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조회수 :
358,988
추천수 :
10,757
글자수 :
2,844,987

작성
15.05.12 04:24
조회
1,102
추천
25
글자
28쪽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5)

DUMMY

“자, 잠깐! 당신들 지금 무슨 짓을 벌인 건지 아시오? 이런 때에 적을 도발하면 어쩌자는 거요!”


파블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나 그의 분개는 상황이 거의 정리되어가던 시점에 일어났기 때문에 그저 졸렬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전쟁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쓸데없는 미련을 버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지금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잖소! 당신들이 대체 뭔데 레인스터의 운명을 결정짓느냔 말이오!”


“그 얘기는 어제 이미 끝나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로샤단입니다.”


파블로가 입가에 분노어린 미소를 띠었다. 그에게 있어 로샤단은 그저 국왕의 후광을 등에 업고 날뛰는 무뢰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처음 보는 새파란 것들이 지휘권을 휘두르는 게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뒤늦게 자존심을 세워보려 해도 저울추는 이미 기울어진 뒤였다.


“기가 막히는군! 그래, 이제 어쩔 셈이지? 사흘 후면 흑연기사단이 이곳을 남김없이 쓸어버릴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이곳 수비대와 AOC지원군의 힘을 합치면 왕실기사단이 올 때까지 능히 버틸 수 있을 테니까.”


“적의 수가 자그마치 2만이야! 게다가 놈들은 전쟁이 일상인 진짜 군인들이라고. 그걸 상대로 싸우겠다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파블로의 눈은 이미 분노와 공포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칼롯은 이미 그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그의 아우성은 이내 오갈 곳을 잃고 허공에 흩어져버렸다. 결국 그는 제풀에 지쳐 털썩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기진맥진해 하는 그에게 이칼롯이 말했다.


“이제 준비가 되었습니까 감찰관님?”


“.....”


더 말다툼을 해봤자 체력낭비라는 걸 알았는지 파블로는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일행에겐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이었다. 이칼롯은 각 성문의 수비대장을 호출하는 한편, 접견실에 모인 귀족들에게 단단히 당부를 했다.


“레인스터의 지휘관은 여러분입니다. 병사를 죽이고 살리는 건 모두 지휘관의 역량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이제 책상 위에 앉아있을 시기는 지났습니다. 당장 갑옷을 입고, 성벽 위로 올라가 주십시오.”


그의 호소에 귀족 몇몇이 쭈뼛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바르도와 파블로는 여전히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의자 위에 늘어져 있었다. 이들이 레인스터의 총사령관이라는 사실에 다시금 탈력감이 밀려왔지만, 이칼롯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독촉했다. 결국 레미나까지 가세해 설득한 뒤에야 그들은 주섬주섬 무구를 갖추러 나갔다.


“미치겠구만. 저런 인간들이랑 함께 싸워야 한단 말이야? 차라리 대걸레에 투구를 씌어놓는 게 더 낫겠는데.”


제리온이 멀어져가는 귀족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 접견실에는 자리를 정리하기 위한 병사들도 다수 남아 있었는데, 그들도 제리온의 의견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저 사람들은 정치가지 군인이 아니야. 기사단이 없는 이 지역 특성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아아, 최소한 할라이데 백작님이라도 살아계셨다면...”


레미나는 칙칙해진 공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커튼을 걷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잠시 바람을 쐬며 생각을 정리하던 그녀는, 무심코 내려다본 거리의 풍경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어느새 소문을 들은 시민들이 병사들의 제지도 무시하고 시청 주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레인스터는 어떻게 될까, 또 자신들은 어떻게 될까. 시민들의 눈동자에 스며든 공포는 보이지 않는 화살이 되어 일행의 가슴에 꽂혔다.

그들은 잿빛하늘에서 한 줄기 광명이 내리꽂히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던져진 주사위는 이미 싸우냐 싸우지 않느냐가 아니었다. 지켜내느냐, 아니면 죽느냐일 뿐.

레미나는 그 수백의 시선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절망과 마주한다는 것은 참으로 외로운 일이었다. 곧 시민 중 몇몇이 창가에 선 그녀를 향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굳이 신분을 밝힌 건 아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소녀가 이 나라의 공주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방금 왔다간 기사는 누굽니까?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흑연기사단이 정말 이곳으로 향하고 있는 게 맞습니까?”


“왜 다른 영지의 군대는 안 오는 거죠? 우리는 버림받은 건가요?”


질문이 질문을 낳고, 시민들은 구원을 바라며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들의 외침은 더욱 증폭되어갔다.

레미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에 말했다.


“곧 흑연기사단이 이곳을 공격할 것입니다. 하지만 염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용맹한 리크나이츠의 병사들이 반드시 레인스터를 사수하고 말 테니...”


그러나 술렁이는 소리가 일파만파로 커졌기에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흑연기사단은 어린아이까지 죽이는 잔혹한 놈들이라던데...”


“그, 그럼 이제 전부 끝인가? 아아...!”


“백천기사단도 당해내지 못한 놈들이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어!”


“아루여, 우릴 버리시나이까!”


레미나는 동요하는 시민들을 진정시키려고 원래 크지도 않은 목소리를 최대한 부풀려 외쳤다.


“모두 진정해주세요! 수성을 위해서는 여러분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모두 흥분을 가라앉혀주세요!”


들끓던 분위기가 그녀의 간절한 호소로 잠시나마 안정이 되었다. 그 짧은 정적이 무겁게 레미나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짊어져야 한다니, 이바르도가 우유부단한 행동을 보인 것도 이해가 갔다. 압박감에 턱이 떨려왔지만, 그녀는 차분하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군대의 영역입니다. 민간인들은 내성의 류이너스 신전으로 대피해주시고, 치안대의 안내에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짧게나마 유지되었던 침묵은 건물 밖으로 치렁한 갑옷을 걸친 이바르도가 나오자 일제히 폭발했다. 시민들이 지도부에게 얼마나 깊은 불신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러다 도시가 함락되면 모조리 죽는 거 아니오?! 말해보시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희들의 명령을...”


“젠장, 왕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리크나이츠는 우릴 버렸어!”


“아니 그건...”


시민들의 원성은 더욱 심해져 갔고, 레미나는 그들을 통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성문으로 향하는 이바르도와 파블로의 뒷모습은 마치 달아나는 것처럼 비추어졌다.

결국 시민들의 행렬은 소식을 듣고 출동한 경비대에 의해 해산되고 말았다. 손목을 붙잡힌 채, 혹은 등 떠밀려 사라져가는 그들을 레미나는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소동이 일단락되자 제리온이 혀를 차며 말했다.


“이거 정말 갈수록 가관이네. 우리 말고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작자가 아무도 없어.”


“중과부적의 현실이다. 스벤달의 공포전략도 먹혀들어간 모양이고.”


“젠장, 이대론 하루라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인데. AOC지원군은 언제 오는 거야.”


“후우, 내일까지 지켜봐야겠지. 루비크와 델키아는 우선 응답을 보내왔고.”


일행은 밖으로 나가 잠시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가로수 길을 거닐었다. 일단 싸우기 위한 판을 만들어는 놨는데, 병사며 시민들의 항전의지가 형편없다 보니 일행도 맥이 빠졌다. 유미르네는 성벽 위를 순찰하는 위병의 힘없는 걸음걸이를 보곤 이렇게 평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엔 몇 가지가 필요하지. 지휘관의 뛰어난 통솔력, 군대의 양적, 질적 우위, 그리고 사기. 그런데 이 도시는 어느 것 하나 갖추질 못했네. 용병출신으로서 말하는 건데...”


“...이 도시는 뭐.”


“호호, 보채긴. 이건 절대 못 이겨. 일찌감치 도망칠 준비나 하는 게 어때?”


유미르네는 죽일 듯이 노려보는 제리온의 시선을 가볍게 회피했다. 그녀의 평가는 정확했고, 그래서 더욱 우울했다. 객관적인 지표로 보아도 레인스터가 수성에 성공할 확률은 희박했다. 다만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기에 이리 매달리는 것일 뿐.

약 2천의 병사 중 실전경험이 있는 이는 절반에 불과하다. 또한 이마저도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기사에 비하면 전투력 면에서도 턱없이 모자란다. 반면 흑연기사단의 전력은 2만5천. 일반 전투병을 제외한 정식기사의 숫자만 세어 봐도 레인스터 군대와 맞먹는다.

수적 열세를 만회하려면 인접 영지에서 지원군이 오던지, 아니면 레인스터 내에서 자체적으로 병사를 차출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강제징용은, 바닥까지 떨어진 사기를 고려할 때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수 있었다. 이제 와 훈련시킬 시간도 없을뿐더러, 전투 시에 어설픈 행동으로 동료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있는 병력과, AOC의 뜻을 보인 루비크, 델키아의 지원군과 합세해 적을 막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영지의 군대가 참전한다면 방어군은 3천 정도로 불어나겠지만, 그래도 압도적인 수적 열세임에는 변함없었다.


“이기는 게 아니야. 버티는 거라고. 딱 며칠만 버티면 왕실기사단이 도착할 테니까.”


“그 며칠 참 눈부시게 아름답겠네.”


일행은 그대로 아나이스의 식당에 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후에는 각자 장비를 점검하고 성곽을 둘러보고 나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그사이 루도와 디리터는 카이안의 집에 들러 안전을 당부했다. 크리드는 싸울만한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그는 신전으로 대피하길 거부하고 자택에 남기로 결심했다. 지붕에 깔려 죽을지언정 계집애처럼 숨어 웅크리고 있긴 싫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물론, 카이안은 크리드와 함께 있기로 했다.


“로샤단도...싸우는 거야? 혹시 나 때문에...”


“그런 거 아니니 걱정 마셔. 애초에 우리는 군인이고, 참전하는 게 당연해.”


“...미안해.”


카이안은 자신 때문에 일이 틀어졌다는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애초에 로샤단은 레인스터에 올 일도 없었으니까. 일행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뿐이지 카이안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충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죄스러운 감정이 그를 괴롭혔다.

루도가 잠시 안젤리카의 영정을 보러 자리를 비우자, 거실에는 카이안과 디리터 둘만이 남게 되었다. 그는 심드렁하게 과일을 씹는 디리터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이래서 혼자 오려고 한 건데.”


“자꾸 그러네. 신경 쓰지 말라니까.”


디리터는 그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일부러 대수롭지 않은 척했다. 그러나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려는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카이안의 얼굴은 차츰 우수에 젖어갔다. 내리깐 시선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새기는 듯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요? 그때 전 복사(Acolyte)였잖아요.”


“음, 그랬던가?”


“복사는요, 신앙 깊은 가문의 자제도 있지만, 보통은 오갈 곳 없는 고아들을 신전에서 거둬들이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그런 경우였고.”


진중한 어조로 보나 표정으로 보나 가볍게 맞장구칠 만한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디리터는 씹고 있던 복숭아를 얼른 삼키고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카이안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사생아부터 해서 전쟁고아까지...정말 가진 건 아무것도 없는 아이들이었죠. 저 역시 그랬지만...하지만 날 때부터 천애고아였던 건 아니었어요. 제가 친가족 이야기를 했던가요?”


“아니.”


“잘 기억도 안 나는 어릴 때지만요, 제 부모님은 식당에서 술과 음식을 파는 분들이었어요. 전 그때 막 젖을 뗀 유아였고...저보다 한 터울 위인 누나가 있었죠.”


카이안은 턱을 괴던 손을 위로 올려 입을 가렸다. 그것은 잘 떠오르지도 않는 기억에 복받쳐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자신의 기구한 운명이 한스럽기 때문이었다. 디리터는 장단을 치기보단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가족이 있었다, 옛날에는. 그 뒤에 나올 말은 뻔했다.


“그런데 전쟁이 나 저를 빼고 모두 죽어버렸죠. 부모님이 죽자 누나가 어린 저를 안고 뛰었는데...아직도 기억이 나요. 누나라고 해봤자 열 살도 안 되었을 텐데도 절 보호하겠다고 군인들을 피해 요리조리 도망 다녔죠. 그러다가 뭔가 충격을 받아 전 기절했고, 눈을 떴을 땐 베른헬트 주교님과 데루루피아님이 곁에 있었어요. 주교님은 제 가족에 대해 아무 말도 해주시지 않았죠. 그때 어렴풋이 눈치챘기에, 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요.”


멀리 일몰을 알리는 뿔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어딘가 급히 달려가는 말발굽 소리도 슬쩍 열린 창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이제 곧 저녁, 힘들었던 하루도 어떻게든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이었다. 하인 하나가 홍차를 내와 두 사람 앞에 내려놓았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위로 일몰의 빛줄기가 쏟아졌다.


“하지만 저는...미련이 있었다기보다는...그냥 명확히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카데미에 입학하자마자 자료를 뒤졌죠. 전쟁 중에 민간인이 몰살되었던 사례, 그중에 제 나이를 첨가하여 살펴보니 금방 답이 나오더라고요. 마드리고 탈환전. 공성전 당시 도시에 심각한 전염병이 돌아, 어쩔 수 없이 주민들을 몰살시켰다고 하더군요. 전 제 고향이 마드리고인지도 그때 처음 알았어요. 살아남은 사람은 저를 포함해 극소수에 불과했던 모양이고.”


“마드리고...!”


디리터는 다소 놀란 표정이 되었다. 마드리고, 전염병, 학살. 아버지인 케셔가 해주었던 이야기와 겹치지 않는가. 그럼 케셔는 가해자인 셈이고, 카이안은 피해자인 셈이 된다. 하지만 디리터는 굳이 이 이야기를 입 밖에 내놓진 않았다. 이제 와선 어차피 땅속에 묻힌 과거가 아니던가. 카이안 역시 마드리고 사건에 대해 관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전 아직도 저를 감싸주던 누나의 뒷모습을 잊지 못해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지만...진짜 가족이란 그런 거겠죠. 정말 너무도 사랑해서 자기 안위 따위 뒷전이 되어버리는...죽을 줄 알면서도.”


“옳은 말이야.”


“루시올라 가문 역시 제게 그런 존재에요. 비록 친부모는 아니지만, 저분들은 양자로 들어온 저를 따뜻하게 보살펴 주셨어요. 그러니까 저는...절대 아버지를 버릴 수 없어요. 죽는 한이 있어도 함께 있을 거예요.”


지금껏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과거사였다. 디리터는 오직 긍정의 반응만을 보이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딱히 당부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카이안은 그가 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대화를 끝마치자 두 사람 사이엔 묘한 유대감이 형성되었다.


“가족과 함께 있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카이안, 네가 루시올라 경을 생각하듯이, 네가 죽으면 슬퍼할 사람도 있다는 걸 잊지 마.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알고 있어요. 로샤단과 만난 건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이니까요.”


카이안은 멋쩍게 웃었다. 피차 익숙하지 않은 대화를 나누어서일까, 두 사람은 곧 말없이 찻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루도가 거실로 돌아온 것도 그즈음이었다.

기울어져 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들은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해가 일찍 떨어지는 계절이라 아직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그런데 외투를 주섬주섬 챙기고 있자니, 창문 틈새로 뱀 한 마리가 날아(!)들어왔다.


“루도, 디리터! 여기 있었군요.”


그들은 곧 뱀의 정체가 레미나의 일루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뱀은 창가에 몸을 세운 채 다급하게 말했다.


“어서 시청으로 와요. 큰일 났다고요.”


“큰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정찰나간 병사가 돌아왔는데...아 일단 빨리 와!”


그 말을 끝으로 뱀은 스르륵 허공에 흩어져 버렸다. 루도와 디리터는 얼떨떨한 얼굴로 뱀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일루전을 만들어 보낼 정도면 그녀가 직접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이렇게 다급하게 메시지를 전한다는 건 필시 좋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었다.

둘은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카이안이 걱정스럽게 쳐다보자 루도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집에서 나오지 말고 기다려. 별일 아닐 거야.”


카이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곧장 행정지구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겨울의 거리에는 잿가루만이 흩날리고 있었다.


***


두 사람이 도착했을 땐 이미 전령의 보고가 끝난 뒤였다. 집무실 안에서는 막 제리온이 병사의 멱살을 붙잡고 성질을 내고 있었다.


“빌어먹을, 웃기지 말라고! 이제 와 지원군을 보내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돼?!”


몹시 분노한 까닭인지 그의 목소리는 매우 격앙되어 있었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두 사람은 일단 제리온을 말리고 나섰다. 그런데 막상 그를 떼어놓고 보니, 맞은편 병사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얼빠진 얼굴로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루도는 아직 아무것도 듣지 않았는데도 현기증이 이는 것을 느꼈다.

비단 병사뿐만이 아니라, 이바르도와 파블로, 여타 귀족들, 심지어 레미나와 마리네까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특히 이바르도는 장착한 체인메일이 무색하게 어깨를 덜덜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그의 질문에 제리온은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이칼롯이 그를 제지시키고는 말했다.


“에닌샤와 아르카디아가 지원군 요청을 거부했다. 영지 내적인 문제로 병력을 보낼 수가 없다는군.”


“뭐?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그리고 루비크는 영주인 베레나스 자작이 암살되어 지원군 편성에 차질이 생겼다는 서신을 보내왔다. 아무래도 최소 닷새는 걸릴 모양이고.”


“....”


충격적인 비보였다. 애초에 AOC를 기대했던 다섯 영지 중 세 곳이 불참의사를 밝힌 것이다. 물론 전쟁이라는 게 하고 싶지 않다고 빠지는 그런 간단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건, 역시 안개송곳니의 공작이 있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특히 루비크 영주의 암살건은 결정타였다.


“영지 셋이 빠지면 이쪽 전력은 반 토막이 나버린다고, 젠장! 대체 어떻게 되어처먹은 거야!”


제리온은 분노와 당혹감을 이기지 못해 연방 욕설을 내뱉었다. 빠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문밖의 병사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지원군의 부재는 단순히 사기 문제를 떠나 전술 자체에 차질을 몰고 왔다. 수성군의 편성은 AOC지원군이 도착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짜여져 있었기 때문에, 이제 그 편재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즉 원래 레인스터 수비대가 남문을 방어하고, 루비크나 에닌샤의 지원군이 서문과 동문을 담당할 예정이었다면, 이제는 얼마 안 되는 남문의 병사를 쪼개고 쪼개 각 구역에 보내야 할 판이었다. 물론 병력의 분산이 전투력의 감소를 불러올 것은 뻔했다.


“...급한 대로 보급대의 인원을 전선으로 돌리는 수밖에 없겠네요. 또한 병력교대는 최소화시키고 그러자면...”


레미나는 암운 속에서도 어떻게든 타개책을 마련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갑주를 걸친 기사 하나가 헐레벌떡 집무실 안으로 뛰어왔다. 먼 길을 달려왔는지 그는 온몸이 땀투성이였고, 갑옷에는 흙먼지가 뿌옇게 묻어 있었다. 기사는 집무실을 가득 메운 인원에 흠칫 놀랐으나, 곧 경례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보고입니다! 흑연기사단의 본대는 사흘 뒤에 이곳에 도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기사는 보고하다 말고 말을 어물거렸다. 파블로가 그를 재촉했다.


“그리고 뭔가? 어서 말해보게.”


“그...흑연기사단은 바로 어제 별동대를 편성해 북동방면으로 파견했습니다. 그 수는 대략 2천 정도고, 확실하진 않지만 목적지는 아마 델키아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니...델키아?”


루도는 순간 온몸에 한기가 이는 것을 느꼈다. 병력을 분산시킨 이유는 레인스터를 구원하기 위해 몰려드는 부대를 각개격파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델키아라니, 왜 하필 델키아인가? 지원을 거부한 에닌샤, 아르카디아나 출발이 늦어지는 루비크는 방치한 채로? 답은 뻔하다. 스벤달은 일이 이렇게 되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개전까지 사흘이 남은 이 시점에서, AOC는 완벽히 차단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는 레인스터 단독으로 흑연기사단의 맹공을 받아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악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비보에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다른 병사 하나가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차디차게 냉각된 집무실의 분위기에 한번, 그리고 자기보다 먼저 보고를 하러 온 전령이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는 먼저 온 기사 옆에 서며 말했다.


“보, 보고입니다. 왕실기사단으로부터 서신이 도착했는데...”


제리온이 낚아채듯이 병사로부터 서신을 건네받았다. 절차상으로는 이바르도나 레미나에게 먼저 보여주는 게 맞지만, 그는 그런 것 따위 가볍게 무시하고는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제기라알!!”


그러나 채 절반도 읽지 않아 그는 성질을 내며 편지를 구겨버렸다. 그리고는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걷어찼는데, 밀려 나온 의자를 이칼롯이 말없이 일으켜 세웠다.

레미나가 재빨리 구겨진 편지를 펴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분노한 제리온과 달리 그녀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렸다.


“왕실기사단이...발목을 붙잡혔다고...”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왕실기사단은 국왕의 명을 받고 곧장 북상하는 중이었는데, 집요하게 따라온 아스트리카 유격대에 의해 보급대가 습격당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적어도 3~4일 정도는 행군에 차질이 있을 것 같다는, 실로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일주일, 아니 정말 늦는다면 열흘도 넘게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 도시를 사수해낼 수 있을까? AOC의 지원도 없이?

희망은 사라지고, 좌절과 절망만이 남았다. 그나마 있던 항전의지마저 사라진 듯, 귀족들은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워낙 분위기 자체가 침체되어있다 보니 고무적인 한 마디조차 나오지 않았다.


“뭐, 이런 거지. 끝났네.”


유미르네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비단 그녀뿐 아니라 레미나와 이칼롯까지도 굳은 얼굴이 되어 마땅히 입을 열 구실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합리적인 사람일수록 ‘가능성’이란 단어에서 눈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이대로는 이기지 못한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항복하든지, 아니면 도시를 버리든지의 선택뿐이었다. 심지어 도주를 종용하는 유미르네의 제안은 달콤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그때 제리온이 왕실기사단의 편지를 집어들었다. 그는 그것을 4조각으로 쭉쭉 찢고는, 창밖으로 집어던진 후에 말했다.


“좋아, 해보지 뭐.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버텨봅시다.”


가장 격하게 분노한 것도 그였지만, 가장 먼저 평정을 되찾은 것도 그였다. 그는 이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 마치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 꿋꿋이 항전을 주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주장이 허황되다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파블로가 말했다.


“지원군 없인 힘드오. 하물며 왕실기사단의 도착도 늦어진다고 하니...”


“없으면 없는 데로 하는 거지, 별수 있나.”


“이보시오 당신! 젊어서 뭘 모르는 모양인데, 전쟁이란 그리 만만한 게 아니오!”


“그야 그럴지도...그런데 감찰관 나리, 지금 싸우는 것 말고 뾰족한 수가 있나?”


“항전은 무의미하니, 항복하는 게 낫지 않소!”


“사절에게 행패부린 건 어떻게 하려고? 스벤달이 그리 유순한 작자는 아닌데.”


파블로는 이를 갈았으나 뾰족이 반박할 수단을 찾지 못했다. 제리온의 말마따나 일은 이미 벌어졌다. 흑연기사단의 사절을 감금한 시점에서 이미 항복은 물 건너간 것이다. 다만 일이 이렇게 틀어질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뿐.

승산이 낮아졌지만, 그래도 싸울 수밖에 없다. 그게 현실이었다. 그나마 제리온의 발언 덕에 침체되어 있던 공기가 조금은 활기를 띠었다. 레미나는 움츠러든 어깨를 애써 추스르고는 말했다.


“일단 이 일은 병사들에게는 비밀로 하죠. 괜히 혼란을 가중시킬 지도 모르니...”


“하오나 공주님, 적은 이제 이틀 안팎이면 도착합니다. 당장 내일만 되어도 병사들에게 소문이 퍼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일단 전투준비는 예정대로 진행하고, 장교들은 병사들이 동요하지 않게 힘써주세요. 그리고...그리고...”


뭔가 더 지시를 내리고 싶은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전쟁에 관한 지식도, 또 이런 상황을 접해본 적도 없는 그녀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낮에 보았던 시민들의 공포에 질린 표정이 떠오르자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결국 혼란에 빠진 그녀를 대신해 이칼롯과 제리온이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지금은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을 것 같으니 자리를 파하고 두 시간 뒤에 모이도록 하지요. 그럼...”


일행은 재빨리 레미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루도가 그녀를 이끌었는데, 붙잡은 어깨가 심하게 떨리고 있어 그는 화들짝 놀랐다. 그만큼 그녀가 느낀 충격이 크다는 뜻이었다.


일행이 퇴장하자 이에 발맞추어 다른 귀족들도 집무실을 떠났다. 누군가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는 가족에게 알리기 위해.

그러나 이바르도와 파블로, 그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집무실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해가 져 실루엣만 간신히 보이는 상황인데도 촛불 하나 켜지 않은 채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그들은 로샤단과는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었다.


“지, 진심이시오 감찰관? 어찌 감히...!”


파블로가 진저리치는 이바르도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그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 거듭 확인한 뒤에 말했다.


“이보시오, 상회장, 난 지금 현실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오. 당신은 정말 레인스터가 수성에 성공할 거라고 보오?”


“아니...그래도 어떻게...”


“AOC가 전부 왔어도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소. 그런데 머저리 공주랑 어디서 굴러 왔는지도 모를 잡배들이 일을 망쳐놓았소. 덕분에 우리 꼴이 이게 뭐요?”


“.....”


이바르도는 힘없이 손을 내렸다. 파블로는 그것을 긍정의 뜻으로 알고는 거듭 힘을 주어 말했다. 어둠 속에서 입맛을 다시는 그의 얼굴은 뱀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여기 있다간 결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그렇다면 답은 하나지 않소?”


모아 쥔 그의 주먹에 핏줄이 솟았다. 이바르도는 그가 이미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도 못했다.


이후 이칼롯의 주재하에 심야회의가 소집되었지만, 딱히 획기적인 전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현상황에서 자리를 파하는 것도 죄스러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모인 이들은 지지부진한 논의만을 계속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 루도는 기나긴 회의를 끝마치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어디선가 거리를 지나는 인기척이 끊임없이 느껴졌지만, 쌓인 피로는 창밖을 살펴볼 기력마저도 누그러뜨리게 하였다. 별 일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킨 채, 그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람의 계승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일러스트를 받았습니다! +7 15.07.26 1,297 0 -
공지 세계관 - 데루루피아의 편지 +7 15.03.22 3,315 0 -
345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4) +104 15.09.01 2,318 49 24쪽
344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3) +15 15.08.20 1,059 26 20쪽
343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2) +11 15.08.09 1,066 35 23쪽
342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1) +11 15.07.26 1,181 39 22쪽
34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4) +23 15.07.20 1,215 40 11쪽
34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3) +26 15.07.13 1,132 53 16쪽
33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2) +35 15.06.12 1,401 51 11쪽
33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1) +11 15.06.10 1,013 42 11쪽
337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0) +12 15.06.03 1,014 36 19쪽
336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9) +6 15.06.02 1,093 32 17쪽
335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8) +6 15.06.02 953 31 15쪽
334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7) +2 15.06.02 970 27 16쪽
333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6) +3 15.06.02 973 28 20쪽
332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5) +2 15.06.02 925 25 15쪽
33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4) +3 15.06.02 990 25 19쪽
33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3) +7 15.06.01 913 33 18쪽
32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2) +2 15.06.01 930 27 22쪽
32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 +3 15.06.01 878 26 23쪽
327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5) +5 15.05.31 935 29 13쪽
326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4) +1 15.05.31 850 23 19쪽
325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3) +2 15.05.31 918 25 22쪽
324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2) +2 15.05.31 948 24 19쪽
323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1) +1 15.05.31 782 21 20쪽
322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5) +10 15.05.30 980 34 21쪽
321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4) +5 15.05.30 877 26 19쪽
320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3) +6 15.05.27 1,021 30 18쪽
319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2) +2 15.05.27 747 28 15쪽
318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1) +3 15.05.27 769 29 14쪽
317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4) +1 15.05.27 900 26 18쪽
316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3) +8 15.05.26 898 23 27쪽
315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2) +2 15.05.26 773 24 23쪽
314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1) +3 15.05.26 866 20 28쪽
313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5) +2 15.05.26 844 26 21쪽
312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4) +1 15.05.26 892 25 18쪽
311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3) +3 15.05.26 1,089 24 25쪽
310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2) +3 15.05.25 874 25 28쪽
309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1) +2 15.05.25 970 22 18쪽
30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1) +2 15.05.25 725 26 23쪽
307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0) +1 15.05.25 749 20 22쪽
306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9) +1 15.05.25 769 20 14쪽
305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8) +4 15.05.25 806 27 17쪽
304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7) +2 15.05.24 935 26 19쪽
303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6) +3 15.05.24 866 22 13쪽
302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5) +2 15.05.24 943 28 19쪽
301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4) +1 15.05.24 843 21 16쪽
300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3) +2 15.05.24 883 23 24쪽
299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2) +2 15.05.24 1,030 29 18쪽
29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 +2 15.05.24 910 25 21쪽
297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5) +6 15.05.23 1,107 21 29쪽
296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4) +1 15.05.23 847 23 20쪽
295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3) +1 15.05.23 948 22 20쪽
294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2) +3 15.05.23 1,137 20 21쪽
293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1) +2 15.05.23 1,079 27 17쪽
292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3) +3 15.05.23 1,140 25 19쪽
291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2) +10 15.05.21 1,053 28 22쪽
290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1) +2 15.05.21 1,109 26 19쪽
289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6) +2 15.05.21 1,080 26 25쪽
288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6) +3 15.05.21 936 24 27쪽
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2 26 25쪽
286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4) +5 15.05.20 1,017 29 21쪽
285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30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09 24 14쪽
283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3) +1 15.05.20 1,044 27 24쪽
282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2) +3 15.05.20 749 23 19쪽
281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1) +1 15.05.20 993 28 22쪽
280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3) +11 15.05.19 1,011 31 30쪽
279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2) +3 15.05.19 1,224 28 17쪽
278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5) +9 15.05.18 1,137 24 18쪽
277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4) +2 15.05.18 809 24 17쪽
276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3) +4 15.05.18 942 22 24쪽
275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2) +3 15.05.18 931 23 23쪽
274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1) +2 15.05.18 1,029 25 19쪽
273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1) +2 15.05.18 974 22 19쪽
27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3) +1 15.05.18 1,221 25 25쪽
27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2) +2 15.05.17 1,011 29 25쪽
27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1) +1 15.05.17 867 20 22쪽
269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0) +1 15.05.17 966 23 23쪽
268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9) +1 15.05.17 1,039 23 20쪽
267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8) +6 15.05.17 907 25 22쪽
266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7) +5 15.05.16 992 26 22쪽
265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6) +1 15.05.16 888 22 26쪽
264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5) +2 15.05.16 1,030 29 26쪽
263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4) +1 15.05.16 1,001 24 24쪽
26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3) +3 15.05.16 857 23 25쪽
26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2) +2 15.05.16 926 23 26쪽
26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 +3 15.05.16 1,061 31 31쪽
259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6) +8 15.05.14 1,064 29 22쪽
258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5) +7 15.05.14 914 22 11쪽
257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4) +4 15.05.14 1,032 21 20쪽
256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3) +3 15.05.14 894 22 31쪽
255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2) +5 15.05.14 1,000 24 27쪽
254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1) +6 15.05.13 904 24 30쪽
253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0) +3 15.05.13 943 22 24쪽
252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9) +1 15.05.13 995 21 27쪽
251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8) +1 15.05.13 897 18 27쪽
250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7) +4 15.05.12 1,088 26 27쪽
249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6) +5 15.05.12 995 25 27쪽
»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5) +3 15.05.12 1,103 25 2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