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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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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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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7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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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DUMMY

삐 이 이 익.

광휘의 결사들이 그 소리에 반응해 전부 자리에 멈췄다. 그들은 공격하려던 자세 그대로 땅바닥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방어하던 일행 역시 그들의 반응에 어리둥절했다. 휘파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삐 이 이 익.

두 번째 신호가 들리자 그들의 얼굴에 당혹함이 떠올랐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뭐...뭐야?”


“왜 하필 이런 때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한 번 더 불진 않겠지?”


“쳇!”


세 번째 휘파람소리는 먼저 번의 것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세 번째 신호가 들리자 그들은 주저 없이 등을 돌렸다. 미처 반응할 새도 없었다. 그들은 검을 거두고는 즉각 소리가 난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선두에 있던 남자가 일행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운이 좋군. 기적이 일어난 것에 감사해라.”


광휘의 결사는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습기 찬 바람이 거리를 훑고 지나갔다.

일행은 갑작스런 광경에 넋을 놓았다. 다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목숨 걸고 사투를 벌이던 상대였다. 그런데 단지 신호가 들린 것만으로 그들은 퇴각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광휘의 결사가 시야에서 전부 사라지기까지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디리터는 영문을 몰라 이칼롯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역시 디리터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요?”


“.....”


“뭐긴 뭐야! 목숨 건진 거지. 살아난 것도 불만이냐?”


제리온이 투덜거리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데루루피아 역시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흐아아....살았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상업 지구로 간 녀석들에게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군.”


“급한 일이라면...?”


디리터가 손뼉을 쳤다. 상업 지구로 간 자들의 목적은 니암을 붙잡는 것이었다. 반으로 쪼갠 병력을 즉시 집결시켜야 할 정도의 급한 일이라면 무언가 문제가 생겼음이 틀림없었다.


“옳거니! 니암을 못 찾았구나!”


“역시 그건가? 녀석들 제법인데?”


아이들이 다행히 데루루피아가 쏜 신호탄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이칼롯이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운이 좋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야. 녀석들보다 먼저 아이들을 찾아야 해.”


그 말 대로였다. 요행으로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광휘의 결사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니암을 찾으려 할 것이다. 한두 명이라면 모를까, 수십 명을 그것도 어린 소년들이 따돌릴 확률은 희박했다.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 데루루피아가 힘 빠진 다리를 주무르며 일어났다.


“신호가 보이면 거주 지구로 도망치라고 했었지? 우리도 움직이자. 제발 잡히지 않아야 할 텐데...”


다시 한바탕 달려가야 한다는 사실에 제리온이 비명을 질렀다.


“조금만 쉬었다 갑시다! 나 진짜, 일어날 힘도 없어. 거기다 겨우 목숨 건진 마당에 또 녀석들이랑 마주치러 간다고?”


제리온은 그대로 바닥에 대(大)자로 드러누웠다. 데루루피아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정도는 얕지만 디리터 역시 부상을 입었으므로, 간단하게나마 치료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칼롯이 담벼락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다들 지친 상태다. 잠시 숨이라도 돌리고 가지.”


반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처럼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다시 광휘의 결사와 맞닥뜨렸다간 그대로 황천길로 갈 것이다. 조금이라도 컨디션을 회복한 후에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다들 각자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데루루피아가 붕대를 꺼내 디리터의 상처에 묶어주었다. 디리터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뭐 물어볼 필요도 없겠지만, 설득은 실패였지? 니암을 찾는다 치고, 그 후엔 어떻게 할 거야?”


“광휘의 결사는 상부의 지시 없이 독단으로 움직이고 있어. 그들을 멈춰야 해. 녀석들은 분명 상트룸 수도회에도 나와 같은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어. 교단이야 말할 것도 없고. 조금만 버티면 중재자가 나타날 거야. 그때까지는 수호기사단과 녀석들을 만나게 해선 안 돼.”


“양쪽 전부 니암을 찾고 있다며? 그럼 니암이 사라지면 둘이 맞닥뜨릴 상황도 없는 것 아니야? 악! 좀 살살 묶어!”


“광휘의 결사는 이미 교단과 싸울 생각이야. 니암은 일종의 승리를 위한 수단이지. 놈들이 만약 그 아이를 붙잡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거라 생각해? 순순히 포기할까?”


이칼롯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그는 쉬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마치 힘들어서 쉰다기보다 육체를 회복시키기 위해 일부러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허공을 응시한 채 말했다.


“니암을 붙잡으면 그걸로 성공. 만약 붙잡지 못하면 수호기사단과 맞붙음으로써 승리를 쟁취한다는 것인가?”


“정답이야. 난 그들의 대장과 이야기를 나눴어. 녀석들은 일련의 사건들의 진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그들은 오히려 그것을 명분 삼아 교단에 타격을 입힐 작정이야. 이젠 더욱 망설일 필요가 없지. 수호기사단의 복장을 한 자가 자신들의 동료를 살해했으니까. 상태를 보아 쉽게 물러서진 않을 것 같아. 니암을 데려가던가, 수호기사단을 궤멸시키던가.”


디리터는 붕대가 묶인 팔뚝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약간 거슬리긴 해도, 검을 휘두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니암이 붙잡혀도 안 되고, 그렇다고 사라져도 안 되고. 붙잡힐 듯 붙잡힐 듯 아슬아슬하게 도망쳐?”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어. 지금은 일단 녀석들보다 먼저 니암을 찾는 게 중요해.”


뻗어 있던 제리온이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진이 빠진 얼굴로 말했다.


“그 뭐시기 중재하러 온다는 사람은 언제 올지 알고?”


데루루피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알 수 없어. 나 역시 유르그젠과 나눴던 대화를 토대로 유추한 것뿐이야. 어쩌면 아예 안 올지도 모르지.”


“....진짜 안 좋구만. 족히 30은 되는 놈들을 상대로 열 살배기 꼬마를 어떻게 지켜내? 그냥 도시경비대에 괴한들에게 쫓긴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낫지 않아요?”


“말했듯이, 니암을 포기할 만한 상황이 오면 녀석들은 곧바로 수호기사단을 공격할 거야.”


“제엔장! 뭐 어쩌라는 거야?”


그녀는 제리온의 열 내는 모습을 보며 생긋 웃었다. 다른 이의 곤란을 보고 함께 격분하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귀여웠다. 그녀는 제리온에게 다가가 그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제리온이 화들짝 놀라 몸을 뺐다.


“왜...왜 그래요? 갑자기.”


“그건 내가 고민할 문제. 너희는 아이들을 찾을 때까지만 날 도와주면 돼. 의뢰는 거기까지야.”


“....그게 무슨 소리요? 뜬금없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하마터면 전부 개죽음당할 뻔했어. 아깐 왜 항복하지 않았니? 위험한 일은 하지 않겠다고 한 게 의뢰조건 아니었어?”


“그야...”


“이건 의뢰랑은 상관없는 문제야.”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디리터에게 쏠렸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그랬지. ‘미인을 도와라’ 누님은 미인인 데다 착하기까지 하잖아. 그런데 어떻게 모른 척 지나쳐? 그랬다간 죽어서도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할 거야.”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모두들 디리터의 당당한 얼굴을 응시한 채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데루루피아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하하! 그게 뭐야?”


제리온이 피식 거리며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네. 뭐 나도 그렇다고 해둡시다.”


웃음은 겹쳐졌다. 그녀는 이제 허리를 꺾으며 폭소하기 시작했다. 한 번 터진 웃음보는 쉬이 사그라질 기세가 아니었다. 웃음이 어찌나 격렬하던지, 말을 꺼낸 디리터가 머쓱한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너무 우스워서 눈물이 나왔다. 웃기고, 즐겁고, 또 한 편으로 가슴이 아려왔다.

그들과의 인연은 고작 한나절 정도다. 그러나 그들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왔다. 돈으로 맺어진 계약 때문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가진 신념에 따라. 문득 그녀의 스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것이 옳다. 이유는 없어.


어쩌면 그들이 아직 너무 어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나이대의 젊은이들이 흔히 부리는 객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도 그렇게 썩은 건 아니네요, 선생님.’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이 어찌나 근사한 청년들인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애써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하하...하아...정말 웃겨. 너네 왜 그렇게 무모하니? 제르비안 군도 같은 생각이야?”


그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하지만, 왠지 그 역시 웃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쓸데없는 만용을 부려봤을 뿐이다.”


“아하핫! 당신은 꽤 냉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제 보니 영 아니네.”


“맞아. 나도 틀려먹었지.”


웃음을 멈추기까진 꽤나 각고한 노력이 필요했다. 데루루피아는 겨우 몸을 추슬렀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휴식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행은 거주 지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말했다.


“다들 고마워. 너무너무 고마워. 어떻게 이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 ....정말 고마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제리온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고마우면 추가수당 주시면 돼요. 한 100골드면 되겠네.”


“알았어. 꼭 마련해줄게.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그러니...”


그녀는 일행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피로가 쌓여 있지만, 여전히 밝게 빛나는 눈동자들. 마치 옛 친구들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일행의 어깨를 차례대로 두드리며 말했다.


“목숨을 소중히 여겨줘. 너흰 아직 젊잖니. 살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해. 루도와 마리네를 만나면 그대로 줄행랑쳐도 돼. 절대 너희를 원망하지 않을게. 그게 가장 이성적인 행동이야. 수호기사단이든, 뭐든 그게 너희들의 생명보다 중요할 순 없으니까.”


“폼은 있는 대로 다 잡았는데 거기서 도망치라고 하면 내 입장이 뭐가 돼?”


디리터가 빈정거리자, 그녀는 그의 뭉친 어깨근육을 세게 주물렀다. 칼에 베일 때조차 끄떡 않던 그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꼭 거기서 토를 달해야겠니? 이건, 내 진심이야. 다들 조심해. 알았지?”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다들 각자의 방법으로 대답했다. 그녀의 강력 마사지에서 겨우 풀려난 디리터가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렇게 일일이 일깨워주지 않아도 나도 이런 곳에서 죽을 생각 없다고. 아직 수도에 발자국 찍어보지도 못했는데 억울해서라도 그렇게는 못하지. 으라차! 다시 가보자고.”


자기암시를 건 덕인지 피로가 한결 풀리는 느낌이었다. 일행은 니암이 있는 곳을 향해 다시 바쁜 발걸음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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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35 34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19 35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15 32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83 38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292 35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0 44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53 35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76 39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20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7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1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5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3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6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5 39 16쪽
»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2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2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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