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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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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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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57
글자수 :
2,844,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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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6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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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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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글자
22쪽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7)

DUMMY

그녀가 쓰러지자 그나마 가닥을 유지하던 화염도 삽시간에 꺼져버리고 말았다. 기사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열을 정비했으나, 개중 몇몇은 마법사의 정체가 앳된 소녀라는 사실에 쓰게 입맛을 다시기도 하였다. 올란도가 부하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꽤 늦어졌군. 이대로 추격을 계속한다. 그리고 시곤, 이 여자를 치료해라. 일부러 급소는 피했다.”


“예? 아, 예. 하지만 이미 피를 많이 흘려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죽으면 그거대로 상관없다. 넌 이대로 여자를 데리고 본진으로 복귀해라. 살아 있다면 돌아온 후에 내가 직접 심문하도록 하겠다.”


올란도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하나의 보험을 들어두었다. 여기서 시간을 끌린 게 원인이 되어 추격에 실패한다면, 적어도 그 갈색 머리 소년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보라도 캐내야만 했다. 여기에는 아마 이 마법사의 존재가 주요하게 작용할 터였다. 물론 그것도 그녀가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그건 그렇고...왠지 낯이 익은 얼굴인데.”


응급처치를 하던 기사가 쓰러진 레미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동료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대단한 미인이잖아. 낯이 익다고 착각하는 것도 당연하지.”


“으음, 금발의 여자 마법사라...어디서 들었던 것도 같은데 말이지.”


치료가 끝나자 그는 레미나를 옷을 걸치듯 말안장에 척 내려놓았다. 치료라고 해봤자 아주 단순한 수준이라, 지혈하고 붕대를 감아놓은 게 전부였다. 이대로 두었다간 상처부위가 썩어들어갈 테지만, 그 자리에서 그녀의 미래를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가사상태에 빠진 레미나의 낯빛은 시체의 그것처럼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좋아. 이제 시곤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내 뒤를 따라라. 마법도 없으니 지금부터는 마차의 포획을 최우선목표로 삼는다. 자 이제...”


출진을 개시했을 때부터 올란도의 머릿속에는 임무달성을 위한 치밀한 청사진이 그려져 있었다. 리크나이츠 군대의 방해도, 길을 가로막는 마법사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해냈다.

그런데 막 시곤과 마법사 포로를 떠나보낸 직후였다.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 - 그걸 장애물이라 부를 수 있다면 - 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갑자기 수풀을 헤치고 뛰쳐나온 소년의 등장에 그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소년은 굶주린 승냥이처럼 울부짖으며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댔다.



****



루도가 도착한 곳은 라키시아 인근의 한적한 숲 속이었다. 포탈을 빠져나오자마자 시린 삭풍이 그를 맞이했다. 갑작스런 이방인의 등장에 먹을 것을 찾던 눈토끼가 황급히 구멍 속으로 몸을 숨겼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여전히 따가운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여기가 대체 어디냐...”


보이는 거라곤 나무밖에 없어서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매야 했다. 어중간하게 쌓인 눈이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를 미끄러지게 만들었다. 날숨과 함께 토해져 나오는 입김은 차라리 한숨에 가까웠다.


“좀...사람 다니는 근처에 보내주던가.”


예상치도 못한 정보와 예상치도 못한 위기. 그람 덕에 도시를 빠져나오긴 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뒤죽박죽이었다. 제리온의 가설과 예토의 유산, 그리고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그람까지도. 등에 맨 가방에 손을 가져가자 책의 두툼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루도는 일단 디리터와 만나기로 한 집결지부터 찾기로 했다. 이대로 혼자 끙끙대봤자 별수 없으니, 다른 일행과 합류한 이후에 함께 고민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이칼롯이나 마리네라면 자신보다 훨씬 훌륭한 분석을 내놓을 테니 말이다.


‘어랍쇼? 저건 뭐야?’


한참 나뭇가지를 쳐내며 움직이던 그는 멀리 떨어진 방향에서 빛이 반짝이는 것을 목격했다.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지던 시기라 딱히 이정표 삼을만한 것도 없었기에 루도는 무작정 그 빛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단순한 빛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횃불보다도 규모가 훨씬 크고, 일렁이는 정도도 범상치 않았다.


‘산불이라도 난 건가?’


만약 정말 불이 난 것이라면 서둘러 빛으로부터 멀어져야만 했다. 그런데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꽤 많은 수의 남자가 웅성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따금 말이 투레질을 하는 소리도 들렸다. 루도는 직감적으로 전방에 군대가 있음을 간파했다.

문제는 그 군대가 아군이냐 적이냐는 것이었다. 루도는 일단 기척을 숨긴 채 불빛에 다가가기로 했다. 아군이면 합류하면 그만이고, 적이라면 그대로 조용히 자리를 떠나면 되는 일이었다.


“...속한다. 그리고 시곤, 이 여자를 치료해라. 일부러 급소는 피했다.”


꽤 근접한 거리까지 다가가자 어렴풋이 군인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교전을 벌인 끝에 누군가를 포로로 잡은 모양이었다. 여자 군인은 없을 테니 아마도 민간인일 텐데, 아군이 민간인을 붙잡을 리 없으니 소리의 정체는 훼창기사단일 확률이 높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루도는 슬금슬금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한 남자의 의미 없는 중얼거림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으음, 금발의 여자 마법사라...어디서 들었던 것도 같은데 말이지.”


‘...뭐?’


금발, 여자, 그리고 마법사. 나열된 키워드가 순식간에 한 소녀의 모습으로 합쳐졌다. 심장이 덜컥대기 시작했다. 아니, 세상 자체가 격동하는 것만 같았다. 땅을 짚은 손은 어느새 한 줌 흙을 바스러져라 움켜쥐고 있었다.

루도는 본연의 목적도 망각한 채 덤불을 헤치고 나아갔다. 머릿속으로는 제발 자신의 예상이 틀렸기를 끊임없이 되뇌고 있었다. 역시나 소리의 정체는 훼창기사단이었다. 숫자는 많지 않으나 무장상태나 견장에 새겨진 부대마크로 보아 높은 직위의 기사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루도는 발견했다. 홀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한 기사와, 그 기사의 뒤쪽에 빨래처럼 늘어진 그녀를. 그 순간 루도의 눈이 뒤집혔다.


“레미나!!”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나갔다. 워낙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기사들도 그를 제지하지 못했다. 그저 난데없는 난입자의 등장에 어리둥절해할 뿐이었다.

레미나를 태운 말은 막 속보(trot)에서 구보(canter)단계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재빨리 달려간 루도는 레미나를 끌어내리려고 손을 뻗었다. 그런데 막 그녀를 붙잡기 직전, 어디선가 뛰어온 말이 무방비상태인 그의 가슴을 걷어찼다.

그렇게 몇 바퀴 땅바닥을 구른 그는 벌떡 일어나 방해꾼을 노려보았다. 갑옷 덕에 그리 큰 충격은 없었으나 저지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를 더욱 분노케 하였다.


“너 이 자식...감히!”


이미 평정을 잃은 루도와 달리 올란도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는 눈앞의 소년이 표적의 동료라는 것을 단번에 간파했다. 즉 그에게 있어선 레미나뿐 아니라 루도도 중요한 정보수집원이 될 수 있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해프닝에 머뭇거리는 부하에게 말했다.


“시곤, 출발해라. 여기 일은 우리에게 맡겨라.”


“아...넵!”


레미나를 태운 기사는 그대로 말을 몰며 멀어져갔다. 당연히 루도는 쫓으려고 발을 굴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측면에서 다른 기사가 쇄도해왔다.


“젠장, 방해하지...컥!”


루도는 기사의 찌르기를 흘린 후 발목 힘줄을 잘라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공격을 흘렸다고 생각한 순간 기사는 몸을 웅크려 갑옷째로 그와 부딪혔다. 예상외의 공격에 루도는 다시 한 번 땅바닥을 굴러야 했다.

올란도가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행색을 보아 정규군은 아닌 모양이군. 이름을 대라.”


“크...개소리 집어치워. 레미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자식들아!”


“여자라면 아직 살아 있다. 하지만 그것도 경각이지. 아마 그녀의 동료인 모양인데, 대답해라. 마차에 타고 있는 갈색 머리의 소년, 정체가 뭐지?”


루도는 호흡을 고르는 와중에 올란도의 질문을 분석했다. 갈색 머리라면 분명 카이안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는 레미나와 함께 있었을 텐데, 어째서 그녀만? 곧 그는 눈이 쌓인 숲길 위로 큼지막한 마차 바퀴자국이 나 있는 것을 확인했다. 자국은 레미나가 끌려간 방향과 정반대였다.

루도는 아직 카이안은 붙잡히지 않았으며, 레미나가 그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미끼가 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는 이칼롯과 유미르네, 그리고 뒤따라붙던 호위대가 전부 어디로 갔는지에 관한 문제는 잠시 차치하기로 했다. 지금은 그녀, 오직 그녀만이 그의 눈을 불태우는 전부였다.


“그녀를 어디로 데려갔어!”


“질문은 내가 먼저 했다. 대답해라.”


“뭔지도 모르면서 쫓지 말란 말이야 개새끼들아!”


루도가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분에 못 이겨 외친 한 마디였지만 이는 올란도에게 제법 뼈대 있는 경고로 다가왔다. 레오문드가 고민하는 것도 바로 그런 문제였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올란도의 태도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는 더 이상의 대화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는지 바로 루도에게서 등을 돌렸다.


“좋아. 이야기는 감옥에서 듣지. 토르조, 스벤손. 처리해라. 우린 계속 마차를 뒤쫓겠다.”


“레미나를 어떻게 했냐고 물었잖아!!”


루도는 앞을 막아선 기사를 억지로 밀쳐내고는 올란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올란도는 조금도 당황한 기색 없이 등을 돌리며 대각선 아래로 검을 휘둘렀다. 채앵! 루도는 순간적으로 검을 들어 막았으나 힘에서 밀려 상체가 뒤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그는 무리해서 자세를 잡는 대신 일부러 바닥에 넘어졌다. 쓰러지면서 관성을 받은 그의 몸은 지면을 미끄러지듯 이동했고, 이를 이용해 루도는 올란도가 탄 말의 다리를 힘껏 잘랐다.


“히히힝!!”


기상천외한 공격에 관망하던 기사들이 화들짝 놀라 다가왔다. 루도는 그들을 견제하며 재빨리 나무를 등지고 섰다. 확실히 공격에 한 번 먹히자 그를 뜨내기 취급하던 기사들의 눈빛도 확연히 달라졌다. 투구 너머로 번뜩이는 살기에 루도는 으득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차피 물러설 수 없다면, 전부 쓰러뜨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번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군. 소년.”


올란도가 흙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그는 이전과 다름없이 무미건조한 표정이었으나,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끊는 것으로 감정의 격앙을 드러냈다.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군마를 흘깃 쳐다보고는, 그대로 척수를 찔러 조용하게 만들었다. 공격명령 역시 이와 동시에 떨어졌다.


“마음이 바뀌었다. 토르조, 스벤손. 죽여라.”


기다렸다는 듯이 두 기사가 치고 들어왔다. 한 명은 좌측에서 목을, 한 명은 우측에서 허리를. 마치 자로 잰 듯한 완벽한 콤비플레이였다. 루도는 좌측의 공격을 막으며 그 틈바구니로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자 우측의 기사는 베기에서 곧바로 찌르기로 공격을 전환했다. 피했다고 생각한 루도의 다리에 쑤욱 검이 들어왔다.


“크아악!”


고통으로 루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깊게 박히진 않았지만, 움직임에 무리를 줄 정도는 충분했다. 재차 이어지는 협공을 루도는 필사적으로 받아쳤다. 그러나 방어도 여의치가 않았다. 도서관에서 입은 상처로 왼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완력에서 밀릴 때마다 그의 몸에 차례차례 상처가 늘어갔다. 올란도의 명령이 떨어진 지 채 30초가 되지 않아 그가 흩뿌린 피가 눈밭을 점점이 물들였다.


“훌륭하군. 그 두 사람을 상대로 잘도 버티는데. 어린 나이에 대단해.”


올란도의 말은 비아냥도, 허세도 아니었다. 실제로 기사들의 실력은 엄청났다. 완력은 물론이요, 기교와 지구력에서도 루도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무장의 차이로 그나마 속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긴 하지만 이마저도 계속된 출혈로 좁혀져 가고 있었다.

루도는 알지 못했지만 올란도의 친위대는 대륙최강이라 불리는 훼창기사단, 그 훼창기사단 내에서도 최정예에 속하는 부대였다. 개개인의 전투력만 따지면 디리터나 이칼롯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수준이니 부상에 피로까지 겹친 루도로서는 당해내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젠장, 제기랄!”


그러나 이길 수 없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는 동안에도 레미나의 생명은 차츰 꺼져가고 있었다. 다급함에 쫓겨 루도는 막무가내로 공격했다. 그러자 흐트러진 자세를 틈타 토르조가 파고들었다.

쿠욱. 이미 부상을 입은 왼팔에 다시금 칼이 파고들었다. 루도는 신음을 흘리며 뒷걸음질쳤다. 통증보다도 그를 미치게 만드는 것은 뼈저리게 느껴지는 무력감이었다.

졌다. 아니, 죽는다. 이런 곳에서, 이름도 모르는 자들에게. 숨이 가빠왔다. 목에 걸리는 것을 억지로 삼키자 비릿한 맛이 났다. 입안이 터진 것일까. 날숨을 토해내자 피에 젖은 입김이 부옇게 흩어졌다. 루도는 검을 지지대 삼아 자세를 바로잡았다.


“난 아직...죽을 수 없어.”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예토의 유산을 찾아내고, 아루의 수정을 확보하고, 안개송곳니를 박살 내고 - 아득히 멀고 먼 희망사항이다. 그러나 이 순간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오직 레미나라는 단어뿐이었다. 제리온의 유해 앞에서 그토록 서럽게 울던 그녀의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직 그 녀석에게 사과하지...못했단 말이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그녀와의 관계를 이렇게 응어리진 채로 마무리 지을 수는 없었다.

루도는 한 발로 도약해 토르조의 이마를 내려찍었다. 체중이 더해진 그의 일격은 상상이상으로 육중했다. 토르조는 재빨리 검을 들어 루도의 공격을 막았다.

쨍강! 그 순간 루도의 롱소드가 반으로 부러졌다. 무게중심을 잃은 루도는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고, 덕분에 측면에서 들어오던 스벤손의 찌르기를 피할 수 있었다.


“운이 나빴군. 이런 시기에 무기의 수명이 다하다니.”


루도는 기어가다시피 하여 거리를 벌렸다. 토르조와 스벤손은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검이 부러졌으니, 더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대신 그들은 한 번 더 확답을 듣기 위해 올란도를 바라보았다. 올란도도 처음 명령을 내릴 때보다는 훨씬 마음이 누그러져 있었다. 그는 루도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루도는 충격을 받아 몸을 일으킬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네가 졌다 소년. 죽고 싶지 않으면 항복해라. 굽힐 때를 아는 것도 지혜다.”


그러나 올란도의 권고는 그의 귀에 와 닿지도 않았다. 그는 넋을 잃은 듯이 부러진 검을 응시했다.


“람이...선물해준 검이...”


언제부터 균열이 가 있던 것일까. 일정에 쫓기느라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게 실수였다. 람카디스에게 받은 검, 그리고 레미나가 봉인당해 있던 검. 루도에게 있어 그 검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하나의 상징이었다. 상징의 파괴는 총체적인 패배감과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가 없다」 그걸 인정하자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안 돼. 여기서는 죽을 수 없어...”


그러나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포기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애초에 그의 목적은 레미나의 구출이었지, 눈앞의 기사들을 쓰러뜨리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얄궂게도 부러진 검이 루도의 사고에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검이 없어도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최후의 최후의 수단.


“펠아람의...아이.”


“음? 지금 뭐라고 했지?”


그는 과거 펠아람의 아이가 발현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레이시의 독에 당했을 때, 그리고 얼마 전 제랄드에게 붙잡혔을 때. 기억은 없어도 그가 가진 힘이 실로 엄청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각성하면 이길 수 있다. 자신의 힘으로 안 된다면, 신의 아이가 가진 능력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게 자신의 마지막일 수도, 안트로서가 말하던 최악의 상황일지도 모르지만 - 그래도 무력하게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어떻게? 각성이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자각과 충격. 케리아돌은 개개인마다 받아들이는 충격의 양상은 다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펠아람의 아이가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충격은 무엇일까?

루도는 제랄드에게 붙잡혔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제랄드는 그를 강제로 각성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수단을 동원했다. 그가 가정한 충격은 ‘고통’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살을 파내고 괴롭혀도 펠아람의 아이는 각성하지 않았다. 그러자 다음에는 제폰이 나왔다. 그는 루도의 ‘분노’를 유발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니었다. 람카디스를 살해한 장본인이 그라는 것을 알았을 때 루도는 흰자위가 뒤집힐 정도로 격노했다. 그러나 역시 펠아람의 아이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의 ‘충격’은 대체 무엇일까. 무엇이 각성을 부추기는가. 아니, 펠아람의 아이가 각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때 발밑으로 길게 이어진 피의 양탄자가 루도의 시선을 붙잡았다. 기어오는 와중에 피가 흘러 땅을 붉게 물들인 모양이었다.


‘젠장, 설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 말고는 떠올릴 만한 게 없었다. 람카디스를 처음 만났을 때, 입에 담았던 그 말이.

루도는 천천히 검을 쥔 팔을 들어 올렸다. 이미 무기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적어도 날붙이로서는 사용할 수 있었다. 그의 기행에 올란도가 눈살을 찌푸렸다.


“소년, 마지막 경고다. 항복해라.”


“항복...할까보냐. 너희야말로 죽기 싫으면...레미나 데려와.”


“판단력을 상실했군. 그게 네 유언이 될 거다.”


“웃기지 마셔. 『나는』죽지 않는다. 죽는 건 너희들이야.”


“.....”


올란도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그가 명을 내리자 루도를 처리하기 위해 토르조가 다가왔다.

그러나, 루도의 행동이 훨씬 빨랐다.


“알아들었냐! 난 절대 죽지 않을 거다. 펠아람의 저주 따위도 아니야. 살아서, 반드시 레미나를 구출하고 말 거다!!”


그의 외침은 올란도를 향해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궁색한 자기다짐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확실한 의지를 담아 소리쳤고, 누군가는 이를 똑똑히 들었다.

루도는 검의 파편을 자신의 상복부에 찔러 넣었다.


“커으....학.”


격렬한 고통이 그를 덮쳤다. 폐를 정확하게 찔렀기 때문에 즉시 호흡이 곤란해져 왔다. 통증이 너무 심해 무의식적으로 손이 검 파편을 움켜쥐었다.


“이게...무슨?”


놀란 쪽은 기사들이었다. 그들은 루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쳤다. 올란도가 혀를 차며 말했다.


“자진(自盡)을 택하다니 어리석군. 하지만 부위가 조금 빗나갔어. 즉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치료하기에도 늦었다. 1분가량을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게 될 거다.”


그는 마지막 아량으로 루도의 숨통을 끊어주려 다가왔다. 그러자 루도가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그를 제지했다.


“...누가...힉, 죽는다고...힉, 그래...”


“...끝까지 허세를 부리다니. 이만 편하게 가라.”


“웃..기..힉, 죽는 건...너라고.”


눈앞이 점점 희뿌옇게 변해갔다. 조건반사적으로 입을 놀리고는 있지만, 이미 호흡은 정지한 상태였다. 어느새 통증은 사라지고 나른한 감각이 전신을 지배했다. 정말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까지도 루도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그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네 녀석들 전부....쓰러뜨려주마....이 손으로...”


그것을 끝으로 그의 오른팔이 툭 바닥에 떨어졌다. 상체는 바위에 기댄 채로, 목은 하염없이 지면을 향해 축 늘어졌다. 토르조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죽었군요. 어떻게, 목이라도 자를까요?”


올란도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등을 돌렸다.


“됐다. 상대에 대한 예우가 아니야. 대신 가서 소지품을 뒤져봐라.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게 나올지도 모르지.”


지켜보던 기사들도 어이없는 해프닝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멋대로 난입하여 멋대로 자살하다니, 마지막까지도 뜬금없는 소년이었다. 올란도가 병력을 재편성하여 말했다.


“조금 늦어졌지만 이대로 추격을 계속한다. 스밴손, 네 말을 좀 빌리마. 넌 토르조와 함께 먼저 본대로 귀환하도록.”


“넵.”


기사들은 기존의 기동대형으로 대열을 정비했다. 그런데 막 말에 올라타려 할 즈음 한 기사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아, 천인장님. 방금 생각난 건데 말입니다. 저 소년, 아까 마법사를 레미나라고 불렀지 않습니까?”


“그게 어쨌다는 거지?”


“저도 풍문으로 들은 것인데 말입니다. 리크나이츠의 왕녀가 취미로 마법을 배운다고...”


그때였다. 루도가 있던 방향에서 갑자기 우드득, 하고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 불쾌한 음향에 올란도가 짜증스러운 듯이 말했다.


“토르조, 이미 죽은 자의 유해는 훼손하지 않는 게...”


퍼억. 말을 끝맺기도 전에 올란도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굉음을 내며 나무 두 그루를 부러뜨리고는 땅바닥에 떨어졌다.기사들은 화들짝 놀라 부러진 나무 곁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토르조가 척추가 접힌 채 거품을 물고 있었다.


“이...건...?”


그들은 재빨리 그가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그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부릅떴다. 눌러쓴 투구도 그들이 느끼는 공포를 감춰주진 못했다. 그것은 경이이자, 악몽이었다.


하아아아--.


그의 입에서는 입김 대신 자줏빛 오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배에 박힌 검을 뽑고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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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2) +11 15.08.09 1,066 35 23쪽
342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1) +11 15.07.26 1,181 39 22쪽
34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4) +23 15.07.20 1,215 40 11쪽
34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3) +26 15.07.13 1,132 53 16쪽
33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2) +35 15.06.12 1,401 51 11쪽
33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1) +11 15.06.10 1,014 42 11쪽
337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0) +12 15.06.03 1,014 36 19쪽
336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9) +6 15.06.02 1,093 32 17쪽
335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8) +6 15.06.02 953 31 15쪽
334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7) +2 15.06.02 970 27 16쪽
333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6) +3 15.06.02 973 28 20쪽
332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5) +2 15.06.02 925 25 15쪽
33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4) +3 15.06.02 990 25 19쪽
33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3) +7 15.06.01 913 33 18쪽
32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2) +2 15.06.01 930 27 22쪽
32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 +3 15.06.01 878 26 23쪽
327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5) +5 15.05.31 935 29 13쪽
326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4) +1 15.05.31 850 23 19쪽
325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3) +2 15.05.31 918 25 22쪽
324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2) +2 15.05.31 949 24 19쪽
323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1) +1 15.05.31 782 21 20쪽
322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5) +10 15.05.30 980 34 21쪽
321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4) +5 15.05.30 877 26 19쪽
320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3) +6 15.05.27 1,021 30 18쪽
319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2) +2 15.05.27 748 28 15쪽
318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1) +3 15.05.27 769 29 14쪽
317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4) +1 15.05.27 900 26 18쪽
316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3) +8 15.05.26 898 23 27쪽
315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2) +2 15.05.26 773 24 23쪽
314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1) +3 15.05.26 866 20 28쪽
313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5) +2 15.05.26 845 26 21쪽
312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4) +1 15.05.26 892 25 18쪽
311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3) +3 15.05.26 1,089 24 25쪽
310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2) +3 15.05.25 874 25 28쪽
309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1) +2 15.05.25 970 22 18쪽
30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1) +2 15.05.25 725 26 23쪽
307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0) +1 15.05.25 749 20 22쪽
306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9) +1 15.05.25 769 20 14쪽
305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8) +4 15.05.25 806 27 17쪽
304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7) +2 15.05.24 935 26 19쪽
303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6) +3 15.05.24 866 22 13쪽
302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5) +2 15.05.24 943 28 19쪽
301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4) +1 15.05.24 843 21 16쪽
300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3) +2 15.05.24 883 23 24쪽
299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2) +2 15.05.24 1,030 29 18쪽
29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 +2 15.05.24 910 25 21쪽
297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5) +6 15.05.23 1,107 21 29쪽
296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4) +1 15.05.23 847 23 20쪽
295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3) +1 15.05.23 948 22 20쪽
294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2) +3 15.05.23 1,137 20 21쪽
293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1) +2 15.05.23 1,080 27 17쪽
292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3) +3 15.05.23 1,140 25 19쪽
291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2) +10 15.05.21 1,053 28 22쪽
290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1) +2 15.05.21 1,110 26 19쪽
289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6) +2 15.05.21 1,080 26 25쪽
288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6) +3 15.05.21 937 24 27쪽
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2 26 25쪽
286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4) +5 15.05.20 1,017 29 21쪽
285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30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09 24 14쪽
283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3) +1 15.05.20 1,044 27 24쪽
282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2) +3 15.05.20 749 23 19쪽
281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1) +1 15.05.20 993 28 22쪽
280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3) +11 15.05.19 1,011 31 30쪽
279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2) +3 15.05.19 1,224 28 17쪽
278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5) +9 15.05.18 1,137 24 18쪽
277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4) +2 15.05.18 809 24 17쪽
276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3) +4 15.05.18 942 22 24쪽
275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2) +3 15.05.18 931 23 23쪽
274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1) +2 15.05.18 1,029 25 19쪽
273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1) +2 15.05.18 974 22 19쪽
27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3) +1 15.05.18 1,221 25 25쪽
27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2) +2 15.05.17 1,011 29 25쪽
27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1) +1 15.05.17 867 20 22쪽
269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0) +1 15.05.17 966 23 23쪽
268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9) +1 15.05.17 1,039 23 20쪽
267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8) +6 15.05.17 907 25 22쪽
»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7) +5 15.05.16 993 26 22쪽
265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6) +1 15.05.16 888 22 26쪽
264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5) +2 15.05.16 1,030 29 26쪽
263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4) +1 15.05.16 1,001 24 24쪽
26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3) +3 15.05.16 857 23 25쪽
26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2) +2 15.05.16 926 23 26쪽
26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 +3 15.05.16 1,061 31 31쪽
259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6) +8 15.05.14 1,064 29 22쪽
258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5) +7 15.05.14 914 22 11쪽
257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4) +4 15.05.14 1,032 21 20쪽
256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3) +3 15.05.14 894 22 31쪽
255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2) +5 15.05.14 1,000 24 27쪽
254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1) +6 15.05.13 904 24 30쪽
253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0) +3 15.05.13 943 22 24쪽
252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9) +1 15.05.13 995 21 27쪽
251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8) +1 15.05.13 897 18 27쪽
250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7) +4 15.05.12 1,088 26 27쪽
249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6) +5 15.05.12 995 25 27쪽
248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5) +3 15.05.12 1,103 25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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