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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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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8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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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1)

DUMMY

안데인 산. 지리적으로는 크렘벨과 류이덴사 사이에 위치한, 해발 1500m 수준의 명산이다. 완만한 능선과 계곡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풍부한 수자원, 목축업에 적합한 식생 등으로 예로부터 질 좋은 양과 말을 배출하기로 이름이 높은데, 다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그 경사가 급속도로 가팔라지고 기온도 엉망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극소수의 거주민을 제외하곤 봉우리 근처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북부와 중부를 잇는 교통망이 완공되고 난 뒤부터는 왕래하는 상인들의 발걸음조차 끊어져 이제는 쓸쓸한 메아리소리만 들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 그들이 있었다. 이런 외진 장소이기 때문에 발각되지 않으리라 여겨 발을 들여놓은 지 어느덧 반년. 계절은 어느새 꽃 피던 봄을 지나 가혹한 광풍이 휘몰아치는 겨울에 이르고 있었다.

두툼한 망토를 걸쳐본들 살갗을 베고 침입하는 한기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제르칸트는 옷깃을 여밀 생각도 않은 채 평야지대 탐색에 골몰했다. 사실 그의 시력으로 바라보아봤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눈 덮인 산림과 바위뿐이지만, 그렇다고 헛기침이나 하고 있기엔 남자로서 자존심이 허락지 않기 때문이었다.

휘이이이-. 얼굴을 때리던 바람이 일순 돌변하여 그를 절벽 아래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등에 걸친 망토가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나부꼈다. 그는 옷자락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어때 아가씨. 뭔가 보이나?”


그러자 그의 손에 들린 롱소드가 웅웅대며 답을 전해주었다.


「아직은. 하지만 분명히 느껴져요. 여긴 더 이상 안전한 장소가 아니에요.」


“애매하군. 더 올라가거나 아니면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는데. 뚫고 나가기는...아마 힘들겠지?”


에리안델도 마주한 상황이 탐탁지 않은 듯 진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감지할 정도의 부정(不淨)이라면 악마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설마 악마들도 아루의 수정을 쫓고 있었다니, 지금까지의 역사와 비교하면 충격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행동력이었다.

여전히 시야에는 산과 나무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쪽에서 보이지 않는다면, 저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에리안델이 말했다.


「좀 더 거리를 벌려보죠. 여긴 우리가 지낸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 있어요.」


“어이어이, 더 나은 선택 같은 건 없는 거야? 교단에게 힘을 빌린다든지.”


「그건 안 돼요. 아직 발각되었다고 확신할 상황도 아니잖아요.」


“하아--젠장. 결국 나 혼자 처리하라는 거로구만.”


제르칸트는 품속을 뒤적여 손가락에 느껴지는 수정의 감촉을 재확인했다. 매끈한 느낌의, 한 손에 쏙 들어올 정도의 아담한 크기. 어둠 속에서도 찬란하게 본연의 색을 발하는 그것은, 그러나 한쪽은 이미 빛이 바래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그는 그게 루도의 것임을 알고 있었다.

루프리모의 수정, 그리고 펠아람의 수정. 어느 것이든 적의 손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는 수정이 담긴 주머니의 매듭을 단단히 동여매고는, 더 깊은 은신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라키시아가 함락된 이후, 왕실기사단 지휘부는 날마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논의가 끊이질 않았다. 상징성을 위해서라도 수도를 탈환하긴 해야 하는데, 그러자니 요충지에 눌러앉은 훼창기사단의 규모가 만만치 않았다. 또한 와해한 백천기사단의 재결성이나 진격 중인 천정기사단의 문제, 닥쳐온 겨울에 대비한 보급선의 문제 등 처리해야 할 안건은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게다가 여기에 국가 최고위 관료들 - 란도스 국왕을 비롯하여 지스카르 재상, 로드웰 후작과 케이달 위릭 등등 - 까지 추가되면서 회의는 연일 난장판을 이어갔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게 딱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말석에 앉은 이칼롯은 연일 계속되는 로드웰과 지스카르의 설전에 점점 지쳐가는 중이었다.


“훼창기사단이 라키시아에 틀어박힌 지금이 적기가 아닌가. 이때야말로 크렘벨로 진격하여 적의 보급로를 차단해야만 하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 크렘벨에는 아직 흑연기사단이 진주하고 있을뿐더러 그랬다간 적에게 후방을 내어주고 마오. 일단은 천정기사단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게 최선책이오.”


“그놈의 천정기사단, 천정기사단. 재상께서는 천정기사단이 신의 군대라도 되는 줄 아시나 보오.”


“없는 백천기사단보다는 훨씬 믿음직하지 않겠소?”


백천기사단에 연고지가 있던 로드웰은 지스카르의 뼈 있는 한 마디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부글부글 끓고 있는 이마로 보건대 두 사람의 갈등이 언제든 폭발하리라는 것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함께 따라온 디리터는 늘 가시방석에 앉은 것마냥 식은땀만 흘렸다. 그들이 군사회의에 참석한 이유는 특무별동대로서 레인스터에서 보여준 활약이 참작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직 생사를 알 길이 없는 루도와 레미나 때문이 더 컸다.

이를테면 그들은 공로치하와 심문을 동시에 당하는 중이었다.


"그럼 다음 보고입니다만, 레미나 공주님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시체가 발견된 것도 아니니 일단은 무사하다고 믿고 싶습니다만..."


"당연히 무사해야지. 만약 공주님이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면 위릭 경의 목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오. 라키시아 수비를 맡았으면서도 그분을 보필하지 못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군대로군."


"그만그만. 로드웰 후작, 잠시 숨 좀 돌리셔야겠소. 너무 격앙되어 있는 듯하구려."


레미나의 부재는 정국에 적지 않은 혼란을 몰고 왔다. 그녀가 정식으로 왕위를 포기했다고 해도 귀족들은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복귀를 발판삼아 권력을 되찾으려던 남진파 귀족들은 안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항간에는 북위파가 훼창기사단과 결탁하여 일부러 그녀를 사지로 내몬 것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떠돌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그녀와 마지막까지 함께했었던 로샤단 역시 고운 시선을 받을 리 없었다. 그리고 이 화살을 모두 감내하는 쪽은 물론 이칼롯이었다.


"국왕 폐하, 전 이제껏 폐하의 혜안을 보아온 사람입니다만, 감히 간언하는바, 이번만큼은 폐하의 선택이 실책이었다고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국의 공주를 이런 근본도 없는 무리와 동행시키다니요.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공주가 전장에서 사라지다니 듣도 보도 못한 일입니다."


란도스도 관자놀이만 꾹꾹 눌러댈 뿐 이번만큼은 로샤단을 변호할 수 없었다. 그만큼 레미나의 실종은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 이야기만 나오면 케이달도, 지스카르도 로드웰의 독설에 분을 삭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더욱 기세가 등등하여 말했다.


"당장 처형해도 모자라지 않을 상황일진데 이렇게 어전회의에까지 불러들이시니 저로서는 도무지 폐하의 심중을 헤아릴 수가 없사옵니다."


로드웰의 가시 돋친 시선과 마주하기에는 대단한 각오가 필요했다. 디리터는 물론 움츠린 강아지마냥 고개를 푹 숙였다. 이칼롯도 약간 시선을 내리깐 채 말이 없었다. 로드웰의 의견이 탄력을 받자 다른 남진파 귀족들도 덩달아 로샤단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렇소. 애초에 기사도 아닌 일개 레인저들을 데려다가 특무별동대라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게 말이 되지 않소이다."


"그냥 레인저라면 차라리 낫지. 하나는 떠돌이 용병 출신에, 다른 하나는 그 유명한 크렘벨의 살인귀잖소."


사실 루도와 레미나의 행방이 확인되지 않은 이상 이런 자리에 볼일은 없다. 그러나 비난의 화살이 꽂히고 있는 지금 털털하게 일어나는 것도 안 될 일이었다. 곁눈질로 란도스를 보니 그도 어떻게든 이 불순소음을 참아내려 기를 쓰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그만들 하시오. 로샤단의 실력은 이미 두 번이나 검증되었지 않소. 경들은 레인스터가 이루어낸 값진 승리를 폄하하려는 게요?"


그러자 귀족 하나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소신이 아뢰옵건대, 이번 일은 군대를 이끌어본 적도 없는 무리가 폐하의 권위를 등에 업고 지휘권을 강탈한 사례이옵니다. 근본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군대의 상명하복이 어찌 지켜질 수 있겠습니까? 행여 이번 일로 말미암아 많은 소영주들이 폐하의 권위에 반발하지 않을까 우려되옵니다."


"그만, 근본이고 규율이고 하는 게 지금 상황에서 무슨 쓸모가 있다는 거요? 지금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가시적인 결과요. 로샤단이 지휘했기에 레인스터가 살아남았지 않소?"


레인스터 방어전 이후 로샤단의 존재감은 확실히 부각되었다. 그것이 좋은 쪽으로든지 나쁜 쪽으로든지 말이다. 즉, 애초부터 로샤단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남진파 귀족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일행을 견제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레인스터가 승리한 것은 그곳 병사들이 스스로 숭고한 사명을 받들었기 때문입니다. 제르카엘시온 멜피드? 그런 같잖은 마법사 하나가 무엇을 바꾸었단 말입니까? 그저 분에 겨운 권력에 취해 해롱대었겠지요."


죽을상을 하고 있던 디리터의 미간이 일순 꿈틀거렸다. 아무리 무심하게 넘어가려 해도 사람에겐 한계선이라는 게 존재하는 법이다. 제리온을 모욕하는 것은 곧 로샤단을 모욕하는 일이기도 했다. 말을 꺼낸 귀족은 은은하게 퍼지는 살기도 감지하지 못한 채 신나게 떠벌려댔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기지만 이바르도 상회장과 파블로 감찰관이 탈영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까? 새파란 녀석이 나타나 지휘체계를 엉망으로 만들어놓았으니 일평생 국가를 위해 충성한 그들로서는 용납할 수 없었겠지요.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귀족에게 이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을 겁니다. 그 무뢰배 마법사가 죽은 것도 아마 신의 뜻일 테지요."


번쩍! 더는 참지 못해 의자를 엎어버리려던 디리터는 그러나 직전 옆자리에서 뿜어져 나온 전광에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놀랐잖아!!"


이칼롯은 가볍게 다리를 꼰 자세 그대로였다. 다만 그가 쥔 검의 손잡이 근처에서 찌직거리는 전격의 잔영이 조금 전 헤프닝이 환상이 아님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곧 디리터는 놀라 넘어진 사람이 비단 자신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망언을 내뱉었던 귀족은 아예 대(大)자로 엎어졌다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네, 네네네네 네 이놈 지금 무슨 짓을!"


"실례했습니다. 근본 없는 무뢰배인지라 아티팩트(atifact)를 다루기가 여간 힘들지 않군요."


"뭐, 뭐라고? 이놈이...!"


귀족은 길길이 날뛰었으나 이칼롯이 실수였다고 딱 잡아떼니 딱히 처벌할 방도는 없었다. 두 사람은 덕분에 잠시 회의가 소강상태에 들어간 틈을 타 재빨리 막사를 빠져나왔다. 나오면서 디리터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왜 그랬어?"


"안 그랬으면 네가 그 돼지의 면상을 날려버렸을 테니까."


"하여간 눈치 하나는..."


두 사람은 곧장 숙소로 돌아갈 계획이었으나 다른 날과 달리 마리네와 카이안이 미리 진채 앞까지 나와 그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마리네는 멀리서 두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흥분하여 펄쩍펄쩍 뛰었다. 디리터가 말했다.


"뭔 일인데 그래? 아침까지만 해도 풀이 죽어 있던 녀석이."


"그러니까 그거지! 자, 이거 봐봐."


마리네는 상기된 표정으로 꼬깃꼬깃 접힌 쪽지 하나를 건넸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 둘 다 무사함. 따로 출발하겠음.


금세 디리터의 낯빛도 마리네의 그것처럼 환해졌다. 이름도, 날인도 없는 단순한 내용이었지만 그게 누가 쓴 편지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헤어진 이후 일행이 가장 고대하던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무사하구나, 루도!"


"게다가 레미나와 함께 있는 모양이야. 둘이서 은밀히 카잘산맥으로 향할 모양인가 봐."


이칼롯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첩자의 존재를 생각하면 따로 움직이는 게 현명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서둘러 편지를 태워버렸다. 그들이 무사하다는 것은 안개송곳니 역시 그들의 행방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놈들이 일행을 감시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면, 앞으로도 '아무 일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루도의 생존소식을 알리고는, 현상황에서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을지를 골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낭보와 비보는 늘 함께 다니는 법이다. 루도의 생사가 확인된 바로 다음날, 일행의 막사로 레밀리오가 찾아왔다. 예정에 없던 방문이었던지라 모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밀리오는 레인스터에 만났을 때와 같은 수도사 복장으로, 연이은 여행으로 피로가 쌓인 것인지 눈이 퀭하니 들어가 있었다.

그의 초췌한 몰골만으로도 그의 방문이 그다지 좋은 연유에서 비롯되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는 마리네가 대접하는 음식도 마다하고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날 이후로 별일 없었나?"


별일이라 함은 물론 안개송곳니에 관한 것이다. 마리네는 라키시아에 이르러 괴한들에게 습격당한 이야기, 그리고 이 과정에서 루도와 레미나가 떨어지게 된 이야기 등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레밀리오가 이를 듣고는 고통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런가...허나 다행이군. 공주님도, 클로람군도 무사하다니."


"역시라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그게...자네들을 찾아온 이유는 다름이 아닐세."


레밀리오는 주머니에서 낡은 서찰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닳을 대로 닳은 양피지 모서리가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위태하기만 했다. 이칼롯은 혹시 부서질까 싶어 조심스럽게 서찰을 집어 들었다.

서찰의 내용은 루도의 것만큼이나 짧고 간결했다. 또한 그 안에 담긴 메시지도 루도의 것만큼이나 강렬했다. 이칼롯이 서찰을 디리터에게 넘기며 말했다.


"언제 받으셨습니까?"


레밀리오는 대답하기에 앞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한차례 훑어냈다. 그의 풍만한 체격이 오늘만큼이나 안쓰러워 보일 때도 없었다.


"이틀 전일세. 전서구가 류이덴사로 날아왔고, 다시 교단마도사의 패밀리어를 통해 내게 전달되었네. 마침 내가 라키시아 근방에 머무르고 있었으니 다행이지. 날밤을 새워가며 달려오는 길일세."


그즈음 하여 마리네가 서찰의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는 이칼롯이나 디리터만큼의 평정은 유지할 수 없었는지 대경실색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제...제르칸트가 위험해!"


서찰에는 제르칸트의 필체로 '위치가 발각된 모양,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쓰여 있었다. 웬 설레발이냐며 딴청을 부리던 유미르네도 유년기의 지인이 언급되자 자세를 고쳐 잡았다.

제르칸트가 위험에 처했다. 적은 물론 안개송곳니. 노리는 이유는 안 봐도 뻔하다. 사실 지금까지 조용한 게 이상한 상황이기도 했다. 아루의 수정은 신의 아이 본인만큼이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레밀리오가 말했다.


"이렇게 찾아온 건 자네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함이네. 알다시피 교단 내엔 전문화된 무장군인이 남아 있지 않지 않은가. 제르칸트를 구하고 싶어도 우리로선 뾰족한 타개책이 없다네."


이칼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르칸트가 가진 수정은 펠아람과 루프리모의 것. 루도와 카이안을 위해서라도 좌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해했습니다. 왕실기사단에 도움을 요청하도록 하죠. 헌데 제르칸트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게 문제네. 편지는 받았지만 위치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네. 애초에 제르칸트의 임무는 극비사항이기도 하고..."


"언급이 없었단 말입니까? 흠...혹시 내부의 첩자를 염려한 것은 아닐까요? 교단 내에서는 아직 색출해내지 못한 것입니까?"


"그, 그럴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그의 은신처는 나나 베른헬트 주교님도 알지 못한다네. 자네들은 뭔가 들은 거 없나?"


이칼롯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만 머릿속에 떠오른 그림은 레밀리오의 질문에 관한 게 아닌, 얼마 전 국왕을 조종하던 안다바리엘의 얼굴이었다. 그가 데루루피아를 죽이지 않고 고문했던 것은 제르칸트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그녀는 정보를 발설하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안개송곳니는 어떻게 그의 위치를 알아낸 걸까? 그냥 단순하게 집요한 수색의 결과인 걸까?

이칼롯은 일단 떠오르는 의구심을 기억의 한편에 응어리로 남겨 두었다.


"저희도 그가 어디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데루루피아라면 혹 모르겠지만."


"그런가? 이런...난처하게 됐군. 그녀는 지금 어디 있나?"


"일단 진정하십시오. 편지의 내용도 발각된 게 아니라 발각된 모양이라고 써놓은 걸 보니 아직까지 안개송곳니와 조우하진 않았을 겁니다."


"자네 말이 맞다면야 오죽 좋겠는가."


일행은 일단 이번 사안을 란도스와 케이달에게 알렸다. 애초에 제르칸트의 임무자체가 극비였기 때문에 정보를 공유하는 이도 극히 제한되어야만 했다. 란도스도 일행과 마찬가지로 제르칸트의 안부에 우려를 표했다. 그의 생사도 생사지만 아루의 수정이 가지는 중요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노릇이었다.


"그럼 당장 분견대를 편성할 필요가 있겠군. 내게 맡기게."


케이달은 즉시 검증된 기사들을 선발해 30명의 별동대를 편성했다. 여기에는 란돌을 포함하여 그를 따르는 직속부대가 포함되었다.

문제는 일행의 합류 여부였다. 데루루피아를 만나 설득하자면 누군가가 가긴 가야 하는데, 그러자니 카이안을 남겨놓는 게 영 껄끄러웠다. 기본적으로 왕실기사단이라는 방어막이 존재하긴 하지만 오히려 이런 대군일수록 소수의 잠입부대에 허점을 드러내는 법이다. 여전히 안개송곳니의 감시망이 남아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카이안의 호위를 느슨하게 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판단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결국 이칼롯은 인원을 다시 한 번 쪼개기로 결정했다. 즉 자신과 마리네는 제르칸트를 구하러 가고, 디리터와 유미르네는 진지에 남아 카이안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혹시 루도 쪽에서 소식이 들어오더라도 본진에 두 사람이 남아있으니 연락에는 무리가 없을 터였다.

다만 굳이 마리네가 동행하기로 한 이유는 그의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다.


"제르칸트는 내 친척 같은 사람이야. 제발 같이 가게 해줘."


사이가 서먹한 셋을 남겨놓는다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그는 인원배분에 더는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로샤단은 카잘산맥으로 떠난 루도와 레미나, 제르칸트를 구하러 간 마리네와 이칼롯, 왕실기사단 본진에 남은 카이안, 디리터, 유미르네의 세 갈래로 나누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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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3) +6 15.05.27 1,021 30 18쪽
319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2) +2 15.05.27 748 28 15쪽
318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1) +3 15.05.27 769 29 14쪽
317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4) +1 15.05.27 900 26 18쪽
316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3) +8 15.05.26 898 23 27쪽
315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2) +2 15.05.26 773 24 23쪽
314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1) +3 15.05.26 866 20 28쪽
313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5) +2 15.05.26 845 26 21쪽
312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4) +1 15.05.26 892 25 18쪽
311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3) +3 15.05.26 1,089 24 25쪽
310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2) +3 15.05.25 874 25 28쪽
309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1) +2 15.05.25 970 22 18쪽
30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1) +2 15.05.25 725 26 23쪽
307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0) +1 15.05.25 749 20 22쪽
306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9) +1 15.05.25 769 20 14쪽
305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8) +4 15.05.25 806 27 17쪽
304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7) +2 15.05.24 935 26 19쪽
303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6) +3 15.05.24 866 22 13쪽
302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5) +2 15.05.24 943 28 19쪽
301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4) +1 15.05.24 843 21 16쪽
300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3) +2 15.05.24 883 23 24쪽
299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2) +2 15.05.24 1,030 29 18쪽
29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 +2 15.05.24 910 25 21쪽
297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5) +6 15.05.23 1,107 21 29쪽
296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4) +1 15.05.23 847 23 20쪽
295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3) +1 15.05.23 948 22 20쪽
294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2) +3 15.05.23 1,137 20 21쪽
293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1) +2 15.05.23 1,080 27 17쪽
292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3) +3 15.05.23 1,140 25 19쪽
291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2) +10 15.05.21 1,053 28 22쪽
290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1) +2 15.05.21 1,110 26 19쪽
289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6) +2 15.05.21 1,080 26 25쪽
288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6) +3 15.05.21 937 24 27쪽
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2 26 25쪽
286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4) +5 15.05.20 1,017 29 21쪽
285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30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09 24 14쪽
283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3) +1 15.05.20 1,044 27 24쪽
282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2) +3 15.05.20 749 23 19쪽
281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1) +1 15.05.20 993 28 22쪽
280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3) +11 15.05.19 1,011 31 30쪽
279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2) +3 15.05.19 1,224 28 17쪽
278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5) +9 15.05.18 1,137 24 18쪽
277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4) +2 15.05.18 809 24 17쪽
276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3) +4 15.05.18 942 22 24쪽
275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2) +3 15.05.18 931 23 23쪽
»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1) +2 15.05.18 1,030 25 19쪽
273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1) +2 15.05.18 974 22 19쪽
27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3) +1 15.05.18 1,221 25 25쪽
27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2) +2 15.05.17 1,011 29 25쪽
27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1) +1 15.05.17 867 20 22쪽
269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0) +1 15.05.17 966 23 23쪽
268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9) +1 15.05.17 1,039 23 20쪽
267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8) +6 15.05.17 907 25 22쪽
266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7) +5 15.05.16 993 26 22쪽
265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6) +1 15.05.16 888 22 26쪽
264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5) +2 15.05.16 1,030 29 26쪽
263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4) +1 15.05.16 1,001 24 24쪽
26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3) +3 15.05.16 857 23 25쪽
26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2) +2 15.05.16 926 23 26쪽
26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 +3 15.05.16 1,061 31 31쪽
259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6) +8 15.05.14 1,064 29 22쪽
258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5) +7 15.05.14 914 22 11쪽
257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4) +4 15.05.14 1,032 21 20쪽
256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3) +3 15.05.14 894 22 31쪽
255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2) +5 15.05.14 1,000 24 27쪽
254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1) +6 15.05.13 904 24 30쪽
253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0) +3 15.05.13 943 22 24쪽
252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9) +1 15.05.13 995 21 27쪽
251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8) +1 15.05.13 897 18 27쪽
250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7) +4 15.05.12 1,088 26 27쪽
249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6) +5 15.05.12 995 25 27쪽
248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5) +3 15.05.12 1,103 25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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