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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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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2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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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5)

DUMMY

제폰은 거침없이 다음 기사들에게 달려갔다. 그래도 귀족을 경호하는 친위대답게, 기사들은 재빨리 대열을 정비하여 그에게 맞섰다. 문제는 그런 노력조차 그에겐 아무 의미도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한 합. 이번에는 다섯 명의 기사가 나가떨어졌다. 다섯 개의 잘린 몸뚱이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후작님을 보호하라!”


무의미한 저항임을 알면서도 열 명의 기사가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그들이 시간을 버는 사이 후방에 있던 자들은 재빨리 마차를 에워쌌다. 기사 하나가 마부에게 소리쳤다.


“기수 돌려! 수도로 돌아가야 해!”


눈앞에서 일어난 상황을 똑똑히 목격한 탓인지 마부는 기사의 명령에 즉시 반응했다. 하지만 육중한 마차의 규모 때문에 방향을 돌리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마차가 반대편으로 방향을 트는 동안 열 명이, 그리고 제폰을 따돌릴 만큼 가속도가 붙는 동안 다섯의 기사가 쓰러졌다. 서른이나 됐던 호위대 중 살아남은 건 단 세 명에 불과했다. 그들은 허수아비처럼 쓰러지는 동료를 보며 경악에 휩싸였다.


“이...인간이 아니야. 뭐 저런 괴물이...”


“뒤돌아보지 마! 지금은 후작님의 안전을 확보하는 게 먼저다!”


살아남은 자들은 마차를 앞질러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단 1분도 안 돼서 친위대가 궤멸했다. 믿을 수 없지만, 눈앞에서 똑똑히 목격한 사실이었다.

한편 마차 안에 있던 레이놀드와 빅토르 역시 밖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공황상태에 빠졌다. 차라리 귀청을 찢는 고함이나 쇳소리가 들려오면 이렇게 공포스럽진 않으리라. 붉은 검이 휘저어질 때마다 우수수 쓰러지는 기사들을 보며 레이놀드는 두려움에 떨었다.


“이...이게 대체 무슨 꼴인가! 내 친위대가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다니!!”


크게 확대된 동공이 창밖의, 정확히는 그 남자가 서 있던 방향에 고정됐다. 말을 가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일까? 남자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 쫓아오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레이놀드는 분통을 터뜨렸다.


“대체 저자는 누구지? 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이런 짓을 벌인단 말인가!”


그는 공포를 억지로 쫓아내려는 듯 언성을 높였다. 반면 맞은편에 앉은 빅토르의 낯빛은 창백하게 굳어져 갔다.


“안개송곳니...”


“뭐라고?!”


“아..안개송곳니 말입니다. 이런 짓을 벌일만한 게 그거 말고 또 뭐가 있습니까? 레이시가 오늘 평의회의 결정에 앙심을 품고 복수하려는 겁니다!”


레이놀드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안개송곳니에 저런 전력이 있다는 보고는 못 들었네! 애초에 녀석들은 로시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조직이 아니던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들 외에는 짐작 가는 바가 없습니다.”


“크윽...”


둘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레이시가 이런 무력대응으로 나올 줄이야. 이것은 평의회뿐 아니라 엄연한 국가에 대한 반역행위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안개송곳니의 암살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대로 수도로 돌아간다면 그들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고, 레이시는 즉각 반역죄로 처형될 것이다.

빅토르는 멀어지는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들의 순직은 뼈아프지만, 후작을 보호하려는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빅토르가 말했다.


“후작님, 일단 수도로 돌아간 후에 베셸리모 재상에게...”


콰드득! 무언가 사정없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마차가 순간적으로 공중에 붕 떴다.


“으아아아..,?!”


“이게 뭔...우악!”


공중에 치솟은 마차는 그대로 천정부터 지면에 내리꽂혔다. 뒤따라오던 기사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서둘러 말을 멈춰 세웠다. 덧없이 헛도는 마차바퀴 사이로, 그들은 마차를 전복시킨 범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오거?!”


갑작스럽게 도로로 난입한 고르딘의 모습은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오거와도 같았다. 엄청난 거구에, 충각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거대한 철퇴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은, 어둠이 덧씌워져 더욱 공포스런 느낌을 자아냈다.

달려오던 마차의 마부석을 찍어 누른 탓에 그의 메이스에선 살점과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는 뒤집힌 마차를 흘끗 보고는, 기사들을 향해 쿵쿵 걸어오기 시작했다.


“우...우와아악!!”


공포로 이성을 잃은 기사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고르딘은 방패로 기사의 공격을 가볍게 쳐내고는, 주저 없이 철퇴를 휘둘렀다. 콰자작, 하는 갑옷 뭉개지는 소리와 함께 그 기사는 절명했다.


“...용서를.”


다른 두 명도 얼마 안 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고르딘은 한 명의 목을 쥐어 그대로 으스러뜨렸고, 나머지 한 명은 방패로 찍어 쓰러뜨린 후 가슴팍을 철퇴로 찍었다. 갑옷파편, 살점, 박살난 뼛조각이 피와 어우러져 공중에 흩뿌려졌다.


“...흠...”


살점이 눈에 들어갔는지 고르딘은 잠시 멈칫거렸다. 그는 몇 번 눈을 깜박거린 후, 뒤집힌 마차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즈음 마차에 깔려있던 빅토르가 잔해를 뒤집고 기어 나왔다. 발목이 부러졌는지 엉금엉금 기어오던 그는 고르딘을 발견하곤 숨이 멎는 비명을 질렀다.


“사...살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의 애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르딘은 그를 가볍게 처리하고 나서 마차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쿠득, 콰직! 으스러지는 나무 조각과 함께 레이놀드 후작의 것이 분명한 손가락이며, 살점이 밖으로 튕겨 나왔다. 고르딘은 그 뒤로도 쉴 새 없이 마차를 내리쳤고, 판자가 거의 톱밥이 될 즘에야 공격을 멈췄다. 때마침 제폰이 맞은편에서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바로 다음으로.”


고르딘은 고개를 끄덕인 후 제폰의 옆에 붙었다. 도로를 떠나기 전 그는 마차 잔해를 향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용서를...”



***



베셸리모는 드넓은 서재 가운데 앉아 보고서를 훑어보는 중이었다. 그의 저택은 평의회 전당 맞은편에 있었기에 그는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간 후였다.


“흠...염세 조정 방안인가...나쁘지 않군.”


그는 종종 서재에서 공문서를 처리하곤 했다. 참고문헌을 뒤적이기 좋다는 이유도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곳에 있는 것이 제일 아늑하기 때문이었다. 서재는 얼핏 보아도 열 평은 될 정도로 거대했지만, 책장이 겹겹이 놓여 있는 까닭인지 그가 있는 곳은 흡사 다락을 연상하게 했다.

그는 오늘 밤을 새기로 작정하고 고래 기름을 램프에 담뿍 채웠다. 평의회에서 앞으로의 외교방침을 친(親)리크나이츠로 바꾼 지금 그에 따른 적절한 제도 개선이 필요한 때였다. 그가 앉은 책상 가에는 처리해야 할 문서가 그득히 쌓여 있었다.


“이거...내일까지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먼.”


그는 서류 더미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결재를 시작한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워낙 집중했던 탓인지 목이 말라왔다. 그는 냉차나 한잔 마시고 하자는 생각에 메이드를 호출했다. 그러자 잠시 후 메이드 한 명이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주인님, 잠시 실례하겠사옵니다.”


“응? 아, 오냐. 어서 들어오너라.”


메이드는 다소곳한 자세로 책상에 찻잔이며, 티스푼 등을 내려놓았다. 베셸리모는 한숨도 돌릴 겸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그는 차를 탈 준비를 하는 메이드를 흘끗 바라보았다.

이십 대 초반쯤 되었을까? 그녀는 목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단발에, 타는 듯한 붉은 머릿결이 인상적인 아가씨였다. 베셸리모는 문득 그녀를 처음 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택에는 수십 명의 메이드가 있었지만, 그는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워두는 게 고용주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얘야, 너는 처음 보는 얼굴이로구나. 새로 들어왔느냐?”


그러자 메이드는 흠칫 놀라 고개를 조아렸다.


“예, 주인님. 오늘 처음 일을 시작했사옵니다.”


“그래? 허어, 그래도 그렇지 처음 일을 시작한 아이한테 차 시중을 들게 한단 말인가? 내일 집사장한테 한소리 해야겠군.”


“죄...죄송합니다.”


“아니, 네가 사과할 건 없다.”


사실 베셸리모는 반 장난식으로 말한 거였지만, 메이드는 거기에 겁을 단단히 집어먹은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는 공작의 직위에 국가의 재상까지 맡고 있는 인물이니, 일반인으로선 기죽지 않는 게 이상했다.


“그건 그렇고,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그러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르타 슈터크라 합니다.”


“흐음...슈터크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성이었지만,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천한 메이드의 성 따위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마 전에 업무상 만났던 귀족과 이름이 혼동되었을 것이다. 그는 빙긋 웃으며 메이드가 차를 따르기 편하게 책상을 치워주었다.

그녀는 쭈뼛거리며 찻잔에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나 몸을 떠는지, 마주 닿은 주전자에서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얘야,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불안한 마음에 베셸리모가 말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메이드를 놀라게 했는지, 그녀는 기어이 찻잔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쨍그랑,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도기 조각이 땅에 흐트러졌다.


“아...아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메이드는 혼비백산하여 바닥을 훑기 시작했다. 도기 파편은 물론이거니와, 쏟아진 차로 카펫은 이미 흥건히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눈시울을 적시며 파편을 모았다.

베셸리모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지었다.


“진정하거라. 흥분했다간 더 일이 커질 수 있어. 혼내지 않을 터이니 천천히...”


“앗!”


메이드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손을 움켜쥐었다. 아마 도기 파편에 손을 찔린 것일 게다. 베셸리모는 신입에게 차 시중을 들게 한 집사장을 원망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괜찮느냐? 그러게 내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나.”


“흑...흐흑...”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베셸리모는 왠지 모르게 딱한 마음이 들어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자, 자, 진정해라. 어디, 손을 다친 거냐? 한 번 보자꾸나.”


“주...주인님...”


메이드는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폈다. 그러자 자그마한 손 위로 깨진 도기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응?”


하지만, 그녀의 손은 멀쩡했다. 그가 예상한 것처럼 피가 나지도, 도기 조각이 살에 박힌 상태도 아니었다.


“이게 무슨...컥!”


베셸리모가 뭐라 반응할 틈도 없이, 도기 조각이 그의 목을 파고들었다. 메이드는 파편을 그의 목에 쑤셔 넣는 한편, 다른 한 손으로 그가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재상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나왔다.


“끄...우우...!”


“미안해요, 재상. 나 재상님 싫어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시키니 하는 수밖에.”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도기 파편을 몇 개 주워 베셸리모의 가슴, 옆구리, 명치에 박았다. 그때마다 베셸리모는 숨넘어가는 비명을 질렀다.

오르타는 그런 그를 보며 생긋 미소 지었다.


“흐응, 나 좀 유명한 줄 알았는데 의외네. 나 몰라요? 오르타 슈터크. ‘이리의 송곳니’ 시절부터 있었는데?”


“욱..크으욱...”


“하긴, 유명세 탄다고 좋을 직업은 아니니. 뭐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잘 가요, 베셸리모 재상님.”


베셸리모의 부릅뜬 눈이 그녀를 향했다. 하지만 오르타는 그걸 피하지도 않고, 생글생글 웃으며 받아주었다. 오른손은 여전히 그의 입을 막은 채, 왼손은 쉼 없이 도기 파편을 그의 몸뚱어리에 박아 넣으며.

늙은 재상의 숨은 얼마 못 가 끊어졌다. 오르타는 죽은 그의 눈을 감겨주고는 치렁한 메이드 옷을 벗어 던졌다. 그러자 알룬도의 그것과 비슷한 블라우스와 꽉 끼는 가죽바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은...누구더라? 귀찮아 정말.”


그녀는 주전자를 들어 식은 차를 벌컥벌컥 들이켜고선 창문을 통해 모습을 감췄다. 서재엔 베셸리모의 싸늘한 주검만이 남았다. 램프에선 여전히 불이 활활 타오르는 중이었다.



****



“오오, 오늘은 달빛이 정말 아름답군요.”


제스터는 창가에 손을 얹으며 감탄했다. 하지만 발베릿 공작에겐 그저 괴상한 광대가면이 허공에 떠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크...네놈, 그 가면...본 적이 있다. 분명 안개송곳니 암살단이었지.”


“아, 기억해주시는 겁니까? 이거 영광인데요.”


광대가면이 허공에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원래부터 웃는 모양이었는데도, 발베릿은 그게 괴상하게 일그러지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는 최대한 침착하려 애썼다. 하지만 숨을 고르려 할 때마다 말뚝이 박힌 손바닥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그는 간신히 비명을 억누르며 말했다.


“어떻게 내 방까지 들키지 않고 들어온 거지? 밖에는 내 사병들이 지키고 있었을 텐데.”


제스터의 가면이 살짝 흔들렸다. 입을 가린 채 웃은 것이다. 그는 흥얼거리며 발베릿에게 다가왔다. 달빛을 받던 가면이 일순 그림자 속으로 모습을 감추더니, 순식간에 공작의 코앞까지 접근해왔다.


“하하하핫!!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제 모습을 보시고도.”


발베릿의 얼굴이 공포와 분노로 일그러졌다. 아무리 강심장인 사람이라도 가면이 떠다니며 말을 하는 모습을 보면 온몸의 털이 곤두설 테니까. 제스터는 분명 그 자리에 표표히 서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쩐 영문인지 그가 쓰는 가면을 제외하곤 신체가 전혀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발베릿이 말했다.


“마법을 쓴 거냐? 설사 그렇다 해도 내 호위마법사가 모를 리가 없는데.”


“아, 그 분이라면 여기 들어올 때 제일 먼저 죽였습니다.”


제스터는 마치 벌레라도 죽인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그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콧노래를 부르며 방안을 배회했다. 그는 공작의 생사 따위 안중에도 없는 듯 침대에 누웠다가, 탁자 위의 과자를 집어 먹다가, 커튼을 이리저리 매만졌다.

그러는 동안 발베릿은 필사적으로 몸에 고정된 말뚝을 빼내려 했지만, 아무리 힘을 써도 역부족이었다. 기대할 것은 밖에 있는 경비병들인데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의 기척조차 느껴지질 않았다. 모두 제스터에게 당한 것일까? 나이가 들었다 해도 무인 출신인 발베릿 공작을 이렇게 쉽게 제압할 정도니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발베릿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레이시 녀석, 오도 가도 못하는 걸 거둬줬더니 이렇게 배신을 하는군. 배은망덕한 놈!”


제스터는 그 말을 듣고 킥킥 웃었다.


“큭큭큭, 맞습니다. 아주 나쁜 놈이죠, 우리 단장은. 전폭적으로 동의합니다.”


“...여기서 날 죽인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평의회 간부들이 즉시 너희를 토벌할 것이야!!”


“글쎄요...제 할당량은 당신이 마지막이니...일단 평의회에서 다섯은 사라졌는데요?”


“뭐..라고?”


발베릿의 눈이 크게 떠졌다. 평의회에서 레이시를 압박한 지 세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평의회 간부 넷을 죽이고 왔다고? 도무지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제스터는 그런 그의 반응이 우스웠는지, 낄낄대며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농담입니다, 농담.”


“이...이놈이 감히 누굴!”


“아직 한 명 남았거든요. 뭐 시간은 많지만, 일찍 끝내고 한잔 걸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푸욱. 날카로운 무언가가 공작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공작의 입에서 피가 토해지려는 찰나, 제스터는 재빨리 그의 턱을 쥐어 방향을 돌렸다. 침대보가 순식간에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아, 실례. 피가 튀면 좀 곤란해서요.”


“꺼..커허...?!”


그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일그러지는 가운데, 제스터는 꽂아 넣은 검을 서서히 비틀었다. 그때마다 공작의 몸은 경련을 일으켰고 그마저도 몇 초가 지나자 잠잠해졌다.

그의 죽음을 확인한 후 제스터는 흥얼거리며 방문을 나섰다. 복도에는 일찌감치 처리해놓은 경비병들의 주검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제스터의 경쾌한 노랫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오오, 오늘은 참 달이 밝다오. 만월은 모든 걸 보았겠지! 후작은 아내의 치마폭에서, 백작 둘은 마차 안에서, 공작은 침소에서, 나머지 한 명은 어떻게 될까?”



레이시의 근신처분이 내려진 날, 평의회에 참석했던 간부는 재상 베셸리모를 포함해 전원 몰살되었다. 그것은 보수파의 몰살과도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고, 결국 며칠 뒤 프르소 백작을 주축으로 하는 급진파가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새롭게 평의회를 구성한 프르소 백작은 왕실 특무조직으로 안개송곳니를 추대했고 그들은 정규군으로서 당당히 공석에 복귀했다.

살아남은 보수파 귀족들 사이에선 학살의 주동자가 누구인지 순식간에 퍼졌으나, 그것이 공석 상에서 발언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 강력한 심증에도 불구하고, 물증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또한 이를 파헤치려 했다간 자신들이 목도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

급진파 귀족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안개송곳니의 임관식은 거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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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2) +1 15.04.06 987 28 15쪽
11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1) +1 15.04.06 962 27 16쪽
109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0) +1 15.04.06 1,000 27 13쪽
108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9) +2 15.04.06 895 30 12쪽
107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8) +4 15.04.06 856 28 12쪽
106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7) +3 15.04.05 986 25 12쪽
105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6) +1 15.04.05 891 28 10쪽
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82 30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797 30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88 27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1 29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26 28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62 33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1 31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84 25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83 25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76 27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18 25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40 32 11쪽
92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88 28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40 26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39 29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74 31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63 34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42 33 13쪽
86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06 33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15 35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45 34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74 31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08 37 16쪽
81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78 33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15 36 14쪽
79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16 38 19쪽
7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35 33 18쪽
77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15 39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22 33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47 33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43 34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70 38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86 34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17 43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1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35 34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19 35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15 32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83 38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292 35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0 44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53 35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76 39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20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7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1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5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3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6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5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2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2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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