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조회수 :
358,966
추천수 :
10,757
글자수 :
2,844,987

작성
15.05.18 03:41
조회
930
추천
23
글자
23쪽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2)

DUMMY

여정은 천정기사단을 찾아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데루루피아와 만난 후, 그녀에게서 제르칸트의 소재를 파악해 행선지를 정하는 형태로 정해졌다. 인원은 마리네와 이칼롯에 서른 명의 기사가 합류한 형태였으나 시끌벅적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특히 이칼롯은 이동하는 와중에는 늘 생각에 골몰해 있었기 때문에 안 그래도 그의 오오라(?)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로서는 더욱 말을 걸기가 껄끄러워졌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대화는 주로 마리네와, 분견대의 지휘를 맡은 란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로샤단과 함께 하게 되다니 영광인데. 아참, 루도 클로람이 무사하다고 했었지? 내가 찾은 자료를 찾아냈을지 궁금한데."


"자료라면...그 제리온이 부탁했다는 거죠?"


"그래. 음, 너라면 아마 말해도 상관없겠지."


란돌은 조심스럽게 전대 에스터페른의 아이 '예토 클로람'에 대해 언급했다. 마리네 역시 클로람이라는 이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우연이라 치부하기에는 클로람이 결코 흔하지 않은 성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미스터리 매니아라고 말을 했던가? 과연 람카디스 클로람이 예토 클로람과 아무 연관도 없을까?"


"저도 좀 미심쩍긴 한데...혹시 클로람 가문에 대해서는 알고 계세요?"


그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리 자세히 조사해본 건 아니지만 말이야. 클로람과 유사한 종류의 이름이 텔아단에서 종종 거론되곤 하지."


"람이 텔아단 출신이라는 얘긴 못 들었는데...혹시 예토가 먼 조상뻘 되는 사람인 게 아닐까요?"


현재로선 그게 가장 현실성 있는 - 또한 싱거운 - 추론이었다. 족보를 파헤치다 보니 신의 아이와 맞물린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지금 황무지를 횡단하는 그들에겐 알 수 없는 문제였다. 제발 루도가 책을 챙겨갔기를, 그래서 란돌이 찾은 자료보다 더 많은 것을 발견해내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예토의 진실에 근접한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아 참, 아루의 수정이란 건 정확히 뭐지? 무기 같은 건가?"


란돌은 나이에 맞지 않게 호기심이 왕성했다. 그가 가진 위치만 아니라면 그냥 성격 좋은 동네 형이라고 믿어도 좋을 정도였다. 마리네는 그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주는 한편, 적당히 위험한 정보는 생략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걸 가지고 뭘 한다는데....저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원형은 수정인데 신의 아이가 자기 입맛에 맞게 변형시키고 하는 모양이더라고요."


"역시 아티팩트인가? 요즘은 정말 생전 처음 보는 것들투성이란 말이지. 악마도 그렇고, 신의 아이도 그렇고."


그렇게 말하며 그는 어린애처럼 눈동자를 반짝였다. 반면 마리네는 그의 반응에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긴 했지만 기본적인 분위기는 이칼롯과 마찬가지로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 여행이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기에, 게다가 일이 잘못되면 또 누군가의 죽음으로 종식될 가능성이 있기에 좀처럼 좋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이었다.


탁 트인 개활지를 타고 시린 바람이 날아와 옆얼굴을 두드렸다. 일행은 혹시 날아갈까 싶어 옷깃을 잔뜩 여미어 보았지만 추위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반면 하늘은 혹독한 겨울이라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청명하기만 했다. 푸르고, 또 싸늘하다. 그대로 손을 뻗으면 청의 팔레트 속으로 쑤욱 집어삼켜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마리네는 손을 뻗지도, 하늘을 올려다보지도 않았다. 그에게 겨울은 단지 춥고 음습하기만 했다.


천정기사단을 찾아가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스트리카의 성마르세아 기사단을 몰아낸 명성으로 들리는 마을마다 그들과 관련한 정보가 넘쳐나고 있었다. 심지어 적의 점령지를 통과하기 위해 변장하고 들어간 적도 있었는데, 주둔군조차 천정기사단이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기사단은 수도 라키시아를 향해 북서쪽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이렇다 보니 그들을 찾는 일행과는 동선이 정확히 교차하여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접선은 왕실기사단 특사 역할을 맡은 란돌이 처리해 주었다. 곧 일행은 기사단 본대로 안내되었고, 그곳에서 데루루피아와 만날 수 있었다. 데루루피아는 반가운 얼굴에 깜짝 놀라 얼른 뛰쳐나왔다.


"어머머?! 이게 누구야. 마리네! 이칼롯!“


그녀는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칼롯까지 얼싸안고는 잠시 동안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마리네는 그녀의 포옹에 화답하면서도 심드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기사들의 시선에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예상 외로 데루루피아의 소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포옹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진중한 얼굴이 되어 물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니? 왕실기사단까지 호위로 붙이고...혹시 국왕 폐하의 전언이라도 가지고 온 거니?”


마리네는 애매하게 시선을 회피했다. 차라리 그런 용무였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했을까. 그가 주저하는 게 보이자 데루루피아는 곧바로 이칼롯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가 말했다.


“제르칸트를 찾으러 왔다. 그의 소재를 아는 사람은 당신뿐이니까.”


“...제르칸트라고?”


그의 이름을 언급하자 데루루피아의 안색이 일순 돌변했다. 의혹과 두려움, 심지어 잠깐뿐이었지만 살기까지 비춰지는 그녀의 얼굴에 마리네는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일단 자리를 옮겨 마리네, 이칼롯만 남기고 모두 쫓아냈다. 분견대장인 란돌이 자기도 낄 자격이 있다며 입맛을 다셨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우리는 로샤단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제르칸트를 찾는다면 어차피 우리도 알게 될 텐데요.”


“그건 로샤단이 결정할 문제지 내 알 바 아니에요. 미안하지만 나는 왕실기사단을 신뢰할 수 없어요.”


“끄응...”


란돌이 나간 뒤에도 그녀는 천막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펴 감청의 여부를 배제했다. 평소 같으면 호들갑 좀 그만 떨라고 할 만한 요란스러움인데도 그녀를 타박할 수 없는 것은 그만큼 그녀의 낯빛이 무겁게 굳어있기 때문이었다. 이만 되었다 싶었는지 그녀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그는 왜 찾지?”


이칼롯은 가타부타할 것 없이 곧장 제르칸트의 서신을 보여주었다. 그녀도 단숨에 상황을 파악하고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하지만 이칼롯이 그랬듯, 그녀도 서신 자체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걸 제르칸트가 보냈다고? 누가 받은 건데?”


“아마도 류이너스 교단. 우리도 레밀리오 사제에게 전달받은 거다.”


“안개송곳니가 수정을 찾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왜 지금....아니지, 지금까지 안 들킨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만약 레이시가 작정하고 수색에 나섰다면 아무리 깊은 산골에 숨어도 꼬리를 밟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안개송곳니 쪽에는 뛰어난 마법사와 악마까지 있다고 하니, 상식 외의 수단을 동원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류이너스 교단일까? 피차 첩자의 존재를 알고 있을 터인데 말이다. 하지만 이 문제도 어떻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제르칸트로서는 서신을 데루루피아에게 전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을 테지만, 연락이 끊긴 상태에서 게다가 리크나이츠의 남부 초원까지 달려온 그녀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어차피 미리 준비해간 전서구는 도착지를 류이너스 교단으로 기억하고 있을 테니, 좋든 싫든 수신자는 베른헬트 주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떠오르는 의혹을 차례차례 합리화시켰다. 만약 편지를 들고 온 게 로샤단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훨씬 더 음모론적인 자세를 견지해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로샤단이라는 믿음, 마리네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알게 모르게 이 편지가 진짜라고, 정말로 제르칸트가 위험해 처한 것일 거라고 그녀를 닦달하고 있었다.


“첩자의 존재는 나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르칸트의 위험을 등한시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커.”


“그...그렇지. 나도 늦든 빠르든 덜미가 잡힐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긴 하지만...시간이 촉박하지?”


데루루피아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좀 일이 풀리나 싶었는데, 그때마다 또 다른 사건이 터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녀는 말을 꺼내기에 앞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왕실기사단의 인기척을 살폈다. 란돌의 넉살 좋은, 그래서 왠지 의심이 가는 미소가 떠올랐는지 그녀는 쓰리게 눈썹을 찌푸렸다.


“저 사람들, 믿을 만한 거니?”


“아마도. 케이달 위릭 경이 직접 차출해준 병력이다.”


“그래. 그러길 빌어야지.”


그녀는 탈력감이 드는지 늘어지듯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질끈 묶은 하늘색 머리칼이 등받이 모서리를 기점으로 굽이쳤다.


“제르칸트는 안데인 산에 있어.”


짧고, 명료한 정보였다. 그걸 끝으로 데루루피아는 입을 뚝 다물어버렸다. 안데인 산의 위치를 헤아리던 마리네는 그녀의 태도를 보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안데인 산에. 그다음은요?”


“그게 다야.”


“그게 다라니...안데인 산이 얼마나 큰데요.”


마리네의 말대로였다. 안데인 산은 크고, 넓고, 게다가 산세가 가팔라 몇 m 움직이는 데만도 적지 않은 체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 깊숙이 숨어버린 사람을 찾으라니, 일개 대대를 투입해도 봄이 오기 전에 끝마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물론 데루루피아도 자신의 발언이 너무 황당무계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녀는 품속에서 꼬깃꼬깃한 스크롤을 꺼내고는, 두 사람의 귓가에 대고 소곤대기 시작했다. 그것은 제르칸트를 찾을 수 있는, 정확히는 그를 불러낼 수 있는 일종의 암호 같은 것이었다. 마리네와 이칼롯은 마른 침을 삼키며 그녀의 설명에 집중했다.


“알았지? 스크롤은 한 장뿐이야. 절대 잊어버리면 안 돼.”


“만약 스크롤을 썼는데 제르칸트가 보지 못한다면?”


“그럼 에리안델이 보겠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설명이 끝나자 데루루피아는 쓰디쓴 사탕을 삼킨 것처럼 아주 조금 입꼬리를 올렸다. 왠지 금기를 발설한 것만 같은 죄스러운 기분이 목덜미를 타고 도는 것이었다. 용무가 끝나자 이칼롯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데인 산이면 서둘러야겠군. 마리네, 가자.”


“어, 바로 가는 거야?”


마리네는 만나자마자 떠나는 게 마음에 걸리는지 조심스럽게 데루루피아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의자에 가지런히 손을 모은 자세로 쓰게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막 두 사람이 천막 문을 나서기 전 그녀가 말했다.


“가이잘모는 잠시 친위대와 함께 정찰을 나갔어. 알룬도도 함께. 인사하고 가지 않을 거니?”


이칼롯의 발걸음이 일순 정지하는 듯싶었다. 가이잘모 아델하트...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이제 와선 어떻게 보답해도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는 은인이. 그러나 감상적인 기분은 찰나에 불과했다. 이칼롯은 눈을 꾸욱 감았다 뜨는 것으로 짧은 망설임을 마무리 지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이번 일이 무사히 마무리되면, 그때 다시 오지.”


“그렇구나. 그럼 나도 함께...”


“안 돼. 편지의 내용이 진짜라면 제르칸트를 만나는 과정에서 교전이 벌어질지도 몰라. 여긴 우리에게 맡기라고.”


아직 말안장에 묻은 모래먼지가 채 떨어지기도 전이었다. 말들이 피로를 토로하며 거칠게 투레질을 했으나 일행은 녀석들을 애써 위로하며 위에 올라탔다. 남동쪽만을 향하던 기수는 이제 바람이 불어오는 북쪽을 향하게 되었다. 단순히 거리만 따지자면 교도 류이덴사와도 그리 멀리 떨어지진 않는다. 다만 예정에도 없는 산행이라, 아니 - 억지로 변경되었던 계획이 이런 식으로 되돌아온 것은 아닐까? 루도가 그리하듯, 마리네 쪽 역시 어느샌가 경사진 산비탈을 오르고 있었다.



안데인 산 부근에 딱히 거점으로 삼을 만한 도시는 존재하지 않았다. 워낙 산 자체가 넓은 데다 지형이 척박하기 때문에, 군데군데 소규모의 촌락만이 산재해있을 뿐이었다. 때문에 일행은 천정기사단과 헤어진 이후로는 변변한 보급도 하지 못한 채 강행군을 이어가야 했다. 식사라고는 건량이 전부고, 가끔 마시는 차 한 잔만이 얼어붙은 몸을 녹이는 유일한 낙이었다. 말들도 기력이 빠질 대로 빠져 그저 주인이 이끄는 대로 한 걸음씩 지친 발걸음을 이어가고만 있었다.

예상 외로 함께 온 왕실기사단원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일은 없었다. 굳이 좋은 쪽으로 말하자면 성공적인 임무완수를 위해 개인적인 고충은 감내하고 있다고 말해야겠지만, 사실은 그들과 함께하는 로샤단의 명성이 나름의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분견대 중에는 마리네, 디리터와 대련을 벌이다 패배한 이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로서는 이제 로샤단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래야 않을 수 없기에, 경외심 혹은 질투심에서라도 볼멘 소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 이칼롯의 존재감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국왕구출 당시 나이트셰이드의 숨통을 끊어버린 일화는 이제 레인스터에서 그가 보여준 무용담과 합쳐져 무인은 물론 민중에게까지 일파만파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제 기사들은 국왕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그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대단한 사명감에 휩싸인 듯한 기분에 빠질 정도였다.


“저, 제르비안 경. 팔은 좀 괜찮으십니까?”


한 기사가 쭈뼛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이칼롯의 작위는 없었지만, 어느샌가 모두가 그를 ‘경’이라 높여 부르고 있었다. 이칼롯은 아직 깁스가 풀리지 않은 왼팔을 내려다보며 답했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아직 검을 쥐기엔 무리지만...그래도 발목을 붙잡진 않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앗,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닙니다만. 혹시 기분 나쁘게 들리셨다면 사과드립니다.”


기사는 깍듯하게 묵례를 올렸다. 그의 절도 있는 태도에 이칼롯은 빙그레 입꼬리를 올렸다.

여로는 산의 고도가 높아져 감에 따라 점차 거칠어졌다. 일행은 마지막 촌락에 들러 말을 맡기고 도보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추위로 얼어붙은 산길을, 그것도 무거운 갑옷을 입은 채 이동하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란돌은 갑옷 이음매에 낀 성에를 떼어내며 뿌연 입김을 내쉬었다.


“이거야 원, 기사가 아니라 레인저를 대동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로샤단도 레인저였지.”


통풍이 되지 않은 갑옷 안이 땀으로 가득 차고, 다시 땀이 식으면서 체온을 무서운 기세로 빼앗아 가고 있었다. 일행이 산 중턱에 올랐을 때엔 기사들뿐 아니라 마리네도 온몸이 얼어붙어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이칼롯은 적당한 공터를 찾아 일행을 휴식시키고는 데루루피아에게서 받은 스크롤을 꺼냈다. 스크롤에 적힌 문자는 그로서는 도무지 읽을 길이 없었지만, 그것이 제르칸트와의 만남을 주선해주리라는 것만은 확신했다. 잠시 목을 축이던 마리네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지금 쓸 거야?”


“음. 다들 너무 지쳤어. 이곳을 거점 삼아 기다리자.”


이칼롯은 마법이 잘 뻗어 나갈 수 있게 되도록 나무가 없는 장소를 찾아 움직였다. 대충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자 그는 스크롤을 반으로 찢으며 말했다.


“서몬 일루전(Summon Illusion)"


스크롤의 글귀가 빛을 내며 허공에 떠오르더니, 이내 합쳐져 커다란 새의 형상을 띄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만들어진 허상은 잠시 빛을 갈무리하다가 지면과 정확히 수직이 되도록 날갯짓을 펴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주 천천히, 깃털이 산들바람에 떠오르듯 유려한 자태로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끼루룩, 끼루룩!”


허상은 날갯짓을 하는 사이사이 규칙적으로 긴 울음을 토해냈다. 그것은 기러기 같기도 하고, 비둘기 같기도 하고, 종달새 같기도 했다. 하지만 녀석의 울음소리는 그 어떤 새의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특별하고, 또한 상징적이었다.

곧게 수직으로 날아가는, 기이한 울음소리의 새. 그것이 데루루피아와 제르칸트가 정한 접선의 메시지였다. 만약 제르칸트가 멀리서 녀석을 보았다면 반드시 일행이 머문 장소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칼롯과 마리네는 허상이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빛의 파편이 되어 사라지는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메시지는 남겼으니, 이제 제르칸트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일행은 적당히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골라 야영에 들어갔다. 고된 여정이었기에 불침번을 제외한 인원은 자리에 눕자마자 금세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록 피로가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을지언정, 겨울 그것도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는 산중에서 노숙을 하기란 대단히 위험한 모험이었다. 이칼롯은 혹시 불길이 약해질까 싶어 연방 장작을 던져댔다. 그때마다 모닥불은 탁, 탁 하고 기분 좋은 트림 소리를 냈다. 란돌은 모닥불을 사이에 둔 채로 이칼롯과 마주 보았다. 짓궂게 슬쩍 올라간 입꼬리. 반면 이칼롯의 표정은 그의 미소가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변화가 없었다.

그가 말했다.


“말을 타고 달리는 것 외엔 그다지 문제가 없는 임무로군요. 전장에 비하면 이것도 나쁘지 않은데요.”


“지금까지는 그렇겠지요.”


지금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안데인 산에 들어온 직후부터 이칼롯은 전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편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안개송곳니 역시 이 일대를 배회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진득하게 눌어붙은 공기는 작위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고요하기만 했다.


“제르칸트라는 분을 만나 안전하게 본영까지 데려오면 되는 거였죠.”


“그렇습니다.”


“만약 임무가 실패할 위기에 놓이면 어떻게 해야 하죠?”


이칼롯은 잠시 말이 없었다. 밤이 깊은 것을 고려하면 란돌의 목소리는 지나칠 정도로 컸다. 아마 몇몇은 자는 척하며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을 것이다. 이칼롯은 어쭙잖은 안도감보다는 차라리 각오를 다지는 게 앞으로를 위해 낫다고 생각했다. 그가 말했다.


“아루의 수정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최우선입니다.”


수정을 위해서라면 다소의 희생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잠든 이들 사이에서 모포 자락이 꿈틀대는 게 보였다. 란돌이 깍지 낀 손을 입 앞에 모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가 안개송곳니를 얼마나 막을 수 있겠습니까?”


순간 지금까지 싸웠던 적들의 실루엣이 이칼롯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자 가벼운 소름이 돋아 그는 그만 란돌의 시선을 회피하고 말았다.


“넷...아니, 다섯 정도일까요.”


“다섯 정도는 상대할 수 있다는 겁니까? 흠.”


아쉽게도 이칼롯의 말뜻은 조금 달랐다.


“...안개송곳니 단원 중 다섯이 온다면...”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죽을 것이다 - 비록 입에 담진 않았지만 란돌은 그의 눈빛을 읽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하핫, 이거 참. 내일은 제발 운이 좋기를 빌어야겠군요.”


이칼롯은 다시 장작 하나를 불 속에 집어던졌다. 먹이를 받은 불꽃은 재차 타오르며 그 위세를 이어갔다. 붉은 음영이 두 사람의 얼굴 위로 너울거렸다. 그 후로 불침번이 교대할 때까지 특별한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잠든 사람들 역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튿날이 되어서야 일행은 비로소 제르칸트와 조우할 수 있었다. 일행은 바람을 피하기 위해 높게 솟은 절벽을 칸막이 삼아 야영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그는 막 짐을 정리하던 기사들 사이로 뛰어내렸다. 예고도 없는 갑작스러운 등장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당황하여 허둥지둥거렸다.

그러나 다시 만난 제르칸트의 안색은 그리 좋지 못했다. 재회의 기쁨이나, 지원군을 만난 데에 대한 안도감 따위는 전혀 엿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애써 유지하는 평정 사이로 비통함마저 느껴져, 이칼롯은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제르칸트는 반가움에 달려오는 마리네를 일언지하에 가로막았다.


“어째서 여기 온 것이냐.”


명백한 추궁의 어투였다. 게다가 그것은 마리네뿐 아니라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를 구하기 위해 밤잠까지 설쳐가며 달려온 일행으로서는 황당한 반응이었다. 마리네가 영문을 몰라 말했다.


“어째서라뇨. 제르칸트를 구하려고 온 거잖아요.”


“나를 구해? 무슨 잠꼬대냐. 내가 너희를 구하러 온 거다.”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아까웠는지 제르칸트는 마리네의 어깨를 강하게 밀쳐냈다. 보통은 무례하다며 이의를 제기할 상황인데도, 그의 태도가 워낙 다급했기 때문에 기사들도 뭐라 나서질 못했다. 그러자 그는 멍하니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오히려 역정을 내며 말했다.


“어서 짐을 챙기시오!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하오!”


기사들은 어리둥절하여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란돌이 부하들의 동요를 자제하며 말했다.


“교단수호기사 제르칸트 랄로프 경이 맞으십니까? 저흰 당신이 보낸 지원요청 서신을 받고 달려온 사람들입니다만.”


그러자 제르칸트는 눈썹을 있는 대로 뭉그러뜨리며 말했다.


“난 그런 서신을 보낸 적 없소.”


「무언가가 잘못됐다」 그 막연한 예감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 서늘한 한기가 이칼롯의 목덜미를 휩쓸고 지나갔다. 마리네 역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제르칸트의 허리춤에 걸린 롱소드가 웅웅거리며 진동하고 있었다. 신체를 접촉한 제르칸트 외에는 그 누구도 검이 전하는 메시지를 들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것이 한가한 잡담 따위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남동쪽 방향에서 악마 네 마리가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어요. 전부 슬러터급이에요. 그리고 북서쪽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둘. 곧 있으면 조우할 거예요.」


“...라고 하는구나. 너희들, 꽤 성가신 것들을 꼬랑지에 달고 왔구나.”


이칼롯은 순간 격정이 치밀어 자기도 모르게 부러진 왼팔의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손아귀 안에는 꼬깃꼬깃 접힌 양피지가 하나. 제르칸트가 보냈다는 ‘가짜’편지였다. 제르칸트를 구하러 온 자신들이, 오히려 그를 꾀어내는 미끼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완전히 속았다는 사실에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람의 계승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일러스트를 받았습니다! +7 15.07.26 1,297 0 -
공지 세계관 - 데루루피아의 편지 +7 15.03.22 3,315 0 -
345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4) +104 15.09.01 2,317 49 24쪽
344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3) +15 15.08.20 1,059 26 20쪽
343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2) +11 15.08.09 1,066 35 23쪽
342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1) +11 15.07.26 1,181 39 22쪽
34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4) +23 15.07.20 1,215 40 11쪽
34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3) +26 15.07.13 1,132 53 16쪽
33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2) +35 15.06.12 1,401 51 11쪽
33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1) +11 15.06.10 1,013 42 11쪽
337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0) +12 15.06.03 1,014 36 19쪽
336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9) +6 15.06.02 1,093 32 17쪽
335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8) +6 15.06.02 952 31 15쪽
334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7) +2 15.06.02 970 27 16쪽
333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6) +3 15.06.02 972 28 20쪽
332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5) +2 15.06.02 925 25 15쪽
33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4) +3 15.06.02 990 25 19쪽
33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3) +7 15.06.01 913 33 18쪽
32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2) +2 15.06.01 930 27 22쪽
32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 +3 15.06.01 878 26 23쪽
327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5) +5 15.05.31 935 29 13쪽
326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4) +1 15.05.31 850 23 19쪽
325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3) +2 15.05.31 918 25 22쪽
324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2) +2 15.05.31 948 24 19쪽
323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1) +1 15.05.31 782 21 20쪽
322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5) +10 15.05.30 980 34 21쪽
321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4) +5 15.05.30 877 26 19쪽
320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3) +6 15.05.27 1,020 30 18쪽
319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2) +2 15.05.27 747 28 15쪽
318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1) +3 15.05.27 769 29 14쪽
317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4) +1 15.05.27 900 26 18쪽
316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3) +8 15.05.26 898 23 27쪽
315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2) +2 15.05.26 773 24 23쪽
314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1) +3 15.05.26 866 20 28쪽
313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5) +2 15.05.26 844 26 21쪽
312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4) +1 15.05.26 892 25 18쪽
311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3) +3 15.05.26 1,089 24 25쪽
310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2) +3 15.05.25 874 25 28쪽
309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1) +2 15.05.25 969 22 18쪽
30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1) +2 15.05.25 725 26 23쪽
307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0) +1 15.05.25 748 20 22쪽
306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9) +1 15.05.25 769 20 14쪽
305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8) +4 15.05.25 806 27 17쪽
304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7) +2 15.05.24 934 26 19쪽
303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6) +3 15.05.24 866 22 13쪽
302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5) +2 15.05.24 942 28 19쪽
301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4) +1 15.05.24 843 21 16쪽
300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3) +2 15.05.24 883 23 24쪽
299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2) +2 15.05.24 1,030 29 18쪽
29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 +2 15.05.24 909 25 21쪽
297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5) +6 15.05.23 1,107 21 29쪽
296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4) +1 15.05.23 846 23 20쪽
295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3) +1 15.05.23 948 22 20쪽
294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2) +3 15.05.23 1,137 20 21쪽
293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1) +2 15.05.23 1,079 27 17쪽
292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3) +3 15.05.23 1,139 25 19쪽
291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2) +10 15.05.21 1,053 28 22쪽
290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1) +2 15.05.21 1,109 26 19쪽
289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6) +2 15.05.21 1,080 26 25쪽
288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6) +3 15.05.21 936 24 27쪽
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2 26 25쪽
286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4) +5 15.05.20 1,017 29 21쪽
285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30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09 24 14쪽
283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3) +1 15.05.20 1,043 27 24쪽
282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2) +3 15.05.20 749 23 19쪽
281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1) +1 15.05.20 992 28 22쪽
280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3) +11 15.05.19 1,011 31 30쪽
279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2) +3 15.05.19 1,224 28 17쪽
278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5) +9 15.05.18 1,137 24 18쪽
277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4) +2 15.05.18 808 24 17쪽
276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3) +4 15.05.18 942 22 24쪽
»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2) +3 15.05.18 930 23 23쪽
274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1) +2 15.05.18 1,029 25 19쪽
273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1) +2 15.05.18 974 22 19쪽
27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3) +1 15.05.18 1,221 25 25쪽
27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2) +2 15.05.17 1,011 29 25쪽
27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1) +1 15.05.17 866 20 22쪽
269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0) +1 15.05.17 966 23 23쪽
268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9) +1 15.05.17 1,039 23 20쪽
267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8) +6 15.05.17 907 25 22쪽
266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7) +5 15.05.16 992 26 22쪽
265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6) +1 15.05.16 887 22 26쪽
264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5) +2 15.05.16 1,030 29 26쪽
263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4) +1 15.05.16 1,001 24 24쪽
26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3) +3 15.05.16 857 23 25쪽
26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2) +2 15.05.16 925 23 26쪽
26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 +3 15.05.16 1,060 31 31쪽
259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6) +8 15.05.14 1,064 29 22쪽
258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5) +7 15.05.14 913 22 11쪽
257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4) +4 15.05.14 1,031 21 20쪽
256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3) +3 15.05.14 894 22 31쪽
255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2) +5 15.05.14 999 24 27쪽
254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1) +6 15.05.13 904 24 30쪽
253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0) +3 15.05.13 943 22 24쪽
252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9) +1 15.05.13 995 21 27쪽
251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8) +1 15.05.13 897 18 27쪽
250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7) +4 15.05.12 1,088 26 27쪽
249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6) +5 15.05.12 995 25 27쪽
248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5) +3 15.05.12 1,102 25 2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