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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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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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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31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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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DUMMY

상황이 종료된 후에도 루도는 형형한 살기를 뿜어댔다. 그를 의식해서인지 하르만은 조금 전처럼 비아냥거리거나 시시덕대진 않았다. 여기서 다시 돌연 태도를 바꾼다 하더라도 일행을 당해낼 수 없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방금 전 넷의 발도 속도만 보더라도, 누구 하나 만만한 실력이 없었다.

그는 목을 주무르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제기랄, 하여간 람카디스 자식은 끝까지 날 괴롭히는군. 그래, 알고 싶은 게 뭔데?”


“혼자 움직이는 여행자. 외팔이에, 로브를 입고 있는.”


“아, 씨발! 그 자식!”


“잘 알고 있는 것 같군.”


하르만은 혼자 성이 나서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근처에 있던 벌목꾼들도 이칼롯의 설명을 듣자 점차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 중 몇몇은 분에 겨운 듯 가슴을 탕탕 쳤지만, 제리온을 의식해서인지 과격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이쯤 되니 적어도 못 봤다는 식의 맥 빠진 대답은 기대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하르만은 남아있던 술을 단숨에 비운 후 입을 열었다.


“사흘 전쯤이었나, 비실대며 걸어가는 녀석이 하나 보이기에 우리 애들이 털러 갔었다. 확실히, 한쪽 팔이 없다고 했었지. 변변한 무기도 없었고, 그런 놈은 소위 차려놓은 밥상이거든.”


“그래서?”


하르만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데! 부하 두 놈이 손 한 번 못 써보고 녀석에게 당했다. 재수도 더럽지. 녀석은 마법사였어!”


“마법사...역시 그랬군.”


그제야 벌목꾼들이 제리온의 마법에 과도한 반응을 보인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단서가 잡히자 이칼롯은 더욱더 하르만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지? 어느 쪽으로 향했지?”


질문이 연달아 이어지자 하르만은 손을 들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흥분하지 말라고. 이 일대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내가 모르는 일은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겨누던 검을 거둬서인지 그도 한층 여유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보통 이런 부류의 인간은 상황이 호전될수록 본전 생각을 하는 법이다. 하르만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말이지, 이런 걸 맨입으로 알려주면 나 같은 사람은 뭐 먹고살겠어? 안 그래?”


제리온이 기가 막혀 입을 딱 벌렸다. 저자는 지금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한 건지 알기나 하는 걸까. 조금 전 목이 날아갈 뻔하고도 금품을 요구하다니, 멍청이가 아니면 대단한 만용을 가진 자였다. 물론 일행은 필요하다면 돈을 지불할 용의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람카디스를 모욕하기 전의 이야기였다.

마리네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재밌는 아저씨네. 보통은 이렇게까지 안 하는데.”


디리터가 말했다.


“돈 달라는 거지? 그래서 얼마를 달라고?”


“말이 통하는군. 정보의 가치를 고려했을 때 대략...”


“아니, 우린 이미 대가를 지불했어요.”


루도가 그의 말을 끊었다. 하르만도, 주위에 있던 일행도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언뜻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리온만은 그의 의중을 읽고 피식 웃었다.

하르만의 눈가에 주름이 졌다. 왠지 이와 비슷한 전개를 옛날에도 겪었던 기억이 났다.


“무슨 소리지?”


루도는 아주 태연한 얼굴로 자신의 검을 가리켰다.


“살려줬잖아요? 그거보다 비싼 게 있나요?”


하르만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는 가운데, 디리터와 마리네는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 그거 맞는 말이네!”


“킥, 킥킥킥킥! 아, 루도 멋지다.”


하르만은 얼굴이 시뻘개져서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키느라 상반신이 격하게 들썩거렸다. 눈앞의 소년은 실력은 둘째 치고라도 성격만큼은 람카디스를 똑 닮아 있었다.

그런 비아냥을 들었는데도 그의 부하들은 우물쭈물하기만 할 뿐 선뜻 나서지 못했다. 오히려 개중 10년 전 람카디스의 방문을 기억하는 자들은 이미 대열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하르만도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친 숨만 내쉴 뿐, 별다른 수를 찾지 못했다.

루도는 그의 울그락푸르락한 얼굴을 보며 태연하게 목을 까딱거렸다. 그건 상대방의 반응조차 고려하지 않는 듯한 여유로움이었다. 하르만이 겨우 무거운 입을 열었다.


“너...조심해라. 세상 물정 모르고 나서다간 제 명에 못 살 테니까.”


하지만 루도는 그의 경고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래 산 건 아니지만, 당신 같은 부류의 인간은 잘 알고 있죠. 개인적인 만족감을 위해 스스럼없이 타인을 피해 입히는 인간들. 만약 우리가 평범한 여행자였다면 당신은 주저 없이 우릴 죽였겠죠.”


“뭐...뭣이?”


“그리고, 세상 물정 모른다고요? 우리가 왜 그 외팔이를 찾는지 알아요?”


“루도!”


디리터가 그를 말렸으나, 루도는 막무가내였다. 그는 처음부터 하르만이라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황제라도 된 것 마냥 거드름 피우는 모습이 마치 옥좌에 앉은 돼지처럼 역겹게 보였다. 그 우람한 체격, 상대방을 깔보는 말투, 그리고 특히 안대 사이로 삐져나온 흉터가 언젠가 보았던 악인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분명 슬라크라는 이름이었다. 안젤리카를 죽인 남자, 자신이 죽인 남자.


“당신 말마따나, 로샤단은 궤멸했어요. 우리 다섯만 빼고. 우린 지금 막 10년간 함께 했던 동료와, 스승과, 아버지를 땅에 묻고 오는 길이에요. 그리고, 이번 일을 벌인 자식들을 죽여버리려고 찾아가는 중이죠.”


입이 걸걸한 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내뱉는 말이지만, 루도가 말한 ‘죽여버린다’는 단어는 그런 장난식 욕설과는 수준을 달리했다. 어찌나 살기를 담아 말하는지, 하르만은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노기(怒氣)에 다른 일행도 놀라 섣불리 말을 걸지 못했다. 다만 마리네만이 그의 어깨를 두드려 진정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루도는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그런 우리 앞에서, 당신은 대놓고 죽은 자를 모욕했어요. 살려줬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나? 조금 전 이칼롯이 먼저 검을 멈추지만 않았다면, 당신 모가지는 그때 날아갔어.”


자리엔 싸늘한 적막이 흘렀다. 그 흔한 새 지저귀는 소리도, 심지어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숲 전체가 루도의 진노(瞋怒)에 놀라 숨죽이고 있었다.

디리터와 제리온은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책임할 수도 있지만, 좀 정도가 과하다 뿐이지 루도가 하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루도는 검 손잡이에 천천히 손을 가져갔다. 그에 따라 하르만의 얼굴도 점차 새하얗게 질려갔다. 주위에 부하들은 이미 얼어붙은 채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루도의 방금 전 발검속도라면, 눈치 채기도 전에 하르만의 목을 베어버릴 수 있었다. 하르만은 뭐라 말도 못 하고 마른 침만 꼴깍꼴깍 삼켰다.

루도는 그를 매섭게 쏘아보며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 경고가 될 거야. 우리 앞에서 까불지 마.”


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벌목꾼들의 길 안내를 받았지만, 날이 저물기 전에 숲을 빠져나오긴 무리였다. 결국 일행은 숲 한가운데서 노숙을 하기로 결정했다. 워낙 습기가 들어찬 곳이라 불을 피우는데도 진땀을 빼야 했다. 휴식 중이었지만 언제 추격자들이 들이닥칠지 몰랐으므로 다들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제리온은 이끼가 자라지 않은 곳을 찾아 꿰고는 일찌감치 잠을 청했다. 그는 이런 습하고 음침한 장소는 적응이 안 되는지 눕고 나서도 몇 번이고 몸을 뒤척였다.

다른 이들은 각자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칼롯은 자신의 검을 손질하고 있었고, 디리터는 동물도감을 뒤적이는 중이었다. 루도와 마리네는 피로도 잊은 채 멍하니 모닥불만 바라보고 있었다. 일렁이는 불꽃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마리네는 바닥을 기어가던 지네를 줍더니, 냅다 모닥불 속에 던져 넣었다. 녀석은 몸을 몇 번 뒤틀더니, 이내 불꽃이 되어갔다. 그렇게 일행은 한참을 말이 없었다.

이윽고 루도가 입을 연 것은 디리터가 책을 막 덮을 즈음이었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그때 우리가 카이안을 막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일행의 시선이 천천히 루도를 향했다. 제리온은 깨어 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루도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구체의 위력, 정말 대단했지. 한 발만으로도 숲을 날려버릴 정도인 데 그런 걸 수십 개나. 그게 레인스터로 날아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마리네는 무릎을 모은 채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미 모두가 카토르의 일지를 읽은 후였다. 다들 루도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루도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는, 자신의 질문에 답했다.


“가린워드 마을처럼 되지 않았을까?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가 되어...”


루도는 꺼져가는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던져 넣었다. 먹이를 받은 불꽃은 다시 그 몸집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이참에 모두에게 말해두고 싶어. 난 카이안과 비슷한 힘을....가졌을 지도 몰라.”


그의 턱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지금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비록 추측일 뿐이지만, 자신이 가린워드 사건의 범인이라고, 수백 명을 죽인 괴물이라고 말한 것이었다.

이칼롯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일지를 읽었을 때부터 그는 루도에게 무언가 특별한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기에 굳이 입에 담지 않았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얘기는...나중에 하도록 하지. 일단 지금은 잠을 자둬. 날이 밝는 대로 움직일 거니까.”


“그래도...”


“외팔이를 잡고 나면 류이너스 교단 본부로 갈 거야. 그곳에 가면 네가 누구인지, 로샤단이 추진했던 일이 무엇인지 모두 알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비관적인 추측은 그쯤 해둬.”


무뚝뚝한 말투였지만, 그 나름대로 최대한 배려를 한 것이었다. 그의 의중을 알기에 루도도 더 이상 말을 꺼내진 않았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돌멩이만 만지작거렸다. 그가 풀이 죽어 있자, 디리터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뭐든 간에 그게 다 무슨 상관이냐? 용기 내어 말해준 건 고마운데, 어차피 네 정체가 뭐든 우린 신경도 안 쓴다고. 넌 그냥 요리 못 하는 꼬맹이일 뿐이야.”


“....디리터보다는 잘해.”


“킥킥, 그래, 그게 너지. 이 건방진 자식. 이런 일로 풀죽을 녀석이 아니란 것쯤 잘 아니까, 잔소리는 이쯤 할게. 잘 자라.”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담요를 폭 뒤집어썼다. 루도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곁에 있던 마리네가 키득거리며 그에게 손장난을 쳤다.


“그런 고민 할 시간 있으면 내일 아침 메뉴나 생각해 놔. 네가 내일 식사 당번이니까.”


“뭐? 내가 왜?”


“웅...아까 막 나간 죄, 그리고 혼자 시니컬해진 죄?”


“뭐냐 그게...”


“아하하, 이유가 뭐 그리 중요한가? 네가 할 때도 있는 거고, 내가 할 때도 있는 거지. 잘 자!”


마리네도 디리터를 따라 드러누워 버렸다. 루도는 기가 막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맥 빠진 반응이라니, 지금까지 혼자 고민했던 게 헛수고처럼 느껴졌다.

그는 팔베개를 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간혹 탁탁거리는 모닥불 소리가 들려올 뿐, 주위는 고요했다. 눈을 뜨면 꽉 찬 보름달을 구경할 수 있을 테지만, 그는 오히려 담요를 끌어 머리끝까지 덮었다. 졸리다는 느낌은 안 들었지만, 정작 누우니 온몸이 나른해졌다. 아마 온종일 말을 달려 피로가 쌓인 것이리라. 그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델키아로 돌아가 있었다. 쾌청한 하늘에 어디선가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멋진 봄 날씨였다. 어디선가 익숙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경쾌하면서도 우아한 가락. 바트넬의 연주가 틀림없었다.

난 기쁨에 겨워 숲 속을 달려갔다. 전속력으로 달리는데도 전혀 숨이 차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만 먹으면 날아갈 수도 있을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흥이 절로 났다. 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숲을 가로질렀다. 굳이 나무들을 피해갈 필요는 없었다. 내가 다가가자, 나무들은 초록빛 커튼이 되어 저절로 길을 비켜주었다.

그것은 마치 언젠가 람과 함께 갔었던 극장 같았다. 아담한 객석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람이 사준 체리 맛 쿠키를 함께 먹으며, 연극이 시작되길 마음 졸이며 기다렸었다. 난 그때 너무 어려 연극의 내용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주인공의 익살에 맞춰 폭소를 터뜨리던 모습은 기억한다. 그저 사람들이 웃는 것이 기뻐서, 람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아서 함께 웃었다.

아무것도 바랄 게 없었던 행복한 시절.

난 다시 멋진 연극이 시작되는가 싶어 발걸음을 빨리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걷히는 나무의 숫자도 늘어갔다. 발코니의 블라인드가 걷히듯 나무들은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내가 달려온 자리엔 이미 잘 닦인 도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전력으로 달렸지만 숲은 길고, 또 어두웠다. 언제 이 길이 끝날지 조바심이 났다. 어서 람과, 카토르와, 다른 길드원들을 만나고 싶었다. 나무커튼 바깥으로 왁자지껄한 수다 소리가 들려왔다. 어쩜, 나만 놔두고 저렇게 즐겁게 놀고 있담. 난 어서 가서 한바탕 설을 늘어놓으리라 다짐했다.

지루한 숲도 드디어 끝이 보이려는지, 앞을 가린 나뭇잎 사이로 빛줄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붉은 저녁노을 색의 빛. 아아, 분명히 오늘은 회식 날이었다. 모두가 함께 모여 즐겁게 먹고, 마시고, 쌓였던 스트레스를 푸는 자리. 더욱더 안달이 났다. 나도 어서 고기 한 점 얻어먹어야지! 숲은 이윽고 끝이 났다.

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눈에 보인 것은 불길에 휩싸인 우리 집. 형편없이 파괴되어버린, 내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우리 집. 무서웠다. 두려워서 눈물이 났다. 왜 우리 집에 불이 난 거지? 불씨관리는 철저히 했을 텐데, 어째서....아니, 그것보다, 그럼 길드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람은?

난 엉엉 울며 달려갔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럴 리가 없는데, 이건 대체 무슨 악몽이란 말인가. 난 집으로 뛰어가 물을 뿌리고, 모래주머니를 던지고, 셔츠를 벗어 불길에 대고 휘둘렀다. 하지만 녀석은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더욱더 몸집을 부풀렸다. 난 절망하여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게 주저앉아 서럽게 울고 있는데, 멀리 가크스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아! 가크스는 무사하구나! 난 힘을 내 다시 일어났다. 그가 도와준다면 이 불길도 잡을 수 있을 거야! 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그를 재차 다그쳤다. 하지만 그는 허수아비라도 된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난 그의 어깨를 잡아채 거칠게 당겼다. 그러자 그는 맥없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아!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그는 반쯤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로.

원망과, 증오로 가득 찬 눈.

난 절규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난 도와달라고 외치며 집 주변을 뛰어다녔다. 하지만 절망은 더욱 커져갔다. 에비앙의 관자놀이에 꽂힌 화살이, 바트넬의 복부를 꿰뚫은 얼음창이 나를 보며 폭소했다. 카토르도, 돌크도, 다른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뒷창고에서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 걸까? 난 마지막 희망을 담아 모퉁이를 돌았다.

거기서 본 것은, 검은 그림자가 람의 목을 베어버리는 광경이었다. 람의 목에서 선혈이 분수처럼 솟아났다. 난 그를 부둥켜안고 울었지만, 그는 결코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람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낄낄거리며 불타는 집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은 빼앗은 바트넬의 바이올린을 켜며, 가크스가 담근 술을 마시며, 람이 요리한 고기를 우적우적 씹어댔다. 그들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검은 눈에 검은 손, 검은 옷을 입은 검은 악마였다.

난 겁에 질려 도망쳤다. 이럴 리가 없어, 이건 현실이 아니야, 이건....이건!

그 순간, 불타는 집 사이로 한 소년이 걸어 나왔다. 축 늘어진 어깨에 발걸음엔 힘이 없었지만, 확실히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난 그를 붙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도와줘! 제발 날 좀 도와줘! 우리 집이, 동료들이, 람이 죽어가고 있어!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난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바로 나였다. 그의 눈동자에선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난 경악하여 뒷걸음질쳤다. 그의 피눈물에 놀라서가 아니었다.


저게 나라면....그럼....그럼 난 누구지?


난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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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2) +1 15.04.06 987 28 15쪽
11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1) +1 15.04.06 962 27 16쪽
109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0) +1 15.04.06 1,000 27 13쪽
108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9) +2 15.04.06 895 30 12쪽
107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8) +4 15.04.06 856 28 12쪽
106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7) +3 15.04.05 986 25 12쪽
105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6) +1 15.04.05 891 28 10쪽
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82 30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797 30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87 27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0 29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26 28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62 33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1 31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84 25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83 25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76 27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18 25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39 32 11쪽
92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88 28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40 26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39 29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74 31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63 34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42 33 13쪽
86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06 33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15 35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44 34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74 31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08 37 16쪽
81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78 33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15 36 14쪽
79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16 38 19쪽
7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35 33 18쪽
»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15 39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22 33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47 33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43 34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70 38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86 34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17 43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1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34 34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19 35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15 32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83 38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292 35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0 44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52 35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76 39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19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7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0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5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2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6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5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1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2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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