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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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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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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4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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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DUMMY

셋은 동시에 대답했다.


“제르칸트가 무사한지 궁금하니까요.”


“제르칸트가 맡은 임무는 무엇입니까?”


“에리안델이 선대(先代) 루프리모의 아이니까.”


차례대로 루도, 이칼롯, 제리온의 순이었다. 의미는 달라도 루도와 이칼롯은 어느 정도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제리온의 초점은 완전히 에리안델에게로 쏠려 있었다. 그의 대답에 루도가 눈살을 찌푸렸다.


“와, 너무해. 제르칸트가 걱정되지도 않아? 피도 눈물도 없네.”


“아 시끄러! 그 아저씨가 언제 나한테 술 사준 적 있냐? 내 몸 챙기기도 바쁜 마당에.”


제리온은 그의 투정을 일축해버리고 나서 베른헬트에게 물었다.


“제가 궁금한 건 이거입죠. 현(現) 루프리모는 니암, 전(前) 루프리모는 에리안델. 뭐 에리안델은 죽긴 했지만, 영혼은 남아 있으니 넘어가고. 이게 중요한 건데, 에리안델이 루프리모의 권능을 아직도 가지고 있냐는 것.”


에리안델의 능력. 제르칸트와 함께 있는 것도 그렇고, 그녀가 류이너스 교단 쪽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녀에게 아직 루프리모의 권능이 남아있다고 한다면, 이는 안개송곳니를 막는 데에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베른헬트는 고개를 저었다.


“권능은 수정에게서 나오는 것. 수정이 선택한 것은 니암일세. 지금 루프리모의 아이는 니암이지, 크류네님이 아닐세. 크류네님이 클레릭(Cleric)으로서의 능력이 뛰어난 것은 맞지만, 신의 아이에 필적할 수준은 아니라네. 물론 그분이 지닌 해박한 지식과 경험이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네. 하지만 자네가 말하는 ‘물리적인 힘’은 없다고 생각하게나.”


“으으음...”


그는 낮게 신음을 흘렸다. 그것은 제르칸트의 검이 좀 더 쓸 만했다면 일이 쉽게 풀어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었다.

베른헬트는 이번에는 이칼롯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르비안 군의 질문은...솔직히 놀랐네. 자네는 항상 문제의 핵심을 파고드는군. 하아...전에 레밀리오 사제가 얘기했었지만, 우리에겐 더 이상 안개송곳니를 막을 병력이 남아있지 않다네. 남은 방법이라곤 신의 아이를 공론화시켜 국가적인 지원을 받는 것뿐이야. 하지만 그랬다간...말했듯이 각성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네.”


그는 눈을 감으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 그의 눈가에 그림자가 떠나지 않는 것을 이해할 만도 했다.

루도가 조심스럽게 사과를 베어 물며 말했다.


“왕실기사단은 어떻죠? 그쪽도 신의 아이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던데.”


그렇게 말을 꺼냈지만, 사실 루도는 왕실기사단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저 케이달이 왕실기사단 소속이라는 점과, 니암이 폭주했을 때 람카디스를 도왔다는 점으로 미루어 왠지 그렇지 않을까 하고 추측한 것이었다.

하지만 베른헬트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왕실기사단은 공인된 조직이지. 수도를 지켜야 할 기사들이 공공연히 자리를 비운다면 어찌 의심을 받지 않겠는가? 그들은 로샤단과는 달리 너무 눈에 띈다네.”


잠시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기 때문에 그는 헛기침을 하여 화제를 원래대로 돌렸다.


“지킬 수 없다면 아무도 모르게 숨겨야겠지. 그런데 우리에게 은폐해야 할 것은 니암뿐만이 아니라네. ‘아루의 수정’ - 이 또한 결코 빼앗길 수 없는 비보. 우리가 보관하고 있던 건 루프리모와 펠아람, 두 개였지.”


“제르칸트에게 수정을 맡겼군요.”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서 싸울 수 없다면 도망쳐야 하고, 도망칠 수 없다면 숨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항상 혼자 움직이는 제르칸트는 이 일을 맡기는 데 제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안개송곳니와 내통한다면? 그 문제는 그의 검이 자연스럽게 해결해준다. 선대 루프리모의 아이가 선택한 남자다. 그런 그가 안개송곳니와 결탁했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베른헬트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제르칸트는 내가 가장 신뢰하는 사내라네. 그의 올곧음은 크류네님이 증명해주고 있지. 그리고 클로람군, 그는 무사하니 걱정하지 말게. 지금은 오히려 자네의 안위를 신경 써야 할 때라네.”


“그가 어디 있는지는 알려주실 수 없나요?”


루도의 질문에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루도는 정말 그의 안부가 걱정되어 물어본 거였고, 베른헬트 또한 그의 순수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듣는 사람에 따라 수정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느껴질 수도 있었다. 실제로 이칼롯과 제리온은 루도의 질문에 당혹스러워했다.

베른헬트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알려줄 수 없네. 미안하네. 하지만 자네들도 니암의 거처를 숨기고 있으니, 이걸로 타협한 셈 치세.”


“윽...”


제리온의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그 이칼롯조차 너무 놀라 포커페이스가 무너질 뻔했다. 베른헬트 주교는 일행이 니암의 정보를 숨기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 채고 있었다. 그가 이 사실을 알아낸 건 첫날 니암에 대해 얘기할 때였지만, 일행으로선 어째서 들킨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너무나 정곡을 찔린 탓에 일행은 부정하지도, 그렇다고 잡아떼지도 못했다. 눈앞의 노인을 속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느껴졌다. 그는 아루의 수정이 어디 있는지를, 그리고 일행은 니암이 어디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둘은 지금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마음가짐을 착실히 지켜나가는 중이었다. 그가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이제는 오히려 내가 내통자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네.’라고 말했듯이, 외부의 적만큼이나 내부의 적도 큰 위협이었다.

하지만 비밀을 들켰는데도 루도는 베른헬트가 조금 전보다 더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의중을 드러냄으로써 약간의 신용을 산 것이었다. 루도가 계면쩍게 웃으며 말했다.


“속여서 죄송해요. 하지만 니암을 걱정하는 마음에 그런 거니까...”


“허허허, 기특하구먼. 난 오히려 스스로가 부끄러워 견딜 수 없는데 말이야. 성직에 있다는 사람이 이리도 믿음을 주지 못하다니, 정말 통탄스럽다네. 자네들이 다시 이곳에 돌아온다면...그때는 서로가 좀 더 솔직해져 보도록 하세나.”


셋은 베른헬트에게 인사한 후,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확실히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지금은 제르칸트가 무사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웠다. 이제 달도 점차 기울어져 가는 시간이었다. 내일 출발에 늦잠 잘 수도 있다는 생각에 루도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지날 때 루치페리아의 뚫어지는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그저 기분 탓이라고 치부했다. 그녀는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석고상은 확실히, 눈동자를 굴려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


흩날리는 꽃잎, 상쾌하다 못해 숨 막힐 정도로 공기가 가득 찬 능선. 또 그 꿈이었다. 꿈속에서 왜 난 항상 델키아에 있는 걸까? 잊었다고, 떠나보내겠다고 그렇게 다짐했을 텐데...

도시를 내려다보는 그 능선에는, 봉분이 수십여 개 튀어나와 있었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든 무덤들. 람카디스의 무덤, 카토르의 무덤, 가크스의 무덤, 돌크의 무덤....

난 잿더미만 남은 길드 건물을 등진 채 무덤들이 모인 쪽으로 서서히 걸어갔다. 어째서인지 발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몽환적인 감각이 내 이성을 지배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걸어가는 건지, 떠다니는 모를 정도로.

무덤가를 둘러보던 중이었다. 나는 무덤 사이에 ‘그’가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람이 죽은 후로 며칠이나 지났을까, 하지만 그의 오열은 멈추지 않는다. 흘러내린 피눈물은 이제 문신처럼 양 볼에 말라붙어 있다.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소년. 나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린 소년. 그는....누구지?


“모두 죽었어. 로샤단이 없는 델키아따위, 아무런 가치도 없어. 난 이 도시를 떠날 거야.”


그는 여전히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황으로 보아 들리지 않는 것이리라. 나는 그와 나 사이에 벽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외쳐도 그에게는 전달되지 않고, 그가 아무리 목 놓아 울어도 내겐 침묵만이 돌아올 뿐이다.

난 멀찌감치 보이는 델키아의 성곽으로 눈을 돌렸다. 람이 죽었기 때문인지 도시 자체가 죽어버린 것처럼 생기가 없었다. 난 다시 그에게 말했다. 결코 들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떠나자. 람이 하려고 했던 것, 람이 지키려 했던 것, 그걸 우리가 이어받는 거야. 그래. 반드시 해낼 거야. 우리 길드를 습격한 자식들에게, 멋지게 한 방 먹여주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난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그가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에 안달이 났다. 그래서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의 입 모양이 움직이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다. 생각대로 그는 무언가를 열심히 중얼대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람의 묘비에 못박혀 있었다.


-너무해....너무해...너무해....


그는 ‘너무해’라는 말만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그 의미를 잘 알고 있기에,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탄해도 별수 없는 일이었다. 람은 이미 죽었으니까.

그러다가 나는 갑자기 소름끼칠 정도의 오한이 들어 벌떡 일어났다. 그 엄청난 존재감, 언젠가 덤불 속에서 날 바라보던 늑대 눈동자와 마주쳤을 때 같은, 심장이 멎어버릴 정도의 공포.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릎을 모아 앉은 자세 그대로였다. 고개는 약간 내리깐 채, 시선은 람의 묘비를 향한 채. 하지만 한 가지 변화가 있었다. 그의 뺨을 타고 흐르던 핏방울이, 점점 불씨가 되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놀라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불길은 이제 그의 눈가를 중심으로 그 세력을 키워가는 중이었다.


“이...게 무슨?”


그렇게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문득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그의 입 모양. 무언가를 되뇌는 그의 입. 잘못 봤을 리가 없다. 분명히, 분명히 달라졌다. 난 들이박듯이 그의 입가로 눈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것을 꼼꼼히 분석했다.

예상했던 대로, 그의 중얼거림은 더 이상 「너무 해」가 아니었다.


-용서 못해...용서 못해...용서 못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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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20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7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1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6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3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6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6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2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2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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