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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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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3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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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9)

DUMMY

일행은 성문에서 50보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영주가 도착하길 기다렸다. 그동안 망루 위의 병사는 안절부절못하며 일행과 성 안쪽을 번갈아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몇십 분이 흘렀을까, 예상보다 늦어지는 영주의 행차에 슬슬 심기가 뒤틀리려는 참이었다.


“...어랍쇼..”


레미나를 제외한 세 사람이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칠흑 같은 밤이라 하더라도 사락사락, 하고 수풀을 가로지르는 소리와 군인 특유의 인기척까지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략 30명 정도 되는 인원이 조심스럽게 일행의 좌우로 포진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 거야?”


유미르네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러나 불온한 움직임을 감지했음에도 레미나는 여전히 움직이길 주저했다. 설마, 설마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윽고 아르카디아의 영주가 성벽 위로 얼굴을 내비쳤을 때 그녀의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다. 맨발로 뛰어와 접견을 해도 모자랄 판에, 호위대를 대동하고는 당당히 망루 위로 올라온 것이다. 성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어서 오시오. 그래, 레인스터의 일로 왔다고?”


“당신...제가 누군지 알고도 그런 언행을 내뱉는 건가요? 당장 성문을 열지 않으면 왕실모독의 죄를 물어 당신은 파면시킬 겁니다.”


능글맞게 웃어넘기는 영주에 비해 레미나의 안색은 분노와 혼란으로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사실 영주가 성문을 열지 않은 시점에서 그녀는 일이 틀어질 대로 틀어졌음을 깨닫고 있었다. 단지 절망 속에서 또 다른 절망이 피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그 이야기 말인데, 솔직히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소이다. 애초에 죽었다던 공주님이 돌아왔다는 소문도 믿기 어렵고 말이지. 그런 귀하신 분이 이런 위험한 지역에, 고작 호위병 셋만 데리고 행차하셨다니, 도시의 방어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어찌 가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있겠소?”


“뭐...뭐라구요?”


“그렇잖소. 왕족임을 자처해 성의 방비를 느슨하게 만들고, 매복해둔 병력으로 일시에 도시를 점령하려는 아스트리카의 전략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소?”


“당신 정말!”


영주는 레미나의 반응 따위 어찌 되어도 좋다는 듯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는 상황을 분석한다기보다는, 이미 정해놓은 결론에 일부러 알리바이를 끼워 맞추고 있는 것 같았다. 유미르네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괜찮네. 출병을 거부할 그럴듯한 구실이잖아. 아스트리카에 붙었다가, 수틀리면 다시 리크나이츠에 붙어도 되고 말이지.”


이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분석이었다. 아르카디아가 그렇게 레인스터의 지원요청을 거부했던 것도, 왕족의 행차에도 꿋꿋이 성문을 폐쇄하고 있는 것도 전부 설명이 가능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자 레미나도 더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의 병사들이 더는 리크나이츠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는 것을.


“설마 매수당한 건가요? 정녕 이런 짓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전쟁에서 배신이 빈번하게 일어난다지만, 설마 자신이 그런 상황에 닥치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너무 분하고 안타까워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녀에겐 감정을 추스를 시간조차 모자랐다.


“매수라니..점점 모를 말만 지껄이는군. 일단 그대들의 신병을 확보하도록 하겠소. 추후에 조사를 통해 신분이 밝혀진다면, 내 그때 정식으로 사죄하도록 하리다.”


“무슨...우리를 붙잡아 구류하려는 걸 모를 줄 알아요?”


“알아도 별수 없지. 자, 어서 저들을 붙잡아라!”


매복해있던 병사들이 일시에 일행을 덮쳤다. 그러나 미리 낌새를 눈치채 놓았던 덕에 일행은 기습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이건 잘못됐어! 아르카디아 수비대 여러분, 이게 정녕 여러분의 의사인가요? 지금 레인스터에서 흑연기사단을 상대로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건가요?!”


“그만해 공주! 이 이상은 헛수고야!”


루도가 달려드는 병사를 쳐내며 말했다. 그는 경황이 없는 레미나를 대신해 그녀가 탄 말의 고삐를 쥐곤 그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사이 마리네와 유미르네가 병사들을 상대했다.


“에잇, 놓치지 마라. 성문을 열어라! 내가 직접 추격하겠다.”


“예? 영주님, 하지만 방금 매복이 있을 거라고...”


“그런 거에 신경 쓸 틈이 어디 있나! 저자들이 달아나버리잖아!”


아르카디아 영주는 애초에 일행을 포획하기 위해 30명의 병사를 준비해놓았다. 그러나 일행의 발 빠른 판단과 대처로 포획은커녕 곳곳에서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특히 어둠에 녹아든 유미르네의 검무는 일개 병사가 받아내기에는 터무니없이 강력했다.


“흐그악..!!”


“자, 잠깐 기다...”


에스터크로 심장을 찌르고, 그대로 왼발을 축으로 회전해 옆 병사의 목을 가르고, 펄럭이는 망토가 시야를 가린 사이 다시 뒤의 병사에게로. 신들린 듯한 그녀의 공격에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이 전투의 목적은 적의 전멸이 아니었다. 루도와 레미나가 안전지대까지 달아난 게 보이자 마리네가 말고삐를 붙잡으며 말했다.


“유미르네 그만해! 우리도 이쯤에서 물러나자.”


그러자 유미르네는 금방 숨통을 끊은 병사의 어깨를 밟고 도약해 가볍게 말안장 위에 착지했다. 그녀의 묘기와 같은 검술에 병사들은 추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모습에 성벽 위에서 영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런 멍청한 놈들! 그깟 둘을 상대하지 못한단 말이냐. 내 직접...헉!”


그러나 그의 호기 좋은 외침은 유미르네가 날린 비수가 뺨을 스치고 지나감과 동시에 침묵으로 돌변했다.


“쳇, 너무 멀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좀 아깝네.”


유미르네가 빗나간 표적을 향해 빈정거렸다. 영주는 그것만으로도 심장이 얼어붙었는지 더는 추격의 ‘추’자도 입에 담지 못했다.

일행은 그대로 말을 몰아 인적이 닿지 않는 산등성이 길로 향했다. 그러나 이미 밤이 깊은 데다 말들도 지쳐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적당히 몸을 숨길 곳을 찾았다. 마침 으슥한 곳에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가 보였으므로 그곳에 터를 잡고 지친 몸을 뉘었다.

그러나 겨우 얻은 휴식은 가시방석이 되어 일행의 등을 찔러댔다. 특히 레미나는 아르카디아의 배신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늘 생기 넘치던 그녀가 벽난로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은 보기 안쓰럽기까지 했다.

마리네가 건량을 입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설마 매수되었을 줄이야...이거 명백한 반역행위 아니야?”


“뭐 이쪽은 원래 귀족의 입김이 센 지역이니까. 국가보다 자기 영지가 더 중요하다는 거지.”


“하지만 그렇다고 아스트리카측에 가담하는 건 너무하잖아.”


“너무 앞서나가지 마. 아르카디아는 단지 출병을 거절했을 뿐이라고. 애초에 위그라프 후작이 죽은 시점에서 AOC는 믿을 게 못 되는 거였어.”


“그렇다고 우릴 붙잡으려 하다니...이런 짓이 용인될 리 없어.”


“...모르지. 죄를 심판할 나라가 언제 망할지 모르는 상황이니.”


대화가 이어질수록 기분은 더 착잡해져만 갔다. 루도는 가라앉은 분위기가 어색해 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누구의 잘못도 없건만, 왠지 죄스러운 기분이 들어 누구와도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함부로 최악을 입에 담지 말라는 게 이런 뜻이었네. 운명은 언제든 더 나빠질 여지를 만들어 놓는다고 했던가.”


깊어가는 밤, 홀로 불타오르는 난롯불을 응시하고 있자니 비관적인 생각만 늘어나는 것 같았다. 어깨에 두른 담요에서 왠지 모르게 몸을 구속하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루도가 말했다.


“뭐, 그럼 여기서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거야?”


“...AOC 봉화에 응답해온 영지는 오직 델키아 뿐이었잖아. 아르카디아가 매수당했다고 한다면 아마 루비크랑 에닌샤도...”


염세적인 유미르네조차도 이번만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레인스터가 버티는 이유는 오직 지원군이 도착할 거라는 희망만을 믿고 있는 것인데, 그것마저 진창으로 빠져버린 상황이었다.

게다가 모든 영지를 돌기에는 시간도 촉박했다. 에닌샤와 루비크로 향했는데 그곳마저 아스트리카에 붙었다면? 제리온과 약속한 닷새는 무엇이 되는가. 단 한 명의 지원군도 없이 레인스터로 돌아가야 할 꼴이었다.


“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어차피 지원군이 있어도 레인스터는 지키지 못했을 걸.”


“...그게 긍정적이냐 이 지지배야.”


영양가 없는 대화만 이어지고 있을 때, 갑자기 잠자코 있던 레미나가 스르륵 몸을 일으켰다. 그 움직임이 너무나도 유려해서, 말싸움을 하던 루도와 유미르네도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레미나는 짐을 뒤져 리크나이츠 지도를 꺼내 들었다. 몇 번이고 꼬깃꼬깃 접어 수십 개의 주름이 난 그 지도를 그녀는 크게 펼쳐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곧 마리네가 촛불을 가져다주자 그녀는 AOC 영지들을 살펴보며 말했다.


“지원의사를 밝힌 건 델키아 뿐이라고 했지?”


“음? 아아...며칠 전까진 그랬었지.”


그랬‘었’다라는 건 물론 이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델키아에는 이미 흑연기사단의 분견대가 파견되어 있었다. 분견대라고 해도 2천이 넘는 병력이니 델키아 수비대는 성벽 바깥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분견대에 그대로 도시가 함락되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었다.


“루도랑 마리네는 델키아 소속이었지? 거긴 총 병력이 얼마나 돼?”


“병력이라고 해봤자 조그마한 도시라...어, 근데 공주 설마?”


마주보는 레미나의 얼굴은 피로에 찌들어 창백하게만 보였다. 그러나진저리처지게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다른 활로를 찾고, 또 찾고 있었다. 그녀는 담요를 책상삼아 새로운 계획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표정에서 평소와 같은 발랄함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조금 전의 절망감 역시 어둠에 씻겨 사라지고 없었다.

5일, 아니 이제 4일 남았다. 4일까지 어떻게든 지원군을 몰고 레인스터에 도착해야만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


이틀째부터 흑연기사단은 본격적으로 도시를 함락하기 위한 작전에 착수했다. 그중 하나가 본국에서부터 직접 공수해온 공성장비였다. 사람 머리통만 한 돌을 날릴 수 있는 오나거(Onager) 투석기와 노포가 조립을 끝마치고 전선으로 배치되었다.

레인스터의 아침을 알린 것은 신전의 종소리도, 수탉의 울음소리도 아니었다. 성벽을 강타하는 바위소리에 디리터는 화들짝 놀라 투구를 뒤집어썼다.


“와악! 뭐야, 방금 그거 뭐야?”


그는 여장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바깥의 상황을 살폈다.


“...?”


시야에 들어온 것은 동이 터오를 무렵의 빛을 등져 새카맣게 얼룩진 채 날아오는 돌덩어리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대여섯 개씩, 사출을 끝마친 투석기에는 어느새 다음 발사를 위한 돌이 얹어지고 있었다.


“오메, 엎드려! 다들 엎드려요!”


쾅, 콰직! 투석이 적중할 때마다 천둥이 치는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기지개를 켜며 맞이해야 할 아침은 순식간에 비명과 소음으로 점철되어 버렸다. 소리를 듣고 일어난 제리온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저 썩을 놈들! 잠 좀 자고 싸우자고 이 새끼들아!!”


“얌마, 저 자식들 투석기 안 가지고 올 거라며?”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였지, 갖고 왔는데 나더러 어쩌라고!”


콰득, 콰직. 기름단지나 던지는 레인스터의 투석기와 달리 흑연기사단의 것은 그 크기나 박력에서부터 차원을 달리했다. 돌이 날아오는 소리와 부딪힐 때의 파열음, 그리고 그 틈사이의 작은 고요마저도 병사들을 동요시키기에 충분했다. 하필 재수 없게 적중당한 망루는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 성 밖으로 떨어졌다.


“힉,히익...”


스쳐도 뼈가 부러지고 정통으로 맞으면 시체조차 추리지 못한다. 그 사실에 겁먹은 병사들이 하나둘 성벽 아래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칼롯이 공황상태의 병사들을 억지로 떠밀며 말했다.


“자기 위치를 고수하시오. 곧 사다리부대가 올 겁니다. 절대로, 자기 위치를 떠나지 마시오.”


아직 성벽에 내린 서리가 채 마르지도 않을 시간이었다. 아침공기는 쇠와 기름 냄새를 잔뜩 머금어 찐득한 맛이 났다. 곧 갤러리 곳곳에서 피치를 끓이는 연기가 솟아올랐다.

대열을 진정시킨 이칼롯이 지휘탑으로 돌아오며 말했다.


“날씨 좋군. 잘 잤나?”


“잘 잤지. 기상의 나팔소리 한 번 눈부시게 박력 넘치더만.”


투석기의 맹공은 그 후로도 계속됐다. 그래도 튼튼한 두께 덕에 성벽이 쉽사리 무너지진 않는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여전히 적의 충차는 제리온의 조준사격에 접근조차 못했고, 이렇다 보니 흑연기사단도 사다리를 통한 성벽의 점거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다.


“궁병대 발사! 전방의 도끼부대는 사다리를 차단해!”


까라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다발의 화살이 적진 안으로 사라졌다. 몰려드는 숫자가 너무 많아서인지 누가 쓰러졌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전날 충분한 휴식을 취해서인지 적군의 돌격속도가 눈에 뜨일 정도로 빨라져 있었다. 한 병사가 사다리에 오르기 시작하면 성벽에 다다를 때까지 채 20초가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사다리를 타고 달린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부상자를 전부 끌어안고 싸워야 하는 레인스터와 달리, 흑연기사단은 최전선부대와 후방부대를 엄격하게 분리해 후방부대는 체력을 보충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성벽에 도달하는 병사는 기운이 팔팔한 상태였고, 이를 맞상대하는 레인스터 병사들의 힘은 조금씩 고갈되어갔다.


“으앗싸!”


퍼걱. 경쾌한 소리와 함께 또 한 명의 병사가 성벽 아래로 추락했다. 전날에 이어 디리터는 그 특유의 완력을 살려 갤러리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그의 호쾌한 실력에 인상을 받은 것인지 그가 가는 곳의 병사들도 덩달아 기세를 올렸다.


“자아, 돌이나 던집시다. 사람 잡는데 저런 커다란 바위는 필요 없다는 걸 아스트리카 놈들에게 보여주자고!”


그의 명령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돌을 투하했다. 사다리를 오르느라 상반신이 노출되어 있던 적들은 묵직한 돌덩이에 맞고 속수무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원형탑의 투석기와 노포의 활약도 계속됐다. 불붙은 기름단지가 적진 한가운데서 폭발할 때면 공병들은 우레와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전투는 도시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제리온이 예견한 대로 스벤달은 남문에 대부분의 병력을 투입하고 서문과 동문, 그리고 북문에는 소규모의 별동대만을 파견하는 전술을 취했다. 그러나 별동대라곤 해도 그 수가 몇 백 단위였기 때문에 자칫 정신을 놓았다간 파죽지세로 성벽이 뚫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빗발치는 화살과 바위, 성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백과 흑의 치열한 교합, 불타오르는 충차와 이를 진화하려고 모래를 뿌리는 병사들. 밀어닥치는 적의 군세는 터진 봇물만큼이나 거침이 없다. 기름을 뒤집어쓴 병사의 절규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장송곡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이 처절한 풍경이 현실이 아니라고 외면한다 한들 그 누가 타박할 수 있겠는가.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소를 몰고 밭을 일구며 하루를 보내던 목가적인 대지는, 쟁기 대신 칼을 들고 보리 대신 시체를 수확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전사한 병사들의 시신이 차례로 포개어지고, 그 위를 새로 투입된 병사가 지나간다. 화염에 휩싸인 자는 옆의 동료가 서둘러 목숨을 끊어주고, 화살에 맞은 자는 지원대에 실려 후방으로 이송된다. 쓰러진 자중에 온전히 후송되는 병사는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상처가 벌어져, 혹은 밀려드는 아군에게 짓밟혀 명을 달리하고 만다.

첨탑의 궁수는 수백 발의 화살을 쏘아댄 나머지 활시위를 끊어뜨리고, 서둘러 줄을 매던 도중 자신의 오른팔의 근육이 터져 울혈이 생긴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미 마비될 대로 마비된 감각은 통증이라는 사치를 누리게 해주지 않는다. 그는 다시 활을 쏘기 시작한다.

그리고 디리터와 이칼롯.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에는 늘 그 두 사람이 있었다. 플레이트로 전신무장한 디리터는 그 육중한 장갑 덕에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자잘한 타박상과 가끔 쇠를 뚫고 들어오는 화살 때문에 온몸이 피멍투성이였다. 이칼롯은 그보다는 좀 더 상황이 나았지만, 그가 들고 있는 방패는 이미 고슴도치처럼 화살이 꽂혀 있었다. 그게 없다면 그는 옛 저녁에 고인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제리온은 지휘탑에 우뚝 선 채 쉴 새 없이 명령을 내렸다. 가끔 날아온 돌덩이와 화살이 근처를 스치고 지나가는데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휘에 열중했다. 그가 지시하면 깃발이 올라가고, 장교들은 그 깃발을 따라 병사들을 통솔한다. 그가 소리치면 군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어김없이 그의 화염세례가 이어졌다.


“으리앗차! 달달한 화염 맛 좀 봐라!”


제리온이 수년간 갈고 닦아온 화염마법은 그 화려한 이펙트만큼이나 이목을 끌기에 적합했다. 그가 마법을 준비하면 적이고 아군이고 할 것 없이 숨을 죽였고, 그가 손을 가리키면 아무리 잘 훈련된 부대라도 대책 없이 산개할 수밖에 없었다.


“우와아 제리온!”


“이번에도 제리온이다!!”


그가 일으킨 화끈한 폭발에 병사들은 입을 모아 함성을 외쳤다. 상대적으로 위축된 레인스터 병사들에게 제리온의 마법은 이따금 통쾌함을 느끼게 해주는 승전요소였다.


“시꺼. 말할 기운 있으면 활이나 한 발 더 쏴!”


레인스터의 필사적인 분전으로 스벤달은 2일째에도 성 밖에서 밤을 지새야 했다. 그러나 속출하는 피해에도 그는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화톳불이 타오르는 레인스터의 성벽을 보며 그는 예하부대에게 지시했다.


“지금부터 부대를 셋으로 나누어 교대로 도시를 공략한다. 다만 야간에는 굳이 성벽을 넘으려고 무리할 필요 없다. 적이 잠들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알았나?”


첫날의 전투가 전초전이었다면, 이틀째부터는 모든 병력을 활용하는 총력전의 양상이었다. 스벤달은 병력의 압도적인 우위를 활용하여 끊임없이 군대를 로테이션시켰다. 주야를 불문하고 지속되는 공격에 레인스터는 누적되는 피로를 안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2일째의 사상자를 고려해도 여전히 전황은 흑연기사단의 절대적인 우세였다. 그리고 스벤달은 이 우위를 활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휴식을 취하러 막사로 돌아가던 중 부관에게 말했다.


“전방의 병사들에게 전해라. 가장 먼저 성벽에 깃발을 꽂은 자에게 백인대장의 지위와 100골드를 하사하겠다고. 또한 도시를 함락시킬 경우 10일간 약탈을 허락하겠다고.”


“10일...입니까?”


2만 명의 병사가 10일간 약탈을 시행한다는 건 바꿔 말해 도시를 생명체 하나 남기지 않고 초토화한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스벤달은 여전히 농성중인 레인스터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건네고는, 막사 방향으로 등을 돌렸다.

4일째부터는 더욱 더 전황이 레인스터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막 조립을 마친 공성탑(Siege tower)이 육중한 바퀴를 굴리며 전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으...”


그야말로 탑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날이 진화하는 적의 공세에 제리온도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제는 투석기, 오늘은 공성탑. 젠장, 내일은 뭐 트리뷰셋(tribuchet)이라도 끌고 오려나.”


공성탑의 등장은 곧 성벽 위에서의 교전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에 따라 제리온은 대기 중이던 모든 창병대를 성곽에 배치했다. 물론 성문이 뚫렸을 경우에 적의 진입을 파죽지세로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생기지만, 모자란 병력을 활용하려면 이 수밖에 없었다. 성문을 노리는 충차는, 어떻게든 자신이 해결해야만 했다.


“하...하하...나 공성탑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저런 게 실제로 굴러간다니.”


“어때? 전쟁 4일차의 감상은.”


“음...뭐 아직은 사지 멀쩡하니까 괜찮다고 봐야겠지.”


쿠르르륵...적의 공성탑이 이동할 때마다 추수가 끝난 귀리밭에 깊은 고랑이 파였다. 저기서 무장한 기사 수십 명이 쏟아질 거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오금이 저려왔지만, 디리터는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이칼롯도 방패에 몸을 기댄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 지형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정말로 피비린내 나는 접전이 벌어질 터였다.


“불화살 발사! 접근하는 공성탑을 노려!”


화망 안에 들어서자 궁병대가 일제히 불화살을 발사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과 달리 공성탑은 그리 쉽게 불이 붙지 않았다. 적의 화공을 예상하고 미리 전면부에 물에 적신 쇠가죽을 덧대어놓은 탓이었다.

이걸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공격은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망고넬을 통한 다량의 기름투척이요, 나머지 하나는 모두가 아는 그것.


“뭐 임마. 할 말 있어?”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는 디리터의 시선에 제리온이 짜증을 드러냈다.


“아니, 넌 예전에 군용 갤리선도 박살 내버린 적 있으니까, 공성탑도 어떻게 해주지 않을까 해서.”


“피곤해 뒤지겠다. 어제 하도 설쳐대는 통에 잠을 못 자서.”


“쏠 거면서 뭔 말이 그리 많아.”


“당연히 쏴야지.”


캐스팅에 들어간 제리온의 손 위로 호박만 한 무색의 구체가 떠올랐다. 이와 동시에 지휘탑에 배치된 깃발병이 힘차게 적색 깃발을 펄럭였다. 이는 전투가 시작된 이래 레인스터측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전달체계로, ‘제리온이 무언가를 하려 하니 잠시 주목해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 깃발이 나부끼면 적들은 소스라치는 공포를, 아군은 통쾌한 기대감에 차올랐다. 잠시나마 주객이 전도되는 때가 바로 이 순간이었다.


“트위스티드 오브(Twisted Orb).”


시동어와 함께 일렁이는 구체가 전방의 공성탑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것은 지금까지 제리온이 보여주었던 것들과 달리, 평보로 걸어가는 사람 정도의 속도로 아주 천천히 전진했다. 그 느긋한 움직임에 사다리를 오르던 병사들마저도 잠시 임무를 잊고 시선을 빼앗겼다. 하지만 아무리 완만한 움직임이다 할지라도 육중한 공성탑이 피할 수 있는 속도는 아니었다.

이윽고 구체가 공성탑에 닿았을 때, 병사들은 마법에 있어 속도와 파괴력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몸서리치게 절감했다.

콰드드득, 와지직! 근처의 공간을 비틀어버리는 구체의 힘에 나무며 쇠며 할 것 없이 사정없이 부러져나갔다. 마치 거대한 손을 지닌 괴물이 공성탑을 위아래로 쥐어 그대로 수건 돌리듯 쥐어짜는 것만 같았다. 비틀어진 자재는 그대로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고, 거기에는 운 없이 휩쓸린 희생자의 파편도 섞여 있었다.

사방팔방으로 분출되는 피보라의 향연. 공성탑에 타고 있던 20여 명의 병사들은 그대로 잘게 갈린 고기조각이 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디리터는 어째서 제리온이 불덩어리가 아닌 이 마법을 개막용으로 사용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저런 걸 보면, 웬만큼 강심장이 아닌 다음에야 하반신이 마비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후욱-! 이걸로 오늘 내 할당량은 채웠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은 잠자코 있을 테니, 나머지는 당신들 몫이라고!”


“오오오오!!”


그의 선방에 고무된 병사들이 앞다투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흑연기사단 역시 궁병부대를 이용해 응사하는 한편, 공성탑이 성벽에 그 거대한 몸체를 붙이기 시작했다.

제리온이 하나를 박살 냈다곤 하나 공성탑은 여전히 3개가 더 남아 있었다. 여기에 기존의 사다리부대까지 합세하니 갤러리 위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디리터, 공심돈대 쪽 지원해! 깃발병, 서쪽 첨탑에 노는 부대 전부 공성탑 주위로 집결하라고 해. 기름! 지금 성곽 아래 머저리들 상대할 때가 아니야! 공성탑 출구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르라고 해!”


전장의 함성으로 귀가 먹먹해지는 가운데에서도 제리온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지휘에 열중했다. 상황은 확실히 전날보다 안 좋게 돌아가고 있었다. 지형적인 열세가 어느 정도 보완되자 흑연기사단의 질적, 양적인 우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중무장한 기사가 속속들이 성곽에 발을 내려놓기 시작했고, 훈련 안 된 병사들은 그들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져나갔다.


“젠장, 저거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로이니스! 아래 있는 민병대 중에 백 명 정도 추려서 성벽 보강해. 지금 당장!”


“예? 민병대 말입니까? 하지만 민병대는 전투경험이 없으니 후방지원으로 돌리자고...”


“지금 전열이 붕괴하게 생겼는데 후방이고 뭐고 따질 때야? 어서 가! 이칼롯, 이칼롯 어디 있...!”


이칼롯을 애타게 찾던 제리온은 곧 멀지 않은 곳에서 그의 모습을 발견하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는 단신으로 공성탑 출구를 막아선 채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방패로 몸을 가린 채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는 그의 방어에 적의 병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다른 명령은커녕 말을 걸기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제리온은 거칠게 머리를 긁으며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생각보다 적의 기세가 맹렬하다. 이대로라면 해가 지기도 전에 도시를 빼앗기고 말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적을 물리치려면, 아니 지금은 성 위의 군세만 몰아내는 것으로도 족하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접근전에서 이렇게 밀리리라곤생각지 못했다. 차라리 외성을 포기하고 내성으로 물러나는 것은 어떨까? 안 된다. 내성의 규모는 동네 담벼락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다. 외성의 견고한 성채를 포기하면, 전투는 거기서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린에게 줄행랑치고 돌아온 패배자의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쑤욱, 하고 제리온의 오른팔에 파고들었다.


“큭...!”


그것이 화살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상반신이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가 쓰러지는 것을 본 디리터가 싸우던 것도 잊고 다급하게 외쳤다.


“제리온!!”


그의 일갈에 몇몇 병사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지금까지 자신들을 지탱해주던 남자가 화살을 맞은 채 쓰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곧 방패를 든 병사 다섯이 달려와 순식간에 그를 에워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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