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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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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1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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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10)

DUMMY

남이 보기엔 제멋에 사는 거 같지만, 사실 제리온은 무척이나 계획적인 사람이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 일정을 차근차근 정리해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제리온은 스케쥴을 정하며 자신의 명석함을 매일 확인한다. 그는 일과 외에도, 얘기치 못하게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항상 가정하고 다닌다. 그래야 상황이 발생했을 때 침착할 수 있고, 또 그래야 능숙한 대처가 가능해진다.

때문에 그의 머릿속은 항상 지금 해야 할 일, 나중에 해야 할 일, 앞으로 해야 할 일로 가득하다. 생각 없이 사는 거 같지만 사실 누구보다 생각이 많은 것이다.

정오까지 늘어지게 낮잠을 잔 그는 어슬렁거리며 일어나 럼을 한 잔 따른다. 그리고 부엌에서 대충 얼굴을 닦은 후,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마차를 팔러 간 녀석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테니 시간은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 후, 식탁으로 향한다. 예상한 대로 햄 샌드위치 두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마리네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제리온은 조금 전 따라놓은 럼과 함께 샌드위치로 늦은 아침을 먹는다. 아무런 애로사항도 없는, 완벽한 오후다. 이대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배에 타면 되는 것이다.

제리온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그도 옅은 미소를 띠며, 웬만해선 화를 내지 않는다. 에레이시아가 일행이 걱정된다고 옆에서 쫑알대도 그냥 그러려니, 할 뿐이다. 바깥이 왠지 소란스럽다. 하지만 항구에 소음이란 늘 있는 것이니까. 그는 럼을 홀짝이며 자신의 짐을 챙긴다.

그렇다. 그가 욕을 하는 경우는 ‘자신이 꿈에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 혹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사고’가 일어났을 때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느낌이지만, 그건 그만큼 황당한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리온은 매일같이 마음을 다잡는다. 오늘은 욕을 하지 않기를. 최선은 그런 상황을 만나지 않는 것이고, 차선은 그런 상황에도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욕해서 좋을 게 뭐가 있는가? 입이 거친 사람은 어느 계층을 가도 환영받지 못하는 법이다.


“제에리온~! 에리이! 라비!!”


집 밖에서 디리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돌아온 것인가. 그런데 들어오지 않고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니 짐이 꽤 많은 모양이다. 제리온은 큰맘 먹고 그들을 도와주기로 결정한다. 힘을 쓰는 일은 마법사가 가장 경멸해야 할 일이지만, 그래도 동료지 않은가.


“야 이 자식들아! 어서 안 나와?! 제리온! 에리!!”


디리터가 다시 고함을 친다. 부른지 얼마나 됐다고 저 야단인지, 제리온은 살짝 짜증이 나려고 한다. 정말 언제 봐도 천박하고, 멍청한 녀석이다. 뭐 그래도 본성은 착하니까. 그는 옷매무새를 다듬은 후 천천히 문을 연다.


“뭔데 이리 난리야? 왔으면 어서 들...”


거실이 너무 어두웠던 탓일까,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셔온다. 언제 비가 그친 걸까. 그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끼며 서서히 눈을 뜬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나 디리터다. 그는 특유의 거대한 투핸드소드를 든 채 숨을 헐떡대고 있다. 그리고 옆에는 마리네가 있고, 어찌 된 일인지 그는 얼굴이 창백한 상태고...루도는 그런 그를 부축하고 있고...? 이칼롯은 웬 남자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

그리고 수십 명의 병사가 그들을 빙 둘러싼 채 밤 가시 마냥 창을 겨누고 있다. 창이 어찌나 많은지 시야에도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이제 와? 사람 걱...꺄아앗?!”


나와 보던 에레이시아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친다. 뭐 무리도 아니다. 이런 광경을 봐버렸으니. 문고리를 쥔 제리온의 손에 힘이 간다. 이마에 팍 주름이 지고, 입술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새어나온다.

어떻게 반나절 사이에 일을 이렇게까지 벌려놓을 수가 있을까. 이건, 진짜 예상하지 못했다고!

디리터가 숨을 들이키며 말한다.


“나와! 떠날 시간이다.”


이러니, 욕이 안 나올 수 있겠는가.


“아, 나, 이. 씨발!!”



***



“와, 이런 엿 같은! 니들은 진짜 엄청나게 개자식들이야!!”


제리온의 독설이 오늘따라 한층 더 가시가 돋친 느낌이다. 일행은 병사들에게 포위된 채 선착장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수십 개의 창에 겨눠지는 기분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에레이시아는 이미 반쯤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비...비겁한 녀석들! 어서 인질을 놔줘!! 대장님, 괜찮으십니까?”


병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도합 6천 골드가 넘는 초대형 현상범 집단이 등장했는데, 하필 경비대장이 그들에게 인질로 잡힌 것이다. 그들은 일행에게서 몇 미터 정도 떨어진 채 끊임없이 따라붙었다. 처음 10여 명에서 시작한 병사들은 이동하는 도중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해, 지금은 무려 50명이나 되는 인원을 이루고 있었다. 거기다 희대의 현상범을 구경하려고 각지에서 인파가 몰려, 부둣가는 유례없는 대만원을 이루었다. 개중에는 마차를 끌고 나타난 귀족도 몇몇 있었다.


“...물러서라.”


제리온은 경비대장의 목에 살짝 생채기를 냄과 동시에 병사들을 좌악 훑었다. 그것만으로도 병사들은 식겁하여 두어 걸음 물러섰다. 그들이 보기에 이칼롯의 경고는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아니, 조금만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간 즉시 목을 그어버릴 지도. 경비대장은 날이 살짝 목 안에 파고드는 것을 느끼고는 비명을 질렀다.


“히익, 우와악! 물러서! 어서 물러서, 이것들아!!”


로샤단 쪽도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칼롯은 인질을 잡느라 손이 모자랐고, 마리네는 부상 때문에, 루도는 그런 그를 부축하고 있었다. 거기다 디리터는 에레이시아를 보호한다며 난리를 피우고 있으니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하는 것은 모두 제리온의 몫이었다.


“젠장, 썩어 처먹을!...내가 니들을 믿느니 차라리 바다에 빠져 죽고 말지.”


그는 끊임없이 구시렁거리며 바쁘게 손을 놀렸다. 그가 만들어낸 포스 미사일(force missile)이 그의 손짓에 따라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다행히 병사들은 제리온의 마법에 겁을 집어먹고 멀찌감치 물러섰다. 하르만 때도 그랬지만, 오합지졸들의 문제는 전투력이나 무장 상태가 아니다. 혹시 저걸 내가 맞으면 어떻게 하지, 라고 느끼는 두려움이다. 그 예로 포스 미사일은 단 세 발에 불과했지만, 50여 명의 병사가 이에 놀라 쩔쩔매고 있었다.

제리온의 선전 덕에 일행에겐 잠시 숨을 돌릴 기회가 주어졌다. 루도는 잠시 멈춰선 채 마리네의 상태를 살폈다. 그는 어찌나 땀을 많이 흘리는지 머리카락이 뺨이며 목덜미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루도는 그걸 보고 혹시 제랄드의 무기에도 독이 발라져 있던 게 아닌지 걱정했다. 하지만 다행히, 마리네의 호흡은 시간이 갈수록 나아졌다.


“괜찮냐? 조금만 참아라.”


“으...응..”


마리네는 고통 속에서도 끊임없이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는 병사들이나 구경꾼들에겐 관심이 없었다. 인파에 섞여 일행을 주시하는 저 눈! 제랄드와 게네스였다. 둘은 일행이 술집에서 도망쳐 나온 때부터 말없이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물론 치안 경비대가 총출동한 만큼 그들도 섣부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하지만 마리네에겐 수십의 경비대보다 제랄드의 옅은 미소가 더 두렵게 느껴졌다.

그는 대체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대체 뭘 노리는 걸까.

손에 쥔 롱소드가 부들부들 떨렸다. 한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사고를 저지른 자신이 경멸스러웠다. 그래놓고 발렌스 상회의 복수는커녕 보기 좋게 한 방 먹고 말았다. 게다가 지금은 원수를 눈앞에 두고서도 멀리 도망쳐야 하는 입장이다. 마리네는 쩔뚝이는 다리를, 짐만 되는 자신을 저주했다.

아무래도 마리네 때문에 이동이 늦어졌으므로, 루도는 아예 그를 들쳐 맸다. 일행은 포스 미사일의 가호를 받으며 선착장에 도달했다. 그곳에선 랄프와 라비가 막 배의 닻을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루도가 그들을 보고 소리쳤다.


“이 몸이 바로 4천 골드짜리 수배자 루도 클로람이다! 어이, 영감! 죽기 싫으면 어서 배 띄워!”


그는 험상궂은 얼굴로 허공에 발길질을 해댔다. 그것은 루도가 순간적으로 발휘한 기지로, 행여 나중에 랄프가 현상범을 도와줬다는 혐의를 받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랄프도 일행에게 붙잡혀 협박당했고, 불가피하게 배를 띄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옳거니! 범죄자답게 놀자 그거지? 어차피 잡히면 사형인데, 그러지 그럼.”


디리터와 제리온도 루도의 의중을 읽고 이에 동참했다. 디리터는 투핸드소드를 허공에 휘저으며 병사들을 위협했고, 제리온은 아예 포스 미사일 한 방을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러자 자갈이 으깨지며 파편이 튀어 올랐다. 병사들이 이를 목격하고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렸다.


“으힉...이 무슨...”


루도와 디리터는 배에 올라타자마자 랄프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어서 출발!! 죽고 싶어 정말?!”


다들 이때만큼은 연기가 아닌 진심이었을 것이다. 랄프는 부둣가를 가득 메운 인파를 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메르실 시민들이 모두 나온 것인가? 저명한 정치인이 납셨다고 해도 이 정도로 사람이 몰리진 않을 것이다.


“내, 데루루피아보다 시끄러운 손님은 살다 살다 처음이다.”


그는 라비와 함께 서둘러 출항 준비에 나섰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게 웬 난리인지,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달라고 역정을 내야 정상이지만, 그는 아무런 불만 없이 루도의 부탁에 따랐다.

스나우그 집안의 전폭적인 협조 덕에 배를 띄우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병사들은 어떻게든 해보려고 기회를 노렸으나 도개교에 이칼롯과 제리온이 떡 버티고 서 있어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경비대장은 이제 꼼짝없이 죽었다는 생각에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했다.


“이...이놈들...배를 띄운다고 달라지는 건 어...없다...우리 해...해군이...”


그는 일행을 위협했으나 이미 그 목소리는 개미만도 못했다. 그가 안쓰러울 정도로 말을 더듬는 모습을 보고 제리온은 코웃음을 쳤다.


“아, 알아.”


경비대가 생각보다 순진한 이들이라 천만다행이었다. 50명이 넘는 인원이 몰려와선 인질 하나 때문에 쩔쩔매는 모습이라니, 눈물겨운 전우애를 칭송해야 할 일일까.


“어...어이, 저놈들 떠나려고 하잖아. 어떻게 좀 해봐!!”


“하지만...대장님이...”


“제기랄, 해안 경비대! 해안 경비대는 언제 오는 거야!!”


술집을 나설 때부터 죽 이런 식이다. 그들은 인질로 잡힌 대장 핑계를 대며, 늑장을 부리는 해안 경비대에게 죄를 덮어씌우며 공격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리 좋게 봐도 실전 경험이 전무한 오합지졸임이 분명했다.


“어디로 가려는 거지? 바다로 간다고 추격이 멈추는 건 아닐 텐데.”


문제라면 바로 이 남자다. 말없이 관망하던 제랄드는 막 배가 떠나려 하자 병사들을 밀치며 앞으로 나왔다. 그의 왼쪽에는 게네스가 있었고, 등 뒤로는 어느새 모여든 사내들이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아케니온 용병단. 경비병들은 주춤거리면서도 그들을 저지하진 않았다. 상황이 상황인 지라 용병을 고용해서라도 일을 마무리 짓고 싶은 게 그들의 심정이었다.

이칼롯은 배에 오르기 직전 그와 눈을 마주쳤다. 제랄드는 싱글벙글하면서도 이칼롯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루도와 마리네는 둘이 서로를 응시하는 장면을 숨죽인 채 지켜보았다.

제랄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게 텔슈피드인가? 듣던 대로 비싸 보이는군.”


“...알룬도에게 얘기는 들었다. 안개송곳니의 개들.”


이칼롯은 야멸치게 쏘아붙였다. 심장 약한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하지만 제랄드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킥킥, 알룬도답군. 그래, 또 도망가는 건가? 그 유명한 로샤단도 땅에 떨어졌군. 람카디스 클로람이 살아있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너!!”


선미에 등을 기대고 있던 마리네가 분노하여 외쳤다. 그는 금방이라도 달려갈 기세로 검을 들었으나, 제대로 균형조차 잡지 못하고 갑판에 쓰러졌다. 에레이시아가 재빨리 그를 부축했다.

이칼롯은 침묵을 지켰다. 제리온과 디리터는 심드렁한 표정이었고, 루도는 인상은 썼으나 그렇다고 평정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마리네가 저리 분개할 정도라니, 술집에서 뭔가 트러블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예의 그 살인 사건이라던가...

이칼롯과 제리온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쳐 배에 올라탔다.


“또 살아남은 거다. 잊지 마. 람카디스 대장과 동료들의 복수는 기필코 갚아줄 테니까.”


이칼롯의 경고에 제랄드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가 손짓하자 뒤 열에서 한 남자가 쟈벨린(javelin)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쟈벨린을 받아 들고는 그것을 이칼롯을 향해 겨눴다. 그러자 인질로 잡힌 경비대장이 숨넘어가는 비명을 질렀다.


“이...이봐라! 지금 뭐 하는 거야!!”


“복수...고리타분하지만, 뭐 나쁘지 않아. 꼭 이루었으면 좋겠군. 그런데 말이야, 그 복수란 거, 우리가 도와줄 수도 있는데?”


그는 루도에게 거절당했음에도 또다시 동맹을 제의했다. 제랄드가 보기에 이칼롯은 루도나 마리네보다는 말귀를 잘 알아먹는 것 같았고, 또 둘보다 훨씬 발언권이 있어 보였다. 그의 판단은 어느 정도는 맞았지만, 또 어느 정도는 틀렸다. 마리네가 그들을 적으로 간주한 이상, 이칼롯뿐 아니라 로샤단 전원은 이에 따라야 했다.

그것이 델키아에서 했던 「한 명이 검을 뽑으면 모두가 검을 뽑는다」는 맹세였다.


“아니, 너희도 죽어야 할 자들이다. 아케니온.”


“...보기보다 훨씬 멍청한 녀석들이었군.”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제랄드는 그대로 쟈벨린을 던졌다. 이칼롯, 아니 경비대장을 노리고 쏜살같이 날아오던 쟈벨린은, 불과 몇 미터를 앞두고 무언가에 튕겨 떨어졌다. 제리온의 포스 미사일이 날아오던 창을 요격한 것이다.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네놈이 개새끼라는 건 알겠다.”


제리온은 남은 한 방을 제랄드에게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허공을 선회하던 포스 미사일은 그가 손짓하자 제랄드의 머리를 향해 쏘아졌다.


“대장, 위험합니다!”


게네스가 쇼텔을 뽑아 구체를 막아냈다. 하지만 무지막지한 포스 미사일의 반동에 그는 몇 미터를 날아가 데굴데굴 굴렀다.


“허...억!!”


게네스는 손목이 부러졌는지 일어나지 못하고 짓눌린 신음을 뱉었다. 아케니온 단원 몇몇이 그의 상태를 보기 위해 다가갔다. 제랄드도 이때만큼은 놀란 눈을 치켜떠야 했다.


“...대단하군! 역시 마법사는 경계 대상이야.”


“칭찬해줘서 눈물 나게 고맙다, 이 새끼야.”


그 직후 랄프의 배가 출발했다. 디리터는 어느새 그의 지시에 따라 돛을 펼치고 있었다. 아케니온 단원 한 명이 떠나는 그들을 보며 제랄드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겁니까? 저러다 놓치겠는데.”


제랄드는 땅바닥에 떨어진 쟈벨린을 바라보다가, 낮게 콧방귀를 뀌었다.


“하, 뭘 그리 열심이야? 애초에 우린 저놈들 잡으러 여기 온 게 아니라고. 죽어주면야 고맙긴 하겠지만.”


잡을 수 있으면 좋지만, 그걸 위해 위험을 감수하진 않겠다는 뜻이다. 루도의 존재가 아쉽긴 해도 지금으로선 베릴의 수정에 더 집중하고 싶은 게 그의 심정이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가 각성해 로시느와 싸워준다면,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미련 없이 포기한 아케니온과 달리 경비대는 떠나가는 일행을 보며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배에 돛이 펴지자, 병사들은 문득 생각난 듯 순식간에 제랄드를 포위했다.


“너...! 그렇게 멋대로 공격을 하면 어쩌자는 거냐! 대장님이 맞으려면 어쩌려고 그랬어!!”


제랄드는 코웃음을 쳤다. 그들은 누군가를 욕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무능함마저도 견뎌낼 수가 없는 약골들이다. 제랄드는 병사들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이런 자들이라면 전부 쓸어버리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싱글거리며 병사들에게 말했다.


“당신들 대장, 아직 저 배에 타고 있는 것 같던데. 그럼 어찌 구하려고 그러시오?”


“뭐라?! 그건 다른 문제다! 투창이 놈들에게 막혀서 망정이지, 그게 우리 대장님에게 맞았다면 어쩌려고 그랬나!”


“글쎄올시다...맞았다면 인질은 사라지는 거고...그럼 당신들은 맘 편히 로샤단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거 아니었나?”


“뭐...뭣?”


병사들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눈치 빠른 이들은 단박에 제랄드의 의중을 알아챘다. 요는 발상의 전환이다. 그들이 로샤단을 검거하지 못한 것은 로샤단이 경비대장을 인질로 잡아서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경비대장 때문에 로샤단을 검거하지 못한다는 뜻도 된다. 만약 방해물인 대장이 사라진다면? 제랄드는 보다 ‘합리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했다.


“당신들은 당신네 대장과 참 친한 모양이오. 한...6천 골드 어치 되나?”


“...그게 무슨 소리냐!”


“뭐, 별 거 아니오. 저런 전범 급 수배자를 잡으면 개개인만이 아니라 경비대, 나아가 도시 전체에 큰 이익이 될 테고, 그럼 자잘한 순직자 정도는 상부에서도 눈감아 줄 거란 얘기요.”


순직자. 직무를 다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 경비대장은 인질로 잡힘으로서 다른 병사들이 로샤단을 공격하는 걸 방해하고 있다. 때문에 그가 죽는다면, 그래서 로샤단을 잡게 된다면 그는 자신의 직무를 다한 셈이다. 자그마치 6천 골드짜리 현상범들.

병사들은 말없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제랄드의 설명에 다들 회가 동한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해안 경비대다! 녀석들을 쫓으려는 거 같은데?”


병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바다를 향했다. 과연 세 척의 군선이 랄프의 배에 따라붙고 있었다. 군선은 모두 갤리선으로, 해병들은 노를 저으며 힘차게 전진했다. 바다로 나가 순풍을 받으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랄프의 배가 그들을 뿌리치기에는 무리였다.

분대장으로 보이는 병사가 창대를 땅바닥에 힘차게 내리쳤다.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는 몇 번 눈을 깜박이더니, 다른 이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너, 해군에게 녀석들을 놓치지 말라고 전해!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날 따라와라. 활, 석궁, 슬링. 멀리 쏠 수 있는 무기는 전부 들고 등대로 집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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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2) +4 15.04.09 745 25 13쪽
120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1) +1 15.04.09 1,013 25 17쪽
119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6) +3 15.04.09 940 28 16쪽
118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5) +2 15.04.09 826 30 15쪽
117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4) +7 15.04.07 1,139 35 22쪽
116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3) +2 15.04.07 937 31 17쪽
115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2) +2 15.04.07 744 32 11쪽
114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1) +2 15.04.07 1,032 28 18쪽
11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4) +1 15.04.07 985 28 14쪽
11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3) +4 15.04.06 991 31 15쪽
11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2) +1 15.04.06 987 28 15쪽
11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1) +1 15.04.06 963 27 16쪽
109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0) +1 15.04.06 1,000 27 13쪽
108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9) +2 15.04.06 895 30 12쪽
107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8) +4 15.04.06 856 28 12쪽
106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7) +3 15.04.05 986 25 12쪽
105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6) +1 15.04.05 891 28 10쪽
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82 30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797 30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88 27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1 29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26 28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63 33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1 31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84 25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83 25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76 27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19 25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40 32 11쪽
92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88 28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40 26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39 29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74 31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63 34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42 33 13쪽
86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06 33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15 35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45 34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74 31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08 37 16쪽
81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79 33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15 36 14쪽
79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17 38 19쪽
7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35 33 18쪽
77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15 39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22 33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47 33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43 34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70 38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86 34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17 43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1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35 34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19 35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15 32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84 38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292 35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0 44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53 35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76 39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20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7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1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6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3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6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6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2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2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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