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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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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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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57
글자수 :
2,844,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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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1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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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DUMMY

그가 갑작스럽게 인사를 해오자, 바로 앞에 있던 디리터가 엉거주춤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 네. 살기 좋은 마을이네요.”


“하지만 날씨가 너무 쾌청하다는 게 좀 걸리네요. 전 안개가 자욱한 날씨를 좋아합니다만, 그쪽 분은 어떠십니까? 안개 좋아하시는지?”


그는 싱글거리며 디리터에게 악수를 청했다. 디리터는 잠시 머뭇거린 후에 그의 악수를 받았다.


“아뇨, 안개는 별로....”


그 순간, 말하던 디리터의 입이 굳어졌다. 그저 평범한 여행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마주 잡은 손에서 엄청난 굳은살과 흉터가 느껴진 것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딱딱하기 배긴, 숙련된 궁수의 손.

그 남자는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그는 표정이 변하는 디리터를 보고는 천천히 손을 뺐다.


“안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시는군요. 전 지금부터 안개를 만들려고 하는데, 유감입니다.”


이칼롯이 디리터의 당황한 얼굴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음을 느끼고 앞으로 나왔다. 그는 그 여행자에게 위협적으로 말했다.


“당신,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그냥 어서 가던 길 가는 것이...”


그가 막 경고하고 있는데, 그 여행자가 손을 들어 이칼롯의 말을 끊었다. 그는 싱글거리며 품속을 뒤적거렸다.


“사냥꾼과 사냥감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사냥감은 사냥꾼이 자신을 노리는 동안에도, 전혀 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한다는 것이죠.”


이윽고 그가 꺼내 든 것은 자그마한 종잇조각이었다. 그냥 책에서 북 찢어온 것 같은 모양새였는데, 제리온이 그것을 보자마자 고함을 질렀다.


“스크롤! 어서 저자를 제압해!”


결코 이칼롯과 디리터의 반응이 느렸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검을 뽑으며 땅을 박차는 순간, 이미 그 남자의 시동어는 끝나있었다.


“헤비 미스트(Heavy mist)"


순식간에 주위가 안개로 뒤덮였다. 멀리 보이던 방앗간도, 방금 지나쳐온 식료품점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들 당황하여 사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어디를 봐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욱한 안개뿐이었다.

디리터는 부산하게 눈을 굴렸다. 사방에 깔린 안개가 어찌나 짙은지, 바로 옆에 있는 제리온도 흐릿하게 그 윤곽만 보일 정도였다. 그는 위협적으로 검을 휘둘러보았으나 속절없이 허공만 휘저을 뿐이었다.


“너! 뭐 하는 자식이야! 아케니온이냐?!”


그는 아무 데나 대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뜻밖에 안개 너머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아케니온이라니, 그들과 같이 온 건 사실입니다만, 저를 그 정도로밖에 안 봤다니 좀 아쉽군요.”


이칼롯이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재빨리 뛰어갔다. 하지만 달려간 곳에서 그의 모습을 찾을 순 없었다.


“큭...쥐새끼 같은 놈.”


그가 맥없이 안개만 휘젓고 있는데, 이번엔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당신들에게 매우 기대가 큽니다. 알룬도는 계속 도망만 다녀서 재미가 없었거든요.”


다시 이칼롯이 달려가 봤으나,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막 이 자가 자신들을 가지고 노나 싶어 부아가 나려 하는데, 멀리서 화살을 재는 소리가 들렸다. 청각이 발달한 디리터의 눈이 커졌다.


“자, 그럼 5발 정도는 버텨줬으면 좋겠군요.”


쉬이이이익!

일부러 명적을 단 듯, 화살은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방향을 감지한 디리터가 황급히 제리온을 밀쳤다. 안개를 뚫고 날아온 화살은 제리온이 있던 자리를 지나쳐 그대로 날아갔다.

제리온이 자신을 밀친 것에 대해 역정을 내려 하는데, 갑자기 화살이 날아간 방향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쿠콰쾅!


“우와악?!”


이미 쓰러져 있던 제리온은 둘째 치고, 디리터와 이칼롯이 폭압에 밀려 땅바닥을 뒹굴었다. 둘은 밭두렁을 한참 동안 구른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영문을 몰라하고 있는데, 멀리서 제리온의 외침이 들려왔다.


“버...버스트 애로우(Burst arrow)?! 이런 미친!!”


“호오, 마법에 조예가 있으신 분이군요. 그럼 더 재밌어지죠.”


다시 화살을 재는 소리가 들려왔다. 디리터가 땅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주워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냅다 던졌다. 그와 동시에 이칼롯이 다시 땅을 박차고 달려갔다. 여전히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어 소리 말고는 의지할 수단이 없었다. 막 밭두렁을 따라 올라가는데 다시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팅!

이칼롯조차 이번만큼은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일부러 검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화살이 기적처럼 검에 가로막힌 것이었다. 화살촉이 맥없이 땅에 떨어지자, 그 소리를 들은 디리터가 비명을 질렀다.


“우왁! 터진다! 엎드려어!”


이칼롯이 그 말을 듣고 그대로 몸을 날렸으나, 주위는 잠잠했다. 디리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안 터지네.”


“거스트 오브 윈드(Gust of wind)!"


이번엔 제리온쪽에서 시동어가 들려왔다. 이칼롯과 디리터가 시간을 끌어준 사이 그가 재빨리 마법을 시전한 것이었다.

그의 손끝에서부터 맹렬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러자 주위를 덮고 있던 안개가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기 시작했다. 곧 답답하던 시야가 확 트였다.

사위가 보이자 이칼롯은 제일 먼저 그 남자의 모습부터 찾았다. 그는 어느새 멀리 방앗간의 지붕까지 올라가 있었다. 그는 이미 활시위를 끝까지 당겨놓은 상태였다. 디리터를 노리고 있는 붉은색의 화살촉.

그가 활시위를 놓은 것과, 디리터가 반사적으로 몸을 굴린 것은 동시였다.

푸슈웅.

화살은 언젠가 데루루피아가 사용했던 라이트 애로우(Light arrow)와 비슷한 빛의 궤적을 남기며 땅바닥에 꽂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소름끼칠 정도로 속도가 빨라, 시위를 놓음과 동시에 땅에 박혀버렸다는 것이었다.

이칼롯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오랜 수련을 거친 그조차 화살의 움직임을 전혀 쫓지 못했다. 가까이서도 아니고,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본 것인데도 화살이 없어졌다 나타난 것처럼 느껴졌다. 저런 건 피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디리터가 냅다 몸을 굴리지 않았다면 화살은 이미 그의 정수리에 꽂혀 있을 터였다.

그 남자와의 거리는 대략 50미터 정도. 속사로 쏜다면 두세 발은 충분히 날릴 수 있는 거리였다.

이칼롯은 그대로 등을 돌렸다. 저런 화살을 두 발이나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숨어, 어서!! 저자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디리터가 즉시 몸을 일으켜 달리기 시작했다. 마침 길 한가운데 커다란 바위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바위 뒤로 모이라고 소리치려 하는데, 멀리 그 남자가 다시 시위를 당기는 것이 보였다. 입가에 히죽거리는 미소를 걸친 채. 노리는 것은 이칼롯의 목덜미였다. 디리터가 다급하게 외쳤다.


“이칼롯! 안 돼!!”


막 그 남자가 화살을 쏘려 하는데, 다시 제리온의 시동어가 들려왔다.


“매직 미사일(Magic missile)"


그 남자의 것만큼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세 개의 연녹색 구체가 방앗간 지붕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 남자가 급히 목표를 바꿔 구체 중 하나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구체 중 하나에 정확히 맞아, 구체는 불이 꺼진 것처럼 픽 사라져 버렸다. 나머지 구체 두 개가 접근하자, 그는 지붕 반대편으로 몸을 굴렀다. 곧 지붕에 쌓인 벽돌 몇 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다.

디리터가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제리온을 잡아끌며 말했다.


“전에는 장난감처럼 조종하더니 왜 지금은 못 맞추냐?”


“급하게 쏘느라 그랬다 자식아! 안 그래도 연달아 시전하느라 머리 아파 죽겠구만.”


그 남자가 마법을 피하는 사이, 일행은 무사히 바위 뒤로 숨었다. 하지만 일행은 이내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무사히 장애물 뒤로 숨은 것까진 좋았는데, 바위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일대는 일행이 모인 바위를 제외하고는 기다란 밭이 펼쳐져 있었다. 다른 몸을 숨길만 한 장소라고 해봤자 먼저 왔던 식료품점이 전부였는데, 이마저도 백 보 가량 떨어져 있어 뛰어가다 화살 맞기 딱 좋았다.

일행은 두 평 남짓한 공간에 보기 좋게 고립되어 버렸다. 디리터가 바위에 몸을 찰싹 붙이며 말했다.


“이젠 어쩌지? 숨은 것까진 좋은데, 이래선 그 자식 모습도 안 보인다고.”


이칼롯이 바위 너머로 검을 슬쩍 내밀어 보았다. 그가 검을 내민 것과, 화살이 검신을 퉁기고 떨어진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그는 부르르 떨리는 검을 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검을 내밀 걸 예측한 게 아니라면, 시위를 놓음과 동시에 표적지에 꽂힌 거로군. 이런 건 막을 수 없어.”


제리온이 이를 갈며 말했다.


“엑셀러레이트 애로우(Accelerate arrow)야. 사람의 눈으로 좇는 건 무리지. 개자식, 별걸 다 쓰네.”


“마법이 걸린 화살이라는 건가. 골치 아프게 됐는데.”


셋은 늘러 붙은 밥풀처럼 바위에 최대한 몸을 밀착시켰다. 그 남자가 여전히 자신들을 겨누고 있을 걸 생각하니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섰다. 디리터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으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제엔장, 그럼 이제...”


그가 막 역정을 내고 있는데, 다시 바위 반대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쿠구구궁!


“어어이쿠!!”


집채만 한 바위가 폭발에 못 이겨 부르르 몸을 떨었다. 몸을 착 붙이고 있던 일행은 그 충격으로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넘어진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후다닥 일어나 다시 바위에 붙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멀리서 그 남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흐음, 역시 바위를 부수긴 무리군요. 앞으로 참고해야겠습니다.”


마치 재미있는 실험이라도 하는 것 같은 장난기 어린 말투였다. 그 말을 들은 제리온이 고개를 쳐들고 소리쳤다.


“야 이 개자식아! 너 안개송곳니지! 이 사지를 찢어 죽일 새끼!”


곧이어 친절한 대답이 들려왔다.


“예, 안개송곳니입니다. 하지만 그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소속이 어디든, 결국은 죽이는 자와 죽는 자로 정의될 뿐이죠. 여하튼, 다들 제 예상을 뛰어넘어주시는군요. 지금까지 여섯 발을 쐈으니 말이죠. 알룬도를 버리고 여기까지 온 보람이 이있-군요.”


그는 말을 맺으며 목소리를 길게 늘였다. 분명 활시위를 힘껏 잡아당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시 명적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이칼롯은 재빨리 소리를 미루어 화살의 궤도를 예측했다. 화살은 조금 전처럼 직선이 아니라, 높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바위를 지나쳐 일행의 정수리를 노리는 것이 분명했다.


“위에서 온다! 머리 보호하고, 몸 더 밀착시켜!!”


일행은 각자 검이며 채소 바구니를 들어 머리를 보호하는 한편, 더욱더 바위에 몸을 붙였다. 잠시 후, 붉은색 화살 하나가 일행이 있는 자리에서 불과 2미터 정도밖에 안 떨어진 자리에 꽂혔다. 땅에 꽂힌 화살을 보자 디리터의 눈이 다시금 커졌다.


“어? 어?! 터진다?!”


그가 다시 몸을 날리려 하자 제리온이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안 터져, 병신아! 마법을 그렇게 순식간에 재시전할 수는 없어. 저건 그냥 화살이야.”


“어...그냐? 거 참 헷갈리게 만드네.”


막 디리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다시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이번엔 각도가 모자랐나 보네요. 이거 참, 골치 아프게 됐습니다.”


그의 곤란한 듯한 말투에 제리온이 다시금 분통을 터뜨렸다.


“어우, 저 자식 말하는 거 진짜 밉상이네. 거시기를 아주 짓이겨버릴 테다.”


그가 흥분하여 온갖 비속어를 난무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칼롯이 자못 심각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조용히 해봐. 디리터, 저 화살 깃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디리터가 땅바닥에 꽂힌 화살을 응시했다. 화살촉만큼이나 붉게 물들어 있는 화살 깃. 피에 담갔다 뺀 것 같은 진홍색의 깃털이었다. 디리터는 그 화살 깃을 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붉은색 깃이네. 저게 뭐 어쨌다고? 붉은 색깔 새가 희귀하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웬...”


이칼롯은 고개를 저었다. 검을 쥔 그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아니, 저 깃과 똑같은 것이 달린 화살, 분명히 본 기억이 나. 에비앙의 머리에 꽂혀 있던 화살 깃의 색깔을 기억하나?”


“어....?!”


디리터도, 제리온도 한 순간 멍한 표정이 되었다. 모두의 머릿속으로 에비앙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이칼롯만큼이나 말수가 적고, 나이가 들어 머리가 점점 빠지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사람. 검술 실력으로 따지면 길드에서 람카디스 다음가던 강자였던 사람.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을 안주 삼아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 관자놀이에 화살을 정통으로 맞고, 눈조차 감지 못한 채 절명한 사람.

그 증오스런 화살의 깃은 무슨 색이었더라?

기억은 용천수처럼 메마른 땅을 뚫고 치솟아 올랐다.

붉은색이었다. 맞아, 붉은색이 확실해. 이칼롯이 그렇게 말해서가 아니야. 확실히 기억이 나. 붉은색이었어. 피에 적신 것 같은 새빨간.


“이 개새끼야!!!”


디리터가 이성을 잃고 뛰쳐나가려 하자, 이칼롯이 가까스로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이칼롯은 그를 바닥에 쓰러뜨린 채 목전에 대고 소리쳤다.


“진정해! 여기까지 와서 개죽음당할 셈이냐?”


하지만 디리터는 이미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있었다. 그는 분노로 목에 핏발까지 서서는, 그 남자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네놈이었냐! 에비앙 아저씨를 죽인 게!! 너였냐, 이 씨발 놈아!!”


그의 악에 받친 괴성에 그 남자도 자못 놀란 모양이었다. 그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어휴, 이건 또 예상외의 반응이군요. 그런데 에비앙이 누굽니까? 제가 직업상 처리해야 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지라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해서요.”


“로샤단을 습격한 게 너였잖아, 이 개자식아!! 안개송곳니이!!!”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아마 그때의 상황을 회상하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그는 재밌는 추억을 떠올린 양 피식 거리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당신들도 로샤단이었군요. 기억납니다. 작전상 제가 죽인 건 단 한 명뿐이었지만, 그 한 명이 저를 참으로 즐겁게 해주었지요. 그를 잡기 위해 제 화살을 무려 8발이나 쏘았답니다. 믿어지지 않더군요. 그 아비규환 속에서 제 공격을 그리 손쉽게 피하다니.”


“이 새끼가!”


“에스터크가 방어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무기라는 게 그에겐 불행이었지요. 뭐, 그것도 무운이랄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일행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로샤단에서 에스터크를 쓰는 사람은 에비앙뿐이었다. 이칼롯의 추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그 남자가 에비앙을 죽였다고 순순히 털어놓자, 오히려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디리터도 언제 발광했냐는 것처럼 아무 말도 없었다. 하지만, 일행의 무표정은 무심(無心)의 무표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호한 결단을 내린 자의 표정. 가슴은 불타올랐지만, 반대로 머리는 차갑게 식어갔다.

셋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도 눈빛만으로 서로의 의사를 확인했다.

이런 바위조각 밑에 움츠리고 있을 수는 없다. 저 남자를, 에비앙의 원수를 잡아 그 목을 따야 한다. 그리고 그러려면 일단 저 남자의 광속의 화살부터 봉쇄할 필요가 있었다.

이칼롯과 디리터의 눈은 자연히 마법사인 제리온에게 향했다. 제리온은 한숨을 쉬며 검지를 들어 올렸다.


“기회는 단 한 번이야. 난 보호계 학파가 아니니까, 얼마나 지속될지도 알 수 없어. 그 안에 못 잡으면 그냥 뒈져버려.”


“뭘 할 건데?”


제리온이 옷소매를 걷어붙이며 말했다.


“화살을 막는 방어막을 만들어주지.”


“최고네. 어서 나에게 걸어줘.”


“좋아, 간-다아!”


그는 천천히 수인을 맺고는, 이내 캐스팅에 들어갔다. 경전이라도 암송하는 듯한 엄숙한 목소리에 일행은 숨을 죽였다. 그는 평소 공격마법을 행할 때와는 다른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물론 그것은 그가 다른 학파의 마법을 시전하느라 평소엔 생략하던 시동식을 행하는 것이었지만, 마법을 모르는 디리터의 눈엔 그저 대단한 기술을 사용하는구나- 정도로만 보일 뿐이었다.

신들린 듯 주문을 외던 제리온이 이윽고 눈을 뜨며 외쳤다.


“프로텍트 프롬 노멀 미사일(Protect from normal missile)!"


그가 시동어를 외치자, 반투명한 막이 디리터를 둘러쌌다. 디리터가 그 광경을 보고 흠칫 놀랐으나, 이내 한쪽 눈을 찌푸렸다. 거창하게 주문을 외운 것치고는 이펙트가 너무 조잡하기 때문이었다.


“이게 화살을 막아준다고? 돌팔매질도 못 막을 거 같은데.”


막 마법을 마친 터라 기진맥진해있던 제리온이 그 말을 듣고 욕을 퍼부었다.


“이 자식은 해줘도 지랄이야. 믿어라 새끼야!”


물론 제리온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디리터는 투핸드소드의 손잡이를 부여잡고 그대로 땅을 박차며 달려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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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3) +4 15.04.06 991 31 15쪽
11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2) +1 15.04.06 987 28 15쪽
11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1) +1 15.04.06 962 27 16쪽
109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0) +1 15.04.06 1,000 27 13쪽
108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9) +2 15.04.06 895 30 12쪽
107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8) +4 15.04.06 856 28 12쪽
106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7) +3 15.04.05 986 25 12쪽
105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6) +1 15.04.05 891 28 10쪽
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82 30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797 30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88 27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1 29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26 28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63 33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1 31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84 25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83 25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76 27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18 25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40 32 11쪽
92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88 28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40 26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39 29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74 31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63 34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42 33 13쪽
86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06 33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15 35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45 34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74 31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08 37 16쪽
»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79 33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15 36 14쪽
79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17 38 19쪽
7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35 33 18쪽
77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15 39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22 33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47 33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43 34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70 38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86 34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17 43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1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35 34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19 35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15 32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84 38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292 35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0 44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53 35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76 39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20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7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1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6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3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6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6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2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2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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