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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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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4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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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6)

DUMMY

흑연기사단의 패전은 이전의 백천기사단이 당했던 그것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이미 레인스터 공방전으로 기력을 빼앗긴 병사들은 왕실기사단의 전면적인 공세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주력이 궤멸하자 스벤달은 분을 삭이며 퇴각을 명령했지만, 그것마저도 여의치가 않았다. 로샤단의 유격대가 군량을 모두 불태워버린 까닭에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안전한 퇴로조차 보장받을 수 없었다. 결국 왕실기사단의 집요한 추격에 병력의 8할을 잃고 나서야 스벤달은 아군의 점령지로 달아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레인스터가 단독으로 일주일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버텨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레인스터의 사수로 리크나이츠는 북부 일대에 전선을 펼치는 게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는 늘어진 보급선으로 고민하던 아스트리카 군에게 크나큰 위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레인스터 공방전이 위대한 승리였다 할지라도, 이를 진두지휘한 로샤단은 그러지 못했다. 제리온의 죽음은 일행에게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목숨보다도 끈끈한 유대감으로 맺어져 있던 관계였기에 그 슬픔은 더욱 컸다.

루도와 디리터는 그래도 비교적 침착하게 전후의 문제를 처리하고 다녔다. 그들은 혼수상태에 빠진 이칼롯을 대신하여 왕실기사단과 만나 차후의 전략에 대해 논의했다. 마리네는 카이안을 도와 부상병을 간호하고 다녔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제리온이 생각나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그는 집착이 느껴질 정도로 일에 매진했다.

문제는 레미나였다. 제리온을 친동생보다도 아끼던 그녀였다. 처음 흰 천에 가려진 제리온의 시신을 접했을 때, 그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졸도했다. 이틀간이나 의식을 되찾지 못하던 그녀는, 깨어나자마자 제리온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오열했다. 루도는 그녀가 그토록 서럽게 우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다. 일행에게 동료였다면, 그녀에게는 가족 그 이상의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제리온의 장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칼롯이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었기 때문에 디리터가 대신 결정을 내렸다. 그는 관청을 대표하여 나온 행정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희만 특혜를 받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합동 화장식 때 함께 보내도록 하죠. 대신 묘비는 저희가 따로 만들겠습니다만.”


아쉽긴 하지만, 디리터의 발언은 정론이었다. 이미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에 이를 처리하는 것도 큰 골칫거리였다. 단체로 매장한다 해도 웬만한 연못만한 구덩이를 파야 할 지경이었고, 또 이렇게 처리를 하면 전염병이 번질 가능성도 있었다. 이미 흑연기사단의 시체는 일찌감치 처리했고, 아군 전사자의 유해도 가족들의 양해를 구한 뒤 화장할 예정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듣고 있던 레미나가 경기를 일으키며 반대하고 나섰다.


“말도 안 돼! 다름 아닌 제리온이라고요. 이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고요! 그런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그리 매몰차게 대할 수가 있죠? 하물며 당신은 제리온의 동료였잖아요!”


“그건 우리도 알아. 하지만 공주, 아직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니야. 무너진 성곽을 보수하려면 일손 하나가 빠듯한 시점이라고. 우리만 사치를 부릴 수는 없잖아.”


“아니야, 인정할 수 없어! 제리온이, 제리온이 죽었단 말이야. 난 그 아이의 마지막 가는 모습도 지켜보지 못했는데...어떻게...으흐흑...”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던 레미나는 또다시 감정이 복받쳐오는지 가슴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그녀의 자그마한 손목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덜덜 떨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처연하고 고통스러워 보여서, 디리터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렇게 몇 분간을 흐느끼다 그녀는 돌연 정색하며 말했다.


“리크나이츠 왕가의 이름으로 명하겠어요. 제리온의 장례는 국가최고위 유공자에 준하는 국장으로 치를 거예요. 예산과 인원이 얼마나 투입되든 상관없어요. 그가 영웅이라면, 영웅에 걸맞는 예를 표하라고요!”


일행은 그녀의 발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발언 자체의 파격성도 있지만, 그걸 입에 담은 사람이 레미나라는 게 더욱 충격이었다. 설마 그녀에게서 이런 면모를 보게 될 줄이야. 물론 그녀가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성격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일행이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제리온의, 어쩌면 가족보다도 소중히 여겼던 그의 죽음이 그만큼 레미나를 커다란 실의에 빠뜨렸다고 봐야 했다. 지금껏 절제하던 감정이 폭발한 까닭일까, 그녀는 체면이고 뭐고 전부 무시한 채 독설을 퍼부어댔다.

그러나 아무리 그녀의 처지를 배려한다 해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군가는, 그녀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루도는 정도가 점점 심해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만해, 레미나. 많이 지친 것 같다.”


“그만 하라니, 뭘? 내가 뭐 갑자기 미친년이라도 된 것 같아? 전사자에게 합당한 예우를 갖추라는 게 그리 부당한 처사야?”


“...아무도 그런 말 하지 않았어. 조금 진정하고 차분하게 생각해보자는 거야.”


“아니야. 난 멀쩡해. 오히려 난 너희들의 태연자약한 태도가 기가 막힌다고. 동료잖아? 그것도 제리온이잖아? 제리온이 고작 이런 대접밖에 못 받을 정도였어? 너에게 고작 그 정도 사람이었어? 레인저란 다 그런 거야? 죽으면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테니 별로 상관없다 그거야?! 그거 참 퍽이나 현실적이네!!”


도를 넘어가는 그녀의 폭언에 루도도 점점 짜증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 제리온을 경시하는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레미나는 마치 자신만이 그를 이해하고 있는 양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소꿉친구로서의 유대가 있다면, 일행은 로샤단이라는 유대로 엮어져 있었다. 특히 제리온의 마지막 감정을 공유했던 루도로서는 자신을 매도하는 레미나의 발언이 적잖이 모욕적이게 느껴졌다.

이렇다 보니 말리는 그의 언행도 차츰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적당히 해라. 너만 힘든 거 아니라고.”


“그래요, 침착해서 참으로 자랑스러우시겠네요. 하지만 난 그렇겐 못해. 왜 하필 제리온이 죽은 거냐고!!”


“너 정말...!”


“이럴 줄 알았으면 떼를 써서라도 전투에 참가할 걸...그래, 그럼 내가 제리온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고 보니 너랑 마리네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서? 왜, 왜 막지 못했어. 왜 그 아이를 죽게 내버려뒀어!”


철썩. 참다못한 루도가 손찌검을 날렸고, 아무런 방비조차 없었던 레미나는 그대로 쓰러져 방바닥을 굴렀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리네는 물론 유미르네조차도 화들짝 놀라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작작 좀 해 이 계집애야!!”


레미나는 아픈 것도 잊고 벙찐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욱해서 욕설을 퍼부으려던 그녀는, 분노로 일그러진 루도와 마주하자 말문이 턱 막혔다. 그 점철된 고통과 마주한 순간 그녀는 자신이 지금까지 무슨 망언을 내뱉고 있었는지 이해하고 말았다.


“누가 누굴 모욕한다는 거야. 내 눈! 이 빌어먹을 펠아람의 눈은 보아선 안 될 것을 본단 말이야. 제리온이 마지막에 뭐라고 했는지 알아?”


“....”


“그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도 ‘그다음’을 생각하고 있었어! 제리온은 죽었지만, 아직 우리의 목표는 끝나지 않았어. 스벤달 오빌리크도, 제랄드의 아케니온도, 안개송곳니도 모두 팔팔하게 살아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딴 어리광은 그만 부려!”


루도는 말리는 마리네도 뿌리치고는 레미나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뺨은 엉망으로 부어올랐고,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한마디 하려던 루도를 이번에는 디리터가 말리고 나섰다. 팔목을 움켜쥐는 악력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에 루도도 순간 흠칫하여 손을 놓고 말았다. 구속이 풀리자마자 레미나는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마리네가 어서 그녀를 따라가라고 독촉하자 유미르네는 마지못해 방문을 나섰다.


“네, 네, 뒤치다꺼리는 내 담당이지. 항상.”


한편 루도는 디리터의 제지가 영 거북스러웠다. 왠지 자신이 부정당한 것만 같아 그는 괜스레 심통이 났다. 그러나 디리터가 염려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문제였다.


“왜 그래? 내가 뭐 못할 말이라도 했어?”


“...너무 세게 때렸어.”


그제야 여자를 때렸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너무 부아가 치밀어 있는 대로 힘을 실은 데다 하물며 레미나는 연약한 소녀였다. 뒤늦게 밀려오는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루도는 그녀를 제지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았다. 아무리 슬퍼도 할 말과 안 할 말은 구분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모양새가 어찌 됐든 덕분에 실내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자문을 구하러 왔다 생각지도 못한 참사(?)를 보게 되어버린 행정관이 헛기침을 해대며 말했다.


“흠, 국장은 아무래도 무리겠지만, 그래도 공주님의 말씀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레인스터를 구한 영웅을 일반 병사들과 똑같이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예? 하지만 그래선 형평성이...”


“레인스터의 시민들이 원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은 화장해도, 멜피드 경만은 정식으로 장례를 치러주어야 한다는 노파가 있을 정도니까요. 이미 묏자리와 관은 준비해 두었습니다. 아, 물론 로샤단 분들이 원하지 않으신다면 즉시 취소하겠습니다.”


행정관은 제리온을 영웅으로 묘사하며, 정식으로 묘비를 남겨 후대에도 그의 기상이 잊히지 않게 하자고 권유했다. 이미 시민들의 동의도 얻었겠다, 디리터는 흔쾌히 그의 제안을 승낙했다. 이 정도면 레미나의 요구도, 그리고 전사자 유족들의 비애감도 자극하지 않는 적절한 절충안이었다.

물론, 이미 루도와 레미나 사이에 일이 터져버렸지만 말이다.



제리온의 장례식은 그로부터 이틀 뒤에 치러졌다. 레인스터의 동문을 끼고 도는 완만한 능선 가장자리, 고개를 들면 델키아를 향하는 직선 도로가 길게 뻗어있는 그곳에 그의 관이 안치되었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아침부터 약한 부슬비가 내렸다. 궂은 하늘에 겨울이라는 악재까지 겹쳐 추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수백 명의 인파가 모여 그의 발인을 참관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 남편을 잃은 아내, 불구가 된 병사,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아버지의 손을 잡고 따라온 어린아이까지도.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 묻는 아들의 철없는 질문에 아버지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이날을 결코 잊지 말거라. 이곳에 제리온이 있었다는 것을.

밀려드는 인파 속에서 오린은 입을 굳게 다문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손을 잡아주는 아나이스의 배려도 뿌리치고는,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주먹을 불끈 쥔 자세로 제리온의 유해가 안치된 관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워낙에 키가 작아 인파에 묻혀 보이지조차 않았지만, 일행은 그의 존재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레미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검은색의 상복 위로 틀어 올린 백금발 머리칼이 너무나도 가냘프게 느껴져 보는 사람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루도에게 맞은 뺨은 퉁퉁 부어올라 옷깃으로 애써 가리고 있었다. 그녀가 의도적으로 루도를 피하는 게 느껴지자 유미르네가 짓궂게 그를 타박했다.


“기운도 좋으셔. 혹시 이빨이라도 나갔으면 어쩌려고 그랬니?”


“...신경 꺼.”


꽃이 피지 않는 계절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각자 조화를 만들어 관 위에 헌화했다. 레미나는 직접 정성스럽게 만든 비단백합을 바쳤다. 헌화를 마치자 그녀는 제리온의 관을 쓰다듬었는데, 이것으로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결국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하여 유미르네의 부축을 받고 퇴장했다. 루도와 마리네, 카이안도 각기 준비한 조화를 바쳤다. 반면 디리터는 꽃 대신 자그마한 유리병에 브랜디를 꽉꽉 채우고는, 마개를 닫아 관 위에 내려놓았다.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니 흙이 부스스 떨어져 술병을 덮어버렸다. 디리터는 땅이 꺼져라 탄식하며 말했다.


“정말 끝까지 어이없는 녀석이야. 자기를 찌른 놈까지 불태우고 죽다니, 이래선 원수를 갚고 말고 할 것도 없잖아.”


사위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귓가에 단지 부슬비 소리만이 아련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마치 며칠 전의 전투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평화의 대가라고 생각하면...지나친 합리화일까?

헌화가 끝나자 루도는 일행을 대표하여 진혼문을 읽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조문객이 많았기 때문에, 뒤에 사람까지 들리도록 루도는 있는 대로 목청을 높였다.


“오늘 우리는 한 명의 영웅을 잃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제르카엘시온 멜피드.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를 아시는 분이라면 생전의 그가 본명보다는 제리온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길 좋아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제리온,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숭고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제리온이 남긴 유품이라고는 입고 다니던 옷이 전부였다. 레미나는 그중 붉은색 스카프를 꼬옥 안은 채로 흐느꼈다. 제스터와의 전투에서 입은 화상을 그는 늘 붉은 리넨 스카프로 가리고 다녔는데, 그러나 상처 자체에 대해서는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기곤 했다.

루도의 진혼문이 이어졌다.


“그는 끝까지 희망의 씨앗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도시에 평화와 안녕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는 열매 맺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였으며 자애와 관용을 평생 미덕으로 삼았...습니다?”


뭔가 다른 사망자의 진혼문을 가져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글거리는 내용이었다. 마리네가 디리터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저거, 누가 작성한 거야? 열매 맺는 모든 생명이라니...”


“...장례는 류이너스 전문이니까, 신전 사제님에게 맡아 달라 했지. 그런데 이렇게 소설을 써주실 줄이야.”


두 사람은 조그맣게 웅얼거리기라도 하지, 직접 읽는 루도는 당황하여 입만 뻐끔거렸다. 웬만하면 대충 넘어갈 텐데, 너무 당사자와 동떨어진 수식만 붙어 있다 보니 팔에 두드러기가 돋을 지경이었다. 결국 그는 진혼문을 접어버리고는, 직접 즉석에서 생각나는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다시 하겠습니다. 조문객 여러분, 한 번이라도 그를 보았다면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동감하실 겁니다. 솔직히 그는 자애와 관용이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건방지고, 무례했으며, 가꾸기보다는 파괴하는 데에 더 관심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쏟아내는 독설과 도발 덕에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연장자에게 반말을 퍼붓는 건 기본이요, 툭하면 무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를 보좌하던 장교들이 심히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루도 역시 늘 가슴에 담아두었던 평가인지라 외워두었던 것처럼 술술 말이 나왔다. 그러나 험담이 끝나자, 그는 목 아래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 잠시 숨을 골라야 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언제나 옳았습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지만 늘 정의였고, 그가 행사한 폭력은 늘 악인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책상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기보다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싶어 했습니다. 이론보다는 실전이 중요하다고 밥 먹듯이 말하곤 했습니다. 여러분, 그가 싸우던 모습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습니다. 현자(賢者)보다는, 강자로서 기억되길 원했습니다!”


그의 불꽃은 언제나 불의(不義)를 직시하고 있었다. 그 붉은 환희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루도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을 억지로 삼키고는, 마지막 당부로 진혼문을 마무리 지었다.


“로샤단은 제리온을 기억할 겁니다. 여러분도 부디, 그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가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와 같은 시련이 닥쳤을 때, 그의 이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십시오.”


여기저기서 비장한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그것은 오열이었고 함성이었으며, 남겨진 모든 사람들의 맹세였다. 부슬비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었다. 부드러운 빗줄기가 피로 물든 대지를 씻어 내려갔다. 뽀얗게 시야를 가린 입김은 그대로 하늘로 승천해 먹구름이 되었다.

그 고요한 거룩함 속에서, 사람들은 희생과 용기에 대해 거듭 되새겼다.

.

.

.

그리고 누군가는, 그들과 다른 것을 보았다.




***




장례식이 끝나고 해가 저물어오기까지 루도는 제리온의 묘비 앞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굳이 무덤을 지키고 있을 필요는 없었지만, 그의 묘비와 마주하고 있자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떠난 능선은 한 사람의 무덤으로 삼기엔 지나치게 넓었다.

메마른 고개를 타고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목덜미를 관통하는 추위에 옷깃을 여미던 그는, 멀리 이칼롯이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온몸이 붕대 투성이인 데다 왼팔에는 부목까지 대고 있어 마치 목각인형이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루도는 얼른 다가가 그를 부축하려 했으나, 그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움직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고비는 넘겼다. 이젠 별로 아프지도 않고.”


이칼롯은 넘어지듯 묘비 앞에 주저앉고는, 가져온 리큐르의 마개를 땄다. 리큐르의 용량은 척 봐도 2~3리터는 될 것 같았다. 이칼롯은 먼저 병을 기울여 벌컥벌컥 들이켰다. 워낙 투박한 모양새인지라 술 몇 가닥이 넘쳐 그의 턱을 적셨다. 루도는 닦아줄 엄두도 못 내고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칼롯이 말했다.


“장례는...잘 끝냈냐.”


“...어. 조문객만 수백 명이 왔어. 정말로 영웅이라는 거지.”


“그렇군...”


곧이어 그는 제리온의 무덤에 술을 들이붓기 시작했다. 이제 막 완성된 봉분 위로 붉은 리큐르가 가득 떨어졌다. 어찌나 그 양이 많은지 무덤 자체가 붉은색으로 보일 정도였다. 술을 전부 쏟아내고 나자 이칼롯은 맥이 빠진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루도는 조심스럽게 이칼롯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무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담담한 얼굴이 작위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루도는 무덤에 시선을 향한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안 울어?”


“.....”


“이칼롯이 강하다는 건 누구보다도 우리가 잘 알아. 하지만 감정을 참는 게 강함을 표현하는 지표는 아니잖아? 슬프면 울어.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 거짓말이야. 항상 이칼롯을 지켜본 나니까 알 수 있어. 그러니까, 우리 앞에서만큼은 참지 않아도 돼.”


이칼롯은 말이 없었다. 하늘은 여전히 가느다란 빗줄기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에서는 구름이 개어 푸른 하늘을 엿볼 수 있었지만, 그것은 지금의 일행에게는 너무나도 아득한 거리였다.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루도는 그 침묵이 오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칼롯의 손목이 덜덜 떨려오는 게 보였다. 이윽고 그는 얼굴을 감싸며 끅끅대기 시작했다. 가린 손바닥 사이로 눈물 몇 줄기가 흘러내렸다.


“쪽....팔리잖냐.”


한 번 둑이 터지자 눈물은 멈추지 않고 넘쳐흘렀다. 그는 애써 감정을 추스르려다, 다시 복받쳐 오는 슬픔에 흐느끼기를 반복했다. 루도는 시선을 돌린 채 가만히 침묵을 지켰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다정어린 손길 따위가 아니었다. 오로지 시간, 슬픔을 게워낼 시간만이 그를 치료할 수 있었다.

5년이라는 세월, 길다면 정말 긴 시간이다. 그 시간동안 제리온과 이칼롯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루도, 마리네, 디리터가 친구나 형제 같은 사이라면, 두 사람은 그야말로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였다.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기에 그만큼 유대감도 깊어졌다.

그래, 언젠가 함께 탔던 비좁은 짐마차 - 그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다시는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다.”


“하지만 제리온은 좀 다른 유형의 인간이지.”


“그래. 건방지고, 폭력적이고,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어.”


정말로 좋은 시절이었다. 마치 지금 마주한 현실이 꿈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칼롯은 처연하게 미소 지었다. 추억은 미화되어 아름다운 성화(聖畵)로 남았다. 어느덧 사위는 불을 켜야 할 정도로 어두워졌다. 비 내리는 겨울의 하루는 놀라우리만치 일찍 끝이 났다. 두 사람은 저녁을 알리는 종소리에 맞추어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사흘이고 나흘이고 묘소를 지키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또한 그것은 제리온이 남긴 유지이기도 했다.


“편히 쉬라고. 우린 계속 뺑이 칠 테니까.”


이칼롯은 헌화 대신 빈 술병을 묘비 앞에 내려놓았다. 묘비에 적힌 문구는 유리병에 굴절되어 마치 눈물에 젖은 것처럼 흐리게 다가왔다.


「제르카엘시온 멜피드 이곳에 잠들다. 그가 있음으로 이 땅은 평화를 얻었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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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1) +11 15.06.10 1,013 42 11쪽
337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0) +12 15.06.03 1,013 36 19쪽
336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9) +6 15.06.02 1,093 32 17쪽
335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8) +6 15.06.02 952 31 15쪽
334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7) +2 15.06.02 969 27 16쪽
333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6) +3 15.06.02 972 28 20쪽
332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5) +2 15.06.02 925 25 15쪽
33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4) +3 15.06.02 989 25 19쪽
33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3) +7 15.06.01 913 33 18쪽
32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2) +2 15.06.01 930 27 22쪽
32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 +3 15.06.01 878 26 23쪽
327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5) +5 15.05.31 935 29 13쪽
326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4) +1 15.05.31 850 23 19쪽
325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3) +2 15.05.31 918 25 22쪽
324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2) +2 15.05.31 948 24 19쪽
323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1) +1 15.05.31 782 21 20쪽
322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5) +10 15.05.30 980 34 21쪽
321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4) +5 15.05.30 876 26 19쪽
320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3) +6 15.05.27 1,020 30 18쪽
319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2) +2 15.05.27 747 28 15쪽
318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1) +3 15.05.27 769 29 14쪽
317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4) +1 15.05.27 900 26 18쪽
316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3) +8 15.05.26 898 23 27쪽
315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2) +2 15.05.26 773 24 23쪽
314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1) +3 15.05.26 866 20 28쪽
313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5) +2 15.05.26 844 26 21쪽
312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4) +1 15.05.26 892 25 18쪽
311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3) +3 15.05.26 1,089 24 25쪽
310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2) +3 15.05.25 874 25 28쪽
309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1) +2 15.05.25 969 22 18쪽
30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1) +2 15.05.25 725 26 23쪽
307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0) +1 15.05.25 748 20 22쪽
306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9) +1 15.05.25 768 20 14쪽
305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8) +4 15.05.25 806 27 17쪽
304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7) +2 15.05.24 934 26 19쪽
303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6) +3 15.05.24 866 22 13쪽
302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5) +2 15.05.24 942 28 19쪽
301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4) +1 15.05.24 843 21 16쪽
300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3) +2 15.05.24 883 23 24쪽
299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2) +2 15.05.24 1,030 29 18쪽
29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 +2 15.05.24 909 25 21쪽
297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5) +6 15.05.23 1,107 21 29쪽
296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4) +1 15.05.23 846 23 20쪽
295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3) +1 15.05.23 948 22 20쪽
294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2) +3 15.05.23 1,137 20 21쪽
293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1) +2 15.05.23 1,079 27 17쪽
292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3) +3 15.05.23 1,139 25 19쪽
291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2) +10 15.05.21 1,053 28 22쪽
290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1) +2 15.05.21 1,109 26 19쪽
289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6) +2 15.05.21 1,079 26 25쪽
288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6) +3 15.05.21 936 24 27쪽
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2 26 25쪽
286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4) +5 15.05.20 1,017 29 21쪽
285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30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09 24 14쪽
283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3) +1 15.05.20 1,043 27 24쪽
282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2) +3 15.05.20 749 23 19쪽
281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1) +1 15.05.20 992 28 22쪽
280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3) +11 15.05.19 1,011 31 30쪽
279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2) +3 15.05.19 1,224 28 17쪽
278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5) +9 15.05.18 1,137 24 18쪽
277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4) +2 15.05.18 808 24 17쪽
276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3) +4 15.05.18 941 22 24쪽
275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2) +3 15.05.18 930 23 23쪽
274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1) +2 15.05.18 1,029 25 19쪽
273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1) +2 15.05.18 974 22 19쪽
27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3) +1 15.05.18 1,221 25 25쪽
27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2) +2 15.05.17 1,011 29 25쪽
27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1) +1 15.05.17 866 20 22쪽
269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0) +1 15.05.17 966 23 23쪽
268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9) +1 15.05.17 1,039 23 20쪽
267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8) +6 15.05.17 907 25 22쪽
266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7) +5 15.05.16 992 26 22쪽
265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6) +1 15.05.16 887 22 26쪽
264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5) +2 15.05.16 1,030 29 26쪽
263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4) +1 15.05.16 1,001 24 24쪽
26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3) +3 15.05.16 857 23 25쪽
26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2) +2 15.05.16 925 23 26쪽
26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 +3 15.05.16 1,060 31 31쪽
»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6) +8 15.05.14 1,064 29 22쪽
258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5) +7 15.05.14 913 22 11쪽
257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4) +4 15.05.14 1,031 21 20쪽
256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3) +3 15.05.14 894 22 31쪽
255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2) +5 15.05.14 999 24 27쪽
254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1) +6 15.05.13 904 24 30쪽
253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0) +3 15.05.13 943 22 24쪽
252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9) +1 15.05.13 995 21 27쪽
251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8) +1 15.05.13 897 18 27쪽
250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7) +4 15.05.12 1,088 26 27쪽
249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6) +5 15.05.12 995 25 27쪽
248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5) +3 15.05.12 1,102 25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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