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이 세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얼마나 많은 피를 대가로 형성되었는지를.
천 년도 더 된 과거, 이곳 아르드 대륙은 신과 악마가 각축전을 벌이는 장소였다. 악마는 절대신 아루가 직접 빚은 이 땅을 차지하고자 했다. 그들은 차원문을 통해 끊임없이 몰려왔다. 이에 대항해 아르드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종족이 연합했다. 드래곤, 엘프, 오크, 인간...그들은 ‘필멸자 연맹’을 결성해 악마와 맞서 싸웠다.
하지만 연맹의 구심점은 고귀한 엘프도, 최강의 생명체라 불리는 드래곤도 아니었다. 절대신 아루는 필멸자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다섯 심복을 현세로 보냈다.
조화의 아반케즈
풍요의 베릴
생명의 루프리모
청명의 에스터페른
영광의 펠아람
우리가 익히 아는, 아루를 섬기는 하위신들이다.
그들의 깃발 아래 필멸자 연맹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악마족의 숫자는 끝이 없었다. 아무리 쓰러뜨려도 갖가지 괴물이 차원을 넘어 끝도 없이 들어왔다. 아루는 차원 간의 연결고리가 문제임을 깨닫고는 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그는 심복들로 하여금 세계 각지에 퍼진 차원문을 파괴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최후의 결전이 승리로 끝나고 마지막 차원문이 파괴되었을 때, 그는 친히 강림하여 이 땅에 언령을 내렸다.
-타계의 존재는 이 땅에 범접하지 못하리라.
그것으로 이 세계는 ‘단절’되었다. 차원을 잇는 연결고리가 모두 끊기자 신도 악마도 더는 이 땅에 간섭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역사의 분수령이 되는 아루의 ‘성언(聖言)’이다. 성언이 내려지자 전쟁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필멸자 연맹은 와해했고, 인간을 제외한 다른 종족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갔다.
그러자 악마족이 다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성언이 내려질 때 미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혹은 버려진, 패잔병의 무리였다. 하지만 당시의 인간은 그러한 소수 악마족의 위협조차 막아낼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인간을 도울 아루의 심복은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아루가 내린 성언 때문에 악마족의 대두에도 그들은 현세에 간섭할 수가 없었다.
피해가 심해지자 아루의 반려자인 행복의 신 류이너스가 묘안을 내놓았다. 아루의 다섯 심복으로 하여금 강한 영혼을 빚게 하고, 이를 현세에 사는 인간의 몸에 강림시켜 화신(Avatar)으로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이들이 바로 ‘신의 아이’다.
신의 아이 소환에는 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에센스(Essence)가 필요했다. 에센스란 인간의 상념 - 무언가를 갈구하는 마음, 특히 신을 향한 경외심 - 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에센스는 ‘아루의 수정’이라 불리는 구체에 쌓였고, 그것이 가득 찼을 때 자동적으로 소환은 이루어졌다. 소환된 신의 아이는 아루의 수정에 쌓인 에센스를 강대한 능력으로 변환시킬 수 있었다.
신의 아이가 지닌 힘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그들은 강림하자마자 활개치던 악마족을 순식간에 전멸시켰다. 인간은 아루의 은총에 감격하며, 다섯 심복의 화신인 신의 아이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에 발생했다. 첫 번째 신의 아이가 사라지고, 500년의 시간이 흐르자 두 번째 소환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들이 강림했을 때 토벌해야 할 악마는 이미 남아있지 않았다. 악마를 멸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 힘은 어이없게도 인간들 자신의 탐욕을 위해 사용됐다. 전쟁의 도구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두 번째 신의 아이들이 사라졌을 때 이 땅에 남은 것은 황폐화된 토지와 잘게 분열된 국가,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증오의 소용돌이였다.
이제 다시 500년이 흘렀다. 나는 일평생 그들이 남긴 흔적을 조사해왔다. 나는 여전히 신의 아이가 과연 우리에게 축복이 될지 절망이 될지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우리는 우리의 운명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혼돈에 관한 이야기다.
왜냐하면 수정이 다시금 빛나기 시작했으므로.
-데루루피아 아망초-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