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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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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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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2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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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DUMMY

제폰은 잠시 동안 레이시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중대한 사실을 깨닫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있었다니, 역시 만만치 않은 남자였다.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난 꼬마라. 전장으로 생각해보면 아주 쉬운 문제야. 녀석이 도륙자로군.”


레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닐 가능성도 매우 큽니다. 가린워드 사건 자체가 확인되지 않은 사항이 너무 많고, 이 일지 또한 진위를 확인해봐야 할 테니까요. 또한 제랄드가 일부러 일지를 날조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일지를 덮었다. 이미 그는 결정을 내린 후였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인력을 돌린다는 것은 어느 정도 위험부담을 감수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루도 클로람의 존재는 이 모든 것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10년이 넘도록 단서조차 잡지 못했던 펠아람의 아이였다.


“아무리 희박한 가능성일지라도 달려들어야겠죠. 만약 진짜라면, 어설프게 상대하다가 각성이라도 해버리면 낭패니까요. 지금부터 루도 클로람을 ‘펠아람의 아이’로 간주하겠습니다.”


내색하진 않았으나, 둘 다 속으로는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 또 다른 신의 아이! 거기다 한 번 육체를 잃었던 펠아람의 아이라니. 레이시도 ‘그녀’ 이외에 다른 신의 아이가 나타날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맞춰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작전도 이미 짜놓은 상태였다. 11년 전 펠아람의 아이가 죽었을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었다.

그럼에도 신의 아이를 상대하는 일은 가변요소가 너무나 많았다. 5년 전 루프리모의 아이가 각성할 뻔했던 일은 류이너스 교단과 안개송곳니 모두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때문에 레이시도 내심 다른 신의 아이가 나타나지 않기를 기대하던 터였다. 항해 중에 풍랑에 대비하는 것과 실제로 풍랑을 만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법이다.


“네가 뭘 생각하는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라. 놈은 로샤단 소속이니까.”


제폰이 레이시의 의중을 간파하고는 짧게 충고했다.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루도 클로람이 우리에게 협력할 거란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를 좀 더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겁니다.”


제폰은 그 이상 말을 걸진 않았다. 그의 평소 상태를 생각하면 오히려 상당히 많이 떠들어댄 축에 속했다. 자신도 말이 너무 많았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주저 없이 뒤돌아서서 걸어갔다. 그리곤 쓸데없는 사심에 사로잡힌 자신을 탓했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어차피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펠아람의 아이든 뭐든, 로샤단의 말로가 전멸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는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고리를 잡고 당기는 순간,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와 그는 발을 멈췄다. 울음소리는 위층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어린 소녀의 흐느낌은 이미 온 저택 안을 휘감고 있었다. 다만 레이시의 집무실은 완벽하게 방음이 되어 있어 지금껏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깨닫자 제폰은 피식 웃으며 레이시를 바라보았다.


“신녀(神女)님이 또 울음바다를 만들고 계시군. 어서 가서 달래줘야 하지 않나?”


그로서는 드물게 농담을 한 것이지만, 레이시의 얼굴은 무겁게 굳어 있었다. 제폰이 사라지고 나자, 레이시는 천천히 방을 나섰다. 처음보단 가라앉았지만 소녀의 흐느끼는 소리는 좀처럼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2층 복도에 다다르니 하인들이 소녀의 방문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레이시를 발견하자 반색하며 허리를 숙였다. 하녀장은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연방 사과를 해댔지만, 레이시의 등장에 자못 안심하는 눈치였다. 하인들은 소녀를 대하기 어려워했고, 또 소녀 또한 레이시가 오지 않으면 쉽게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레이시는 소녀를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침대엔 프릴이 장식된 하얀 잠옷을 입은 소녀가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훌쩍거리고 있었다. 짙은 밤색 머리에 리본을 귀엽게 묶은 그 소녀는 그런 구슬픈 울음소리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녀는 방문이 열렸는데도 고개를 들려는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레이시는 낮게 한숨을 쉬고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로시느님.”


그제야 소녀의 얼굴이 번쩍 떠올랐다. 그녀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사정없이 레이시의 가슴팍에 파묻었다.


“레이시님! 으흐흑!”


그가 나타나자 로시느는 애써 억누르던 감정이 다시 폭발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레이시의 옷자락에 얼굴을 묻은 채 좀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레이시는 무덤덤한 얼굴이었지만 그녀가 진정될 수 있도록 등을 조용히 토닥거려주었다. 하인들이 곁에 있어봤자 웅성거리기만 할 뿐이었으므로 그는 방안에서 사람들을 모두 나가도록 했다. 어두운 방안에는 금세 레이시와 로시느 둘만 남게 되었다.

그녀의 발작적인 오열은 하루 이틀 된 것이 아니었다. 레이시는 로시느가 진정되길 기다린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또 그 꿈입니까?”


로시느는 대답 대신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오늘은 어떤 모습이었지요? 꿈에 나오는....또 다른 로시느님은요?”


“......”


그녀는 방금 꾸었던 꿈이 다시 떠올랐는지 금세 시무룩해졌다. 레이시는 굳이 그녀가 입을 열도록 재촉하진 않았다. 그저 그녀의 작은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조용히 커튼이 쳐진 창문만 바라볼 뿐이었다. 어두운 방안으로 정적이 흘렀다.

로시느는 한참이 흐른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 아이는 항상 울고 있어요. 사흘 전에도, 열흘 전에도, 한 달 전에도. 그걸 보고 있노라면 덩달아 가슴이 아파져서,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목 놓아 울어요. 아마 내일 꿈에도 절 찾아오겠죠?”


“그 아이를 만나는 게 두려우십니까?”


로시느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무서웠죠. 하지만 이젠 아니에요. 그 아이는 저를 해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거든요. 전 알 수 있어요. 그 아이와 저는 닮은 구석이 무척 많아요. 여태까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지만, 이제 점점 더 가까워질 거예요. 오늘 그 아이가 하는 말이 처음으로 들렸거든요.”


무심하게 듣고 있던 레이시의 눈이 번쩍 떠졌다. 지지부진하게 진척이 없던 계획에 드디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10년이 넘게 계획해온 일이 결실을 맺어 가는데도 레이시는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탐탁지 못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눠보셨습니까? 뭐라고 하던가요?”


로시느는 울적한 표정이었지만, 레이시를 위해 애써 미소 지어 보였다. 그 슬픈 미소가 더욱더 보는 이를 안타깝게 했다.


“그 아이도 레이시님을 무척이나 좋아해요. 종달새 우는소리도 좋아하고, 전번에 보았던 산간마을의 꼬마 아기들도 기억하고 있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로시느의 눈가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잠자코 듣고 있던 레이시도 산간마을 이야기가 나오자 곧바로 그녀의 우울을 파악해냈다. 모든 것이 그 자신이 계획한 일이었지만.


“그렇게 어여쁜 아기들이었는데...어째서 그런...그 아이는 너무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제 앞에 무릎 꿇은 채 엉엉 울었어요. 그때 보았던 아기들의 유해가 결코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새카맣게 타들어가던 나무들의 비명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고.”


아까처럼 목 놓아 울진 않았지만, 어느새 로시느의 뺨을 타고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레이시는 그녀의 눈물을 훑어주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깊어 곧잘 눈물을 보이곤 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광경들을 목격한 뒤로, 그리고 그 꿈을 꾸게 된 뒤로는 더욱 우는 일이 많아졌다. 차오르는 슬픔을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쏟아내고 쏟아내도 상처는 나날이 깊어져 갔다. 레이시는 그녀의 눈물이 그 어느 누구의 것보다 짜고 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로시느는 말을 이어갔다.


“전에는 들리지 않으리란 것을 알면서도 그 아이를 위로했었는데, 오늘은 그러지 못했어요.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점점 그 울음소리가 커져가는 거예요. 모기만 한 소리에서 나중에는 귀를 막아야 할 정도로...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그 아이의 목소리에 묻혀버리는 거예요.”


그녀가 너무나 서글픈 얼굴을 하고 있었으므로, 레이시는 여기서 대화를 끊기로 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십시오. 로시느님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답니다. 국가 간의 충돌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민간인의 희생을 동반하니까요.”


“그...그래도...”


“좋은 일만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이런 희생을 종식시키기 위해 저와 안개송곳니 단원들도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답니다. 제가 짜둔 계획이 모두 실행된다면, 곧 로시느님의 바람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로시느는 처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시무룩하게 앉아있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로시느야말로 레이시의 목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그의 지난 10년은 로시느를 위해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반케즈의 아이. 그녀는 신의 아이 중 유일하게 안개송곳니의 수중에 있는 인물이었다. 물론 조금 전 제랄드가 가져온 일지로 인해 상황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안개송곳니가 가진 최강의 패 중 하나였다. 펠아람의 저주만 그녀를 피해간다면, 그녀는 앞으로 브리토리스 왕국을 이끄는 승리의 여신이 될 것이다.


‘로시느를 섣불리 전면에 드러낼 순 없지. 특히 제랄드, 그자는 너무 거슬리는 존재야.’


분명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겠다, 이제 아반케즈의 각성도 목전으로 다가왔다. 아반케즈의 아이의 의식이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몇 번만 더 그녀를 자극하면, 육체의 지배권은 로시느에서 아반케즈의 아이에게로 넘어갈 것이다.

언제나와 같은 이야기로 그녀를 위로한 후 레이시는 방을 나섰다. 펠아람의 아이를 설득하러, 혹은 죽이러 가려면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았다.

로시느는 멀어져가는 레이시를 향해 무언가 말하려는 듯 손을 뻗었으나, 어쩐 일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그가 문을 닫고 사라지자 그녀는 힘없이 팔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불현 듯 오한이 일어 팔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건만 그녀는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레이첼, 레이시님을 지켜줘. 알았지? 꼭이야.”


레이첼. 그녀는 꿈에 나타나는 또 다른 자신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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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76 39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19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7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0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5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2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6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5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1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2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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