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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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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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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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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3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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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7쪽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8)

DUMMY

성문을 나선다는 그 일상적인 행동이 이렇게까지 살 떨린 적은 없었을 것이다. 단지 눈높이를 맞추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적군이 일거에 밀어닥칠 듯한 기분 나쁜 상상이 그려졌다. 들이마시는 공기는 이미 쇳조각 냄새를 담뿍 머금고 있었다.


“여전히 역겨운 얼굴이구만.”


얼굴이 맞닿는 거리까지 접근하자마자 제리온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의 도발에 스벤달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전체적으로 레인스터 측은 경직된 표정에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반면, 흑연기사단 측은 만면에 여유가 가득했다.

스벤달이 말했다.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걸. 헌데 내가 볼일이 있는 건 자네들 같은 떨거지가 아니야. 도시의 총책임자는 누구지?”


“눈깔이 삐었냐? 니 눈앞에 계신 분이 레인스터의 지휘관이시다.”


스벤달은 잠시 입을 닫고 레인스터 대표들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로샤단의 3명과 투구를 쓰고 있는 백천기사단을 제외하고 나자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가장 지휘관다워 보이는」 도시 유지에게 꽂혔다. 그러나 맨 가장자리에 몸을 움츠리고 있던 그는 스벤달과 눈이 마주치자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스벤달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품위 없는 자들과 말을 섞어야 하다니, 나도 많이 죽었군.”


그러자 제리온은 매섭게 이를 갈았다.


“품위 같은 소리하네. 파티장에 춤추러 왔냐? 할 말 있으면 빨리해.”


스벤달을 호위하던 기사 하나가 신경이 거슬린 듯 창대를 고쳐 쥐었다. 그러자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살쾡이처럼, 디리터와 이칼롯의 눈이 동시에 그 기사에게 꽂혔다. 두 사람은 무기를 뽑진 않았으나 노골적인 적의로 상대를 압박했다. 제리온과 스벤달만큼이나, 호위진의 기 싸움도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레인스터의 수성진은 정말이지...볼품없어 보이는군. 훌륭한 성벽이 무색해질 정도야.”


“길고 짧은 건 대봐야지. 볼품없는 군대에 볼품없이 죽어봐라.”


“저항을 하시겠다? 이봐 무례한 청년, 우리는 흑연기사단이다. 그리고 나는 이들을 이끄는 단장 스벤달 오빌리크지. 난공불락의 마드리고도, 결사항전을 펼치던 크렘벨도 결국 내 손에 무너졌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아나? 그다지 긴 시간도 필요 없을 거야. 하루, 하루만 지나면 너희들은 모두 시체가 된다.”


“...칫.”


제리온은 기분이 나쁜 듯 입술을 비죽이 내밀었다. 그러나 이는 스벤달의 협박에 말문이 막혀서가 아니었다. 그는 스벤달과 이야기를 나누는 한편 그의 양옆에 정체불명의 남자 둘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왼쪽에 있는 남자는 담청색 로브에 쿼터스태프를 손에 쥔, 두말할 것도 없는 마법사였다. 아마도 제리온의 기습 폭격에 대비해 대동한 것이리라. 즉석에서 스벤달을 날려버릴 수 없게 되자 저절로 욕설이 새어나왔다.

반면 오른쪽의 남자는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코 아래로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 있어 거친 느낌이었다. 그는 무기도 없이 오로지 맨손이었는데, 그럼에도 그와 눈을 마주칠 때면 공기가 굴절하는 것 같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기분 나쁜 놈이로고.’


스벤달은 제리온이 대화에 집중하지 않는 게 불쾌했지만, 사실 집중한다 하더라도 그다지 변할 것은 없는 상황이었다. 흑연기사단은 어떻게든 레인스터를 초토화시킬 생각이었고, 로샤단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를 막아낼 결심을 하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회담은 서로가 서로를 도발하는 식으로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스벤달은 시간낭비라고 여겼는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올백으로 넘긴 그의 은발은 지적이라기보다는 비열한 인상을 자아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군. 이제 최후통첩을 전하겠다. 성문을 열고 항복해라. 그럼 너희들에게 명예롭고 깔끔한 최후를 약속하지.”


“못 하겠다면?”


“그럼 가서 발버둥 쳐라. 너희들을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처절한 방식으로 죽일 것이다. 펠아람의 아이도 예외는 없다. 어서 빨리 죽여 달라고 애걸하도록 만들어주지.”


그 말을 끝으로 스벤달은 등을 돌렸다. 혹시 모를 급습에 대비해 친위대는 자리를 지켰지만, 이미 회담은 종지부를 고하고 있었다.

제리온은 그의 뒤통수에 마법을 처박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줄곧 자신을 경계하던 마법사 때문에 성질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이칼롯이 입을 열었다. 그는 멀어져가던 스벤달의 등 뒤에 대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에 비슷한 말을 했었지. 네가 먼저 죽을지, 우리가 먼저 죽을지.”


스벤달은 고개는 돌리지 않았으나 그의 말에 자극받은 듯 우뚝 멈춰 섰다. 이칼롯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땐 우리가 쫓기는 신세였지만, 이젠 상황이 변했지. 내 이 자리에서 단언하겠다. 로샤단이, 그리고 이 도시가 반드시 널 파멸로 이끌 것이다.”


그러자 가소롭다는 듯 스벤달의 어깨가 한 번 들썩였다. 그리고서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말을 몰기 시작했다. 막 바람이 그들 사이를 찢어놓을 때쯤, 그는 여유만만한 어조로 답했다.


“건투를 빌지. 이칼롯 제르비안.”


멀어져가는 스벤달의 어깨너머에는 이미 진형을 갖춘 선발대가 돌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열을 맞추어 입김을 뿜어내는 광경은 전투에 익숙한 이들에게도 제법 살 떨리는 장면이었다.

일행은 서둘러 성 안으로 돌아왔다. 성문이 열리자 집결해 있던 병사들의 시선이 제리온에게 꽂혔다. 성곽 갤러리에서, 성문 안쪽에서, 망루의 꼭대기에서. 그들은 적장과 대치하고 온 자신들의 지휘관을 긴장된 표정으로 주시했다.

제리온은 긴 한숨을 내쉬고는 계단을 타고 성벽으로 올라갔다. 겁을 집어먹은 사람들. 2일 정도의 훈련으로 변화가 일어날 리 만무하다. 공포는 여전히 도시 곳곳에 산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이 무용했던 건 아니었다. 시민들은 이제 묵주 대신 창을 쥐고, 찬송가 대신 군가를 부르고 있으니까. 사위는 고요했다. 제리온은 병사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뭘 기대했습니까. 이제 곧 적이 들이닥칠 겁니다.”


안타까운 탄식이 터졌다. 그러나 이조차도 곧 강제된 침묵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두려운 것도 이해합니다. 도망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뭐, 막진 않겠습니다. 목숨이 아까워지면 언제든 뒤로 빠지십쇼.”


이제 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어 안데르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제리온의 얼굴은 퇴각을 명하는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적의 숫자가 이쪽의 10배니, 딱 10명만 죽이고 가십쇼. 10명을 죽인 사람은 달아나든 투항하든 막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목표를 채우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뒤로 물러서지 마십쇼. 아니, 아예 10명을 채우기 전까진 죽지도 마십쇼.”


여기저기서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아무리 봐도 허세와 만용으로 가득 찬 그의 연설이 묘하게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비단 그의 결의에 찬 얼굴 때문만은 아니었다.

할 수 있다, 아니 할 수밖에 없다. 이제 와서는 이기는 것 말고는 어떠한 결과도 생각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할당치 이상을 죽이고 싶다면, 그것 또한 막지 않겠습니다! 100명이든 1000명이든 찌르고 또 찔러서, 저 쓰레기들이 이 도시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합시다. 그래서 아스트리카 녀석들에게 똑똑히 보여줍시다. 죽음을 기다리는 건 우리가 아니었음을! 오히려 사냥하는 쪽이었음을!!”


“오...오!”


“갑시다! 오늘은 축제의 날입니다! 아스트리카 개들을 마음껏 도륙할 수 있는 날은 앞으로 평생 오지 않을 테니까!!”


와아아아아---.

제리온이라는 이름의 파도가 삽시간에 병사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것은 성문에, 첨탑에,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 내성의 류이너스 신전까지도 전해졌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귀찮은 건 전부 끝났으니, 마음껏 쓸어버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제리온과 이칼롯, 디리터는 나란히 성곽 위에 서서 무기를 뽑았다. 다른 병사들도 각각 대열을 지키며 무기를 점검했다. 다각, 하는 화살 재는 소리가 곳곳에서 났다.


“제리온, 이제 와서 얘기하는 건데.”


디리터가 다가오는 적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맞은 편에서는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적의 보병대가 진군을 개시하고 있었다. 적의 선발대는 4천여 가량. 아직 공성장비는 조립하지 않은 것인지 2개의 충차와 다수의 사다리만으로 성을 공략할 모양이었다. 이대로 함락시키면 좋고, 수성병력을 소진시키는 것만 해도 충분한 성과다. 중장갑을 한 병사들이 척척 발을 맞추며 행진해 왔고, 그때마다 땅인지 심장인지가 쿵쿵 울렸다.


“공주님이랑 루도-마리네를 내보낸 건 정말 잘한 일이야.”


“음? 뭔 소리냐.”


“어, 그러니까...그 녀석들이 싸움에 휘말리지 않게 하려고 전령으로 보낸 거 아니었냐?”


“뭔 개소리. 그 년놈들도 어엿한 레인저야. 아주 엿새 안에 안 돌아오기만 해봐. 다리몽둥이를 분질러버릴 테니깐.”


“....그런 거였냐...”


적의 군세가 가까워질수록 침묵은 커져만 갔다. 궁수들은 재어놓은 화살이 떨리지 않게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숨죽인 대기 속에서 모두가 지휘관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적의 1진이 화망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제리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깃발병에게 말했다.


“노포, 망고넬 발사.”


“노...노포, 망고넬 발사!!”


“노포 망고넬 발사!!”


그의 명령은 깃발을 타고 빠르게 공병들에게 전해졌다. 드디어 기나긴 정적을 깨고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포화가 시작되었다. 남문의 양 끝 원탑에 배치된 투석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불을 뿜었다. 날려 보낸 것은 돌이 아닌 불붙은 기름단지로, 잿빛 하늘을 수놓으며 적 보병진 한복판에 떨어졌다.

퍼엉!


“우와...그 공병, 진짜로 사정거리를 두 배로 늘렸어.”


메마른 황야가 불길로 번져가는 가운데, 노포탑 여기저기서 장전된 쇠뇌가 쏘아져 나갔다. 쇠뇌 역시 기름에 적신 솜을 달아놓아, 담황색 불꽃의 궤적이 겨울하늘을 짓찢어놓았다.

콰득, 콰직. 눈이 좋은 사람들은 쇠뇌가 적병의 갑옷을 뚫고 들어가는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작은 균열일 뿐, 다시 새로운 병사가 쓰러진 이들의 자리를 메워 간다. 시뻘건 화염에 놀란 것은 오히려 레인스터 병사들로, 흑연기사단은 사상자의 발생 따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표표히 진군을 계속하고 있었다.


“뭐하고 있어! 궁수!”


2열 횡대로 선 궁수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놓았다. 1열은 직사로, 2열은 불화살을 곡사로. 허공에 흩어져가던 쇠뇌의 궤적이 뒤따라 그려진 불화살의 그것에 점철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원거리공격에 흑연기사단 곳곳에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화살에 맞은 병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곧바로 방패병들이 앞으로 나왔다.

화망이 형성되자 흑연기사단도 더 이상 여유 있게 전진하진 않았다. 완만하게 울리던 군악대의 북소리가 스벤달의 명령에 따라 빠르고 경쾌하게 변했다.


“돌격! 도시를 함락시켜라!”


와아아아!! 전방의 병사들이 일제히 방패를 앞세워 돌진하기 시작했다. 중갑을 입은 자들치곤 놀라울 정도의 기민함! 궁수들의 활을 겨누는 각도가 순식간에 아래로 기울어졌다.


“당황하지 마라. 화살을 재되, 명령이 있기까진 절대로 발사하면 안 된다! 1열 발사!”


지휘하는 장교들의 목소리가 점점 격정적으로 변해갔다. 땅을 울리는 병장기 소리와 고막을 찢는 비명, 북소리와 뿔나팔 소리가 제멋대로 엉켜 전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바람은 이미 화살의 비에 찢길 대로 찢겨 이젠 어디서 불어오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온다, 디리터.”


이칼롯이 텔슈피드를 고쳐쥐며 말했다. 이제 곧 사다리를 넘어 적의 돌격대가 쇄도해올 것이다. 디리터를 비롯한 저지부대가 무기를 고쳐 쥐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치켜든 창끝이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맞아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제리온, 뭐하고 있어! 머리 숙여!”


그러나 제리온은 디리터의 경고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의 시선은 조금씩 거리를 좁혀오는 충차에 고정되었다. 충차는 10여 명의 병사가 안으로 들어가 이동을 담당하고, 지붕에는 나무판자와 가죽을 덧대어 원거리공격으로부터 보호되는 구조였다. 여기에 방패를 든 병사 20명이 호위를 맡으니, 그 자체로 작은 철옹성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사다리부대에 성벽이 점거되는 것도 문제지만, 충차에 성문이 뚫리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성문이 돌파되는 순간 적의 기병대가 진입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곧 제리온의 오른손 위로 불덩어리가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를 다그치던 디리터도 그 광경을 보곤 입을 닫아버렸다. 갤러리에 있던 병사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불덩이에 모아졌다. 그가 말했다.


“잘 들어라, 아스트리카 쓰레기들아! 내가 지금부터 잊지 못할 선물을 너희들에게 선사해주마!”


쿵, 쿵. 심장이 울린다. 마법을 아는 사람도, 마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그 불덩어리에 혼이 팔렸다. 그 열기를 느끼고 있노라면, 정말로 적을 압살해버릴 듯한 전의가 샘솟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 전쟁의 시작이자, 끝이 될 것이다. 기억해라. 나는 제리온, 로샤단의 제리온이다!”


쿠르르륵...창조자의 기세를 머금어 불덩어리가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압도적인 경이의 구체는 전방의 병사들은 물론 본진의 스벤달의 눈에도 똑똑히 각인되었다.


“블래스트 파이어볼(Blast Fireball)!”


쿠콰콰-!! 엄청난 폭음과 함께 대지가 요동쳤다. 망고넬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폭발에 적 병사들은 사다리를 놓는 것도 잃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마법에 직격당한 충차는 산산이 부서져 날아갔고, 그 파편이 주변의 병사들을 덮쳤다. 충각이 전장 한복판에 꽂힌 채 시뻘건 화염을 토해냈다. 충차를 호위하던 이들은 화염에 휩싸여 보이지도 않게 되어버렸다.


“...좋아, 꽤 하는군.”


멀리서 전황을 지켜보던 스벤달이 이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는 마치 오후의 체스 한 게임을 즐기는 사람처럼 여유가 넘쳤다. 지금의 상황도 그에게는 단지 폰 하나가 죽었을 뿐인, 작은 헤프닝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의 곁에 선 남자마법사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경직되었던 선발대가 북소리를 듣고 다시 진군하기 시작했다. 이제 성벽에 근접한 돌격병들이 사다리를 차곡차곡 올리기 시작했다. 대기하고 있던 저지부대가 막대기로 밀어 떨어뜨리려고 했으나 사다리 끝이 갈고리 형식으로 되어 있어 여의치가 않았다. 이걸 해결하려면 직접 몸을 일으켜 사다리 자체를 파괴해야 하는데, 적들이 이걸 가만 두고 볼 리 없었다. 병사 몇몇이 몸을 일으키자 후방에서 대기하던 적 궁수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화살비를 퍼붓기 시작했다.


“흡!”


“크헉!”


“물러서지 마. 한 명이 방패로 가려주고, 다른 한 명이 사다리를 처리하면 돼!”


그러나 장교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사망자가 속출했다. 아무리 성벽이 몸의 대부분을 가려주고 있다곤 해도, 적은 원거리부대만 2천에 달했다. 화살 2천발을 쏴 5%만 맞춘다고 해도, 레인스터는 100명의 전력을 잃게 되는 셈이다.


“부상자를 후방으로 옮겨, 어서!”


부상을 입은 이들은 의무병에 의해 성벽 아래의 지구대로 옮겨졌다. 군의관과 더불어 적지 않은 수의 구호부대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갑자기 밀려드는 부상자의 행렬에 금세 손이 모자라기 시작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분들은 지혈만 하고 기다리세요. 중상자부터 먼저, 거기 병사분은 부상자들의 갑옷을 벗겨주세요. 우리는 갑옷의 이음매 같은 건 알지 못합니다.”


아비규환의 현장 속에서 어린 소년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포와 절규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당황해 하는 가운데, 카이안이 재빠르게 그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어서 지혈제를! 군의관님, 치료순서를 정해야 합니다. 저기 목이 뚫리신 분은...가망이 없어요.”


그는 어린 시절 배웠던 응급처치기술을 살려 의무병대에 지원했다. 의무대가 직접적인 전투가 일어나는 지역은 아니었기 때문에 크리드도 이번에는 이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전문 의료기술을 떨어질지 모르나 카이안은 특유의 침착함으로 부상자들을 통솔하기 시작했다.


“으...으윽, 살려줘...”


“이 정도론 안 죽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자, 화살촉 빼낼 테니 이 악 무시고.”


한 병사의 치료가 끝나자 그는 손에 묻은 피를 물로 씻었다. 그런데 잠시 숨을 돌리고 있자니 건물 지붕이 소나기를 맞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것이 적군의 화살공격임을 깨닫자 카이안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성벽 위의 병사들은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디리터, 내가 좌측으로 간다!”


이칼롯이 갤러리를 질주하며 말했다. 몸을 가린 방패에는 이미 10개도 넘는 화살이 꽂혀 있었는데, 이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쉴 새 없는 궁사가 이어졌다.

그는 막 사다리를 넘어오려는 적을 발견하고 그대로 발로 걷어찼다. 뒤이어 다른 병사가 여장에 손을 얹자, 그는 방패를 들어 그대로 그자의 손목을 찧어버렸다.


“끄흐아악!!”


그가 주문한 카이트실드는 적을 내리찍을 수 있게 밑을 뾰족하게 만든 것이었다. 방패 모서리의 예리함은 웬만한 강철 쐐기 못지않아, 여기에 찍힌 자들은 하나같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물러서지 마시오! 성벽이 점거당하면 끝장이오!”


이칼롯은 화살 세례에 겁먹은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한편으로 끊임없이 검을 휘둘러 적을 쳐냈다. 이런 별동(別動)은 디리터 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야 하!”


디리터의 양손검이 그 어느 때보다 불을 튀기고 있었다. 사다리를 넘어 올라오는 적은 예외 없이 그의 일격과 마주해야 했는데, 원심력을 무지막지하게 실어 휘두르는 그의 공격은 막아도 몸이 뒤로 밀려날 정도였다. 그리고 성벽 위에서 뒤로 밀린다는 건, 곧 추락을 의미했다.


“으아아아!!”


전투 전의 긴장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신나게 검을 휘두르며 적을 분쇄하고 다녔다. 특히 그의 검은 두께만큼이나 파괴력도 대단하여, 한 번 휘두르면 도끼로 맞은 것처럼 사다리가 퍽퍽 부서져 나갔다. 박살 난 사다리와 함께 나동그라지는 적병을 보는 게 또 묘한 희열이 있어서, 그는 더욱 고무되어 난동을 부렸다.

물론 방패를 들지 않았다는 게 문제이긴 했다. 하지만 이 또한 그의 비현실적인 무장이 해결해주었다.

까앙!


“....”


그의 광란을 자중시키려던 제리온이 할 말을 잃고 입을 딱 벌렸다. 화살이 디리터의 투구에 막혀 튕겨 나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디리터 역시 놀랐는지 몇 초간 기울어진 고개를 문질렀으나, 곧 기운을 되찾고 공격을 재개했다.


“와하하! 제리온, 방금 봤냐? 돈지랄이 좋긴 좋아!”


전투는 이미 도시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곳곳에서 불과 칼이 난무하고, 쓰러진 병사가 성벽 아래로 떨어지기가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특히나 성벽에서 돌출된 돈대와 치(稚) 부근에서는 양측의 최정예 병력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백천기사단과 흑연기사단, 백과 흑의 처절한 교합이 이어졌다.

제리온이 있는 성문은 말할 것도 없었다. 미터 간격으로 배치된 사다리에서 꾸역꾸역 밀려드는 적군은 아무리 쳐내도 끝이 없었다. 얼마간 지휘에만 열중하던 제리온이 드디어 두 번째 캐스팅에 들어갔다. 곧 그의 머리 위로 10여개의 붉은 구체가 생성되었다. 구체는 호두만 한 크기로, 저글링이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 뒤엉켜 빙글빙글 회전했다.

제리온은 이번에는 큰 소리로 마법을 예고하진 않았다. 처음의 것이 선전용이라면, 이번 것은 실용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마이너 미티어(Minor Meteor).”


그가 손을 뻗자 구체 하나가 사다리 몸체로 쇄도했다. 이어 그것은 통렬한 폭발을 일으켰는데, 사다리가 여지없이 두 동강 났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씨융-쾅, 씨융-쾅

나머지 구체도 곧 적재적소로 발사되었다. 불행하게 폭발에 휘말린 대여섯의 병사를 포함하여 도합 11개의 사다리가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이렇게 되자 등성(登城)에 열을 올리던 적도 한풀 기세가 꺾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게 끝은 아니었다.


“후욱-. 기름!”


적에게 한 모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제리온이 외쳤다. 곧 펄펄 끓는 기름이 성벽 아래로 쏟아졌다. 기름은 사다리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병사들에게 쏟아졌고, 그들은 곧 소름끼치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굴렀다. 어찌나 그 비명이 처절한지, 기름을 부은 병사가 흠칫 놀라 어깨를 떨 정도였다.


“좋아, 씨발, 존나 좋아! 대열 정비하고, 궁병대는 계속 화살을 퍼부어!”


그의 일갈에 헝클어져있던 진형이 본모습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마구잡이로 활을 쏘아대던 이들도 장교의 명령에 따라 일제사격 체제로 돌아갔다. 불화살이 하늘을 수놓았고, 몇 개는 피치(pitch)에 묻어 기다란 화염을 뿜었다.

정오를 넘어 시작한 전투는 어느덧 석양을 향해 활을 쏘아댈 지경에 이르렀다. 스벤달도 더 이상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는지 퇴각을 명령했다. 그러자 적의 선발대는 지금까지의 공세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방패부대의 원호아래 질서정연하게 퇴각을 시작했다.


“...가는고만.”


적들이 멀어져가자 레인스터의 병사들이 하나둘 무기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얼마나 활을 쏘아댔는지, 얼마나 창을 휘둘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얼떨떨한 시간이 지나가고, 곧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쳇, 아직 살아 있었네.”


제리온이 터덜터덜 걸어오는 이칼롯을 보며 웃었다. 그는 대답 대신 수십 개의 화살이 꽂힌 방패를 보여주었다.


“너야말로. 첫날치곤 나쁘지 않군.”


“첫날치곤. 아직 저쪽의 주력은 나오지도 않았다고. 게다가 저 자식들 퇴각하는 거 봤어? 쫄려서 도망간다기보단 밥 먹으러 물러나는 모양새였다고. 아직 기세 면에선 한참 모자라.”


“야습해오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내가 스벤달이라면 오늘 밤은 푹 쉬겠어. 저쪽도 몇 날 며칠을 행군해 지쳐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서 제리온은 갤러리를 둘러보았다. 널브러진 시체는 흑연기사단의 것도 많았지만, 레인스터 병사 역시 적지 않았다. 이칼롯도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적의 군세는 이쪽의 10배 이상. 그러니 사상자 비율이 10대 1이 되지 않고선 수지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레인스터의 사상자 수는 눈대중으로 보아도 일백은 되어 보였다. 반면 흑연기사단은 성벽 아래의 시체를 합산해도 500수준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자면, 이는 그리 좋은 결과가 아니었다.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어쨌든 오늘은 살아남았잖아.”


어느새 다가온 디리터가 투구를 벗으며 말했다. 어찌나 땀이 차 있었는지 그의 머리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쳇, 넉살 좋은 소리하네. 역시 이대론 힘들어. 루도 녀석이 빨리 지원군을 끌고 와줘야 할 텐데.”


제리온이 루도 일행이 떠나간 방향을 보며 투덜거렸다. 만약 쉬지 않고 말을 달렸다면, 지금쯤이면 아르카디아 인근에 도착했을 것이다.


“자, 그놈들은 그놈들이고. 밥이나 먹자. 군인은 밥심으로 싸우는 거잖냐.”


“오냐 씨발. 말 한번 잘했다.”


겨울의 밤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곳 밥 짓는 연기가 여기저기서 피어올랐고, 이는 흑연기사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모닥불 사이의 거리가 안도감을 주었는지, 제리온과 디리터는 저녁을 먹자마자 단잠에 빠져들었다.

전쟁의 첫날은 그렇게 끝이 나고 있었다.


***


루도 일행이 아르카디아 외곽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달이 뜬 뒤였다. 반나절 내내 달려와 사람도, 말도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 지체할 시간 따윈 없었다.

일행은 영지 외곽의 경계초소로 다가갔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성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이런 자그마한 영지의 경우 치안상의 이유로 밤에는 모든 출입구를 봉쇄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하더라?”


“어떻게 하긴, 권력남용이지.”


루도는 로샤단의 휘장망토를 손에 들고는 성문을 향해 말을 몰았다. 그는 망루에 대고 외쳤다.


“계십니까? 문 좀 열어주시죠.”


그러자 망루에 앉아 졸고 있던 병사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일렬로 늘어선 루도 일행을 보며 말했다.


“뭐요. 우리 영지는 아침이 되어야 출입구를 개방하니 물러들 가시오. 저어기 골짜기에 여관이 하나 있으니 거길 쓰시든지.”


“우린 공적인 용무로 온 거거든요. 레인스터의 지원군 문제로 이곳 영주님을 꼭 뵈어야 하니, 어서 문 좀 열어주시죠.”


“레인...스터?”


어둠 속이었지만 그자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만은 똑똑히 보였다. 마치 입에 담아선 안 될 금기를 접한 사람처럼 정색하는 그를 보며 루도는 눈썹을 씰룩였다. 그는 성문을 열기는커녕 근처의 상관과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속닥거리고 있었다. 보다 못 한 레미나가 앞으로 나섰다.


“어서 문 안 열고 뭐하시나요?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아...예.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저희도 절차라는 게 있는지라...”


“그 무슨...이보세요, 병사. 저는 레미나 리크나이츠입니다. 리크나이츠 왕실의 이름으로, 지금 당장 성문을 개방하길 명령합니다.”


“!!”


그러자 조금 전의 그것보다 훨씬 생동감 넘치는 반응이 나왔다. 병사는 곧 숨이 넘어갈 사람 같은 얼굴이 되어 말했다.


“레, 레미나 공주님?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십쇼. 지금 당장 영주님을 불러오겠습니다.”


“...네?”


뭐라 반문할 틈도 없이 그는 망루 아래로 사라졌다. 레미나가 직접 신분을 밝혔는데도, 그는 성문을 열기는커녕 영주를 부르러 간 것이다. 일개 영주와 최고왕족인 레미나의 서열관계를 고려하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병사가 사라지자 다시 사위는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그러나 곧, 유미르네가 이상을 감지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일반인에게는 없는, 수많은 전장을 거쳐 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직감이었다.


“흐음, 안 좋아 안 좋아.”


“음? 뭐가?”


“세상은 넓고 쓰레기는 많다는 거지. 공주님, 혹시 모르니 퇴로를 확보해두는 게 좋겠네요.”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뚱딴지같은 제안에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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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2 26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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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30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09 24 14쪽
283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3) +1 15.05.20 1,043 27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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