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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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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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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3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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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DUMMY

루도 일행이 류이덴사에 도착한 지도 어느덧 닷새가 되어가고 있었다. 교도에 오고난 후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뾰족한 방안을 내지 못했다. 람카디스의 복수를 부르짖으며 여행을 떠나왔지만, 곧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만용이었음이 드러났다.

베른헬트 주교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안개송곳니 암살단은 광휘의 결사뿐만 아니라 수호기사단까지 궤멸시킬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신생 로샤단은 고작 다섯 명, 안개송곳니가 아니라 그들 휘하에 있는 아케니온과 마주치고도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루도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사실 서둘러 류이덴사에 온 것도 류이너스 교단에 몸을 의탁하기 위한 이칼롯의 계획이었다.

물론 그 류이너스 교단조차 경비 병력이 모자라 2교대를 뛰고 있는 상황이 불안하긴 했지만, 현재로선 이곳을 제외하고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소가 없었다. 지금껏 경험했던 것으로 보아 도시를 떠나는 순간 적들의 습격을 받아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갈팡질팡하는 일행에게 베른헬트 주교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는 루도에게 그가 가린워드의 생존자라는 것을 이유로 데루루피아와 만나보기를 청했다. 니암 외 다른 신의 아이들의 소재는 여전히 불투명했고, 그런 면에서 교단과 안개송곳니의 위치는 동등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만약 루도가 펠아람의 아이가 있는 곳을 알아낸다면 그것은 수세에 몰린 교단에게 있어 뜻밖의 호재로 작용할 것이었다.

딱히 다음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은 데다 그녀의 얼굴을 본지도 오래 됐으므로 일행은 흔쾌히 그 제의를 수락했다. 그녀는 현재 다른 신의 아이를 찾아 여행 중이라고 했다. 베른헬트 주교가 그녀에게 기별을 보냈지만, 답신이 오려면 며칠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결국 일행은 데루루피아의 답장도 기다릴 겸, 숙식도 해결할 겸 신전에 머무르게 되었다.


“날씨 좋네. 길드 뒤뜰엔 지금쯤 봄나물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을 텐데.”


“그러게. 우리 집은 어떻게 됐을까? 분명 영지관리부에서 나와 잔해를 철거해갔겠지? 보기에 흉하니까...”


“글쎄다...어쨌든 레인저는 필요하니까 다시 건물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지.”


두 소년은 복도 가장자리에 놓인 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잡담을 나누는 중이었다.

신전에 머물게 되자 무료함을 달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류이덴사 자체가 거대한 신전이나 다름없는 곳이어서, 재미난 오락거리나 유흥가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았다. 그렇다고 교외로 나가기엔 신변상의 문제가 너무 컸다. 검술을 연마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지만, 낮에는 사제들의 이목이 많아 그러기도 껄끄러웠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나자, 정오가 지나면 복도 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는 것이 일행의 관례가 되어버렸다. 루도는 그중에서도 특히 집무실 맞은 편에 있는 장의자를 선호했는데, 그 이유는 생텀가드(Sanctum Guard) 루치페리아 때문이었다.


“진짜 잘 만들었다. 당장 살아 움직인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아.”


“응? 무슨 소리야. 평범한 석고상이 아니라고 주교님께서 말씀하셨잖아. 성언전에는 악마와 싸웠다고 하던데.”


“아, 그랬지. 만날 깜박깜박 해. 근데, 저게, 좀, 솔직히 그냥 동상이잖아?”


루도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마리네가 베른헬트의 말을 인용하긴 했지만, 루도의 눈에는 루치페리아가 석고상 이상의 존재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그녀는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이었지만, 일반인의 눈에는 그저 잘 만든 조각일 뿐이었다.

금빛 햇살이 창문을 타고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따스한 봄기운은 두 소년을 나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처음에는 허리를 세운 정자세였지만 둘의 어깨가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눈꺼풀도 조금씩 닫혀갔다. 그것은 피로라기보다는 햇살에 몸이 녹아버린, 그런 기분 좋은 졸음이었다.

그렇게 벽에 등을 기댄 채 졸고 있을 즈음이었다. 루도는 복도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당찬 발자국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발소리의 주인공이 디리터임을 단박에 알아챘다.


“아이구, 팔자 좋으시네들. 엊그제까지만 해도 목숨이 간당간당하던 녀석들 모습이 아닌데? 니들이 무슨 늙은이냐? 햇볕 쬐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게.”


디리터는 평소와 달리 커다란 화폭을 옆구리에 낀 채였다. 그는 마리네의 옆에 털썩 주저앉고는 그림 그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데생을 하는 모습은 이전에도 몇 번 봤었지만, 이렇게 물감이나 붓을 가지고 정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마리네가 신기한 듯 바라보며 물었다.


“우와, 그림 그릴 거야? 채색도구들은 어디서 구했어?”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물감은 레밀리오 사제님에게 부탁하니까 빌려주시던데. 뭐 비싼 거니까 아껴 쓰긴 해야겠지.”


“에리 누나 건은 이야기했어?”


루도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에레이시아에 관한 것은 며칠간 디리터의 골치를 썩이던 일이었다. 역시 돈에 관한 이야기는 꺼려지는 게 정상이라, 신전에 머문 후에도 일행은 그녀에 관한 사안을 주저하던 터였다. 그녀는 어서 해결책을 내놓으라며 성화를 부렸지만, 또 막상 사제들과 얼굴을 마주하면 금세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곤 했다. 예전에 이야기 했던 대로, 그녀는 공권력에 대해 어느정도 노이로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문제를 언제까지고 묵혀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논점은 누가 이야기를 꺼내느냐는 것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디리터가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의견이 몰아졌다. 그녀가 여정에 합류한 후 늘상 그와 말을 함께 탔었고, 또 그래서 제일 친하다는 것이 이유로 꼽혔다.

그렇게 닷새간 전전긍긍하던 그였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싱글거리며 홀가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젠장, 얘기했다 드디어. 이 쉬운 걸 왜 계속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지 몰라. 한 건 해결하니까 속이 다 후련하네.”


이야기하는 모양새로 봐선 잘 풀린 모양이었다. 디리터가 맡긴 했지만 그녀에 관한 문제는 다른 일행들도 염려하던 차였기 때문에, 루도와 마리네는 다행스럽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돈 준대?”


“준대. 우리 길드와의 인연을 생각해서 그 정도는 해주겠다고 하시더라. 근데 지금 신전에 현금이 없어서, 일단 어음을 써주겠다고 하시더라고. 좀 찝찝하긴 하지만, 뭐 그 정도로도 감지덕지지.”


“다행이네. 에리 누나 집 문제가 해결돼서.”


디리터가 콧잔등을 긁으며 웃었다. 키들거리는 표정을 보아 방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온 것이 분명했다.


“아주 좋아죽을라고 하더라. 따지고 보면 본전 찾은 거나 다름없는데 말이야. 그 계집애도 의외로 단순해.”


“하아, 이제 용무 끝났으니 에리 누나랑도 작별이네. 그래도 요 며칠 간 정이 들었는데.”


“뭐 어쩔 수 없지. 가는 길이 다른데. 그런데 내가 펜을 어디 뒀더라?”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펜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펜은 그에게 없었고, 한참 소동을 벌인 뒤에야 의자 밑에서 나왔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태양이 점점 기울어,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이제 루치페리아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창을 세운 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디리터는 화폭에 그녀의 윤곽을 슥슥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켜보던 마리네가 화들짝 놀라 말했다.


“루치페리아를 그리려고?”


“응? 뭐 문제 있냐? 니들이 잘 모르는 모양인데, 저렇게 완벽한 조형물 찾기가 쉬운 게 아니라고.”


“아니...그게 아니라, 루치페리아는 생텀가드잖아. 뭔가 허락을 받는 게 낫지 않을까?”


“하아아?”


루도와 디리터가 동시에 눈썹을 찌푸렸다. 마리네가 어렸을 때부터 미신을 잘 믿긴 했지만, 그래도 석고상에게 허락을 받으라니?

디리터가 마리네의 미간을 펜대로 톡톡 두드렸다. 그는 마리네를 철없는 어린아이마냥 쳐다보고 있었다.


“네 신앙심을 모르는 건 아니다만, 대체 무슨 수로 허락을 받냐? 허락이라는 게 상대방의 답변이 있어야 성립되는 거잖아.”


루도와 디리터는 마리네의 말을 애들 장난처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마리네는 막무가내였다.


“아니, 이건 성의의 문제야. 옛날에 에리안델이 해준 말 기억 안 나? 중요한 건 마음이지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야.”


“.....”


그가 하도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둘도 그 이상 빈정을 놓진 않았다.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마리네는 강경한 눈빛으로 물러설 뜻이 없음을 내비쳤고, 루도와 디리터는 난감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디리터가 두 손을 들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래. 네 말이 맞다. 저렇게 아름다운 석고상을 그리는 것도 영광이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하리? 큰절이라고 해야 하나?”


“다들 성언신화에 대해 들었잖아? 모든 것은 신화가 아니라 실재라고. 그러니까 좀 더 겸허한 마음으로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해.”


여전히 마리네의 의견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었지만, 루도와 디리터는 못 이긴 척 자세를 바르게 잡았다. 잠시 동안 생텀가드에 대한 짧은 묵념이 이어지고, 마리네가 일행을 대표하여 석고상을 향해 말했다.


“안녕하세요, 루치페리아님. 저는 마리네 캄블러라고 합니다. 루치페리아님 앞에서 언쟁을 벌인 것을 사과드릴게요. 부디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제 친구 한 명이 루치페리아님을 그려보고 싶다는데, 허락해주실 수 있나요?”


석고상을 향한 그의 태도는 더할 수 없을 만큼 공손했다. 마리네가 말을 맺고 나자 복도엔 무거운 적막만이 감돌았다. 창밖으로 참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막 루도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세 명의 머릿속으로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론 허락합니다, 예의바른 소년이여.


“우와아아악!!”


“에에에엑?!!”


“우왓!”


루도와 디리터는 고사하고, 직접 말을 꺼낸 마리네조차도 소스라치게 놀라 법석을 떨었다. 디리터는 의자에서 떨어져 물감 위를 뒹굴었고, 루도는 석고상에서 달아나 벽에 몸을 밀착시켰다. 마리네는 얼떨떨한 얼굴이었지만, 금세 환하게 미소지었다.


“이거 봐! 루치페리아님이 대답해주셨어! 무엇이든 진심으로 대하면 된다니까!”


한동안 마리네의 자화자찬이 이어진 후, 셋은 다소곳이 자리 잡고 루치페리아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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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53 35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76 39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20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7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1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5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3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6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5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2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2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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