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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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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9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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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DUMMY

막 동이 틀 무렵의 하늘은 푸르게 젖어 있었다. 봉긋이 자란 풀잎엔 어느샌가 이슬이 잔뜩 맺혔다. 루도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몸을 움직이기 딱 알맞을 정도로 상쾌한 공기였다.

그는 왼발을 축으로 검을 횡 방향으로 힘차게 휘둘렀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공격은 여지없이 튕겨 나왔다. 이미 예상한 결과였다. 그는 잠시 뒷걸음질치다가 일시에 땅을 박차며 튀어나갔다. 순간적으로 몇 번의 공격이 이어졌다. 나무 부딪히는 소리가 뒤뜰에 울려 퍼졌다.

딱 딱 딱 딱 딱!


“오, 이런, 읏차!”


그의 짜임새 있는 공격에 람카디스도 슬슬 물러나기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방어만 할 뿐이지만, 그가 자리에서 움직였다는 것 자체가 루도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람카디스는 몇 걸음 빠지다가, 기회를 봐 기습적으로 루도의 옆구리를 노렸다. 예전 같았으면 옆구리를 정통으로 맞고 땅바닥을 굴렀겠지만 상황도 많이 변해 있었다. 루도는 순간적으로 그의 의중을 눈치 채고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람카디스의 공격은 허공만 휘저었다.

대련은 그걸로 끝이었다. 람카디스는 껄껄 웃으며 루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많이 발전했구나. 조금만 지나면 내 자리도 위험해지겠는 걸?”


루도가 뾰로통한 표정을 한 채 말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10년째 단 한 번도 공격에 성공하지 못했는데 뭐. 이런 괴물을 어떻게 이기라는 건지.”


“킥킥, 완전 괴물이지. 이칼롯도 혀를 내두를 정도니.”


구경하던 마리네가 실소했다. 나무 그루터기에 쪼그려 있던 그는, 대련이 끝나자 쪼르르 달려와 물주전자를 건넸다. 람카디스가 물을 마시며 이마를 훔쳤다. 알게 모르게 땀이 흐른 것이었다. 마리네가 그 광경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 람도 땀이 나긴 나는군요. 루도 굉장하다!”


“어, 진짜? 아자! 나도 드디어 괴수의 반열에 들어가는구나!”


“니들....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


셋은 땅바닥에 앉아 방금 있었던 대련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람카디스가 소년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었고,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다 가끔 질문을 던지곤 했다.


“루도는 아주 괜찮았어. 공격을 이어갈수록 탄력을 받는 것 같더구나. 상대방을 밀어붙이는 기세도 훌륭했다. 다만, 너무 정석에 구애받는 것도 좋지 않단다. 조금은 변칙을 두는 게 좋겠구나. 그것만으로도 상대방은 크게 당황하게 되지. 음, 에비앙이 좋은 예다.”


루도는 선선히 인정할 듯싶더니, 문득 손을 튕기며 물었다.


“하지만, 그 연속공격은 람이 가르쳐준 거잖아요? 그 틀대로만 몰아붙이면, 상대방은 꼼짝없이 당할 거라면서요?”


“그건 상대가 너와 기량이 비슷할 경우의 얘기지. 힘이 강한 상대라면 공격을 받아도 자세가 흔들리지 않을 테고, 속도가 빠른 자라면 공격을 피해버리겠지. 그걸 항상 염두에 두도록 해라.”


“흐응, 뭐야. 그러니까 결국 람은 괴물이라는 거잖아요.”


루도가 짓궂게 농을 건네자 마리네가 낄낄대며 웃었다. 둘이 모이면 항상 농담이 끊이질 않았다. 하나가 말하면, 다른 하나가 맞받아치는 식이었다.

그들의 익살에 람카디스 역시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굳이 무례하다며 소년들을 타박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농담을 주고받는다는 것도 일상에 여유가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니까. 그는 그들의 작은 즐거움을 깨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11년. 그 다람쥐 같던 꼬마들이 이렇게나 성장했다. 키는 훌쩍 커 람카디스의 입술 깨까지 머리가 닿았고, 체구도 듬직해져 이제 어엿한 레인저의 몫을 하고 있었다. 검술 실력도 부쩍 늘어 다소 집중하지 않으면 람카디스마저 주춤거릴 정도였다. 아는 사람만 아는 얘기지만, 람카디스의 실력은 왕국 내에서도 적수가 몇 없었다. 그런 그가 방심할 수 없을 정도라니, 소년들의 실력이 얼마나 일취월장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나이가 어린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되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보물들.

해는 어느덧 그 찬란한 빛을 온 사방에 퍼트리고 있었다. 태양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까, 루도는 눈이 부셔 람카디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실눈으로 바라보니, 그의 실루엣은 평소보다 뿌옇고, 흐릿했다. 그의 어깨선은 여전히 강인하고 듬직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노쇠해 보이기도 했다.

루도는 태양을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여름이 되면 말이에요, 카이안을 만나러 가볼까 생각 중이에요. 근무 지장 없는 한도에서 휴가를 쓸까 하는데, 괜찮겠죠?”


“응? 아아, 뭐 별문제는 없을 것 같다만...”


람카디스는 말꼬리를 흐렸다. 굳이 내색하진 않았으나, 그는 소년들이 카이안과 가깝게 지내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세상이 좁다고 평해야 할까, 아니면 운명의 얄궂은 장난이라 해야 할까. 하필이면 루프리모의 아이와 친교를 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비록 람카디스와 데루루피아가 필사적으로 카이안의 정체를 숨기고 있긴 했지만, 언제 5년 전 같은 상황이 발생할지 몰랐다. 그렇게 보면 카이안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절벽 끝에 선 것만큼이나 위태위태했다.


“왕립 아카데미도 구경할 겸 해서요. 카이안의 기숙사에 묵을 거니까, 그다지 돈도 많이 들지 않을 거예요.”


람카디스는 피식 웃었다.


“아카데미가 보고 싶으면, 공부해서 거기에 들어가는 게 가장 합리적이지 않냐? 아주 질리도록 구경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쳇, 난 카이안만큼 머리가 좋지 않다고요. 사람은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걸 해야죠.”


“그럼 근무나 열심히 뛸 일이지, 왜 책은 그렇게 열심히 들여다 보냐?”


람카디스의 말에 루도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의 말대로, 레인저가 된 후에도 루도와 마리네는 글공부를 계속하고 있었다. 물론 어릴 적부터 람카디스가 책 읽는 버릇을 들여 놓은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지금은 비단 취미로 공부를 하진 않았다. 특히 루도의 경우는 마리네에 비해 더 진지했다.


“그야...뭐,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깝잖아요. 게다가, 몸이 상해 레인저를 그만둬야 할 때가 올 수도 있잖아요? 유비무환이라는 말도 있는데, 미리미리 앞날을 준비해야죠.”


“허이구, 새파랗게 어린놈이 문자 쓰고 있네. 내 앞에서 그런 시건방진 소리를 하는 거냐?”


“람이 레인저 은퇴하면 나랑 마리네가 먹여 살려야 할 거 아니에요? 가족이라곤 우리뿐이 없는데, 노후 걱정도 안 해봤어요? 난 병든 노부 부양할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져 온다구요.”


람카디스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코웃음을 쳤다. 자신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노후를 루도가 염려하고 있을 줄이야. 그는 고마워해야 할지, 머리를 쥐어박아야 할지 몰라 헛기침만 해댔다. 곁에 있던 마리네도 그의 반응을 보며 키득거렸다.

람카디스는 머쓱하게 목검을 허공에 휘두르며 말했다.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는구나. 너희들, 나를 무슨 치매 노인이라도 될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이다?”


마리네가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걱정시키기 싫으면 얼른 루루 아줌마랑 결혼하면 되잖아요. 서두르지 않으면 정말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버려요.”


“쿨럭, 쿨럭!”


람카디스는 목에 뭐라도 걸린 것처럼 격하게 기침을 해댔다. 거기서 데루루피아 이야기가 나올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그는 애써 기침을 참으며 말했다.


“데루루피아라니, 너희들 대체...”


“모른 척하지 말아요. 우리가 남남도 아니고, 그럼 모를 줄 알았어요? 루루 아줌마가 람을 보는 눈빛이 딱 봐도 예사롭지 않더만 뭐. 설마 멀리 떨어져 있다고 고민하는 건 아니죠? 이런 건 무조건 남자 쪽에서 먼저 찾아가야 한다고요.”


“맞아 맞아! 길드 일은 카토르에게 맡기고 얼른 청혼하러 가요! 자신을 만나기 위해 천 리(千里)를 달려온 남자라니, 나라도 반하겠다.”


람카디스는 자신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그는 슬금슬금 시선을 피하며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루도가 그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핫!”


그가 웃은 건 다름 아니라 람카디스의 입 모양 때문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린 채 연신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루도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침착, 통찰, 침착, 통찰


그는 결국 목검에 정수리를 찍힌 후에야 웃음을 멈추었다. 옆에 있던 마리네도 세트로 목검을 맞고 바닥을 굴렀다. 람카디스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 흠! 하여간 제자라는 것들이 건방지단 말이야. 이게 다 디리터 녀석 때문이지. 하여간 안 좋은 것만 골라 배워 가지고.”


“으윽...그렇게 세게 치면 어떻게 해요...”


루도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눈앞이 깜깜했다. 그것만으로도 람카디스가 얼마나 난처해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가볍게 웃어넘길 수도 있는데 그렇게 행동했다는 건, 그 역시 데루루피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결혼이라...일이 잘 풀린다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군.’


문득 데루루피아의 하늘색 머릿결이 떠올랐다. 바람결에 찰랑대던 그 실타래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루도가 그 표정을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으나, 목검이 두려워 차마 들이대진 않았다.

이제 날도 완전히 밝아 있었다. 잠에서 깬 길드원들이 하나 둘 아침바람을 쐬러 나왔다. 마리네가 옷에 묻은 흙을 털며 일어났다.


“밥 먹을 시간 됐네. 자아, 오늘 아침까지만 준비하면 된다는 거지!”


둘은 식사를 준비하러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람카디스가 그들의 뒷모습을 보곤 무심코 외쳤다.


“얘들아.”


“네?”


둘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 미소 어린 얼굴들을 보고 있자니, 람카디스는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아, 아니다, 아무것도.”


마리네가 싱겁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뭐예요, 사람 무안해지게.”


람카디스는 사라져가는 소년들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오늘이 지나면 그들에게도 말해야 할 것이었다. 잠시 델키아를 떠나 있어야 한다고, 자신과 헤어져야 한다고 말이다.

앞날은 험난하면서도 불투명했다. 람카디스는 가슴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자신 때문이 아니라, 소년들의 행복한 생활에 암운이 드리워질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루도와 마리네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안개송곳니 암살단을 저지해야 했다.


‘지켜봐 주십시오, 세르딕 선생님.’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애써 웃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붉은 로브를 입은 일련의 무리가 델키아에 도착한 것도 그때 즈음이었다.



***



“여어, 마리네! 생일 축하한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가크스였다. 마리네가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헤헤...고마워. 리카르도는 잘 있지? 언제 한 번 보러 가야 하는데.”


“하하하, 요즘 너무 빽빽 울어대서 진이 빠진다. 어서 걸음마를 떼야 할 텐데 말야.”


가크스는 얼마 전 가정을 꾸렸기 때문에, 일과 후에 그가 길드에 나타난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를 시작으로 다른 길드원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에비앙과 바트넬, 돌크 등, 이내 홀은 잡담 소리로 귀가 먹먹해질 지경이 되었다.

디리터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창고에 있던 오크(Oak)통을 들고 왔다. 그가 뚜껑을 열자 달콤하고 향긋한 산수유 냄새가 진동했다. 작년에 가크스가 담근 산수유 술이었다.


“오오오, 딱 좋아. 이 보물을 먹을 날이 오게 될 줄이야! 가크스, 잘 먹을게!”


길드원들은 잠시 후 있을 연회로 잔뜩 고조되어 있었다. 주방에선 람카디스와 가크스가 음식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루도가 예상했던 대로, 메인 음식은 양고기였다.

고기를 며칠 전부터 양념에 절여 놓아서 그런지 양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람카디스가 항아리를 열자 매콤한 양념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가크스는 오늘을 위해 직접 양념을 만들었는데, 페페로니와 마늘을 이용해 만든 매운 소스는 길드원들 입맛에 딱 맞는 것이었다.

람카디스가 고기를 손질하는 동안 가크스는 다른 음식들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레인저들이 애용하는 푸성귀 샐러드는 오늘도 빠지지 않았고, 계란 그라탕와 구운 꿩고기, 연어 커틀렛 등이 준비되었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음식 냄새에 홀에서 기다리던 이들은 벌써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어느덧 홀은 자리를 가득 메운 길드원들로 북적거렸다. 제리온과 이칼롯을 끝으로 모든 인원이 모였다.

람카디스가 주위를 집중시켰다. 모두의 이목이 그에게 쏠렸다. 그는 한 번 헛기침을 하고는, 모두를 향해 말했다.


“자아, 오늘은 마리네의 생일이자, 로샤단 상반기 회식 날이다. 다들 별 탈 없이 잘 지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모두 잘해나갈 것이라 믿는다. 즐거운 날이니, 모두 마음껏 즐기도록.”


“와아! 마리네 생일 축하한다!”


람카디스가 말을 맺자 수십 개의 주먹이 마리네에게 날아갔다. 으레 그렇듯이, 회식의 시작은 생일 당사자를 쥐어박음으로써 시작되곤 했다.

마리네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팔을 들어 날아오는 주먹들을 막아냈다. 물론 모든 공격을 다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미처 막지 못한 옆구리며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울상을 지었다.


“으윽...해가 지날수록 강도가 세지네.”


디리터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너를 향한 애정이 그만큼 커진다는 거지. 고맙게 생각해.”


“네...뭐, 다들 고마워요.”


뾰로통하게 말했지만, 그는 진심으로 길드원들에게 고마워했다. 그들은 매년 루도와 마리네의 기념일을 챙겨주고 있었다. 내색하진 않아도 그것은 루도와 마리네에게 있어 힘든 나날을 견디게 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었다.

날씨도 쾌청해 상쾌한 저녁바람이 창을 통해 들어왔다. 더할 것 없이 좋은 날씨와 푸짐한 음식, 홀을 가득 메운 동료들. 무엇 하나 모자란 것 없는 즐거운 한 때였다.

디리터가 막 술을 뜨려 하는데 람카디스가 그를 제지했다. 한참 목이 달아있던 그는 성화를 냈다.


“아! 또 왜!”


“그게 아니라, 너희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그래. 후버네 식당에 음식을 미리 주문해 놓았거든. 가서 그거 좀 찾아와다오.”


“그런 건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왜 인제 와서 찾는 거야?”


“어차피 고기 손질하려면 좀 걸린다. 그러지 말고 애들 데리고 설렁설렁 다녀와. 맥주하고, 새끼돼지 통구이하고, 이거저거 봄나물하고. 지금 가면 딱 완성되어 있을 거다.”


디리터는 연신 투덜거렸지만, 군소리 없이 나갈 준비를 했다. 다른 심부름도 아니고 자기 먹을 걸 가져오라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으랴. 루도와 마리네도 옷을 챙겨 입었다. 음식점까진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으므로,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셋이 문을 나서려 하는데, 람카디스가 이칼롯에게 말했다.


“음, 이칼롯이랑 제리온도 같이 다녀와다오. 워낙 짐이 많아서.”


“저희도...입니까?”


이칼롯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그 짧은 대화만으로 람카디스의 의중을 파악해냈다. 무언가 자신들을 제외하고 할 이야기가 있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왠지 모르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길드 마스터의 부탁을 어찌 거절하겠는가. 그는 선선히 승낙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시간쯤 뒤에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문을 나서기 전, 루도는 왠지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느껴 뒤를 돌아보았다. 길드원들은 여전히 수다를 떠느라 정신없는 모습이었고, 람카디스만이 눈을 마주쳐 주었다. 매일처럼 보는 얼굴인데도 어딘지 모르게 아득해 보이는 그 얼굴이 루도의 발을 묶었다.

결국 디리터가 빨리 오라며 그를 재촉했다. 루도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등을 돌렸다. 그는 불안한 기분을 흩어버리기 위해 일부러 쾌활하게 말했다.


“우리 오기 전까지 먼저 회식 시작하면 안 돼요! 금방 다녀올 테니까!”


람카디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에 화답했다.


“그래, 그래. 어서 갖다 와라. 너희 돌아오기 전까진 고기 한 점도 먹지 않으마.”


다섯은 그렇게 집을 나섰다. 단지 문만 지난 것뿐인데도, 사뭇 달라진 차가운 공기에 다들 옷깃을 여몄다. 얼마나 집 안에 온기가 넘쳤던지 밖에 나온 것만으로도 안의 사람들과 격리된 기분이었다.

저녁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서두르면 해가 넘어가기 전까진 돌아갈 수 있을 터였다. 루도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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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0) +1 15.04.06 1,000 27 13쪽
108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9) +2 15.04.06 895 30 12쪽
107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8) +4 15.04.06 856 28 12쪽
106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7) +3 15.04.05 986 25 12쪽
105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6) +1 15.04.05 891 28 10쪽
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82 30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797 30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87 27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0 29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26 28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62 33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1 31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84 25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83 25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76 27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18 25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39 32 11쪽
92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88 28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40 26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39 29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74 31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63 34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42 33 13쪽
86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06 33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15 35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44 34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74 31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08 37 16쪽
81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78 33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15 36 14쪽
79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16 38 19쪽
7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35 33 18쪽
77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15 39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22 33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47 33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43 34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70 38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86 34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17 43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1 40 16쪽
»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35 34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19 35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15 32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83 38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292 35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0 44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52 35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76 39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19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7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0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5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2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6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5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1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2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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