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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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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1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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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DUMMY

루도 일행이 레오스란 마을에 도착한 건 델키아를 떠난 지 꼭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흔치 않은 마법사란 이유로 하르만이 그의 행로를 눈여겨봤다는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그의 정보가 없었다면 나잔즈 교각을 건넌 후 나오는 갈림길에서 골머리를 썩였을 것이었다.

델키아를 떠난 후 등장한 첫 번째 마을. 팔이 잘리는 중상을 입었으니 하다못해 간단한 의약품이라도 구입한 흔적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른 아침인데다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은 마을이라 그런지 나다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섯이나 되는 인원이 칼을 차고 접근하면 누구든 경계할 것이므로, 정보 수집은 루도와 마리네가 맡았다. 둘이 외팔이의 거처를 수소문하는 동안 나머지 셋은 상점에 들러 이런저런 식료품을 구입하고 다녔다.

정보 수집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걱정했지만 의외로 외팔이에 대한 소문은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아, 그 팔 하나 잃은 친구 말하는 거지? 참 가엾게 됐지, 젊은 나이에. 에레이시아가 돌봐주는 모양이던데, 지금쯤 좀 나아졌나 모르겠군.”


마리네의 선해 보이는 외모 탓인지 마을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외팔이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상처가 심할 거란 예상은 했었지만, 그가 아직 이 마을에 있다는 사실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둘은 쾌재를 지르며 에레이시아란 여자가 운영하는 약초 상점으로 향했다.

사방이 논밭으로 뒤덮인 촌마을은 그러나 중심부로 들어가 보니 제법 그럴듯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엔 커다란 비석이 있었는데, 거기엔 풍요를 상징하는 베릴의 심볼이 새겨져 있었다. 마을 건물들은 그 비석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석재가 부족해서인지 집들은 대부분 목축 건물이었다. 그렇다고 외관상으로 조잡하다던가 부실해 보이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갈색 빛이 감도는 건물 표면이 소박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다. 레인스터의 활기와는 또 다른, 은은한 정취가 있는 마을이었다.

에레이시아의 상점은 2층으로 된 아담한 통나무집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다들 일을 나가서인지 광장 주변은 썰렁했다. 간혹 어린 아이들이 깔깔대며 골목길을 뛰어다닐 뿐이었다.


“우리끼리 먼저 가도 되는 걸까? 다른 사람들도 어차피 이 근처에 있을 텐데 모여서 같이 가는 편이 낫지 않아?”


마리네는 개별행동을 한다는 게 적잖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그는 연방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른 셋을 찾았다. 하지만 식료품점이 멀리 떨어져 있는 모양인지,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루도 역시 그와 같은 갈등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 대장은 이칼롯이니, 그에게 말하지 않고 앞서 행동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람을 죽인 범인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감이 그를 더욱 부추겼다.


“부상이 심해 아직도 사경을 헤맨다고 했잖아. 먼저 급습하면 아무 문제없을 거야.”


“그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 아직 범인이 이 집에 있다는 사실을 모를 텐데.”


“그야...한명이 망을 보다가 근처를 지나갈 때 부르면 되지. 여긴 그다지 크지 않으니까 금방 돌아올 거야.”


“으음...그래도...”


마리네가 고민을 떨치지 못하는 사이, 루도는 기어이 문을 두드리고 말았다. 주위가 고요해서인지 문 두드리는 소리가 훨씬 크게 들렸다.


“계십니까.”


노크 소리를 못 들은 것인지, 아무도 없는 것인지 집안은 조용했다. 막 재차 문을 두드리려 하는데, 집 안에서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2층에 있다가 헐레벌떡 내려오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삐걱거리며 문이 열렸다.


“누구시죠?”


모습을 드러낸 건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그녀는 간편해 보이는 리넨 셔츠에 하얀색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치마엔 군데군데 녹갈색 얼룩이 묻어 있었다. 무척 급하게 내려온 듯, 숨을 쉴 때마다 질끈 묶은 머리칼이 등 뒤로 출렁거렸다. 아주 뛰어난 외모는 아니지만, 갸름한 입술에 매끈한 피부를 가진 전체적으로 수수한 느낌을 주는 미인이었다.

그녀가 문을 열자 진한 약초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게 그녀의 몸에서 나는 건지 집 안에 밴 것인지는 몰라도, 그 향긋한 냄새에 루도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의 어깨너머로 치자며 쑥 같은 약재가 그득히 쌓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둘이 차고 있는 검을 보고는 곧장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루도가 약초 향에 취해 머뭇거리고 있자, 마리네가 대신 앞으로 나섰다. 그는 최대한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기가 에레이시아란 분이 사는 곳이 맞나요?”


“제가 에레이시아입니다만, 무슨 볼일이신가요? 약초구매라면 먼저 촌장님께 얘기하고 오시죠.”


마리네의 친근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냉담하게 답했다. 그녀가 약초 상인이 맞다면, 아무래도 전혀 장사를 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어찌나 쌀쌀맞게 말하는지 마리네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에..저기...그러니까...”


“제가 지금 좀 바빠서요. 그럼 이만.”


그녀는 그대로 집에 들어가 버리려고 했다. 막 문이 닫히려는 순간, 루도가 문틈으로 팔꿈치를 집어넣었다. 그녀의 표정이 곧장 험상궂게 변했다.


“내 말 안 들려요? 약초를 사고 싶으면...”


“우린 약초를 사러 온 게 아니에요.”


“....네? 그럼...”


“팔이 절단되는 부상을 입은 여행자. 여기 있죠? 당신이 보살펴주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녀의 눈썹이 약간 씰룩거렸다. 그녀는 다시 문을 열고는 루도와 마리네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째려본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날카로운 시선이었지만, 루도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래 보기에 거북한 눈빛이긴 하지만, 이칼롯의 그것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였다.

그렇게 그녀는 둘의 생김새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촘촘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내린 결론은, 그 행색이나 말투로 보아 눈앞의 소년들은 같잖은 양아치가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다시 문을 닫으려는 낌새를 보이자 마리네가 그녀의 의중을 알아채고 말했다.


“저희는 델키아 외곽방어대 소속 레인저거든요.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찾는 중인데, 협조 좀 부탁드려요.”


“...뭐라고요?”


그녀는 약간 놀란 듯 목소리를 높였다. 두 소년이 레인저라는 사실도 뜻밖이었지만, 그들이 찾는 게 살인범이라는 것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당황한 모습을 보자 더욱더 외팔이가 이곳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루도는 그녀가 느슨해진 것을 틈타 문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꺄앗? 뭐 하는 거야!”


“부상을 입은 외팔이, 여기 있는 게 확실하죠? 우린 그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 환자가 있긴 하지만, 그가 살인자라는 증거라도 있어?”


불청객이 집안에 발을 들이자 그녀는 노기 띤 목소리로 루도를 위협했다. 하지만 그건 그저 귀에 거슬릴 뿐, 그의 움직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가 외팔이라는 사실과, 우리가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 아쉽게도 현장에 있던 팔 한 짝은 가져오지 못했네요. 부품 맞추듯 끼울 수 있는 게 아니라.”


“으음....”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둘은 정규군임을 입증할 만한 휘장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그렇게 밝힌 것만으로도 섣불리 저항하지 못했다. 변변한 경비병조차 없는 시골마을이다 보니, 정규군이라는 신분이 거대한 권력으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결국 그녀는 체념한 듯 둘을 2층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그녀는 올라가는 도중에도 연신 소년들에게 경고를 주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절대 내 집에서 소동 일으키면 안 돼요. 이상한 낌새라도 보이면 바로 자경단을 부를 테니까. 그리고 살인자든 뭐든, 그는 지금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으니까, 절대 험하게 다루면 안 되고.”


“그건...”


“예! 물론이죠! 너무 심려치 마세요. 에레이시아씨에겐 절대 피해 없도록 할 테니까요.”


마리네가 황급히 루도의 말을 끊고 대신 답했다. 조금 전 루도는 ‘그건 불가능해요. 우린 그 자식을 죽이러 왔거든요.’라는 식의 말을 하려던 게 분명했다. 그는 예전부터 묘하게 말을 돌리지 못하는 구석이 있었다. 때문에 마리네가 그의 의중을 눈치 채고 잽싸게 말을 끊은 것이었다.

에레이시아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마리네의 살가운 태도에 조금은 기분이 누그러진 듯 보였다. 그녀는 둘을 2층 다락으로 안내했다.

다락문은 살짝 열린 상태였다. 열린 문 사이로 퀴퀴한 땀 냄새가 풍겨왔다. 문밖에서도 끙끙대는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이, 그녀 말대로 외팔이의 상태는 좋지 않은 듯싶었다.

루도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이번 사건의 범인인 안개송곳니의 일원이 문 너머에 있었다. 확실히 부상이 심한 것 같은 낌새지만, 알룬도의 설명대로라면 결코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에레이시아는 다락문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에요. 다시 말하지만, 그는 지금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해요. 절대 험한 짓을 하면 안 된다고요.”


“압니다. 곧 편하게 해줄 테니까.”


“네? 그게 무슨...”


그녀가 미처 이해할 틈도 없이, 루도는 방문을 걷어찼다. 낡은 문짝은 여지없이 떨어져 나갔다. 그 여세를 몰아 그대로 방에 돌입하려 하는데, 은빛 물체가 호를 그리며 루도에게 날아왔다.


“윽?!”


“꺄아아앗?”


루도는 잽싸게 검을 뽑아 그 물체를 쳐냈다. 까앙, 하는 쇳소리와 함께 그 물체는 바닥에 떨어졌다.


“어...뭐야?”


뒤에 있던 마리네가 놀란 눈으로 땅바닥을 바라보았다. 날아온 물체는 자그마한 과도였다. 투척용으로 쓰는 다트나 슈리켄이 아닌, 그냥 평범한 과일 깎는 칼이었다.

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과도가 날아온 곳을 향했다.

아담한 나무 침대 위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일행의 예상대로 한쪽 팔이 없었다. 주인 잃은 오른쪽 어깨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는데, 그마저도 이미 피에 흥건히 젖은 상태였다. 침대보는 이미 물에 담갔다 뺐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땀에 흠뻑 절어 있었다. 눅눅해진 이불 위로 그의 남은 왼쪽 팔이 축 늘어졌다. 그는 과도를 던진 것만으로도 무리가 오는지, 이마를 잔뜩 찡그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크...흐윽...헉...네놈들...”


루도는 바닥에 떨어진 과도를 흘끗 쳐다보았다. 예측하지 못한 공격에 놀란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 전 외팔이의 투척 솜씨는 어린애도 흉내 낼 수 있을 정도로 조잡했다. 날아오는 속도도 그다지 빠르지 않았을 뿐더러, 굳이 쳐내지 않았더라도 어깨만 스치고 끝났을 정도로 정확도가 떨어졌다. 그가 심한 부상을 입고 있다는 걸 참작하더라도 맥 빠질 정도로 우스운 공격이었다. 갑자기 알룬도의 경고가 무색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쉽사리 경계를 늦춘 것은 아니었다. 루도는 그에게 검 끝을 향한 채 천천히 걸어갔다.


“크....으윽...”


그는 거칠게 신음할 뿐, 별다른 공격은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한다는 편이 옳을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내지른 왼팔조차 거둘 기력이 없어 보였다.


“생각보다 솜씨가 형편없네. 선공한 것은 의외였지만, 이런 것에 당하진 않아.”


“로...샤단...”


“차라리 마법을 쓰지 그래? 우리 길드를 날려버린 것처럼.”


루도는 천천히 그의 목에 검을 가져갔다. 뒤에서 에레이시아가 뭐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으나, 이미 그에겐 들리지 않았다. 마리네는 발광하는 그녀를 진정시키느라 무진 애를 쓰는 중이었다.

외팔이의 눈이 서서히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목에 겨눠진 검을 바라보고, 멀리서 난리를 피우는 에레이시아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루도와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그는 중상자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대성(大聲)을 토해냈다.


“이...이 개자식들아!! 우리 단원도 모자라서, 기어이 나까지 죽이러 온 게로구나!!”


“....?!”


어찌나 고래고래 악을 써대는지, 루도마저 흠칫 놀라 검을 빼고 말았다. 만약 그가 재빨리 검을 거두지 않았더라면 제풀에 목이 베였을 것이었다. 외팔이는 몸속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토해내려는 듯 연이어 루도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그래, 어서 죽여라! 산 자가 승리하는 것이 이 세상의 진리겠지. 하지만 자만하지 마라! 언젠가 네놈들도 지옥불에 떨어질 순간이 올 것이야! 의(義)를 저버린 자는 반드시 비참한 최후를 맞을지니!”


소년들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처음엔 그냥 악담을 하는가 싶었는데, 계속 듣고 있자니 그가 말하는 뉘앙스가 묘하게 이상했다. 그는 로샤단이 극악무도한 집단인 것 마냥 묘사하고 있었다. 마치 그들이 로샤단을 습격한 것이 아니라, 로샤단이 그들을 습격한 것처럼.

그의 폭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말할 기운마저 전부 빠져나갔는지, 외팔이는 허수아비마냥 그대로 침대에 늘어져 버렸다. 그가 잠잠해지자 마리네가 조심스럽게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외팔이는 눈동자만 굴려 그를 바라보았다. 마리네가 말했다.


“저기요, 우리가 당신을 죽이러 온 건 맞는데요, 뭔가 주객이 전도된 것 같지 않나요? 우리를 습격한 건 그쪽이잖아요?”


“그...게 무슨 개소리냐...선제공격을 한 건 네놈들이잖아!”


“뭐, 뭐라고?”


이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루도와 마리네는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로샤단을 습격한 범인을 찾아온 것인데, 도리어 로샤단이 먼저 공격을 감행했다고?

루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부상 때문에 헛소리를 하는 건지, 아니면 살아남으려고 잔머리를 쓰는 건지는 몰라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만약 로샤단이 선제공격을 한 게 사실이라면, 그럼 안개송곳니가 델키아에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루도가 다시 그의 목에 검을 들이댔다. 하지만 그는 가쁜 숨만 몰아쉴 뿐 목에 칼이 들어오는데도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뭘 망설이지? 어서 죽여라.”


“혹시 달아날 수작을 부리는 거라면 집어치워. 우리가 먼저 그쪽을 공격했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우리가 믿을 것 같아?”


외팔이의 입술이 살짝 뒤틀렸다. 아마 냉소를 지으려고 한 것이겠지만, 고통과 뒤섞여 이도 저도 아닌 표정이 되어버렸다.


“난...네 얼굴을 기억해. 너뿐 아니라 뒤에 놈도. 분명 로샤단을 찾아가던 도중에 마주쳤었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의 쇠약해진 몸은 그가 웃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길고 긴 기침 소리가 이어졌다. 그의 파리해진 입술 사이로 침이며 가래가 잔뜩 배어 나왔다.

그는 에레이시아가 가져다준 약사발을 들이킨 후에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그는 사발을 모두 들이킨 후 그녀에게 짧게 목례했다.


“고맙습니다, 그웬드린 양.”


“고마울 필요 없어요. 당신이 정말로 살인자라면, 주저 없이 저들에게 신병을 넘길 테니까.”


그녀의 냉담한 어투에 외팔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현명한 선택이지요. 하지만 저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참다못한 루도가 빽 소리를 질렀다. 아까부터 듣고 있자니 저 외팔이는 알 수 없는 소리만 지껄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피해자라도 된 것처럼 로샤단을 악으로 매도하는 게 참을 수가 없었다.

루도는 검을 더욱더 그의 목 깊숙이 들이밀었다. 검날이 살갗에 닿아 살짝 생채기가 났다.


“당신이 살인자가 아니라고? 그럼, 우리 길드원은 누가 죽였는데!”


그가 흥분할수록 오히려 외팔이는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그는 목의 상처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담담히 말했다.


“너희는 대체 뭘 보고 날 살인자라 단정하지? 너흰 그 현장에 없었어. 그리고, 난 확실히 그 아비규환을 목격했다.”


“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 너희는 무방비상태의 우리를 급습했다. 내가 그 첫 희생자였지. 덕분에 가장 먼저 그 자리를 이탈했지만.”


“거짓말하지 마!”


“내 팔이 누구한테 잘렸는지 말해줄까? 네놈들 동료에게 당한 거야. 글레이브(Glaive)를 사용하는, 흰 머리 놈에게.”


“그러니까 개소리...뭐?”


그의 말을 끊으려던 루도는 도리어 자신이 침묵하고 말았다. 그가 묘사한 로샤단 길드원의 생김새가 너무도 생소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혹시 잘 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다시 물었다.


“누구였다고? 흰 머리라니?”


“그래. 난 기억력 하나만은 자신 있는 몸이다. 분명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에, 하얀 글레이브를 휘두르는 놈이었지.”


“그럴 리가 없어요!”


마리네는 자기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어디까지가 진실인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외팔이도 그의 당황한 눈빛을 보자 어딘가 미심쩍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마리네는 떠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 길드에 흰 머리는 없어요. 카토르가 약간 머리가 셌긴 하지만, 백발이라고 할 정도는...아니, 머리도 머리지만, 로샤단에 글레이브를 사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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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1) +1 15.04.06 973 28 16쪽
109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0) +1 15.04.06 1,012 28 13쪽
108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9) +2 15.04.06 903 31 12쪽
107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8) +4 15.04.06 865 29 12쪽
106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7) +3 15.04.05 995 26 12쪽
105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6) +1 15.04.05 899 29 10쪽
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90 31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805 29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96 28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7 30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33 29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73 34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7 32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90 26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91 26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84 28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28 26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49 33 11쪽
92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98 29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51 27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48 30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80 32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72 35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52 34 13쪽
86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16 34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24 36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54 35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84 32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19 38 16쪽
81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88 34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25 37 14쪽
79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28 39 19쪽
»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45 34 18쪽
77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23 40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30 34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53 34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50 35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77 39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93 35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26 44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7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45 35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27 36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24 33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92 39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300 36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7 45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61 36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83 40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7 38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31 39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74 35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3 15.03.28 1,022 36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7 40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32 46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73 47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9 42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13 45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63 51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43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82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51 46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9 4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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