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조회수 :
359,123
추천수 :
10,757
글자수 :
2,844,987

작성
15.04.07 03:01
조회
936
추천
31
글자
17쪽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3)

DUMMY

소년은 옷을 챙겨 입고 방을 나섰다. 마리네가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말렸지만, 그는 계속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고 있자니 아래층에서 알룬도와 이칼롯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위첼이랑 고르딘, 제폰은 한 번 맞닥뜨려봤으니 잘 알겠고, 또 주의해야 할 녀석이 바로 제스터다. 항상 광대가면을 쓰고 다니는 데다 말투도 독특해서 구분하긴 편하지만...이 놈은 또 문제가 달라. 상대가 자기 모습을 파악하기도 전에 죽이는 타입이야. 암살자에 가장 잘 어울리는 타입이라고 해야 할까, 여튼 골치 아프지.”


“인상착의는 됐고, 약점이나 특이사항 같은 건 없나?”


“위첼이나 슈터크라면 조금 알지만, 다른 멤버에 대해선 전혀. 웬만해선 같이 움직이는 경우가 드물거든. 내가 봤을 때 가장 위험한 인물은 제폰과 안다바리엘이야.”


“안다바리엘?”


“9클래스의 마법사다. 최근 몇 년간 눈에 띄지 않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그 자식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리가 없더군. 레이시는 녀석과 함께 뭔가를 추진하는 것 같았어. 그건 다른 단원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극비 사항이었지.”


“마법사인가...”


둘은 안개송곳니에 대한 대처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루도가 깨어났다는 사실은 진즉에 들었지만, 그들은 아나이스나 베리어스처럼 오도방정을 떨진 않았다. 깨어났으면 그걸로 된 것, 그들에겐 낭보를 축하하는 것보다 비보에 대비하는 것이 보다 중요했다.

소년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처음에는 난간을 붙잡았지만, 이내 익숙해진 듯 쉬이 1층에 도달했다. 그제야 이칼롯이 그에게 말을 건넸다.


“루도, 몸은 좀 괜찮나?”


“어...그냥 뭐.”


그에게 눈을 돌리던 이칼롯의 이마가 약간 찡그려졌다. 그의 복장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소년은 평소 외출하던 때처럼 셔츠와 바지를 입고, 레더아머 대신 얇은 스웨터를 걸친 채였다. 그건 별로 상관할 문제가 아니었다. 홀 안에 모인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다는 점이었다. 알룬도도 그걸 보고 이칼롯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디 가려고?”


소년은 쭈뼛쭈뼛 그의 시선을 피하고는, 잠시 후 떠듬거리며 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겁을 집어먹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망설인 것이었다.


“그냥...산책을 좀 하려고요.”


“네가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거냐? 지금도 다른 사람들이 밖에서 망을 보고 있어.”


“괜찮아요...그냥 가슴이 답답해서...바람만 조금 쐬고 올게요.”


“그러니까, 지금 상황이 너무 위험해서...”


“잠깐만이에요. 해지기 전엔 돌아올게요.”


소년의 어투는 차분하면서도 담담했다. 그는 알룬도에게 동의를 구하는 게 아니었다. 산책 좀 하고 올 테니 그리 알고 있으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이칼롯이 마리네와 데루루피아에게 눈짓을 보내자 둘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그들도 소년을 끈덕지게 설득하다 결국 포기한 게 분명했다.

알룬도는 낮게 탄식했다. 환자가 부탁하는 건데 묵살하기도 그렇고, 또 그러자니 루도의 안전이 우려되었다. 그렇게 몇 차례 고민하던 그는, 자신은 뭐라 왈가왈부한 입장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데루루피아와 이칼롯도 가만히 있지 않은가.


“그래. 내 목숨이냐? 네 목숨이지...라고 하고 싶지만! 넌 너무 중요하단 말이야. 산책 같이 갈 테니 그리 알아라. 불만 없지?”


“중요...”


소년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마리네와 데루루피아가 얼른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 나도 갈래.”


“나도. 환자 혼자 두면 큰일 나.”


단번에 산책멤버가 결정되었다. 이칼롯도 같이 갈까 생각했지만, 그냥 여관에 남아있기로 했다. 소년의 가라앉은 눈동자에서 어딘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자기 정체성 때문에 괴로운 건가...지금은 혼자 두는 편이 낫겠지.’


이칼롯은 피곤한 듯 의자에 몸을 묻었다.

소년은 누가 동행하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배웅하는 아나이스를 뒤로 한 채 여관 문을 나섰다.

바깥은 막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지만, 낮이 길어지는 계절이라 한두 시간 정도는 넉넉히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년은 상쾌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사뿐사뿐 발걸음을 내디뎠다.


“아~. 기분 좋다....”


그는 밖에 나온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의식적으로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고, 꽃향기를 맡거나 돌을 멀리 던지고, 풀숲을 날아다니는 메뚜기를 쫓으며 산책을 즐겼다. 그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어찌나 기이하던지 마리네와 데루루피아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뒤만 쫓을 뿐이었다.

사흘 만에 깨어난 탓인지 소년은 식욕도 왕성했다. 그는 나올 때 가지고 온 주먹밥을 단숨에 비우고는, 근처에 있는 청과상을 찾아 딸기와 토마토를 한 아름 들고 나왔다. 마리네와 데루루피아는 입이 터져라 과일을 씹는 그를 보며 의아함을 느꼈지만, 또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경을 헤매던 사람이 갑자기 펄펄 날아다니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골골대며 죽네사네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말이다.

소년은 대열의 맨 앞에 선 채 논두렁을 가로질렀다. 그는 다른 일행은 안중에도 없는 듯 단 한 번도 뒤돌아보는 일이 없었다.

여관에서 너무 멀어진 것 같다고 느낀 알룬도가 말했다.


“어이, 루도. 잠깐 서 봐.”


알룬도는 소년의 바로 뒤에 밀착해서 걷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걸어갔다. 결국 그가 다시 한 번 이름을 외친 후에야 소년은 멈춰 섰다.


“루도!! 내 말 안 들리냐?!”


“...응? 아! ...미안해요.”


“너무 멀리 나왔다. 이만 슬슬 돌아가자.”


그 말에 소년은 아쉬운 듯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는 아직도 양손에 딸기며 토마토를 잔뜩 쥔 채였다. 그는 딸기 하나를 입 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런가...지금은 괜찮은데.”


“뭐?”


“아...아니에요. 돌아가죠.”


소년은 혼잣말을 할 때가 잦았다. 그는 주변 사람이 말을 걸면 꼬박꼬박 대답하긴 했지만, 먼저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일이 거의 없었다. 특히 친형제처럼 지내던 마리네에겐 그것이 상당한 위화감으로 다가왔다. 그는 마치 자신이나 데루루피아가 불편한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알룬도가 지적하긴 했지만, 일행은 어느새 마을 어귀까지 나와 있었다. 막 날도 저물 즈음이라 그런지 인적도 드물었고, 지는 태양의 불그스름한 빛줄기만이 마을을 지킬 뿐이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집으로 돌아오라는 듯한 그 소리가 소년의 마음을 쥐어뜯었다.

여관에서 나온 지 불과 한 시간...그 찰나의 시간이 너무도 달콤했기 때문일까, 소년은 쉬이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알룬도의 말을 거절한 것은 아니었다. 나올 때보다 훨씬 속도가 느렸지만, 그는 천천히, 느긋하게 숙소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소년은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맨 앞에 섰다. 그게 시야가 탁 트이는 데다 다른 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아서 좋았다.

뒤에서 걷던 마리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루도, 기분은 좀 나아졌어?”


“아, 응. 최고야. 차라리 나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가 뜻 모를 말을 중얼거렸지만 마리네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찌 됐든 지금으로선 루도가 무사히 깨어났고 몸 상태도 좋아 보인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데루루피아도 그와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저 정도면 글피쯤 되면 바로 출발해도 되겠네. 몸도 괜찮아 보이고.”


“그렇죠? 그런데 애가 좀 달라진 것 같은데...기분 탓일 라나.”


“음...뭐라 해도 결국 당사자니까. 당분간은 루도에게 심한 말 하지 마. 특히 신의 아이에 대해서는 꺼내지 말고.”


“...그건 디리터나 제리온에게 말해야 될 것 같은데요.”


“호호호, 하긴 그렇네. 제리온은 너무 입이 험해가지고.”


“그 인간은 무슨 행동을 할지 예측이 안 된다니까요. 괜히 루도에게 막말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둘은 소년이 듣지 못하게 조용히 속닥거렸다. 그들은 소년의 오감이 놀랄 만큼 예민해져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소년이 둘의 대화는 물론, 풀숲을 기어다니는 벌레 소리까지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소년이 돌연 멈춰 선 것은, 둘의 이야기가 귀에 거슬리기 때문이 아니었다.


“.....”


“응? 왜 그래? 어디 아파?”


잘 걸어가던 녀석이 멈춰 서자 놀란 마리네가 물었다. 하지만 그는 우뚝 선 채 한 지점만을 뚫어져라 바라볼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리네와 데루루피아가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광장으로 향하는 길 한 가운데, 뭔가 검은 천 같은 것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무엇에 걸린 건지 펄럭이는 그것은 언뜻 보기엔 자그마한 허수아비처럼 느껴졌다.


“저거...뭐지?”


마리네는 눈을 가늘게 뜨며 천 자락의 정체를 확인했다. 아까도 저런 게 있었던가?

소년이 말했다.


“지붕 위의 마법사...”


“응? 뭐?”


웬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어 그는 소년의 뒤통수를 응시했다. 눈을 돌리니 데루루피아와 알룬도의 표정 또한 심상치가 않았다. 대체 저게 뭐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천 자락이 순식간에 날아와 앞을 가로막았다. 마리네는 소스라치게 놀라 검을 뽑으며 뒷걸음질 쳤다.


“우와와와!! 뭐야?!”


마리네는 간신히 자세를 잡고는 날아온 천 자락을 응시했다. 그는 곧 천의 정체가 너덜너덜한 로브(Robe)임을 깨달았다. 착용자가 워낙 왜소한 탓에 입은 건지 널어놓은 건지도 분간이 안 간 것이었다.

로브 입은 남자는 나부끼는 옷매무새를 다듬을 생각조차 않은 채 소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물론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왠지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네는 또 안개송곳니의 공격인가 싶어 알룬도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를 악문 채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분명 옷 속에 숨겨둔 시미터를 찾은 것이리라. 하지만 그는 손잡이를 움켜쥘 뿐 로브 입은 사내에게 공격해 들어가진 않았다.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멈춰 서긴 데루루피아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따돌리려고 하다니, 가소롭구나. 데루루피아 아망초.”


성대를 쓰지 않은 듯한 잔뜩 쉰 목소리가 로브 너머로 새어나왔다. 그 기이한 목소리에 마리네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데루루피아의 이마에 땀이 한 방울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녀는 로브 입은 남자와 소년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마리네와 알룬도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마리네는 그것만으로도 눈앞의 남자가 아군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그람.”


어색한 두 음절의 이름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람.

마리네는 며칠 전 대화에서 그 이름이 거론되었던 것을 떠올렸다. 위험에 빠진 데루루피아와 알룬도를 대신해 안개송곳니와 싸운 마법사라고 했던가...한데 그럼 아군이 아닌가? 그럼 이렇게 그녀와 알룬도가 식은땀을 흘리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 상황에서도 소년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람이 말했다.


“넌 나를 펠아람의 아이와 대면시켜준다고 약속했다.”


데루루피아는 이제 눈에 띌 정도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쭈뼛거리며 그람의 질문에 답했다.


“그...게 말이죠. 펠아람의 아이는 이미 다른 곳으로 도망쳐버렸어요. 여기도 얼마 전 안개송곳니가 공격해 와서...”


“그 말, 진심인가?”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람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지만,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한 것이었다. 알룬도는 여전히 품속에 손을 집어넣은 채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실력으로는 그람을 당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즈음 마리네는 방금 전 소년이 말한 단어의 의미를 간파해냈다.


“지...지붕 위의 마법사?! 정말?”


그는 입을 딱 벌리고는 그람을 가리켰다. 그가 어찌나 과민반응을 보였는지 알룬도는 물론이고 그람조차 마리네에게 시선을 돌렸다.


“...?”


“비..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루도, 정말이야?”


지붕 위의 마법사, 그것은 루도와 마리네만 아는 추억의 키워드였다. 5년 전 레인스터에서 둘이 안개송곳니 단원에게 죽을 뻔 했을 때, 한 남자가 홀연히 나타나 그들을 구해주었었다. 그가 나타났다 사라지기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그 강렬한 인상은 소년들의 기억 속에 두고두고 자리 잡고 있었다. 레인스터에서 돌아온 후 루도와 마리네는 밤마다 그 남자가 만들어내던 불덩이를 회상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었다.

그리고 그 마법사가 지금 두 소년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


좋게 말하자면 생명의 은인이랄까? 하지만 다시 만난 그의 태도가 결코 곱지는 않은 탓에 마리네는 숨을 죽였다.

그람은 뜻 모를 용어는 무시한 채 다시 소년에게로 눈을 돌렸다. 소년 또한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잠시 눈을 마주한 후, 그람이 말했다.


“고통 없이 보내주마.”


그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의 팔을 본 마리네는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로브 자락 사이로 나온 팔은 앙상하게 남은 뼈뿐이었다.


“자...잠깐만요!”


데루루피아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람의 머리 위로 투명한 물체가 연성되기 시작했다.

까드득, 까드드드드...

그것은 처음엔 작은 고드름이었다. 하지만 삽시간에 나이프처럼, 검처럼, 그리고 거대한 창의 크기로 변화했다. 만들어진 얼음 창의 개수는 모두 12개. 창 하나하나가 판금 정도는 우습게 꿰뚫어버릴 정도로 크고 날카로웠다.

알룬도가 그람이 펼치는 마법을 보고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제기랄, 그래서 내가 멀리 나오면 안 된다고 했었지! 여기선 디리터도 알아채지 못할 텐데.”


그가 시미터를 꺼내 들었지만, 그가 쥔 무기는 그람이 만든 창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이 작아보였다. 그는 마법이 날아올 궤도를 예측하는 한편, 그람이 왜 저렇게 공격적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물론 데루루피아가 그를 따돌리려 한 것은 사실이지만...그렇다고 다짜고짜 목숨을 빼앗으려 할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설마...

얼음 창은 모두 소년을 향하고 있었다. 데루루피아가 황급히 그의 앞을 막아섰다.


“기다리라고요! 이 아이는 그냥 친구일 뿐이에요! 당신이랑은 아무 연관도 없는...”


“신의 아이를 쫓는 자가 이토록 허술하다니, 엘프의 이름이 울겠구나. 아망초.”


“뭐...뭐라고요?”


그녀가 놀라서 물었다. 하지만 그람은 더 이상 그녀와 얘기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그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갑작스런 돌풍이 그녀를 휘감았다. 바람의 세기가 어찌나 세던지, 그녀는 저항도 못하고 공중에서 버둥대기만 할 뿐이었다.


“꺄....”


“젠장! 마리네, 왼쪽에서...!”


알룬도가 뭔가 지시를 내렸지만, 미처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바람이 뒤에 있던 둘을 덮쳤다. 일행은 그람의 마법 한 방에 순식간에 무력화됐다. 마리네가 그람의 머리를 노리고 있는 힘껏 검을 던졌지만, 그마저도 바람을 뚫지 못하고 허공에 멈춰 섰다. 그는 소년을 향해 외쳤다.


“루도, 도망쳐!”


그때까지도 소년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일행을 등지고 있을 뿐이었다. 겁을 먹은 건가? 아니면, 다시 독이 몸에 퍼진 건가? 어째서 도망가지 않는 거지? 어째서...

거기까지 생각하던 마리네의 머릿속이 돌연 새하얘졌다. 루도는 어째서 도망가지 않는가. 이 물음을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루도는 어떻게 이 돌풍 속에서도 태연히 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알룬도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멍한 얼굴을 한 마리네와 달리 그의 표정은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맙소사! 설마!!”


그람이 말했다.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 몰라도, 내 눈은 피할 수 없다, 소년. 이 엄청난 신성(神聖)력. 너는 이미 깨어났구나.”


“마...말도 안 돼!”


절규에 가까운 데루루피아의 외침이 허공을 짓찢었다. 펠아람의 아이가 각성했다니, 대체 언제부터? 태연하게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먹고, 산책을 했을 텐데...그게 전부 신의 아이였단 말인가!

알룬도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이제 그의 검은 그람이 아닌 루도를 향하고 있었다. 펠아람의 아이가 깨어났다. 만약 선대 펠아람의 저주를 받은 것이 그라면...그가 이미 미쳐있다고 한다면!!

소년의 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그는 허공에 뜬 데루루피아의 발목을 붙잡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려놔.”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람의 계승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7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 +3 15.04.16 771 27 19쪽
146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10) +5 15.04.15 740 36 18쪽
145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9) +3 15.04.15 766 29 19쪽
144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8) +3 15.04.15 749 31 17쪽
143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7) +3 15.04.15 803 27 21쪽
142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6) +4 15.04.14 738 30 18쪽
141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5) +2 15.04.14 817 28 17쪽
140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4) +6 15.04.14 735 27 15쪽
139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3) +1 15.04.14 718 29 18쪽
138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2) +3 15.04.14 725 30 17쪽
137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1) +3 15.04.14 733 24 17쪽
136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完) +3 15.04.12 826 25 15쪽
135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5) +3 15.04.12 656 23 17쪽
134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4) +2 15.04.12 666 25 17쪽
133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3) +1 15.04.12 657 27 19쪽
132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2) +3 15.04.12 754 25 21쪽
131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1) +1 15.04.12 880 25 17쪽
130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11) +6 15.04.11 969 30 16쪽
129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10) +1 15.04.11 939 26 19쪽
128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9) +2 15.04.11 976 25 21쪽
127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8) +2 15.04.11 979 25 19쪽
126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7) +2 15.04.11 837 28 18쪽
125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6) +1 15.04.11 838 23 21쪽
124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5) +1 15.04.11 931 29 18쪽
123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4) +3 15.04.09 1,052 33 25쪽
122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3) +3 15.04.09 973 25 19쪽
121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2) +4 15.04.09 744 25 13쪽
120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1) +1 15.04.09 1,013 25 17쪽
119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6) +3 15.04.09 940 28 16쪽
118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5) +2 15.04.09 826 30 15쪽
117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4) +7 15.04.07 1,139 35 22쪽
»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3) +2 15.04.07 937 31 17쪽
115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2) +2 15.04.07 743 32 11쪽
114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1) +2 15.04.07 1,032 28 18쪽
11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4) +1 15.04.07 985 28 14쪽
11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3) +4 15.04.06 991 31 15쪽
11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2) +1 15.04.06 987 28 15쪽
11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1) +1 15.04.06 962 27 16쪽
109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0) +1 15.04.06 1,000 27 13쪽
108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9) +2 15.04.06 895 30 12쪽
107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8) +4 15.04.06 856 28 12쪽
106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7) +3 15.04.05 986 25 12쪽
105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6) +1 15.04.05 891 28 10쪽
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82 30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797 30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87 27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1 29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26 28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62 33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1 31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84 25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83 25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76 27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18 25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39 32 11쪽
92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88 28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40 26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39 29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74 31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63 34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42 33 13쪽
86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06 33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15 35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44 34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74 31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08 37 16쪽
81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78 33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15 36 14쪽
79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16 38 19쪽
7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35 33 18쪽
77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15 39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22 33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47 33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43 34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70 38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86 34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17 43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1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35 34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19 35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15 32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83 38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292 35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0 44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53 35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76 39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19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7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0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5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3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6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5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1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2 4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