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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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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24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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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3)

DUMMY

레인스터 외곽에는 이미 2만에 달하는 병력이 집결해 있었다. 북부 영지 대다수가 참가한 최대의 연합군으로, 회담에 모인 귀족만 작위를 막론하고 100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니 회담이 열리는 시청 안은 대낮부터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렇게 많은 귀족들이 레인스터 공방전 때는 침묵을 지켰다고 생각하자 루도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회담은 파티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본격적인 군사작전에 앞서 서로 다른 영지의 귀족들끼리 면식을 익힐 기회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저녁 시간에 맞춰 레미나는 부지런히 몸치장을 했다. 뜨거운 물에 몇 번이고 목욕해 악취를 제거하고, 정복을 연상시키는 깔끔한 드레스와 구두로 맵시를 다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녀는 은사로 매듭지은 리본과 깃털이 장식된 부채를 챙기는 등, 여성스러움을 강조함에도 잊지 않았다.

그녀의 수수한 차림만을 기억하고 있던 루나 할라이데 여백작은 연방 감탄사를 토했다.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공주님. 제가 입던 옷들이라 어찌 마음에 차진 않으시겠지만...”


“아, 아니에요. 번거롭게 해드려서 제가 더 죄송하죠.”


루나는 안개송곳니에게 살해된 할라이데 백작의 외동딸로, 레인스터 공방전으로 이미 로샤단과는 친분이 있었다. 또한 그녀는 이번 회담에 모인 백 명에 가까운 귀족들 사이에서 로샤단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공주님께서 이렇게 행차해 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AOC에는 행운이 함께 할 모양입니다.”


레미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역시 루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녀에게 왜 국왕이 수도를 포기하면서까지 레인스터를 지원했는지 설명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착잡해졌다.


“행운이라면 행운이죠. 우리는 출진을 반대하러 온 거니까.”


“...예?”


한편 루도도 묵혀놨던 땟국물을 벗기고 간만에 깨끗한 군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얇은 가죽갑옷 위에 다림질 된 군복을 걸치니 제법 군인 모양새가 났다. 훼창기사단으로부터 빼앗은 검은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허리춤에 착 들어왔다. 레미나보다 훨씬 앞서 목욕을 끝마친 그는 해가 지기 전에 가볍게 제리온의 무덤을 참배하고 왔다.


“이런 걸 신경 쓸 인간이 아니지만, 그래도 예의상.”


저녁이 되자 시청 메인 홀 곳곳에 샹들리에가 불을 밝혔다. 본격적인 회담에 앞서 귀족들은 삼삼오오 모여 만찬을 즐겼다. 루도와 레미나도 테이블 하나를 잡고 닭날개 수프와 드레싱된 과일 샐러드로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자리를 잡은 지 채 1분이 되지 않아 레미나 공주를 보기 위해 귀족들이 앞다투어 몰려들었다.


“오오, 레미나 공주님 아니십니까? 이번 회담에 참석하신다고 미리 연락은 받았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정말 아름다우시군요.”


애초에 여자라곤 레미나와 할라이데 백작 둘 뿐인 공간이었다. 거기에 안 그래도 외모가 빛을 발하는 레미나가 새침하게 의자에 앉아있으니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었다. 레미나는 우아하게 냅킨으로 입을 닦고는 다가오는 귀족들을 하나하나 응대해 주었다.


“네. 오래간만입니다, 뷰케넌 자작님.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아, 퀴트린 남작님도 오셨군요. 부인은 잘 계시죠?”


이런 자리가 익숙하지 않은 루도는 일찌감치 시선을 외면한 채 식사에 몰두하고 있었다. 마리네나 디리터라도 같이 있으면 말상대라도 되어줄 테지만, 이렇게 레미나마저 ‘본업’으로 돌아가고 나자 그는 인사 하나 나눌 사람 없는 고독한 남자가 되어 버렸다. 아닌 게 아니라 귀족들은 그가 레미나의 시종이겠거니 하고 시작부터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수프를 들이켜고 있자니 뜻밖의 인물이 루도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게 누구야, 왕하직속특무별동대 로샤단이 아닌가! 잘 지냈나? 루도 클로람.”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린 루도는 반색이 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확실히, 중구난방으로 모인 귀족들 사이에서 그만큼 믿음이 가는 인물도 없었다.


“영주님!”


델키아의 영주, 아이크루와 자작이 그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번 AOC 결성에 호응해 그도 델키아 군사 500을 이끌고 온 참이었다. ‘로샤단’이라는 단어에 귀족들이 일제히 루도에게 관심을 보였다. 레인스터의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이끌어낸 로샤단의 명성은 이미 북부 일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자자했다. 아이크루와가 짐짓 목소리를 높인 것도 루도를 치켜세우기 위함이었다.


“이젠 자네의 위치가 나보다 높으니 영주님이란 칭호는 좀 그렇군. 그냥 아이크루와 자작이라고 하게.”


“에이, 그래도 아직 제 고향은 델키아인 걸요. 어떻게, 델키아에서도 병력을 차출했나 보죠?”


“그래. AOC라는데 안 갈 수가 있나. 그런데 흠...공주님이 이렇게 불쑥 찾아오신 걸로 보아 단순히 격려 차원 때문만은 아닌 것 같군. 안 그런가?”


역시 그는 눈썰미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일행의 방문이 일정에 없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또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다. 루도는 이걸 레미나보다 먼저 말해도 되나 싶어 조심스럽게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여전히 들이대는 귀족들을 상대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사실은 그 반대인데요. 이번 출정은 아무래도 좀...”


그런데 막 AOC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던 루도의 시야에 한 젊은 귀족이 들어와 밟혔다. 기품 있는 걸음걸이로 레미나에게 접근하고 있는 그는 남자인 루도가 보기에도 인정해야 할 만큼 훤칠한 미남이었으나, 그러한 외형을 상쇄시킬 정도로 음습하고 불순한 분위기가 뿜어져 나왔다. 남자들만 알 수 있는 카사노바의 기운이랄까? 루도는 직감적으로 그가 레미나에게 흑심을 품고 있음을 알아챘다.

아이크루와 자작도 루도의 경계를 눈치채고는 말했다.


“...바스카 백작이로군. 아는 사인가?”


“아뇨, 별로.”


가드너 바스카는 자신만만하게 레미나에게 다가갔다. 직접 공수해온 턱시도는 그의 훤칠한 체형에 완벽하게 어울렸고, 주머니 안에는 도시를 뒤져가며 얻은 루비 목걸이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는 먼저 대화를 나누던 귀족이 자리를 뜨자 우아한 자세로 레미나의 발치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공주님. 이렇게 좋은 자리에 공주님을 만나게 되다니 무한한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듣던 대로 정말 아름다우시군요. 절세가인이라는 단어가 공주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현란한 미사여구를 동원해 그녀의 미모를 칭찬했다. 아닌 게 아니라 멀리서부터 봐도 침이 꿀꺽 넘어갈 정도로 레미나의 미모는 뛰어났다. 이 정도라면 단지 공주라는 지위는 차치하고라도 품에 안고 싶어지는 여자였다.

가드너는 이 젊은 공주님의 마음을 사로잡을 자신이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귀족 중에 미혼인 귀족은 자신뿐이었고, 외모와 예법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는 레미나의 손등에 키스할 생각으로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곧 자신을 내려다보는, 정확히는 벌레 보듯 응시하는 그녀의 차가운 시선과 마주하게 되었다.


“헉...”


그녀의 뒤에 있던 사람들도 그 살기를 감지할 정도였으니, 당사자인 가드너가 느낀 당혹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레미나는 손등을 허락하기는커녕 부채를 펴 짜증스럽게 입을 가리며 말했다.


“잘 오셨어요. 바.스.카 백작님. 그런데 우리가 초면이던가요?”


“예? 아...그...혹시 제가 공주님을 따로 뵈었던 적이 있던가요? 이런, 저를 기억해 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


그 순간까지도 장밋빛 희망에 빠져있는 가드너였다. 레미나는 그의 망상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기억하죠. 바스카 백작님은 아~주 무례하시고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분이라는 걸 잘 기억하고 있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도 가드너는 낮에 거리에서 만났던 소녀가 레미나 공주와 동일인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냉랭해진 그녀의 태도에 가드너는 물론 주위의 귀족들도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식은땀만 흘렸다. 루도는 벙찐 얼굴로 그녀의 패기를 감상했다.


『뭔가 화난 거 같지?』


“...아주 많이.”


레미나는 얼떨결에 파렴치한이 된 가드너를 재차 쏘아붙였다.


“백작님, 윤리라는 건 평민보다 귀족에게 더 엄격하게 적용되는 덕목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그, 그거야...”


“그럼 귀족이라도 사람을 다치게 하면 죄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겠군요. 그런데 그렇게 고고하게 나오시면 안 되지 않을까요?”


“저...공주님. 제 어떤 실수가 공주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드너는 아예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 되어 물었다. 그러자 표독스럽게 쏘아붙이던 레미나도 천성은 속일 수 없는 것인지 흠칫 누그러진 어조로 답했다.


“아직도 모르고 계시군요. 백작님이 낮에 마차로 치고 갈 뻔한 아가씨를 기억하고 있지 않으신가요?”


“예? 그 계집이 왜...헉!!”


그제야 매치가 되는 것인지 가드너는 경악하여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그가 놀란 것은 평민을 업신여긴 자신의 태도 때문이 아니라, 그 상거지 계집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공주로 변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었다. 아니, 애초에 공주라는 사람이 왜 그 꼴로 거리를 걷고 있단 말인가.

루도는 한쪽 턱을 괸 채 메추리 고기를 씹으며 시시각각 변화해 가는 가드너의 표정을 구경했다.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그가 대단한 곤경에 빠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공주님. 죽을죄를...지었습니다.”


아름다운 공주와의 로맨스 같은 건 이미 저 멀리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오히려 지금은 화가 난 그녀가 어떤 해코지를 할까 싶어 가드너는 전전긍긍했다.

그때 뜻밖의 인물이 그를 구원했다. 물론 그 남자에게 가드너를 도와야겠다는 의도 따윈 없었으나, 그는 단지 등장한 것만으로도 레미나의 불쾌한 관심을 이끌어냈다.


“이제 막 작위를 받은 젊은이입니다. 괴롭히는 건 그쯤 해두시지요. 레미나 공주님.”


레미나의 미간이 가드너를 대할 때와는 다른 의미로 찡그려졌다. 공과 사를 통틀어 이 남자만큼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물도 없었다.


“건강해 보이시는군요. 로드웰 후작님.”


“공주님도 나날이 예뻐지시는군요. 헌데 이번 AOC회담에 참석하시다니, 여전히 신출귀몰하십니다.”


로드웰의 날카로운 안광이 루도와 레미나를 훑고 지나갔다. 후작이라는 작위 탓인지, 아니면 상대를 내려다보는 특유의 눈매 탓인지 그는 많은 귀족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루도 역시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레미나의 왕위포기선언 때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던 남자다. 듣기로는 백천기사단의 실권을 쥐고 있는 세도가라고 했던가. 가드너 같은 얼간이와는 다른 음모의 냄새가 풍기는 인물이었다.


“물론...전장으로 향하는 병사들을 위로하러 와주신 거겠지요?”


레미나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역시 기분 나쁜 남자다. 아직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는데도 속마음을 읽힌 듯한 느낌이었다. 아직 정식 회담까지는 시간이 남았지만, 어차피 본 목적이 회담 자체의 부정인 만큼 조금 앞서가도 나쁠 건 없었다. 레미나는 애써 로드웰의 시선을 피하고는 루나에게 제스처를 보냈다. 루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단상 위로 올라가 말했다.


“이 자리에 모인 귀족 여러분. 우선 이번 AOC에 응해 먼 길을 와주신 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여러분이 보여주신 애국심이야말로 전황을 바꿀 가장 날카로운 칼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귀족들의 관심에 자연스럽게 루나에게로 쏠렸다. 그사이 레미나는 홀을 가로질러 단상으로 나아갔다. 루도는 미리 얘기했던 대로 그녀의 뒤를 - 마치 경호원처럼 - 따랐다. 루나가 레미나의 신호를 받고는 한 번 심호흡을 한 뒤 말했다.


“이미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 이 자리에는 레미나 리크나이츠 공주님이 참석해 계십니다. 이번 AOC 결성과 관련해 중요한 말씀이 있다고 하셔서 이렇게 먼저 일정을 마련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공주님은 왕하직속특무별동대 로샤단의 특별고문이시며, 지난번 레인스터 공방전 때 직접 델키아 수비대를 이끌고 적의 본진을 급습해 영웅적인 승리를 이끌어내신 바 있습니다. 그럼, 공주님을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레미나가 단상 위로 올라가자 장내가 떠나갈 듯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는 조금 과장하면 북부 지방을 구원한 인물이기도 하니, 귀족들에게도 당연히 평판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사이에서 로드웰 후작과 메르디오스 공작만은 굳은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친애하는 북부 영주님들. 이렇게 AOC 소집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듣기로 이번 연합군의 목적은 빼앗긴 북부 영지의 수복과 나아가 마드리고까지의 진격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왕실기사단, 천정기사단과의 연계가 필요하겠지요.”


몇몇 귀족들이 원정 성공을 기원하며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 레미나가 하려는 말은 그들의 기대에 완벽하게 반하는 것이었다. 그걸 알기에 그녀도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숨을 죽였다.

그녀가 침묵하자 홀 전체가 정적에 휩싸였다. 그 몇 초가 그렇게도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망설이면 할수록 이번 일은 확실히 못을 박아야겠다는 결의가 샘솟았다. 그녀는 아예 단도직입적으로 운을 뗐다.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저는 지금 리크나이츠의 공주이자 로샤단의 고문으로서 AOC 연합군의 출진 보류를 강력하게 촉구하는 바입니다. 봄이 올 때까지, 아니 아스트리카와 협상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무력충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몇 초의 정적. 그리고 몇 초의 어지러운 시선 교환. 예상한 반응이었기에 레미나는 굳게 입을 다문 채 혼란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그녀의 발언에 귀족들이 하나둘씩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공주님!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놔두고 출진 보류라니요!”


“지금도 국토의 40%가 아스트리카에 점령된 상태란 말입니다. 제 영지도....”


“국왕 폐하는 라키시아를 탈환할 생각도 하고 있지 않으신 겁니까?!”


전황판을 단순히 리크나이츠와 아스트리카의 구도로 놓고 보면 귀족들의 반발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레인스터 공방전으로 흑연기사단의 전력이 크게 감소했고, 남부 전선에서는 가이잘모의 천정기사단이 마르세아 기사단을 패퇴시켰다. 그렇다면 아스트리카 본국에서 증원이 오기 전에 기세를 몰아 국경까지 밀고 나가는 게 당연한 판단이었다. 보급선이 끊어지면 수도에 박힌 훼창기사단도 알아서 기어나올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심지어 회담에 모인 귀족 중엔 영지를 잃고 도망쳐 온 이도 있었으며, 개중에는 흑연기사단의 약탈 행위로 주민 대부분이 사라진 곳도 있었다. 그들이 가슴에 품은 분노와 투지는 감히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미 귀족들 몇몇은 분통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단지 왕족이라는 위치로 무마하기엔 사안이 너무 컸다. 로드웰은 그때까지도 초연한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레미나의 발언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그게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기민하게 판단했다.


“공주님, 그건 공주님 개인의 판단입니까 아니면 국왕 폐하의 뜻입니까?”


“물론 국왕폐하의 뜻입니다. 꼬리를 말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 선택이 향후 우리 왕국의 운명을 결정지을지도 모릅니다.”


“글쎄요. 저야 백천기사단쪽 사람이니 이번 AOC에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닙니다만, 비단 저만이 아니라 다른 귀족 분들도 납득하기 어려운 듯한 얼굴이군요.”


아닌 게 아니라 만약 발언자가 레미나 정도 위치에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면 당장 건물 밖으로 내동댕이쳐졌을 것이다. 그녀를 향한 수많은 시선 중에는 심지어 살기마저 느껴졌다.

레미나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귀족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어쭙잖은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리도 없다. 그러니 설득하려면 진실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느 수준까지 선을 긋느냐였다. 신의 아이와 아루의 수정. 과연 그들이 비밀을 지켜줄 수 있을까? 그녀는 회의적이었다.


“아스트리카와의 전쟁은 전초전에 불과합니다. 지금은 쓸데없는 소모를 피하고 앞으로 다가올 진정한 적에 대비해야 합니다. 브리토리스 왕국을.”


브리토리스. 생소하기까지 한 그 단어에 몇몇 귀족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또 몇몇 귀족은 실소를 터뜨렸다. 당연한 반응이다. 수백 년간 교류조차 없던 북방의 잊혀진 국가가 아니던가. 그 보이지도 않는 국가의 위협이 지금 눈앞에 맞닥뜨린 아스트리카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로드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브리토리스라니...그 소국이 어디로 침입해 온다는 말입니까. 뭐, 배라도 타고 온답니까?”


레미나가 발끈해서 되받아쳤다.


“폭풍협곡의 결계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오는 길이니 믿어도 좋습니다.”


“...좋습니다. 브리토리스의 남하가 두려워 레인스터에 병력을 집중했다는 폐하의 판단...수긍이 가진 않지만 일단 넘어가도록 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공주님. 물자의 이동이 없다 뿐이지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소규모 인원을 파견해 브리토리스의 정보를 모아왔습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그곳은 땅은 넓지만 기온이 낮고 토지가 척박해 인구가 리크나이츠의 1/4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대체, 무슨 병력으로 우리 왕국을 침범해 온다는 말씀이십니까?”


레미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역시 이 남자는 알고 있다, 신의 아이의 존재를. 류이너스 교단 쪽에서 정보가 샜을 수도 있고, 아니면 스벤달 그 멍청이가 떠벌리고 다녔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신의 아이 문제가 공론화되는 것은 카이안의 거취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의문인 점은 로드웰의 진의였다. 굳이 비약시켜 남진파 귀족들이 전부 그의 뜻을 따른다면, 신의 아이 공론화가 그들에게 어떤 이득이 된단 말인가? 혹시 국왕에게 반감을 가진 그들이 의도적으로 로샤단의 활동을 저지하려는 것은 아닐까? 이 중요한 시국에 설마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를 하겠냐고 자문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귀족들이 보여준 행태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오래갈 것도 없이 레인스터 공방전 때만 해도 적지 않은 영주들이 지원군 파병을 거절했지 않은가.


“저도 그쪽의 자세한 사정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전번에 있었던 국왕시해 도모 사건과 위그라프 후작의 반란 건이 전부 안개송곳니라는 브리토리스 비밀조직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침공에 앞서 갖은 술수를 동원해 우리 리크나이츠와 아스트리카의 전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여기서 아스트리카와 또 한 번 대회전을 치르면 어떻게 될까요? 양측 모두 커다란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남하해오는 브리토리스 군대를 어떻게 막아야 할까요?”


그녀의 진심 어린 호소가 통했던 것일까, 볼 멘 소리로 일관하던 귀족들이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스케일이 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 만약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섣부른 출진은 대참사를 불러울 수도 있었다.

그렇다. 귀족들에게는 ‘믿기 힘들다’라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시기를 놓치면 아스트리카도 증원군을 파병할 텐데...공주님의 발언을 국왕 폐하도 알고 계시는지요? 폐하께서도 AOC의 출진을 반대하고 계신 겁니까?”


그때 잠자코 경청하고 있던 아이크루와 자작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귀족들의 항의를 명료하게 반박했다.


“특무별동대 로샤단의 일원으로서 공주님의 발언은 국왕 폐하의 칙령과 동등한 위력을 가집니다. 지난번 레인스터 AOC에 참가하지 않은 영주님들은 모르시겠지만요.”


띄엄띄엄 불편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일개 자작의 의견에도 섣불리 언성을 높일 수 없는 까닭은, 이전 레인스터 공방전 때 아이크루와의 델키아 지원군이 보여준 놀라운 전과 때문이었다. 즉, 많지 않은 AOC 역사에서 그는 자신의 지휘력과 통찰력을 입증한 몇 안 되는 영주 중의 하나였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요점은 이게 아닐까요? 출진한다와 하지 않는다. 만약 하지 않는다면 우리 군대는 전력을 그대로 보존하겠지만, 시간에 지남에 따라 흑연기사단 쪽도 증원이 이루어지겠지요. 만약 출진을 한다면, 아스트리카와 격전을 벌이게 될 거고, 많은 장병이 죽게 될 겁니다. 전투에서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겁니다. 여기 모인 영주님들 대다수는 승리를 낙관하고 계신 모양이지만.”


“벌써부터 패배를 두려워하면 어찌하오? 우리 북부 연합군의 사기는 지금 하늘을 찌를 듯하오!”


한 귀족의 항변에 아이크루와는 빙긋 미소 지었다.


“제 말은, 승리를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공주님의 말에 조금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출진을 보류함으로서 정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수확이 어디 있습니까? 해산이 아닙니다. 단지 출진을 잠시 뒤로 미루자는 것뿐입니다. 한 번 진지하게 리스크에 대해 고민해 봅시다. 우리는 지난 전투에서 레미나 공주님과 로샤단이 보여주었던 진실성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AOC의 출진 보류를 강력하기 지지하는 바입니다.”


마치 사전에 모의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이크루와는 논리정연하게 레미나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 루나 할라이데가 더 살을 붙여주었다.


“레인스터도 출진을 보류합니다. 로샤단 덕에 되살아난 도시의 책임자로서, 우리는 그들을 지지할 의무가 있습니다.”


레인스터 공방전의 주인공들이 모두 출진을 보류해버리자 회담에 모인 귀족들은 상황이 매우 난처하게 되었다. 단 두 귀족의 선언에 불과했지만, 기세는 급속히 로샤단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레미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참으며 로드웰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심기가 불편한 듯 턱을 한껏 구겨대는 중이었다. 로드웰과 메르디오스를 비롯한 남진파 귀족들은 AOC의 성공 여부를 떠나 로샤단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애써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정전이라고 해도 결국은 아스트리카가 응해 줘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껏 협상에 어떤 태도를 유지해 왔는지 공주님이 모르시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레미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그 문제에 있어서는 그녀도 의아해하고 있었다. 평화사절을 보낸 게 벌써 지난 가을인데, 몇 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 란도스 국왕의 추진력에 다소 실망하던 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주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한 달이 넘게 속세를 벗어나 있던 그녀가 알 리 없었다.


“모르는데요? 뭐 문제라도 있나요?”


그리고 문제는 란도스 국왕의 회의실에서 실시간으로 악화되고 있는 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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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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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4) +104 15.09.01 2,321 49 24쪽
344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3) +15 15.08.20 1,060 26 20쪽
343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2) +11 15.08.09 1,066 35 23쪽
342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1) +11 15.07.26 1,181 39 22쪽
34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4) +23 15.07.20 1,216 40 11쪽
34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3) +26 15.07.13 1,132 53 16쪽
33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2) +35 15.06.12 1,401 51 11쪽
33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1) +11 15.06.10 1,014 42 11쪽
337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0) +12 15.06.03 1,015 36 19쪽
336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9) +6 15.06.02 1,094 32 17쪽
335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8) +6 15.06.02 953 31 15쪽
334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7) +2 15.06.02 970 27 16쪽
333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6) +3 15.06.02 973 28 20쪽
332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5) +2 15.06.02 925 25 15쪽
33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4) +3 15.06.02 991 25 19쪽
33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3) +7 15.06.01 915 33 18쪽
32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2) +2 15.06.01 930 27 22쪽
32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 +3 15.06.01 878 26 23쪽
327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5) +5 15.05.31 935 29 13쪽
326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4) +1 15.05.31 852 23 19쪽
325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3) +2 15.05.31 918 25 22쪽
324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2) +2 15.05.31 950 24 19쪽
323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1) +1 15.05.31 782 21 20쪽
322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5) +10 15.05.30 980 34 21쪽
321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4) +5 15.05.30 877 26 19쪽
320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3) +6 15.05.27 1,022 30 18쪽
319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2) +2 15.05.27 748 28 15쪽
318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1) +3 15.05.27 769 29 14쪽
317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4) +1 15.05.27 901 26 18쪽
316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3) +8 15.05.26 898 23 27쪽
315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2) +2 15.05.26 773 24 23쪽
314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1) +3 15.05.26 866 20 28쪽
313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5) +2 15.05.26 846 26 21쪽
312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4) +1 15.05.26 892 25 18쪽
311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3) +3 15.05.26 1,089 24 25쪽
310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2) +3 15.05.25 875 25 28쪽
309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1) +2 15.05.25 971 22 18쪽
30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1) +2 15.05.25 725 26 23쪽
307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0) +1 15.05.25 750 20 22쪽
306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9) +1 15.05.25 769 20 14쪽
305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8) +4 15.05.25 807 27 17쪽
304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7) +2 15.05.24 935 26 19쪽
303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6) +3 15.05.24 867 22 13쪽
302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5) +2 15.05.24 944 28 19쪽
301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4) +1 15.05.24 844 21 16쪽
»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3) +2 15.05.24 884 23 24쪽
299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2) +2 15.05.24 1,031 29 18쪽
29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 +2 15.05.24 911 25 21쪽
297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5) +6 15.05.23 1,107 21 29쪽
296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4) +1 15.05.23 847 23 20쪽
295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3) +1 15.05.23 950 22 20쪽
294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2) +3 15.05.23 1,137 20 21쪽
293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1) +2 15.05.23 1,081 27 17쪽
292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3) +3 15.05.23 1,141 25 19쪽
291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2) +10 15.05.21 1,053 28 22쪽
290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1) +2 15.05.21 1,111 26 19쪽
289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6) +2 15.05.21 1,080 26 25쪽
288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6) +3 15.05.21 938 24 27쪽
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2 26 25쪽
286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4) +5 15.05.20 1,018 29 21쪽
285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30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09 24 14쪽
283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3) +1 15.05.20 1,045 27 24쪽
282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2) +3 15.05.20 750 23 19쪽
281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1) +1 15.05.20 993 28 22쪽
280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3) +11 15.05.19 1,011 31 30쪽
279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2) +3 15.05.19 1,224 28 17쪽
278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5) +9 15.05.18 1,137 24 18쪽
277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4) +2 15.05.18 809 24 17쪽
276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3) +4 15.05.18 942 22 24쪽
275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2) +3 15.05.18 931 23 23쪽
274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1) +2 15.05.18 1,030 25 19쪽
273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1) +2 15.05.18 974 22 19쪽
27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3) +1 15.05.18 1,223 25 25쪽
27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2) +2 15.05.17 1,011 29 25쪽
27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1) +1 15.05.17 867 20 22쪽
269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0) +1 15.05.17 968 23 23쪽
268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9) +1 15.05.17 1,040 23 20쪽
267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8) +6 15.05.17 907 25 22쪽
266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7) +5 15.05.16 993 26 22쪽
265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6) +1 15.05.16 889 22 26쪽
264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5) +2 15.05.16 1,031 29 26쪽
263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4) +1 15.05.16 1,001 24 24쪽
26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3) +3 15.05.16 859 23 25쪽
26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2) +2 15.05.16 926 23 26쪽
26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 +3 15.05.16 1,061 31 31쪽
259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6) +8 15.05.14 1,064 29 22쪽
258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5) +7 15.05.14 914 22 11쪽
257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4) +4 15.05.14 1,033 21 20쪽
256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3) +3 15.05.14 894 22 31쪽
255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2) +5 15.05.14 1,000 24 27쪽
254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1) +6 15.05.13 904 24 30쪽
253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0) +3 15.05.13 943 22 24쪽
252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9) +1 15.05.13 996 21 27쪽
251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8) +1 15.05.13 898 18 27쪽
250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7) +4 15.05.12 1,088 26 27쪽
249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6) +5 15.05.12 995 25 27쪽
248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5) +3 15.05.12 1,104 25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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