천히 심호흡을 한 후 왕에게 물었다.


“폐하, 위릭 경에게 들었습니다. 로샤단의 장례식에 다녀오셨다지요? 전 경황이 없어 들르지 못했지만...어떻던가요? 람카디스와 카토르의 마지막 가는 길은...”


“장례식 말인가? 그야 다녀오긴 했는데...가보니 이미 끝난 상태더군. 생존자들이 만들어 놓은 무덤을 보긴 했지만...그런데 그게 지금 그리 중요하나?”


“폐하, 람카디스와 폐하는 형제처럼 지내던 사이가 아닙니까? 저 또한 그를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꼭 알고 싶습니다.”


왕의 입 꼬리가 일순 다물어졌으나, 그는 이내 별 상관없다는 듯 다시 실실거리기 시작했다. 로샤단이 습격당한 게 한 달이 좀 넘었으니, 델키아에 다녀왔다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할 것이 분명했다. 란도스는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 참 안타까운 일이야. 람카디스는 내가 정말 좋아하던 인물인데.”


“당신, 누구야?”


데루루피아가 자리를 박차며 외쳤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던 순간, 그녀는 사색이 되어 어깨를 벌벌 떨었다. 왕은, 란도스는 그녀의 반응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왜 그리 난리냐는 듯 혹은 무슨 일이냐는 듯 깜박이는 그의 눈동자와 달리, 입가는 더욱 심하게 비틀어지고 있었다.


“흐응, 왕에게 반말을 하다니, 세상 참 말세로고. 갑자기 웬 소란이지?”


그 잡아떼는 태도가 더욱 공포스럽고, 또 역겨웠다. 데루루피아는 황급히 품속의 단도를 찾았으나, 입구에서 기사들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당신은 절대 란도스 리크나이츠가 아니야! 왕자님은 절대 람카디스를 본명으로 부르지 않는다고!”


란도스가 람카디스를 ‘람람’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는 것은 이제 그의 친우 가이잘모와 데루루피아 정도밖에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를 아끼면서도 또 놀리길 좋아해 결코 본명이나 성으로 부르는 일이 없었던 왕자였기에, 데루루피아는 눈앞의 사내가 란도스일 리가 없다고 단정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적중했다.


“킬킬킬...그래? 그건 몰랐는데...”


“당신...대체!”


왕이 이제 이를 드러내며 웃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저열한 웃음소리는 흡사 들쥐가 내는 울음처럼 들렸다. 데루루피아는 왕의 안면이 기묘한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키키키...! 한 방 먹었군. 이거야 원, 높으신 분 흉내 내는 건 정말이지 곤욕이라니까...”


“당신 누구야! 폐하는 어딨지?”


“으응? 무슨 소리지? 이 몸 말고 왕이 또 있다는 건가? 이거 참 놀랍구나, 데루루피아 아망초. 이젠 반란까지 생각하다니.”


“으...란도스 왕자님...”


알룬도와 가정한 대로, 왕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음이 명확해졌다. 어디까지 달아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줄행랑을 놓을 생각으로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러자 왕이, 아니 왕을 흉내 낸 남자가 손을 들어 근위대를 불렀다.


“여봐라, 누구 없느냐! 여기 반역자 데루루피아 아망초가 나타났다.”


마치 처음부터 대기하고 있었던 것처럼, 병사 몇 명이 순식간에 금서관리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거칠게 저항했으나, 병사들에게 사지를 구속당하는 데에는 수초도 걸리지 않았다. 남자는 포박당한 그녀를 내려다보며 비열만 미소를 지었다.


“아직은 죽이지 않으마, 아망초. 네년에게서 캐내야 할 정보가 남아 있으니 말이다. 특수 감옥에 처넣어라!”


그녀는 뭔가 외치려 했으나, 왕의 명령으로 삽시간에 재갈이 물려졌다. 사지는 물론이고 목소리마저 봉해진 그녀를 병사 둘이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금서관리실을 나서며 케이달과 마주쳤으나,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데루루피아는 그에게 왕은 가짜라고, 진짜를 찾아야 한다고 간절히 외쳤지만 재갈 때문에 억눌린 신음만 새어나왔다. 말이 안 나오자 그녀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당혹스러워하는 케이달의 표정뿐이었다.

그렇게 지하 감옥으로 끌려가고 있는데, 멀리 남자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참, 알룬도의 정보 고맙네. 키키킥!”


그녀의 눈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다니, 왕을 흉내 내는 남자는 안개송곳니의 일원이 틀림없었다.

데루루피아는 왕성 지하에 위치한 특수감옥에 수감되었다. 그곳은 일반 감옥과 달리 전범 급 범죄자나 정치 사범, 흉악한 살인자 등을 관리하는 곳이었다. 빛이라고 해봐야 벽에 뚫린 손가락만 한 구멍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전부였고, 온 사방이 축축한 이끼와 곰팡내로 가득했다.

병사들은 그녀를 감옥 안에 던져 넣다시피 하고는 그대로 철창문을 닫아버렸다. 직전에 재갈을 풀어줘 입은 자유로웠으나, 여전히 손발은 결박당한 채였다. 그녀는 초연히 사라지는 병사들을 보며 절박하게 소리쳤다.


“젠장! 이거 당장 풀어줘! 당신들 왕은 가짜라고! 내 말을 들어!!!”


하지만 그들이 그녀의 말을 들을 리 만무했다. 온갖 범죄자를 취급하는 그들에게 그녀 같은 반응은 오히려 귀엽게 보일지도 몰랐다. 병사들이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자, 그녀는 절망에 찬 비명을 뱉으며 철창에 몸을 부딪쳤다. 캉, 캉, 하는 쇳소리가 감옥 안에 메아리쳤다.


“안 돼! 이럴 순 없어! 알룬도, 알룬도가 위험해!”


그렇게 절규하고 있는데, 감옥 안 귀퉁이에서 한 남자가 말을 건넸다.


“...여전히 시끄러운 아가씨로군.”


낯선 이의 목소리에 그녀는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어둠에 가려서 그런지 상대방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 비좁은 감옥 안에 자신 말고 다른 죄수가 있을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이곳에선 뭐라고 외쳐본들 다 헛수고야. 말이 통하는 건 갑옷이 아닌 관복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을 때지.”


“누구야, 당신!”


남자의 목소리는 약간 피로한 것 같았지만, 대체적으로 담담하고 자조적인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데루루피아는 혹시 죄수가 자신을 덮치는 게 아닐까 싶어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남자는 구석에 몸을 기대고 있을 뿐 움직임이 없었다. 그가 말했다.


“난 당신을 기억하고 있는데 당신은 아닌가 보군. 뭐, 당신은 워낙 생김새가 독특하니까. 데루루피아 아망초.”


“...뭐?!”


자신을 안다는 말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물론 자신의 인맥이 얕은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특수 감옥에 수감된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경계를 풀고 벽을 더듬으며 그 남자에게 접근했다. 어둠이 지배하는 곳이긴 해도 한 줄기 햇살이 있는지라, 눈이 익으면 그럭저럭 한 치 앞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데루루피아는 이내 감옥 구석에 두 발을 뻗은 채 반쯤 누워 있는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머리가 치렁하게 자란 데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얼굴을 뒤덮고 있었지만,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눈은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신의 생김새를 관찰하자, 그는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뭘 그리 쳐다보나? 원숭이 구경하는 것도 아니고.”


그제야 그녀는 남자의 정체를 확인하고 펄쩍 뛰었다. 너무 세월이 지나 알아보기 힘들 정도지만 그 날카로운 눈매와 딱딱한 말투는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남자의 얼굴을 더듬기 시작했다.


“...이봐, 법석 좀 떨지 말라니까...”


“나젠크루거? 정말 당신 맞아요?! 죽은 줄 알았는데!”


나젠크루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죽은 걸로 쳐. 어차피 이곳에서 나갈 일도 없으니까.”



***



알룬도는 광장 변두리에 놓인 벤치에 앉은 채 류트 현을 조율했다. 이미 몇 번이고 점검을 마쳐놓은 상태건만, 그는 또다시 현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늦는군...’


그는 점차 내려앉고 있는 태양을 말없이 응시했다. 벤치를 꿰차고 앉은 지도 어느덧 네 시간 째, 점점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데루루피아는 어떻게 된 걸까?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알룬도는 자신의 지난 과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유랑민으로서 부모를 따라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그의 부모는 서민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음유시인으로, 노래와 연주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부모님이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게 되자, 알룬도는 순식간에 고아가 되고 말았다.

물론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호신용으로 배운 무예가 눈에 띄어 이후 그는 ‘이리의 송곳니’라 불리는 폭동진압단체요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폭동진압이라고 해봤자 별 게 아니라, 그는 단장이 군중의 우두머리와 협상을 벌이는 동안 그의 신변을 보호하는 게 일과의 전부였다. 또 브리토리스 국민들은 비교적 정부에 순응하는 편이라, 폭동 자체가 빈번하게 발생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은 레이시가 단장이 되면서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단체의 명칭을 ‘안개송곳니 암살단’으로 개명했으며, 어디서 찾았는지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무인들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레이시가 조직을 1급 비밀 결사로 재편했을 때, 기존에 있던 요원 중 90퍼센트가 그곳을 떠났다.

재편 뒤 조직은 살인 집단으로 변모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조직에 남았던 알룬도는 레이시의 명령에 따라 다양한 첩보, 암살 임무를 수행했다.


-네가 그를 죽이면, 그 수백 배의 국민이 배를 채울 수 있다.


레이시가 그를 독려할 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하지만 임무를 거듭할수록 알룬도는 차츰 깨닫게 되었다. 살인은 그저 살인일 뿐이라고. 어떤 명분으로 포장하든, 자신은 그저 살인마일 뿐이라고.

이후 레이시의 목적 - 신의 아이를 전쟁에 이용하려는 -을 알게 되자 조직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커졌다. 자신은 그렇게 원대한 포부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 먹고, 하루 자고, 내일 끼니만 걱정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대륙통일 따위 그에겐 아무 의미도 없었다.

때문에 그는 도망쳤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쳐, 조용히 여생을 살리라 다짐했다. 만약 데루루피아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 바람은 온전히 이루어졌을 것이다.

제스터에게 쫓기는 도중 만난 푸른 머리의 아가씨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레이시가 누군지 알지도 못하면서, 신의 아이가 전쟁도구로 사용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글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알룬도는 그녀를 따라나섰다. 그녀를 따르면, 아니 레이시를 막으면 자신이 저지른 죄악이 사라질 거라 생각한 것이다.


‘난 정말 오래 살긴 글렀다.’


레이시를 배반할 생각을 하다니, 그리고 제스터나 제폰 같은 괴물들을 상대로 도망칠 생각을 하다니, 자신이 걸어온 여정을 되새기고 있자니 새삼 놀라웠다.


“어이, 이보시오.”


알룬도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중무장한 기사 둘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옛 생각에 취해 군인이 접근하는 것도 알아채지 못할 줄이야, 자신의 무신경함이 통탄스러웠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는 최대한 태연하게 말했다. 기사들은 갑작스런 출동에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국왕 폐하의 명으로 수도 내의 불순분자들을 색출하는 중이오. 죄송하지만, 신분증 좀 보여줄 수 있겠소?”


“국왕의...명령...?”


알룬도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뭔가 잘못된 것이다. 기사들이 황급히 수배서를 회수하고 다녀야 정상인 마당에 거수자를 조사하고 다닌다니, 일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판국이었다.

진위가 어찌 됐든 현재 리크나이츠 국민이 아닌 그가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헉!”


기사 하나가 류트 머리에 목덜미를 찍히고 그대로 쓰러졌다.


“뭐...뭐야?! 네 이놈!”


나머지 기사가 뒷걸음치며 물러섰으나 알룬도의 움직임은 그보다 훨씬 기민했다. 그는 류트를 상대방 얼굴에 던짐과 동시에, 자세를 낮추어 재빠르게 파고들었다. 날아간 류트는 순간적으로 기사의 시야를 가렸고, 알룬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시미터 자루로 그의 명치를 찔렀다. 기사는 외마디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힘없이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후우, 빌어먹을. 이제 어쩐다?”


은밀히 처리했으면 좋았겠지만 주위에 구경꾼이 꽤 있다는 게 문제였다. 기사들이 쓰러지자 광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여기저기서 병사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찾았다! 녀석이 데루루피아 아망초의 동료다!”


“저자다! 저자를 잡아라!”


‘젠장...’


아무래도 최악의 사태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알룬도는 그대로 땅을 박차 근처에 있던 집의 처마를 붙잡은 후, 지붕 위로 올라갔다. 역시 수십만 명이 살고 있는 도시인지라 건물들이 수 미터 간격으로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알룬도는 지붕 사이를 뛰어넘으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병사들의 고함이 들려왔지만 그것도 점차 멀어졌다. 갑옷을 입은 병사들은 알룬도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었고, 건물에 시야가 가려 금세 그의 위치를 놓치고 말았다.

알룬도는 지붕을 달리며 생각했다. 현재로서는 류이너스 교단으로 달아나는 것이 맞지만, 한편으로는 붙잡힌 데루루피아의 안위가 걱정이었다. 왕이 그녀를 처형하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사실인데, 이대로 혼자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또 그러자니 자신이 왕성을 돌파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그곳을 지키는 근위대는 그야말로 최정예의 병력일 테고...

이런저런 고민을 품은 채 건물을 뛰어넘을 즈음이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알룬도의 옆구리에 박혔고, 그는 착지와 동시에 바닥에 쓰러졌다.


“커억...!”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재차 화살이 날아와 팔에, 그리고 허벅지에 꽂혔다. 날카로운 통증이 전신을 휘감는 가운데 알룬도는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며 공격해온 적을 찾았다.

알룬도는 우측 건물 옥상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적은 의외로 얼굴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런데 궁수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는 넋을 잃지 않을 수 없었다.


“마체르담...당신이 어떻게?”


그곳에는 이칼롯에게 죽었을 게 분명한 마체르담이 반쯤 썩은 입 사이로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활시위를 당기는 중이었다.


“기...끼기긱...”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람의 계승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7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 +3 15.04.16 770 27 19쪽
146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10) +5 15.04.15 739 36 18쪽
145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9) +3 15.04.15 765 29 19쪽
144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8) +3 15.04.15 749 31 17쪽
143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7) +3 15.04.15 802 27 21쪽
142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6) +4 15.04.14 738 30 18쪽
141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5) +2 15.04.14 817 28 17쪽
140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4) +6 15.04.14 735 27 15쪽
139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3) +1 15.04.14 718 29 18쪽
138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2) +3 15.04.14 725 30 17쪽
137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1) +3 15.04.14 732 24 17쪽
136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完) +3 15.04.12 825 25 15쪽
135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5) +3 15.04.12 656 23 17쪽
134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4) +2 15.04.12 666 25 17쪽
133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3) +1 15.04.12 657 27 19쪽
»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2) +3 15.04.12 754 25 21쪽
131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1) +1 15.04.12 880 25 17쪽
130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11) +6 15.04.11 969 30 16쪽
129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10) +1 15.04.11 939 26 19쪽
128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9) +2 15.04.11 976 25 21쪽
127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8) +2 15.04.11 979 25 19쪽
126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7) +2 15.04.11 836 28 18쪽
125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6) +1 15.04.11 837 23 21쪽
124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5) +1 15.04.11 931 29 18쪽
123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4) +3 15.04.09 1,051 33 25쪽
122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3) +3 15.04.09 973 25 19쪽
121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2) +4 15.04.09 744 25 13쪽
120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1) +1 15.04.09 1,013 25 17쪽
119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6) +3 15.04.09 940 28 16쪽
118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5) +2 15.04.09 825 30 15쪽
117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4) +7 15.04.07 1,139 35 22쪽
116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3) +2 15.04.07 936 31 17쪽
115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2) +2 15.04.07 743 32 11쪽
114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1) +2 15.04.07 1,032 28 18쪽
11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4) +1 15.04.07 984 28 14쪽
11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3) +4 15.04.06 991 31 15쪽
11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2) +1 15.04.06 987 28 15쪽
11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1) +1 15.04.06 962 27 16쪽
109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0) +1 15.04.06 999 27 13쪽
108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9) +2 15.04.06 894 30 12쪽
107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8) +4 15.04.06 856 28 12쪽
106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7) +3 15.04.05 986 25 12쪽
105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6) +1 15.04.05 891 28 10쪽
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81 30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797 30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87 27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0 29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26 28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62 33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1 31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83 25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82 25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76 27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18 25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39 32 11쪽
92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88 28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40 26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39 29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74 31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62 34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41 33 13쪽
86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06 33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15 35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44 34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73 31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08 37 16쪽
81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78 33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15 36 14쪽
79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16 38 19쪽
7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35 33 18쪽
77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14 39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22 33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46 33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42 34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69 38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85 34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17 43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1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34 34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18 35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14 32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83 38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291 35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0 44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52 35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76 39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19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6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0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5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2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5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5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1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1 4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