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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조회수 :
358,978
추천수 :
10,757
글자수 :
2,844,987

작성
15.05.20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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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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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글자
22쪽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1)

DUMMY

-슬러터. 목 베는 악마 하베스트의 피로군요. 젊은 검사여, 이 피의 주인을 보았습니까?


“하루 전에 맞닥뜨렸소. 안데인 산이니 북동쪽이겠지만, 현재의 정확한 위치는 우리도 모르오.”


루치페리아의 동공 없는 눈동자가 이칼롯을 응시했다. 빈약한 정보 때문이 아니라, 그와 그를 따라온 일행에게서 느껴지는 은은한 살기를 감지한 것이었다. 그것은 일전에 제스터를 상대할 때와는 명백히 분위기가 달랐다. 그들은 ‘요청’이 아닌, ‘요구’를 하고 있었다.

물론 루치페리아에게 일행의 아픈 사정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사는 오로지 토벌해야 할 악마뿐이었다. 그녀는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준비에 들어갔다.


-인식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수색 및 적 섬멸에 들어갑니다.


“잠깐 기다려주시오!”


이칼롯이 그녀의 옷깃을 붙잡으며 말했다. 물론 옷깃이라고 해도 석고로 되어 있어 소매가 찢어진다거나 하는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아무런 저항 없이 멈춰 섰음에도 이칼롯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무리 적이 아니라고는 하나, 생텀가드 같은 태곳적 존재를 ‘제지’하는 데에는 커다란 각오가 필요했다.

그가 말했다.


“우린 당신에게 단순히 제보나 하러 온 게 아니오. 하베스트가 루프리모의 수정을 빼앗아 갔소. 놈을 죽이는 것보다 수정의 탈환이 먼저요.”


그러자 루치페리아의 고개가 우측으로 아주 살짝 기울어졌다.


-젊은 검사여, 어째서 그 두 가지 목적이 상충하리라 생각하는 겁니까? 저에게 그 정도 역량이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까?


“생텀가드의 위상을 비하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소. 다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신중을 기하고 싶을 뿐이오. 게다가, 당신은 요전번에도 제스터라는 악마를 놓치지 않았소?”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당신이 하는 일이 제 임무보다 우선시해야 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녀는 이칼롯의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술술 답변을 토해냈다. 마치 그가 그러한 행동을 하리라 예측하고 있던 것만 같았다. 루치페리아의 태도가 워낙 완강했기 때문에 이칼롯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예 고려조차 하고 있지 않다. 루치페리아가 이칼롯을 상대해주는 이유는 그저 자신의 임무를 속행하기 위함이지, 그와 타협하기 위함이 전혀 아니었다.

그때 잠자코 있던 마리네가 앞으로 나왔다. 정확히는, 에리안델이 그를 이끈 것이었다.


「제가 이야기해보죠. 마리네, 저를 루치페리아의 손에 쥐여 주세요.」


“뭐냐? 마리네.”


“아, 아니...에리안델님이 자기한테 맡겨달라고...”


마리네가 검을 내밀자 루치페리아는 선선히 손잡이를 잡아들었다. 두 사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인 듯했다. 둘의 대화는 무음(無音)으로 진행되었다. 에리안델은 원래 접촉한 사람에게만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고, 루치페리아는 아무런 대답도 않은 채 그녀의 설명을 경청하기만 했다. 일행은 그 어색한 침묵이 끝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이윽고 루치페리아의 손이 움직였다. 그녀는 에리안델의 손잡이를 마리네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지금은 당신의 말대로 해보죠. 에리안델 크류네.


“오오...!”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안도의 탄성을 터뜨렸다. 에리안델이 무슨 조화를 부린 것인지 루치페리아가 수정의 탈환이 먼저라는 의견에 동의해준 것이다. 그녀는 펼쳐놓았던 날개를 갈무리하며 말했다.


-그래서, 제게 무엇을 바라는 것이죠? 젊은 검사여.


“...이칼롯 제르비안이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베스트의 위치, 그리고 필요할 경우 ‘수정의 탈환’을 전제로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오.”


-좋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여전히 제 임무는 악마의 섬멸이고, 저는 제 목적이 충족되는 한도에서만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이칼롯 제르비안.


이칼롯은 싱긋 웃으며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이것으로 겨우 추격을 위한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안개송곳니가 악마를 끌어들인다면, 이쪽도 적극적으로 생텀가드를 활용하면 된다. 생각지도 못한 지원군의 합류에 기사들도 간만에 생기를 되찾았다. 용무가 끝나자 이칼롯은 곧장 발걸음을 돌렸다. 들어올 때나 나갈 때나 일행의 행동력은 거침이 없었다. 베른헬트 주교가 보고를 듣고 헐레벌떡 뛰어왔을 땐 이미 모두 도시를 빠져나간 뒤였다.

로샤단도, 왕실기사단도, 그리고 루치페리아도.




이칼롯의 계획은 이랬다. 하베스트는 일행이 추격해온다는 사실을 모를 테니, 이대로 뒤를 밟아 불시에 습격하는 것이다. 문제는 하베스트의 위치가 꼭 수정의 소재와 직결되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하베스트는 달아날 때 같은 악마인 플라이어의 도움을 받았고, 비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쪽이 수정을 지니고 있을 확률도 높았다.

그의 가설대로라면 루치페리아가 섣불리 하베스트를 쫓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하베스트를 잡는다 하더라도, 수정을 놓치면 모든 게 말짱 헛수고이기 때문이다.


“어떻습니까? 루치페리아.”


-기척은 파악했지만 정확한 좌표를 얻으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립니다. 피의 잔향이 거의 사라졌군요.


루치페리아는 수정을 되찾을 때까지 일행과 함께하기로 했다. 문제는 평소 날아다니는 그녀가 어떻게 일행의 이동속도를 감안해 주느냐인데, 놀랍게도 그녀는 이칼롯의 말에 합석하는 것으로 이를 해결했다. 그녀는 옆으로 앉은 다소곳한 자세로 하베스트의 위치를 추적하는 데에 주력했다. 석고상이 말안장 위에 앉아 균형을 지탱하는 광경은 상상만큼이나 이질적이었다. 수채화에 갑자기 목탄화를 삽입한 것 같다랄까? 현실감 없는 풍경에 기사들은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는 듯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어쨌든 귀대하면 안줏거리 하나는 마를 날이 없겠구만.”


란돌이 피곤한 기척을 애써 지우며 웃었다. 비단 그만이 아니라 따라오는 기사들은 모두 며칠째 휴식을 취하지 못해 초췌한 얼굴이었다. 류이덴사에 도착해 간만에 문명의 냄새를 느꼈는데, 채 벽난로의 온기를 맛보기도 전에 다시 황야로 돌아온 것이다. 이칼롯도 내색하진 않았지만 점점 축적되어가는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잠을 설쳐가면서도 움직여야 하는 이유는 자명했다. 여기서 좀 더 시간을 지체했다간 수정의 행방은 영영 묘연해지고 말 것이다. 기사들도 그걸 알기에 아무런 불평 없이 묵묵히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을 달려왔을까. 루치페리아가 가리키는 진로는 류이덴사를 중심으로 남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아무리 흑연기사단이 철수했다고는 해도 여전히 근방에는 아스트리카의 정찰대가 돌아다니고 있는 상황이었다. 기사들은 혹 적을 만나지는 않을까 긴장하여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루치페리아가 손을 들어 행렬을 정지시켰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는 이칼롯에게 말했다.


-위치 포착했습니다. 지금 속도를 유지한다면 한 시간 후에 조우하게 될 겁니다.


“후우, 겨우 찾았군. 적은 하베스트 뿐이오?”


-아니오. 하베스트를 포함 도합 25기의 슬러터를 감지했습니다.


“....음?”


그녀의 어조가 워낙 무미건조했기 때문에 이칼롯도 처음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기사들도 서로를 응시하며 멍청하게 눈만 말똥거렸다. 현실감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뜸들인 시간만큼이나 커다랗게 증폭되어 되돌아왔다.


“내가...뭐 잘못 들은 건가? 25라고 한 거 같은데.”


“...나도 그렇게 들었는데. 크로이체르 경?”


“.....”


란돌은 손으로 입을 가려 일그러지는 표정을 감추는 한편, 재빨리 눈동자를 굴려 이칼롯의 변화를 확인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도 무표정이라니, 아니 ‘경악한 무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확실히 동공은 평소보다 커진 느낌이었다. 그는 동요하는 기사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지금 슬러터 25마리라고 하셨습니까? 레이디 루치페리아.”


-그렇습니다.


“...하아, 그렇다고 하시는데 말입니다.”


평정을 가장했을 뿐이지 이칼롯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슬러터급 악마가 스물다섯이라니! 현실감이 없어 몸이 공중에 붕 뜬 느낌이었다. 라키시아 궁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때가 슬러터 셋, 이번에 제르칸트를 만났을 때가 슬러터 넷이었다. 안개송곳니와 악마 사이의 갈등이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던 것을 생각하면, 일행은 슬러터 넷을 상대로도 전력 면에서 뒤쳐졌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난데없이 스물다섯의 악마라니, 차라리 군대와 맞닥뜨렸다고 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갈피를 잡지 못해 가벼운 공황상태에 빠져 있을 즈음이었다. 잠자코 있던 루치페리아가 불현듯 일행을 제지하며 말했다.


-잠깐. 지금 적이 두 패로 나누어졌습니다. 하베스트가 이끄는 13기의 악마는 북동쪽으로, 나머지 12기는 예정대로 남동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전력을...둘로 나누었다?”


의외의 상황에 일행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전력을 분산시켰다는 건 슬러터를 스물다섯이나 규합한 게 단순히 수정을 사수하기 위함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어찌 됐든 병력이 양분되었다는 점은 가뜩이나 열세인 일행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물론, 반으로 나누었다고 만만히 볼 상황은 결코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 수정은 어느 쪽에 있는 거죠?”


골치 아픈 문제였다. 정황상 하베스트가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지만, 남동쪽으로 간 무리가 소유하고 있을 확률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지만, 어느 쪽도 가지고 있지 않을 확률도 있었다. 이칼롯은 일단 둘 중 한쪽이 수정을 지니고 있으리라 전제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루치페리아를 바라보았으나 그녀는 딱 잘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게 아루의 수정을 탐지하는 능력은 없습니다.


그럼 이제부터의 대응이 문제였다. 병력을 둘로 나눠 추격하느냐, 아니면 때려 박기로 한쪽에 집중하느냐다. 여기선 의외로 루치페리아가 먼저 의견을 제시했다.


-제가 하베스트 쪽을 쫓기로 하죠. 당신들은 나머지 무리를 따라가도록 하십시오.“


“에, 괜찮겠습니까?”


-수정의 확보를 최우선으로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길.


란돌의 염려는 혼자서 슬러터 열셋을 상대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지만, 그녀가 워낙 대단찮게 넘겼기에 그도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말에서 내린 루치페리아는 날개를 활짝 펼치고서 날아오를 준비를 했다. 한편 그녀는 멀찍이 떨어진 마리네를 향해 말했다.


-잊을 뻔했군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에리안델을 잠시 제게 맡겨주십시오.


마리네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에리안델도 군소리 없이 승낙한 것인지 그는 곧장 검을 루치페리아에게 넘겼다. 루치페리아는 검을 받자마자 마리네의 손가락을 살짝 그었다. 피 한 방울이 주르륵 에리안델의 검면 위로 흘러내렸다.


-제 감지능력은 악마에 한정됩니다. 그러나 이제 에리안델이 당신의 정보를 기억했으니, 하베스트 쪽이 처리되는 대로 곧장 당신에게 날아가겠습니다.


“아...네.”


단순무식하게까지 보이던 기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루치페리아는 나름 치밀한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에 반해 별생각 없이 뒤꽁무니만 따라오던 자신이 부끄러워져 마리네는 말끝을 흐렸다. 이야기가 끝나자 루치페리아는 수직으로 높이 도약했다. 태양을 등진 그녀의 날개가 어두운 빛으로 번쩍거렸다.


-아무쪼록 하베스트가 수정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야겠군요. 만약 아니라면, 아루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그 말을 끝으로 루치페리아는 훌쩍 날아가 버렸다. 사람들은 점점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듯 한 기사가 운을 뗐다.


“그런데 수정이 우리 쪽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야 루치페리아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겠지. 흠...그건 그렇고...”


심드렁하게 답하던 란돌의 고개가 일순 기울어졌다. 그는 다시 말에 올라타며 말했다.


“여기서 남동쪽이라면 작은 영지가 하나 있지 않나? 아스트론사? 아스텐사? 뭐 그런 이름이었을 텐데.”



***



아스트론사는 영지라고 하기엔 규모가 작고, 그렇다고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갖춰질 것은 다 갖춰진 그런 단출한 곳이었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데다 중부를 관통하는 도로가 뚫린 이후로는 행상인의 발길이 뜸해져 멀리서 보아도 한적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전략적인 가치 또한 떨어져 그 덕에 흑연기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다. 영지민들은 스벤달이 북상할 때는 대부분 산골로 피난을 떠나 있었으나, 흑연기사단이 패퇴한 지금은 영지로 돌아와 일상을 영위해가는 중이었다.


“설마....제르비안 경?”


란돌은 불안한 눈빛으로 이칼롯을 바라보았다. 12마리의 슬러터가 영지로 숨어들었다면, 지금까지 경험했던 악마들의 행동양식으로 볼 때 대학살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이칼롯은 대답 대신 눈두덩을 꾹꾹 누르며 안경을 란돌에게 넘겼다. 별생각 없이 안경을 받아 쓴 그는 일순 망막에 쏟아지는 빛줄기에 흠칫 신음을 흘렸다.


“...확실하군요.”


악마식별의 안경은 슬러터 12마리의 정보를 빠짐없이 표시하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정보량이 너무 지나쳐 앞을 제대로 보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멀리 아스트론사의 목재성곽이 눈에 들어왔다. 대리석을 구할 자금도 모자라 그야말로 치안을 유지할 정도로만 목책을 세워둔 것이다. 일행은 악마들이 혹시 영지에서 난동을 부린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그런데 점점 가까이 가고 있자니 망루 위로 병사들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병사들은 화톳불에 찻주전자까지 얹어 놓고는 제법 여유 있게 경계를 즐기고 있었다.

이칼롯은 혹시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다시 안경을 확인했다. 그러나 안경이 가리키는 빛은 확실히 영지 안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체를 숨기고 있나...”


기이하게도 악마들은 아스트론사 내에서 얌전히 머무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성문 밖으로 깔깔대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히려 작위적으로 느껴져 일행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단...들어가 보죠.”


간단한 출입절차를 끝내고서 일행은 영지 안쪽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악마들에게 근접해갈수록 모여드는 인파는 더욱 많아져 갔다. 아마 새해를 맞아 장날이 열린 모양이었다. 분주하게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전쟁의 근심 같은 건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왠지 마리네는 그들과 같은 거리를 걷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정상이고, 언제나 사선에 서 있는 자신이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는 서럽게도 쾌청했다. 지난 한 달간 휘몰아친 한파는 서서히 잦아들어가고 있었다.


“...음식점?”


이칼롯은 한 식당 앞에서 멈춰 섰다. 안경이 가리키는 위치는 이곳이었다. 이 안에 슬러터가 12마리나 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일단 그는 식당에서 떨어진 골목가로 일행을 데려갔다. 현재로선 악마들보다 중무장을 한 일행이 더 주민들의 시선을 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했다.


“아직 저쪽은 우리의 존재를 모릅니다. 또한 정황으로 보아 행패를 부리러 온 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일단...들키지 않게 탐색해봅시다.”


만약 일행의 정체가 탄로난다면 악마들은 즉각 난동을 부리거나, 아니면 멀리 달아나버릴 것이다. 일행의 상태로는 슬러터의 기동력을 따라잡을 수 없을 테니, 지금이 수정을 탈환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도 볼 수 있었다.

20명이나 되는 인원이 들어갔다간 당연히 들통 날 테니 일행은 따로 4인의 탐색대를 선발했다. 탐색대는 란돌을 포함한 3인의 왕실기사단과 마리네로 이루어졌다. 이칼롯은 얼굴이 너무 팔렸으므로 순위에서 제외되었다. 탐색대는 여행복 차림으로 복장을 전환한 뒤 최대한 자연스럽게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머지 인원들은 각자 주변에 엄폐한 형태로 탐색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아아, 배고프군. 주인장! 여기 식사 좀 차려주시오.”


란돌은 제법 그럴듯하게 너스레를 떨었다. 식당에는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마리네는 그 북적이는 인파 사이에서 재빨리 악마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


굳이 안경이 없어도 악마를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았다. 녀석들은 테이블 3개를 합쳐 12명이 빙 둘러앉은 형태로 허겁지겁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후드를 푹 눌러쓴 남자들이 양다리며 내장요리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모습은 손님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으나, 굳이 말을 걸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특유의 이질감 때문이었다. 한편 악마들 역시 웬만해서는 인간과 접촉하려 하지 않았다.


“어, 저기 자리가 있군. 저기 앉자고.”


가리키는 란돌의 손가락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그는 실로 대담하게도, 악마들의 바로 맞은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마리네도 자연스럽게 그의 옆자리에 앉으려고 발걸음을 뗐다. 그런데 그 순간, 악마 중 하나가 그와 정확히 눈이 마주쳤다. 마리네는 식겁하여 시선을 피하려 했다.


“음...”


그런데 특이하게도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악마 쪽이었다. 그는 마리네의 시선이 불편한지 고개를 푹 숙이고서 뼈다귀만 씹어댔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마리네의 눈에는 그가 마치 ‘쫄아버린’ 것처럼 보였다.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다른 악마들도 고개를 숙인 채 웬만해선 타인과 눈을 마주치려 들지 않았다. 조금 전 급사가 실수하여 소스를 흘렸을 때에도 그들은 오히려 쭈뼛거리며 ‘괜찮다’는 말만 연거푸 내뱉을 뿐이었다. 단순히 행동으로만 보자면 그들은 대단히 모범적인 손님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들을 저어하는 까닭은, 그들이 보여주는 비정상적인 식성 때문이었다. 이미 일행이 당도하기 전부터 음식을 먹어치우고 있던 것인지, 놈들의 테이블 가장자리에는 이미 빈 접시가 그득하게 쌓여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악마들은 끊임없이 음식을 주문했다. 구운 새끼양이 식탁 위에 놓이자마자 몇 초 만에 사라지는 것을 보며 마리네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저기요, 저 사람들 돈은 내고 저렇게 먹는 건가요?”


지나가던 급사에게 조용히 묻자 그녀는 생긋 미소 지으며 답했다.


“네. 추가 주문을 할 때마다 선금을 지급해주고 계세요. 어찌나 식성들이 대단하신지, 사람이 아닌 것 같다니까요.”


마지막 어구에 뜨끔하여 마리네는 재빨리 급사를 돌려보냈다. 짐짓 눈치를 살피자 악마들도 대화를 엿들은 것인지 먹는 속도가 한결 느려진 게 보였다.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온 것일까. 그들은 눈치를 받으면서도 꾸준히 음식을 먹어치우는 데에 집중했다.

일행은 차분히 악마의 동태를 살폈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놈들이 루프리모의 수정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워낙 후드와 망토로 몸을 가리고 있어 소지품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계속 곁눈질을 하고 있자니 몇몇 악마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야 좀 살겠군. 역시 고기는 따뜻하게 구운 게 맛있어.”


“....난 날것도 괜찮은데.”


“흐흐...그건 그거고. 난 입맛이 완전히 변해 버렸거든.”


“나, 난 역시 좀 불안해. 아무리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라지만 인간 도시 한복판에 들어오다니.”


“...마음 편하게 먹으라고. 이대로 조용히 있으면 정체를 들킬 염려는 없어.”


생각대로 놈들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모양이었다. 그 외에는 식성이나 음식의 기호 따위를 따지는, 그야말로 평범한 잡담에 불과했다. 란돌은 악마식별의 안경으로 대화를 주도해나가는 악마 셋을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그레이브 디거(Grave Digger), 섀도우 워커(Shadow Walker), 스팅(Sting)...이름과 전투방식이 연관되어 있다고 했었던가.’


그사이 일행의 테이블에도 요리가 놓였다. 그러나 호방하게 음식을 주문하던 때와 달리 일행은 먹는 둥 마는 둥 물만 홀짝거렸다. 포크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조차 도청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레이브 디거와 스팅은 이미 배가 찬 모양인지 더는 음식에 손대지 않았다. 할 일이 없어지자 그들은 나지막한 어조로 대화를 재개했다. 여기에는 일행이 바라는 정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확실한 건가? 하베스트가 말한 거.”


하베스트의 이름이 언급되자 마리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란돌이 옆에서 주의를 주지 않았더라면 그 노골적인 살기에 악마들이 눈치챘을지도 몰랐다. 아닌 게 아니라 스팅이 일행 쪽으로 눈길을 건네는 바람에 란돌은 눈물 나는 연기력으로 음식을 꾸역꾸역 먹어치워야 했다.

두 악마의 대화는 계속됐다.


“솔직히 반신반의하지만...드라칸이 직접 움직이고 있다니 명운을 걸어볼 만 하지. 아루의 수정도 확보했고 말이야.”


“하지만 용케 손에 넣었군그래. 솔직히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기 어려웠을 거야.”


“나도 그래. 여기 모인 건 ‘은둔자’들이니까. 일단 드라칸에게 가져가면 뭔가 수가 나오겠지.”


“...그건 잘 보관하고 있겠지? 자네의 임무가 막중해.”


“걱정하지 말라고. 주머니에 몇 겹으로 싸놓았으니까.”


스팅은 그렇게 말하며 망토를 슬쩍 걷어 허리춤에 메인 물건을 확인시켜주었다. 워낙 소가죽으로 촘촘히 포개놓아 안의 내용물은 파악할 수 없었으나, 희미하게 드러난 둥그스름한 실루엣이 일행의 예감에 확신을 몰고 왔다.

틀림없는 루프리모의 수정이다. 마리네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시선 처리를 했으나 이미 그의 모든 신경은 수정에 쏠려 있었다. 검의 손잡이를 쥐는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짜릿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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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4) +23 15.07.20 1,215 40 11쪽
34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3) +26 15.07.13 1,132 53 16쪽
33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2) +35 15.06.12 1,401 51 11쪽
33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1) +11 15.06.10 1,013 42 11쪽
337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0) +12 15.06.03 1,014 36 19쪽
336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9) +6 15.06.02 1,093 32 17쪽
335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8) +6 15.06.02 953 31 15쪽
334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7) +2 15.06.02 970 27 16쪽
333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6) +3 15.06.02 972 28 20쪽
332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5) +2 15.06.02 925 25 15쪽
33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4) +3 15.06.02 990 25 19쪽
33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3) +7 15.06.01 913 33 18쪽
32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2) +2 15.06.01 930 27 22쪽
32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 +3 15.06.01 878 26 23쪽
327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5) +5 15.05.31 935 29 13쪽
326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4) +1 15.05.31 850 23 19쪽
325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3) +2 15.05.31 918 25 22쪽
324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2) +2 15.05.31 948 24 19쪽
323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1) +1 15.05.31 782 21 20쪽
322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5) +10 15.05.30 980 34 21쪽
321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4) +5 15.05.30 877 26 19쪽
320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3) +6 15.05.27 1,020 30 18쪽
319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2) +2 15.05.27 747 28 15쪽
318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1) +3 15.05.27 769 29 14쪽
317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4) +1 15.05.27 900 26 18쪽
316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3) +8 15.05.26 898 23 27쪽
315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2) +2 15.05.26 773 24 23쪽
314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1) +3 15.05.26 866 20 28쪽
313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5) +2 15.05.26 844 26 21쪽
312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4) +1 15.05.26 892 25 18쪽
311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3) +3 15.05.26 1,089 24 25쪽
310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2) +3 15.05.25 874 25 28쪽
309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1) +2 15.05.25 970 22 18쪽
30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1) +2 15.05.25 725 26 23쪽
307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0) +1 15.05.25 749 20 22쪽
306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9) +1 15.05.25 769 20 14쪽
305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8) +4 15.05.25 806 27 17쪽
304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7) +2 15.05.24 934 26 19쪽
303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6) +3 15.05.24 866 22 13쪽
302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5) +2 15.05.24 943 28 19쪽
301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4) +1 15.05.24 843 21 16쪽
300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3) +2 15.05.24 883 23 24쪽
299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2) +2 15.05.24 1,030 29 18쪽
29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 +2 15.05.24 910 25 21쪽
297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5) +6 15.05.23 1,107 21 29쪽
296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4) +1 15.05.23 846 23 20쪽
295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3) +1 15.05.23 948 22 20쪽
294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2) +3 15.05.23 1,137 20 21쪽
293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1) +2 15.05.23 1,079 27 17쪽
292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3) +3 15.05.23 1,139 25 19쪽
291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2) +10 15.05.21 1,053 28 22쪽
290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1) +2 15.05.21 1,109 26 19쪽
289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6) +2 15.05.21 1,080 26 25쪽
288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6) +3 15.05.21 936 24 27쪽
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2 26 25쪽
286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4) +5 15.05.20 1,017 29 21쪽
285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30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09 24 14쪽
283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3) +1 15.05.20 1,044 27 24쪽
282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2) +3 15.05.20 749 23 19쪽
»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1) +1 15.05.20 993 28 22쪽
280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3) +11 15.05.19 1,011 31 30쪽
279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2) +3 15.05.19 1,224 28 17쪽
278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5) +9 15.05.18 1,137 24 18쪽
277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4) +2 15.05.18 808 24 17쪽
276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3) +4 15.05.18 942 22 24쪽
275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2) +3 15.05.18 931 23 23쪽
274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1) +2 15.05.18 1,029 25 19쪽
273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1) +2 15.05.18 974 22 19쪽
27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3) +1 15.05.18 1,221 25 25쪽
27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2) +2 15.05.17 1,011 29 25쪽
27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1) +1 15.05.17 867 20 22쪽
269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0) +1 15.05.17 966 23 23쪽
268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9) +1 15.05.17 1,039 23 20쪽
267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8) +6 15.05.17 907 25 22쪽
266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7) +5 15.05.16 992 26 22쪽
265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6) +1 15.05.16 887 22 26쪽
264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5) +2 15.05.16 1,030 29 26쪽
263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4) +1 15.05.16 1,001 24 24쪽
26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3) +3 15.05.16 857 23 25쪽
26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2) +2 15.05.16 926 23 26쪽
26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 +3 15.05.16 1,060 31 31쪽
259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6) +8 15.05.14 1,064 29 22쪽
258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5) +7 15.05.14 914 22 11쪽
257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4) +4 15.05.14 1,032 21 20쪽
256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3) +3 15.05.14 894 22 31쪽
255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2) +5 15.05.14 1,000 24 27쪽
254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1) +6 15.05.13 904 24 30쪽
253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0) +3 15.05.13 943 22 24쪽
252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9) +1 15.05.13 995 21 27쪽
251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8) +1 15.05.13 897 18 27쪽
250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7) +4 15.05.12 1,088 26 27쪽
249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6) +5 15.05.12 995 25 27쪽
248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5) +3 15.05.12 1,102 25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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