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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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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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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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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1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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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DUMMY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내가 헛것이라도 봤다는 거냐?!”


외팔이 역시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원수라 여기고 있었는데, 막상 이런 뜬금없는 소리를 들으니 다들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분명히 보았다고 했고, 소년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날 그 자리에 있었지만, 로샤단이 아니었던 사람.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서 있는데, 문득 오래전 기억이 마리네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흥분하여 외팔이의 어깨를 붙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당신! 정체가 뭐죠? 안개송곳니가 아닌 건가요?!”


그는 어깨를 붙잡히자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팔이 잘린 쪽은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리네가 놀라서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외팔이는 고통보다도 마리네가 한 이야기에 더 동요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상처부위를 부여잡은 채 한참을 씩씩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후우...후우...안개...그게 뭐야. 나는 아렌베일, 아스트리카 마법근위대 소속이다.”


“뭐라고?!”


루도의 검에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수일을 달려 겨우 범인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안개송곳니가 아니라니. 게다가 아스트리카는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점점 영문 모를 이야기만 계속되고 있었다.

그의 검이 아렌베일의 목 앞에서 격하게 흔들렸다. 아렌베일 자신은 신경 쓰고 있지 않았지만, 언제 실수로 동맥을 베일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뒤에 있던 에레이시아가 그 위태위태한 광경을 보고 루도를 말렸다.


“이봐요! 일단 그 검부터 치워요. 내가 보기엔 뭔가 양자 간에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하지만 이 자는...”


루도는 머뭇거렸다. 그라고 의혹이 생기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검을 물렸다간 다시금 나아갈 방향을 잃고 방황하게 될 것 같아 두려웠다. 그가 주저하자, 마리네가 대신 그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검을 내렸다.


“아무래도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 일단 이야기부터 해 보자.”


에레이시아가 그 광경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대화로, 말로 해결하라고요. 무턱대고 칼부림부터 하지 말고.”


***


에레이시아가 의자를 하나 가져와 침대 곁에 놓아주었다. 루도는 사양했지만, 그녀는 편하게 앉아서 이야기할 것을 간곡하게 부탁했다. 몸이 안정돼야 마음에도 평정이 찾아온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었다. 결국 루도는 그녀의 권유대로 의자를 당겨 앉았다.

이야기는 루도가 먼저 시작했다. 그는 로샤단이 습격당했던 일, 자신을 비롯해 몇몇만이 살아남은 일, 복수를 위해 아렌베일을 찾아온 일 등을 조곤조곤 설명해 나갔다. 하지만 그는 람카디스가 ‘신과 연관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는 것과, 그가 류이너스 교단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검을 거두었다고 해서 아렌베일에 대한 의심을 지운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자신의 사정을 얘기하는 동안, 마리네는 창밖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식료품을 구하러 간 셋은 어디로 간 건지 도무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직접 그들을 찾아 나설까 생각도 했지만, 그 역시 아렌베일의 증언을 듣고 싶었기에 다락에 머물렀다.

루도가 막 말을 맺었다.


“그리고 남는 하나의 팔을 증거 삼아 여기까지 쫓아온 것이죠. 그럼 이제, 당신의 변명을 들어볼까요?”


그의 냉랭한 말투에도 아렌베일은 초연한 모습이었다. 그는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댄 채 지그시 눈을 감았다. 다행히 통증도 많이 가라앉아 처음과 달리 호흡도 안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는, 천천히 눈을 뜨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가장 처음으로 부상을 입었다. 단장의 명령으로 황급히 그 자리를 이탈했지만, 내 동료들이 너희 건물에 마법을 날리는 것은 분명히 목격했지.”


“이...뭐야! 결국!”


루도가 다시 흥분하여 몸을 일으키자, 아렌베일은 말없이 왼팔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잠자코 듣고 있으라는 뜻. 루도는 이를 갈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우리 근위대가 로샤단을 공격한 것도, 너희가 우리 단원을 죽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너희와 싸우려고 했던 것은 아니야.”


얘기가 길어지겠다는 생각에 마리네는 아예 창틀에 걸터앉았다. 그는 마을 거리를 응시한 채 말했다.


“계속 해봐요.”


“하, 여기까지 온 이상 뭘 더 숨기겠나. 우린 2주일 전 왕에게서 뜬금없는 명령을 받았다. 내용은, 리크나이츠에 있는 로샤단이라는 레인저 길드를 말살하라는 거였지.”


“....그래서요?”


“어이없다 못해 웃기는 명령이었어. 우린 마법사지, 척살부대가 아니니까. 당연히 우리는 이에 이의를 제기했지. 왜 우리가 그런 임무를 맡아야 하는지, 로샤단이라는 길드가 왜 궤멸해야 하는지. 왕은 꼭 우리가 이 일을 맡아야 한다는 뜻 모를 소리만 웅얼대더군. 그리고 그 이유로는...”


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대낮인데도 어둠이 깔린 것처럼 시야가 침침했다. 루도는 깍지를 낀 채 그의 얼굴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고통으로 이마가 찡그려져 있긴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얼굴은 아니었다.

아렌베일은 잠시 다음 구절을 이야기해도 되나 머뭇거렸지만,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로샤단이 신의 아이를 각성시키려 하고 있으니,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는 거였지. 신의 아이라니, 마법사에겐 그보다 더 좋은 흥밋거리가 있을 수 없지.”


“......!”


소년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카토르의 일지에 이어, ‘신의 아이’라는 단서가 다시 한 번 그 꼬리를 나타낸 것이다. 정말로, 로샤단이 쫓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루도는 요동치는 심장을 간신히 억눌렀다. 진위에 대한 추론은 나중으로, 지금은 그의 이야기를 마저 들어야 했다.


“그래서요?”


“그래도 우리가 못 미더워하자, 왕은 임무를 달성할 경우 앞으로 우리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해줄 것을 약속하더군. 그건 다르게 생각하면 절대 거절하지 말라는 협박이기도 했지. 우린 결국 임무를 승낙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왕에 대한 의혹을 지운 것은 아니었어. 우린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군인들하곤 다르니까.”


그는 그때 일을 생각하자 다시 분노가 치미는 듯 왼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아스트리카 국왕을 ‘폐하’가 아니라 단순히 ‘왕’이라고 낮춰 부르고 있었다.


“미심쩍은 게 한둘이 아니었어! 왕은 어딘가, 넋이 빠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아니,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몽롱해 보였어. 언제부턴가 그는 우리 마법근위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기 시작했지. 그런 모습을 보고도 순순히 임무에 집중할 수는 없었다. 왕이 변한 것, 신의 아이, 로샤단. 왜 왕은 로샤단을 말살하라고 한 거고, 왜 그 임무를 우리에게 맡긴 걸까? 단장은 그 답을 로샤단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그래서 대화를 하기 위해 그날 로샤단을 찾아간 거다.”


“그리고 하얀 머리를 한 남자가 당신을 습격했고, 그를 로샤단이라 오인하여 전투를 개시한 거군요.”


루도가 그를 대신해 말을 끝맺었다. 그는 깍지를 낀 채, 말없이 아렌베일을 바라보았다. 그가 말하는 게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안개송곳니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었다. 하지만 아렌베일의 굳은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니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 역시 루도의 의중을 읽었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날 불신하는 걸 알고 있다. 죽이려면 언제든 죽여. 난 이미 저항할 기력조차 없으니까.”


루도는 눈을 돌려 마리네를 향했다. 그 역시 머리가 아픈 듯 잔뜩 이마를 찌푸리고 있었다.

루도는 만약 아렌베일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그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지만, 여차하면 로샤단을 공격하려 했었고, 또 그의 동료들은 실제로 로샤단에 마법 세례를 퍼부었다. 하지만 선제공격을 한 게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점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만약 현장에 있었던 시체들이 모두 마법근위대의 것이라면, 최초로 아렌베일을 습격했던 남자는 누구일까?

두말할 것도 없었다. 루도와 마리네는 동시에 같은 답을 도출해냈다.


“마법근위대도, 로샤단도 아니라면 나머지는 안개송곳니뿐이야.”


“확실히. 루도, 예전에 기억나? 수호기사단과 광휘의 결사가 싸울 뻔 했던 거. 루루 아줌마는 그걸 제3자의 교란책이라고 말했었잖아.”


“안개송곳니가 로샤단과 마법근위대에게 싸움을 붙였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응. 놈들은 눈엣가시인 로샤단의 섬멸에 마법사들을 끌어들인 거야. 아마 우리도 감쪽같이 죽일 생각이었겠지만, 알룬도의 배신 덕에 실패한 거지.”


“미치겠네. 그럼 여기까지 헛걸음한 거잖아. 애초에 그 안개송곳니란 녀석들을 어디서 찾아?”


“나도 그 생각해 봤는데, 알룬도의 말대로라면...”


한창 둘이 토의에 빠져 있는데, 잠자코 듣고 있던 아렌베일이 말을 끊고 들어왔다.


“자, 잠깐! 잠깐만!”


그는 매우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금껏 자신을 습격한 이가 로샤단일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의 소년들은 제3자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로서는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와 로샤단에게 싸움을 붙인 게 그 안개송곳니라는 녀석들이라 그 말인가? 그럼 테론 왕도 안개송곳니와 관련이 있다는 말인데...아니, 그럴 리가 없어.”


그는 자신의 추론을 부정했다. 아무리 왕이 마법사를 싫어한다 하더라도, 마법근위대는 엄연히 정규군 소속이었다. 그런 정예부대를 사적인 감정으로 사지에 내몰 만큼 왕이 바보일 리는 없다. 하지만 정말로 신의 강림을 저지하기 위해 자신들을 보낸 거라면, 어째서 안개송곳니라는 자들과 협력하라 하지 않은 건지 의문점이 남는다.

결국, 로샤단과 마법근위대가 동시에 사라져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렌베일은 손톱을 깨물며 그 이유를 추론하기 시작했다.


“신의 아이를 저지하는 게 목적이라면...그럼 우릴 죽일 필요가 없어. 애초에 우린 마법사일 뿐, 그 문제에 대해 깊이 파고들진 않으니까...그럼 어째서?”


그가 혼자 중얼거리고 있자, 루도가 다시 그의 곁으로 의자를 끌었다. 어쨌든 아스트리카 마법근위대가 안개송곳니와 연관이 있다는 건 분명해 보였고, 그에게서 최대한 정보를 캐내는 것이 앞으로의 행보에 앞서 필요했다.


“당신, 신의 아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죠? 정말로 신이 이 땅에 강림하는 건가요? 그...펠아람이니 루프리모니 하는 것들이.”


“음? 모르고 있던 건가? 하긴, 일반인이라면 절대 알 수 없는 사안이지. 아니, 넌 일반인이 아니라 로샤단이잖아?”


루도가 그와 대화하는 동안에도 마리네는 계속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황이 점점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지금, 한시라도 빨리 이 사실을 다른 셋에게도 알려야 했다.

계속 똑같은 풍경만 바라보고 있느라 지루하다고 느낄 때쯤, 멀리서 한 무리의 사내들이 광장을 향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이제야 이칼롯 일행이 나타나나 싶어 크게 소리를 지르려다가 갑자기 눈이 커지며 황급히 창문을 닫았다.

그의 요란스런 동작에 다들 말을 멈췄다. 루도가 웬 호들갑이냐며 핀잔을 주려는데, 그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음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마리네는 창을 살짝 열어 바깥 상황을 확인하고는 다시 화들짝 놀라 몸을 숨겼다.

불안한 마음에 루도가 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창이 닫혀 밖에서는 안의 상황이 보이지 않을 것인데도 마리네는 창문에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그는 다락을 부산하게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루..루도! 저기, 알룬도가 분명히 말했었지? 아케니온 용병단이 우리를 추격할 거라고...”


“어, 뭐 그랬었지. 그런데, ....진짜?!”


루도 역시 동작이 급해졌다. 그는 후다닥 달려가 마리네처럼 창문 틈새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는 어렵지 않게 십여 명의 무장한 사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에레이시아의 집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는 중이었다. 루도는 황급히 검집에 손을 가져갔다.


“어...저 사람들이 그거라고?”


“그게 아니면 이런 시골마을에 용병들이 나타날 일이 뭐가 있겠어!”


“아니, 젠장! 그런데 우리 위치를 어떻게 안 거야! 이렇게 빨리 나타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물론 우릴 찾는 게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디리터랑 이칼롯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혹시 벌써 당한 건 아니겠지?”


“서...설마!”


아렌베일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가운데, 둘은 공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아케니온이 쫓아왔을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서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십여 명이 무장한 사내들. 잘 봐줘도 이길 확률은 전무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미처 고민할 틈도 없이, 1층에서 거세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계시오!!”


문이 울릴 때마다 가슴도 함께 고동쳤다. 루도와 마리네는 그 자리에 숨이 멎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혹 아무도 없는 척하면 그냥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는데, 1층에서 에레이시아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예~! 나가요~!”


어째서 그녀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걸까. 사고가 격렬하기 회전하기 시작했다.


“무...문 열면 안 되는데.”


“말려!”


둘은 동시에 1층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



레오스는 본디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때문에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애로사항이 일어나려야 일어날 수가 없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열 명도 넘는 검객들이 마을광장에 들어서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주민은 논두렁에 나가 그들의 모습조차 보지 못했지만, 마을에 남아있던 이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창을 열고 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게네스는 목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여기저기서 자신들을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관절이 굳어 있는지 그가 움직일 때마다 뚜둑거리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뒤에 있는 동료들을 쓰윽 훑어보았다. 피로에 쩔어 있는, 게슴츠레한 눈동자들. 그들이 로샤단을 추격한 지도 어느새 일주일이 다되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아케니온이 안개송곳니에 전폭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해도, 이런 뜬금없는 임무는 언제나 의욕이 떨어지는 법이다.


“쳇, 안개송곳니도 별거 없군. 배신자가 생길 줄이야. 덕분에 우리만 귀찮은 일을 떠맡게 됐잖아.”


뒤에 있던 남자가 불만을 터뜨렸다. 다른 이들도 그에 동조하는 분위기였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크게 소리를 내진 않았다. 게네스가 피곤해하는 모두를 위로했다.


“어쩔 수 없잖은가. 그들이라고 몸이 열 개는 아니니까. 그래도 우리에게 수호기사단을 상대하라고 명령하지 않은 게 어디야?”


“싸우는 것보다, 싸우러 이동하는 게 더 짜증난다고. 거기다 여기까지 달려왔더니 고작 풋내기 레인저나 상대하라니. 우리가 언제부터 패잔병 처리반이 된 거야?”


“보수에 비해 지나치게 쉬운 임무라서 불만인가? 이런 날로 먹는 일거리도 흔치 않아.”


“그거야 그렇지만...그 안개송곳니 자식, 잘난 척 거들먹거리는 게 거슬린단 말이야. 혼자서 나머지 셋을 상대하러 간다니, 웃기지도 않지. 그 자식, 허세가 아니면 정말 살인에 미친놈이 분명해.”


게네스는 싱긋 웃어 보이는 걸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다른 이들도 자신들을 따라온 안개송곳니 단원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라고 다른 단원들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불쑥 합류해서, 자신이 모두 처리할 테니 방해나 하지 말라고 지껄여대는 남자를 보고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게네스는 그 이상 말을 꺼내진 않았다. 어쨌든 안개송곳니가 아케니온을 도우러 온 건 사실이고, 이를 최대한 이용하자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에게 있어 임무의 달성은 개인적인 자존심보다 우선순위에 있었다.


“...주인장이 늦는군. 낌새를 챈 건가...”


남 얘기 하듯이 무심히 말했지만, 그의 발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게네스는 양 허리춤에 걸린 쇼텔에 손을 가져갔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잔당이라 해도 솜씨 좋은 레인저들이니, 미리 발각되리라는 경우의 수는 이미 생각해 두고 있었다.

그의 의중을 눈치 챘는지 한 단원이 물었다.


“이대로 돌입합니까? 아니면...”


게네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품속에서 스크롤 뭉치를 꺼냈다.


“확실하게 가지. 태세를 갖춘 레인저는 상대하기 껄끄러우니까. 건물 채로 날려버리자고.”


“불구경 한번 거하게 하겠군요.”


다른 단원들이 키득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게네스는 제멋대로 접혀져 있는 양피지 사이에서 붉은 잉크가 칠해져 있는 것을 한 장 꺼내 들었다. 그는 건물이 한눈에 보일 정도까지 뒤로 물러났다.

레인저들의 눈썰미가 자신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경험 많은 실력자라 하더라도 건물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폭발에서 살아남진 못할 것이다.


“문을 열지 그랬소, 주인장. 뭐 어차피 죽는 건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는 스크롤을 손에 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바람이 멈추는가 싶더니, 붉은 빛덩이들이 스크롤을 중심으로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반딧불처럼, 혹은 모닥불 위를 날아오르는 잿가루처럼 서서히 한 점에 모이기 시작했다. 다른 단원들도 그 신묘한 광경에 탄성을 내질렀다.


“안개송곳니 자식들, 솜씨 하나는 인정해야겠군. 스크롤만 있으면 우리 같은 칼잡이도 마법을 쓸 수 있다니.”


“쉿, 머리 숙여. 까딱하면 휩쓸린다.”


게네스의 마법 시전에 마을 주민 몇몇이 놀라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아케니온 단원들은 키득거리며 그들의 표정을 즐겼다. 놀라기엔 아직 일렀으니까.

빛덩이들은 이제 한 점으로 뭉치고 있었다. 그리고 빛이 뭉쳐감에 따라 커다란 불덩어리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허공에서 격렬하게 회전했는데, 그때마다 천둥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쿠르르르....

이윽고 불덩어리가 성인 머리통만 하게 커지자, 게네스는 목전의 약초상점을 향해 외쳤다.


“블래스트 파이어볼(Blast fireball)"


불덩어리는 쏜살같이 날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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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6) +3 15.04.09 940 28 16쪽
118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5) +2 15.04.09 826 30 15쪽
117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4) +7 15.04.07 1,139 35 22쪽
116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3) +2 15.04.07 937 31 17쪽
115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2) +2 15.04.07 744 32 11쪽
114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1) +2 15.04.07 1,032 28 18쪽
11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4) +1 15.04.07 985 28 14쪽
11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3) +4 15.04.06 991 31 15쪽
11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2) +1 15.04.06 987 28 15쪽
11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1) +1 15.04.06 962 27 16쪽
109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0) +1 15.04.06 1,000 27 13쪽
108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9) +2 15.04.06 895 30 12쪽
107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8) +4 15.04.06 856 28 12쪽
106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7) +3 15.04.05 986 25 12쪽
105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6) +1 15.04.05 891 28 10쪽
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82 30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797 30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88 27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1 29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26 28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62 33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1 31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84 25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83 25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76 27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18 25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40 32 11쪽
92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88 28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40 26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39 29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74 31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63 34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42 33 13쪽
86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06 33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15 35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45 34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74 31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08 37 16쪽
81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78 33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15 36 14쪽
»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17 38 19쪽
7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35 33 18쪽
77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15 39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22 33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47 33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43 34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70 38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86 34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17 43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1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35 34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19 35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15 32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83 38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292 35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0 44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53 35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76 39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20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7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1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5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3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6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5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2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2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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