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조회수 :
359,276
추천수 :
10,757
글자수 :
2,844,987

작성
15.04.15 03:31
조회
741
추천
36
글자
18쪽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10)

DUMMY

“그거, 확실한 거냐?”


“아마도...저도 들은 거라 확답은 못 하겠지만요.”


“니미, 신의 아이끼리 인맥형성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맘에 안 드는데.”


안트로서가 입을 비죽이 내밀며 말했다. 그는 의자를 끌어와 검 바로 앞에 앉더니, 팔짱을 끼고 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좀 전부터 도무지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지 마리네가 질문을 걸어왔다.


“저어...아까부터 봉인, 봉인하시는데, 제가 생각하는 그게 맞는 건가요?”


제리온을 제외하곤 마법에 무지한 일행이었지만, 봉인이라는 용어가 무얼 뜻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라든지, 어머니 팔베개를 베고 전해 들었던 옛날이야기 중에 빠지지 않는 요소가 바로 ‘봉인’이었다. 사악한 마왕을, 혹은 거대 괴수를 봉인한 이야기는 누구든 한 번은 들어봤을 정도로 익히 유명했다.

안트로서가 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얼라들 읽는 동화 말하는 거냐? 그거라면 대충 맞다. 동화가 오히려 역사서보다 진실에 근접해있다니, 웃기는 현실이지.”


역사학을 전공하는 카이안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 거품을 물고 그에게 달려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안트로서는 아까 전부터 현재를 지탱하는 역사와 권력체계를 끊임없이 부정하고 있었다.

그는 그쯤에서 화제를 루도의 검으로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마리네가 너무나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자 헛기침을 하며 부연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그의 약점은 단순한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흠, 흠. 동화 속에 나오는 봉인은 전부 실제다. 성언전(聖言前), 드래곤조차 버거워하던 악마 군대에 맞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항수단이 바로 봉인이었지. 봉인은 말 그대로 대상을 특정한 사물, 혹은 장소에 유폐시키는 마법이다. 성언이 발동된 후엔 해이해진 마법체계로 인해 전승이 끊겼다고 들었는데, 그 해골이 결국 완성한 모양이야. 이게 무서운 건 그 지속시간이 반영구적이라는 점과, 나정도 절륜 고수가 아니면 탐지조차 불가능하다는 거지.”


“우와, 반영구요? 그럼 풀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영원히 거기 갇혀 사는 건가요?”


“갇히는 건 맞지만 ‘산다’라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다. 봉인된 개체는 생체활동이 중지된, 완벽한 가사상태에 빠지게 되지. 즉,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을 꾸게 되는 거다.”


“무서운 마법이네...”


마리네의 궁금점이 해소되자 이번엔 루도가 쭈뼛거리며 손을 들었다. 그는 말을 걸었다간 또 욕을 한 바구니 먹을 거라 생각해 주저했으나, 아무래도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었다. 예상대로 안트로서는 길길이 뛰며 삿대질을 해댔다.


“내가 네놈들 가정교사인 줄 알아?!”


“아니, 그게 아니라...저, 시비 걸려는 건 아니고요. 봉인이 당신 같은 고수가 아니면 탐지가 힘들다고 했는데, 제리온도 일단 마력은 느꼈는데요?”


루도는 자신을 깎아내린 거라 생각한 안트로서가 폭언을 내뱉을 거라 생각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예상 외로 그는 잠잠했다. 안트로서는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나섰다. 그는 아무래도 질문의 요지를 「제리온 같은 ‘허접’도 감지했다」로 파악한 듯싶었다.


“그게 지금부터 생각해야 할 문제다. 곱슬머리 같은 양민 마법사가 탐지할 정도면 답은 하나야. 그람의 마법이 실패했다는 거지. 지금도 계속 마력이 새어나오고 있다.”


윈프레드가 물었다.


“새어나온다는 게 무슨 뜻이죠?”


“봉인이 영구적인 이유는 대상이 구금되는 스피어(Sphere)안에 주문의 원천이 되는 마나도 함께 주입하기 때문이지. 그런데 그 스피어에 틈이 생겼어. 그람은 실패한 거다.”


“엥? 아버지, 그 말씀은...”


“맞아. 이건 영구적이지 않아. 저장된 마나가 다 떨어지면 안에 든 녀석이 뚫고 나올 거다.”


등줄기가 싸늘해지는 느낌이었다. 마리네는 그제야 그람이 말한 「놀라운 경험」의 의미를 깨닫고 몸을 떨었다. 그래서 루도를 놔준 것인가! 어느 날 갑자기 괴물이 뛰쳐나와 일행을 살육할 거라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그람 같은 마법사가 봉인할 정도니, 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해도 엄청난 능력을 지닌 인간일 것이다.

안트로서가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안에 든 녀석을 꺼내봐야겠다.”


“엑?!”


루도, 마리네, 윈프레드, 심지어 이칼롯마저도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그람이 봉인했다는 건 그만큼 위험한 인물이라는 뜻인데, 구태여 여기서 끄집어내겠다니 어불성설이었다. 일행은 만사를 귀찮아하던 양반이 왜 지금 와서는 이리도 적극적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동화책에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혹은 아둔함으로 인해 마왕의 봉인을 푸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들이 보기엔 안트로서가 딱 그런 경우였다.

먼저 윈프레드가 물었다.


“아버지, 굳이 봉인을 푸시려는 이유가 뭐죠?”


“새끼가, 애비가 간만에 좋은 일 한다고 해도 태클이야?!”


“이해가 안 돼서요.”


“안 될 게 뭐가 있어? 말했잖아. 이대로 놔둬도 봉인은 풀려. 그게 내일이 될지, 한 달 뒤가 될지, 일 년이 될지는 나도 몰라. 네놈들이 그때 가서 요놈이 튀어나오면 감당할 수 있을 거 같아?”


그의 말에 일행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봉인이 풀렸을 때의 감당은 고사하고, 일단 언제 검에서 괴물이 튀어나올지도 모르니 항상 불안감에 떨어야 할 것이다. 안개송곳니만으로도 머리가 터지려는 시점에서 이런 문제까지 겹치면 노이로제로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물론 다른 방안도 있지. 검을 바다 깊은 곳에 던져버리는 거야.”


“그건 절대 안 돼요!!”


루도가 정색하고 나섰다. 람카디스에게 받은 선물을 버리라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안트로서도 그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점점 그의 주장이 탄력을 받아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마리네가 물었다.


“그런데...안에 든 게 엄청 위험한 사람이라면서요?”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그리고 아무리 위험하건, 인간 중에 나를 이길 수 있는 녀석은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까...미리 철저히 준비해놓고 꺼낸다는 거군요? 만약 위험할 거 같으면 여기서 죽이는 거고, 아니면 뭐...”


“이해가 빠른 꼬마로구나.”


마리네에 이어 이칼롯도 그의 의견에 수긍했다. 윈프레드는 사실은 부친이 사적 호기심 때문에 움직이는 거라는 걸 눈치챘지만, 딱히 그의 주장에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가장 주저한 건 역시 검의 본주인인 루도였다.


“...검이 부러지거나 사라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죠?”


“새끼, 고거 참 말 많네. 네 검은 그냥 매개체일 뿐이라니까. 아무 일 없을 거다.”


“그렇다면야 뭐...”


루도는 영 못마땅한 기분이었지만, 결국 그의 제안을 승낙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안트로서의 행동은 그 목적이 어찌 됐든 일행에겐 도움이 되는 일이고, 또 안에 든 사람을 계속 놔둔다는 게 가엾기도 했다(물론 안트로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좋아, 한 번 보자고. 어떤 괴물이 나오는지!”


설득이 끝나자 그 즉시 안트로서의 봉인해제의식이 진행되었다. 물론 마법이 뚝딱 발동되는 건 아니고, 초 고위 마법을 해제하는 일인 만큼 만만찮은 준비가 필요했다.

일단 그는 마법진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그 크기가 연구실 전체에 해당됐다. 거기다 마법을 보조할 여러 촉매, 보석 등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행은 그의 명령에 따라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뒤늦게 부름을 받고 온 아르유는 어질러진 연구실을 정리해 주문식의 오차가 없도록 했다.

루도는 안트로서가 벽이며 천장, 마룻바닥에 정교한 도형을 그리는 걸 보고 감탄했다. 그는 머릿속에 이미 공식이 그려져 있는지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다. 소식을 듣고 온 제리온이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업솔루트는 업솔루트네. 이 정도 규모의 마법이라니.”


그렇게 두 시간가량이 흐르자, 그의 연구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가구가 모조리 사라지고, 벽 구석구석엔 마법진이 빽빽이 새겨졌다. 안트로서는 루도의 검을 연구실 중앙에 세우고, 그 주위에 오망성을 그린 후 각 꼭지점에 해당하는 부분에 남옥(aquamarine)을 꽂았다.

기나긴 준비가 끝나자 그는 힘껏 기지개를 켰다. 지켜보던 윈프레드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아버지, 그런데 언제 봉인 푸는 마법을 연구하신 거예요?”


“응? 그런 거 연구한 적 없는데?”


“그럼 어떻게...”


안트로서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말했잖냐, 그람의 마법은 실패했다고. 난 스피어(Sphere)에 난 구멍을 좀 더 확장할 생각이다. 그럼 마나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테고, 봉인도 자연히 사라지겠지.”


부친의 장난기 어린 미소에 윈프레드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단지 그람의 마법을 깨부수고 싶은 것뿐이었다.

무대가 완성되었다. 검의 맨 앞에 안트로서가 섰고, 일행은 혹시 모를 괴물의 난동에 대비해 무기를 꺼내고 대기했다. 안트로서는 구석에 쪼그려 앉은 아르유에게 말했다.


“아르유, 키엘을 불러라.”


그러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에? 당분간 정령 소환 금지라면서요.”


“됐으니까 꺼내, 요것아.”


“피이...이랬다 저랬다...”


그녀가 카드에 대고 힘을 불어넣자 불의 정령 키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발화하는 강아지가 나타나자 녀석을 본 적 없는 셋은 움찔 놀라 뒷걸음질쳤다. 안트로서가 말했다.


“검에서 나온 녀석이 난동을 피우면 키엘에게 명령해 그 즉시 태워버려라. 알았지?”


그 말에 아르유는 마뜩잖은지 이마를 살짝 찡그렸다.


“사람이라면서요? 그래도 태워요?”


“사람 중에도 괴물은 얼마든지 있는 법이야. 명심해라.”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벽에 새겨진 마법진이 서서히 떠오르더니, 루도의 검을 중심으로 뱅글뱅글 돌았다. 마법진에서 나오는 파아란 빛에 시각이 흐릿해졌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스펠 브레이크스로우(Spell Breakthrough)!"


바닥에 비치했던 남옥이 퍽퍽 부서져 나갔다. 부서진 보석에서 휘황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연구실을 가득 메웠다. 모여있던 사람들은 황급히 팔을 들어 시력을 보호했다.


“워...이게 뭐야?!”


“개 같은 영감, 이런 거면 미리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냐!”


제리온이 마구 욕설을 내뱉었으나, 이마저도 그의 일갈에 묻히고 말았다. 안트로서는 바로 다음 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듀라이즈 래셔(Durei's Lasher)"


지이이이잉...바이올린 현을 아무렇게나 튕기는 것 같은 날카로운 음향이 귀청을 흔들었다. 눈부신 빛과 격렬한 음향 때문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갑자기 영문을 알 수 없는 돌풍이 연구실 안을 덮쳤다. 루도는 재빨리 자세를 낮추고 상황을 살폈다. 여전히 눈을 뜰 수 도 없을 만큼 강한 빛줄기 속에서, 안트로서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옳거니, 넘쳐흐르는구나, 넘쳐흘러. 과연, 이런 구조였나! 역시 천재 그람이야!!”


만약 시각이 온전했다면 일행은 그가 양팔을 벌린 채 미친 사람처럼 사정없이 휘두르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일반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마법채찍으로 그람의 주문식을 깨뜨리는 중이었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다가, 마침내는 두 발로 서서는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눈치 빠른 몇몇은 재빨리 엎드려 상황을 모면했다. 그러나 제리온이나 마리네 같은 경우는 덮쳐온 바람에 휩쓸려 구석까지 굴러야만 했다.


“우워어어~.”


루도는 작게 실눈을 뜨고 전방을 주시했다. 그런데 빛줄기 속에서 그를 향해 날아온 한 물체가 있었다. 그것에 정통으로 이마를 맞기 직전, 루도는 폼멜에 그려진 장미 문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리크나이츠 왕실을 상징하는 문양.

빠악.


“왁!”


순간적인 충격으로 고개가 치켜들려졌다. 그러자 몸이 바람을 받는 면적이 늘어났고, 루도는 다른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데굴데굴 굴러가 벽에 처박혔다. 빛이 사라진 것은 그때쯤이었다.


“으으으으....”


루도는 부어오르는 이마를 어루만졌다. 발치에 자신의 검이 내동댕이쳐져 있는 게 보였다. 검이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다가 그의 머리를 친 것이었다. 그는 재빨리 검을 챙겨 일어났다.


“어떻게 된...”


뒤늦게 결과를 확인한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그 자리에서 말을 잃고 말았다.

방 한 가운데 한 소녀가 누워 있었다. 아니, 소녀라고 하기엔 키가 크고, 또 성인이라고 하기엔 가녀린, 그런 아가씨였다.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쯤 됐을까? 외관상으로는 루도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와는 달랐다. 단지 누워 있을 뿐인데도 그녀에게선 알 수 없는 기품이 느껴졌다. 백옥 같은 피부, 단정하게 빗은 금발 머리, 그리고 금방이라도 기지개를 켜며 일어날 것처럼 차려입은 벨벳 원피스. 마치 처음 안젤리카를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자신과는 차별되는 고결함이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더러움 자체가 허락되지 않은 사람이랄까?


“...예쁘다아...”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아르유는 무심코 말했다. 그만큼 그녀는 아름다웠다. 아기처럼 고운 피부도 그랬지만, 수려한 이목구비와 짙은 속눈썹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회화에 관심이 많은 디리터는 류이너스 교단 본부의 생텀가드 루치페리아가 그녀를 본떠 조각한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다들 넋을 잃은 가운데 안트로서가 소녀의 복부에 손을 대고 주문을 외웠다.


“가사상태가 바로 풀리진 않는다는 건가? 괜히 아르유까지 불렀군. 임프로브드 디텍팅(Improved Detecting)."


일렁이는 파장이 그녀를 휘감았다. 그러자 잠시 후,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빛은 너무도 희미해서, 루도의 검이 뿜던 그것에도 미치지 않을 정도였다. 안트로서가 그것을 보고 뒤통수를 긁적였다.


“야, 이거...”


윈프레드가 말했다.


“어떤데요?”


“...그냥 일반인 같은데?”


망치로 세게 머리를 두드려 맞은 기분이었다. 그람도 감당 못해 봉인한 괴물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방비를 한 것인데, 그냥 일반인이라니? 윈프레드도 당황한 눈치였다.


“일...반인이요? 그런데 이렇게 빛이 나고 있는데...”


“아아, 마법이나 연금술 계통 종사자겠지. 그런데 이 정도는 기절상태를 고려해도 너무 약해. 저기 곱슬머리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그럼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되죠?”


“글쎄다. 지금 떠오르는 건 죽지 못하는 그람이 사실은 변태성욕자였다는 것 정도?”


그렇게 말하긴 했어도 안트로서 역시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람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눈을 켜고 달려들었는데, 결과가 이러니 그라고 맥이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인이라는 말에 아르유가 금세 달려왔다.


“우와, 그럼 이 언니 안 죽여도 되는 거죠? 너무 이쁘다~.”


아르유는 소녀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러나 소녀는 의식이 없는지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무기를 집어넣고 다가와 그녀를 구경했다.


“흐음...역시 신의 아이 아냐?”


“확실히, 신의 아이라면 이렇게 생겨야겠지. 솔직히 루도는 좀...”


“왜 날 걸고 늘어져?!”


“...행색을 봐선 귀족 영애 같은데.”


“그렇지? 평민은 절대 이런 피부가 못 나오지.”


그때 바람에 휩쓸려 굴러가다 벽에 머리를 부딪쳐 기절해 있던, 그러나 아무도 돌보지 않아 홀로 일어나야 했던 제리온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뭔데 그래? 봉인됐던 인간이 누군지 나도 구경 좀 하자.”


그는 누워있는 소녀를 보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여자네? 내가 알던 계집이랑 빼다 박은 것처럼 닮았는데?”


“...혹시 그 사람 아냐?”


루도가 혹시나 해서 묻자 제리온은 낄낄대며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 있겠냐. 그년은 여기 나타날 이유가 전혀 없을뿐더러,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거기다 그 계집애는 사타구니에 반달 모양 반점이 있는데, 자, 봐. 그런 게...”


실로 무례하게도, 제리온은 기절한 소녀의 원피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추었다. 그러자 그녀의 하얀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고, 루도와 마리네는 얼굴이 새빨개져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디리터의 다음 발언에 둘은 다시 그녀의 사타구니에 시선을 집중해야 했다.


“있네.”


“응?!”


가장 놀란 것은 직접 옷을 들춘 제리온이었다. 그는 그가 지칭한 부위에 반점이 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지, 샐쭉거리며 찬찬히 소녀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살짝 감긴 눈, 오똑한 코, 귀엽게 오므라진 입술, 그녀의 생김새를 확인해감에 따라 그의 눈동자가 점차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조사가 끝나자 그는 뒷짐을 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마 자신이 아는 그녀가 아니라고, 그 사람이 여기 있을 리가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모양이었다. 이칼롯이 그의 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제리온, 네가 아는 그 사람 아닌가?”


그 말에 제리온은 다시금 그녀의 사타구니를 확인했다. 기억과 다름없는 반달 모양 반점. 의혹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그는 기절한 소녀를 부둥켜안고 마구 흔들었다.


“우와아아악?!! 레미나 누님!!”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람의 계승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7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 +3 15.04.16 772 27 19쪽
»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10) +5 15.04.15 742 36 18쪽
145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9) +3 15.04.15 766 29 19쪽
144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8) +3 15.04.15 749 31 17쪽
143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7) +3 15.04.15 803 27 21쪽
142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6) +4 15.04.14 739 30 18쪽
141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5) +2 15.04.14 817 28 17쪽
140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4) +6 15.04.14 736 27 15쪽
139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3) +1 15.04.14 718 29 18쪽
138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2) +3 15.04.14 726 30 17쪽
137 람의 계승자 - ep.4 - 에메랄드 섬(1) +3 15.04.14 734 24 17쪽
136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完) +3 15.04.12 826 25 15쪽
135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5) +3 15.04.12 657 23 17쪽
134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4) +2 15.04.12 667 25 17쪽
133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3) +1 15.04.12 658 27 19쪽
132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2) +3 15.04.12 754 25 21쪽
131 람의 계승자 - ep.3 - 모든 것은 예정대로(1) +1 15.04.12 880 25 17쪽
130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11) +6 15.04.11 969 30 16쪽
129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10) +1 15.04.11 940 26 19쪽
128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9) +2 15.04.11 976 25 21쪽
127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8) +2 15.04.11 979 25 19쪽
126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7) +2 15.04.11 837 28 18쪽
125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6) +1 15.04.11 838 23 21쪽
124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5) +1 15.04.11 931 29 18쪽
123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4) +3 15.04.09 1,052 33 25쪽
122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3) +3 15.04.09 973 25 19쪽
121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2) +4 15.04.09 745 25 13쪽
120 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1) +1 15.04.09 1,013 25 17쪽
119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6) +3 15.04.09 940 28 16쪽
118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5) +2 15.04.09 827 30 15쪽
117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4) +7 15.04.07 1,139 35 22쪽
116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3) +2 15.04.07 937 31 17쪽
115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2) +2 15.04.07 744 32 11쪽
114 람의 계승자 - ep.3 - 이름없는 자(1) +2 15.04.07 1,033 28 18쪽
11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4) +1 15.04.07 985 28 14쪽
11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3) +4 15.04.06 992 31 15쪽
11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2) +1 15.04.06 987 28 15쪽
11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1) +1 15.04.06 965 27 16쪽
109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0) +1 15.04.06 1,001 27 13쪽
108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9) +2 15.04.06 895 30 12쪽
107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8) +4 15.04.06 856 28 12쪽
106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7) +3 15.04.05 986 25 12쪽
105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6) +1 15.04.05 891 28 10쪽
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83 30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797 30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88 27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1 29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26 28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64 33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1 31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85 25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83 25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76 27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19 25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40 32 11쪽
92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88 28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40 26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39 29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74 31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63 34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43 33 13쪽
86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07 33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15 35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45 34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75 31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10 37 16쪽
81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80 33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15 36 14쪽
79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18 38 19쪽
7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35 33 18쪽
77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15 39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22 33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47 33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43 34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70 38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86 34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17 43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1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36 34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19 35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16 32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84 38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292 35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70 44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54 35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76 39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1 37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20 38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67 34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2 15.03.28 1,014 35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1 39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24 45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66 46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3 41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06 44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57 50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36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74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44 45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3 4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