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루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음박질쳤다. 그의 달리기 속도가 결코 느린 편은 아니었으나, 상대 역시 진노하여 뛰어오고 있었다. 아케니온 용병단은 진형을 부채꼴처럼 넓게 펼친 채 소몰이하듯이 루도를 몰아갔다. 그들의 성난 발소리가 루도의 귓전을 때렸다. 그들이 모두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온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쭈뼛거렸다.
광장을 벗어나자 드넓은 밀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듬성듬성 초가집들이 들어서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마땅히 몸을 숨길 곳조차 없었다. 시야가 트인 곳으로 가봤자 좋을 것 없다는 생각이 미치자 루도는 그대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다시 건물이 밀집된 곳으로 들어갈 생각으로 밀밭 외곽을 달렸다.
다행스럽게도 루도와 아케니온 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들지 않았다. 아케니온은 대부분이 무거운 사슬 갑옷을 입고 있어서, 간편한 무장의 루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성질이 난 몇몇이 돌이며 단검을 던지기도 했으나, 달리면서 무작정 던진 거라 모두 빗나갔다.
“야, 이 망할 자식아!!”
뒤에서 들려오는 욕설을 들으니 더욱더 보폭이 넓어졌다. 그대로 거리를 벌리며 다시 상점가로 들어서던 순간이었다. 루도는 숨이 멎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 멈춰 섰다.
“윽...”
불과 몇 미터 앞에 무장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두 개의 쇼텔을 들고 있었는데, 날에선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근처로 자경단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시체가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루도는 재빨리 그 남자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조금 전 에레이시아의 집에 마법을 날리던 사내가 분명했다.
늘어진 자경단원들의 시체를 보자 불현듯 화가 치밀어 올랐다. 루도는 도망가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검을 들어 올렸다.
“너...!”
게네스는 덤덤하게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루도의 생김새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이내 그의 입가에 미소 비슷한 것이 지어졌다.
“약간 날카로운 눈에 짧은 머리의 흑발 소년. 네가 루도 클로람이로군. 이렇게 알아서 찾아와 주리라곤 생각 못했는데.”
마치 먹잇감이라도 취급하는 듯한 말투였지만, 루도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도움닫기 자세를 취한 채 말했다.
“네가 그 사람들을 죽인 거지?”
게네스는 ‘그 사람들’이라는 단어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내 그 말이 자신의 발밑에 깔린 자경단원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자, 그는 피식 웃었다.
“뭐, 그렇지. 쫑알쫑알 시끄럽게 굴더라고.”
그 말을 기점으로 루도는 그대로 게네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상대방의 기량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지 않은 상태라 위험했지만, 이대로 있다간 눈앞의 남자와 뒤쫓아 오는 사내들에게 포위될 염려가 있었다.
루도는 게네스의 어깨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게네스는 무난하게 막아내는 듯싶었으나, 검을 맞부딪히자 눈살을 찌푸리며 밀려났다. 그 틈을 노려 재빨리 그를 제치려 하는데, 쇼텔 하나가 호를 그리며 루도에게 쇄도해왔다. 루도가 막으려 하자, 쇼텔이 돌연 궤도를 바꾸어 그의 검에 걸쳐졌다. 게네스는 마리네에게 썼던 것처럼 무기를 걸쇠 삼아 그대로 당겨버리려는 속셈이었다. 그가 팔을 당기자, 루도의 검이 같이 딸려 들어갔다.
“아앗?!”
순간적으로 루도의 동공이 커졌다. 그는 검을 놓치지 않게 재빨리 팔에 힘을 주는 한편, 검을 비틀어 게네스의 무기를 튕겨냈다. 그가 반격하자 게네스는 의외로 선선히 검을 물렸다. 그는 오른팔에 난 상처가 쓰라린 듯 잔뜩 이마를 찌푸렸다.
“얕아도 검상은 검상이라는 건가...마리네 캄블러도 제법이군.”
“...!! 너, 마리네를 쫓아간 거였군.”
그에게서 마리네의 이름이 나오자 루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혹시 마리네가 이미 그에게 당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자 머릿속이 분노로 요동쳤다. 루도는 당장이라도 다시 달려들 것처럼 으르렁댔다.
“마리네를 어떻게 했어, 이 개자식아!!”
그가 거칠게 소리쳤다. 하지만 게네스도 잔뼈 굵은 용병인지라, 그런 위협엔 콧방귀도 끼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미끼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뛰쳐나온 놈이랑 창가에 앉아있던 놈이 달랐거든. 뭐, 어쨌든 걱정하지 말라고. 죽이긴커녕 이렇게 보기 좋게 한 방 먹고 도망쳐오는 길이니까.”
루도는 얼굴을 찡그렸다. 아케니온을 발견하자마자 몸을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그 짧은 사이에 마리네의 인상착의를 기억했을 줄이야.
그가 게네스와 검을 맞대는 사이 그를 쫓던 아케니온 일당도 상점가에 들어섰다. 허겁지겁 달려오던 그들은 게네스를 발견하자 환성을 질렀다.
“게네스! 그 자식 놓치면 안 돼!”
게네스는 싱긋 웃으며 쇼텔을 빙글빙글 돌렸다.
“자, 이제 어떻게 할 셈이지? 무기를 버리면 편하게 보내주마.”
루도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앞뒤로 포위된 형국. 절륜한 고수가 아니고서야 이 난관을 타개하기란 어려워 보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람카디스가 가르쳐준 구절을 되새겼다.
‘침착, 통찰.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 폭발 소리를 못 들었을 리 없어. 반드시 나를 구하러 와줄 거야.’
일행이 적시에 나타나줄 거란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루도는 동료들이 자신을 지원하러 와줄 것을 굳게 믿었다. 혼자 이 인원을 전부 상대하긴 불가능하지만, 동료가 올 때까지 버틸 자신은 있었다. 그는 로샤단을 떠나며 정했던 맹세를 다시 되 읊었다.
“난 죽지 않아...절대 못 죽어.”
그를 포위한 사내들은 곧바로 공격해 들어오진 않았다. 십여 분가량 추격전을 펼치느라 체력이 다소 빠진 상태여서, 다들 숨을 고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루도의 미끼작전은 실패였지만, 게네스가 자신의 실력을 과신해 단신으로 마리네를 쫓아간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루도야 워낙 달리기가 빨라 이렇게 몇 분이고 도망칠 수 있었지만, 마리네 쪽은 에레이시아와 아렌베일 때문에 이동속도가 현저히 느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게네스가 병력을 두어 명이라도 더 마리네 쪽으로 돌렸더라면, 마리네와 아렌베일은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루도가 꽁무니에 적들을 붙이고 이리저리 도망치며 시간을 번 덕분에 디리터와 이칼롯이 서둘러 그를 구하러 올 수 있었다.
게네스는 포위된 루도를 좌절시킬 생각으로 떨어진 일행의 얘기를 꺼냈다.
“다른 녀석들이 도우러 오길 기다리는 건가? 아쉽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 이미 우리보다 훨씬 더 뛰어난 인물이 그쪽으로 갔으니까. 아마 지금쯤 이마에 화살이 꽂혀있을 거다.”
그는 루도가 당황하는 모습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루도는 환한 미소를 지어 그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게네스의 뒤편으로 디리터와 이칼롯이 나타난 것이었다. 디리터가 게네스의 말을 듣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화살이 꽂혀? 내 이마 한 번 보고 그런 소릴 지껄여라.”
갑작스런 그들의 등장에 아케니온은 일제히 웅성거렸다. 가장 놀란 것은 그들의 죽음을 믿어 의심치 않던 게네스였다. 그는 믿기지 않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이...이칼롯 제르비안, 디리터 아쟉스?”
“그래, 나다. 넌 뭐 하는 놈인데 멋대로 멀쩡한 사람을 죽었다고 하냐?”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아케니온 일당은 눈에 띌 정도로 동요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누구도 그들의 사망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디리터와 이칼롯은 당당하게 살아 돌아왔고, 그것은 즉 안개송곳니의 패배를 의미했다.
게네스를 사이에 두고 일행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모두 어딘가 약간씩 그을린 모습에 여기저기 흙자국이 보였지만, 특별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이칼롯이 당차게 검을 들고 있는 루도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아직 멀쩡하군.”
아케니온이 머뭇거리는 사이 제리온이 뒤늦게 일행에 합류했다.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욕설을 늘어놓았다.
“으아, 헉헉! 어우 썅! 좀 같이 가자고, 이 빌어먹을 머저리들아!”
제리온마저 모습을 드러내자 게네스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제르카엘시온 멜피드...”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제리온의 풀네임이었다. 자신의 본명이 처음 보는 남자의 입에서 들리자, 그는 곧장 눈을 찌푸렸다.
“앙? 넌 또 뭔데 내 이름을 알고 있냐? 빚쟁이야?”
게네스는 그의 빈정거림은 산뜻이 무시하고 물었다.
“마체르담은 어떻게 됐지? 분명 너희를 처리하러 갔을 텐데.”
“마...뭐? 혹시 그 재수 없는 궁수를 말하는 거라면, 죽었는데.”
안개송곳니의 일원이 죽었다. 루도 일행은 몰랐지만, 그것은 아케니온 용병단에겐 실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제리온의 대답에 아케니온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마...마체르담이 죽었다고? 말도 안 돼!”
“어이, 어이. 농담하는 거지? 마체르담이 너희 같은 애송이에게 패했다니, 그걸 믿으라는...”
그들은 처음엔 안개송곳니의 패배를 부정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들은 그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루도 일행이 버젓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가장 뚜렷한 증거였으니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리네가 멀리서 말을 몰고 나타나자, 그들은 이제 완연히 당황한 기색을 띠었다. 얼마 전 하르만의 산적들이 보여줬던 공황이 그들에게도 나타난 것이었다. 하지만 게네스는 하르만과 달리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그는 동료들이 전투의지를 잃었다는 것을 깨닫곤 신속히 명령했다.
“그만! 다들 물러서. 일단 제랄드 대장에게 돌아간다.”
그는 디딜 곳을 찾아 근처 지붕으로 올라간 후, 눈 깜빡할 사이에 루도를 지나쳐 무리에 합류했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났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퇴각하기 시작했다. 아케니온이 등을 돌리자, 잠자코 있던 루도가 게네스를 비웃었다.
“도망치는 거야? 아케니온 용병단도 보잘 것 없네.”
아케니온은 이동을 멈추지 않았지만, 루도의 도발에 몇몇은 눈에 보일 정도로 살기를 뿜어냈다. 게네스가 그들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착각하지 마라. 후퇴와 패배는 별개의 문제지. 죽은 건 마체르담 뿐이야. 우리가 언제고 네놈들 목을 베러 찾아갈 거라는 걸 잊지 마라.”
일행은 굳이 아케니온을 추격하진 않았다. 여전히 숫자로는 로샤단 쪽이 열세였고, 오늘 전투의 수훈장이라 할 수 있는 제리온이 피로가 누적돼 손사래를 쳤기 때문이었다.
말을 몰고 온 마리네가 루도의 모습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야호! 루도오, 무사했구나!”
“여어! 너야말로. 어떻게 저 남자를 이긴 거야?”
아케니온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야 끝났다는 생각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각자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있을 즈음, 이칼롯이 문득 생각난 듯 질문을 던졌다. 미처 승리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그의 물음에 루도도, 마리네도 사색이 되어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가 쫓던 마법사는 어떻게 된 거지? 뭐 정보 알아낸 것 없었어?”
일행은 서둘러 짐을 챙겨 마을을 떠났다. 뒤늦게 도착한 자경대가 일행을 이번 소동의 주범으로 오인해 체포하려 했지만, 에레이시아의 도움으로 간신히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자경단은 사건 조사의 명목으로 일행이 마을에 체류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언제 아케니온이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에 계속 한 자리에 머물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칼롯은 자신들이 델키아 정규군 소속이고, 특수임무 수행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들을 설득시켰다.
말을 모는 동안에도 마리네와 제리온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이야기의 주제는 누가 더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느냐는 것이었다.
“진짜! 정말로! 거짓말 안 하고 오늘 열 번은 족히 생사를 넘나들었다니까!”
“아 나, 이 자식이. 그런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놈들에게 쫓긴 걸 가지고 목숨 운운하는 거냐? 너 화살이 폭발하는 거 봤냐? 내 장담하는데, 이 몸의 환상적인 판단력이 없었다면, 저 무능한 두 인간은 지금쯤 꽥이지, 꽥!”
둘이 어린애 같은 주제로 논쟁하는 동안, 한쪽에선 디리터와 에레이시아가 한창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일행이 마을을 떠나려 하자, 에레이시아는 자신의 집값을 물어내라며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 굳이 말하자면 로샤단도 피해자 쪽이었지만, 일행 때문에 그녀의 집이 습격당한 것도 사실이니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노잣돈도 델키아 외곽경비대에 빌려온 마당에 집을 물어낼 만한 돈이 있을 리 없었다. 누구도 돈을 내주겠노라 선뜻 나서지 못하자 그녀는 급기야 일행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내 집 못 물어내겠다면, 자경단에 당신들이 내 집을 폭파한 범인이라고 증언하겠어요. 모르긴 몰라도 혐의를 벗으려면 한 달은 족히 기다려야 할 걸요.”
“아니, 이봐 아가씨. 아가씨도 우리가 급습당하는 거 다 봤다며? 그런데 정말 이러기야?”
디리터가 그녀를 설득하려 했으나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말 이러기에요? 댁들 덕분에 난 이제 길바닥에서 굶어 죽게 생겼단 말이에요!”
“돈이 있어야 줄 거 아니냐고!”
점점 서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할 즈음, 둘을 지켜보던 제리온이 심드렁한 얼굴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럼 우리랑 같이 류이너스 교단으로 가십시다. 거기서 대신 갚아줄 테니까.”
“아 그러니까! ....정말요?”
에레이시아는 보기와는 달리 당차고 야무진 성격이었다. 집값을 얻어낼 방법이 나오자 그녀는 주저 없이 일행을 따라나서기로 결정했다. 그녀가 옷가지며 여행용품을 챙기는 동안, 마리네가 불안한 마음에 제리온에게 물었다.
“저기, 방금 한 말 정말이야? 교단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그는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무표정하게 답했다.
“없는데.”
“그...그럼 다 순 거짓말이라는 거잖아. 나중에 어떻게 해결하려고 그래?”
“얌마, 로샤단이랑 류이너스 교단이랑 긴밀한 협력관계였다는데, 고작 집 한 채 못 사주겠냐? 거기다 우리도 피해자라고. 위자료 정도는 받을 권리가 있다- 그 말이지. 뭐 별로 기대는 안 하지만, 카토르가 교단에 쌈짓돈 맡겨 놓았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런가?”
언젠가 그가 지금과 비슷한 똥배짱을 부리다 이칼롯에게 전 재산을 갈취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심지어 제리온 자신을 비롯해- 아무도 없었다.
여분의 말이 없었으므로 에레이시아는 가장 몸집이 큰 디리터의 말에 함께 타게 되었다. 마리네와 제리온이 옆에서 무용담을 늘어놓는 동안에도 둘은 돈 문제로 옥신각신 싸웠다.
“이봐 에리, 우리도 아케니온이란 놈들한테 습격당한 거라니까? 피해자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건 대체 어느 나라 법이야?”
“그럼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를 나 몰라라 하는 건 어느 나라 법이니? 정 돈을 못 내겠으면 그 아케니온이란 작자들에게 받아서 나에게 주면 되겠네.”
“아까부터 계속 보상~보상 노래를 부르는데, 우리도 말이야, 고작 며칠 전에...어휴, 그만 하자.”
“류이너스 교단에서 대신 갚아준다면서? 그런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니? 나도 뭐 좋아서 따라나선 줄 알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쫄쫄 굶어 죽게 생겼단 말이야!”
디리터는 그녀와 통성명을 하자마자 그녀를 ‘에리’라는 약칭으로 불렀고, 에레이시아 역시 자연스럽게 그와 말을 놓았다. 곁에서 보기엔 마치 원래부터 둘이 알고 지내던 사이인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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