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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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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44,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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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23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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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1)

DUMMY

“그 여자 정말 수상해요. 날마다 지치지도 않고 여길 기웃거린다고요.”


유미르네와의 신경전이 있을 때면 카이안은 어김없이 디리터에게 달려가 불만을 토로했다. 루도와 마리네가 없는 지금 그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는 오직 그뿐이었다. 하지만 맞장구 쳐주리란 그의 기대와 달리 디리터는 언제나 심드렁한 반응만 보였다.


“너무 과민반응하는 거 아니냐? 우린 엄연히 동료라고. 오히려 지금처럼 각자 행동하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되는데.”


카이안은 속이 터졌다. 유미르네라는 인간의 위험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디리터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그의 눈에는 디리터가 지나치게 어수룩하다고밖에 보이지 않았다.


“제 말을 믿어야 한다니까요? 그 여자는 정상이 아니에요. 디리터를 해치려는 게 틀림없다고요.”


그러자 디리터는 가볍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물감이 덕지덕지 섞인 팔레트 위로 침이 섞이는 게 보였다. 카이안이 워낙 강경하게 나오자 그도 그림 그리던 것을 잠시 멈추고서 물었다.


“유미르네가 나를 해쳐야 하는 이유가 뭔데?”


“그거야 모르지만...분명해요!”


“그렇게 확신하는 증거라도 있어?”


“그건 아니지만....”


카이안도 자기 주장의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증은 넘치지만, 물증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유미르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자신의 배타적인 감정은 차치하고라도,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잔인한 성품과 썩을 대로 썩은 물질만능주의, 명예라고는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태도 - 그녀는 카이안이 알고 지내던 로샤단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특징만을 모아놓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디리터를 바라볼 때의 그 차가운 시선. 카이안은 레인스터 때의 일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카이안, 네가 유미르네를 싫어하는 건 알고 있지만 말이다.”


카이안은 또 한 귀로 흘리려나 싶어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디리터의 어조가 자못 진지했다. 그는 카이안의 우려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유미르네는 우리에게 현상금이 붙어있을 때에도 함께 움직였던 동료야. 수도에서도, 레인스터에서도 그녀가 없었다면 우리 중 한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야. 네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에겐 함께 싸웠던 기억이 더 중요해. 그리고 지금의 이야기를 하자면, 유미르네는 나는 물론 이칼롯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수준의 검사야.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라도, 네 사적인 감정 때문에 그녀와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는 거다.”


카이안은 숨이 턱 막혀버렸다. 너그럽게 설명하긴 했지만, 디리터의 말에는 더 이상 그녀에 대한 험담은 삼가달라는 무언의 권고가 담겨 있었다. 카이안은 맥이 빠져 뻣뻣해져 있던 어깨를 풀썩 의자 등받이에 묻었다. 그것을 수긍으로 받아들였는지 디리터도 다시 붓을 들어 화폭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카이안은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럼 디리터는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다는 거예요? 몇 번 같이 싸웠고, 사람 죽이는 솜씨가 뛰어나니까 그냥 동료로 인정한다는 건가요?”


디리터는 쓰게 입맛을 다셨다.


“나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그리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다만 확실한 건 유미르네가 루도, 마리네와 유년기를 함께 보낸 친구고, 그 녀석들이 그녀를 신뢰하고 있다는 거지. 어렵게 생각할 거 뭐 있냐. 그 녀석들의 선택을 믿으니까, 나도 그녀를 믿기로 하는 거지.”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카이안은 디리터의 그림을 말없이 지켜보다 램프의 불빛이 점차 사그라질 때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디리터의 설명에 납득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유미르네를 불신했다. 여전히 그녀를 경멸했으며, 여전히 그녀가 불순한 의도를 품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일종의 책임감마저 느꼈다. 이칼롯마저 없는 지금, 그녀의 정체를 파헤칠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카이안은 침대에 누운 뒤에도 한동안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유미르네와 디리터를 잇는 ‘증오’라는 키워드를 분석하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한편 디리터 역시 램프의 기름이 떨어지자 별 수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팔베개를 한 채 카이안이 했던 이야기를 천천히 곱씹어 보았다. 그도 바보는 아니었다. 유미르네가 자신을 기피하는 것과, 가끔 마주칠 때 보이는 노골적인 적의를 그 역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남에게 원한 살만한 일을 한 적이 있나? 나름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카이안과 달리 디리터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곧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에게는 이런 시시콜콜한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카이안의 안위, 그리고 안개송곳니. 현재 그의 임무는 카이안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안개송곳니의 입장에서 볼 때 로샤단의 인원 대부분이 빠진 지금이 그를 노릴 적기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국왕이 붙여준 기사들도 있긴 하지만, 그들은 특수전에 아무래도 경험이 모자랐다.

디리터는 이불을 덮지 않은 채 귀는 창가 쪽을 향하게 옆으로 누웠다. 자세는 우스꽝스럽지만, 그의 신경은 자그마한 살기 한 조각마저도 놓치지 않을 만큼 팽팽하게 솟아 있었다. 아직은 직감뿐이었지만, 그는 적의 암살자가 이미 이 요새 안에 잠입해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



다음날 카이안은 책을 빌리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군대가 주둔하는 요새에 도서관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지만, 그리 많진 않아도 장교들을 위해 비치된 장서가 창고에 구비되어 있었다. 요새에 틀어박힌 뒤로는 무료한 나날의 연속이었기에,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을 기웃거렸다.

호위를 맡은 기사들은 신경을 거스르지 않는 수준에서 그의 뒤를 따라왔다. 디리터는 어젯밤 잠을 설쳤는지 아직 단잠에 빠져 있었다. 이슬을 머금은 아침바람은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날씨는 추웠으나, 그래도 한파가 몰아치던 몇 주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던 고드름도 누그러진 날씨에 차례차례 녹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혹 행인이 다치진 않을까 싶어 장대를 가져와 열심히 고드름을 떨어뜨렸다.

카이안은 두 권의 책을 빌려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군사에 관련된 서적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래도 시간을 때우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숨을 내쉬자 기분 좋은 입김이 허공에 흩어졌다. 그는 거리를 가로지르며 하루의 일과를 마음속으로 정리했다. 책을 읽고, 점심을 먹고, 디리터에게 간단한 호신술을 배우고. 여건이 된다면 셀린느와 메리를 방문해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이런 타지에서 안면을 트고 지내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니까.


“어....”


그러나 활기차게 움직이던 그의 발걸음은 그녀와 마주친 순간 우뚝 멈춰서 버리고 말았다.


“.....”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었다. 질리지도 않고 이렇게 또 만나게 될 줄이야. 경우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와 마주하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유미르네 역시 짜증난다는 듯 눈썹을 비틀었다. 막 세안을 끝마친 것인지 아직 물기가 남은 머리카락 사이로 초췌해진 그녀의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밤잠을 설친 것일까? 아직 피로가 가시지 않은 것인지 그녀는 연방 눈을 깜박였다.


“.....”


카이안은 먼저 인사를 건넬 생각이 없었다. 둘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시작은 늘 유미르네의 비아냥거림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날은 그녀 쪽에서 먼저 그를 지나쳐갔다. 그 흔한 묵례조차 없었으니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면식조차 없는 사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미르네는 전날에도 계속된 악몽으로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기분전환에 필요한 것은 독한 술이지 이죽거리는 꼬마의 면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카이안이 먼저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는 거리로 사라지려는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당신이 뭘 꾸미고 있던 난 안 속아요.”


유미르네의 어깨가 일순 경직됐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심상치 않은 기류에 뒤따라오던 기사들은 머쓱하게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카이안은 계속해서 말했다.


“어떻게 로샤단 사람들을 구워삶았는지는 모르지만, 내겐 안 통해요. 당신의 더러운 목적에 디리터가 말려들게 하진 않겠어.”


“큭큭큭...”


카이안의 폭언에 그녀는 낮게 조소했다. 안 그래도 꿀꿀한 기분을 이렇게 화끈하게 폭발시켜줄 줄이야, 확실히 단순히 거슬리는 꼬마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눈에 밟히는 정도가 늘어날수록, 유미르네의 인내심 역시 한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더럽게 풍부한 상상력은 좀 더 생산적인 일에 쓰도록 해. 엄한 사람 모함하지 말고.”


“모함이라고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는군요. 하지만 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당신이 디리터에게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할 테니까.”


카이안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그녀를 몰아붙였다. 그녀의 꿍꿍이를 캐내든지, 아니면 하다못해 언쟁에서라도 기를 죽여놓자는 게 카이안의 속셈이었다. 그의 도발이 통한 것인지 유미르네의 관자놀이에 가벼운 힘줄이 돋았다. 하지만 그녀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을 간신히 집어삼켰다. 그녀가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뭐 잘 해봐. 나는 ‘내 식대로’ 할 테니까.”


카이안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내 식대로 한다는 말은, 디리터를 해치겠다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한 것이었다. 가슴이 격하게 요동쳤다. 생전 이렇게 누군가를 증오해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카이안의 감정은 부풀어 있었다. 그가 말했다.


“당신은 근본부터 잘못된 사람이에요.”


“?”


“당신이 어떤 인생을 살았든, 그게 당신의 더러운 행위에 면죄부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설마 살인을 하며 ‘나는 그래도 돼’ 따위의 합리화를 하는 건 아니겠죠? 당신 같은 사람을 그래도 가족이라고 키워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워서 한숨만 나오는군요.”


그 순간 유미르네의 손이 카이안의 멱살을 낚아챘다. 너무도 기민한 그녀의 움직임에 뒤따라오던 기사들은 물론이고 잡힌 카이안마저 잠시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유미르네는 그를 땅바닥에 내리꽂고는 위에 올라탔다. 서슬 퍼런 에스터크의 검광이 카이안의 목덜미 부근에서 반짝였다.


“꼬마, 죽고 싶어?”


그러나 카이안은 자신을 향한 유미르네의 검을 보고서 오히려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치 ‘그러면 그렇지’ 라고 조소하는 듯한 그의 눈동자에 유미르네는 울컥 분노가 치밀었다. 검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네가, 네 녀석이 나에 대해 얼마나 안다는 거야. 뚫린 입이라고 겁도 없이 나불대기만 하고 말이야, 앙? 로샤단이 시....”


유미르네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신의 아이에 대해 발설하는 것은 금기였었지. 그녀는 검을 거두고는 대신 무릎으로 카이안의 명치를 찍어 눌렀다. 그놈의 신의 아이라는 감투만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목을 꿰뚫어버렸을 텐데! 햇빛을 등진 그녀의 모습은 카이안에게 칠흑의 악마처럼 보였다. 그는 기사 몇몇이 유미르네를 말리러 온 다음에야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오갈 데 없어진 분노는 애꿎은 기사들을 향했다. 그녀는 말리는 기사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서 말했다.


“꼬마, 똑똑히 들어둬. 로샤단과 계약한 이상 일은 확실히 하겠지만, 그게 언제까지고 네 뒤를 봐줄 거라곤 생각하지 마. 계속 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간, 계약이고 뭐고 네 녀석의 목을 날려버릴 테니까.”


“...보나마나 로샤단을 이용해 누군가를 죽이거나 하려는 거겠죠. 당신의 더러운 목적에 로샤단을 끌어들이지 마시죠.”


유미르네가 다시 뛰어왔다. 이번에는 기사들이 그녀를 막아섰으나, 그녀는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제지하는 그들의 손길을 가볍게 회피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까처럼 카이안을 패대기치진 않았다. 대신 형형한 살기를 드리운 채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맞아. 더러운 일이야. 그리고 더럽다는 걸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 너는 절대 나를 이해하지 못해. 죽을 때까지도.”


카이안은 인상을 구긴 채 한참을 노려보다가, 이내 더는 대화할 가치가 없음을 깨닫고는 책을 챙겨 떠나갔다. 이미 그의 눈에 유미르네는 한 마리 짐승으로 비춰질 뿐이었다.

한편 유미르네 역시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심해져 가는 악몽 때문에 날마다 잠을 설치는데, 이렇게 꼬마 하나가 아침부터 속을 긁어놓고 간 것이다. 차오를 대로 찬 스트레스가 분출구를 찾아 그녀의 촉각을 자극했다.


“....!”


하릴없이 분을 삭이고 있을 즈음이었다. 날이 선 그녀의 감각이 문득 미세한 이상을 감지했다. 뒤통수를 찌르는 직관적인 살기. 그것은 일반인은 결코 감지할 수 없는, 수많은 수라장을 겪어 온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육감이었다.

그 순간 그녀는 살기의 진원지를 향해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거리에는 환자나 피난민을 수용하기 위한 천막이 다수 쳐져 있었다. 유미르네는 그중 하나의 입구를 거의 찢다시피 하여 들어가고는, 살기의 근원을 향해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그녀가 천막까지 달려온 거리는 수십 m에 달했지만, 소요된 시간은 5초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숏소드는 표적의 목을 긋기 직전에 우뚝 멈춰 섰다.


“아...아....”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위협당한 간호사는 어찌나 충격을 받았는지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그저 굳은 자세로 굵은 눈물만 뚝뚝 떨어뜨렸다. 광주리에서 붕대더미가 후두둑 굴러 떨어졌다. 유미르네는 광주리를 흘깃 살피고는 숏소드를 옆으로 세워 간호사의 가슴이며 허벅지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나 암살자라면 으레 옷에 숨겨놓았을 날붙이가 간호사에게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로, 입고 있는 옷 이외에는 아무것도 소지하고 있질 않았다.


“흐음....”


유미르네의 고개가 살짝 옆으로 기울어졌다. 조금 전에 느낀 위화감은 분명 가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붙잡은 간호사는 아무리 봐도 민간인이라고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판단을 보류하는 사이에도 간호사는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잔뜩 쉰 목소리를 간신히 쥐어짜내 말했다.


“사....살려주....”


그 절박한 간청이 통한 것일까, 유미르네는 이내 짜증스러운 몸짓으로 검을 물렸다.


“쳇, 착각했나. 분명히 이 근처일 텐데.”


스트레스가 쌓이니 육감도 엉뚱하게 작동하는 모양이다 - 유미르네는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아직도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간호사를 뒤로 한 채 그녀는 천막을 떠났다. 아직 이슬이 채 마르지도 않은 이른 시각이었으나, 그녀는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일찌감치 주점으로 향했다.

한편, 그녀가 떠나간 뒤 간호사는 맥이 빠져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찌나 놀랐는지 한겨울인데도 속옷까지 젖을 정도로 땀이 흥건했다. 유미르네가 멀리 거리 속으로 사라지는 걸 확인한 뒤에야 간호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후우, 저 괴물 같은 년. 그걸 눈치채냐. 진짜로 죽을 뻔했잖아.”


유미르네는 틀리지 않았다. 간호사는 정말로 안개송곳니의 단원이었다. 만약 카이안과의 말다툼으로 판단력이 흐려지지만 않았다면, 그리고 특별히 무기를 휴대하지 않는 그녀의 특이성만 아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간호사는 앞치마를 벗어 이마를 훔쳤다. 물기를 머금은 그녀의 머리칼은 타오르는 듯한 붉은색이었다. 일단 고비를 넘기자 머리가 차갑게 식어갔다. 조금 전에 있었던 유미르네와 카이안의 말다툼을 떠올리자 간호사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띠워졌다.


“하지만 유미르네 발렌스라...잘하면 써먹을 수 있겠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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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5) +2 15.05.24 943 28 19쪽
301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4) +1 15.05.24 843 21 16쪽
300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3) +2 15.05.24 883 23 24쪽
299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2) +2 15.05.24 1,030 29 18쪽
29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 +2 15.05.24 910 25 21쪽
297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5) +6 15.05.23 1,107 21 29쪽
296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4) +1 15.05.23 847 23 20쪽
295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3) +1 15.05.23 948 22 20쪽
294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2) +3 15.05.23 1,137 20 21쪽
»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1) +2 15.05.23 1,080 27 17쪽
292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3) +3 15.05.23 1,140 25 19쪽
291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2) +10 15.05.21 1,053 28 22쪽
290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1) +2 15.05.21 1,109 26 19쪽
289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6) +2 15.05.21 1,080 26 25쪽
288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6) +3 15.05.21 937 24 27쪽
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2 26 25쪽
286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4) +5 15.05.20 1,017 29 21쪽
285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30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09 24 14쪽
283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3) +1 15.05.20 1,044 27 24쪽
282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2) +3 15.05.20 749 23 19쪽
281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1) +1 15.05.20 993 28 22쪽
280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3) +11 15.05.19 1,011 31 30쪽
279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2) +3 15.05.19 1,224 28 17쪽
278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5) +9 15.05.18 1,137 24 18쪽
277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4) +2 15.05.18 809 24 17쪽
276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3) +4 15.05.18 942 22 24쪽
275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2) +3 15.05.18 931 23 23쪽
274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1) +2 15.05.18 1,029 25 19쪽
273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1) +2 15.05.18 974 22 19쪽
27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3) +1 15.05.18 1,221 25 25쪽
27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2) +2 15.05.17 1,011 29 25쪽
27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1) +1 15.05.17 867 20 22쪽
269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0) +1 15.05.17 966 23 23쪽
268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9) +1 15.05.17 1,039 23 20쪽
267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8) +6 15.05.17 907 25 22쪽
266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7) +5 15.05.16 992 26 22쪽
265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6) +1 15.05.16 888 22 26쪽
264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5) +2 15.05.16 1,030 29 26쪽
263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4) +1 15.05.16 1,001 24 24쪽
26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3) +3 15.05.16 857 23 25쪽
26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2) +2 15.05.16 926 23 26쪽
26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 +3 15.05.16 1,061 31 31쪽
259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6) +8 15.05.14 1,064 29 22쪽
258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5) +7 15.05.14 914 22 11쪽
257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4) +4 15.05.14 1,032 21 20쪽
256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3) +3 15.05.14 894 22 31쪽
255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2) +5 15.05.14 1,000 24 27쪽
254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1) +6 15.05.13 904 24 30쪽
253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0) +3 15.05.13 943 22 24쪽
252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9) +1 15.05.13 995 21 27쪽
251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8) +1 15.05.13 897 18 27쪽
250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7) +4 15.05.12 1,088 26 27쪽
249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6) +5 15.05.12 995 25 27쪽
248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5) +3 15.05.12 1,103 25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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