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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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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25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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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1)

DUMMY

“일단 오긴 했는데, 그래서 다음 계획은 뭐지?”


“두 가지가 있소. 하나는 황제에게 직접 디스펠 매직(Dispell Magic)을 거는 것, 다른 하나는 마인드컨트롤을 사용하는 시전자에게 타격을 가하는 것.”


“의외로 간단하군. 황제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만 빼면.”


지그문트 황제 구출 작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칼롯 일행과 아렌베일 의적단은 의기투합하여 전속력으로 아스트리카 수도 베스티언까지 질주했다. 그리고 채 여로가 가실 틈도 없이 그들은 황궁 잠입 계획에 착수했다.

기본 골자는 란도스 국왕 때와 같았다. 최대한 황제 근처로 접근한 다음 마인드컨트롤을 해제하는 것. 다만 안트로서가 주었던 추적전송 마법은 다 써버렸기에,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의적단의 발품을 활용해야 했다. 아렌베일이 황궁 지리에 익숙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추가로 이칼롯은 황궁 평면도와 경비병력 배치현황을 요구했다. 세실을 찾는 게 가장 최선이지만, 그게 안 된다면 레미나가 그랬듯 직접 지그문트에게 접근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했다. 거기까지 가면 교전은 피할 수 없으니 전적으로 이칼롯과 알룬도의 기량에 달려 있었다.


“평면도는 일단 지시해 놓았다. 하지만 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니 적어도 반나절은 기다려야 할 거야. 당장 쳐들어갈 것도 아니니 좀 쉬지그래?”


아렌베일은 긴 여정에 지친 일행을 짐짓 배려해주었다. 그러나 이칼롯은 침대에 눕는 대신 곧장 거리로 향했다. 단순히 지도만 가지고 모든 정보를 파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도시에서 그는 완벽한 이방인이었고, 그렇기에 황궁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는 도시, 특히 황궁 주위를 직접 둘러볼 생각으로 빠른 발걸음을 옮겼다.

문제는 드뷔사가 그를 따라온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이칼롯의 보폭에 익숙해졌는지 피로한 기색도 없이 성큼성큼 잘도 따라붙었다.


“...지금 놀러 가는 거 아니오만?”


“저 아직 한마디도 안 했는데요.”


이칼롯은 뭔가 말하려다 이내 포기하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언성을 높여본들 그녀의 이마에 주름 한 가닥 가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이칼롯도 그녀의 능력 - ‘진짜로’ 화나지 않는 선에서 상대방을 귀찮게 하는 교묘한 화법 - 을 인정했다. 돌아가라고 해봤자 이유를 납득시키는 데만 수백 단어를 내질러야 할 게 뻔하다. 결국 그는 거리를 둘러다 볼 뿐이니 위험하진 않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납득시켜버렸다.

드뷔사는 오히려 반박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뭔가 말하려고 하시지 않았나요? 개의치 말고 말하세요.”


“.....”


이칼롯은 의식적으로 그녀를 보지 않으려 애썼다. 드뷔사도 몇 번 질문을 건네다가 곧 그와 같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처음 보는 황도의 풍경이 너무 빼어났다.

만약 절박한 임무가 없었더라면 이칼롯도 넋을 잃고 풍경에 녹아들었을 것이다. 라키시아가 평면적이라면, 베스티언은 입체적인 도시였다. 대부분의 건물이 2~3층의 고층건물인 데다 건물끼리 통로가 이어진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지형도 들쭉날쭉하여 바로 옆 건물을 가는 데에도 서너 개의 계단을 밟아야 할 정도였다. 잘 닦인 도로 때문에 의식하지 못할 뿐이지, 베스티언은 그야말로 계단으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그리고 그 계단은 하나같이 밝은 황색이었다. 사가들이 흔히 베스티언을 황금의 도시라고 일컫는다. 도시에 와보지 못한 이들은 이 명칭이 정말로 베스티언의 경제력을 표현하였거나, 아니면 단순한 허세일 거라 해석하곤 한다. 하지만 이방인인 이칼롯과 드뷔사가 본 수도는 정말 황금의 길을 걷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연황색 암석으로 다져진 건물은 석영이 포함되었는지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빛을 토해냈다. 특히 구름 사이로 햇빛이 쏟아질 때면 베스티언의 건물과 계단이 일제히 빛을 반사해 황금색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그 찬란한 빛의 향연에 드뷔사가 가만히 두 손을 모아 쥐었다.


“놀랍네요. 이렇게 멋진 도시가 존재하다니. 실로 인간이 만들어낸 비경이네요.”


물론 감동의 언어적 표현에 비해 표정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이칼롯은 그녀의 안면근육에 변화가 온다면 이제는 그게 더 무서울 것 같았다.

두 사람은 황궁을 향해 차근차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일행이 짐을 푼 여관은 외성 안쪽에 있었는데, 도시 전체로 보면 한참 가장자리에 속했다. 베스티언도 라키시아 못지않은 거대도시여서, 황궁까지는 두 개의 내성과 하나의 관문을 거쳐야 했다. 다만 라키시아보다는 훨씬 고저차의 폭이 커서, 마치 등산을 하는 것만 같은 경사가 계속되었다.

멀리 보이는 황궁의 아치형 지붕은 다른 베스티언의 건물이 그러하듯 찬란한 황금빛이었다. 도시의 중앙,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기에 이곳에 사는 시민이라면 고개를 들 때마다 그 거대한 위엄과 마주하게 될 터였다.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계속된 오르막길로 드뷔사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칼롯은 점점 보폭이 좁아지는 그녀를 불평 한마디 없이 기다려 주었다. 그의 무뚝뚝한 에스코트에 드뷔사는 오히려 스커트를 걷어붙이고 따라왔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내일부터는 무조건 숙소에서 대기하시오. 당신의 안전을 위해서요.”


“저도 그 정도 자각은 있어요.”


내성을 통과할 때마다 위병이 신분검사를 했으나 드뷔사의 통행증 덕분에 특별한 마찰은 없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황궁을 둘러싼 마지막 성벽에 다다랐다. 이칼롯은 성벽의 높이며 황궁까지의 거리, 대략적인 주위의 건물배치 상태를 기억 속에 각인시켰다.


“라키시아 궁전과 비하면 어떤가요?”


드뷔사의 물음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 어려울 거요. 추적 스크롤도 없고, 아렌베일의 실력도 검증받지 못했으니.”


물론 기본적인 구성은 갖추어졌다. 알룬도가 있고, 디스펠 매직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도 존재한다. 아렌베일과 함께 온 병사들도 상당히 숙련된 자들이었다. 하지만 돌발상황이 일어난다면 글쎄? 아렌베일이 제리온만큼, 그리고 그의 동료들이 루도나 디리터만큼 잘해줄지는 미지수였다.

그렇게 한 바퀴 황궁 주변을 돌아본 후 두 사람은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막 점심을 먹자마자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칼롯은 아렌베일이 권한대로 잠이나 실컷 자둘 생각으로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문득 드뷔사가 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신사숙녀 여러분, 지난겨울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어찌나 추웠는지 제 불알은 아직도 오그라들어 돌아올 생각을 안 하고 있습죠. 하지만 그것도 한 철입니다. 얼음이 녹고 있고, 대륙최강 훼창기사단이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진군하고 있다 합니다.”


연설이라 하기엔 많이 가벼운, 유머와 풍자가 가미된 일종의 공연이었다. 단상에서는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배우가 최근 정세에 관한 논평을 하고 있었다. 단상 주위로는 베스티언 시민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는데, 배우가 한마디 할 때마다 뭐가 그리 웃긴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재밌어 보이네요. 구경 좀 하고 가도 될까요?”


“그럴 시간 없소.”


“딱히 같이 봐달라는 건 아니에요. 먼저 들어가세요. 길을 잃을 정도로 멍청하진 않으니까.”


“잠...”


드뷔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연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녀는 이칼롯을 귀찮게 하는 게 신경 쓰였던지 일부러 인파를 헤치고 앞쪽으로 나아갔다. 물론 그런 그녀의 행동은 더욱 이칼롯의 기사도를 자극했다.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어떻게 광장 한복판에 숙녀를 놓고 간단 말인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서 그는 드뷔사의 뒤로 따라붙었다.


“우리 아스트리카 왕국의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전장에 핀 한 떨기 사랑이야기, 로제오와 마리안느입니다.”


그러자 군중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쏟아냈다. 그것만으로도 이 공연이 생각보다 인기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드뷔사는 인파를 뚫고 기어이 맨 앞자리에 자리를 틀었다.


“떠돌이 기사 로제오가 연인 마리안느를 구하기 위해 텔모라드 공국을 정복하는 이야기에요. 제르비안씨는 알고 계신가요?”


“...줄거리를 알고 있다면 굳이 공연을 볼 필요도 없지 않소?”


“어머, 연극이란 볼 때마다 새로운 법이에요. 줄거리를 안다고 감동이 늘 같지는 않죠.”


예상한 대답이었다. 이칼롯은 이죽거려봤자 소용없음을 인정하고 마음 편히 바닥에 걸터앉았다. 배우는 가장 앞쪽에 자리 잡은 군인과 연금술사 아가씨에게 제법 신경이 쓰인 모양이었다. 그는 드뷔사에게 연방 눈을 맞춰가며 공연을 시작했다.


“그러자 마리안느가 말했습죠! 오오, 사랑하는 로제오여. 저 역시 당장에라도 당신에게 날아가고 싶답니다. 하지만 제게 닥친 가혹한 운명이 저를...”


공연은 썩 괜찮았다. 배우의 발성은 물론이거니와 일인다역임에도 감정이입도 훌륭하게 처리했다. 문제는 그의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이칼롯과, 드뷔사라는 사실이었다.


“그, 그러자 로제오가 검을 뽑고 텔모라드의 소공작에게 말합니다. 네 이놈, 지금 당장 마리안느를 데리고 오렸다. 그렇지 않으면...그 거시기...”


이칼롯은 공연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빨리 드뷔사를 데리고 숙소로 돌아가고픈 마음이었다. 반면 드뷔사는 열정적으로 공연을 관람했다. 물론 그녀의 특이성 덕에 표정은 한결같았다.

그렇게 두 무표정 커플의 압박에 배우는 울상이 됐다. 공연은 관람객의 호응도 중요한 요소인데, 맨 앞자리의 두 남녀는 박수는커녕 미소 한 번 지을 때가 없었다.

결국 배우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예정보다 10분 일찍 공연을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단상에 내려오고 나서도 그는 한동안 자신의 연기력에 문제는 없었는지, 아니면 평소에 원한 산 일은 없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물론 드뷔사가 그의 우울한 고민을 알 리 없었다.


“정말 감동적인 공연이었어요. 그렇지 않나요?”


‘그럼 좀 웃던가.’


그녀는 공연이 끝난 뒤로도 배우의 제스처를 흉내 내며 감동을 되새겼다.


“이제 돌아갑시다. 시간이 많이 흘렀소.”


“하지만 해가 지려면 아직 좀 남았는데요.”


드뷔사가 새침하게 뒷걸음질치며 말했다. 하지만 이칼롯은 두 번이나 그녀의 어리광을 받아줄 마음은 없었다. 그는 이번에는 조금 화를 낼 생각으로 거칠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우뚝 멈춰 선 그의 눈은 더 이상 드뷔사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왜, 왜요?”


너무나도 달라진 그의 태도에 드뷔사가 불안하게 물었다. 한껏 확대된 동공이 그의 당황을 여실히 증명해주었다. 여전히 광장은 인파로 북적대고 있었다. 이칼롯은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대규모의 인파에 경비병도 적지 않다. 적어도 이런 곳에서 변을 당하진 않을 것이다.


“드뷔사, 이곳에 꼼짝하지 말고 있으시오. 알겠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인적 없는 장소에 가면 절대 안 되오.”


“에...네?”


그는 드뷔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곧장 등을 돌리고서 화살처럼 튀어 나가는 뒷모습을 드뷔사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아야만 했다.

뭔가 일이 생겼다. 그것도 임무와 관련된 아주 중요한. 하지만 이칼롯이 주의를 당부할 때조차 그녀는 변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그가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광장은 왁자지껄했다. 드뷔사는 왠지 심통이 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칼롯이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뛰쳐나갔는데 맘 편히 공연을 즐길 수 있을 리 없었다.


“하다못해 뭣 때문에 가는 건지 설명이라도 해주든가...”


드뷔사는 광장 가장자리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이칼롯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5분, 10분이 지나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모피상인의 비즈니스멘트가 정확히 23번째 반복되고 있었다.


“정말,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그녀는 혼자 숙소로 돌아갈 생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눈높이가 위로 올라가자 멀리서 다가오는 한 무리의 행렬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거대한 말을 타고 있었는데, 시민들이 그들이 다가올 때마다 혼비백산하여 좌우로 갈라지는 게 보였다. 그렇게 시끄럽던 광장이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


“길을 터라! 그리고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라!”


드뷔사는 인파 속에서 한 중무장한 기사가 시민들에게 사납게 명령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례하다 반항할 법도 하건만, 시민들은 찍소리 못하고 기사가 하라는 대로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사이 광장을 통제하는 기사는 스물로 늘어나 있었다.


“저어...무슨 일인가요 이건?”


드뷔사는 조그만 목소리로 옆 사람에게 물었다.


“뭐긴요. 높으신 분의 행차시죠. 타지인 같은데, 그냥 우리처럼 얌전히 고개만 박고 있으면 돼요.”


얼어붙은 광장에는 이제 기사들의 고함과 병장기 소리만이 가득했다. 드뷔사는 호기심에 못 이겨 살짝 눈동자를 굴려 행렬의 중앙을 바라보았다. 기사들의 철통 같은 호위 속에서도 그 남자를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어깨에 두른 붉은색 견장과,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이 노을을 반사해 눈부신 빛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 폐하 납시오.”


아스트리카 황제 테론 지그문트가 광장을 지나고 있었다.



****



이칼롯은 망토를 휘날리며 골목을 질주했다. 가파른 경사를 뛰어 내려오는 거라 벌써 몇 번이고 넘어질 위기를 넘긴 터였다. 그러나 속력을 줄일 수는 없었다. 언제 녀석들이 안경의 식별범위를 벗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슬러터 둘...아니 셋인가.’


악마식별의 안경을 습관처럼 착용하고 다니던 게 드디어 빛을 발했다. 이칼롯은 짧은 순간 안경이 포착해낸 정보를 파악하곤 곧장 악마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이건 어쩌면 귀중한 기회가 될지도 몰랐다.

눈앞에 펼쳐진 10칸짜리 계단을 그는 한 달음에 뛰어내렸다. 전속력으로 달려온 덕인지 악마와의 거리는 50m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여기까지 오고서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자, 이제 어쩐다?’


베스티언에 나타난 악마. 안개송곳니와 연관이 없을 리 없다. 이칼롯은 그들을 붙잡아 정보를 캐내든가, 아니면 빠르게 처단할 생각이었다. 이쪽에서 먼저 기습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지금의 그라면 텔슈피드를 활용해 일거에 악마를 소탕할 능력이 있었다.

변수가 있다면 슬러터들의 능력이었다. 이칼롯은 안경에 떠오른 악마의 정보를 꼼꼼하게 되새겼다.


‘다크라이더(Dark Rider), 레드가드(Red Guard), 다른 하나는...식별불능(Unknown)인가?"


식별되지 않는 악마. 지금까지 안경의 정보망에 닿지 않은 악마는 없었다. 단 하나만 제외하고. 그 순간 악마무리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레드가드의 존재가 사라지고, 다른 두 악마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큭...!”


이칼롯의 존재를 눈치챘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사고가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기에, 그는 반사적으로 땅을 박차고 나갔다. 어째서인지 그 많은 주택가에서 인기척이 하나도 느껴지질 않았다.

이윽고 이칼롯은 레드가드가 있었던 장소에 도착했다. 코를 찌르는 악취가 가장 먼저 코를 자극했다.


“....?!”


레드가드는 죽어 있었다. 아니, 갈기갈기 찢겨 골목에 흩뿌려져 있는 붉은색 살점이 악마의 시체라고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지금 막 살해된 것인지 살점 위로 검은 연기가 뿌옇게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살해당했다? 다른 악마에게?’


이칼롯은 시체를 조사하기에 앞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거리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악마는커녕 사람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도시 안에 홀로 남겨진 기분, 광장의 떠들썩함과는 극명히 대비되는 풍경이었다.

나머지 두 악마는 이미 탐지범위를 벗어난 것인지 더는 보이지 않았다. 이칼롯은 천천히 레드가드의 사체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건...”


찢긴 발목은 예리한 검상과는 거리가 먼, 야만적인 무기에 의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손톱이나 이빨 같은. 한편 몸통은 날카로운 송곳에 난자당한 것처럼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역시 악마 사이에서 전투가 벌어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이칼롯은 재차 다른 부위를 조사했다. 그런데 검은 연기 사이에서 그의 관심을 끄는 물체가 있었다. 레드가드의 붉은색 신체와는 다른, 진한 회색을 띠는 원통형 물체. 일부분만 남아 있어 정확한 형체는 알 수 없으나 직경으로 미루어보아 레드가드의 몸통을 꿰뚫은 무기일 가능성이 높았다.

원통형의, 찌르는 도구. 아마도 본래 형태는 촉수일 것이다. 이칼롯은 그런 신체를 가진 악마를 하나 알고 있었다.


“제스터...!!”


그의 이름을 떠올리자 이칼롯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았다. 살아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런 장소에서 조우하게 될 줄이야. 제스터가 베스티언에 있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안개송곳니 병력이 이곳에 파견되어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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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1) +2 15.05.25 725 26 23쪽
307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0) +1 15.05.25 749 20 22쪽
306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9) +1 15.05.25 769 20 14쪽
305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8) +4 15.05.25 806 27 17쪽
304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7) +2 15.05.24 934 26 19쪽
303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6) +3 15.05.24 866 22 13쪽
302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5) +2 15.05.24 943 28 19쪽
301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4) +1 15.05.24 843 21 16쪽
300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3) +2 15.05.24 883 23 24쪽
299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2) +2 15.05.24 1,030 29 18쪽
29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 +2 15.05.24 910 25 21쪽
297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5) +6 15.05.23 1,107 21 29쪽
296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4) +1 15.05.23 846 23 20쪽
295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3) +1 15.05.23 948 22 20쪽
294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2) +3 15.05.23 1,137 20 21쪽
293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1) +2 15.05.23 1,079 27 17쪽
292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3) +3 15.05.23 1,139 25 19쪽
291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2) +10 15.05.21 1,053 28 22쪽
290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1) +2 15.05.21 1,109 26 19쪽
289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6) +2 15.05.21 1,080 26 25쪽
288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6) +3 15.05.21 936 24 27쪽
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2 26 25쪽
286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4) +5 15.05.20 1,017 29 21쪽
285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30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09 24 14쪽
283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3) +1 15.05.20 1,044 27 24쪽
282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2) +3 15.05.20 749 23 19쪽
281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1) +1 15.05.20 992 28 22쪽
280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3) +11 15.05.19 1,011 31 30쪽
279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2) +3 15.05.19 1,224 28 17쪽
278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5) +9 15.05.18 1,137 24 18쪽
277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4) +2 15.05.18 808 24 17쪽
276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3) +4 15.05.18 942 22 24쪽
275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2) +3 15.05.18 931 23 23쪽
274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1) +2 15.05.18 1,029 25 19쪽
273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1) +2 15.05.18 974 22 19쪽
27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3) +1 15.05.18 1,221 25 25쪽
27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2) +2 15.05.17 1,011 29 25쪽
27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1) +1 15.05.17 867 20 22쪽
269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0) +1 15.05.17 966 23 23쪽
268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9) +1 15.05.17 1,039 23 20쪽
267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8) +6 15.05.17 907 25 22쪽
266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7) +5 15.05.16 992 26 22쪽
265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6) +1 15.05.16 887 22 26쪽
264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5) +2 15.05.16 1,030 29 26쪽
263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4) +1 15.05.16 1,001 24 24쪽
26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3) +3 15.05.16 857 23 25쪽
26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2) +2 15.05.16 926 23 26쪽
26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 +3 15.05.16 1,060 31 31쪽
259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6) +8 15.05.14 1,064 29 22쪽
258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5) +7 15.05.14 914 22 11쪽
257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4) +4 15.05.14 1,032 21 20쪽
256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3) +3 15.05.14 894 22 31쪽
255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2) +5 15.05.14 1,000 24 27쪽
254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1) +6 15.05.13 904 24 30쪽
253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0) +3 15.05.13 943 22 24쪽
252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9) +1 15.05.13 995 21 27쪽
251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8) +1 15.05.13 897 18 27쪽
250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7) +4 15.05.12 1,088 26 27쪽
249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6) +5 15.05.12 995 25 27쪽
248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5) +3 15.05.12 1,102 25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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