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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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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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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44,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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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25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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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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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0)

DUMMY

그날도 어김없이 이칼롯은 알룬도와 교대로 불침번을 섰다. 불침번이라고 딱히 무기를 뽑고 경계하는 건 아니고, 편한 자세로 기대앉아 시간을 보내는 정도였다. 그런데 자정이 지나도록 드뷔사가 잠을 청하지 못해 이불을 뒤척이는 게 보였다. 우려한 대로 낮에 보았던 광경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이다. 가축처럼 다뤄지던 여성들, 나체로 해롱대던 산적들, 그리고 피와 시체. 부유한 도시에서 태어나 전쟁을 모르고 살던 소녀에게는 씻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칼롯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혹시 자신이 내는 소리가 그녀의 수면을 방해하진 않을까 싶어 그는 숨을 내쉬는 것도 조심스럽게 했다. 창밖은 달빛에 푸르게 젖어 있었다. 아직 추운 겨울이다. 벌레 우는 소리도, 먹이를 찾아 날아다니는 철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지독한 정적, 숨이 막힐 듯한 정적만이 어둠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뷔사가 결국 참지 못하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제된 정적 - 분명 맞은편에 이칼롯이 있을 텐데 인기척은커녕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위화감이 오히려 그녀를 신경 쓰이게 한 것이었다.

그녀는 식탁으로 가 다 식은 엽차를 잔에 따랐다. 달빛이 워낙 푸르러 굳이 촛불을 켜지 않아도 사위는 분간할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창가를 등지고 선 드뷔사의 옆얼굴이 달빛을 반사해 이채롭게 빛났다. 이칼롯은 그녀가 찻잔을 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았다.


“그렇게 목석처럼 굳어 계시니 혹시 질식해 죽은 건 아닌가 싶어 일어났네요.”


이칼롯은 잔을 받아든 뒤에도 한동안 드뷔사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녀는 이전과는 달리 이칼롯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따라오지 말라고 한 것이오.”


“이해했어요. 뼈저리게.”


“그럼 이제라도 돌아가겠소?”


드뷔사는 어두운 찻잔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달빛이 밝다곤 하나 찻잔에서 자화상을 찾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 식은 엽차를 한 모금 삼키고서 그녀는 근심을 떨쳐내려는 듯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그런 생각도 없지 않아요. 하지만 이런 걸 보고나니 여러분이 이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더욱 알고 싶어지네요. 로샤단과 외팔이 아렌베일이 어떤 관계인지도요.”


호기심은 모든 발전의 촉매제이지만,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한다. 지금의 드뷔사가 딱 그런 경우였다. 물론 그녀가 앞뒤 안 보고 내달릴 정도의 안전불감증 환자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단지 그 정도의 리스크도 감수할 만큼 진실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이칼롯은 다 마신 찻잔을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드뷔사는 다소곳한 자세로 차분히 그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형처럼, 혹은 가면을 쓴 것처럼 그 무표정한 얼굴은 푸른 달빛과 제법 어울리기까지 했다.


“원래부터 그렇게 표정이 없었소?”


“...네?”


“불쾌하다면 사과하겠지만, 그런 병도 있다고 들었소. 안면근육장애라고 하던가...”


드뷔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방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단지 그것뿐이었지만, 이칼롯은 왠지 그녀가 웃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처음이네요. 제르비안 씨가 제게 질문을 한 게.”


드뷔사는 푸른 어둠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모아 그 위에 턱을 괸 자세로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칼롯은 그녀의 대답을 말없이 기다렸다. 사위는 여전히 고요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창밖을 떠도는 바람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원래부터 이렇지는 않았어요. 딱히 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그게....아마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부터인 거 같네요.”


이칼롯은 타인과 대화할 때 기본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배제한다. 이를테면 예전의 과거라든지, 신의 아이에 관한 정보라는 게 그렇다. 때문에 로샤단 멤버나 알룬도 같은 조력자를 제외하면 타자와의 대화는 늘 가식과 심리전이 동반됐다.

그러나 드뷔사는 달랐다.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면 그저 넘겨버리면 될 텐데도, 그녀는 굳이 과거를 들춰가며 성실하게 대답했다.


“흔한 폐병이었죠. 원체 연약한 체질인 데다 나이도 있어서...혈육이라곤 어머니밖에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충격이 컸죠. 매일같이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죠. 어머니는 저의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셨어요. 웃어달라고, 슬퍼하지 말고 언제나 미소 지어 달라고 부탁하셨죠. 하지만....그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부모가 죽어가는 마당에 웃음이 나오겠어요? 그래도 어머니의 부탁이라, 최대한 눈물만은 참았어요. 그렇게 어머니가 투병하는 몇 개월간, 저는 늘 슬픔을 억누르려고 어금니를 꽉 깨문 채로 살았어요. 가끔은 입술을 씹어 피가 터진 적도 있었죠.”


그녀는 슬픈 과거를 담담한 어조로, 언제나와 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이칼롯은 굳이 위로의 멘트를 입에 담진 않았다. 그녀는 그런 싸구려 연민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단지 그가 질문했기에, 성의껏 답변할 뿐이었다. 그것이 조금이나마 신뢰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셨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말 미칠 듯이 가슴이 아픈데도 눈물이 나오질 않더군요. 그럴 운명이었다면...어차피 어머니가 죽기로 예정되어 있었다면 제가 흘린 눈물이나 거짓 미소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나 싶더군요. 그렇게 차츰 표현에 인색해졌고, 지금 상태가 된 거죠. 뭐, 그래도 사람 사귀는 데엔 문제가 없답니다. 말도 잘하고, 농담도 아주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아니까요.”


“농담도 할 줄 안다고?”


“네. 솔직히 제가 보기엔 제르비안 씨가 훨씬 심각해 보이는데요. 물론 눈매가 날카로운 탓도 있겠지만, 원래부터 인상이 그러셨나요?”


이칼롯은 소리 없이 웃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신을 부담스러워해 이런 짓궂은 질문조차 건네질 않는다. 하지만 드뷔사는 뭐랄까...처음에는 자신을 도발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계속 대화를 하다 보니,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벽에 기댄 자세로 천천히 팔짱을 꼈다.


“나는 정보의 입수 자체보다 이후의 활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오. 워낙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아오다 보니, 인상이 이리 굳어질 수밖에 없지. 당신은 어떻소 드뷔사? 신뢰를 기반으로 한 비밀엄수가 때로는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데에 동의하오?”


드뷔사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그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오기라곤 예상하지 못한 탓인지, 그녀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원하신다면 무덤까지 가져가죠. 아루에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그녀는 지금까지 보아 온 어떤 사람보다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칼롯은 어째서인지 그녀에게 신뢰라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특별한 확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케이달의 딸이어서도, 그녀가 루도와 레미나를 도와줬어서도 아니었다. 어쩌면 단지 달빛에 취해 이성이 흔들린 것인지도 몰랐다. 알룬도는 움직이지 않았으나, 아무리 봐도 깨어있는 게 분명했다.

이칼롯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그문트 황제는 조종당하고 있소. 우린 황제를 제정신으로 돌리고 하루라도 빨리 정전협정서를 가지고 가야만 하오. 문제는 황제를 조종하고 있는 안개송곳니라는 존재인데...”


밤은 깊어갔다. 그날처럼 이칼롯이 말이 많은 날도 없었고, 또 드뷔사가 말이 없는 날도 없었다.



******



날씨가 점점 풀리고 있었다. 다가오는 봄을 준비하려는 듯 힘차게 날갯짓하는 철새를 발견하기란 이젠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겨우내 얼어있던 연못은 차츰 두께가 얇아져 돌멩이 하나만 던져도 금이 갈 정도가 되었다. 마리네는 연못가에 오도카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를 간호하던 사람들은 가슴이 뚫린 중상이었던 만큼 후유증이 남았을지도 모른다며 우려를 표했다. 혹자는 그가 심한 충격을 받아 자폐증이 생긴 것 같다며, 혼자 있을 때마다 뜻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을 증거로 삼았다. 그러나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 마리네는 늘 혼자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귀환한 이래 그는 단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다.


「이칼롯이 떠난 지도 3주가 다 되어가는군요. 무사했으면 좋겠네요.」


에리안델은 아침이 되면 의례적으로 그에게 말을 걸곤 했다. 대화의 주제는 일행의 안부나 가벼운 가십거리, 옛날이야기와 같은, 딱히 말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는 류의 것이었다.


“괜찮을 거예요. 다른 누구도 아닌 이칼롯이니까. 게다가 알룬도도 같이 갔고.”


마리네는 대답과 동시에 조약돌을 주워 연못에 집어 던졌다. 돌은 얼음을 세게 치고는 튕겨 나갔다. 덕분에 얼음 표면으로 몇 줄의 금이 더 생겼다.

에리안델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다시 말을 걸었다.


「루도와 공주님도 무사하고. 이칼롯은 괜찮을 거고. 디리터와 유미르네는 이곳에 건강히 잘 지내고 있군요. 추운 겨울도 지나가고 있어요. 마리네만 기력을 회복하면 아주 좋을 것 같네요.」


그녀는 굳이 카이안의 문제를 언급하진 않았다.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마리네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도 자신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충격이란 인지하고 있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날의 전투는 잊고 싶은,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낙인이 되어 마리네를 옭아매고 있었다.


“저라면 할 수 있었어요. 하베스트를 죽일 수 있었는데...그럼 제르칸트도 살아있었겠죠. 어째서...그렇게 훈련했는데도 난 또다시...”


「또 그 얘기로군요. 거듭 말하지만 다 지난 일이에요. 제르칸트의 죽음은 당신 탓이 아니었어요. 그보단 빨리 상처를 떨쳐내고 일어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죠?!”


마리네는 순간 울컥하여 언성을 높였다. 주위를 지나던 행인들의 그의 기행을 보곤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기에는 웬 남자 하나가 검에다 대고 혼자 고함을 치는 거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 말이다. 마리네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도로 자리에 앉았다. 에리안델은 그가 진정하기를 차분하게 기다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르칸트잖아요. 솔직히 저보다 당신이 훨씬 슬퍼해야 정상 아닌가요? 저야 그저 어린 시절의 인연이라고 쳐도 에리안델 당신은...수십 년을 함께 지낸 사이잖아요. 슬프지 않아요? 분하지도 않아요?”


교단수호기사 제르칸트와 성검 에리안델. 둘이 함께 한 시간은 20년이 넘었다. 혹자가 류이너스 교단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추켜세우는 것도 결코 과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에리안델은 그 시간이 무색하게 그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아니, 마리네가 보기엔 마치 제르칸트라는 사람이 처음부터 없었던 양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녀의 평정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군요. 당신에게 제르칸트는 고작 그런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군요. 하지만 제겐 아니에요. 나는 그분을 람카디스만큼이나 존경하고 따랐어요. 나는...잊지 않아요. 당신이 잊어도, 나만은 제르칸트를 기억할 테니까.”


마리네는 신경질적으로 돌을 집어던졌다. 연못 한가운데를 강타한 돌은 기어이 얼음을 깨뜨리고는 기다란 물기둥을 일으켰다. 이미 금이 가기 시작했던 얼음은 구멍이 뚫리자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에리안델은 그의 격정을 타박하지도, 그렇다고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한결 같이 다정했다. 마리네는 그때가 돼서야 알 수 있었다. 한결같은 다정함은, 곧 한결같은 무심함이라는 것을.


「에메랄드 섬에 갔다 왔다고 했죠? 그럼 케리아돌이 보여주었겠군요. 제가 어떤 존재인지를.」


“그야...”


「보았다면 얘기는 빠르겠군요. 저는 선대 루프리모의 아이였어요. 펠아람의 아이와 싸우다 죽었고, 영혼만 이 검에 옮겨져 500년을 지내왔죠. 500년이라, 참으로 긴 시간이네요. 마리네 캄블러. 제 생전의 생김새를 기억하고 있나요? 제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보았나요?」


마리네는 왠지 그녀가 자신을 타박하는 것만 같아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기억하고...있죠 물론. 젊고 아름답고...‘성녀’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고결함이 느껴지는 분이셨어요.”


에리안델이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예의 다정함은 온데간데없이, 오싹할 정도로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네요. 하지만 캄블러 군, 저는 제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제 생김새가 어떠했는지, 어떤 성격의 인간이었는지, 왜 리카르고를 사랑했었는지도. 아니, 애초에 사랑이라는 감정은 무엇이었을까요.」


“...네?”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는 되물었다. 케리아돌이 보여준 기억 속에서 에리안델과 리카르고는 이상적인 연인이었다. 단순히 선남선녀라는 이미지를 떠나서, 서로를 바라보는 애틋한 눈빛만으로도 두 사람이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모르겠다니? 이야기하는 그녀의 어조가 너무나도 자조적이어서 마리네는 뭐라 대꾸 한마디도 못하고 얼어버렸다.


「타이달루크가 어떻게 설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에리안델 크류네는 그리 형편 좋은 존재가 아닙니다. 성검? 천만에요. 사령검(死靈劍)이라 부르는 게 맞죠. 제게 작용한 마법은 엄연히 사령계(Necromancy)입니다. 그람이 자신의 시체에 속박되었듯, 저는 이 검에 속박된 거죠. 언데드(Undead)이고, 언제든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캄블러 군, 언데드로서 존재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나요?」


마리네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굳이 그녀가 설명하지 않아도 그람과 안다바리엘이 리치가 돼서 얼마나 고통받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해갈되지 않는 갈증과 끊임없이 엄습해오는 추위, 그리고 생전보다 훨씬 민감하게 다가오는 통증. 고통스러워 미칠 것 같은데,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질 않는다. 답은 정해져 있다. 정말로 미치든가, 두 번째의 죽음을 맞아 안식을 얻든가. 그가 본 그람과 안다바리엘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전자였다.

그러나 에리안델이 받은 대가는 둘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들과 달리 그녀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타이달루크의 배려인지 아니면 시체가 아닌 검으로 옮겨진 결과인지는 몰라요. 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오감은 물론이요 잠이 오지도 않아 500년째 줄곧 의식을 유지하고 있죠. 아픔, 뜨거움, 달콤함....그러한 감각들이, 사전적인 의미는 알지만 이젠 그게 어떠한 느낌인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요. 이렇게 얘기해본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저는 무(無)에서 살고 있습니다. 감각이 없으면 영혼도 둔감해집니다. 이젠 제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도, 어떻게 자라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500년이란, 인간성을 망각하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마리네는 착잡하게 입술을 핥았다. 케리아돌이 보여준 기억은 ‘인간’ 에리안델 뿐이었다. 그러나 에리안델이 인간으로서 존재했던 건 불과 20여 년에 불과하다. 그 후로 500년을 지금까지 쭉 검 속에 갇힌 채로 지내온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절망하고 괴로워했을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감각은 사라지고, 추억은 점차 무뎌져 가죠. 제르칸트는 물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입니다. 그를 추모한다면 그가 마지막까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무인의 표본이었음을 기억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 이상 얽매어봤자 앞으로의 행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정말 중요한 시기입니다 캄블러 군. 그렇게 막으려 했지만, 신의 아이는 한곳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마치 운명처럼 말이죠. 저는 이때를 기다려왔습니다. 자그마치 500년을.」


그녀의 어투는 비장하기 그지없었다. 어렸을 적 보았던 에리안델은 상냥하고 친절한 옆집 누나 같은 이미지였다. 정말로 어린아이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그녀는 그깟 육아나 하려고 언데드가 된 게 아니다. 그보다 훨씬 숭고한 목적. 그리고 지금에 와선 로샤단과 가장 연관되어있는 그것.


“펠아람의 저주를 막는 것. 하지만 에리안델님, 저는 이해가 가질 않아요. 왜 그런 사명을 당신이 짊어져야 하죠? 아무도 당신에게 그러라고 강요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검에 깃든 시간이 고통스러웠다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성불할 수도 있었잖아요?”


에리안델은 웃었다. 하지만 그녀가 먼저 말한 대로 이는 유쾌한 감정이 느껴져서가 아닌, 기억 속에 있는 웃음이라는 이미지를 표현한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마리네는 그녀가 다소 격앙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존재의의라는 거죠. 펠아람의 저주를 막아라...후후훗.」


“무슨 뜻인지 잘...”


「말했지요? 감각이 사라지고 기억도 희미해진다고. 그럼 종래에는 나란 존재가 무엇인가, 왜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현세에 머물러있어야 하는가 하는 성찰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대로 성불하고 싶다는 생각도 물론 했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영혼을 불태우는 게 있었습니다. 언데드가 되면서까지 제가 막고자 했던 것. 펠아람의 저주, 그 끝을 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


“....”


「기억이 사라질수록 이 바람은 더욱 강렬해지죠. 욕망이 되고, 집착이 되고, 마침내 저라는 존재를 움직이는 단 하나의 행동원리가 됩니다. 캄블러 군, 이해하겠어요? 저는 펠아람의 저주를 막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종착지에 도착한 뒤에 이 기나긴 생 아닌 생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마리네는 그녀의 광기와도 같은 기백에 질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검에 눈이 달려있는 게 아닌데도 어째서인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강요된 침묵이 연못가를 휩쓸고 지나갔다. 하지만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운을 뗐을 때 에리안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상냥하기 그지없었다.


「캄블러 군. 제 얘기를 꺼낸 이유는 당신을 압박하기 위함이 아니랍니다. 당신이 죄책감이라는 족쇄에서 풀려나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죄책감...입니까.”


「저는 이제 인간이 아니에요. 광기와 집착의 존재이고, 이제 이것 없이는 존재가치조차 느낄 수 없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저와는 달라요. 당신은 인간입니다. 살아가야 할 이유가 너무나도 많답니다. 제르칸트가 죽은 건 안타깝지만, 여기서 끝낼 생각인가요? 루도, 디리터, 이칼롯, 유미르네...당신이 사랑하는,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는 인연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또한 당신은 앞으로도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나가게 될 거고요. 행복한 것만 보아도 짧은 인생이에요. 아무도 당신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인생이라는 굴레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작은 슬픔일 뿐입니다. 하지만 캄블러 군, 저는 당신이 그 작은 슬픔에 굴하지 않길 바래요. 앞으로 마주칠 환희의 순간이 얼마나 많은데, 여기서 좌절하는 것은 엄청난 손해랍니다. 그건 아마 람카디스도 바라지 않을 거예요.」


어느덧 해가 중천이었다. 정오가 가까웠기 때문인지 주위를 지나다니는 발걸음도 많아졌다. 에리안델의 충고는 어릴 적 람카디스가 루도에게 해주었던 그것과 매우 흡사했다. 그때 루도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여전히 울분은 남아있지만, 그래도 참고 견뎌야만 한다.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믿으며.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제르칸트의 일은 잊도록 노력해볼게요.”


「뭐, 힘들어하는 어린이를 달래는 건 제 전문이니까요.」


마리네는 바지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도 실컷 바람을 쐬어서인지 한결 몸이 가벼웠다. 마침 멀리서 디리터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매일 죽을상만 하고 있는 것도 실례다 싶어 그는 간만에 먼저 인사를 건네려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좋은 날씨네. 무슨 일 있어?”


살가운 미소에 디리터는 흠칫 놀랐다. 우울증이라는 게 이렇게 갑작스럽게 치료되는 것이었던가. 어쨌든 나쁜 일은 아니다싶어 그는 어색하게 마주 웃었다.


“어어 그래. 봄이 오긴 오려나보네. 어째, 너는 좀 괜찮냐?”


“응. 이젠 많이 나아졌어. 걱정 끼쳐서 미안.”


그러나 디리터가 급히 마리네를 찾은 이유는 언제나의 안부 인사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왕이 있는 막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쨌든. 지금 막 국왕 폐하의 소집령이 떨어졌다. 로샤단은 물론이고 왕실기사단과 천정기사단 지휘관도 모두 참여하는 모양이야. 어서 복장 갖춰 입고 어전막사로 와. 난 먼저 간다.”


평소와는 다른 긴장감에 마리네의 동공이 약간 커졌다.


“...무슨 일인데?”


디리터는 수도 라키시아가 있는 남서쪽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그것만으로도 마리네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훼창기사단이 진군하기 시작했어. 생각보다 움직임이 빨라. 앞으로는 바빠질 거 같다.”


훼창이 움직인다. 그 사실만으로도 파생되는 시사점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들의 다음 목표는 어디인가. 전력은 얼마만큼 보존하고 있는가. 이번 출정은 지그문트의 뜻인가 안개송곳니의 뜻인가 그것도 아니면 단장 레오문드의 단독판단인가. 레오문드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만약 알고 있다면, 그는 누구의 편인가.

이칼롯이 떠난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전력으로 움직였다고 해도 아직 베스티언에도 도착하지 못했을 시간이다.

봄이 오고 있었다. 얼어붙었던 것들이 차츰 녹아 다시금 행동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멍하니 지내도 좋을 시간은 다 끝났다. 마리네는 서둘러 마음을 다잡고는 막사로 뛰어갔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60 el*****
    작성일
    15.05.31 18:52
    No. 1

    벽이 기댄 자세로→벽에 기댄 자세로
    하베스터→하베스트
    리치 설명 부분에서 '답은 하나다'는 문맥상 '답은 두 개다'로 고치셔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6)에서 마리네가 들여다보던 연못은 적어도 수면이 일렁일 정도로는 녹은 걸로 보이는데 이번화에는 녹지는 않은 걸로 묘사되었네요? 다른 연못인가 한 연못에 녹은 부분이랑 언 부분이 다 있는 건가 떡밥인가 오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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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4) +104 15.09.01 2,317 49 24쪽
344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3) +15 15.08.20 1,059 26 20쪽
343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2) +11 15.08.09 1,066 35 23쪽
342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1) +11 15.07.26 1,181 39 22쪽
34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4) +23 15.07.20 1,215 40 11쪽
34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3) +26 15.07.13 1,132 53 16쪽
33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2) +35 15.06.12 1,401 51 11쪽
33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1) +11 15.06.10 1,013 42 11쪽
337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0) +12 15.06.03 1,014 36 19쪽
336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9) +6 15.06.02 1,093 32 17쪽
335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8) +6 15.06.02 952 31 15쪽
334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7) +2 15.06.02 970 27 16쪽
333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6) +3 15.06.02 972 28 20쪽
332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5) +2 15.06.02 925 25 15쪽
33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4) +3 15.06.02 990 25 19쪽
33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3) +7 15.06.01 913 33 18쪽
32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2) +2 15.06.01 930 27 22쪽
32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 +3 15.06.01 878 26 23쪽
327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5) +5 15.05.31 935 29 13쪽
326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4) +1 15.05.31 850 23 19쪽
325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3) +2 15.05.31 918 25 22쪽
324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2) +2 15.05.31 948 24 19쪽
323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1) +1 15.05.31 782 21 20쪽
322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5) +10 15.05.30 980 34 21쪽
321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4) +5 15.05.30 877 26 19쪽
320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3) +6 15.05.27 1,020 30 18쪽
319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2) +2 15.05.27 747 28 15쪽
318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1) +3 15.05.27 769 29 14쪽
317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4) +1 15.05.27 900 26 18쪽
316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3) +8 15.05.26 898 23 27쪽
315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2) +2 15.05.26 773 24 23쪽
314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1) +3 15.05.26 866 20 28쪽
313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5) +2 15.05.26 844 26 21쪽
312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4) +1 15.05.26 892 25 18쪽
311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3) +3 15.05.26 1,089 24 25쪽
310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2) +3 15.05.25 874 25 28쪽
309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1) +2 15.05.25 969 22 18쪽
30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1) +2 15.05.25 725 26 23쪽
»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0) +1 15.05.25 749 20 22쪽
306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9) +1 15.05.25 769 20 14쪽
305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8) +4 15.05.25 806 27 17쪽
304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7) +2 15.05.24 934 26 19쪽
303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6) +3 15.05.24 866 22 13쪽
302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5) +2 15.05.24 943 28 19쪽
301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4) +1 15.05.24 843 21 16쪽
300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3) +2 15.05.24 883 23 24쪽
299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2) +2 15.05.24 1,030 29 18쪽
29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 +2 15.05.24 909 25 21쪽
297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5) +6 15.05.23 1,107 21 29쪽
296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4) +1 15.05.23 846 23 20쪽
295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3) +1 15.05.23 948 22 20쪽
294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2) +3 15.05.23 1,137 20 21쪽
293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1) +2 15.05.23 1,079 27 17쪽
292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3) +3 15.05.23 1,139 25 19쪽
291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2) +10 15.05.21 1,053 28 22쪽
290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1) +2 15.05.21 1,109 26 19쪽
289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6) +2 15.05.21 1,080 26 25쪽
288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6) +3 15.05.21 936 24 27쪽
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2 26 25쪽
286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4) +5 15.05.20 1,017 29 21쪽
285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30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09 24 14쪽
283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3) +1 15.05.20 1,044 27 24쪽
282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2) +3 15.05.20 749 23 19쪽
281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1) +1 15.05.20 992 28 22쪽
280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3) +11 15.05.19 1,011 31 30쪽
279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2) +3 15.05.19 1,224 28 17쪽
278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5) +9 15.05.18 1,137 24 18쪽
277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4) +2 15.05.18 808 24 17쪽
276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3) +4 15.05.18 942 22 24쪽
275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2) +3 15.05.18 931 23 23쪽
274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1) +2 15.05.18 1,029 25 19쪽
273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1) +2 15.05.18 974 22 19쪽
27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3) +1 15.05.18 1,221 25 25쪽
27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2) +2 15.05.17 1,011 29 25쪽
27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1) +1 15.05.17 866 20 22쪽
269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0) +1 15.05.17 966 23 23쪽
268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9) +1 15.05.17 1,039 23 20쪽
267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8) +6 15.05.17 907 25 22쪽
266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7) +5 15.05.16 992 26 22쪽
265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6) +1 15.05.16 887 22 26쪽
264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5) +2 15.05.16 1,030 29 26쪽
263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4) +1 15.05.16 1,001 24 24쪽
26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3) +3 15.05.16 857 23 25쪽
26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2) +2 15.05.16 926 23 26쪽
26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 +3 15.05.16 1,060 31 31쪽
259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6) +8 15.05.14 1,064 29 22쪽
258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5) +7 15.05.14 913 22 11쪽
257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4) +4 15.05.14 1,031 21 20쪽
256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3) +3 15.05.14 894 22 31쪽
255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2) +5 15.05.14 1,000 24 27쪽
254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1) +6 15.05.13 904 24 30쪽
253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0) +3 15.05.13 943 22 24쪽
252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9) +1 15.05.13 995 21 27쪽
251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8) +1 15.05.13 897 18 27쪽
250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7) +4 15.05.12 1,088 26 27쪽
249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6) +5 15.05.12 995 25 27쪽
248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5) +3 15.05.12 1,102 25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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