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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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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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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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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2)

DUMMY

루도가 혼수상태에 빠진 지도 이틀이 지났다. 이칼롯과 베리어스는 치안경비대에게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걸 알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처음에는 흥분한 경비대가 일행을 모조리 연행하려고까지 했었다. 그러자 베리어스가 수호기사단의 휘장을 꺼내 들었고, 뒤이어 마을 부근에 머무르던 사제가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달려왔다. 그 후 몇 차례 조사가 있었지만, 사제의 변호 덕에 일행은 무사히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행은 여전히「여행자의 요람」에 머물렀다. 안개송곳니가 퇴각하고 나서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주인 내외는 경악에 휩싸였다. 여관 설비가 모조리 망가져 있고 기둥 두 개는 깨끗이 잘려나갔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전후 사정이 어찌 됐든, 주인장은 일행에게 떠나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마을에 여관이라곤 그곳뿐이었고 루도의 상태 때문이라도 거처를 옮길 수는 없었다.

결국 일행은 망가진 가구를 변상하고, 이 이상 말썽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이건 불가항력이지만- 주인과 합의를 봤다. 그 일면에는 루도 일행을 두둔해준 아나이스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험한 꼴을 당했는데도 전혀 충격을 받은 모습이 아니었다. 아나이스는 고칠 수 있는 가구는 고치는 한편, 남는 시간에 틈틈이 루도를 간호했다.

발가르와 알룬도, 제리온은 번갈아가며 여관 주변을 경계했다. 언제 안개송곳니가 올지 몰랐기 때문에 지난 이틀은 로샤단에게 가장 살 떨리는 기간이기도 했다. 눈이 좋은 디리터는 아예 지붕 위에 올라가 주위를 살폈다. 루도의 간호는 데루루피아와 에레이시아, 그리고 마리네가 맡았다.


다시 하루가 지나고, 막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질 무렵이었다. 마리네와 데루루피아는 루도를 간호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마리네는 그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즐거운 화제를 꺼냈고, 그녀 역시 억지웃음을 지으며 이를 되받아쳤다. 하지만 아무리 거짓 미소를 지어본들 두 사람에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웃어도 웃는 것 같지 않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든 가식적이라는 느낌이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비단 그뿐 아니라 데루루피아 역시 느끼는 것이었다.

결국 루도를 간호한 지 사흘째 되는 날, 마리네는 처음으로 람카디스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루루 아줌마, 람은...아줌마를 많이 사랑했어요. 람에게 어떤 비밀이 있었든, 이것만은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녀는 무릎을 모아 끌어안고는 그 위에 턱을 올렸다. 그녀는 짧게 한숨을 쉬고는, 마리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가에 슬픈 미소가 어렸다.


“응, 나도 알아.”


그녀는 이제 예전처럼 연인 사이를 부정하거나, 람카디스의 연정을 모른 체하지 않았다. 사람은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후에야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닫는 법이다. 데루루피아는 그에게 막되게 굴었던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사랑한다는 말을 매일 수백 번씩 반복해도 모자랐을 것이다. 이렇게 덧없이 죽어버릴 것을 알았다면.


“나도, 람카디스도, 카토르도 언젠가 이렇게 될 거라고 각오하고 있었어. 신의 아이는...우리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문제였는지도 몰라. 하지만 세상일 참 웃기다? 난 죽는다면 우리 넷 중 내가 가장 일찍 죽을 거라 생각했거든.”


“왜요?”


“난 내 몸뚱아리 하나도 제대로 못 지키는 계집애일 뿐이야. 지나가던 들개한테 물려 죽을 뻔한 적도 있는 걸. 하지만 걔네들은 달랐어. 하나같이 혀가 내둘러질 정도로 짱짱한 경력을 가진 사내들이었잖아? 왕실기사단 출신에 ‘샤르커드의 후계자’라는 칭호를 받은 람카디스, '스펠 이레이저(Spell Eraser)'라 불리며 마법 협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카토르. 말도 안 되는 가이잘모까지. 걔네들이라면 정말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마리네는 침묵했다. 상냥했던 람카디스, 괴팍하지만 많은 것을 알려줬던 카토르. 그들도 철없이 날뛰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그래서 출세하겠다고 부르짖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서, 마리네는 이를 악물었다. 추억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기엔.

데루루피아는 푸르게 웃었다.


“사람 신경 건드리는 재주는 카토르가 뛰어났지만, 오히려 기절초풍할 만한 사건을 만드는 건 람카디스 쪽이었어. 기사 작위를 버리고 레인저가 되겠다고 했을 땐 정말 어찌나 놀랐던지. 란도스 왕자님이 떠나는 그를 말리려고 잠옷 바람으로 달려 나왔었지. 그거 때문에 왕실기사단도 발칵 뒤집히고...나랑 세르딕 선생님도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몰라.”


“....”


그녀는 마리네의 어깨에 살짝 얼굴을 기댔다. 이야기를 듣는 마리네는 침만 꼴깍 삼킬 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말해주는 람카디스의 과거는 전부 처음 듣는 것 일색이었다. 람카디스는 생전 자신의 과거를 말하길 극히 꺼렸고, 특히 레인저가 되기 전의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었다. 때문에 어린 시절의 루도와 마리네는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레인저였을 거라고 오해한 적도 있었다.

죽은 자에 대한 추억은 아름다웠고, 그래서 또 슬펐다.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생겼다고 편지를 보냈을 땐 기절하는 줄 알았어. 대체 어떤 계집년이랑 살림을 차린 건지 분해서 잠도 못 이뤘지. 후후, 나도 참 이기적이었어. 그가 구애하는 걸 짐짓 모른 체하면서도, 항상 나만을 바라봐줄 거라고 믿었던 거지.”


숙연하긴 했지만, 데루루피아는 울음을 터뜨린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람카디스와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아직도 밤잠을 설치는 마리네와 달리 그녀는 연인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도 연륜이라면 연륜이랄까, 여전히 잡티 하나 없는 그녀의 얼굴에는 몰라볼 정도로 성숙함이 묻어났다.

아래층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럽게 떠드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워낙 신경이 예민해진 탓인지 아래층의 대화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칼롯과 알룬도였다. 언뜻언뜻 ‘레이시’나 ‘류이너스’의 이름이 언급되는 걸로 보아 교단에 침투해있는 안개송곳니의 첩자에 대해 말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마리네는 잠든 루도의 얼굴을 보며 조용히 한숨지었다.


“이렇게 대단한 놈들일 줄은 몰랐어요. 우리가 한곳에 계속 머물러 있던 것도 아닌데, 이토록 빨리 찾아낼 줄이야. 역시 어딘가에서 우리 위치를 알려주는 이가 있다는 거겠죠?”


데루루피아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도 이런 일을 대비해 보안에 철통같이 신경 썼다. 로샤단이 가린워드 마을로 향한다는 정보는 교단 내에서도 극소수밖에 모를 것이 분명했다. 그런 데도 이렇게 습격당했다는 것은 그 극소수 중에 첩자가 있거나, 혹은 이야기를 엿듣는 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5년 전 발렌스 상회 전멸 사건, 그리고 10년 전 펠아람의 아이 살인 사건을 생각하면 후자의 경우는 가능성이 희박했다.


“어찌 됐든...그 몇 명 안에 배신자가 있다는 거지. 이것도 성과라면 성과랄 수 있겠네.”


“우리는 베른헬트 주교님이랑 레밀리오 사제님하고밖에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어요. 그게 아니라면...아케니온이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계속 감시를 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마리네는 조심스럽게 아케니온 용병단의 존재를 들춰냈다. 그들이 레오스 마을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이었다. 하지만 데루루피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안개송곳니와는 달라. 그냥 용병일 뿐이지. 모르긴 몰라도 너희들 눈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걸? 특히 디리터나 이칼롯 같은 경우는 워낙 시야가 넓으니.”


마리네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뭔가 말하려 했으나, 이내 표정이 굳었다. 루도가 깨어난 것이었다.


“으음...”


“어..어? 루도! 정신이 들어?”


잠에서 깨어난 루도는 햇볕이 눈이 부셔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시야가 밝아지자, 그는 곧장 자신의 손바닥을 보며 쥐었다 폈다 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마리네와 데루루피아가 그를 덥석 껴안았다.


“야 임마!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루도, 정말 다행이야. 아아, 정말 감사합니다!”


졸지에 두 사람에게 껴안긴 루도는 눈을 몇 번 껌벅거리더니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아아...”


“사흘 동안 의식이 없어서 다들 얼마나 노심초사했다고!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어, 으응...그냥 뭐...”


“독이 전신에 퍼져 꼼짝없이 죽을 거라고 하던데...정말 괜찮은 거야? 물 갖다 줄까?”


“아니 뭐...괜찮아. 신경 쓰지 마.”


루도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 후로도 마리네와 데루루피아의 폭탄 같은 질문공세가 이어졌지만, 그는 대충 얼버무리며 둘의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팔을 돌리거나, 목을 꺾으며 몸의 상태를 확인했다.


“으음...엇차!”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그가 워낙 스트레칭에 열중했기 때문에 둘은 잠시 말을 잃었다. 마리네는 루도가 깨어나자마자 몸 풀기에 집중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흘이나 누워 있었으니 몸이 굳은 게 정상이긴 하지만...그리고 조금 전부터 그가 자신의 눈길을 피하는 것도 왠지 이상했다.

팔을 붕붕 돌리던 루도는, 둘이 멀거니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땀에 절은 자신의 잠옷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말했다.


“저, 저기...내 옷 어디 갔어? 좀 갖다 줄래?”


“응? 아아..! 잠깐만 기다려.”


마리네가 후다닥 일어나 옆방으로 달려갔다. 데루루피아는 루도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1층으로 내달렸다.

혼자 남긴 루도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이불을 걷고 일어나 방바닥에 발을 내디뎠다. 땅을 밟는 살의 감촉이 전해지는 순간, 그는 전율을 느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창밖으로 저물어가는 태양이 그의 눈가에 비쳤다. 그는 주먹을 쥐고, 어금니를 꽉 깨물며 그 감촉을 즐겼다.


“10년 만의 첫걸음이로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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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20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7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1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5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3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6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5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2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2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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