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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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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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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4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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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1)

DUMMY

망망대해에 배를 띄운 지 어느덧 열흘. 그저 신기하기만 했던 바다 풍경도 이제 질릴 대로 질려버리고 말았다. 역동적으로 밀려오는 파도 물결과 바닷바람, 아련히 보이는 수평선 등은 지루한 시간을 때워주는 좋은 경치거리였지만, 작디작은 배 위에서 하루를 보내기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서쪽으로 항해를 계속하는 동안 어려움도 많았다. 첫째는 멀미였다. 제리온을 제외하곤 전부 내륙지방 출신인 데다, 산간 토박이들(루도, 마리네, 디리터, 에레이시아)은 생전 처음으로 바다를 접한 거였고, 배라곤 강에 띄운 나룻배를 타본 게 전부였다. 그들은 - 심지어 이칼롯마저도 - 처음 이틀 동안은 멀미에 시달려 대화다운 대화도 나누지 못할 정도였다.

둘째는 사흘째에 불어 닥친 비바람이었다. 토박이들은 파도가 그토록 격렬하게 바뀌는 모습에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수 미터나 되는 높이의 파도가 배를 덮치자 항해경험이 없는 일행은 우왕좌왕했다. 다행히 랄프와 그의 손자 라비는 로샤단의 공백을 메우고 남을 정도로 뛰어난 항해사들이었고, 일행 또한 그들의 지시에 따라 서서히 배 다루는 법에 익숙해져갔다.

이렇게 두 개의 시련이 지나가고 나니 무료함이라는 세 번째 시련이 다가왔다. 랄프의 배는 범선인 만큼 방향을 잡아 돛을 펴고, 적당한 바람만 불어와 주면 특별히 신경 쓸 부분이 없었다. 폭풍이 지나가고 일주일 동안 일행은 갑판에 둘러앉아 노닥거리기를 일삼고 있었다.


“루도, 심심해 미치겠는데 한 곡 뽑아봐라.”


반쯤 누운 자세로 낚싯대를 쥐고 있던 디리터가 루도의 엉덩이를 툭툭 찼다. 그러자 가랑이 사이에 낚싯대를 끼운 채 하늘만 바라보던 루도가 늘어지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난 고향이 그리워 말이 되었답니다...이히힝 히히힝 히히리히히...”


“씨발! 그거 하지 마!”


무료함에 지쳐 한층 날카로워진 제리온이 말했다. 그는 해도를 펴놓고 양피지에 옮겨 그리는 중이었다. 옆에서 물을 끓이던 마리네는 그런 그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쿡쿡 웃었다.


“예전에 델키아에 있을 때 있잖아, 유랑극단의 가수가 노래하는 걸 구경했었는데, 지인짜 잘 부르더라고.”


마리네는 국자로 솥을 휘휘 저으며 옛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 루도가 이에 맞장구를 쳤다.


“아! 기억나! 메로리오 극단 말이지? 정말 대단했지. 그 목청하며, 정말...”


“킥킥...알룬도보단 훠얼씬 잘 불렀어.”


알룬도 얘기가 나오자 디리터가 코를 후비며 웃었다.


“야, 비교 대상이 좀...그 작자는 나보다도 못 부른다고.”


“푸하하. 하긴 좀 그렇지? 작곡 센스가 대단한 사람이야.”


“그렇게 만들래도 못 만들겠다. 원 가사하고는...”


그러다가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루도와 디리터는 낚시에 여념이 없었고, 마리네는 솥 안에 부지런히 파, 버섯 등을 넣었다. 제리온은 여전히 모작 중, 에레이시아는 디리터 옆에 누운 채 부득이한 일광욕을 즐겼다. 그리고 이칼롯은 선실에 틀어박혀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는 폭풍이 지나간 뒤로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잠이 많아진 케이스였다.

파란 하늘 끝자락엔 솜뭉치 같은 조각구름이 동실동실 흘러가고, 귓가엔 파도가 뱃머리를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따금 제법 큰 녀석이 다가와 배를 기울이면, 그때마다 에레이시아는 디리터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짜증을 냈다. 그렇게 십여 분이 흘렀을까, 뜬금없이 디리터가 말했다.


“얌마들아, 내가 지난 일주일간 노가리를 까면서 알게 된 건데.”


루도, 마리네, 제리온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그의 대화주제에 흥미가 있어서라기 보단, 정적을 깨는 ‘음향’에 저절로 고개가 움직였다는 표현이 맞았다. 디리터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우수에 젖은 눈을 한 채 말했다.


“난 아무래도 놀고먹는 체질 같아.”


“푸하하하!”


“어? 나돈데.”


루도와 마리네는 유쾌하게 웃으며 그의 농담에 동조하고 나섰다. 셋은 다시 그 주제를 가지고 몇 분간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렇게 낚시만 해도 먹고 사는 데엔 지장이 없을 거 같단 말이지. 손톱만 한 새우로 팔뚝만 한 생선을 건져 올리다니, 이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거지. 심지어는 싸고 남은 똥도 떡밥으로 쓸 수 있잖아.”


“아니 그건 좀...그럼 자기 똥 먹은 물고기를 먹는 거잖아.”


“킥킥킥. 그것도 그렇네. 어쨌든, 어부도 꽤 할 만할 거 같단 말이지. 폭풍만 안 분다면.”


“그야 그렇지. 폭풍만 안 분다면.”


“폭풍만 안 분다면.”


그즈음 되자 제리온이 히죽 웃으며 루도에게 말했다.


“여기 신이 계신 데 뭔 걱정이야. 어이, 펠아람. 폭풍 좀 없애봐.”


“말하는 꼬락서니 보게. 매우 무엄하도다. 겨우 500골드짜리가 감히 4000골드나 되는 이 몸에게.”


“푸헤헤헷!”


“큭킥킥킥...”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무료함이 일상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보니 진지함이 사라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벌써 열흘째 추격자는 고사하고 배 실루엣도 구경 못한 상황이니까. 마리네 역시 상처가 나아감에 따라 차츰 메르실에서 겪은 충격에서 벗어나는 모습이었다. 디리터의 말마따나 이런 불가피한 무료함도 때로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일행은 이십 대 전후의 청년들이었으니까.

다시 십여 분, 지루하던 낚싯대에 드디어 입질이 왔다. 멍하니 있던 루도는 낚싯대가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려 하자 화들짝 놀라 사타구니에 힘을 주었다.


“와! 뭐지? 뭔가 걸렸는데!”


“야 이 자식아! 그럼 손으로 잡으라고!”


루도는 머쓱하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뭔지 몰라도 낚싯줄이 팽팽하게 늘어지는 게 월척인 모양이었다. 다시 낚싯줄을 감았다 폈다 하기를 몇 분, 이윽고 회색빛을 띈 물체가 수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디리터와 마리네는 배 밖으로 고개를 쫑긋 내밀고 있다가, 녀석을 발견하곤 환성을 질렀다.


“오! 문어!”


“이야아, 크다아!”


잡힌 것은 루도 머리통만 한 문어였다. 며칠 전 처음 문어를 봤을 때엔 다들 저런 걸 어떻게 먹느냐며 식겁했었지만, 그 맛을 본 뒤론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루도는 건져 올린 문어를 즉석에서 갈라 내장을 빼낸 후, 물에 씻어 솥 안에 집어넣었다. 그때까지도 녀석은 죽지 않고 온몸을 꿈틀거렸다. 세 사람은 발갛게 익어가는 문어를 보며 군침 삼켰다. 디리터가 말했다.


“야, 너무 많이 끓이면 안 돼. 살짝, 살짝 데쳐야 씹는 맛이 좋다고.”


“나도 알아. 근데 아직 살아있는 거 같은데...”


“짜식이, 어차피 씹히면 죽는구만 그런 거 따지고 있냐?”


디리터는 말리는 마리네도 뿌리치고 솥 안에서 문어를 꺼내더니, 가위를 가져와 접시에 숭텅숭텅 썰기 시작했다. 이내 갑판 위로 문어의 육수와 양념장이 어우러져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제리온은 아직도 꿈틀대는 문어를 입 안에 집어넣는 그들을 보며 이렇게 평했다.


“너희, 진심으로 야만스럽다.”


“넌 마, 한 입 달라고 부탁이나 하지 마라. 에리, 에리, 요거 좀 먹어봐라. 맛이 아주 일품이야.”


“...절대 안 먹어...”


에레이시아는 질겁하며 요리에서 몇 미터 떨어졌다. 그녀는 문어를 처음 봤을 때의 그 꿈틀거림이 트라우마로 남은 듯, 결코 입에 대려 하지 않았다. 하기야 산자락에서 나물만 먹고 자란 그녀에게 이런 해산물은 거부감이 많이 들 것이었다. 결국 랄프와 라비까지 합세해 전골요리를 즐기는 동안, 그녀는 마른 빵만 우물거리며 고독을 씹어야 했다.

식사시간은 딱히 정해져있지 않았으나 보통 대어가 낚일 때엔 즉석에서 요리가 시작되었으므로 이때가 자연히 모두가 모이는 시간이 되었다. 밥 생각이 없다며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이칼롯과, 문어 혐오자인 에레이시아를 제외한 모두는 솥 주위에 옹기종기 앉아 별미를 즐겼다. 문어와 새우, 그리고 각종 야채가 들어간 전골을 먹으며 일행은 내려쬐는 열기를 억지로 이겨냈다.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자 이마에서 땀이 후두둑 떨어졌다.

식사가 마무리되어갈 때 즈음, 디리터가 새우 껍질을 씹으며 랄프에게 물었다.


“영감님, 그 에메랄드 섬은 대체 언제 도착하는 거요? 음식이야 낚시로 어찌어찌 해결이 되는 듯한데 먹을 물이 얼마 없잖아요.”


“...마침 그 말 하려던 참이었다. 슬슬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거든.”


“응? 뭔 소리?”


이런 건 보통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훨씬 잘 먹히는 법. 랄프는 디리터의 귓머리를 붙잡고는 뱃머리로 끌고 갔다.


“아야야야! 뭐에요?!”


“네가 이 중에서 눈이 제일 좋잖아. 저게 뭐로 보이냐.”


“뭔데 그래...”


랄프는 멀리 수평선을 가리켰고, 디리터는 그의 손을 따라갔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지점에, 거무스름한 게 희미하게 빠꼼 솟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디리터는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다시 봤지만, 너무 멀어 검은 물체라는 것밖에 알아낼 수가 없었다.


“저게 뭔데요? 늑대 똥?”


“산봉우리, 자식아! 거기서 똥 얘기는 왜 나와?”


“우와, 진짜로?!”


섬의 윤곽이 보인다는 사실에 다들 앞 다투어 뱃머리로 달려왔다. 루도와 마리네도 봉우리를 발견하고는 탄성을 질렀다.


“이야아! 드디어 도착한 거야? 육지이!!”


일행은 섬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다. 특히 선상의 생활에 지쳐 있던 에레이시아가 보인 희색은 놀라울 정도였다. 그녀는 민망할 정도로 디리터를 껴안다가, 주위의 이목을 깨닫고는 황급히 물러섰다. 랄프는 그런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요란 떨지 마라. 저래 보여도 한나절은 더 가야 해. 그리고 이 부근이 진짜 위험한 곳이니까...”


“위험? 뭐가요?”


마리네가 귀를 쫑긋 세우고 물었다. 하지만 랄프는 팔짱을 낀 채 말이 없다가, 대충 얼버무리곤 다시 키를 잡으러 갔다.


“아니다, 뭐 별 일 없겠지. 바람도 좋고.”


그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한 것인가 싶어 의아했지만, 이내 신경 끄고 열흘 만에 목격한 육지의 향연을 즐겼다. 처음 봉우리만 보이던 섬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명이 시사하는 것처럼 섬은 멀리서도 뚜렷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을 띠고 있었다.

섬이 가까워지자 선상에선 즉시 상륙준비에 들어갔다. 디리터는 닻을 손보러 갔고, 루도와 마리네는 랄프의 지시에 따라 선적한 와인 통을 점검했다. 어째서 창고에 음식보다 와인이 더 많은지 의문이었지만, 랄프는 그게 중요한 거라며 껄껄 웃었다. 제리온과 에레이시아는 라비와 함께 식사 후 남은 빈 그릇을 정리했다. 간만에 분주한 한때였다.

그러다가 선적물 개수를 보고하기 위해 뱃머리로 이동하던 마리네는, 바다 저편에서 무언가 발견하고 환호성을 터뜨렸다.


“우와앗?! 저게 뭐지! 다들 이리 와봐!!”


그의 너스레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웬 호들갑이냐며 핀잔을 주던 루도는 마리네가 가리킨 것을 보고 그가 했던 거보다 훨씬 더 역동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워히우어!! 뭐야 저게!”


곧이어 디리터와 에레이시아도 탄성을 터뜨렸다. 넘실대는 파도 사이로 커다란 물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지나가던 라비가 그걸 보곤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저건 고래에요. 우리 집 두 개는 합친 크기의 물고기죠. 이렇게 먼 바다까지 나오지 않으면 구경하기 힘든데, 다들 운이 좋네요.”


집 두 개를 합쳤다는 말에 디리터가 숨넘어가는 비명을 질렀다.


“진짜? 진짜?! 저거 먹을 수 있냐? 잡으면 일 년 내내 처먹겠는데!!”


“예, 뭐...잡아먹기도 한다던데 저는 잘 모르겠네요. 메르실은 포경이랑은 인연이 없는 곳이라...”


“그래? 먹는단 말이지! 바다 최곤데! 나 저렇게 큰 물고긴 처음 본다.”


고래는 이따금 수면 위로 기다란 물보라를 뿜어댔다. 그때마다 토박이 삼인방은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에 환성을 질렀다. 키를 조종하던 랄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향유고래로구나. 항해 중에 발견하면 행운이 따른다고 하지. 너희도 녀석에게 기도해봐라. 의외로 효과가 좋다는 소문이 있거든.”


그러자 순진한 삼인방은 고래를 향해 앞 다투어 합장하기 시작했다. 이어 가만히 듣고 있던 에레이시아도 행운이라는 말에 슬그머니 합장 대열에 끼어들었다.


“고래님, 무진장 큰 고래님! 저희 앞날에 가호가 있기를...부탁합니다.”


“야! 난 라키시아 특제 깃털 펜이랑 유화 물감! 꼭이다!”


“아니, 소원을 들어주진 않는 거 같은데.”


삼인방이 어린애처럼 오도방정을 떠는 동안, 에레이시아는 조용히 얼굴을 붉히며 소곤거렸다.


“별 탈 없이 저 녀석과 결혼할 수 있기를...”


그녀의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디리터는 루도, 마리네와 어울려 연방 낄낄거리고 있었다. 고래는 선상의 유쾌한 분위기에 화답이라도 하듯 다시 긴 물보라를 뿜어냈다.


“이야, 진짜 멋있다아~!”


자연이 보여준 진풍경에 일행은 눈을 반짝이며 감탄했다. 그것이 부득이하게 강제된 탓이라 할지라도, 고향을 떠나 여행을 시작한 게 그리 나쁘진 않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내색은 않았지만 제리온도 멀리서 피식 웃으며 고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피의 분수가 허공 높이 흩뿌려졌다.

푸콱! 첨벙, 첨벙!


“...에?”


향유고래가 있던 자리에서 마치 온천수가 올라오는 것처럼 피가 끓어올랐다. 물결은 태풍이라도 만난 듯 요동쳤고, 피보라에 섞여 살점이며 내장 등이 사정없이 튀었다. 그 충격적인 장면에 환호하던 일행은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


“어....”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고래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뱀? 어쩌면 도롱뇽 같기도 했다. 길이 3미터는 될 것 같은 목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살점을 뜯어냈다. 그것도 수면에 떠오른 게 그 정도지, 전체 크기가 어느 수준일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캬아! 캬아앗! 키이이이...”


귀를 찢는 포효소리였다. 녀석은 피범벅이 된 입가를 한 번 훑고는, 다시 식사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배 위의 사람들은 녀석이 고래를 먹어치우는 광경을 목석이 되어 지켜봤다.

랄프가 말없이 걸어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리려 하는 에레이시아를 진정시켰다.


“쉬이...”


“...우...저거...?”


“시 서펜트(Sea serpent)다. 서쪽 바다에 자주 출몰하곤 하지. 에메랄드 섬이 해도에 없는 것도, 메르실의 원양 어업이 발달하지 못한 것도 전부 저 녀석 탓이다.”


등줄기가 싸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루도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그럼, 저거 설마...”


“맞아. 지나가는 배도 습격한다. 그러니 허튼수작 하지 말고 잠자코 있어. 저놈은 청각이 무척 예민하거든.”


굳이 당부하지 않아도 무언가 조치를 취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좀 전까지 촐싹대던 삼인방은 반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에레이시아는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시 서펜트에게 들킬까 봐 억지로 참았다. 그렇다 해도 집채보다 큰 뱀이 집채보다 큰 생선을 잡아먹는 광경은, 차마 눈뜨고 보기 괴로운 일이었다. 제리온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처신하고 있었다.

시 서펜트는 걸신이라도 들린 건지 정신없이 살점을 뜯어댔다. 고래가 흘린 피는 이미 일행이 떠 있는 배 근처까지 물들인 상태였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시 서펜트가 식사에 정신이 팔려 배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잠자코 있으면 녀석은 식사를 끝낸 후 바다 속으로 사라질 테고, 희생양은 가엾은 고래 하나로 끝날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때, 선실에서 자고 있던 이칼롯이 돌연 문을 열고 나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어디선가 물장구 소리가 들리던데 누가 바다에 빠지...”


“쉬이이잇!!”


간절한 염원을 담아, 모두는 이칼롯에게 눈을 부라리며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그는 무슨 일인가 싶어 사위를 둘러보다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거대 뱀을 발견하곤 즉시 사태를 파악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다른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금언(禁言) , 부동(不動)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는 일에 집중한 나머지 자신이 문을 열어놨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잠시 후 높다란 파도가 배를 기울였고, 선실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콰당!


“키이이이?!”


시 서펜트의 눈동자가 즉시 갑판을 향했다. 마리네는 멍하니 있다 녀석과 눈을 마주치고는, 기계적으로 말했다.


“아, 이쪽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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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2) +1 15.04.06 987 28 15쪽
11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1) +1 15.04.06 962 27 16쪽
109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0) +1 15.04.06 999 27 13쪽
108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9) +2 15.04.06 894 30 12쪽
107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8) +4 15.04.06 856 28 12쪽
106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7) +3 15.04.05 986 25 12쪽
105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6) +1 15.04.05 891 28 10쪽
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81 30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797 30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87 27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0 29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26 28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62 33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1 31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83 25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83 25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76 27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18 25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39 32 11쪽
92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88 28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40 26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39 29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74 31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62 34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41 33 13쪽
86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06 33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15 35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44 34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74 31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08 37 16쪽
81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78 33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15 36 14쪽
79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16 38 19쪽
7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35 33 18쪽
77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14 39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22 33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47 33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42 34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69 38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86 34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17 43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1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34 34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19 35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15 32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83 38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292 35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0 44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52 35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76 39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19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6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0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3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5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2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5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5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1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2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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