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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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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25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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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8)

DUMMY

아스트리카 왕국. 세계 여러 지역을 돌아다녀 봤다고 자부하는 이칼롯도 이 광대하고 척박한 땅만큼은 처음이었다. 특히 전쟁이 절정에 치닫는 시기에 적국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자체가 대단한 모험이었다. 이정표 하나 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는 일행의 남은 여로를 의미하는 것처럼 막연하게 다가왔다.

서릿발은 그쳤으나 지평선 너머에서 불어오는 강렬한 대륙풍이 얼굴을 강타했다. 일행은 아예 목도리를 코가 다 가려질 때까지 잔뜩 올려 썼다. 망토자락은 금방이라도 뜯겨 나갈 듯 바람에 흩날렸다.

아스트리카는 기본적으로 농업국가지만, 텔아단과 근접한 초지나 고원지대에선 목축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기에 리크나이츠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휴경지도 없었고, 마을 간의 간격도 굉장히 넓었다. 아니, 애초에 계절에 따라 마을 전체가 이동하는 사회였다.


“최강국, 최대국, 최빈국. 아스트리카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지.”


“최빈(最貧)인가요? 수도 베스티언은 황금으로 지어진 도시라 들었는데요. 군대도 그렇게나 많고.”


알룬도는 빙긋 눈웃음을 지었다. 드뷔사가 말한 대로 타국의 시민들은 아스트리카의 정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굳이 정보가 통제된다기보다는, 너무 영토가 크고 지역 간에 교류도 활발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농경을 하는 곳은 부유하지. 하지만 이렇게 목축을 하는 곳, 특히 정복전쟁으로 강제로 편입된 지역은 가혹한 수탈로 노예와도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더군. 이런 주종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더욱 강력한 군대가 필요하고, 군대를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모으기 위해 세금을 올리지.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야.”


곁에서 듣고 있던 이칼롯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복국가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리크나이츠도 내전이 거듭되던 50년 전까지만 해도 아스트리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전이 끝나고 대대적인 반란군 숙청이 벌어진 다음에야 겨우 모병제 기반의 시스템이 정립된 것이다.


“그럼 지금은 더 상황이 안 좋겠네요. 전쟁이 한창이니.”


그것이 이칼롯이 염려하는, 혹은 반대로 노리는 부분이기도 했다. 자그마치 3개 기사단을 파견한 데다 지금쯤이면 증원부대의 편성도 끝냈을 것이다. 아무리 대국 아스트리카라도 그 정도 규모의 군대를 유지하려면 왕실 비축물자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분명히 국민을 상대로 추가적인 전쟁세가 걷혔을 텐데, 이때 반발이 생기지 않는 경우는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다.


“작은 마을은 들를 필요 없소. 알룬도, 이 부근에서 가장 큰 도시로 안내해 주시오.”


“큰 도시로? ...뭐 있긴 한데...왜?”


“정보가 필요하오.”


물론 모르는 지역에 들어선 상태에서 우선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당연한 행위였다. 그러나 이칼롯이 말한 ‘정보’의 의미는 의례적으로 생각하는 지리나 기후에 관한 게 아니었다. 지금 같은 전시상황을 이용할 만한 것들 - 군대, 전염병, 치안상황, 정치구조 등등 - 앞으로의 작전에 써먹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그런데 잠시 생각에 골몰하던 드뷔사가 그의 망토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 도서관으로 가는 건가요? 아무리 특임신분증이 있어도 도서관만큼은 외국인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서 조금 무리일지도 모르는데요.”


이런 면에서는 학생답다고 해야 할까, 그녀의 ‘순진한’ 의견에 알룬도가 술잔을 기울이는 제스처를 취했다. 드뷔사는 제스처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연방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행은 그녀가 술집은커녕 술 자체를 입에 대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처음으로 들른 도시는 바람이 부는 황야 한가운데 지어진 탓인지 듬성듬성 들어선 건물 사이론 단지 황망함밖에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도시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특임신분증으로 성문을 통과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길가에 쓰러져 있는 거지들이었다. 그들은 구걸할 기력마저 남지 않은 건지 피골이 상접한 채로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전쟁세 납부로 일반인마저 파산하는 시기에 이런 천민들은 꼼짝없이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도시는 포위됐을 때의 레인스터가 차라리 낫다고 느껴질 정도로 비참한 공기가 감돌았다. 이미 신전 지붕 위에는 까마귀 떼가 몰려와 거지들의 숨이 끊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은 말머리를 돌려 곧장 술집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와중에도 알룬도는 가능한 한 굶주린 시민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것이 동정이든, 아니면 도발이든 발목을 붙잡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빵 부스러기 한 줌도 아까운 시기에 술집이 잘 될 리도 없었다. 가게 문을 열자 퀴퀴한 먼지와 함께 텅 빈 테이블 더미가 일행을 맞이했다. 불 꺼진 스탠드에서 한 노인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뭐요. 한잔하시려고?”


일행은 스탠드 맞은편에 나란히 앉았다. 여행복 차림이긴 하나 갑옷을 착용하고 있는 이칼롯과, 허리춤에 걸린 류트 덕인지 아무리 봐도 음유시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알룬도, 그리고 목도리를 풀 생각도 없이 다소곳이 앉은 연금술사 아가씨 드뷔사의 조합은 확실히 이질적이었다. 노인도 낯선 이방인의 방문에 호기심이 들었는지 부산하게 잔을 닦았다. 이칼롯은 미리 환전해 온 아스트리카 은화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라비 드 로제. 그리고 간단히 끼니 때울 거 있소?”


“없지는 않소만, 보다시피 이런 시기라서 말이지. 그리 기대는 하지 마시구려.”


노인이 곧 주방에서 딱딱하게 굳은 빵 껍데기와 구운 닭 발톱, 썩기 직전의 개고기 따위를 가져왔다. 리크나이츠였으면 벌써 술잔이 날아왔겠지만, 일행은 군소리 없이 식사를 받아들였다(놀랍게도 드뷔사도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빵을 우물거리던 이칼롯은 노인이 홀로 돌아오자 잔을 비우고는 말했다.


“우리는 리그니체에서 온 여행자요. 베스티언까지 가려고 하는데, 주의해야 할 사항 같은 거 있소?”


‘라비 드 로제’는 정보를 뜻하는 와인이다. 노인도 짐짓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말했다.


“뭐 하러 가는지는 모르겠소만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요. 늑대도 늑대지만 야적떼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한다오. 어찌나 지독한지 요 몇 달 간 사고 없이 돌아온 상단이 없을 정도요. 상인이 몸을 사리니 물자도 안 통하고, 파산한 유목민들이 야적이 되고...악순환의 연속이라오.”


“군대는 뭘 하고 있소? 야적떼 정도면 정규군의 상대가 되지 않을 텐데.”


“말도 마시오. 경비대는 믿을 게 못 되오. 돈 받고 야적의 뒤를 봐주는 건 예사고, 아예 신분을 감추고 상단을 습격하는 놈들도 있소. 이 도시는 이제 두 손 두 발 다 들었소. 그냥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거지. 훼창기사단이라도 돌아오면 좀 나아질 법도 한데.”


역시 무리한 원정으로 아스트리카의 치안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들판의 야적과 부패한 경비대라, 그래도 로샤단이 현상수배 누명에 시달려가며 움직이던 때에 비하면 나은 편이었다.

그런데 노인은 이칼롯과 알룬도의 깔끔한 무장상태를 보고 동경 비슷한 감정을 느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내 짙은 한숨으로 변했다. 그는 이칼롯의 잔에 술을 채워 넣으며 말했다.


“특히 이곳 도적떼는 단연 최악이오. 살인을 밥 먹듯이 하고 여자는 걸음마만 뗀 나이면 닥치는 대로 잡아가고...베이룬드의 외팔이 의적단 같은 건 이 지역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지.”


그 순간 이칼롯의 눈이 번쩍 떠졌다. 노인의 일상적인 넋두리에서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단어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외팔이 -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이 세상에 장애인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단순히 상징으로서만 그 단어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칼롯은 로샤단이었고, 지금 아스트리카 영토에 들어와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한 남자의 실루엣이 그려졌다.

외팔이, 외팔이 마법사, 왕실 마법 근위대.


“자세히 말해주시오. 외팔이 의적단이라는 게 뭐요?”


“별거 아니오. 베이룬드 인근에서 출몰하는 자들인데, 민간인은 건드리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오. 우두머리가 외팔이라서 외팔이 의적단이라 불리는데, 마법사라는 소문이 있다오.”


여기까지 들으면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 남자에 대해 알고 싶소.”


노인의 어깨가 으쓱 위로 올라갔다. 그는 다듬지 않아 지저분하게 흐트러진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안하구려. 워낙 먼 도시의 이야기고 또 그렇잖소? 마법사라는 게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족속도 아니고...그러고 보니 왕실마법근위대가 아예 해체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여하튼 나는 모르는 이야기요.”


한편 알룬도는 이칼롯의 노림수를 눈치채고는 무릎을 탁 쳤다. 과연 의외의 장소에서 수확을 얻었달까? 그는 안개송곳니에게 속아 로샤단과 전투를 벌였던 아스트리카 마법근위대를 찾고 있었다. 그들이라면 확실히 이 타지에서 유력한 조력자가 되어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문제는 노인이 언급했듯, 이 광활한 나라에서 그자들의 정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칼롯은 이후로도 몇 가지 질문을 건넨 뒤에 대화를 끝마쳤다. 적당히 숙소를 잡고 나서 일행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도시 안이라곤 해도 도둑이나 강도가 들지 않으라는 법은 없었기에 이칼롯과 알룬도가 교대로 불침번을 섰다.

막 드뷔사가 잠이 들자 알룬도가 씹고 있던 아몬드 주머니를 휙 건네며 말했다.


“그 마법사를 찾으면 어쩔 거지?”


이칼롯은 아몬드 하나를 집어 손바닥 위에서 가만히 굴리다 답했다.


“그건 찾은 다음에 고민할 생각이오. 하지만 아렌베일...그자가 루도, 마리네와 나누었던 대화로 미루어 보건대 잘만 설득하면 우리 힘이 되어줄 거요. 특히 왕실 마법사였으니 베스티언의 지형에도 익숙할 거고.”


“본인이 아닐 수도 있잖아? 우호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럼 그냥 이대로 움직이면 되는 거요. 그자를 찾는 일이 행군속도에 영향을 주진 않을 거요.”


알룬도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고민이 생긴 듯 류트 현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벌써 반년이 넘어가는데도 그의 조율솜씨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상태였다.


“단순히 보험이라면 상관없지만 말이지. 제대로 찾을 생각이라면 좀 더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을 거야. 아스트리카는 리크나이츠랑은 달라. 땅이 너무 넓거든.”


“좋은 방법이라도 있소?”


“흠, 우리가 그자를 찾는 것도 좋지만, 그자가 우리를 찾게 하는 게 가장 좋은 거 아닌가? 이를테면...”


거기까지 말하고서 알룬도는 입을 다물었다. 막상 구체적인 수단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분을 감추고 움직이는 일행의 특성상, 아렌베일을 끌어들이는 방식은 분명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이칼롯은 알룬도의 제안을 제법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도 정보를 흘릴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이튿날부터 일행은 더욱 속력을 높여 움직였다. 도시와 도시 사이의 거리가 먼 아스트리카의 특징상 해가 지기 전에 짐을 풀려면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움직여야 했다. 숙소에 도착하면 이칼롯은 가장 먼저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광장이나 술집으로 향했다. 그는 꾸준히 외팔이 마법사에 대해 물어보고 다녔다.

하지만 아렌베일에 관한 정보는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정말로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의도적으로 숨기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칼롯은 개의치 않았다. 대신 그는 대화가 마무리되면 사람들에게 넌지시 또 다른 정보를 흘렸다. 내용은 이러했다.

「레오스 마을의 인연이 외팔이를 찾고 있다」

레오스 마을은 아렌베일이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묵었던 에레이시아의 마을이다. 즉 ‘레오스’라는 키워드는 그와 로샤단밖에 알지 못하는 고유의 단어였다. 물론 아케니온도 부분적으로 연관이 있긴 하지만, 얼마 전 카이안을 납치하러 왔다 큰 피해를 입은 그들이 이곳까지 와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렇게 정보를 모으며 수도 베스티언을 향해 달리는 여정이 계속됐다. 여전히 눈과 서릿발이 시야의 대부분을 차지하긴 했지만, 그래도 봄이 다가옴을 증명이라도 하듯 날씨는 나날이 포근해졌다. 기온이 내려가자 말들도 신이 나 발을 굴려댔다. 이따금 양 떼가 풀뿌리를 씹으려 눈을 헤집는 장면에 눈에 들어오곤 했는데, 드뷔사는 솜뭉치가 솜뭉치에 파묻혀 있다며 무미건조한 농담을 건네곤 했다.


그렇게 닷새를 더 달리자 길고 긴 초지가 끝나고 제법 굴곡 있는 산악지형이 눈앞에 펼쳐졌다. 산악지형이라고 해봤자 델키아에 비하면 우스운 수준이었으나, 부담스러울 정도로 한껏 펼쳐지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리크나이츠에 돌아온 것만 같은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산악지형의 첫 고개를 넘던 그 순간, 일행은 드디어 우려하던 상황과 마주치게 됐다.


“말 두 필에 여자라. 킬킬킬...나쁘지 않은데.”


“좋아. 여자는 팔고 말은 먹으면 되겠군.”


“멍청한 놈, 그 반대다.”


산적들은 일행을 빙 둘러싼 채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이칼롯은 천천히 말에서 내려 그자들을 훑어보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산적질할 것처럼 생긴 사내들이다. 숫자는 총 일곱. 이쪽은 둘이니 수적 우위를 들어 의기양양한 것도 이해는 갔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도끼를 치켜들며 말했다.


“자, 죽기 싫으면 가진 것 전부와 여자를 내놔라.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으니 이대로 꺼져주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산적들은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여자에 집착했다. 그중 몇몇은 드뷔사를 보며 음흉하게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드뷔사는 늘 그렇듯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잔뜩 움츠러든 어깨와 간헐적으로 떨리는 몸짓이 몹시 겁에 질려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알룬도는 그녀를 진정시키고는 이칼롯에게 시선을 건넸다. 아직 무기를 뽑진 않았으나, 그는 언제든 전투에 돌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쩔 거야 레인저 나리?”


이칼롯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뗐다. 그와 알룬도의 실력을 생각하면 뜨내기 일곱 정도는 위협수준도 못 되었다. 여기서는 대충 하나를 잡아 족치면 나머지는 알아서 도망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칼롯은 좀 더 다양한 실험(?)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드뷔사를 성적으로 농락하는 산적들의 시선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도 몰랐다.

그가 말했다.


“우리는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냥 보내줄 수는 없는 건가?”


“뭐어? 와하하하하! 얘들아 방금 들었냐? 싸우기 싫다신다!”


산적들이 한바탕 폭소했다. 역시 예상한 결과였다.


“...좋아. 그럼 한 가지 묻지. 아까부터 이 여자에게 집착하는데, 이유가 뭐지?”


사실 목적은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그러나 이칼롯은 그들의 입에서 ‘확답’을 얻기를 원했다. 그래야 확실한 명분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우두머리가 재차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알면서 뭘 물어? 시원하게 돌려 먹을라고 그러지. 거기다가 밥도 시키고 청소도 시키고, 그러다 질리면 노예상한테 팔고. 여자만큼 돈 되는 게 어디 있나? 킬킬킬.”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여자를 납치했지?”


“글쎄올시다. 한 번 진채에 가서 세어봐야 할 거 같은데.”


산적들은 이칼롯의 계속된 질문을 항복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슬금슬금 무기를 꼬나쥔 채 다가오기 시작했다. 알룬도가 이에 반응해 시미터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이칼롯은 그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제스처를 취했다.


“알룬도, 드뷔사, 절대 움직이지 마시오. 아직 조절이 잘 안 되니까.”


“...뭐?”


이칼롯은 대답 대신 칼집 손잡이를 엄지로 툭 쳐올렸다. 텔슈피드의 검신이 순간 파싯, 하고 전류를 흘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다음은 없다. 죽기 싫으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얘들아, 저 얼간이 목부터 따줘라!”


산적들이 일제히 덮치고 들어왔다. 일곱 방향에서 동시에 치고 오는 공격. 아무리 달인이라 해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불리한 위치였다. 그러나 이칼롯은 방어태세를 취하지도, 그렇다고 역으로 공격해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는 제자리에 가만히 선 채, ,천천히 텔슈피드를 뽑아들었다. 그 샛노란 검신에 전류가 감돌기 시작하자 알룬도는 절대 움직이지 말라던 이칼롯의 경고가 생각나 침을 꿀꺽 삼켰다.

번쩍! 승부는 한순간의 섬광과 함께 끝이 났다. 검 끝에서 방출된 여섯 개의 번개줄기가, 달려들던 여섯 명의 산적에게 정확히 꽂혔다. 번개에 맞은 산적들은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갔고, 땅바닥에 나동그라진 뒤에도 격렬한 경련을 일으키다 이내 잠잠해졌다. 몇몇은 눈이 까뒤집힌 채로 거품을 물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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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0) +1 15.05.25 760 20 22쪽
306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9) +1 15.05.25 776 20 14쪽
»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8) +4 15.05.25 817 27 17쪽
304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7) +2 15.05.24 944 26 19쪽
303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6) +3 15.05.24 877 22 13쪽
302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5) +2 15.05.24 955 28 19쪽
301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4) +1 15.05.24 850 21 16쪽
300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3) +2 15.05.24 894 23 24쪽
299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2) +2 15.05.24 1,045 29 18쪽
29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 +2 15.05.24 915 25 21쪽
297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5) +6 15.05.23 1,116 21 29쪽
296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4) +1 15.05.23 852 23 20쪽
295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3) +1 15.05.23 960 22 20쪽
294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2) +3 15.05.23 1,143 20 21쪽
293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1) +2 15.05.23 1,085 27 17쪽
292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3) +3 15.05.23 1,155 25 19쪽
291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2) +10 15.05.21 1,059 28 22쪽
290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1) +2 15.05.21 1,121 26 19쪽
289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6) +2 15.05.21 1,088 26 25쪽
288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6) +3 15.05.21 948 24 27쪽
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9 26 25쪽
286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4) +5 15.05.20 1,024 29 21쪽
285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41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19 24 14쪽
283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3) +1 15.05.20 1,056 27 24쪽
282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2) +3 15.05.20 759 23 19쪽
281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1) +1 15.05.20 1,003 28 22쪽
280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3) +11 15.05.19 1,017 31 30쪽
279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2) +3 15.05.19 1,229 28 17쪽
278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5) +9 15.05.18 1,143 24 18쪽
277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4) +2 15.05.18 820 24 17쪽
276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3) +4 15.05.18 950 22 24쪽
275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2) +3 15.05.18 940 23 23쪽
274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1) +2 15.05.18 1,036 25 19쪽
273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1) +2 15.05.18 982 22 19쪽
27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3) +1 15.05.18 1,232 25 25쪽
27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2) +2 15.05.17 1,022 29 25쪽
27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1) +1 15.05.17 877 20 22쪽
269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0) +1 15.05.17 978 23 23쪽
268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9) +1 15.05.17 1,051 24 20쪽
267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8) +6 15.05.17 922 26 22쪽
266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7) +5 15.05.16 1,001 27 22쪽
265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6) +1 15.05.16 897 23 26쪽
264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5) +2 15.05.16 1,038 30 26쪽
263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4) +1 15.05.16 1,013 25 24쪽
26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3) +3 15.05.16 871 24 25쪽
26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2) +2 15.05.16 937 24 26쪽
26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 +3 15.05.16 1,074 32 31쪽
259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6) +8 15.05.14 1,075 30 22쪽
258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5) +7 15.05.14 922 23 11쪽
257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4) +4 15.05.14 1,043 22 20쪽
256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3) +3 15.05.14 904 23 31쪽
255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2) +5 15.05.14 1,009 25 27쪽
254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1) +6 15.05.13 914 25 30쪽
253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0) +3 15.05.13 957 23 24쪽
252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9) +1 15.05.13 1,010 22 27쪽
251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8) +1 15.05.13 907 19 27쪽
250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7) +4 15.05.12 1,096 27 27쪽
249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6) +5 15.05.12 1,005 26 27쪽
248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5) +3 15.05.12 1,118 26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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