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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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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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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2
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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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5.03.27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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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글자
17쪽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DUMMY

달려가 키스라도 해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갑주를 대충 걸친 경비병들이 삼삼오오 열를 이룬 채 달려오고 있었다. 약간 멍하고, 넋이 나간 표정들이지만 그런 건 그다지 상관없었다. 그들이 드디어 나타났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상트룸 수도회는 기본적으로 종교단체다. 아무리 광휘의 결사라 하더라도 공권력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진 않을 것이다.

따라오던 광휘의 결사들도 경비병들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의 당혹한 표정은 볼만한 것이었다. 공권력에는 기대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마당에 앞뒤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데루루피아가 광휘의 결사들의 난처한 모습을 보고는 기교를 부렸다. 그녀는 다짜고짜 선두에 있는 경비병의 팔에 매달렸다.


“꺄아아아악! 도...도와주세요! 강도들에게 쫓기고 있어요!”


경비병들은 갑작스런 그녀의 반응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녀는 정말로 겁에 질린 것 마냥 팔에 엉겨 붙어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에게 붙잡힌 경비병 하나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아가씨? 저기, 이것 좀 놓고 차근차근 설명해 보십시오. 진정하시고, 일단 이 팔부터...”


“제발 살려주세요! 제...제 뒤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에요! 그들이 절 죽이려 하고 있어요! 으흐흐흑...”


그녀는 팔을 부들부들 떨며 자신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은 디리터의 콧잔등을 향했다. 디리터가 ‘나?’ 라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으나, 데루루피아의 험상궂은 얼굴을 보고는 머쓱하게 몸을 숙였다. 그제야 그녀가 가리키는 검은 로브를 입은 일당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칼을 뽑은 채 우두커니 거리 한가운데 멈춰 있었다. 약간 숫자가 많았다 뿐이지, 그 꼴은 데루루피아가 말한 대로 영락없는 강도의 모습이었다. 경비병들도 서서히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제대로 걸치지도 않은 투구를 고쳐 쓰며 성큼 앞으로 나섰다.


“이 자식들이, 우리가 잠깐 잠든 사이에 겁도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구만?”


“참 신기하단 말이야. 이놈의 불순분자들은 눈이 닿지 않는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잡아내.”


경비병들은 기세 좋게 무기를 뽑으며 광휘의 결사에게 접근했다. 그들의 용기는 물론 대부분이 자신들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자부심에서 나왔겠지만, 데루루피아의 외모가 한몫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녀린 미모의 여인이 자신들에게 매달려 구해달라고 간청하는 데, 어느 사내가 힘이 나지 않겠는가!

그녀에게 붙잡힌 경비병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다른 경비대원들은 난처해하는 그를 부러운 눈초리로 흘겨보았다. 디리터가 그 광경을 보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옆에 있는 제리온에게 속삭였다.


“누님 연기실력이 장난이 아니네. 전문배우를 해도 되겠는데?”


제리온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는 키득거리며 대답했다.


“뭐, 실제로 목숨을 위협받고 있었으니 전부 연기라고 할 수는 없지.”


광휘의 결사는 마리네를 응시한 채 머뭇거렸다. 그들 역시 경비병들과 싸우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사실 경비병들의 숫자는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거기도 무장도 엉성하게 갖춘 모습이라, 전력차이를 비교해도 광휘의 결사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공격하면 그 순간 국가에 거역하는 범죄자가 된다. 그 누구도 범법자가 되고 싶지는 않은 법이다. 유르그젠이 있었다면 전투를 감행했을지도 모르나, 다행히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분을 밝히고 전후 사정을 설명한다 해도 이미 무기를 뽑고 있는 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어느새 다가온 경비병 중 하나가 말했다.


“어이! 너희들 뭐 하는 놈들인지 모르겠지만, 순순히 무기를 버려라.”


“요즘은 강도질도 복장 맞춰가면서 하는 모양이지? 하여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경비병들은 낄낄거리며 저희끼리 장난을 쳤다. 평소 곧잘 뺀질대는 디리터조차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모양새는 볼품없어도 그 역시 델키아 방어대 소속이었다. 경비병들의 근무태도도 태도지만, 눈앞에 무장괴한을 마주하고도 건들거리는 모습이라니, 당장 목이 달아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광휘의 결사들이 싸울 마음이 없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행운이 겹치는군. 데루루피아 아망초.”


그들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여기선 물러서는 쪽이 현명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등을 돌렸다. 흑색의 로브가 어둠 속에서 펄럭였다.


“어...어이! 멈춰!”


“뭐야? 저것들.”


그들은 빠르게 밤에 녹아들었다. 인원이 꽤 되는데도 허둥대는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경비병들은 사라져가는 그들을 향해 고함을 쳤으나, 굳이 쫓아가려 하진 않았다. 딴에는 자신들의 숫자가 불리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었으나, 일행의 눈엔 그저 귀찮아서 라고밖에 보이지 않았다.

긴장이 풀린 마리네가 맥없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흐에에...진짜 오늘은 목숨이 몇 개라도 모자랄 것 같아.”


다들 살았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쉬었다. 경비병들이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일행에게 다가왔다. 정확히는, 데루루피아에게 접근했다. 그녀는 여전히 흐느끼고 있었다. 오한이라도 난 것처럼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순식간에 경비병들에게 둘러싸였다.


“괜찮으십니까, 아가씨? 여기가 원래 그렇게 흉흉한 곳은 아닌데, 가끔 상인들을 노리는 강도들이 출몰하곤 합니다.”


“흐...흐흑...정말 죽는 줄만 알았어요. 흑흑...”


“자, 자, 모두 끝났으니 진정하십시오. 어이구, 이 땀 좀 봐. 얼마나 놀라셨으면.”


그는 얼른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가는 모습은 이칼롯 밖에 눈치 채지 못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마음만 먹었다면 우리를 속이는 건 일도 아니었겠군.”


데루루피아가 놀란 마음을 추스르는 ‘척’ 하며 전후 사정을 설명하는데, 누워 있던 마리네가 벌떡 일어났다. 잊고 있던 것이 불쑥 생각난 것이었다.


“으아악! 루도랑 니암!”


“아차!”


제리온과 디리터도 그제야 알아채고는 이마를 쳤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그들의 존재를 미처 잊고 있었다. 여기야 어찌어찌 상황이 정리됐지만, 그들은 여전히 쫓기고 있을 터였다. 데루루피아도 그들의 반응을 보더니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꺄앗! 맙소사! 어쩌면 좋아!!”


경비병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데루루피아는 아차 싶어 다시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그녀는 다시 흐느끼며 말했다.


“으흐흑...저랑 같이 온 조카들이 있는데...강도들에게 쫓겨 중간에 헤어지게 됐어요. 그 사람들에게 잡혔으면 어떻게 하죠?”


그녀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모습이 어찌나 측은하던지 경비병들은 즉시 소매를 걷어붙였다.


“아가씨, 걱정 붙들어 매십쇼. 그런 일을 방지하고자 있는 게 저희 레인스터 치안 경비대입니다. 저희가 책임지고 조카 분들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에 또....그러니까 조카분과 떨어지게 된 지점이 정확히 어디쯤이죠?”


“그게...”


그녀가 머뭇거리자, 마리네가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여기 오기 전에 갈림길 있죠? 거기서 헤어졌어요! 아직 멀리는 못 갔을 거예요!”


그는 팔을 휘적거리며 위치를 설명했다. 경비병 중 하나가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구간이 있는 쪽이로군. 여기서 그다지 멀지 않아.”


“그럼, 너희들은 그 부근을 수색해봐. 내가 이분들을 지구대로 안내할 테니. 소대장에게 순찰 루트를 이탈한 것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하니까.”


“엑?”


일행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당장 아이들을 찾아 부리나케 달려가도 모자랄 판에, 지구대로 가야 한다니? 경비병 중 하나가 그의 말에 반박하고 나섰다.


“무슨 소리? 이 아가씨는 내가 호위하고 가겠다. 너희 같은 풋내기들에게 맡길 수야 없지.”


“어허어, 실력도 없는 놈들이 나서기는. 이런 건 내가...”


이야기가 요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데루루피아의 가녀린 연기가 정통으로 먹힌 모양이었다. 여기서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그러실 필요까진 없어요. 일단 제 가족이고, 같이 찾으러 가는 편이 훨씬...”


옆에 있던 경비병이 그윽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은근슬쩍 그녀의 어깨에 손을 걸치며 말했다.


“걱정하시는 마음은 알겠지만, 아가씨 같은 미인이 돌아다니기엔 밤거리가 너무 위험하답니다. 아직 그 강도들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일단 여러분들은 안전한 지구대에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사건 경위에 관한 조서도 작성해야 하니까요. 조카 분들의 신변은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


도리가 없었다. 여기서 더 뺐다간 오히려 의심을 살지도 몰랐다. 지금은 꼼짝없이 지구대로 끌려가야 할 판이었다. 그때 디리터가 손을 들었다.


“전 괜찮으니까 아이들 찾는 거 돕게 해주시죠.”


경비병들이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하나같이 ‘얜 또 뭐야?’라는 듯한 의아한 눈빛이었다. 사실 그들은 데루루피아에게 정신이 팔려 근처에 있는 일행에겐 눈길조차 주고 있지 않았었다. 그들은 뒤늦게 주변에 있는 청년들이 그럴듯한 무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까이 있던 경비병이 말했다.


“음...자네는?”


“에...그러니까...지금 찾으러 가는 애들의 이웃사촌입니다. 어차피 조서 작성은 한두 명이면 충분하잖아요? 이래 봬도 델키아 방어대 소속 레인저거든요. 방해가 되진 않을 겁니다.”


“델키아의? 흠, 뭐 걱정하는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뭐 괜찮겠지. 그럼 같이 감세.”


데루루피아와는 달리 그의 동행은 단박에 결정되었다. 그녀를 제외한다면 다른 뜨내기들은 어찌 되든 좋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칼롯도 나섰다.


“나도 같이 가겠소.”


“뭐...마음대로 하시구려.”


마리네가 자기도 같이 가자고 말하려고 입을 벌렸으나 제리온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는 마리네의 머리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그자들 실력은 네가 당해낼 만한 것이 아니야. 일단 우리는 빠지자.”


“하지만...”


“네 마음은 알아. 하지만 너나 나나 지금 상황에선 방해만 될 뿐이야.”


마리네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또다. 5년이나 흘렀는데도, 자신은 여전히 무력하다. 또 무작정 기도만 해야 하는 건가? 자신이 어리다는 사실이 통탄스러웠다. 그의 풀이 죽은 표정을 눈치 채고 디리터가 다가왔다. 그는 마리네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켁켁! 뭐...뭐하는 거야.”


“우리 귀여운 막내. 넌 제리온이랑 같이 루루 누님 도와드리고 있어. 루도랑 니암은 내가 책임지고 찾아올 테니까.”


“피이, 뭐야 그게.”


디리터는 그가 걱정하지 않도록 힘을 실어 또박또박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책임지고, 찾아올게.”


마리네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디리터와 이칼롯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응, 알았어.”


데루루피아와 제리온은 느끼한 병사의 안내를 받으며 지구대 쪽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조심해서 다녀오라며 신신당부했다.


“알았지? 애들은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야. 위험할 것 같으면 무조건 도망쳐.”


“맡겨둬. 난 이런 일 전문이라고.”


짧은 정비가 끝나자, 디리터와 이칼롯은 경비병들과 함께 아이들이 헤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


“하아....”


루도는 니암의 어깨를 꽉 끌어안은 채 가쁜 숨을 내쉬었다. 니암 역시 루도를 붙든 손을 놓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그들은 떨어지지 않았다. 문밖으로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발소리가 들렸다. 간혹 어두운 실루엣이 창문을 스치고 지나갈 때면, 아이들은 어깨를 흠칫 떨며 몸을 웅크렸다.

광휘의 결사는 아이들을 놓친 지점의 수색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이 거리의 대부분은 일반 주민들이 사는 가옥인데, 다짜고짜 집 문을 두드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집주인이 쉽게 수색에 응할 리도 없고, 자칫 잘못하다간 경비대의 눈에 띌 수도 있었다.

창가에 서 있던 남자가 커튼 사이로 바깥의 동태를 살폈다. 움직임을 보아 이 집에 들이닥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커튼을 치고, 웅크린 루도를 향해 다가왔다.


“차 한 잔 하겠나?”


루도는 사양하려 했으나, 이내 자신의 몸이 아직도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깨를 움켜쥔 손가락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니암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가 보기에 자신들은 아마 사시나무가 떠는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루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립니다.”


남자는 차를 가지러 서재로 들어갔다. 그는 늦은 시각까지 잠을 이루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러지 않았다면 루도가 문을 두드렸을 때 즉시 문이 열리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아이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광휘의 결사에게 들켰을 터였다. 루도는 그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크리드 루시올라, 안젤리카의 아버지. 짧게 인사를 나눈 것뿐이었으나, 그의 얼굴은 기억하고 있었다. 딸의 시신을 앞에 두고, 터져 나오는 눈물을 애써 억누르던 얼굴.

대문에 ‘루시올라’ 라고 써진 명패를 발견했을 때, 루도는 앞뒤 가리지 않고 문을 두드렸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 단어를 보자 구원이라도 받은 것처럼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그러나 위기를 벗어나고 보니 이리로 도망쳐온 게 잘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괜한 사람을 휘말리게 한 것은 아닐까? 뭐 굳이 따진다면 루도 역시 그 피해자 중 하나였지만,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크리드가 고풍스러운 자기 주전자와 찻잔을 들고 나왔다.


“약간 식었으니 이해해다오.”


조르르륵. 단지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은은한 라벤더 향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루도는 라벤더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낯선 사람을 만나 당황하던 니암도 그의 모습을 보고는 쭈뼛거리며 잔을 들었다.


“후우...”


포근한 온기가 몸 안에 퍼졌다. 크리드는 턱을 괸 채 루도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루도가 그의 시선을 눈치 채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기...저 사람들은...”


“일단 차부터 마시거라. 자세한 이야기는 마음을 추스른 후에 하도록 하지.”


아이들은 말없이 차를 마셨다. 따뜻한 차를 모두 마시고 나니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루도는 빈 찻잔을 정중하게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잘 마셨습니다. 이제 괜찮아요.”


아직도 밖에서는 아이들을 찾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발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문득 헤어진 마리네가 걱정되었다. 무사해야 할 텐데...

크리드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5년 만인가? 많이 컸구나.”


“저를...기억하시는 건가요?”


“딸아이의 임종을 지켜주었다고 했지. 내가 해야 했을 일이었는데. 은인의 얼굴을 어찌 잊겠느냐? 언젠가 한 번 감사의 뜻을 표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며 크리드는 씁쓸하게 웃었다. 루도 역시 그의 서글픈 표정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려왔다. 그는 몇 년 사이 몰라보게 수척해져 있었다. 그 듬직한 체구는 여전했으나, 윤기나던 머리칼은 하얗게 세어버렸다. 그의 얼굴에 진 주름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기사라기보다는, 병든 중년남자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크리드와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양쪽 다 워낙 슬픔에 젖어 있어서 말을 걸 만한 경황이 없던 탓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너그럽고 인자했다.

아이들의 떨림이 잦아들자, 크리드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까 보니...괴한들에게 쫓기는 모양이더구나.”


“네...네에. 염치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달리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서...”


그는 나직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아니다. 딸아이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는 것은 기사로서의 당연한 도리지. 그런데...왜 쫓기고 있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까?”


루도는 잠시 대답을 피한 채 머뭇거렸다. 고개를 돌리니 니암이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그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크리드가 말했다.


“딸아이는...산적에게 잡혀갔다고 했었지. 정말로 그랬던 건가? 너와 함께 왔던 람카디스라는 남자는 얼핏 보아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고 있었지. 그게...그가 해주었던 말이 진실이었나?”


“그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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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9) +2 15.04.06 903 31 12쪽
107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8) +4 15.04.06 865 29 12쪽
106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7) +3 15.04.05 995 26 12쪽
105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6) +1 15.04.05 900 29 10쪽
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90 31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805 29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96 28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7 30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33 29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73 34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7 32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90 26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91 26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84 28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28 26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49 33 11쪽
92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98 29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52 27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49 30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80 32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72 35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52 34 13쪽
86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16 34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24 36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54 35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84 32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19 38 16쪽
81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88 34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25 37 14쪽
79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28 39 19쪽
7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45 34 18쪽
77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23 40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30 34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53 34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50 35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77 39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93 35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26 44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7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45 35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27 36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24 33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92 39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300 36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8 45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61 36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83 40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7 38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31 39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74 35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3 15.03.28 1,022 36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7 40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32 46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73 47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9 42 20쪽
»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14 45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63 51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43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82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51 46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9 4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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