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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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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2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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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7쪽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7)

DUMMY

갑자기 시간이 빨라진 것만 같았다. 지원병 모집이 끝나자 일행은 곧장 시장관저로 장교들을 불러 모았다. 이바르도와 파블로가 사라진 지금, 로샤단이 총지휘를 맡는다는 데 이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안데르트, 살아 있었군요! 백천기사단이 패주했다는 소식을 듣고 설마 했는데...”


“조금 운이 좋았지. 그보다 나는 너희들이 이곳에 와 있는 게 더 놀라운데.”


안데르트 루시올라. 안젤리카의 오빠이자 카이안의 의붓형이기도 한 그는 예전의 인연이 되어 로샤단과도 친분을 쌓고 있었다. 그는 본래 백천기사단에서 복무하고 있었는데, 기사단 자체가 와해하자 남은 소대원들을 이끌고 레인스터로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도시에 백천기사단 단원이 또 있어? 몇 명 정도?”


“나를 포함해 19명. 흑연기사단을 염탐한 것도 우리들이었지.”


“경험 많은 기사 19명이라...나쁘지 않은데.”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귀족들이 자세를 바르게 잡으며 경례했다. 확실히 어제와는 다른 모습이다. 비굴하게 어깨를 움츠러뜨리고 있던 이바르도가 사라진 것만으로도 공기가 달라진 것만 같았다.

장교들이 하나둘 자리를 찾아가는 동안, 제리온은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머리를 긁적였다. 이칼롯과 디리터가 앉은 테이블은 자리가 다 찼고, 그렇다고 서서 회의를 참관하기엔 또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데 막 대충 사이에 껴앉으려는 찰나, 이칼롯이 시장의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은 본래 이바르도가 사용하던 것으로, 한눈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쉬운 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넌 저기다.”


“어...뭐?”


“그런 건방진 연설을 했으니 책임을 져야지. 이제 병사들은 네가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불안해할 거다.”


귀족들이 한결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너져가던 군을 바로잡은 남자다. 이제 그가 아니고선 수성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제리온은 멋쩍은 얼굴로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어느 집단을 대표한다는 건 그에게도 생소한 일이었다.


“이거 참, 우리 대장은 이칼롯인데.”


“그건 그거고.”


이바르도와 파블로가 그래도 하나 생산적인 일을 해준 것은 있다. 그들이 미적지근하게 행동해준 덕분에 밑의 장교들이 독립적인 지휘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휘부가 바뀐 지금에도 산하부대들은 아무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었다.

제리온은 탁자 위에 도시 지도를 크게 펼치고는 말했다.


“이제 뭐가 있고 없는지를 따져봅시다. 이틀 안에 모든 준비를 끝마쳐야 하니까. 아, 수비대장 두 분은 여기 있을 필요 없습니다. 지금 당장 병영으로 가 신병들을 훈련시켜줘요. 일단 급한 대로 석궁 격발요령이랑 분대전술, 깃발과 뿔나팔 신호체계를 교육해주고.”


서문과 동문의 수비대장이 발을 척, 맞추고는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이어 제리온은 귀족과 선임장교, 기사들에게도 각기 다른 명령을 하달했다. 그 모습을 본 이칼롯이 놀라워하며 말했다.


“너, 군을 지휘해본 적 있는 거야?”


“음? 아니. 전술학 강의만 들어본 게 전부인데.”


“...놀라운걸.”


제리온은 다시 무언가를 지시하려다 문득 생각난 듯 인중을 꼬집었다. 그의 시선이 로샤단의 멤버들을 차례로 훑고 지나갔다. 루도와 마리네, 유미르네는 각자 편한 곳에 기대어 서서 이야기를 경청하는 중이었고, 레미나는 바로 근처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제리온은 그들을 순서대로 가리키며 말했다.


“루도, 마리네, 유미르네, 그리고 레미나 누님. 너희들도 여기 있을 필요 없어. 당장 이 도시를 나가.”


“엥? 뭐라고?”


지명된 넷은 제각기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루도가 반문을 할 틈도 없이 제리온은 폭포수처럼 작전을 쏟아냈다. 그만큼 이제는 입씨름할 시간도 아까운 때였다.


“너희들은 당장 근처 도시를 돌며 지원군을 모아봐. 루비크, 에닌샤, 아르카디아. 이 빌어먹을 영주들은 자기 신변에 급급해서, 혹은 아스트리카에 매수되어서 출군을 주저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니들이 가서 영주를 쳐 죽이든 파직시키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군대를 끌어내. 누님이랑 같이 가면 로샤단의 특권도 그대로 유지되겠지. 알았냐?”


일련의 계획을 그는 단 몇 초 만에, 그리고 말 한 번 더듬거리지 않고 지시했다. 루도는 그 패기에 눌려 뭐라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이윽고 그의 말이 끝나자 마리네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나랑 유미르네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방어병력 하나가 아까운 때인데...”


“멍청아, 적이 흑연기사단 하나냐? 루도랑 누님 둘만 보냈다가 안개송곳니한테 습격당하면 어쩌려고? 맘 같아선 디리터까지 보내고 싶지만 참은 거야. 그래도 유미르네 저년, 실력 하나는 끝내주니까 호위는 문제없겠지. 너도 우리보다는 꼬맹이들이랑 움직이는 게 맘 편할 거 아니냐?”


“뭐 나야 돈만 주면 뭐든 상관없지만...일단 시키는 대로 하죠.”


어쩌면 더 좋은 방안이 있었을 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는 고민하는 1분이 아까웠기 때문에 모두가 군말 없이 제리온의 말에 따랐다. ‘이건 어때?’ , ‘그건 좀...’ 이런 식의 대화가 늘어날수록 방어에 대비할 시간은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루도 외 3명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섬주섬 장구를 챙기기 시작했다. 제리온의 명에 따르면서도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은, 도시에 남는 이들이 피비린내나는 격전을 치를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막 떠날 채비가 끝나자 레미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제리온에게 말했다.


“제리온...너...”


“우는 소리라면 다음에 하쇼. 빨리 가. 가서 지원군을 몰고 오라고.”


제리온은 손을 휘휘 저으며 그들을 다그쳤다. 그러자 레미나는 눈가를 쓰윽 훔치고는 예의 당찬 얼굴이 되어 말했다.


“5일 안에 올게. 그때까지면 버텨줘.”


“안 돼, 너무 길어. 4일 안에 와.”


“...응!”


넷이 떠나자 집무실 안은 더더욱 황량한 분위기로 변했다. 이제 안은 이칼롯과 디리터, 그리고 몇몇의 귀족들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떠날 사람이 모두 떠나자 제리온은 깍지를 끼며 말했다.


“자 그럼 분석을 해보자고. 지금 레인스터가 가진 강점은 뭐가 있을까.”


이칼롯이 답했다.


“견고한 성벽, 풍부한 군량. 병장기를 기증받았으니 지원병의 장비도 기존 방어병력 못지않게 제공할 수 있겠지.”


“아, 그것 말인데, 한 상회가 조금 전 보급대에 대량의 기름을 기증했습니다. 대개는 램프용 어유나 식용유 따위지만, 피치도 꽤 많으니 수성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수성병기로는 2개의 투석기가 있고 각 탑마다 노포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사용한 지 오래 되어 제대로 작동할 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각자 가지고 있던 생각을 작전판 위에 늘어놓았다. 대충 추려놓고 보자 레인스터의 장점은 풍부한 물자와 단단한 성채, 두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었다. 원체 도시 자체가 부유했던 데다 상인들이 무상으로 제공한 것들도 많아 이제는 2천 명이 쓰기엔 너무 많을 정도의 물자가 확보되어 있었다. 또한 어째서인지 성벽의 두께며 높이가 웬만한 군사도시 못지않았다. 높다란 성벽만큼이나 마음 든든한 것도 없는 법이다.


“그럼 이제 단점을 말해봅시다.”


단점에 대해서는 쉽사리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도 힘든 탓이었다. 약 1분 여가 흐른 다음에야 디리터가 말했다.


“병력의 절대적인 열세, 그리고 질적인 훈련-경험의 부족, 지휘부의 탈영과 신병확충으로 인한 사기의 감소, 방어병력에 비해 비교적 넓은 방어선, 아직 보수가 끝나지 않은 공심돈대, 에 또...”


“오냐오냐 씨발, 많기도 하다.”


제리온은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헤집고는, 도시의 지도가 그려진 작전판을 가로로 2등분되도록 펜으로 그었다.


“이 선을 기준으로, 남쪽에 병력의 8할을 집중시킵니다. 나머지 2할이 북쪽을 맡는 거지.”


“8:2? 너무 편중된 것 아니냐?”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다. 물론 어느 정도 도박이긴 하지만, 이제 안전빵 같은 작전은 없으니까.”


그의 설명은 이랬다. 흑연기사단이 공격을 시작한다면 그 주력은 탁 트인, 한 마디로 일거에 병력이 몰려가기 쉬운 남문으로 밀려들 것이다. 반면에 동문과 서문은 지형적인 면에서 불리한 점이 많다. 남문에서부터 비스듬히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올라가야 되는데, 이 경우 측면이 완전히 노출되어 치와 돈대에 배치된 궁수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러니 스벤달이 병법에 문외한이 아니라면, 서문과 동문은 양동작전을 위해 소수의 별동대만 보내고, 나머지 주력은 남문을 공략할 것이다.

북문은 더 거론할 필요도 없다. 레인스터는 도시 자체가 북쪽의 강을 끼고 지어졌기 때문에 북문은 그 자체로 해자를 지니고 있다. 물론 성문과 강 사이에 10~20미터 정도의 공간이 있긴 하다. 하지만 북문을 공략하려면 앞서 말할 동문, 서문의 포화를 뚫고 와야 하고, 강 너머에 진을 칠 수도 없으니 철군할 때도 같은 길을 돌아가야 하며, 대열이 길게 늘어지므로 자칫 성문을 열고 나온 병력에 역습당할 염려도 있다.

때문에 제리온은 이같은 조건을 고려하여 병력을 배분한 것이었다.


“신병들에게 기도비닉을 바랄 수는 없어. 무조건 자리를 지키고 달아나지 않는다, 그게 작전이야. 그러니까 북문 쪽에 예상 외로 많은 병력이 나타난다 해도 지원은 기대하면 안 돼. 안데르트, 북쪽은 네가 진두지휘해라. 같이 온 백천기사단은 둘로 나눠서 신병중대에 붙여. 기사랑 함께 싸운다면 어느 정도 사기가 오르겠지.”


“알았다. 적이 공성장비를 가져오진 않을까?”


“나름 급히 북상하는 중이니 가능성은 낮지만...뭐 몰고 오면 그거대로 싸워야지.”


“투석공격을 받으면 많이들 겁에 질릴 텐데.”


“그러니까 빨리 훈련시켜야지.”


제리온을 중심으로 대략적인 수성도가 그려져 나갔다. 그러나 이는 아주 정석적인 부분으로, 적의 허를 찌르는 책략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사실 제리온은 교란작전이나 야습 따위는 전혀 관심 두지 않고 있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어떻게 신병들이 달아나지 않게 하느냐뿐이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많은 이들이 겁에 질려 제대로 된 교전을 펼치지 못할 것이다. 공포는 전염되고, 이는 군대 자체의 마비를 낳는다. 신병들의 공포를 극복하려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제리온은 기미가 잔뜩 긴 눈을 비비며 말했다.


“기름 전부 가져와서 끓여. 전담 분대를 편성해서 셋은 끓는 기름을 붓고, 셋은 거기다 불화살을 쏘라고 해. 사람 타는 걸 보면 누가 우위에 있는지 좀 감이 잡히겠지.”


“너 좀 말하는 게 무섭다야.”


“시꺼. 2일 만에 일반인을 병사로 만드는 건 간단치 않아. 요점은 이거다. 달아나지 않으면 이긴다 - 이기면 달아나지 않는다. 알았어? 우리는 무조건 화끈하게 이기는 싸움을 해야만 해. 일주일, 딱 일주일만. 그 이후엔 니기미 좆대로 되라지.”


기름, 화살, 갑옷, 노포, 그리고 7백의 신병 - 필요한 건 갖춰졌다. 이제 이걸 어떻게 전투에 활용하느냐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스산하기만 했다.



일행은 빠듯한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활용했다. 물에 적신 빵으로 점심을 때우고서, 제리온은 곧장 투석기가 배치된 원탑으로 향했다. 투석기는 남문을 중심으로 각 양쪽 끝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규모는 예상했던 것보단 훨씬 단출했다.

제리온은 2두마차 만한, 주먹크기의 돌도 제대로 못 날릴 것 같은 투석기를 보며 혀를 찼다.


“아오, 애들 장난감도 아니고 이게 굴러가긴 해? 이건 뭐 새총도 아니고...”


“이 도시가 원체 싸울 일이 없어서...그나마 있는 게 어딥니까.”


투석기를 담당하는 공병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솔직담백한 성격이라 사정거리가 어느 정도냐는 제리온의 물음에 숏보우보다는 멀리 나갈 거라는 당찬 대답을 해 그를 경악하게 했다.


“이거 망고넬(Mangonel)도 아니고 오나거(Onager)잖아. 진짜 그거밖에 안 나가?”


“예 뭐. 아예 지금 한 방 날려볼까요?”


병사의 넉살 좋은 대답에 뒤에 있던 디리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겁에 질려 빌빌대는 것보다는 훨씬 낫긴 하지만...이렇게 상황파악 못하고 태연한 것도 제법 문제는 있었다.

제리온이 말했다.


“됐고, 이제부터 이건 망고넬이야. 공병 나부랭이씨, 탄환은 돌이 아니라 불붙은 기름단지니까, 내일까지 요놈 사정거리 두 배로 만들어놔. 알았지?”


“예? 두 배라니 그걸 무슨 수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장력을 높이든지 각도를 바꾸든지 댁 전공이니 알아서 하셔.”


“흠...네, 뭐.”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나, 그걸 또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결코 평범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후 제리온은 노포탑과 수비대 막사, 백천기사단이 모인 연병장을 차례로 돌며 전투상황을 점검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 마지막으로 무기고를 방문하고 나왔을 땐 이미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좋아 여기까지 하자고. 나머지는 안데르트랑 장교들이 알아서 할 테고, 난 그만 자러 간다.”


“어...벌써 자러 가냐?”


“체력이 곧 전투력이야. 마법 한두 방으로 끝날 전투는 아닐 테니, 미리 힘을 비축해놔야지. 너도 푹 자둬. 잠잘 시간이 모자랄 거야.”


그는 영양가 없는 심야회의로 시간을 보내느니 한 시간이라도 더 자 원기를 회복하고자 했다. 지금까지 가장 마법을 많이 쓴 건 제스터와 맞붙은 때였지만, 그것도 단 몇 분 만에 끝이 난 전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몇날 며칠이 갈지 모른다. 남발하지 말고 가장 필요한 시기에, 효율적으로 마법을 사용해야 했다.


“흠, 뭐 그래라. 난 대장간 좀 들렀다 갈 테니까. 먼저 쉬라고.”


“오냐.”


디리터와 헤어지고 나서 그는 차츰 어둠이 드리워지는 거리를 터덜터덜 걸어갔다. 민간인이 대부분 내성의 신전으로 대피한 까닭에 거리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아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이따금 싸늘한 바람이 불어 가슴을 때릴 때면 제리온은 눈썹을 찡그리며 옷깃을 여몄다. 마치 바람 전부를 자신이 받아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쉬이이잉...그러나 제리온은 불어오는 바람의 저편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뭐냐 꼬맹아. 애장난 받아줄 시간이라면 없다.”


제빵소 한쪽 모퉁이에 오도카니 앉아 있던 오린은 제리온이 말을 걸자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어린아이에겐 어울리지 않은 비장한 얼굴을 한 채, 한 손에는 어째서인지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제리온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그대로 옆을 지나치려고 했다.


“할 말 없으면 난 간다.”


“나, 나도 입대시켜줘. 나도 싸울 수 있다고.”


“...뭐어?”


평소 같았으면 엉뚱한 소리 말라며 꿀밤이나 쥐어박아 줬을 텐데, 이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열의가 간단치가 않아 보였다. 아마 제리온의 연설 이후 계속 병영 문을 두드렸던 것이리라. 앙 다문 아랫입술이 어쩐지 억세게 보인 건 이 때문이었다. 제리온은 답변을 해주기에 앞서 낮게 실소를 터뜨렸다. 가장 최전선에 있어야 할 병사는 도망가고, 아직 사춘기도 오지 않은 꼬마가 싸우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꼬맹이는 꼬맹이답게 누나 치마폭에라도 숨어 있어라. 막대기 들고 설치지 말고.”


“꼬, 꼬마 아니야. 나도 남자라고! 어차피 지면 다 죽는다면서? 그럼 나도 싸우게 해줘!”


제법 표독스러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제리온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키로 성벽 너머로 돌이나 던지겠냐? 잔말 말고 신전으로 돌아가. 가서 아나이스를 돌봐.”


“뭐야 그게! 나는 그냥 손이나 빨고 있으라는 거야?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래. 애는 그래도 돼. 도망치고, 보호받고. 그게 당연한 나이니까.”


“....!”


그 일방적인 선고에 오린은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하지만 그건 단지 말주변이 없어서일 뿐, 곧 분한 마음에 눈가 가득 눈물이 고였다. 제리온은 머리를 쓰다듬거나 하여 그를 위로하려는 행동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와, 5년 전 아버지의 죽음을 뒤로 한 채 달아났던 자신이. 대신 그는 오린의 볼살을 있는 힘껏 꼬집으며 말했다.


“잘 들어라 오린. 우리는 반드시 이길 거다. 하지만 승리가 꼭 모두의 것이 되는 건 아니지. 누군가는 죽을 테고, 그 사람은 결코 승전의 기쁨을 맛보지 못할 거다. 그러니까 넌 뒤쪽에서 우리가 싸우는 걸 봐라. 우리가 이기는 걸 기억하라고.”


오린은 울먹이며 말했다.


“그건...비겁하잖아...다들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비겁한 게 아니다. 사람에게는...그래, 정해진 차례라는 게 있는 거다. 절대 도망쳐서는 안 되는...뭐 그런 거지. 아침에 손을 들었던 사람들은 그걸 알기에 앞으로 나선 거고. 나와 로샤단 역시 마찬가지다. 이게 우리가 응당 마주해야 할 순서니까 싸우는 거야. 지금까지 유예되었던...”


“...유예?”


“그래. 그러니 넌 ‘이번에는’ 나서지 마라.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네 녀석이 나와 비슷한 나이가 되면 싫어도 그런 때가 닥치게 될 거다.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그때야말로 당당히 맞서라. 그럼 남자로서 절반은 성공한 거야.”


오린은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워 연방 팔꿈치를 훔쳤다. 그 야무진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안쓰럽기도 하여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졌다. 레미나였으면 품에 안아 어깨를 다독여주었겠지만, 그건 제리온도, 오린의 스타일도 아니었다.

어느새 달이 뜨고 멀리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짓궂게 소년을 발로 떠밀며 말했다.


“자, 이제 건방 떨지 말고 신전으로 돌아가. 가서 아나이스랑 놀라고.”


“.....”


오린은 군소리 없이 등을 돌렸다. 가지고 온 막대기는 어쩐지 머쓱한 기분이 들어 담장 너머로 던져버렸다. 막 모퉁이 길을 올라갈 무렵, 그는 문득 생각난 듯이 홱 등을 돌리며 물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


“또 뭐.”


“남자의 성공이라는 거, 나머지 절반은 뭐야?”


그러자 제리온은 씨익 웃고는 엄지손가락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넣었다.


“당연히 이거지 이거. 하긴 니가 뭘 아냐? 이 쥐방울 꼬맹아.”


“우씨! 자꾸 꼬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제리온은 한바탕 욕설을 내뱉고 달아나는 오린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가 둔덕길을 넘어 사라지자 다시 상점가에는 그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한숨을 내뱉자 다가온 겨울을 알리려는 듯 보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춥다면 춥고, 시원하다면 시원한 날씨다. 제리온은 여며 입은 코트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는 터덜터덜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번이 내 차례...라는 거겠지, 아버지.”


불어오는 남풍은 시간이 갈수록 그 기세를 더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제리온은 마파람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표표히 걸음을 이어갔다. 바람에 그의 머리칼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마침내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곧 들이닥칠 적을 기다리며 레인스터 병사들은 성벽 위에 서서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누군가는 창을 꼬나 쥔 채, 누군가는 대답 없는 신에게 기도를 올리며, 또 누군가는 가족에게 전해질 유서를 끄적이면서. 곳곳에서 화톳불이 곰실거리는 가운데 병사들은 마지막으로 병장기를 점검했다.


“어이 이칼롯, 어제 몇 시간 잤어?”


“열여섯 시간.”


“킬킬킬, 정말 늘어지게도 주무셨네. 그렇게 자면 허리 안 아파?”


“...자는데 힘이 드는 경우도 있나.”


제리온은 여장(女墻)에 기대어 앉은 채 농담을 건넸다. 잠 얘기가 나오자 절로 하품이 나왔는데, 이는 피로라기보단 지루함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흑연기사단이 도착하기 하루 전, 일행은 언제 이렇게 자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숙면을 취했다. 또 돼지를 잡아 실컷 영양을 보충하고, 여유 있게 티타임을 가지기도 했다. 일전을 치르기엔 더할 나위 없는 휴식을 취했다. 이젠 비축한 체력을 유지하며 적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칼롯이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제리온, 혹시 해서 물어보는 건데 마법은 얼마나 쓸 수 있지?”


“기절하기 전까지. 연발로 쏘면 피로가 누적되니, 최대한 간격을 늘릴 거야.”


“마법을 썼을 때 오는 피로감이 어느 정도지?”


“보통 4시간 정도? 마법 5방을 날리면 밤을 꼬박 샌 정도의 피로가 밀려와. 물론 이건 모양새 좋은 설명이고, 연발로 쓰거나 고위 클래스의 마법일수록 리스크는 커져. 보통 집중력이 흐트러져 캐스팅에 실패하는 경우를 정신력 고갈로 보지.”


“...그럼 넌 마법 쏘고 내려가서 자는 편이 낫겠군.”


제리온은 키득거리며 그의 농담을 받았다. 역시 싸움도 해본 사람이 잘하는 것인지, 실전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제법 평정을 유지하며 다가올 전투에 대비하고 있었다. 백천기사단은 제각기 편한 자세로 앉아 전술대형을 토의하는 중이었고, 경험 많은 노병들은 주전자까지 들고 와 화톳불에 수프를 끓이기까지 했다. 제리온과 이칼롯 역시 긴장을 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반면 전투경험이 없는 신병들은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안쓰러울 정도로 몸을 떨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일부러 대다수를 원거리 사격부대로 배치한 것인데, 공포를 극복하는 데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디리터는 신병들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경직된 자세로 황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미동조차 하지 않는 이유는 결코 전투에 겁먹어서가 아니었다.


“야, 고르딘.”


“아 그 새끼 그거! 고르딘이라고 하지 말라고.”


제리온의 장난에 그는 곧장 입 가리개를 올리며 대꾸했다. 그는 로샤단의 권한을 활용해 판금중갑 풀세트를 지원받았는데, 그 목록이 제법 휘황찬란했다.

우선 브레스트플레이트로 흉부를 가리고, 전신에 풀플레이트메일을 씌웠다. 발목에 강철 그리브는 물론이요, 손에 장착한 건틀렛은 검을 쥐는 게 가능한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 크기가 대단했다. 여기에 헬름을 쓰고 입가리개를 닫자 정말 온몸이 철판으로 뒤덮인 모양새가 되었다. 이런 상태다 보니 안개송곳니의 고르딘이 연상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진짜 지옥에서 온 전사로고. 넘어지면 어떻게 일어날까 궁금하네. 아, 앞은 보이냐?”


“...시꺼. 이래서 마법사 나부랭이는...”


한편 기사단 출신인 이칼롯은 얇은 체인메일만 덧대어 입었을 뿐 기존의 무장과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대신 그는 특별 주문한 카이트실드(Kite Shield)를 한 손에 들고 있었는데, 이는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한편 기동력도 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가 방패를 사용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제리온은 호기심이 동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느닷없이 방패라니, 쓸 줄은 알어?”


그러자 이칼롯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기사단 검술은 기본적으로 소드앤실드(Sword&Shield)스타일이다.”


“호-. 그럼 왜 지금까지 안 들고 다닌 건데?”


“무거우니까.”


“푸하핫! 명료해서 좋네.”


제리온은 담요대용으로 몸에 두르고 있던 로샤단 휘장망토를 가만히 매만져보았다. 촌티가 펄펄 난다고 지금까지 가방 속에 처박아 놨었지만, 오늘만은 예외였다. 아마 그의 등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로샤단의 엠블렘을 발견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막 정오를 넘기고 한 무리의 구름 떼가 산자락을 넘어가고 있을 무렵에 그것은 찾아왔다. 가장 먼저 이변을 발견한 건 디리터였다.


“야, 온 거 같은데.”


앉아서 잡담을 나누고 있던 제리온과 이칼롯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이어 첨탑에 매달린 경종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검은 연기’ 그것은 아주 조금씩이지만, 서서히 황갈색의 대지를 칠흑색으로 잠식해오고 있었다. 병사들은 그 검은 군단을 보며 숨이 멎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2만5천의 대병력! 말로 듣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의 차이는 실로 대단했다. 이미 레인스터의 몇 배나 되는 인원이 모습을 드러냈건만, 지평선 끝자락에서는 또 새로운 부대가 마르지 않고 진군해오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연기의 진원지는 어디인가. 지금껏 저항해온 도시를 태우고 태워 기어코 여기까지 이른 것일까. 펄럭이는 흑연기사단의 깃발에선 흡사 광기마저 느껴졌다.


“...폼은 있는 대로 다 잡으면서 오는구만. 빌어먹을 새끼들.”


결사항전을 주장한 제리온마저도 흑연기사단이 내뿜는 위용에는 잠시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이칼롯이 나직이 웃으며 말했다.


“두렵나?”


“음? 천만에. 저 중에 1000명은 내 손에 죽을 거라고.”


“괜찮은 목표로군. 난 현실적으로 30명 정도만 해치울 생각인데.”


“안 돼. 로샤단의 대장이 서른밖에 못 죽이면 수지가 안 맞지. 최소한 일백은 잡으라고.”


적당한 거리에 도달하자 흑연기사단은 진을 차리기 시작했다. 육안으로도 보이는 거리에 야영지를 세운다는 건 그만큼 전력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저기 목책이 세워지고, 새로 꺼낸 기사단의 깃발이 곳곳에서 나부끼기 시작했다.

그사이 일련의 무리가 성문 쪽으로 접근해왔다. 십여 명으로 구성된 그들은 회담을 요청하는 황색 깃발을 올린 채 화살이 닿지 않는 곳까지 말을 몰았다. 그 중앙에 선 남자의 얼굴을 일행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원흉이 납셨구만. 스벤달 저 씨박새끼.”


“어쩔 거지?”


“어쩌긴, 뭔 개소리를 지껄이려는지 한번 보자고. 수틀리면 그냥 불로 지져버릴 테니까.”


곧 회담에 맞설 인원이 꾸려졌다. 상대는 10명 내외의 소수였기 때문에, 레인스터측 역시 이에 맞추어 숫자를 조정했다.

구성원은 제리온과 디리터, 이칼롯, 안데르트를 포함한 백천기사단 5명, 도시의 유지 2명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말을 몰아 곧장 스벤달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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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2 26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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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30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09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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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3) +3 15.05.14 894 22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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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0) +3 15.05.13 943 22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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