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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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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31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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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2)

DUMMY

엘레노어는 세실을 껴안은 채 한참동안 기쁨의 인사를 퍼부었다. 어찌나 열정적인지 옆에 선 일행은 끼어들 타이밍을 잡지 못해 황망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려야 했다.


“세상에, 어쩜, 완전, 1년이나 연락도 없고.”


“바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직접 보러 왔잖아요.”


“안 돼, 모자라.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그건 그렇고 여전히 작달만하네.”


세실은 얼굴을 부비는 그녀를 간신히 떼어냈다.


“엘레노어는 키가 좀 자랐군요. 건강해 보여서 다행입니다.”


“호호, 안 아픈 거 말고 내가 자랑할 게 있어야 말이지.”


한편 엘레노어를 따라온 목양견은 드뷔사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가방에 든 시약 냄새가 마음에 들었는지 녀석은 코를 킁킁대며 그녀 주위를 뱅뱅 돌았다. 엘레노어도 그즈음이 되어서야 일행의 존재를 감지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아는 세실은 결코 동행을 데리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라...이 분들은?”


세실에게 퍼붓던 애정공세는 온데간데없이 그녀는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로 일행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특히 이칼롯과 르웨노의 행색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무기를 찬 데다 며칠을 씻지 않았는지 냄새를 풍기고 있고, 지저분하게 자란 수염은 잘 봐줘도 무뢰배였다.

딱히 대화가 오고간 게 아니었는데도 이칼롯은 그녀의 경계를 눈치 채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상당히 감정표현이 풍부한 소녀다. 인형처럼 멍하니 있는 세실이나 안면근육장애 중증인 드뷔사보다는 훨씬 상대하기가 편했다. 그는 일단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이디 샤에르. 제 이름은 이칼롯, 그리고 이쪽은 르웨노라 합니다. 혹시 저희가 찬 검이 당신을 불편하게 했다면 사과드리지요. 저희는 그저 세실에게 고용된 호위일 뿐입니다.”


깍듯한 귀족예법에 엘레노어는 자못 놀란 눈치였다. 생전 받아본 적도 없는 숙녀대접에 그녀의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예? 아...네에...”


정말로, 정말로 감정표현이 풍부한 소녀다. 이칼롯은 드뷔사를 돌아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왜요. 내가 뭘요.”


인사가 끝나자 일행은 엘레노어의 안내를 받아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집은 예상보다 훨씬 단출했다. 다 쓰러져가는 목조가옥이 지평선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위태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건물 자체의 높이도 낮아서 이칼롯과 르웨노는 문을 지나치는 동안 차례로 이마를 찧었다.

안에서는 늙은 남자 하나가 피곤한 얼굴로 양털을 다듬고 있었다. 엘레노어가 그를 보곤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저 왔어요.”


“오냐. 좀 일찍 왔구나.”


“제가 누구 데려왔는지 좀 보세요. 세실이에요!”


“뭣...?”


남자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한동안 세실에게 못 박혀 있다 차례로 나머지 일행에게 향했다. 그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세실이 두렵다기보다, 그녀가 왔다는 사실 자체에 겁을 먹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세실. 미리 편지라도 줬으면 마중을 나갔을 텐데.”


“그런 사정이 있었습니다. 헐만, 용서하십시오.”


첫인사만으로도 이칼롯은 그가 엘레노어의 비밀을 알고 있음을 눈치 챘다. 엘레노어가 다과를 준비하러 부엌으로 가자마자 헐만은 들고 있던 양털을 집어 던졌다. 그는 곧장 세실의 어깨를 움켜쥐며 물었다.


“설마...들킨 건가? 오르텔 수색대가 오는 건가?”


그의 다그침에 이끌려 세실의 상체가 이리저리 요동쳤다. 특히나 그녀는 팔을 늘어뜨린 채 거의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뒤에서 볼 때는 작은 봉제인형이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늘 그렇듯 세실은 상대가 진정하기를 기다리다 입을 열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엘레노어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야 합니다.”


“그런...것인가. 결국 또...어쩔 수 없지.”


헐만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겁에 질려 있었으나 일단 판단이 서자 매우 민첩하게 움직였다.


“이 사람들은? 세르딕이 보낸 건가?”


그는 일행을 미심쩍은 눈초리로 응시했다. 세실은 일행을 어떻게 소개해야 하나 잠시 고민에 빠졌다. 로샤단 대장과 아스트리카 황실친위대, 리그니체 공국의 연금술사를 한 단어로 묶기란 쉽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공통점 없는 조합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긴 망설임 끝에 그녀는 이렇게 답을 내렸다.


“세르딕과는 관련 없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믿을 수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이내 엘레노어가 커다란 치즈덩어리를 들고 나왔다. 그 역한 냄새에 르웨노가 황급히 코를 틀어막았다.


“미안해요. 지금은 이런 거밖에...아, 이따 저녁에 양 한 마리 잡을 테니까요. 그때까지만 좀 참아주셔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발랄하게 윙크까지 했다. 그 모습에 이칼롯이 길게 탄식했다. 사실 그는 마을에 들어서기 전부터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베릴의 아이, 그것도 펠아람의 저주일 확률이 가장 높은 신의 아이를 만나러 가는 것이니 당연하다. 특히 세실이 설명해준 베릴의 아이의 광기는 예전 카이안의 폭주를 경험한 그로서는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엘레노어, 정확히는 숙주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지만, 그녀는 꾸밈없는 순진함에 누구와도 쉽게 말을 트는 데면데면한 성격이었다. 어느새 그녀는 드뷔사와 팔짱을 끼며 까르륵대고 있었다.


“아하, 리그니체에서 오셨군요. 그곳에 엄청 큰 가죽세공 가게가 있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가죽세공하는 곳이야 흔하지요. 엄청 큰지는 모르지만...”


그녀들은 양젖치즈를 먹으며 한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칼롯은 얼마 안 되는 대화로 엘레노어와 세실의 유대관계가 상상 이상으로 끈끈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아무리 밝은 성격이라 해도 촌구석 소녀에게 건장한 청년 둘은 부담이 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런저런 고심 끝에 그는 여자들끼리 이야기하도록 놔두는 게 낫겠다고 여기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여행 건은 네게 맡기지. 여기서는 우리가 빠지는 게 더 나아 보인다.’


‘...알겠습니다.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는 르웨노와 함께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은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식당이 있는 것을 발견하곤 울타리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식당이라고 표현하기도 뭐한 것이 테이블은 단 2개뿐이고 주인장은 밭일을 하러 나가 보이지도 않았다. 의자에 앉자 노파 하나가 다가와 주문을 받았는데, 가는귀가 먹었는지 과일주 한 잔 주문하기가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요리는 당연히 기대할 수 없었고 대신 노파가 씹던 말린 올리브 몇 개가 접시에 담겨 왔다. 르웨노는 엘레노어가 있는 방향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과일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말했다.


“생각했던 것과는 좀....다르군. 신의 아이라는 거.”


이칼롯이 짧은 미소로 동의를 표했다. 요 며칠 간 신성성이니 국가의 명운이니 하는 거창한 얘기만 잔뜩 들었는데 막상 등장한 게 평범한 양치기 소녀니 맥이 빠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직접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요. 물론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하겠지만.”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요? 이렇게 느긋하게 있을 시간은 없는 걸로 아는데.”


“지금은 세실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소. 어차피 우리는 방해만 될 테니까.”


말은 이미 맞춰 놓았다. 엘레노어의 먼 친척이 텔아단에 있는데, 그쪽도 하나 남은 핏줄을 꼭 만나고 싶어 하니 가볍게 여행이라도 떠나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하는 것이다. 물론 엘레노어는 발랄한 10대이니 중간 중간에 화려한 연회나 이국의 드레스, 멋진 귀족청년과 같은 수식어가 들어갈 것이다. 현재 엘레노어를 맡고 있는 양부 역시 세르딕과 관련된 사람이라 했으니 협조를 얻기도 어렵지 않았다. 그녀만 승낙하면 최대한 빨리 이 나라를 뜨면 되는 것이었다.

갈증이 가시자 이칼롯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수시로 안경테를 바로잡는 행동은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버렸다. 한쪽에서는 노파가 돌담에 기대어 앉아 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울새 하나가 그 주위를 배회하며 열심히 벌레를 쪼아댔다. 이미 중천에 뜬 태양은 조금씩 그림자를 늘려가는 중이었다.

한적한 풍경이었으나 르웨노의 말마따나 여유부릴 때는 아니었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빨리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뭐하는 집단이오? 그 오르텔 수색대라는 거.”


르웨노의 미간이 씰룩였다. 그는 올리브 하나를 쥐어들며 말했다.


“황제폐하의 명령만을 듣는 직속부대요. 호위만을 맡은 우리와는 달리, 대외적으로 다양한 특수임무를 수행하지. 워낙 얼굴 보기 힘든 자들이라 정확히는 알지 못하오. 원체 수가 적기도 하고.”


“적어? 몇 명인데 그러시오?”


“8명.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이 임무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소.”


소수정예의 특수부대라. 당연히 안개송곳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대규모 군대보다 무서운 게 이런 초월적인 능력을 보유한 소수의 집단이다. 8명은 확실히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름이 퍼졌다는 것은 나름의 실력이 있다는 증거였다.

르웨노는 연방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는 이 마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영 불편한 기색이었다. 그는 노파 외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모티브는 리크나이츠에서 따왔다고 알고 있소. 그들은 일반 병사와는 다르오. 아마 당신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소만.”


이칼롯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나와? 그게 무슨 소리요?”


“그러니까, 그들은 모두...”


그때 르웨노가 실수로 손 위에서 굴리던 올리브를 놓쳤다. 올리브는 의자 모서리에 한 번 부딪치고는 출입문을 향해 굴러갔다. 자연히 두 사람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올리브는 오래가지 못해 누군가의 신발에 막혀 멈춰 섰다.


“....!”


노곤하던 기운이 한기에 밀려 삽시간에 날아갔다. 눈동자를 굴리자 르웨노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부주의했다고 탓할 수도 없는 게 르웨노는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사주경계를 하고 있었다. 이칼롯 역시 태만에 빠질 정도는 아니었다.

남자와의 거리는 5m가 채 되지 않았다. 도약해 목을 날릴 수도 있는 거리다.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귀가 먹지 않은 이상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가까운 거리에 도달할 때까지 두 사람은 기척조차 느끼지 못한 것이다.


“놀랍군. 설마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이 있을 줄이야. 지름길 같은 게 있었나?”


남자는 자신의 키까지 오는 기다란 창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망토 사이로 체인메일이 얼핏 눈에 스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슬을 상체에 걸쳤음에도 발소리는 물론 쇠 부딪치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무리 귀를 집중해보아도 멀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는 들릴지언정 그 남자만은 완벽히 침묵 속에 녹아 있었다.


“이칼롯 제르비안. 레인스터에서 단신으로 흑연기사단을 막아낸 검사. 무기는 텔슈피드. 능력은 전격 방출. 위험도는 C였나?”


남자는 태연하게 다가와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마치 보조하듯 또 다른 거구의 남자가 뒤이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르웨노는 땀을 닦으며 두 불청객을 번갈아 경계했다. 태양을 등졌기 때문인지 그들의 생김새가 명확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한이 말했다.


“그건 능력발동 이전의 보고서지. 지금은 A급에도 손색이 없어.”


“흥미롭군. 그리고 이쪽은 르웨노 번스타인. 황실친위대 소속 기사. 어이쿠, 친위대 기사가 먼 시골까진 어쩐 일이시지?”


이칼롯은 재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접근해 온 두 명 말고 다른 인기척은 없었다. 노파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보이지도 않았다. 둘밖에 없다. 하지만 오르텔 수색대는 총 8인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나머지 6명은? 속이 바짝 타들어갔다.

남자는 혼란에 빠진 그를 보고 빙긋 미소 지었다.


“나는 융켈스라고 하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오르텔 수색대의 일원이지. 아, 당신들 소개는 안 해도 돼.”


“...우리에게 무슨 볼 일이라도?”


“그건 우리가 묻고 싶은 말인데. 왜 귀한 사절단 나리가 이 먼 곳까지 납신 거지? 우리는, 흠...그다지 만날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낭패다. 설마 이렇게 빨리 도착할 줄이야. 최대한 빨리 엘레노어를 설득해 떠나려던 것인데, 그 사이에 오르텔 수색대가 도착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이칼롯은 조심스럽게 검집에 손을 가져갔다. 맞은편에 앉은 융켈스가 그걸 보곤 히죽 웃었다. 둘 사이의 거리는 1m도 되지 않았다.


“무의미한 싸움은 하고 싶지 않다네. 순순히 베릴의 아이를 넘기는 게 어떤가?”


그 순간 이칼롯은 탁자를 발로 차올렸다. 르웨노도 타이밍을 재고 있었던 것인지 두 사람은 동시에 좌우로 갈라졌다. 융켈스는 앉은 상태에서 한쪽 발로 덮쳐오는 탁자를 막아냈다. 접시에 담겨있던 올리브가 우수수 바닥을 굴렀다.


“좋아. 그 명성 자자한 천둥귀 실력을 좀 볼까.”


융켈스가 창을 들고 자세를 취했다. 이칼롯은 거리를 벌리자마자 르웨노에게 외쳤다.


“르웨노! 당신은 세실에게 돌아가시오. 지금 당장!”


“뭐? 하지만...”


“입씨름할 시간 없소. 여긴 내가 상대하겠소. 가시오!”


르웨노는 두 말 없이 엘레노어의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거구의 사내가 그를 쫓으려 했으나 이칼롯이 재빨리 막아섰다.


“우리를 혼자 상대하겠다고? 재미있군.”


상대를 얕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질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수적으로 열세인 싸움은 지금까지 무수히 겪어 온 그였다. 2:1정도는 오히려 익숙하기까지 했다. 거리를 벌리고 동시에 공격당하지 않게 간격을 조절한다. 의자와 탁자는 행동을 제약할 수 있는 우수한 차단막이었다. 한 사람씩 안정적으로, 승산은 충분했다.

그때 융켈스가 공격해 들어왔다. 창을 이용한 정석적인 찌르기였다. 이칼롯은 창대를 쳐내려고 검을 뒤로 뺐다. 그런데 그 순간 창의 궤적이 급변했다. 마치 채찍처럼, 창은 절묘하게 휘어 이칼롯의 측면에서부터 날아왔다.


“큭?!”


검을 물리기에는 늦었다. 이칼롯은 뒤로 재빨리 몸을 날렸다. 낙법으로 일어나자마자 어깨에 시큰한 통증이 밀려왔다. 의외의 일격.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었다. 날아간 견갑 사이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놀랍군. 설마 그걸 피하다니.”


이칼롯은 조금 전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융켈스가 들고 있는 무기는 확실히 창이었다. 창대의 탄성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의 창은, 완벽히 허공에서 궤도를 바꿔 꺾어 들어왔다.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이번에는 거구의 남자가 밀고 들어왔다. 그는 체격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워해머를 양손으로 들고 있었다. 이칼롯은 거한의 일격에 재빨리 텔슈피드를 세웠다. 까앙. 남자의 공격은 텔슈피드에 막혀 무위로 돌아갔다. 방어는 완벽했다. 그런데 반격하려고 자세를 푼 그때 둔탁한 충격이 이칼롯의 복부를 강타했다.


“커헉...!”


일순 시야가 흐릿해졌다. 숨을 쉴 수가 없고 방향감각도 뒤죽박죽이었다. 그는 급한 대로 손에 집히는 접시며 술잔을 마구 집어던졌다. 융켈스와 거한은 다가오지 않았다. 그들은 궁지에 몰린 이칼롯을 보며 여유까지 부렸다.


“천박하게 접시나 던지다니.”


이칼롯은 탁자를 장애물삼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행히 갑옷 덕에 뼈까지 부러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충격은 무시할 수 없었다. 정통으로 복부를 맞은 탓인지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하지만 어째서? 그는 거한의 공격을 확실하게 막아냈다. 그렇다면 자신의 배를 때린 해머는 대체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그럼 끝을 내볼까.”


그렇게 말하며 거한이 뒷걸음질쳤다. 물러난다? 이칼롯으로서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데미지가 회복되지 않았을 때 협공하는 게 상식 아닌가? 그런데 그때 이칼롯의 시야에 작은 움직임이 포착됐다. 그것은 건물 밖으로 50보는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무언가를 들고 있는데, 시야가 흐릿해 정확히는 알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 순간 이칼롯이 위험을 느끼고 상체를 숙인 것은 순전히 감이었다. 안개송곳니 단원 중에 비슷한 전투방식을 가진 자와 겨루어 봤던 게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콰직. 그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지나갔다. 이칼롯은 재빨리 일어나 투사체의 정체를 확인했다. 판자벽에 화살 하나가 꽂혀 부르르 떨고 있었다.


“....!”


화살이라니, 그런 게 날아오는 낌새는 보이지도 않았는데. 세 번이나 겪고 나자 머리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평범한 자들이 아니다. 그제야 르웨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자들.


“아티팩트로군.”


“과연. 눈치가 빠르군. 그러니 이제 그만 죽어주지 않겠나? 우리는 소동을 좋아하지 않아. 정말로.”


휘어오는 창과 방어를 무시하는 워해머, 보이지 않는 화살.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고 조금만 거리를 벌리면 화살이 날아온다. 원래대로라면 달아나는 게 맞다. 그러나 이칼롯은 등을 돌리는 대신 길게 눈을 감았다 뗐다. 흐릿했던 시야는 다행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차피 부딪쳐야 할 적이라면, 이곳에서 쓰러뜨린다. 그의 달라진 눈빛에 융켈스도 자못 놀란 눈치였다.


“너희들과 노닥거릴 시간 없다. 돌아가라.”


“으응? 이건 또 무슨, 세 번이나 당하고도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 못 하는 건가?”


“그래. 세 번이면 넘치고도 남지.”


아마 이곳에 없는 나머지 다섯이 엘레노어를 찾고 있을 것이다. 르웨노와 세실이 얼마나 시간을 끌어 줄지는 모르나 최대한 빨리 돌아가야 한다. 엘레노어도 엘레노어지만 어째서인지 드뷔사의 심드렁한 얼굴이 자꾸 눈에 밟혔다.

준비가 끝나자 이칼롯은 텔슈피드의 능력을 개방했다. 굽이치던 번개줄기가 검 끝으로 모이더니, 다시 수십 갈래로 퍼져 마치 방패처럼 이칼롯의 전방을 감쌌다. 그 형상에 거한이 놀라 말했다.


“무슨...! 단순히 검의 연장선상이라고 하지 않았나? 저런 건 보고서에는 없었어!”


융켈스 역시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그의 이마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단순히 마법검의 능력을 개방한 것뿐인데 목덜미가 시큰해지는 느낌이었다. 번개 속에서 이칼롯의 눈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형태도 변화시킬 수 있는 건가...저런 게 C급이라니 말도 안 되지...”


이칼롯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예상 밖의 능력에 놀라기는 했으나 융켈스 역시 물러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가 힘을 주자 창끝이 뱀의 머리처럼 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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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1) +1 15.05.31 782 21 20쪽
322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5) +10 15.05.30 980 34 21쪽
321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4) +5 15.05.30 877 26 19쪽
320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3) +6 15.05.27 1,021 30 18쪽
319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2) +2 15.05.27 748 28 15쪽
318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1) +3 15.05.27 769 29 14쪽
317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4) +1 15.05.27 900 26 18쪽
316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3) +8 15.05.26 898 23 27쪽
315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2) +2 15.05.26 773 24 23쪽
314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1) +3 15.05.26 866 20 28쪽
313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5) +2 15.05.26 844 26 21쪽
312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4) +1 15.05.26 892 25 18쪽
311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3) +3 15.05.26 1,089 24 25쪽
310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2) +3 15.05.25 874 25 28쪽
309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1) +2 15.05.25 970 22 18쪽
30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1) +2 15.05.25 725 26 23쪽
307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0) +1 15.05.25 749 20 22쪽
306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9) +1 15.05.25 769 20 14쪽
305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8) +4 15.05.25 806 27 17쪽
304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7) +2 15.05.24 935 26 19쪽
303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6) +3 15.05.24 866 22 13쪽
302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5) +2 15.05.24 943 28 19쪽
301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4) +1 15.05.24 843 21 16쪽
300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3) +2 15.05.24 883 23 24쪽
299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2) +2 15.05.24 1,030 29 18쪽
29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 +2 15.05.24 910 25 21쪽
297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5) +6 15.05.23 1,107 21 29쪽
296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4) +1 15.05.23 847 23 20쪽
295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3) +1 15.05.23 948 22 20쪽
294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2) +3 15.05.23 1,137 20 21쪽
293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1) +2 15.05.23 1,079 27 17쪽
292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3) +3 15.05.23 1,140 25 19쪽
291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2) +10 15.05.21 1,053 28 22쪽
290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1) +2 15.05.21 1,109 26 19쪽
289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6) +2 15.05.21 1,080 26 25쪽
288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6) +3 15.05.21 936 24 27쪽
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2 26 25쪽
286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4) +5 15.05.20 1,017 29 21쪽
285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30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09 24 14쪽
283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3) +1 15.05.20 1,044 27 24쪽
282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2) +3 15.05.20 749 23 19쪽
281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1) +1 15.05.20 993 28 22쪽
280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3) +11 15.05.19 1,011 31 30쪽
279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2) +3 15.05.19 1,224 28 17쪽
278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5) +9 15.05.18 1,137 24 18쪽
277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4) +2 15.05.18 809 24 17쪽
276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3) +4 15.05.18 942 22 24쪽
275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2) +3 15.05.18 931 23 23쪽
274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1) +2 15.05.18 1,029 25 19쪽
273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1) +2 15.05.18 974 22 19쪽
27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3) +1 15.05.18 1,221 25 25쪽
27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2) +2 15.05.17 1,011 29 25쪽
27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1) +1 15.05.17 867 20 22쪽
269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0) +1 15.05.17 966 23 23쪽
268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9) +1 15.05.17 1,039 23 20쪽
267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8) +6 15.05.17 907 25 22쪽
266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7) +5 15.05.16 992 26 22쪽
265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6) +1 15.05.16 888 22 26쪽
264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5) +2 15.05.16 1,030 29 26쪽
263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4) +1 15.05.16 1,001 24 24쪽
26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3) +3 15.05.16 857 23 25쪽
26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2) +2 15.05.16 926 23 26쪽
26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 +3 15.05.16 1,061 31 31쪽
259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6) +8 15.05.14 1,064 29 22쪽
258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5) +7 15.05.14 914 22 11쪽
257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4) +4 15.05.14 1,032 21 20쪽
256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3) +3 15.05.14 894 22 31쪽
255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2) +5 15.05.14 1,000 24 27쪽
254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1) +6 15.05.13 904 24 30쪽
253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0) +3 15.05.13 943 22 24쪽
252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9) +1 15.05.13 995 21 27쪽
251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8) +1 15.05.13 897 18 27쪽
250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7) +4 15.05.12 1,088 26 27쪽
249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6) +5 15.05.12 995 25 27쪽
248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5) +3 15.05.12 1,103 25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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