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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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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5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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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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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DUMMY

“....뭐...라고?”


싸늘한 한기가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그를 바라보는 루도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저 자식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저 남자가....어떻게?


“아니면...때때로 자신이 무얼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든가, 그런 경험을 한 적은 없습니까? 마치 기절했던 것처럼 말이죠.”


있다. 분명히 있다. 레이시의 질문은 커다란 갈고리가 되어 그의 과거를 차례대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하나는 가린워드 마을에서 있었던 기억의 공백. 다른 하나는 나젠크루거 일당에게 납치되었을 때, 슬라크와 맞서다 가크스의 품에서 깨어날 때까지의 공백.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람카디스의 무덤 앞에서 있었던 일까지.

얼음 파편이 살갗을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루도의 시선은 그에게 못박힌 채 결코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니라고, 너 따위 것이 뭘 아느냐고 냉소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가린워드의 생존자, 루도 레인폴. 어때, 이곳에 돌아오니 조금은 그때 기억이 납니까?”


이 남자는 알고 있다. 자신이 무엇인지, 11년 전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지금 하는 질문은 그저 자신의 예측을 확정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레이시는 무표정했지만, 루도는 그가 웃고 있다고 확신했다.


“...나지 않아.”


“그렇죠. 기억이 날 리가 없지요. 애초에 그때 있었던 일은 ‘당신의 기억’이 아니니까요.”


“내 기억이....아니라고?”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지만 루도는 그의 말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때 있었던 일을 떠올리려고 무진 애를 쓰던 때가 있었다. 머리를 마구잡이로 쥐어박던 적도, 온 종일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수를 써도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루도는 생각했다.

기억이 지워진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없었던 것은 아닌지.

그럼 그건 누구의 기억이지?

루도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레이시의 언변에 빠져 들어가는 자신을 억지로 채찍질한 것이었다. 그는 지금 레이시의 설명에 수긍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무작정 부정하고 있었다. 루도는 레이시의 면전에 대고 차갑게 쏘아붙였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내 기억이 내 기억이지, 누구 거라는 소리야? 얼토당토않은 개소리는 집어치워.”


하지만 레이시는 그의 그런 반응조차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류이덴사에 갖다 왔으니 신의 아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요. 11년 전 이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이 누구의 소행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야...”


루도는 선뜻 대답하려다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저 자식이 시키는 대로 하면 어쩌자는 거야!’


그는 자책하며 입술을 자근자근 씹었다. 레이시는 그것만으로도 루도의 답을 유추해냈다.


“예, 펠아람의 아이입니다. 영광의 펠아람, 성언신화에는 항상 최전선에 서서 적을 무찔렀다고 묘사되어 있죠. 악마들과의 싸움에서 그는 무적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랑하던 ‘절대소거’라는 권능 때문이었지요.”


“절대...소거?”


“일정지역 내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소멸시키는 능력입니다. 머리카락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펠아람의 능력 앞에서는 그 어떤 장갑도, 방어도 무용지물이지요.”


생명체를 소거하는 능력. 해당 개체는 그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가린워드 마을에 일어났던 참사는...주민들이 전원 실종되어버린 전대미문의 사건. 가재도구도, 식료품도, 심지어 입고 있던 옷까지도 고스란히 남겨놓은 채.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나젠크루거는 말했었다.

-가린워드 마을에 작용한 것은 어떠한 ‘힘’이지. 그것이 다시 폭주해버리기 전에 멈추는 게 우리들의 역할이야.

폭주. 니암이 보여줬었던 세상에 대한 분노. 숲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압도적인 힘. 그런 것에 휩쓸려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어째서?


“믿고 안 믿고는 자유입니다만, 저는 펠아람의 아이가 현세에 강림하던 순간을 목격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도 ‘절대소거’가 발동했지요. 그게 어떤 수준인지 아십니까? 성언시대를 풍미했던 드래곤조차, 혹은 대악마조차 그것에 닿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 확신합니다.”


이제 루도와 레이시는 동일한 논제에 봉착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레이시는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 루도 레인폴. 말씀드렸다시피 펠아람의 절대소거에 예외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절대소거가 발동된 현장에서 당신은 살아남았습니다. 수백 명의 주민들이 사라진 이곳에, 당신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이 말입니다. 이런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 왜 나만 살아남았는가!”


해봤다. 잠 못 드는 밤을 지새울 때마다, 죽은 안젤리카가 그리울 때마다 끊임없이 고뇌하고 또 고뇌했었다.

살아남은 자가, 그것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가 어째서 자신인가?

난 특별하니까, 운이 좋으니까 - 라고 생각하며 자위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런 망상은 사라졌고, 의문점만 더욱 커져갔다. 왜 하필 나인가!! 루도의 초점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자신은 가린워드의 생존자다. 그냥 생존자가 아니라 유일한 생존자다. 생존자는 살아남은 자다. 그럼 어떻게 살아남았지?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해답은 잃어버린 기억 속에 있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그 기억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턱이 덜덜 떨려왔다. 루도는 그가 원수라는 사실도 잊은 채 떠듬거리며 물었다.


“나...나는...어떻게 살아남았지?”


“그건 아주 간단합니다.”


한껏 목청을 높이던 레이시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 순간, 레이시의 입술이 아주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또박또박, 그리고 정연하게 돌아가는 입 모양.

루도가 원하는 것은 진실, 레이시가 말하는 것도 진실. 그리고...람카디스가 바랐던 것은 루도가 진실에서 멀어지는 것.


“당신은 살아남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니까요. 당신이 이번 대의 펠아람의 아이니까요.”


믿고 있던 현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그동안 품고 살았던 의문점들이 한순간에 해결되는 설명.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면서도, 다른 한쪽은 그래서 그런 것이었구나 - 하고 수긍한다.

자신이 유일한 생존자인 이유, 신의 아이를 쫓던 로샤단, 람카디스가 자신을 거두어준 이유, 레이시가 지금 자신을 죽이지 않는 이유.

전혀 몰랐는데? 당연하다. 그래야만 했으니까. 그래야만 각성을 피할 수 있었으니까. 루프리모의 아이인 니암도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이제 알아버렸다.


“후...흐흐...”


서글펐다. 그래서 한편으론 웃음이 나왔다.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희생양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다 자신이 행한 일이었다니. 모두 자신이 죽인 거였다니.


“학살자는 나였던 거야?”


“루우...도오오!!!”


쥐어짜 낸 이칼롯의 고함이 루도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루도는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다른 일행은 여전히 레이시의 마법에 눌려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도 당했으니 알고 있었다. 그것이 목소리조차 낼 수 없을 만큼 가혹한 상태라는 걸. 그런데 이칼롯이 성대를 찢어발기듯 그를 부른 것이다.

루도는 이칼롯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흐트러짐 없는 눈빛이었다. 정갈하고 결연한 의지.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된 분노. 그만이 아니라 마리네 역시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 판단에 혼란이 오는 때가 생기면, 항상 이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도록 해. 우리는 로샤단을 계승한다는 걸.


루도는 델키아를 떠날 때 함께 정했던 규칙을 떠올렸다. 이칼롯의 일갈 덕분일까, 넋 나가 있던 그의 이성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렇다. 뭘 고민한단 말인가? 앞에 있는 자들은 안개송곳니이고, 자신은 로샤단일 따름이다. 루도는 로샤단을 계승하는 자, 그리고 람카디스를 계승하는 자. 그가 추구했던 것은...


“그게 어쨌다고?”


그의 말투가 조금 전 레이시를 공격할 때처럼 패악스럽게 변했다. 하지만 레이시는 그의 태도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깍지 낀 손을 탁자 위에 올리며 말했다.


“루도 레인폴, 우리와 함께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그럴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원한다면 당신의 동료들도 합류시켜줄 수 있습니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염치가 없어도 유분수지, 로샤단을 습격한 자식들이 누구 면전에 대고 협력을 부탁한단 말인가!


“개소리 작작해. 넌 내 가족들을 죽였어.”


“그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류이너스 교단은 리크나이츠의 국교라는 현실에 안주하여 변혁을 꾀하지 않았습니다. 신을 모신다는 자들이 신을 은폐하다니요. 그들이야말로 이단입니다.”


“변혁?”


그의 말도 안 되는 궤변 따윈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만 그가 중간에 내뱉은 변혁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루도의 질문에 레이시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가슴을 폈다.


“예, 변혁입니다. 성언후 500년간 세상은 알테야 제국이라는 통일왕조를 이루며 태평성대를 지속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을 보십시오. 대륙은 각각의 국가로 쪼개어졌고, 그들은 있지도 않은 고유혈통을 내세우며 전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리크나이츠와 아스트리카, 텔아단과 퀴넨. 그리고 다른 소국들. 백성은 권세가의 탐욕에 휩쓸려, 애국심이라는 허영 아래 쓰러져갑니다. 어째서 인간과 인간이 대립하는 걸까요? 분명히 성언전에는 하나의 깃발 아래 악마와 싸웠을 텐데 말이죠. 세상은 돌아가야 합니다. 알테야 제국 같은 하나의 왕조로. 바로 브리토리스의 깃발 아래 말이죠.”


레이시는 자신의 사상에 도취하여 언성을 높였다. 루도는 그의 주장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입으로 리크나이츠를 멸망시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미쳤군. 그런 게 가능할 것 같아?”


루도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레이시는 거침이 없었다.


“가능합니다. 신의 아이가 강림한 지금이라면. 리크나이츠가 베릴의 아이를 통해 독립을 이뤄냈듯이 말이죠. 우리는 이미 아반케즈의 아이를 확보해놓은 상태입니다.”


“.....”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끼쳤다. 폭주했던 니암의 경우를 떠올려도, 그 힘은 도시 하나를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흉포했다. 그런데 베른헬트 주교는 그것조차도 아루의 수정이 없어 제한된 경우라고 했었다. 저자의 말이 진실인지 허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아반케즈의 아이가 그들에게 있다고 한다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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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52 35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76 39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19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7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0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5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2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6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5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1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2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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