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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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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3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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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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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글자
24쪽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0)

DU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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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 블레이즈(Land Blaze)


이 마법은 시전자가 지명한 지점을 중심으로 가로 20m 반경에 분출하는 거대한 화염을 만들어낸다. 얼핏 보기에 '월 오브 파이어(Wall of Fire)'와 흡사하지만, 물을 뿌려도 쉽게 꺼지지 않고 바람의 흐름에 따라 '화염 전체'가 움직인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또한 불의 근원지가 지표가 아닌 지하 1m지점이기 때문에 화염이 솟구칠 때 작은 폭발을 동반하게 된다.

이것은 대민지원에 평생을 바쳤던 성마도사(Holy mage) 훌리오 아도르노가 고안해낸 마법으로, 특히 화전민의 개간을 돕는 데에 특화되어있다. 훌리오는 죽기 전 부디 자신이 남긴 마법이 민중의 고초를 경감하는 데 쓰였으면 좋겠다며, 행여라도 전쟁에 악용되지 않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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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신호가 있던 것도 아니건만, 이변을 알리는 뿔나팔 소리가 울린 것도 아니건만 레인스터의 병사들은 커다란 충격이라도 받은 듯 전투를 중지했다. 불어오던 바람이 일순간 정지한 것처럼 느껴졌다.


“뭐, 뭐야 저거...제리온이 죽은 거야?”


“뭔가를 맞고 쓰러지던데...설마...”


짙어지는 패색을 등에 업은 채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고향을 지키자는 사명감도 있었지만 그들을 이끌어주던 패기 넘치는 지휘관의 존재도 한몫했다. 그의 조롱에 호응하며, 그의 마법에 열광하며, 그야말로 그의 등을 바라보며 여태까지 버텨온 것이다.

그런데 그가 돌연 쓰러졌다. 그 사실은 병사 본인이 화살에 맞은 것보다 더욱 큰 공포로 다가왔다.


“제리온까지 당하다니...이젠...이젠 끝이야...”


“제기랄! 애초에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어. 저런 대군을 상대로...!”


억눌러왔던 패배감과 피로가 일시에 분출했다. 결국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병사 하나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한 명이 시작을 끊자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도망쳐! 우리는 졌다고!”


공성탑에서 적의 군세가 일시에 쏟아져 나왔다. 굳이 무기를 휘두를 것도 없이 몸으로 밀어붙이는 것만으로도 뒤로 물러나야 할 정도로 엄청난 기세였다. 그러나 성벽을 보완해야 할 보충병은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질 않았다. 전투에 정신이 팔려 있던 이칼롯이 이상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을 땐 이미 공황상태에 빠진 병사들이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무슨...! 돌아와,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어!!”


그러나 그의 외침은 전장의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달아나는 병사, 그를 말리려고 활시위를 놓은 병사,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장교, 치(稚) 하나를 점령해 깃발을 꽂고 있는 적의 기사. 성채가 점차 검은 깃발로 물들어가고, 적에게서 등을 돌린 병사가 태반이다. 누가 봐도 전세는 흑연기사단의 압도적인 승리인 것처럼 보였다.

그때 쓰러져있던 제리온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자신을 보호하려고 둘러싼 병사들을 거칠게 밀쳐내면서 말했다.


“비켜! 고작 이런 거 가지고 송장 취급하지 말라고. 완전 개판이잖아!”


그의 오른팔 상박에는 여전히 화살이 박혀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제리온은 그런 것 따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한 손만으로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멜피즈 가든(Melphid's Garden)!”


무형의 파장이 퍼져 나가더니 삽시간에 전장의 공기를 바꾸어버렸다. 피비린내와 잿가루 냄새를 머금었던 전장의 바람이 일거에 봄날의 상쾌한 대기로 점철되어갔다. 그 갑작스러운 환기에 달아나던 이들도, 몰려들던 이들도 멍한 표정이 되어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야말로 시간이 정지한 것만 같았다.

그렇게 강제된 침묵 속에서, 제리온은 화살이 꽂힌 오른팔을 번쩍 치켜들며 외쳤다.


“야 이 모자란 자식들아, 양아치 하나 쓰러진 정도로 일희일비하지 말란 말이다! 내가 니들 할애비라도 되는 줄 알아?!”


두근, 오그라들었던 심장이 힘차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자력이 목덜미를 붙잡아 끄는 것 같았다. 그의 가시 돋친 외침에 날아가 버렸던 이성이 차츰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실 알고 있었는데 - 여기까지 온 이상 달아날 곳 따위 없다는 것쯤.


“패배를 누가 판정하지? 나 같은 게 죽는다고 패배가 확정될 정도로 이 전쟁이 시시한 것이었나? 머리를 굴리고 발을 놀려. 왜 익숙하지도 않은 갑옷을 걸치고 이 진창으로 나섰는지를 스스로 되새기란 말이야! 우린 지지 않는다. 설령 모두가 죽고 너 하나만이 남는 순간이 올지라도, 그것이 결코 패배는 아니야.”


달아나던 병사들이 하나둘 머뭇거리며 성벽계단을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밀려나던 수비대도 일시에 공성탑을 향해 전진해나갔다. 마법으로 인해 멈춰 있던 공기가 제리온의 연설에 차츰 북풍으로 바뀌어갔다. 그는 아직도 복귀를 주저하는 병사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말했다.


“돌아와! 난 아직 당신들이 필요해.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당신들이 필요하다고. 아직 스벤달 오빌리크를 충분히 엿 먹이지 못했단 말이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던 탓에 그의 일갈은 멀리서 전황을 지켜보던 스벤달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그 팔팔한 생기에 스벤달의 안면근육이 꿈틀거린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흐름이 바뀌었다.

퇴각하던 병사들이 일제히 공세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군기(軍氣)는 전투를 시작하던 때보다 훨씬 더 강해져서, 부상병들마저도 지친 몸을 이끌고 성벽을 올라오는 것이었다.

전진, 전진뿐이다. 지휘관은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그 지휘관이 자신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아니, 레인스터가 그들을 부르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흑연기사단이 공성탑에서 쏟아져 나올 때와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다만 이번에 공세에 들어간 쪽은 레인스터여서, 밀려난 적의 병사들이 하나둘 성벽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 교합의 중심지에서 디리터는 물을 만난 물고기마냥 신나게 검을 휘둘러댔다.


“푸하하, 말도 안 돼.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저게 정말 내가 아는 그 제리온이란 말이야?!”


위기를 극복하자 왠지 알 수 없는 열기가 샘솟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는 변화의 중심에 있던 제리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곁에 있던 병사에게 부탁해 화살을 뽑아달라고 부탁하고는, 곧장 캐스팅에 들어갔다. 깜짝 놀란 깃발병이 사정없이 적기를 흔들어댔다.


“연속으로 3방이라니, 날 피곤하게 한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주마. 앙? 나한테 화살 날린 너 이 새끼 너 말이야!”


사실 수많은 병사 사이에서 저격수를 찾기란 불가능한 일인데도, 궁수들은 혹시 자길 노리는 게 아닌가싶어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러나 제리온은 후방의 궁병대 대신, 성벽 아래 밀집되어 있던 돌격대를 향해 가로로 길게 호를 그으며 외쳤다.


“랜드 블레이즈(Land Blaze)!"


가로로 20m 정도 되는 구간에 기름을 잔뜩 뿌리고 불을 붙이면 이와 같은 모양새가 될 것이다. 슈르르륵, 하는 이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표에서부터 생성된 화염이 성벽 아래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었다. 불의 장벽은 자그마한 폭발을 동반하여 일대의 병사들을 모조리 숯덩이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2m 높이까지 치솟아 사다리를 오르던 병사들까지 떨어뜨렸다.


“흐아아아...히이이익!! 물, 물!”


“부, 불을 꺼. 모래를 뿌려!”


“히아아악, 흐아악!!”


불이 붙은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근처의 동료에게 달려드는 통에 성벽 아래는 완전히 아비규환이 되었다. 운이 좋게 화를 면한 이들이 재빨리 불을 끄려고 달려들었지만, 마법으로 점화된 불꽃은 모래를 뿌리는 것 정도로는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자아, 아래쪽은 한창 파티 중이라고. 이틈에 어서 성벽을 정리해!”


제리온의 말대로 불꽃에 밀려 병사들이 쉽사리 사다리로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이틈에 고립된 적군을 몰아내고 대열을 가다듬어야만 했다.

그때 이칼롯을 위시한 일련의 기사대가 적을 몰아붙이며 일거에 공성탑 안으로 뛰어들었다. 공성탑이 건재한 이상 이전 같은 상황이 언제든 발생할지 모르니,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를 파괴하기 위한 공작이었다.


“기세를 몰아 단숨에 밀어붙입시다! 우물쭈물하다간 후발대에게 밀려나고 말 거요!”


이칼롯이 방패를 들이밀며 말했다. 마침 여기에 맞은 적이 자세가 무너져 쓰러지자 뒤이어 계단을 올라오던 병사들이 줄줄이 밀려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결사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의 뛰어내리다시피 하여 공성탑 내부를 점령해나갔다.

감히 공성탑 안으로 뛰어들리란 예상은 하지 못했기에, 또한 탑 내부의 상황은 바깥쪽에선 전혀 확인할 길이 없었기에 적들은 이칼롯의 돌격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윽고 달아나던 마지막 병사의 허벅지를 가르고 나자 좁은 입구 사이로 우글거리는 흑연기사단의 군세가 눈에 들어왔다. 전투가 시작된 이래, 이칼롯이 처음으로 성 바깥쪽 땅을 밟은 것이었다.


“.....”


적들은 갑작스러운 반격에 놀라 섣불리 다가서지 못했다. 입구까지 도착하자 이칼롯은 방패를 고쳐 쥐고는 위쪽의 병사들을 향해 말했다.


“좋아, 이제 기름을 뿌리며 성으로 돌아갑시다.”


챙, 쨍그랑. 미리 준비해둔 기름병이 유리파편을 튀기며 공성탑 곳곳에서 터져나갔다. 넘칠 듯 흘러나온 기름은 어느새 탑 내부를 담뿍 물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알 리 없는 적군은 레인스터측이 기껏 점령한 탑을 버리고 돌아가자 후퇴하는 것으로 알고 곧장 추격해왔다. 막 기름으로 점철된 계단을 올라온 병사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그마한 횃불을 던져 넣는 이칼롯의 모습이었다.

화아악! 아무리 쇠가죽을 덧대었다곤 해도 탑 내부까지 보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안쪽에서부터 시작된 화공은 불운하게 휩쓸린 병사들을 포함하여 삽시간에 공성탑을 불꽃으로 점철해 들어갔다. 그 시뻘건 화염의 향연은, 제리온의 마법만큼이나 레인스터 병사들을 환희로 들끓게 만들었다.

이윽고 공성탑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자 일대의 병사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쏟아냈다.


“우와아아아!!”


“봤냐 아스트리카 자식들아! 우리가 있는 한 이 도시엔 한 발자국도 들어오지 못한다아!”


이어 나머지 공성탑도 차례차례 붕괴되기 시작했다. 노포탑에서 발사한 화염쇠뇌가 기어이 내부로 파고들어 불이 붙었고, 다른 하나는 기름을 들이붓다시피 한 화공으로 도성교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준비한 공성탑이 전부 파괴되자 흑연기사단의 사기도 눈에 띄게 저하됐다. 사다리를 이용한 공격도 여전히 이루어지고는 있었으나, 레인스터 측이 완벽히 대열을 정비한 까닭에 곳곳에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급기야는 사다리를 오르길 주저하는 병사까지 생기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지지부진한 시간이 흘러가고, 결국 4일째의 전투에서도 흑연기사단은 도시를 점거하는 데 실패했다. 비록 양측 모두 막대한 사상자를 내긴 했으나 어느 쪽이 기세를 높여가는지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퇴각하는 아스트리카 병사들의 면면에 점차 회의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과연 저 도시를 함락시킬 수 있을까, 이렇게 큰 피해를 보면서까지 점령할 만한 가치가 저 도시에 있는 것일까.

반면 레인스터의 첨탑 꼭대기엔 여전히 리크나이츠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피워놓은 화톳불은 해가 지고 새벽이 올 때까지도 결코 꺼지는 일이 없었다. 장작 하나가 전소하면 또 다른 장작을, 그리고 그 위로는 기름을 가득 담은 솥단지가 부글대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날 밤, 여전히 적의 분견대가 산발적인 공격을 감행해오는 가운데 이칼롯은 잠시 지휘를 위임시키고는 이제는 의무대가 되어버린 지구대 건물로 향했다. 지구대는 이미 넘쳐나는 부상병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 번 치료를 받은 이가 재차 부상을 당해 실려 오는 일도 빈번했기 때문에 비어 있는 근처의 건물을 추가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였다. 문을 열자 피비린내와 함께 약재를 끓이는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램프가 켜져 있긴 했지만 몇 보만 걸어도 시야가 가릴 정도로 내부는 어둠에 차 있었다. 화살공격에 대비해 창문을 모두 막아놓은 탓이었다.

워낙 인파가 많아 어디서부터 찾아야 되나 막막하던 차에 마침 카이안이 그를 발견하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 이칼롯. 이쪽이에요.”


그 역시 밤을 새워가며 부상병을 치료한 탓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나, 활기차게 웃으며 이칼롯을 맞아주었다. 카이안의 안내를 받아 구석진 곳으로 향하자 의자에 쓰러지듯 등을 기대고 있는 제리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선이 마주치자 제리온은 으레 그렇듯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뭐 구경할 게 있다고 여기까지 찾아와?”


“...팔은 좀 어떻지?”


남는 의자가 없었기 때문에 이칼롯은 대충 근처의 쓰레기통 같은 것을 가져와 앉았다. 제리온의 팔을 살펴보려고 고개를 숙인 그는 관통상보다도 오른팔 전체를 뒤덮고 있는 흉측한 화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스터와 싸우다 생긴 것이라고 했던가...늘 스카프로 가리고 다녀 몰랐는데, 직접 보니 관통상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상흔이었다.


“내일 지휘를 맡을 수 있겠어?”


“흥, 계집애 같은 염려는 필요 없어. 어차피 망가질 대로 망가진 팔이야. 화살 두어 개 박히는 정도론 쓰라리지도 않다고.”


“그래...그럼 부탁한다.”


곧 카이안이 알코올에 적신 솜을 가져와 제리온의 상처를 문질렀다. 그는 신음을 흘리진 않았으나 역시 고통이 없진 않은지 미간이 엉망으로 찌푸려졌다. 이칼롯이 그 모습을 보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우리 쪽 피해자는 부상자를 합해서 모두 214명이다. 흑연기사단 쪽의 상황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탈영병도 없고 병사들이 동요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아. 오늘처럼만 한다면 앞으로 사흘 정도는 더 버틸 수 있겠지.”


“웃기고 있네. 아까 모조리 꽁무니 빼고 달아나던 거 못 봤어? 진짜 가슴이 철렁했다고, 빌어처먹게도.”


“네가 잘 수습했으니 된 거지. 나도 그땐 정말 끝인가 싶었다만...”


일렁이는 램프의 불빛이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얼굴에 짙은 음영을 드리웠다. 바깥에서는 이따금 궁병대의 사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몇 분을 보냈다. 혹사당한 몸은 단지 멈춘 것만으로도 다시 오지 않을 휴식이라도 얻은 듯 축 늘어졌다. 카이안이 붕대를 감아주는 동안에도 제리온은 가만히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칼롯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 넌.”


“...뭐?”


“용병단에서 처음 봤을 땐 허세로 똘똘 뭉친 양아치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로서는 드문 칭찬 일색의 발언에 제리온이 풋,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둘 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진 않았지만,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자연스레 예상이 갔다. 제리온이 말했다.


“어울리지 않게 아부 떨지 마셔. 그런다고 로샤단 대장직을 넘겨받을 생각은 없으니까.”


“후후...그 정도는 바라지도 않는다.”


“...피곤하구만. 난 좀 잘 테니까 일 생기면 깨워달라고.”


“그래. 쉬어라.”


제리온은 의자를 치워 자리를 만들더니 그대로 모포를 깔고 드러누웠다. 이칼롯도 그가 눕는 것을 확인하고는 지휘탑으로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몇 보 걸어가던 그는, 갑자기 문득 생각난 듯 뒤돌아보며 말했다.


“아, 술 좀 갖다 줄까. 너무 몸이 긴장하는 것도 좋지 않아.”


‘술’이라는 단어에 제리온의 눈이 스르륵 떠졌다. 그러나 그는 상반신을 일으키는 시늉만 하고는 곧 체념한 듯 도로 엎어졌다.


“됐어. 숙취가 있으면 캐스팅에 방해된다고.”


“그 정도까지 마시라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는 술 마셔도 마법을 쓸 수 있다고 자랑하더니.”


“...혹시 모르니까야. 루도랑 마리네가 돌아오면 그때 축배나 들자고.”


“그래. 알았다.”


어찌나 지쳐 있었는지 그는 돌아눕자마자 신나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이칼롯은 잠든 그를 뒤로 한 채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겨울밤의 차디찬 바람이 뺨을 때리자 노곤하던 눈꺼풀이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방패를 바람막이로 삼아 천천히 성벽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갤러리에서는 너무 외쳐댄 나머지 목이 쉬어버린 장교가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이칼롯은 그들을 지나쳐 곧장 지휘탑으로 돌아왔다. 그가 복귀하자 로이니스 부관이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군요. 어떻습니까? 멜피드 경은.”


“치명상도 아니고, 원래 자주 팔을 쓰는 녀석도 아니니 괜찮을 겁니다. 내일 아침 즈음에는 돌아올 테죠. 그것보다 전투상황은 어떻게 되어가죠?”


“아, 예. 어제와 같습니다. 1개 대대가 방패를 든 채 이리저리 활보하고 있긴 한데 굳이 낮처럼 돌입을 시도할 마음은 없어 보입니다. 이쪽도 공연히 화살 낭비하지 않도록 지시해 놓았고요. 문제는 다른 것입니다만...”


거기까지 말한 순간 투석기에서 날아온 바위가 제법 가까운 거리의 성벽을 강타했다. 쿠웅-하는 굉음에 보고하던 부관이 깜짝 놀라 투구를 떨어뜨렸다. 그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적들의 투석 공격 말입니다만...조금 위험한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위험한 상황이라면?”


부관은 이칼롯을 남문에서 50m정도 떨어진 외곽성벽으로 안내했다. 이동하는 와중에도 불붙은 바윗덩이가 쉴 새 없이 성벽을 강타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로이니스는 불안하게 걸음을 재촉했다. 목적지에 다다른 그는 대뜸 성벽 아래쪽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간 이칼롯은 곧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건...더 못 쓰겠군요. 위험하니 내일 전투부터는 이 부근의 수비대를 철수시켜야겠습니다.”


“예. 원래 길이 나 있던 곳을 돌을 쌓아 막은 것이라...다른 부분에 비하면 석재의 두께라든지 조밀함이 많이 모자랍니다. 이런 상태라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거의 반파된 상태로 아슬아슬하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성벽을 보며 이칼롯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성벽이 무너진다면 구차하게 사다리니 공성탑이니 하는 장비를 동원할 필요도 없다. 흑연기사단이 자랑하는 중장기병대를 동원해 그대로 도시 중앙부로 진격하면 되는 일이다.


‘이건 정말로...위험한데.’


접근전에서는 적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건 오늘 전투로 확실히 증명되었다. 다만 성벽의 구조를 이용한 지형적 유리함으로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벽이 무너진다면 가뜩이나 모자란 병력을 쪼개 막아야 하는데다 이마저도 비효율적인 전투가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루도 일행이 도시를 떠난 지도 5일이 지났다. 만약 그들이 정해진 기간 안에 지원군을 이끌고 도착한다면 이틀 이내가 될 것이다. 이 반파된 성벽이 이틀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이칼롯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성벽이 무너지는 순간 이 도시가 끝장난다는 사실만은 명확했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다가오든, 이제 레인스터의 운명은 이 이틀 안에 결판이 나도록 정해졌다. 더불어 로샤단의 운명까지도.



***



델키아 외곽은 예상했던 대로 흑연기사단 분견대에 의해 3면이 포위되어 있었다.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의 행렬에 마리네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이런 형태로 델키아에 돌아오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흠, 서문에 1000, 남문과 북문에 각각 500정도인가? 지원군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빤히 보이네.”


루도 일행은 1km정도 떨어진 숲가에 말을 대곤 적의 동태를 살폈다. 흑연기사단은 빈틈없이 진을 펼쳐놓긴 했지만 굳이 도시를 점령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으레 보이는 공성장비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밥 짓는 연기를 피운 채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명령받은 것 외에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는 건가. 저쪽 지휘관은 생각보다 출세에 관심이 없나보네.”


“우리에겐 잘된 일이지. 자, 우회해서 동문으로 들어가자고. 혹시 모르니 전투준비 해놓고.”


본래 산간에 위치한 도시인만큼 델키아는 조금만 도시를 벗어나면 온 천지가 숲이었기 때문에 몸을 가릴 장소는 얼마든지 있었다. 일행은 정찰대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그러나 사람이 다니지 않는 숲을 말까지 대동한 채로 움직이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시간이 오래 지체되자 긴장도 덩달아 풀렸는지 유미르네가 이런저런 잡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색은 안 해도 그녀는 오랜만에 델키아에 돌아와서인지 기분이 썩 괜찮아 보였다.


“공주님, 제가 노래 한 곡 가르쳐 드릴까? 델키아 아가씨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곡이에요.”


“헤에-무슨 노래인데요? 아, 혹시 적에게 들키진 않으려나...”


“걱정 마세요. 이 정도 거리라면 늑대라도 알아채지 못할 테니까.”


“음...그럼 한 번 배워볼까요.”


루도는 유미르네의 음흉한 미소를 보며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치곤 두 사람은 천차만별의 가치관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마 했던 예상은 현실로 다가왔다. 잠시 목을 고르던 유미르네가 해실거리며 곡조를 읊기 시작했다.


<><><>

저 숲의 딱따구리는

막힌 구멍도 잘 뚫는데


우리 동네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


처량하구나 이 내 팔자야

오늘 밤도 만월(滿月)이 차올랐건만

<><><>



“쿨럭쿨럭! 켁, 허극...”


물을 마시던 마리네가 사레가 들렸는지 거칠게 신음했다. 루도도 얼굴이 새빨개져서 유미르네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노래를 부른 본인은 뭐 그리 대수냐는 듯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너 임마, 아무리 친해져도 가릴 게 있지 레미나가 누군지 알고...”


“어머나, 내가 뭘? 딱따구리 노래한 건데 뭐 문제라도 있니?”


“너 진짜...으휴, 말을 말자 말을.”


“유난떠는 너희가 이상한 거지. 이건 분명히 ‘델키아 아가씨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곡’이라고. 둔탱한 레인저들은 몰랐겠지만 말이지. 어때요 공주님? 정말 좋은 곡이죠?”


루도와 마리네가 조심스럽게 레미나의 눈치를 살폈다. 원체 순진한 성격이니 이런 것에 무지하진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해보았지만 그 정도로 순둥이는 아니라는 게 그녀의 뺨에 떠오른 홍조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레미나가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건...대단히 은유적인 노래로군요. 델키아의 여자들은 다들 그런 노래를 부르나요?”


“호호호호! 뭐 그렇죠. 역시 본질을 볼 줄 아시네.”


‘...반대 아닌가. 엄청나게 직설적인 노래 같은데.’


그래도 유미르네의 짓궂은 장난 덕에 무거운 분위기가 그나마 완화되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 덤불을 헤치고 가는 동안 레미나와 유미르네는 노래 이야기로 잠시나마 웃음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침엽수림을 헤쳐 왔을까, 일행은 장장 수 km의 구간을 우회한 끝에 델키아의 동문 끝자락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군데군데 흑연기사단의 수색대가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으나 기껏해야 분대 단위여서 그리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마리네가 성문까지의 거리를 재며 말했다.


“설마 이번에도 문이 안 열리진 않겠지?”


“그럼 흑연기사단이 이쪽으로 오지도 않았을걸. 우리 영주님을 한 번 믿어보자고.”


레인스터를 출발한 지 4일째. 이미 해가 산허리에 걸려있는 것을 고려하면 2일 안에 지원군을 이끌고 돌아가야 했다. 과연 다른 영지들을 내버려두고 델키아를 선택한 게 옳은 것인지 회의감도 없지 않았으나, 루도는 그런 비관적인 감정을 불어오는 미풍에 날려 보냈다.

앞으로 이틀. 아직까지 레인스터가 함락되지 않았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일행은 델키아를 향해 말을 몰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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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2 26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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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30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09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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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 +3 15.05.16 1,060 31 31쪽
259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6) +8 15.05.14 1,063 29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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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4) +4 15.05.14 1,031 21 20쪽
256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3) +3 15.05.14 894 22 31쪽
255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2) +5 15.05.14 999 24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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