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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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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5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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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
12쪽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DUMMY

“이 돌담길...이렇게 좁았었나? 기억하던 것과는 약간 다르네.”


루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되뇌었을 기억. 잊고 싶었지만 잊을 수 없었고, 결국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만든 지긋지긋한 악몽. 루도는 그토록 자신을 옭아매던, 그 가린워드 마을 한가운데를 걷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고부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행은 루도를 따르기 시작했다. 이 장소가 그에게 주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알기에 다들 그의 태도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었다. 질문도, 대답도 없이 일행은 마을 변두리에 난 돌담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여기 기억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 이정표 아래서 한참을 서성거렸거든. 저쪽에 복숭아 과수원이 있었지. 처음 보는 거라 무지 신기했었는데.”


루도는 손을 들어 해가 지는 서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복숭아나무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은 없네.”


그가 가리킨 곳은 목초지로 쓰는 듯,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울타리 너머로 염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 보였다. 논두렁을 가로지르며 콧노래를 부르는 농부도 있었다. 가린워드 마을은 어느 곳에서나 볼법한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다.


“정말 이곳에서 그런 사건이 일어났단 말이야?”


디리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가린워드 사건. 한 마을의 주민들이 모조리 실종되어버린 전대미문의 참사. 신기한 것은, 건물이며 자재, 식료품 등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사실이었다. 실종된 사람들이 입고 있던 옷가지도 길거리며 집 안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변두리 사람들은 악마가 그들을 붙잡아간 거라며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 사건이 펠아람의 아이에 의해 일어났다는 진실은 철저히 은폐되었다.

류이너스 교단은 가린워드 사건을 산적 떼의 소행으로 조작하는 한편, 로샤단을 보내 마을을 조사하도록 했다. 그곳에서 람카디스가 발견한 것은 검상을 입은 채 서서히 죽어가던 꼬마였다.

루도 옆구리에 난 검상은 1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는 흉터를 만지작거리며 걸어갔다. 누구한테 당한 건지, 왜 베인 건지도 알 수 없는 상처.


“아, 아직도 있구나. 저 시계탑. 다시 보니까 되게 초라하네.”


마을 광장에 도착한 루도는 정면에 보이는 시계탑을 응시했다. 시계탑이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고, 판자를 덧대어 만든 단상 위에 시계를 올려놓은 것뿐이었다. 높이도 2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아, 솜씨 좋은 시계공이 본다면 코웃음을 칠 정도였다.


“너무 거대해서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지...”


째깍. 시계의 분침이 한 칸 전진했다. 루도는 시계탑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시계 침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다소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다시 분침이 한 칸 전진했다. 째깍.

그러자 루도는 태엽이 돌려진 장난감처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시계탑 맞은편에서 우측으로, 그리고 제분소를 지나 다시 우측으로. 그는 힘이 풀린 것처럼, 혹은 다른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골목길을 누볐다. 그의 걸음걸이는 평소와 달리 마치 어린 아이가 걷는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뒤뚱거리며 걷는 그를 보며 마리네는 그가 어릴 적의 기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루도의 행진은 계속되었다. 오른손에는 자신을 이끌던 모친의 손대신 말고삐를 쥐고, 왼손에는 람카디스에게 받은 칼자루를 쥔 채.

그러다 갑자기 루도의 걸음이 멈춰졌다. 뒤따르던 일행은 혹시 그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싶어 가슴 졸였다. 그가 우뚝 선 채 말이 없자 뒤에 있던 마리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 일단 뭐 좀 먹으러 가는 게...”


“안 나는데.”


“응?”


마리네는 그의 뚱딴지같은 대답에 어리둥절해했다. 루도는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등을 크게 젖히며 기지개를 켰다.


“으으으읏차아아아!”


“...미친 거 같은데?”


“거 봐라. 내 이래서 말리자고 했잖아.”


디리터와 제리온은 「기억의 폭주로 인한 인격 장애」라는 주제를 가지고 진지한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루도는 그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는 어느새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기억이 나지 않아. 여기 오면 돌아올 것도 같았는데, 생각처럼 되는 건 아닌가 봐.”


“그래? 유감이네. 아니, 다행인가?”


일행이 있는 곳은 막 골목길이 끝나는 지점이었다. 멀리 지나쳐왔던 시계탑이 눈에 들어왔다. 루도는 제자리에서 탕, 하고 힘차게 발을 굴렀다.


“내 기억은 여기까지. 여기서 어머니를 잃었고, 이다음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라. 잠시 기절했던 것처럼? 아니면 눈을 감았다 뜬 것처럼? 모르겠어. 어쨌든 여기 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그는 다시 무언가를 가리키려는 듯 손가락을 들었다. 그의 손은 기억을 좇아 이리저리 서성였다. 이윽고 손이 멈춘 곳은 제빵가게 너머로 보이는 어두운 골목길이었다.

루도는 10년도 더 된 상처가 갑자기 아릿해 오는 것을 느꼈다.


“저 골목 안에 누워 있었어. 어째서인지 옆구리가 너무 아팠어. 눈앞에는 람이 있었고, 그에게 설명을 들은 후에야 내가 검에 베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람, 카토르, 가크스. 그땐 참 무서워 보였는데.”


그는 로샤단을 만났던 기적을 회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경이로웠던 순간이었다.

그는 사위를 둘러보며 데루루피아와 만나기로 한 여관을 찾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행인에게 물어보니 이 마을에 여관은 하나뿐이라고 했다. 그는 시계탑 근처에 있는 2층 건물을 가리켰다. 루도는 여관을 향해 표표히 걸어갔다.

뒤따르는 일행은 아직도 루도의 기분을 파악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디리터가 말했다.


“이래도 되나? 너무 맥 빠지는데.”


제리온이 입을 실룩거리며 답했다.


“그럼 뭐 대단한 일이라도 벌어질 줄 알았냐? 이건 이거고, 우리 목적은 루루 누님을 만나러 온 거라는 걸 잊지 마.”


“아니, 그건 아는데. 루도 저 자식 이 마을이 인생의 종착지라도 되는 것처럼 굴더니, 아주 쌩쌩한데? 저게 무슨 의미야?”


「뭐라도 일어날 것처럼」생각했던 디리터와 달리, 마리네와 제리온, 이칼롯은 안심한 표정이었다. 특히 마리네는 루도가 얼마나 가린워드 사건의 악몽에 시달리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루도의 이러한 행동은 그가 힘들었던 과거를 극복해낸 것처럼 보였다. 마리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를 향해 뛰어갔다.


“아무 의미 없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


가린워드 마을에서 단 하나뿐인 여관 「여행자의 요람」은 때아닌 단체손님 덕에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여관은 근처 건물과는 드물게 2층으로 지어진 데다, 평수도 꽤 나가는 듯했다. 가린워드 마을은 평시에는 손님이 없어 파리만 날리지만, 추수철이 되면 농작물을 구입하기 위한 상인들로 북적거렸다. 이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여관이 도시 못지않은 규모를 자랑하는 이유였다.


“닭고기 수프랑 보리빵, 참새 갤런틴(galantine) 나왔습니다. 나머지 요리는 잠시 기다려주세요.”


젊은 급사가 고개를 꾸벅이고는 쪼르르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루도 또래의 소녀였다. 「여행자의 요람」은 여느 여관들이 그렇듯 가족단위로 운영되고 있었다. 주인은 요리사를 겸하고 있었고, 그의 아내와 딸이 서빙 및 객실 관리를 맡았다.

급사가 이번에는 양손에 하나씩 맥주잔들 들고 나왔다.


“맥주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맥주는 디리터와 제리온이 주문한 것이었다. 호위대는 임무에 방해된다며 술을 사양했다. 하지만 제리온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자 그들도 마음이 동한 듯 침을 삼켜댔다. 마리네가 그들의 의중을 눈치 채고 공손히 물었다.


“기사님들도 한잔하시지 그래요? 그간 움직이느라 힘드셨을 텐데...무거운 갑옷까지 입으시고.”


침 넘기는 소리가 들킨 거라 생각한 발가르가 얼굴이 새빨개져 헛기침을 했다. 마리네가 술을 권하자 베리어스는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기사가, 그것도 임무 중에 술이라니요. 캄블러 군의 마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래도...앞으로 며칠간은 이곳에서 묵으니 상관없을 것 같은데...”


그가 한 번 더 권했지만 기사들은 극구 사양했다. 그들은 음주에의 욕구를 식사로 푸려는 듯, 꾸역꾸역 빵이며 고기를 쑤셔 넣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제리온은 눈치 없이 - 루도는 그가 일부러 그런 것이라 생각했지만 - 맥주를 마시고 감탄사까지 내뱉었다. 야속하게 여긴 마리네가 그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 뭐 임마!”


디리터는 당연히 호위대도 술을 마실 줄 알았던 모양인지, 개의치 않는 제리온에 비해 다소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맥주를 마셔도 눈길을 끌지 않게 홀짝홀짝 머금었다. 기사들의 시선을 의식한 그는 에레이시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에리, 넌 술 안 마시냐? 어째 나랑 제리온만 마시려니까 미안하네.”


그녀는 자기 허벅지만 한 맥주잔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못 먹는 건 아니지만, 워낙 약해. 그냥 오늘은 씻고 잘래.”


“그냐...”


그는 아쉬운 듯 입맛을 쩝쩝 다셨다.

잠시 후 급사가 커다란 냄비를 낑낑대며 가져왔다. 그것은 돼지고기며 각종 야채와 향신료가 들어간 스튜였다. 그녀가 테이블 위에 냄비를 내려놓고 돌아가려 하는데, 이칼롯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실례합니다, 아가씨. 혹시 이곳에 우리 말고도 묵고 있는 투숙객이 있습니까?”


난데없는 질문에 급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인원이 많아 방이 모자란 것 아니냐는 뜻으로 이해하고 방긋 웃었다.


“예, 지금은 손님들 빼고는 아무도 없어요. 방은 많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셔요.”


그녀는 다시 스튜 냄비를 가지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미 예상한 것이지만, 데루루피아는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마리네가 스튜를 냄비로 휘저으며 말했다.


“너무 일찍 왔나 보네. 오늘이 17일이지?”


디리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온 사람이 기다리는 거였으니까. 여기서 좀 쉬고 있으면 오겠지 뭐. 아뜨뜨!”


그는 스튜를 떠먹다 입천장을 데이고는 펄펄 뛰었다. 에레이시아가 칠칠맞다며 핀잔을 주었지만, 루도와 제리온도 뒤이어 같은 상황을 겪었다. 호위대 쪽은 이미 숟가락질 소리로 분주했다. 주인장의 음식 솜씨가 썩 훌륭한 편이어서 일행은 즐겁게 식사에 임했다.

이른 저녁을 마치고, 급사가 내온 복숭아 차를 마실 때였다. 이번에는 루도가 그녀를 불렀다. 서빙을 마치고 돌아가던 그녀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쟁반을 끌어안은 채 불안한 표정으로 루도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무장한 사내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행여 해코지를 하려는 것이 아닌가 걱정한 모양이었다.


“예...무슨?”


“다른 건 아니고, 이 마을에 혹시 프란츠라는 사람 있나요? 나이는...대충 30대 후반쯤 됐을 거 같은데.”


급사는 잠시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며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골몰하던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네요. 이 근방 사는 사람 중에 그런 이름은 없는 것 같은데...”


부정적인 대답에 루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벌써 10년이나 흘렀으니...


“그럼 이 근처에 병원이 있나요?”


그녀는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작은 의원이 있긴 한데 그걸 찾으시는 거라면 나가셔서 귀리 밭길을 따라가시면 될 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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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17 43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1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35 34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19 35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15 32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83 38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292 35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0 44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52 35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76 39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19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7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0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5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2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6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5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1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2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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