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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조회수 :
358,974
추천수 :
10,757
글자수 :
2,844,987

작성
15.05.17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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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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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22쪽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1)

DUMMY

왕실기사단 본대는 예상했던 대로 레드브릿지 관문 북부까지 진군해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훼창기사단과의 전면전은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관문탈환은 시도하지 않은 채로 적당히 다음 요충지까지 후퇴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떠나는 그들 뒤로 어떻게든 전화를 피해 보려는 민간인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일행은 그보다 훨씬 앞쪽, 보병진의 한가운데에서 카이안과 만날 수 있었다.


“카이안, 다친 데는 없나?”


“이칼롯...!”


카이안은 옷이 조금 더러워졌을 뿐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다만 진이 빠진 얼굴 하며 퀭하게 들어간 눈동자가 그가 받은 충격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반가운 재회임에도 카이안은 일행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여린 어깨만 떨어대는 것이었다. 그의 행동에서 이칼롯은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뭐지?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그게...공주님이...”


그는 채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말을 달리며 모든 상황을 상정한 이칼롯조차도 이번에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카이안의 어깨를 움켜쥐고 다그쳤다.


“공주님이 뭐. 어떻게 되었다는 거지?”


다시 그때의 기억이 생각난 듯 카이안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달려오는 기마대를 홀로 막아서던 그녀의 뒷모습이 한데 뒤엉켜 이후에 일어났을 잔인한 참상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와 함께 있던 메리가 대신 입을 열었다.


“쫓아오는 적군으로부터 시간을 벌기 위해...스스로 마차에서 뛰어내리셨어요.”


“큭...!”


이미 저물어가는 하늘이 일순 샛노랗게 보였다. 로샤단의 임무가 국가단위로 중요해진 지금, 언제 어디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매일같이 다짐했던 그다. 그러나 레미나, 그녀는 로샤단과는 경우가 달랐다. 차라리 일찌감치 그녀를 떨어뜨려 놓았다면 좋았을 것을. 어쭙잖은 낙관론 때문에 에레이시아 같은 희생이 재현된 것은 아닐까? 오만가지 부정한 사고가 이칼롯의 평정을 뒤흔들었다. 설마, 그녀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카이안을 지킬 줄이야.


“이칼롯...괜찮아요?”


그러나 메리의 한 마디로 그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고개를 드니 카이안이나 메리나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로샤단을 구원자처럼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이런 추한 꼴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칼롯은 최대한 침착함을 가장하고는 카이안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레미나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왜 그녀가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그를 지키려 했는지를 주지할 필요가 있었다. 최대한, 최대한 카이안의 이성을 평소와 다름없는 평온한 상태로 만들어야 했다.


“일단...조넬러스 경에게 가자. 여기도 여전히 적의 기습에 노출되어 있어. 이야기는 그다음에 차근차근하도록 하지.”


“...네.”


그러나 그의 바람과 달리 카이안은 쉽사리 평정을 되찾지 못했다. 그것은 이칼롯이나 메리의 위로가 서투르다든지 하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녀, 유미르네는 이칼롯의 뒤편에 우두커니 목석처럼 서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심지어 눈썹 한 올도 거짓말처럼 굳은 채였다. 차라리 평소같이 샐쭉한 얼굴로 비아냥거렸다면 이렇게까지 심장을 뛰게 하진 않을 것이다.

그녀의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 마치 벌레를 쳐다보는 것 같은 그 경멸 어린 시선이 카이안의 이성을 뒤흔들었다. 못 박힌 시선은 결코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양쪽 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나, 눈빛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좋아좋아. 남을 밟고 살아남는다는 거, 아주 중요한 일이지.”


마치 다 먹은 음식쓰레기를 툭 집어던지듯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서 그녀는 태연히 등을 돌린 채 그에게서 멀어져갔다. 하지만 그녀가 띠는 노기는 카이안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분노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가, 자신에게. 그 사실이 카이안은 견딜 수가 없었다.


“유미르네....발렌스...”


경멸하는 쪽은 자신이다. 일그러진 그녀를 경멸하는 쪽은 늘 올바른 자신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순간, 두 사람의 관계는 역전되어버렸다. 그녀는 뻔뻔하게 살아 돌아온 그를 질책했고, 여기에 그는 아무런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죄책감은 수치심으로 변했다. 그리고 수치심은 곧 분노로 전이되었다. 카이안은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동공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




이칼롯이 돌아온 지 오래지 않아 마리네와 디리터 일행도 왕실기사단과 합류했다. 그들은 루도 또한 적의 습격을 받아 실종됐으며, 그람이 그를 도운 것 같노라고 설명했다.

일행은 즉각 두 사람을 찾기 위한 작전에 들어갔다. 수색은 마리네와 디리터가 맡고, 몸이 불편한 이칼롯은 유미르네와 함께 카이안의 주변을 지키기로 했다. 하지만 지나온 구역을 되돌아간다는 것은, 이제는 적지가 된 땅에 성큼 발을 내디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시점에서 이미 날이 저문 상태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말을 버린 채 최대한 발소리를 죽여가며 움직였다.

루도는 흔적이고 뭐고 정보가 아예 없었으므로 그들은 우선적으로 레미나를 찾아 마차가 달려왔다는 길을 되돌아갔다. 어두운 숲길을 가로지르고 있자니 뼈만 남은 나뭇가지들이 거칠게 옷을 잡아끌었다. 마리네는 그럴 때마다 신경질적으로 가지를 부러뜨리며 전진했다. 또 누군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꾸 마음이 초조해지는 것이었다.


“멈춰. 아무래도 이 부근인 모양이다.”


뒤따라오던 디리터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일단 눈이 어둠에 적응되고 나자 그의 뛰어난 시각과 후각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불에 그슬린 나무기둥을 매만지며 말했다.


“불에 탄 흔적으로 보아 역시 마법을 쓴 모양인데...그렇다고 해도 이 피냄새는 뭐지?”


조심스럽게 길가로 나간 그들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전투의 흔적에 눈을 찌푸렸다. 여기저기 널린 살점 조각과 내장, 가득 흩뿌려진 핏자국과 갑옷 파편들. 시체는 이미 누군가가 치운 모양이지만, 적어도 수십 단위의 인원이 이곳에서 목숨을 달리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마리네가 핏자국을 훑어보며 말했다.


“이건 레미나의 것은 아니야. 아니, 어쩌면 레미나의 것도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래. 한 사람 분량치곤 너무 많지. 문제는 그 공주님이 이걸 전부 처리했느냐는 것인데...이렇게 살점이 흩뿌려지는 마법이 있었나?”


“전에 제리온이 트위스티드 오브라는 마법을 쓴 적 있잖아.”


“아니, 그건 나도 한 번 봤다만, 그 마법은 아니야.”


디리터는 들고 있던 손목을 주워 그 단면도를 마리네에게 보여주었다.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힘줄과 근육이 밤바람을 받아 팔락거렸다. 그가 말했다.


“이건 쥐어짠 게 아니라 앞뒤로 당겨서 뜯어낸 거야. 이런 식으로, 밧줄을 당기듯이.”


“당긴다니..사람 힘으로는 불가능해. 누가 여기서 거열형(車裂刑)이라도 했다는 말이야?”


“글쎄다. 어쨌든 지금으로선 누구 게 누구 것인지를 알 수가 없네. 시체가 없으니 무사하다고 믿고는 싶은데...”


그때 아주 익숙한 문양이 디리터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들고 있던 손을 휙 집어던지고는 쏜살같이 달려가 문양의 정체를 확인했다. 마리네도 그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탄성을 터뜨렸다.


“아앗! 그거!!”


“...루도의 검이다.”


루도의 검은 왕실에서 자체 제작한 보검으로, 마리네와 디리터도 질리도록 눈에 새겨놓은 물건이었다. 힐트 부분의 왕가의 문장과, 제련 도중에 블레이드에 새겨진 물결모양의 무늬는 일반적인 롱소드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이었다.

두 사람은 루도가 이곳에서 전투를 벌였고, 아마 수명이 다한 검이 두 동강 난 것이리라 추측했다. 그러나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은 블레이드 뿐으로, 힐트 부분은 아무리 주변을 수색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마리네가 들뜬 표정을 지었다. 부러진 검을 전리품으로 챙겨갈 사람은 없을 테니, 답은 한 가지였다.


“루도가 가져간 거겠지? 그 말은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고!”


그러자 디리터가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에는 비단 부정의 뜻만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아직 단정할 수는 없어. 게다가 혈흔으로 보아 십 단위가 넘는 인원이 이 자리에서 죽은 모양인데...그 녀석에게 그 정도의 역량은 없어.”


“그건...아마도...”


펠아람의 아이. 그가 가진 힘이라면 인간을 면 가닥처럼 끊어버리는 일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것 외에는 이 참상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어떤 경위로든 루도는 이곳에서 훼창기사단과 전투를 벌였고, 무엇인가를 계기로 각성했다. 그리고 잡혀서든, 아니면 제 발로든 살아서 이 장소를 빠져나갔다. 문제는 레미나와의 관련성이었다. 그녀도 루도와 함께 있을까? 함께 있다면, 그녀는 무사한 것일까 아니면...


“잠깐, 누가 온다. 숨어.”


디리터가 멀리서 느껴진 기척을 감지하곤 말했다. 두 사람은 재빨리 자세를 낮춘 채로 숲 속에 몸을 묻었다. 마리네는 나무기둥을 등지고 앉은 채 최대한 숨을 죽였다. 곧 일단의 무리가 조금 전 두 사람이 있던 자리까지 걸어왔다. 그들 역시 말을 타고 있진 않았으며, 중무장했을 때 나오는 병장기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여기가 교전지야. 상황으로 봐선 역시 그거인 모양이고.”


“표적을 놓치다니 뼈아픈 실책이다. 골치 아프게 되었군.”


“히, 히히힛...죽이지 말라는 것도 임무의 하나였잖아? 그럼 된...된 거지.”


“그것과 이것은 다른 문제다. 이것은 죽여야 하는 쪽이었지.”


“배고파. 배가 고프다. 뭐 먹을 것 좀 없어?”


“우리는 할 만큼 했어. 죽지 못하는 그람은 확실히 골치 아픈 상대라고. 도망치는 것도 버겁지.”


“하으, 히, 하힛. 그럼, 약속은 어, 어떻게 되는 거지?”


“배가 고프다. 뭔가 먹고 싶다.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바뀌는 건 없어. 이것도 예상한 일이니까. 일단 우리는 귀환한다.”


“흥, 언제부터 우리가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된 거지?”


대화는 한 사람이 차례대로 말하는 것이 아닌, 몇 사람이 제멋대로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지껄이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워낙 제각각이라 총인원이 어떻게 되는지도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난잡하고 시끄러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마리네는 슬쩍 고개를 돌려 그들의 정체를 살피려는 움직임조차 감히 시도할 수가 없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말을 더듬는 사내였다. 분명히 시각의 사각지대에 있을 텐데도 마리네는 왠지 그 남자가 자신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말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곁눈질로 보자 디리터 역시 눈 하나 깜빡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그 남자가 말했다.


“지금은 참아야, 참아야겠지. 히, 히히.”


“네, 어련하시겠어. 하지만 이렇게 일을 크게 벌려놔서야 원...아무리 호구들만 모여 있다고 해도 기사단을 적으로 돌리는 건 힘들다고.”


“그건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가자.”


“배가 고프다. 좀 먹고 싶다.”


대화내용으로 보아 그들이 마차를 습격하고 도서관에 불을 지른 무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숫자는 넷, 아니 다섯 정도. 불시에 치고 들어간다면 상대 못 할 전력도 아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기습은커녕 숨을 틀어막은 채로 최대한 기척을 죽였다. 일대 다수의 전투가 성립 가능한 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병사를 상대로 했을 경우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평범한 부류의 것이 결코 아니었다. 단련된 감각이, 그리고 지금까지 겪어왔던 경험이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으라고 비명을 질러댔다. 싸늘한 날씨임에도 식은땀이 흘러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저 녀석들...악마다.’


다행히 그들은 이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 계속 배고프다고 외치던 남자가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숨은 방향을 향해 입맛을 다신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들이 떠나고 몇 분이 지나서야 둘은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긴장이 풀렸는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디리터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런 건 이제 좀 그만 만나고 싶다고. 자, 우리도 돌아가자.”


“어...이대로?”


“여기서 더 들어갔다간 진짜 훼창기사단과 마주치게 돼. 일단 루도의 흔적은 찾았으니 돌아가서 이칼롯과 상의해보자. 아까 그놈들에 관한 문제도 함께 말이야.”


두 사람은 바람을 등진 채 서둘러 군영으로 돌아갔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달은 눈구름에 가려 그저 희미하게 윤곽만 보일 뿐이었다. 이 무렵 루도는 레미나를 안은 채 산길을 질주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미 두 사람과 로샤단 사이에 벌어진 거리는 뒤쫓을 수 없을 만큼 아득하게 멀었다.




****




눈을 떴을 땐 이미 해가 중천에 걸려 있었다. 지붕 위로 참새가 먹이라도 쪼는 것인지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한 줄기 햇살 틈바구니로 부유물들이 이리저리 떠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루도는 잠시 자신의 가슴 위에 부서지는 햇볕의 향연을 감상했다.

그러나 몽환적인 감각은 찰나에 불과했다. 그는 곧 전날 있었던 해프닝을 떠올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다.


“크...으아악!”


하지만 온몸을 덮쳐오는 격렬한 통증에 그는 튕기듯 침대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화살에 맞았던 오른팔에는 붕대가 둘둘 감겨 있었는데, 그쪽의 통증은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로 전신 근육통의 위력은 대단했다. 각성의 반작용이라는 것일까. 루도는 끝없이 욕설을 늘어놓으며 고통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어찌나 아픈지 질끈 다문 입술이 덜덜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침대에서 끙끙대고 있을 때였다. 방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루도는 곧 그가 이 집의 주인이며, 자신을 치료해준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깨어났군. 몸 상태는 좀 어떤가?”


“괜...찮습니다. 저기, 저와 함께 온 소녀는 어떻게 되었죠?”


“그 전에 물어볼 게 있게. 나를 생명의 은인이라 여긴다면 숨김없이 답해주게나. 자네들은 아스트리카 군인인가?”


남자가 침대맡에 놓인 장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은 전날 루도가 훼창기사단원의 시신에서 수습한 물건들이었다. 입을 땐 경황이 없어서 몰랐는데, 찬찬히 살펴보니 망토며 갑옷 흉부에 아스트리카의 국기가 새겨져 있었다.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루도는 차분한 태도로 오해를 풀기 시작했다. 어차피 근육통 때문에 섣불리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저희는 리크나이츠 국민입니다. 이 갑옷은 적진에서 빠져나올 때 입은 것이고...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솔직히 실신한 자네를 보고 많이 고민했었네. 적국의 군사를 치료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말이지.”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리크나이츠 사람입니다.”


“아아, 뭐 의심하는 건 아닐세. 아스트리카 군인이 이 먼 산기슭까지 도망쳐 올 일은 없을 테니까. 꼬치꼬치 캐물어 미안하네.”


남자는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의심이 많은 사람이면 이런 상황에서는 재차 유도심문을 던져 상대의 신분을 파헤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그도 짧은 대화만으로 모든 의혹을 정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은 루도의 상태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곤 심약해진 그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배려했다.

문제가 일단락되자 루도는 재차 레미나의 안위를 물었다. 남자는 한참 뜸을 들인 뒤에야 낮게 한숨을 토해냈다.


“좀 더 누워있게. 자네도 지금 당장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야. 처음 봤을 때 맥이 뛰지 않아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나? 화살에 맞았다곤 해도 기이한 증상이야.”


“자, 잠깐만요. 저도라니요? 그럼 그녀는 어떻게 된 것이죠?”


“...그 소녀라면 아직 의식불명상태일세. 깨어날 수 있을지는...의문이지만.”


“무슨...!”


루도는 대경실색하여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예의 근육통이 전신을 짓누르고 있었으나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어 버텨냈다. 남자가 깜짝 놀라 말리려 했으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의지와는 관계없이, 한 발짝을 내디딘 순간 눈앞이 빙빙 도는가 싶더니 정신을 차렸을 땐 다시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


“...윽.”


“내가 뭐랬나. 자네도 지금 보통이 아니라니까. 쓸데없는 객기 부리지 말게.”


사실 루도의 증상은 극단적인 빈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안젤리카의 능력으로 상처는 전부 치유되었지만 소모된 혈액은 돌아오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나 루도를 치료해준 남자가 이런 내력을 알 리 없었다. 현기증이 조금 가라앉자 루도는 남자의 소매를 붙잡으며 말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를...그 녀석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세요.”


그러자 남자는 혀를 끌끌 찼다.


“정말 막무가내로군. 그러다 어떻게 돼도 난 책임 못 지네.”


남자가 바깥을 향해 소리치자 곧 아내처럼 보이는 여인이 방으로 들어왔다. 루도는 두 사람에게 부축 되어 레미나가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남자는 의자 하나를 가져와 루도를 앉혔다. 그녀와 마주한 순간 루도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시간이 그대로 멈춰 버린 것만 같았다. 쏟아지는 햇빛과 때늦은 철새의 지저귐도 그저 다른 세상의 일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처음 만났을 그때처럼, 그녀는 다소곳이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다만 신비함마저 느껴지던 생기는 온데간데없이, 파리하게 질린 그녀의 안색이 보는 루도의 가슴을 메어지게 만들었다.


“오는 도중에 상처가 벌어진 모양이더군. 서둘러 봉합하긴 했지만....피를 너무 많이 흘렸네.”


빈혈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현기증이 루도를 덮쳤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몸에 힘이 빠지는 감각. 만약 의자의 등받이가 없었다면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휘청거리는 상체를 겨우겨우 고정시켰다.


“그럼...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남자는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네. 이제는 시간과의 싸움이지. 아마도...오늘 밤이 고비가 될 걸세.”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루도에게 침대로 돌아가 쉬기를 권유했지만 루도는 그녀 곁을 지키겠다며 사양했다. 그는 더는 말리지 않고 대신 담요와 함께 데운 수프를 가져다주었다.


“우린 내일 이 촌락을 떠날 생각이네. 그러니 개의치 말고 내 집처럼 사용하게나.”


“...감사합니다.”


남자가 자리를 떠나자 루도는 레미나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창백한 레미나의 낯빛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입가에 가만히 손을 대니 실낱같은 숨결이 꺼져가는 그녀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루도는 차가워져 가는 레미나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레미나...레인스터에서 있었던 일 기억해? 네가...너무 악을 쓰는 바람에 화가 나서 그만 네 뺨을 때리고 말았잖아. 하늘 같은 공주님을 때렸다고 디리터가 얼마나 난리를 피웠었는데.”


에메랄드 섬에 있을 적, 그녀를 위해 몇 시간이고 혼잣말을 중얼거린 적이 있다. 루도는 그때처럼 똑같이 그녀를 위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다만 그 시절의 그녀는 움직이지 않을지언정 확실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지금은...


“나도 내가 잘못 했다는 거 알아. 그런데 막상 사과하려고 보니까 네 쪽에서 먼저 나를 슬금슬금 피하는 거야. 그럼 얼마나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제리온이 죽어서 슬프기는 다 마찬가지인데.”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니, 아니야. 이건 못 들은 걸로 해줘. 그냥 내가 멍청이야. 내가 속이 좁았어. 사실 네가 나를 얼마나 배려해주는지 알고 있었는데도,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말을 걸 수가 없었어. 어쩌면 늘 웃고 상냥한 너니까 먼저 사과해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걸지도 몰라.”


그녀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는다.


“제리온...맞아. 어제 제리온을 만났어. 꿈이나 환상 같은 게 아니야. 진짜로 제리온이었어. 그 인간, 생텀가드가 되었더라고. 믿어져? 루치페리아나 타이달루크처럼 신의 사자가 된 거야. 젠장, 죽어서까지 거드름을 피우는데 어찌나 아니꼽던지...”


그녀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제리온이....그러더라. 네가 기다린다고....그게 내가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라고. 응? 듣고 있어?”


기어이 복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이 한 떨기 흘러내렸다.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 그녀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느새 감싸 쥔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제리온이 그랬단 말이야. 그런데 네가 여기서 가버리면...나는 어떡하냔 말야...어떻게 제리온의 얼굴을 보냐고...”


루도는 그녀를 보내지 않으려는 듯 붙잡은 손을 절대 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어떻게 보면 레미나가 그를 붙잡은 것이기도 했다. 그녀마저 떠나버리면 왠지 지금까지 지켜오던 가치관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루도는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자신이 믿어오던 것을 앞으로도 믿을 수 있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했다.


“미안해 레미나. 제발 죽지마, 응? 제발...아직 너에게 사과하지 못했단 말이야...제발...제발...도와줘요 람...”


루도는 레미나의 손을 이마에 맞대고는 끊임없이 그녀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깨어나지 못했다. 어느새 밤이 찾아오고 운명과도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그는 밤을 새워가며 레미나의 병상 곁을 지켰다.

그렇게 얼마나 기도했을까, 루도는 어느새 자신의 손등 위로 새벽녘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재빨리 레미나의 용태를 확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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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1) +11 15.07.26 1,181 39 22쪽
34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4) +23 15.07.20 1,215 40 11쪽
34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3) +26 15.07.13 1,132 53 16쪽
33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2) +35 15.06.12 1,401 51 11쪽
33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1) +11 15.06.10 1,013 42 11쪽
337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0) +12 15.06.03 1,014 36 19쪽
336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9) +6 15.06.02 1,093 32 17쪽
335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8) +6 15.06.02 952 31 15쪽
334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7) +2 15.06.02 970 27 16쪽
333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6) +3 15.06.02 972 28 20쪽
332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5) +2 15.06.02 925 25 15쪽
33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4) +3 15.06.02 990 25 19쪽
33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3) +7 15.06.01 913 33 18쪽
32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2) +2 15.06.01 930 27 22쪽
32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 +3 15.06.01 878 26 23쪽
327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5) +5 15.05.31 935 29 13쪽
326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4) +1 15.05.31 850 23 19쪽
325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3) +2 15.05.31 918 25 22쪽
324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2) +2 15.05.31 948 24 19쪽
323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1) +1 15.05.31 782 21 20쪽
322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5) +10 15.05.30 980 34 21쪽
321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4) +5 15.05.30 877 26 19쪽
320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3) +6 15.05.27 1,020 30 18쪽
319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2) +2 15.05.27 747 28 15쪽
318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1) +3 15.05.27 769 29 14쪽
317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4) +1 15.05.27 900 26 18쪽
316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3) +8 15.05.26 898 23 27쪽
315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2) +2 15.05.26 773 24 23쪽
314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1) +3 15.05.26 866 20 28쪽
313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5) +2 15.05.26 844 26 21쪽
312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4) +1 15.05.26 892 25 18쪽
311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3) +3 15.05.26 1,089 24 25쪽
310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2) +3 15.05.25 874 25 28쪽
309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1) +2 15.05.25 969 22 18쪽
30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1) +2 15.05.25 725 26 23쪽
307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0) +1 15.05.25 749 20 22쪽
306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9) +1 15.05.25 769 20 14쪽
305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8) +4 15.05.25 806 27 17쪽
304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7) +2 15.05.24 934 26 19쪽
303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6) +3 15.05.24 866 22 13쪽
302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5) +2 15.05.24 943 28 19쪽
301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4) +1 15.05.24 843 21 16쪽
300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3) +2 15.05.24 883 23 24쪽
299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2) +2 15.05.24 1,030 29 18쪽
29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 +2 15.05.24 910 25 21쪽
297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5) +6 15.05.23 1,107 21 29쪽
296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4) +1 15.05.23 846 23 20쪽
295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3) +1 15.05.23 948 22 20쪽
294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2) +3 15.05.23 1,137 20 21쪽
293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1) +2 15.05.23 1,079 27 17쪽
292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3) +3 15.05.23 1,139 25 19쪽
291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2) +10 15.05.21 1,053 28 22쪽
290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1) +2 15.05.21 1,109 26 19쪽
289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6) +2 15.05.21 1,080 26 25쪽
288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6) +3 15.05.21 936 24 27쪽
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2 26 25쪽
286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4) +5 15.05.20 1,017 29 21쪽
285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30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09 24 14쪽
283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3) +1 15.05.20 1,044 27 24쪽
282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2) +3 15.05.20 749 23 19쪽
281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1) +1 15.05.20 992 28 22쪽
280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3) +11 15.05.19 1,011 31 30쪽
279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2) +3 15.05.19 1,224 28 17쪽
278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5) +9 15.05.18 1,137 24 18쪽
277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4) +2 15.05.18 808 24 17쪽
276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3) +4 15.05.18 942 22 24쪽
275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2) +3 15.05.18 931 23 23쪽
274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1) +2 15.05.18 1,029 25 19쪽
273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1) +2 15.05.18 974 22 19쪽
27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3) +1 15.05.18 1,221 25 25쪽
27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2) +2 15.05.17 1,011 29 25쪽
»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1) +1 15.05.17 867 20 22쪽
269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0) +1 15.05.17 966 23 23쪽
268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9) +1 15.05.17 1,039 23 20쪽
267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8) +6 15.05.17 907 25 22쪽
266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7) +5 15.05.16 992 26 22쪽
265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6) +1 15.05.16 887 22 26쪽
264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5) +2 15.05.16 1,030 29 26쪽
263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4) +1 15.05.16 1,001 24 24쪽
26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3) +3 15.05.16 857 23 25쪽
26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2) +2 15.05.16 926 23 26쪽
26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 +3 15.05.16 1,060 31 31쪽
259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6) +8 15.05.14 1,064 29 22쪽
258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5) +7 15.05.14 914 22 11쪽
257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4) +4 15.05.14 1,031 21 20쪽
256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3) +3 15.05.14 894 22 31쪽
255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2) +5 15.05.14 1,000 24 27쪽
254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1) +6 15.05.13 904 24 30쪽
253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0) +3 15.05.13 943 22 24쪽
252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9) +1 15.05.13 995 21 27쪽
251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8) +1 15.05.13 897 18 27쪽
250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7) +4 15.05.12 1,088 26 27쪽
249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6) +5 15.05.12 995 25 27쪽
248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5) +3 15.05.12 1,102 25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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